수요설교(240911)요약 말라기 3장 10~12절(십일조와 맏물)
수요설교(240911)요약 말라기 3장 10~12절(십일조와 맏물)
어제 한 수요설교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요약이 가능한 것은 지난 지 24시간이 안됐기 때문에, 아직까지 해마에서 기억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어제 제가 강조한 것은 이겁니다. 하나님이 깡패라는 거. 이걸 웃으면서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성도에요. 깡패 맞습니다. “내가 봐줘서 너희가 지금 숨 쉬고 살지, 안 봐줬으면 5년 전에 너는 이미 죽었어.” “맞습니다, 예에, 그렇지요. 그렇고말고요.”
이렇게 되려면 도대체 어느 정도 그루밍(grooming, 사전적 의미는 길들이기, 꾸미기 등을 의미함, 그러나 그 뒤에 성범죄라는 단어가 붙으면 친분을 활용해 심리적으로 지배한 후 성폭행을 저지르는 것을 뜻한다.) 돼야 되고, 어느 정도로 이게 가스라이팅(gaslighting,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자신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당해야 돼요?
그래서 지금 마귀들은 주님에게 가스라이팅 안 당하기 위해서 지옥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지금 당하면서도 그게 합당하다는 거, 그걸 하나님께서 요구하고 있어요. 그게 이스라엘에 대한 요구 사항이거든요. “너희들 지금까지 약속의 땅에 머물러 있는 것은 내 덕인 줄 알아. 아니었으면 벌써 죽었어.”라고 할 때, “아이고, 지당한 말씀입니다.” 왜 이 말을 안 하고 있느냐 이 말이죠.
그런데 그 말을 하려면 여호와 말고 다른 신이 없어야 돼요. 다른 신이 없어야 되는데, 이미 그 사람들은 바알 종교에 물들었습니다. 바알 종교에 대해서는 부산 강의에서 제가 집중적으로 이야기 했어요. 성경에 바알 얘기가 얼마나 많이 나와요? 바알 섬겼다, 아세라 섬겼다. 도대체 바알이 뭔지를 설명도 안 해주고 “바알을 섬겼으니까 너는 이제 저주 받는다. 내가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했지? 그런데 왜 바알을 섬겨?”
바알이 뭡니까? 요새 무슨 바알이 있어요? 요새 현대에 바알이 없잖아요. 그럼 성경책은 뭐냐? 옛날 책으로 끝났나? 요즘은 효용도가 완전히 없어진 그냥 옛날 책인가? 지금은 신 자체를 안 믿잖아요, 신 자체를. “아직도 네가 신을 믿느냐? 복 받기 위해서 신을 믿냐? 네가 알아서 하면 복 얻는데, 아직도 복 달라 하느냐? 믿지 마라.” 그렇게 할 때, 이 말은 누가 들어도 이건 바알이든, 뭐 여호와든, 알라든 아예 신을 안 믿는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시대에 바알 종교를 믿어서 그들이 망했다는 게 지금 우리한테 무슨 의미로 다가옵니까? 아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바알 종교의 특징은 바로 자연신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옛날 사람들이 똑똑해요, 지혜로워요. 무슨 질문을 던지느냐 하면, 자연은 왜 질서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진짜 자연 같으면 자연이 혼돈스러워야 자연스러워요. 자연에 규칙이 있으면 안돼요. 왜, 해는 규칙을 갖고 있느냐?
그게 그들에게 무서움으로 다가가는 거예요, 무서움으로. 뉴튼이 오면 안 무서워요. 이거는 뭐냐, 만유인력의 법칙에 준하기 때문에 안 무서운데, 세상의 해와 달과 별이 하나의 질점이에요, 질점. 물체의 추상적인 개념이 질점이에요. 물체를 물체라 하지 말고 하나의 물리적인 운동의 점으로 봤을 때는 이건 질점이 되거든요. 그 질점과 질점 사이에 어떤 관계가 정확한 관계가 있으면, 그건 물리학 공식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전에는 그게 없었어요.
그래서 하는 말이 뭐냐? 이건 정확한 신이 있어서 정확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한 겁니다. 우리가 넘볼 수 없는 신이. 그런데 신이 뭘 하느냐? 분명히 겨울 되면 죽는데, 분명히 죽어 없어졌어요. 그런데 봄 되면 딱 어디 숨겨놨다가 기어 나오게 만들어요. 부활하게 만드는 거예요. “아, 죽어도 사는구나. 그러면 이 신을 믿어야지.” 바알 신의 특징은 뭐냐? 바뀌지 않고, 내가 죽었다가 내가 산다는 데에 있어요. 부산 강의에서 했죠.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는데, 바알 종교를 믿고 보니까 바알 종교는 나를 안 건드리더란 말이죠, 나를 안 건드려. 왜냐하면 바알 종교의 내용은 자연에서 왔기 때문에 인간도 자연의 일부잖아요. 자기의 뜻을 반영하고 거기에 대해서 어떤 기적적인 행운을 쟁취하면 거래가 끝나는 신이에요. 정성을 다하여 믿고 바치면, 저쪽에서도 내 정성을 보고 응답하는 거예요.
왜? 내 정성이 자연 속의 일부로 파급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그걸 양자역학으로 말하면 양자 얽힘이라고 하는 겁니다. 내게 일어나는 것이 저쪽에 원인이 있어서 내게 일어났고, 그 원인에 내가 반응을 보이면, 반응을 보이는 이걸로 인하여 추가되는 결과가 저쪽에서 나한테 보내주는 것, 양자 얽힘, 양자 얽힘에서 나오는 양자 중첩도 비슷한 내용이라 볼 수 있어요. 현대는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 이건 쉽게 말해서 자연이 곧 신이라는 뜻입니다.
그게 모세가 애굽에 내려갔을 때, 자연 작살났습니다. 열 가지 재앙으로. 그 재앙들에 대해서 애굽의 마법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이거는 사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으로 파악이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보내주세요.” 라고 했거든요. 바로 어제 수요일 날 했던, 파악되지 않는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이냐? 깡패에요.
인간의 모든 권한과 권리, 가치, 의미를 일방적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종속시키는, 일방적으로 종속시키는, 그루밍도 이런 그루밍이 없어요. 이런 가스라이팅이 없어요. 그냥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죽으라 하면 죽고, 살라 하면 살아, 그것뿐이에요. 끝이에요. 그래서 어제 김또깡(김두환) 이야기를 했잖아요. 영화배우 외할아버지인가 하는 깡패. 깡패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성경을 보겠어요, 덮고 멀리 하겠습니까? 덮고 멀리하잖아요. 이거는 말이 통하는 분이 아니에요. 일방적으로 침투하고, 지적하고, 나무라는 것을 주특기로 삼는 신이기 때문에 주고받는 게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 입장에서는 이거에요. 이미 하늘나라 창고, 천국이죠, 천국에 갈 사람은 언약에 부합되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 언약이 뭐냐? 세상의 혈육과 끊어져야 돼요. 세상의 혈육과 끊어지는 것이 할례입니다. 끊어졌다 이 말이죠. 아까 강의(240912 안양)처럼 우리의 어머니가 하늘에 있다는(갈4: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이 뭔가 끊어진 거예요. 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러면 약속의 땅에서 농산물이 나오지? 그게 바로 뭐냐?
언약에 의해서 메뚜기가 제 때 안 오게 했던, 애굽에게 내렸던 열 가지 재앙이 똑같은 인간이고, 똑같은 속성을 가진 인간이고, 육이지만, 나는 특별 조치로, 깡패이기 때문에, “다른 시라소니파가 침투 못 하도록 내가 막아준 결과다. 그래서 너희는 나한테 몽땅 바쳐도 너희는 그걸 당연한 걸로 여겨야 돼. 내가 막아줬으니까. 내가 다른 파에서 자릿세 뺏는 거 내가 막아줬잖아. 그러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십일조 내.“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러면 십일조는 뭐냐? 십일조는 맏물이죠. 이 십일조를 뭐로 바꾸느냐? 맏아들로 바꾸는 겁니다. 이게 출애굽기의 유월절에 맏아들만 받기 때문에, 항상 복은 맏이에게 오지, 다른 데엔 오지 않아요. 야곱도 그렇고, 이삭도 그렇고, 아브라함도. 맏이한테 복이 와요. 맏물이 되는 거예요. 맏물은 할례를 행해야 돼요. 아브라함에게 할례, 할례를 행해서 육에서가 아니고, 약속에 의해서 태어난 분이 맏물이 되고, 그 맏물만 하나님께서 그 동안 금지되어 있던 생명나무를 허락을 해버립니다.
그러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을 시스템을 만드는데, 그게 시형제 결혼법이에요. 형이 자식이 없이 죽었어요. ”아이고, 형은 안됐다. 자식도 하나 없이.“ ”아니야. 줄줄이 시동생이 있는 이유가 뭔대? 시동생이랑 혼인해서 죽은 아버지의 자식으로 해라. 그러면 죽은 아버지는 뭐냐? 죽은 계명이 살아있는 거예요. 죽은 계명이 뭘 만든다?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거예요.
이게 마태복음에 보면, 시형제 결혼법을 이야기 하면서 “네가 부활을 오해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죽음으로 끝나는 하나님이 아니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하나님, 나는 산 자의 하나님이다. 산 자의 하나님이다. 죽었는데 살아 있잖아. 아브라함도 살아있고, 이삭도 살아있고, 야곱도 살아 있잖아.”(마22:32-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그게 바로 창고에 채울 수 있는, 창고를 채우기 위한 십일조의 취지였던 거예요. 성경은 그렇게 엮여져 가는 겁니다. 일방적으로 깡패처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뭐냐? 말라기라고요. 그 이야기 해놓고 그 다음에 와서 십일조 해라 하는 게 아니고, 그 뒤에 4장으로 넘어가면 뭐냐? 하나님께서 작살내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네가 십일조 하라’는 말은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안할 걸 알고, 이미 안한 존재로 확정됐다는 것을 내가 뻔히 알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창고에 못 들어가도록 아주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겠다는 이야기가 뒤에 나와요. 심판 받을 때 “하나님 깡패 같아.” 그런 소리 하지마. 이미 율법 줄 때부터 깡패였어, 율법 줄 때부터.
그래서 지난 수요일도 그랬고, 어제도 마찬가지지만, 십일조 하는 그 자체가 이게 하나님을 우습게 보는 거예요. 왜냐하면 십일조하면 자기 소유물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창고가 가득하니까, 뭐 자기 창고 아니고, 하나님 창고지만, 그게 쏟아지면 재래식 화장실에 가면 물 땡기는 거 있죠? 잘못 땡기면 물바가지 씁니다. 십일조가 땡기는 줄이에요.
땡겨버리면 준비된, 흥부전에 나오는 박 썰면 금은보화 쏟아지듯이 십일조만 땡기면 바가지로 쏟아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십일조는 뭐냐 하면, 아까 쌍둥이 얘기 했죠? 내가 죽을 때 비로소 영생 얻는 쌍둥이가 나오듯이 나를 죽이는 것이 사도바울의 소원이듯이 나를 죽여주시는 게 웃을 일이고, 고마운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