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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40906b 울산강의-역대기하(6강) 7장 17절 : 가로막는 주님자유게시판-

20240906b 울산강의-역대기하(6강) 7장 17절 : 가로막는 주님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첫 번째 시간 잘 들어본 분들은 솔로몬을 통해서 율례와 법도라는 것이 어떤 특정한 방향을 향한다는 것을 감안할 겁니다. 율례와 법도가 내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 용도에요. 내가 말씀을 지키는 게 아니고 가로막지요. 왜? 우리는 양 같아서 자신의 욕망, 아까 한 것 다시 복습합시다. 이 자신, 다른 말로 하면 ‘나’지요. 영어로 하면 ‘I’지요.

I 속에 뭐가 덮쳤다 했습니까? 타인의 시선, 타인의 평가, 판단, 나에 대한 남들의 기대감, 이것이 뭐로 작동한다? 바로 스물네 시간 쉬지 않고 내가 자신에게 묻는 것은 뭐냐 하면 “나 어때요? 여보, 나 어때? 얘들아 아빠 어때?” “오늘 멋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 내 사는 보람이 있다.” “사장님, 저 어때요?” 이런 것. 인간의 욕망이잖아요. 항상 타인을 의식하는 것.

그런데 그렇게 타인을 의식했던 사람 중에 누가 있었느냐 하면 바로 다윗이 있었던 겁니다. 다윗의 특징은 뭐냐? 율법에 정통했어요. 어릴 때부터 율법을 배웠고, 다윗 일대기 다 아시죠. 다윗이 누구한테 쫓겼습니까? 사울에게 쫓겼지요. 사울에게 쫓기면서 다윗이 자기가 내부적으로 고민과 염려했고 질문하고 싶었던 것이 시편에 나옵니다.

시편에 나오는 것이, “하나님이여, 제가 뭐가 잘못됐기에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제가 뭘 하나님 말씀을 어겼다고 이렇게 힘들게 하십니까, 할 때 내가 율법의 어떤 대목에서 위반했기에 내가 이렇게 시달리면서 심지어 저주의 길을 가야 합니까, 질문을 한 거예요. 이 질문은 다윗 이전에 욥이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 앞에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섬긴 것 밖에 없는데 상대적으로 친구들과 자기는 너무나 차이 나게 직하 완전히 꼴아 박습니다.

심지어 자기 부인도 욥보고 이런 이야기해요. 당신이 이 지경인데 아직도 당신의 순진함을 지키겠느뇨? 벌써 이 지경됐는데 당신은 아직도 하나님 찾느냐, 이 말이에요. 그야말로 경상도 말로 때려치와뿔라, 때려치워버려라. 거기에 대해서 욥은 때려치워버리라는 말을 함부로 못하고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하나님, 차라리 저를 죽여주옵소서. 내가 태어나지 말았으면 더 좋을 뻔했다. 왜 태어나서 이 고생합니까?” 욥이 이야기했어요. 내가 고생하는 건 받겠는데 고생해야 될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인생에 내가 살아갈 이유에 대해서 도통 의미를 모르겠다는 겁니다. 참 중요한 질문을 던졌지요.

다윗언약,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을 했어요. 했는데 이 내용을 들어보면 얼마나 어려운 내용인지 알 수 있어요. 사울 왕에게 늘 쫓기잖아요. 쫓기면서 하나님이 도와줘요. 이게 앞뒤가 맞는 이야기입니까? 쫓기는데 도와줘요. 쫓기는 것은 쫓기는 대로 남고 도와줄 것은 도와주고. 뭐예요? 아예 도와주려면 화끈하게 안 쫓겨야 되지 않습니까? 목숨이 간당간당해요.

그래서 시편 22편 같은 경우에는 뭐냐? 하나님이여 어찌 저를 버리시나이까. 왜 저를 버리십니까? 이 말은 다윗이 뭘 안다? 율례와 법도에 대해서 점점 더 깊이 있게 알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이 놓친 게 있어요. 율례와 법도로 백성들이란 타인에게 하나님의 종으로서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야 될 입장에서 백성들을 가르칠 생각만 했지 본인이 원천적으로 율례와 법도를 못 지키는 자라는 사실을 다윗은 감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계약을 했지요. 계약 밑에 유도리가 돼 있는 백성들이 있는 거예요. 다윗은 이 구조를 인정했어요. 인정하고 왕이 되어서 율례와 법도에 대해서 정통해서 율례와 법도를 가르치고 그것으로 통치하려고 했습니다. 사울 왕과 다윗과 솔로몬의 차이는 사울은 정복대상입니다. 두 번째 시간에 이것 하는데 어렵더라도 여러분 참아내야 돼요.

사울은 정복대상이고 다윗은 정복자고 솔로몬은 통치자에요. 그런 약간의 차이가 있어요. 어쨌든 간에 정복을 완성한 것은 다윗이 완성했어요. 그러면 사울과 다윗의 차이는 뭐냐? 사울은 이스라엘을 자기 소유로 여겼어요. 나라 자체를 자기 소유로 여겼어요. 이걸 세상으로 하면 전제군주라 해요.

제가 문장을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약간 길기도 한데. “법흥왕이 울진 지역을 신라의 영토로 편입하자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신라에서는 법흥왕과 13명으로 구성된 6부의 귀족들이 회의를 열어 대인(장군)을 파견하여 난을 진압하고 그 반란을 처벌하였다. 얼룩소를 잡아 제사 지내고 하늘에 그 사실을 알렸다.”

1988년도에 울진 죽변 논두렁에서 발견된 비석의 내용입니다. 그때가 서기524년 지금부터 15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내용을 보게 되면 왕이 하는 짓이 뭡니까? 그냥 죽변 주민들 알아서 살도록 두면 안 됩니까? 왜 그걸 흡수 통합해야 됩니까? 깡패기 때문에 그래요. 세상의 왕들은 깡패들이에요.

이걸 약간의 체계를 갖추면 이렇게 됩니다. 이웃공동체를 침략을 해요. 나쁘지요. 그래서 족장사회, 그 이웃공동체가 족장, 전통적으로 오랫동안 같은 씨족, 혈족, 족장제도를 전복시키고, 그다음에 이 집단을 흡수 통합해서 지배영토를 늘리고, 그다음에 조공을 바치고, 그다음에 또 다른 침략을 할 때 군사들이 필요하지요. 군사로 강제로 징병하고, 그다음에 이 전쟁에서 얻은 노략물을 전쟁에 참여한 군사들에게 약탈한 것을 나눠주는 거예요. 나눠주고 그다음에 뭡니까? 얼룩소를 누구한테 바치고? 제사로 하늘에게 바치고 신에게 알리는 겁니다.

왜 이런 짓을 하지요? 전 세계 모든 세계사가 왜 이런 짓을 하냔 말이죠. 그냥 이웃공동체로 살면 되잖아요. 왜 이런 짓을 합니까? 간단해요. 정신병 환자들이에요. 이걸 편집증이라 합니다. 못 잡으면 본인이 근지러워서 살지를 못하는. 기업합병, 부도 직전의 회사 합병해서 재벌 만드는 것, 정신병 환자들이에요. 뭐 힘으로 하진 않지만 힘으로 하는 조폭은 아니지만 그 사상은 조폭입니다.

출세하겠다는 것은 정신병 환자들이 하는 짓이에요. 이게 인간 속에 들어있는 욕망입니다. 그 욕망이 모든 것이 공통된 의식이에요. 이 욕망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느냐? 전쟁입니다. 전쟁은 인류를 평준화합니다. 전쟁이란 욕망의 흐름입니다. 전쟁이란 말이 너무 거창합니까? 그럼 이렇게 바꿀게요.

경쟁이란 욕망의 흐름입니다. 욕망은 인간이 내 욕망을 내가 못 다스려요. 계속 흘러가요. 이게 분출되는 겁니다. 꼭 온천 같아. 가만있을 수가 없어요. 우리애가 1등해야 돼. 참을 수가 없어요. 자기 아들보고 너는 만년 과장이고? 언제 부장 되는데? 추석 가까이 오면 요새 집값 올랐나, 묻지요.

전쟁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런 이야기했지요. 우리의 전쟁은 혈과 육, 사람과 전쟁하는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이 세상 신과의 전쟁이라 했어요. 그러면 이 세상 신, 인간에게 욕망을 부여한 독자적으로 살라고 부여한 게 누구죠? 뱀이죠. 악마죠, 짐승이죠. 그 짐승의 세계가 초월적인 어떤 형식을 갖추면 그게 뭐냐? 왕이에요, 왕. 그걸 감안해서 하나님께선 왕에게 계약을 맺은 거예요.

그러면 아까 누구와 계약 맺었다 했습니까? 다윗과 했지요. 다윗이 뭐였습니까? 왕이지요. 정복자 왕이잖아요. 그러면 다윗에게는 이러한 세속 왕의 기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둘 중에 하나에요. 어느 게 정답이겠어요? 있지요. 있는 거예요. 세속 왕과 다를 바 없는 욕망의 흐름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형식은 뭐냐? 왕인데 왕이 뭐냐?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 된다는 그 위치에 지금 다윗이 앉아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 다윗에 힘이 있잖아요. 왕이니까 힘이 있단 말이죠. 예를 들면 삼손, 삼손에게 힘이 있었지요. 그런데 삼손이 처음에 힘 가질 때 그 힘을 어디다가 썼습니까? 여자 꼬시는 데 힘썼잖아요. 여성들이 욕망의 세계에서 힘 있는 자를 선호하니까 “이렇게 나는 힘세다. 너 나한테 올래?” 여자 세 명 바꿨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삼손에게 맡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로 하여금 삼손의 앞길을 막아줬다는 거예요. 삼손이 해야 될 일이 뭐냐 하면 자기 한 몸 바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거예요. 블레셋에서. 하마스에서 이스라엘을 건지는 거예요. 하마스가 지금 블레셋 아닙니까. 건지는 거란 말이죠.

근데 그걸 언제 했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가로막고 난 뒤에 원래 삼손이 해야 될 일을 자기 죽음과 더불어서 다 이뤘어요. 눈 뽑히시고 머리카락 홀라당 날아갔지요. 그런데 삼손은 죽었는데 뭐는 살아 있었다? 삼손에게 준 나실인의 역할과 기능은 삼손이 아무리 타락해도 방해받지 않았던 겁니다. 이게 신자 아닙니까. 이게 신자잖아요.

왜 내가 해야 돼요, 내가 왜 말씀을 지켜야 됩니까? 말씀이 수시로 나를 가로막고 있는 데요. 말씀이 스스로 자기가 살아 있음을 우리를 통해서 흔적으로 증명하고 있는데 왜 내가 내 잘남으로 그 말씀을 증명하려합니까? 있을 수 없지요.

삼손이 그렇듯이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언약 속에는 다윗이 있어요. 다윗이 있을 때 마귀가 악마, 사탄이 다윗을 어떻게 찾아가서 다루는가? 사탄의 다룸. 다윗을 사탄이 다루었던 그 사실을 경유함으로써 다윗언약이 성사됩니다. 다윗이 훌륭해서 성사된 게 아니고, 밧세바와 간음하고. 밧세바로 간음한 것으로 멈추지 않았어요. 어떻게 했습니까? 음주운전을 했으면 사고 당사자와 사과하면 될 건데 집에 가서 술을 더 마셔버렸어. 누가? 김호중이가.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아까 죄가 뭐라 했습니까? 죄는 내가 자기의 가치를 지키는 게 죄라 했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주님께서 그걸 유도하신다는 거예요. 놀라운 사실은 반듯하게 아무리 살고 싶어도 나는 나의 알리바이를 성사시키고 내 죄를 없는 척하는 이 과정을 우리 능력으로 그 노선을 빠져나갈 수 없어요. 매사에 빠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행복하지. 입만 떼면 거짓말. 뭐 달리 이거는 거짓말 아니고 없어요. 입만 떼면 거짓말. “짬뽕 어땠어?” “참 맛있었어.” 거짓말이에요. 배고프니까 맛있지. 거짓말 아닌 게 없어요.

로마서에서 나중에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지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이 모든 계명을 준 것은 너로 하여금 입을 막고 하나님 앞에 위반자, 율법의 위반자에게 주어진 게 뭐예요? 저주지요. 저주 아래 있게 함이라. 주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저주로 몰아넣어요.

저주로 몰아넣어서 도대체 나한테는 나올 게 죄밖에 없음을 아는 그 순간이 나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계약 당사자가 나 아니고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자가 하나님의 흔적입니다. 언약의 흔적이에요. 그게 바로 구원입니다. 도대체 몇 년이나 나이 얼마까지 위선자가 되려고 해요?

여기서 왕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봅시다. 아까 내가 짧게 이야기했는데 여러분들이 피곤해하기 전에 후딱 해야지. 왕에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세속 왕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언약된 왕이 있어요. 언약된 왕에 대해서 잘 나와 있는 것이 뭐냐 하면 잠언과 그리고 전도서에요.

잠언의 경우에서는 21장 1절 같은 경우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다.” 무슨 뜻인지 딱 들으면 아시겠지요. 왕의 마음이 어디에 있다고요? 여호와의 손에 있다. 따라서 왕의 말을 위반하게 되면 여호와의 말을 위반하는 거죠. 잠언서 14장 35절에,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의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잠언서 16장 10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

잠언서 25장 2절 같은 경우에는 더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에게 포착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고, 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포착되는 것이 임금/왕의 보람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31장 3절에,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치 말찌어다”

이것은 다윗이 사울 왕을 어떻게 했습니까? 계속 죽일 수도 있는데 기름 부음이 있어서 제가 손 못 댑니다. 당신 죽이는 것이 제 소관 아닙니다. 하나님 소관이라고 계속 이야기했지요. 전도서 8장 2절에, “왕의 명령을 지키라 이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였음이니라” 전도서 10장 20절에 보면, “심중에라도 왕을 저주하지 말며 침방에서라도 부자를 저주하지 말라”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누가 했느냐 하면 바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이야기한 거예요. 잠언서, 전도서.

그렇다면 방금 언약된 왕의 말을 들었지요. 딱 감이 오지요. 아하, 왕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타난 흔적이구나. 그러면 세속 왕에 대해서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세속 왕은 어디 나오느냐? 사무엘상 8장에 나옵니다. 8장 10절에서 18절, 이게 좀 긴데 제가 속도를 내서 빨리 읽겠습니다. 뺄게 하나도 없어서.

“사무엘이 왕을 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일러 가로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가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취하여 그 병거와 말을 어거케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그가 또 너희 아들들로 천부장과 오십 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병기와 병거의 제구를 만들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의 제일 좋은 것을 취하여 자기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1)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그가 또 너희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취하여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 양떼의 십분 일을 취하리니 너희가 그 종이 될 것이라 그 날에 너희가 너희 택한 왕을 인하여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지 아니하시리라”

네가 왜 깡패한테 깡패를 달라고 하느냐, 이 말이에요. 네가 김정은이를 왜 자꾸 지도자로 모시냐, 이 말입니다. 왜? 이 말은 뭐냐? 하나님 보시기에 이런 세속 왕이 필요 있다, 없다? 필요 없다. 깡패가 왜 필요해요? 그러면 다윗과 솔로몬, 이건 또 뭐냐? 왕이 필요 없다면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을 왜 주셨는가? 그거는 조금 전에 이야기했잖아요. 다윗과 솔로몬에 뭐가 중첩돼 있어요? 세속 왕의 요소가 같이 들어있는 거예요.

그러면 사무엘상에서 인간들은 세속적인 왕을 왜 찾습니까? 이게 중요한 문제에요. 왜 찾는 거예요? 왜 우리에게 왕을 달라고 한 이유가 뭡니까? “이런 깡패데?” “그래도 좋습니다. 왕이 필요합니다.” 왜 그래요? 왜 그런 소릴 하는 거예요? 모든 인간은 이미 배후에 보이지 않는 왕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걸 초월적 현실이라고 해요.

초월적 현실이란 것은 인간+인간+인간+ 하면 인간됩니까, 안 그러면 신격화된 인간됩니까? 인간+인간+인간+ 하면 뭐가 나와요? 그 위에 뭐가 나옵니까? 옛날에 국민학교 운동회할 때 탑 쌓기 있지요. 탑 쌓고, 탑 쌓고, 탑 쌓을 때 사람들은 밑에 깔린 사람을 봅니까, 위에 있는 단 한 명을 봅니까? 단 하나를 보지요. 단 하나의 대단한 영웅적인 사람이 누구냐를 사람들은 찾아서 그 힘을 의지하고 싶도록 악마로부터 인간들은 이미 장악당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거예요.

허술한 나 대신 내가 의지할만한 최후의 단일자, 유일자, 일자, 최후의 단 한 사람을 눈으로 보고 싶어요. 그걸 신약에서 뭐라고 하느냐? 그걸 적그리스도라 하지요. 내가 기도하지 말고 우리 목사님 기도하면 좋겠다. 이게 뭐예요, 지금? 그게 뭡니까? 교회에 적그리스도 하나 모시는 거예요. 이번에 당회장 누가 오실꼬? 눈에 보이는 어떤 영웅적인 사람, 교주? 말이 교주지 적그리스도죠.

인간은 같은 사람에게 감사하고 싶은 거예요. 그게 어릴 때부터 이미 인간에게는 굳어져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인간의 내부 심리상 자신의 주인이 있어요. 자기에게 자신의 주인이 있어요. 그게 누구냐 하면 바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럼 엄마는? 아버지의 부속기관. 아버지는 팽팽히 놀고 엄마는 죽기 살기로 장터에 나가서 새벽부터 해서 다 해놨을 때 그 자식의 주인공은 누굽니까? 엄마일까요, 아버지일까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에요. 아버지한테 실망해도 아버지의 흔적을 지울 수 없어요.

이게 바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저주했던 요소입니다. 여자는 남자를 사모할 것이고. 이미 가족 간에 대장은 잘났든 못났든 아버지가 대장질하고 있는 거예요. 가끔은 용감한 어머니가 나타나서 그걸 도전하지만 덮는 거예요. 그러면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모방하고 흉내 내고자하는 자들이 누구겠습니까?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꼴랑 아들이라고, 참. 아들이라고 아들 값하고 말이죠.

그러면 아들 없고 딸 셋 있다. 그러면 딸 셋이면 누가 아버지 역할을 합니까? 장녀. 둘째, 셋째 딸 지 마음대로 펑펑 놀지만 큰딸은 아버지 건강하십니까, 늘 안부 전화하는 것은 장녀에요. 이건 뭐 시켜도 안 돼요. 타고났어요. 장녀. 달라요. 장녀와 동생하고 달라요. 이상하지요, 이게. 인간의 육신이 하나님이 주신 법칙을, 프레임을 못 벗어나요.

아버지 중의 아버지가 누구냐? 왕이에요. 그 나라의 아버지가 왕이에요. 그래서 다른 나라를 폭력, 전쟁, 그리고 미치광이죠. 전쟁, 침략 못해서 환장한 것, 남의 나라를 노예로 못 삼아서 환장한 그 아버지가 틈만 나면 말 타고 이웃나라 침노해서 침략해서 전쟁을 일으킬 때 그런 왕을 모시는 백성들은 그 왕을 존경하겠습니까, 싫어하겠습니까? 어때요? 존경하지요. 왜? 우리 편이니까. 러시아 국민들이 푸틴을 존경하겠어요, 싫어하겠어요? 존경하지요. 왜? 우리가 이기고 있으니까, 우크라이나를. 지면 무조건 원수에요.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사격 여자 10m 공기권총 은메달 딴 김예지 있지요. 그거 어느 나라 선수에요? 우리나라 선수지요. 우리 편이라서 너무 다행이에요. 내 편, 나를 지키는 것이 뭐다? 죄죠. 나를 지키는 게 죄에요. 우리 식구가 나가서 어떤 죄를 지어도 용납을 해요. 남들은 우리한테 핏대를 세우지만 내 가족이거든요.

내 가족은 아버지 중심으로 이루어진 단수, 단 하나의 뭉치일 때 그게 나의 자아의 구현체, 내 자아의 초월적 형식구조에요, 이게. 비록 왕이지만 나는 그 왕이 나의 왕이란 점에서 우리는 초월적 형식에 포함된다는 것 이럴 때 인간은 마음에 안정을 느낍니다. 개척교회 열 명 나오는 그런데 가지 말고 한 이천 명 모이는 교회 다닐 때 정서적으로 포만감을 느끼지요. 그득한 예배당에다가, 울산제일교회? 울산제일교회 요새 교인들 다 빠져나갔는데 뭐 있어요?

사무엘상 8장에서 눈에 보이는 피라미드를 쌓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습니까? 눈에 안 보이니까 이게 불안한 거예요. 이게 공허하고 허무한 거예요. 믿고 싶지요. 뭐 봐야 믿지 안 보이는데 뭘 믿어요. 보이는 인간이 더 믿어지는 데요. 그러니까 다른 민족, 주변에 있는 블레셋, 모압이고 아람, 암몬과 에돔이고 주변 나라 보니까 그 나라는 다 누가 있어요? 눈에 보이는 왕이 있어서 아까 법흥왕 이야기했지요. 보이는 왕이 설치니까 그게 안 믿으래야 안 믿을 수가 없고, 인간이 나서서 용감하게 하니까 이거는 그냥 그 사람을 의지하고 싶은 거예요.

보이는 것을 의지하는 걸 사람들은 믿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게 수월하게 믿는 방법이에요. ‘하나님 보여주면 믿을게, 예수님 보여주면 믿을게.’ 그게 수월한 거예요. 보지 않고 믿으려 하니까 이게 억지가 되니까 나중에 짜증이 확 올라오는 거예요. 오십 년 믿어도 안 찾아오니 나 그만 믿을래. 뭐 믿는 구석이 있어야지 아무 증거도 없는데 계속 오십 년 전에도 믿자, 믿자. 지금도 믿자, 믿자. 자기가 스스로 지쳐버렸어. 믿자, 믿자 해놓고는 역시 믿을 것은 사람밖에 없다는. 내 식구밖에 믿을 것 없다.

이게 바로 인간입니다. 다윗은 바로 그 인간이었어요.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간음에다가 그다음에 자기가 거짓말한 것부터 해서 사람 죽이는 것까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완전히 까발려졌습니다. 그때 다윗은 어떻습니까? 비로소 자기로부터 해방됐어요. 이제는 자리를 놔줄 때가 된 거예요. 모친의 죄 중에서 태어났어요, 본인이. 그 고백을 해요.

하나님께서는 내가 알고 있는 율법을 지키는 나가 아니고 율법을 못 지키는 나를 원한다는 사실을 왜 그동안 몰랐느냐, 이 말이에요. 성경 하나 못 지키는 나를 원한다는 것, 주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그렇게 많이 듣던 그 이야기가 왜 내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그동안 나와 괴리된 따로 놀았나, 이 말이죠. 그런데 어느 날 주께서 네가 바로 죄인이라 할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다 날아가잖아요. 맞습니다. 제가 세리고 내가 창기고 내가 도둑이고 제가 강도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이름이 육신적 아버지로부터 노선이 탈락해요. 노선은 이렇게 긋거든요. 노선이 뭐냐 하면 인간의 인생이라 하는 것은 수학적으로 하나의 직선이에요. 곡선이 좀 있더라도 따지고 보면 직선이에요. 내가 노력한 것이 나의 미래를 형성하고, 내가 노력한 것이 그다음 나를 생존케 하고, 나를 단도리하는 것이 2개월, 3개월 뒤에 나를 반듯하게 만든다. 뭡니까? 직선이죠. 직선적입니다.

내가 노력한 중에서 하나님 섬기는 게 있다. 내가 하나님 섬기면 도로 어디로 떨어집니까? 하나님 섬긴 나로 오지요. 그러니까 이 선에서 올라가봤자 도로 선으로 내려오는 거예요. 근데 성경은 뭐냐 하면 성경은 인간을 이미 확정했어요. 인간은 뭐다? 인간은 이미 죄인이다. 인간은 죄인으로 율례와 법도와 말씀이 주어집니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저주 아래 있다. 말씀으로 우리 앞길을 막습니다.

막는 순간 이 하늘나라에서는 우리가 뭡니까? 인간은 아담의 후손들은 다 뭐예요? 죄인이죠. 지금 여기 직선에서는 나는 뭐냐? 내 노력하는 것이 잘난 나를 만들잖아요. 그럼 우리는 죄인 노선이 아니고 어쨌든 간에 변명이 계속 유통되는 노선이에요. 뭐 이렇게 운이 나빴다. 그때 날씨가 안 좋았다. 그때 하다 보니 그렇다. 그거는 내 실수였었어. 다음에 안 그러면 되지.

변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끝까지 나의 의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나의 존재 이유는 내가 잘났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예요. 잘났기 때문에 나는 살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뭐냐? 죽는 거예요. 왜 죽는다는 것은 뭐냐 하면 내가 죽을만해 죽어버리면 지금까지 살아온 내 가치를 찾을 길이 없는 거예요.

은행에 가서 예금을 찾는데 은행창구 여직원이 통장에 한 푼도 없는데요? 이러면 어떻게 돼요? 그러면 지금까지 은행에 저축한 게 없다는 되잖아요. 우리 인생은 나의 의로움의 잔고를 남기기 위해서 인생을 살아가요. 고생을 해도 보람이 있는 이유는, 그만큼 훌륭하고 착하고 성실하고 애들 대학 다 보내고 아파트 하나 사고 남편/아내 잘 섬기고 남한테 경찰서 한 번 안 끌려가고 그다지 괜찮은 인간으로 살았다는 의로운 잔고, 그게 지금 나를 살게 만든다 말이죠. 인간답게.

그런데 말씀이 와서 그걸 끊어버렸단 말이죠. 너의 본래 모습은 죄인이야. 네가 지금 의인 아니야. 그래서 말씀은 나로 하여금 죄인 되게 위로 올라가는 거예요. 펄쩍펄쩍 개구리 뛰듯이 가는 게 아니고 위로 올라간다고 위로. 그러면 우리의 왕은 위에 있어요, 아래에 있어요? 위에 있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원했단 말은 잘난 내가 눈에 보이는 잘난 우리끼리 잘난 나라 만들어서 그 나라 괜찮은 임금 덕분에 우리도 잘 먹고 잘 살고 싶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신을 섬기게 된 거예요. 하나님을 섬기게 된 거예요. 여호와 빠진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겁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하나님께선 다윗을 간음하게 하셨고 다윗을 살인하게 하셨고(고의 살인) 그런데도 하나님은 다윗을 뭐로 만들었습니까?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만들어서 임금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거기에 자손이 생기면 돼요. 자손이 누굽니까? 솔로몬. 솔로몬 이름이 여디디야. 여디디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입은 자, 사랑의 습격, 하나님의 사랑의 공격, 사랑의 침투, 하나님의 긍휼, 죄 사함으로 거두어주심. 이게 솔로몬의 등장이에요.

다윗은 인구 조사를 했어요. 우리가 공부했듯이 사탄이 와서 인구 조사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계기로 해서 사탄이 들어간 것은, 다윗이 하는 일을 임금 되는 일을 하나님 쪽에서 가로막지요. 가로막고 난 뒤에 그다음에 다윗이 생각하는 이런 직선적으로 예상되는 일 말고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준비된 일을 인구 조사한 다윗에게 퍼붓습니다.

그게 뭐냐? 다윗이 제사장 되는 거예요.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나중에 모리아 산이거든요. 서서 다윗이 제사 드릴 때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비로소 거둬졌지요. 그러면 뭡니까? 다윗언약이란 게 뭐예요? 다윗언약이란 것은 하나님이 죄인을 향하여 다윗언약에 다윗 말고 다윗의 후손이 나중에 올 건데 죄 없는 다윗의 후손의 희생 제물로 인하여 일방적으로 죄 용서 받은 사람만 집합되는 그 백성이 이제는 더 이상 점선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온전한 실선의 이스라엘이 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율례와 법도의 완성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고 맺겠습니다. 아담에게 뭐가 들어붙었습니까? 악마가 사탄이 들어붙었지요. 아담으로 말미암아 창세기 11장에 바벨탑 쌓았지요. 영웅 니므롯의 고향에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그때에 하나 같이 의견이 일치되었어요. 인간의 마음은 너 다르고 나 다른 것 없어요. 그게 뭐냐 하면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거예요. 탑을 쌓아서 탑 꼭대기에서 내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점검할 수 있는 하나님을 보고 싶은 겁니다.

그럼 하나님 쪽에서 오케이 하나님 보여줄게. 신약 때 와서 하나님 보여줬습니다. 그 하나님 어떻습니까? 너무나 나약해서 아무도 그 길을 가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지경이 되지 않는 그 모습으로 점점 더 내려가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강남강의에선가 했지요. 대구강의인가 기억 안 나는데 무슨 하나님이냐 하면 죽는 하나님이에요.

인간은 자기가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하나님 만나서 우리 산 사람끼리 대화합시다. 이걸 원했는데 하나님 쪽에서 죽어버렸어요. 하나님 쪽에서 죽었다는 말은 눈 감았다, 귀 막았다가 돼요. 나 너하고 상대 안 한다는 거예요. 죽은 거예요. 그럼 인간이 진짜 하나님과 하려면 하나님이 죽었으니까 살아 있는 내가 기여할 대상도 없고 어떻게 의견 낼 대상도 없어요. 다시 말해서 가로막힌 거예요. 하나님께서 인간이 가로막혔다는 사실을 하나님 쪽에서 죽음으로써 증명해버린 거예요. 일체 하나님께선 인간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면 인간들이 가만있습니까, 가만있지 않고 어떻게 했습니까? 적그리스도를 만들어요. 사람과 대화가 통하는 인간이 납득이 되는 드디어 예수, 하나님, 삼위일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거예요. 나를 살려주고 강화시키고 나를 튼튼하게 만드는 신을 찾기 시작한 거예요. 안 죽게 만들고 오래 살고 잘 먹고 잘 살고 건강하고 그 신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거예요. 거기에서 예외 된 인간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그래요.

그런데 성령이 죽었던 예수의 영이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덮쳐버리죠. 덮치니까 그때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주께서는 강제적으로 차단돼버리죠. 차단되면서 뭘 느끼겠습니까? 내 인생길을 괜찮게 가다가 위에서 와버리니까 성경말씀이 다시 보이게 되는 거예요. 맞아. 내가 살 가치도 없는 뭐가 된다? 죄인이잖아. 그때부터 질문이 뭐냐 하면 내가 왜 살지, 내가 지금까지 왜 밥 먹고 있지, 왜 아직도 걷는 거야?

코미디에 그런 게 있어요. 노인정 깡패 이야기하면서 막 시비 거니까 왜 시비 걸어, 이러니까 “어, 들리네?” 차려고 했는데 피하니까 “어, 걷네?” 내가 왜 그래야 되고 내가 왜 아직 살아 있어야 됩니까? 이걸 쉽게 하면 기적인데요. 이게 기적이거든요. 그렇다면 그다음에 계속 살아야 될 이유가 뭐냐? 세상 사람들 보니까 아무 이유도 없어. 그들은 그냥 무의미하게 세월만 보내고 있어요. 다음 주에 추석이다. 벌초하러 간다. 벌초해서 그다음에 뭐? 살겠지. 살아서 뭐? 없어요. 아무 대책도 없고 그냥 요양병원에 화장터에 가고 있어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도대체 내가 왜 있지? 죄인인 것을 살려주신 그분 앞에서 나를 통해서 나를 살리는 게 아니고 말씀을 살리기 위해서 나를 살려주고 있는 겁니다. 이 약속을 살리기 위해서, 이 성경말씀을 살리기 위해서. 주의 말씀은 성취됨이 없이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말씀을 보자가 아니라 말씀이 여러분에게 늘 찾아와서 여러분의 앞길을 막을 때 내가 죽어야 되는데 왜 살지, 라는 그러한 고백을 주님한테 해주시면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요모조모 따져도 살 이유도 없고 하루 더 버틸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이것은 주님이 살아 계시고 주님이 일하시는 흔적과 증거로써 감격하면서 기적이라고 여기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만 증거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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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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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