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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40906a 울산강의-역대기하(6강) 7장 17절 : 가로막는 주님자유게시판-

20240906a 울산강의-역대기하(6강) 7장 17절 : 가로막는 주님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역대하 7장 17절, 솔로몬이 성전 짓고 난 뒤에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졌습니다. 12절에 보면, 밤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났습니다.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났다.’ 창세기 32장에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에게 나타났잖아요. 성경에는 그렇게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에게 찾아오는 경우들을 계속해서 나열하고 있어요.

여기서 인간에게 찾아온 하나님 말고 그러면 하나님이 안 찾아오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인간에게 안 찾아왔을 경우에는 어떻게 되느냐? 그거는 인간 쪽에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거죠. 그러면 하나님이 두 종류의 하나님입니다. 한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친히’ 찾아오는 것(1). 두 번째는 인간이 하나님을 또는 신을 찾는 방식(2).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는 이 방식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게 이스라엘이죠.

그러면 아래쪽의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이스라엘 외에 모든 이방민족, 또는 이방인이죠.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흔적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흔적이 되면 2번은 자동적으로 탈락이죠. 하나님 스스로 흔적을 남기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그 외에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면 2번,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헛발질이죠. 이건 소용없는 거예요. 신을 찾고 신에게 빌고 신을 섬기고 신을 모시고 이게 다 소용없는 짓이에요. 제가 계속 차이를 말씀드리는데 이렇게 되게 되면 하나님의 흔적이 이스라엘 되려면 하나님의 선제공격이죠. 이걸 습격, 하나님이 내 인생에 쳐들어오는 거예요. 작살나죠. 하나님이 와버리는 데 작살나는 거예요.

그런데 2번, 이방민족의 하나님은 뭐냐? 본인이 멀쩡해요. 멀쩡하기 때문에 인간이 신을 찾는 것은 뭐냐 하면 자기 강화. 강화란 말 아시겠지요? 자기 자신을 돈독하게 하고 강하게 만드는 것, 어지간히 힘들고 어려움에도 버틸 수 있도록 자기가 자기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 내가 다치지 않게, 내가 불편하지 않게, 내가 불행하지 않게, 내가 비극적인 삶이 되지 않도록 자기를 지켜나가는 것, 이것 1번입니까, 2번입니까? 2번이죠.

본인이 멀쩡하고 더욱더 멀쩡하게, 본인이 안정적이고 더욱더 안정적으로 이걸 성경에서 죄라고 이야기합니다. 죄란 자기가 자기를 지키는 걸 죄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1번과 2번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섬기고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은 뭐가 됩니까? 죄가 되지요. 교회 나가서 하나님 말씀 듣고 실천 옮기고 섬기는 것, 그게 바로 죄의 극치입니다.

왜 기도하십니까, 왜 교회 나오십니까, 왜 헌금하십니까, 왜 교회에 충성봉사하지요? 사람들은 들은 게 있어서 이렇게 답변하지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간의 본분은 뭐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게 본분입니다. 그러면 묻지요. 영화롭게 해서 그다음에 주어지는 건 뭡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준다는 거예요. 그리고 죽어서 천국 보내준다는 거예요.

그럼 이건 누구 좋으라고 하는 거예요, 결국? ‘나 망가지기 싫어요.’ 결국 그 이야기에요. 부처가 되던 하나님이 되던 내가 한 그 노동, 내가 하나님께 섬기고 바치고 하는 그 노동이 나한테 적절한 보상으로 주어지기를 원하는 거예요. 적절한 보상, 적절한 대가로. 그게 바로 죕니다.

그런데 같은 한국사람, 같은 인간들끼리 다들 그렇게 하니까 그게 잘못된 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예요. 왜? 다들 그렇게 하니까. 교회는 의당 그래야 되고 성당은 의당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습격하는 사람이 그중에 한 명이라도 있다 한다면, 하나님의 습격입니다, 침공입니다, 침략하는 거예요. 침략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빼놓고는 다 쓸데없는 일을 하지요.

그러면 습격을 당했다는 이 말이 여러분 어렵다면 쉽게 생각하겠습니다. 소떼가 있는데 뒤에서 사자가 덮쳤어요. 이게 뭡니까? 습격이죠. 그냥 평화롭게 있는데 아주 평화롭게 고요하게 풀이나 뜯고 있지요. 이 평화롭게라는 말을 좀 길게 하면 평화롭게 장사하고 있는데, 평화롭게 직장생활 잘하고 있고, 평화롭게 주부생활 잘하고 있는데 뒤에서 스라소니나 표범이 덮쳐버린 거예요. 껍데기 홀라당 다 날아가지요.

뒤에서 덮쳤다는 말은 잡아먹혔다는 거예요. 주님한테 잡아먹힌 것을 신약성경에선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것을 ‘예수 안’이라 하는 거예요. 주님한테 잡아먹히기 전에는 어느 안에 들어있어요? 내 안에 있어요. 내가 나하고 이야기하고 맨날 나만 생각하고 스물네 시간 나와 대화하고 내 안에서 놀던 내가 뒤에서 습격해서 덮쳐버리니까 자기가 원해서 환경이 아닙니다. 이거는 자기가 원했던 인생도 아니고.

나 말고 다른 이질적인 것, 내가 요청하지도 않은 다른 이질적인 것에게 삼킴을 당해버린 거예요. 그 삼킴을 당한 것을 구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구원받았다. 내가 찾는 예수님을 따로 있는데 내가 찾는 예수님을 나를 강화시키고, 나를 풍성하게 만들고, 내가 보다 많은 여유 있는 돈을 확보해주는 그런 하나님이기를 원해서 내 쪽에서 찾아가는 그것이 내가 하는 종교생활인데 그걸 덮쳐버리니까 그 수작 다 작살났어요. 덮쳐버렸습니다.

예수 안에 들어오면서 이제는 질문을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주님이 질문해요. 주님의 질문이 뭐냐 하면 주님의 기도라고 하는 겁니다. 주님이 아버지께 하는 기도에 우리를 넣어주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예수 안에서 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이 아버지께 하는 기도에 나를 넣어주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딸이 어릴 때는 교회 나왔지만 커서는 교회 안 다녔단 말이죠. 안 다녔는데 억지로 강제로 방송국에서 프로그램 하나 짜자 해서 ‘엄마와 함께’ 이런 프로가 있다합시다. 엄마와 함께 가는데 엄마가 교회에 열심입니다. 그래서 어디 여행 가서 주일 됐다고 예배드리는데 생전 처음 간 교회죠. 앞에 목사님이 설교하고 엄마는 주여, 주여 하면서 가만있지 않지요.

“설교 잘 들어. 너보고 하는 소리야. 기도해.” 그럼 옆에 있던 이효리가 프로그램 때문에 옆에 촬영기사가 있으니까 따라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교회 다니지도 않는데 엄마가 하라니까 ‘주여’ 하고 있단 말이죠. 그 엄마가 아버지께 기도하면, “빨리 나 따라 기도 안 해?” 이것도 일종에 습격이죠.

주님의 기도에 강제로 동참하는 걸 가지고 주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성경에서 주의 이름으로. 내 뜻은 아닌데 주께서 옆에서 자꾸 쑤시는 거예요. 허리를 치듯이. 주님의 습격에 의해서 주 안에 있으면서 내 기도는 다 커트당하고 주님이 아버지께 하는 그 기도, 여러분 아버지께 하는 기도 커닝하고 싶어요? 어떤 기도하고 싶어요? 이런 내용입니다.

“창세전에 아버지께 이것, 이것 하라 해서 내가 이 땅에 와서 이것, 이것 다 했습니다, 아버지.” 그 기도에요. 그런데 옆에 있는 만약에 따님이라면 예수님의 가족이라면 이것, 이것, 이것. 그게 뭔데 그게? 그걸 알려주는 거예요. 이것, 이것 다 이루었던 그것의 내용이 뭔지를 이것저것 그 옆에 있는 같이 습격해서 강제로 예수 안의 세계로 들어온 사람한테 이것, 이것 다 했다는 거예요. 이걸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가질래, 네 인생을 가질래?” 결정하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법을 가질래, 안 그러면 네 인생을 따로 가질래? 네 인생을 가진다면 너는 법과 빠이빠이다. 네가 다 이루신 하나님의 법을 하게 되면 너한텐 안 된 이야기지만 네 인생은 없다. 그런데 내 인생이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한테 줄 수 있는 최고의 복입니다. 내 인생이 없는 거예요.

내 인생이 없으니까 내가 미래에 대해서 걱정할 건더기가 다 날아간 거죠. 내 히스토리, 내 역사가 있을 때나 내일 뭐하지, 일 년 뒤에 뭐 되지, 삼 년 뒤에 뭘 이루지? 이런 게 걱정이 되는데 내 인생이 거덜나버리니까 걱정할 것 없고 내일 되면 또 마주치고 모레 되면 마주치고 다음 주 되면 추석이잖아요. 추석 되면 마주치는 게 뭐냐 하면 다 이루었다면 마주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신약의 예수 안의 세계입니다.

그러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하면 1번에서 출발해야 되겠지요. 이스라엘부터 출발해야 됩니다, 이야기가. 오늘 역대하 7장이니까. 17절, 18절, “네가 만일 내 앞에서 행하기를 네 아비 다윗 같이 하여 내가 네게 명한 모든 것을 행하여 내 율례와 규례를 지키면 내가 네 나라 위를 견고케 하되 전에 내가 네 아비 다윗과 언약하기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대로 하리라”

이 이야기를 이제 설명할 타이밍이 되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느냐 하면 이렇게 설명하면 깔끔해요. 이스라엘은 다음 중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제가 객관식으로 할 테니까 답변을 해보세요. ①하나님, ②인간, ③자신의 양심, ④왕, 몇 번입니까? 하여튼 말을 안 해. 틀릴까 싶어서.

제가 처음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흔적이죠. 그러면 하나님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흔적이니까. 인간? 인간은 남한테 인정받고 남의 소리 들어서 남의 견해에 의식되게 되면 자기 인생이란 게 없잖아요. 그거는 사람이 힘든 이유가 자기를 주시하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힘들어요. 내가 이런 행동을 하게 되면 집의 부모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자식이 어떻게 우습게 되겠는가? 내 친구가, ‘꼴좋다, 인간아. 완전히 망했네’ 그것을 힘들어하는 거예요.

그 이유가 수백 번 이야기했지만 또 합시다. ‘자아는 타인의 말로 구성된다.’ 말 또는 음성. 나란 정체성이 그동안 만났던 모든 사람들의 말에 의해서 잡사동니가 돼 있어요. 그러면 인간이 처음 만나는 사람이 누굽니까? 부모지요. 부모의 시선, 부모의 말, 그다음에 결혼하게 되면 남편, 아내 있지요. 자식 낳게 되면 아빠, 엄마 기대하는 게 있지요. 그리고 크면서 친구들이 있지요. 그 많은 말들의 잡동사니, 섞인 것, 일종에 주먹잡곡밥, 온갖 것, 팥이고 콩이고 밀, 쌀이고 섞어서 대충 꾹꾹 눌러서 만든 것이 나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평소에 누구의 말을 듣고 있느냐? 이미 내 안에 들어와 버린 타인의 말을 의식하면서 우리는 행동하게 돼 있어요. 이런 행동 했을 때에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런 것, ‘내가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했겠는가?’ 이런 것.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타인에 의해서 만들어졌기에 타인은 눈에 보이잖아요.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죠.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지요.

교회 백날 나와도 하나님 말은 우습고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 식구의 말은 정말 진지한 거예요. 인간이란 것은. 그들의 요구에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내 삶의 동력이 되는 겁니다. 잘했다 하면 고래도 춤을 추고 좀 못했다 하면 좌절하고 엎어지고 난리고요. 안 그러면 거기다가 더 뭐라 하면 죽여 버릴까, 이런 생각.

그래서 사회에 많은 죄들 있잖아요. 모든 죄는 어디서 나오는가? 중요한 것은 좀 적어놓으세요. 모든 죄는 내가 나를 지키려고 할 때 죄가 발생됩니다. 내가 나를 지킬 때. 모든 범죄는 뭐냐? 내가 나를 지키고 싶을 때. 이선균, 참. 온 국민의 여자들이 지금도 잊지를 못하는 이선균, 자살했잖아. 왜 했어요? 3번, 타인으로 만들어진 남으로 만들어진 내가 나를 꾸중하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너에게 얼마나 기대를 했는데 네가 행동을 그따위로 해. 차라리 죽어라, 인간아.” “그래 죽자.” 가룟 유다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보세요, 2번. 나라는 것은 남들의 시선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이 무엇의 대기자에요? 자살의 대기자가 되는 거예요. 언제든지 자살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갖고 있어요. 끝까지 남들의 기대에 부응 못할 것 같으면 최후의 모습이라도 “나는 스스로 내가 나에게 처벌한다. 어찌 장하지 아니하냐? 그래도 기본 양심은 있지, 사람들아.” 내 양심은 지키면서 빠이빠이다. 나 먼저 세상 뜰게, 이런 거예요.

남들도 죽고 지도 죽는데 누가 죽이는 건 생각 안 하고 그들이 멀쩡하게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없어질 안개들이 무슨 소릴 해도 너는 안개거든요. 나도 안개고. 다 같이 없어질 인간들이 지들끼리 뭐 할 건데요? 인간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두뇌 속의 기억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기억력 다 소진한 치매 환자가 행복할 수가 있어요.

일본에 나이 많은 사람들, 치매 걸린 사람들은 집에 에어컨 다 있는데 더워서 많이 죽어요. 왜? 자기 집에 에어컨 있는 걸 잊어버렸어요. 자기 집에 에어컨 있는지 없는지 그 기억도 없어. 기억이 없으니까 죽을 때 죽는 게 아니고 기억이 없는 순간 이미 그 사람은 더워서 죽든 삶아먹든 찢어먹든 그 사람은 이미 죽은 거예요. 인간이 기억이 없으면. 다시 말해서 타인이 심어준 자아가 없는 상태는 이미 그 사람은 죽은 상태에요.

이스라엘이에요, 이스라엘. 이게 보통 이방인 같으면 죽은 거고요. 이방인들은 타인만 의식하기 때문에 이미 죽은 거예요. 남 죽을 때 같이 따라 죽으니까.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덮쳤잖아요.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로 덮쳤던 말이죠. 덮쳤을 때에 누구의 말이 떨어지는가? 1번이 정답처럼 느껴지지요.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아닙니다. 왜, 뭐 때문에? 이스라엘은 직접 안 되지요. 흔적이니까.

그러면 이스라엘에게 남겨진 하나님의 흔적이 뭐냐? 4번이 정답이에요. 왕입니다. 왕의 말을 들어야 돼요. 그래서 오늘 역대하 7장에 보면 지금 하나님이 이스라엘 전체 백성에게 나타났습니까, 솔로몬에게 나타났습니까? 솔로몬이죠. 솔로몬에게 나타나는 거예요. 왕에게 나타나는 겁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아예 이스라엘 백성 그 자체를 하나님께서는 사람 취급을 하지 않습니다.

“네가 뭐 어디 가서 잘하든 뭘 하든 바르게 살든 착하게 살든 안 그러면 간음을 하던 살인을 하던 뭐가 됐던 네가 착해도 너를 배제하고, 악해도 배제하고 나 너하고 상대하지 않아.” ‘나 너하고 상대하지 않아’ 이것을 가지고 무슨 언약이라 하느냐 하면 이게 바로 왕 언약, 다윗언약이라고 하는 겁니다. 방금 이야기한 것을 하나의 표로 이야기해볼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냥 말씀을 하는 게 아니고 중간에 왕에게만 이야기해요. 그러면 이스라엘은 실선이 아니고 뭐가 되느냐 하면 점선이 됩니다. 점선이 되면서 하나님과 왕하고 계약, 이걸 언약이라 합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맺었어요. 언약을 맺어서 왕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점선은 나중에 뭐가 되겠어요? 점선은 점점 가다가 점점 더 날아가 버리고, 이스라엘 전체가 날아가 버려요. 점선이니까.

실선 같으면 요지부동 구원을 받는데 이게 점선이잖아요. 점선이니까 유도리가 있는 거예요, 유도리. 여러분 운전하시다가 중앙선, 실선 돼 있는 것은 건너가면 안 되잖아요. 있으나마나 건너가지만. 그러나 점선일 때는 어떻게 됩니까? 점선일 때는 추월하기 위해서 그걸 넘어가도 위법사항이 안 된다 이 말이죠. 점선이라 하는 것은 미확정적이고 불확정적이에요. 여기 조건이 붙는 거예요. 점선이니까.

아까 이야기를 다시 해봅시다. 인간은 두 종류의 신이 있다 했어요. 하나는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죠. 또 하는 뭐라 했습니까? 이방인들은 신을 찾는데 자기가 찾는 식이죠. 이스라엘은 누가 덮칩니까? 하나님이 덮쳤지요. 그러니까 인간들은 신을 찾아요. 모든 인간들은. 자기의 장래를 생각해서 죽고 난 뒤를 생각해서 보험 들 듯이 신을 찾는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의 왕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뭐가 되느냐 하면 이스라엘은 자기 나름대로의 실선이 되면서 이거는 뭐냐? 이방민족화 돼버려요.

뭘 포기했습니까? 하나님과 왕의 그 계약을 포기했으니까 이거는 이름만 이스라엘이지 실은 뭐가 돼요? 일반인들이 신을 찾는 것과 똑같이 돼버린 거죠. 그러니까 이 자리에 있다가 하나님의 왕, 계약 자리에 있다가 바깥으로 밀려나가서 이거는 하나님의 언약 밖에, 언약 밖은 저주입니다. 저주로 나가버리게 되는 거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야기하기를 나의 명령과 규례, 그걸 지키게 되면 여기에 역대하 7장 18절, “내가 네 나라 위를 견고케 하되 전에 내가 네 아비 다윗과” 그다음에 뭡니까? “다윗과 언약하기를” 이 솔로몬과 언약하기를 솔로몬언약이 아니라 하지요. 무슨 언약이었습니까, 방금? 다윗언약이죠. 점점 어려워집니다. 솔로몬과 해놓고는 이름을 다윗언약이라.

다윗언약이니까 여기서부터 이 점을 쉽게 하기 위해서 뭐부터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느냐 하면 첫째는, 하나님은 인간과 상대하지 않는다. 유도리다. 확정된 게 아니고 조건부로 찾아오는. 율례와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면 너는 일본 쪽 표준말로 나가리에요. 나가리 되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은, 왜 하나님이 인간을 이렇게 구원하지 않는가? 인간은 구원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해하든 모르겠다, 그냥 할게요.

하나님은 구원을 구원해요. 뭐 되도 않은 말장난이라 하는데 하나님은 구원을 구원한다는 말은, 하나님은 구원자를 구원해요. 구원자가 누굽니까? 예수님을, 예수란 이름이, ‘하나님이 구원하시다’에요. ‘구원하시다’를 구원해요. 하나님은 말씀을 구원한다 이 말이죠. 이 말은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구원하지요. 언약을 구원해요.

그러니까 괜한 통박 굴려서 ‘하나님, 나 천국 보내주세요’ 그렇게 해봐야 하나님은, ‘나 너하고 상대 안 하는데’ 하나님은 우리와 상대 안 해요. 우리의 기도 같은 건 안 들어요. 아까 예수 이름으로 기도, 또 잊어버렸습니까? 제가 분명히 이야기했지요. 하나님은 주님의 기도를 듣지 우리 기도를 안 들어요. 그러면 우리 기도는 소용없잖아? 원래 인간 소용없어요. 내 기도 소용없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내가 필요치 않아요.

그러면 하나님은 내가 필요치 않으면 하나님에게 필요한 인간은 어디 있느냐? 십자가를 그려보겠습니다. 여기 십자가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어요. 그때 로마군병도 있었고 강도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죠. 십자가를 쳐다보는 사람, 여인들도 있었고. 십자가를 쳐다보는 사람, 나지요, 나. 영어로 하면, ‘I’ 나란 말이죠. 이거 구원 못 받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 안 해요.

그럼 하나님이 구원하는 나는 어디 있느냐? 바로 예수님과 십자가에 달린 이 나가 구원받아요. 십자가 쳐다보는 나는 구원 못 받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십자가를 믿어서, 제가 십자가 믿을 테니까 구원해달라는 것은 탈락이에요. 십자가 믿어서 구원되는 게 아니고 십자가와 함께 죽어야 구원받아요. 예수님과 함께 죽어야 구원받지 예수님의 십자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믿습니다, 그거는 이순신 장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믿으면 이순신 장군 됩니까? 돼요?

나는 이순신 장군의 만화책을 읽었다.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그런 말도 나오고, 이순신 장군 영화를 봤다. 그럼 그 사람은 이순신 장군입니까? 아니지요. 난 예수님의 일대기를 안다, 성경을 백독을 했다. 구원받습니까? 안 되지요. 안 돼요. 자꾸 보면 눈만 침침해지고 하는 것도 치매 걸리면 빠져나가고 남는 게 있어야지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데.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다는 이야기는 반드시 전제가 있어요. 네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 믿는 그 믿음은 이것은 우리 행함에서 나오면 안 돼요. 나에게서 나오면 안 돼요. 주님의 믿음이 우리에게 덮쳐야 그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겁니다. 습격이에요. 그냥 덮치고 습격인 거예요. 덮치고 습격하게 되면 우리는 내가 구원받는 게 아니고 주님의 흔적으로써 이미 편입돼 있어요.

그래서 성도는 뭘 하느냐 하면 두 가지를 다 알고 있어요. 성도의 육신이 있으니까. 밑에 나1, 나2라면 성도는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나 아니야’를 인정하는 사람이에요. 십자가에 대해서 공부하고 십자가 연구하고 십자가 믿겠다는 나는 아니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옆자리를 내준 거예요. 그 옆자리가 무슨 자리냐 하면 율법에 보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있죠. 그 율법은 누구만 지키느냐 하면 이 세상에 아무도 못 지키고 예수님만 지켰어요.

그러니까 예수님만 지키다보니까 예수님이 그 일을 이뤘을 때 어떤 자리가 새로 만들어졌어요? 이웃, 이게 나와야 되는데 나올 타이밍인데. 이웃이란 자리가 마련된 거예요. 그 이웃 자리에 자기 백성을 집어넣는 거예요. 집어넣으면 그다음에 예수님 승천하시고 성령이 오시게 되면 내가 너희에게 세례를 주노니 그러면 너는 나와 함께 하나님 우편에 앉으리라고 돼 있어요.

이게 에베소서 2장 6절의 말씀입니다. 2장 5절, 6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나1은 지금 살아 있는 거예요, 죽어 있는 거예요? 죽었지요. 나1이 나2로 자리를 옮기면서 그 옮긴 자리가 죽은 자리에요.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하늘에 앉혔다는 거예요.

그러면 성령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죽은 자를 드르륵해서 쇠사슬로 해서 어디까지 끌어당기는 거예요. 예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우편 그 이웃이라는 자리에다가 그걸 끌어당겼다 이 말이죠. 끌어당길 때 마태복음 25장을 여기다가 집어넣으면 이렇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예수님에 의해서 구원받은 사람을 뭐라고 놀리겠습니까?

저 사람이나 나나 그렇고 그런데 왜 주님께서 나는 안 건져주시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도 없지만, 예를 들어서 나는 구원 안 해주시고 저 사람은 뭐 잘났는데 구원합니까, 그 이야기 할 거예요. 저 삐졌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정작 성령에 의해서 끌려오는 사람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똑같은 생각을 해요. “주님, 제가 언제 주님을 위해서 뭘 했습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제가 주님을 위해서 한 적이 없는데 왜 저를 구원하십니까, 오히려 반문하듯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 구원은 없습니다. 구원은 없으니까 주님께서 어떤 사람을 자기의 이웃, 이웃을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 사랑했다는 그 말씀을 완성한 흔적으로써 이웃 자리에 누굴 잡아당기니까 나머지는 어떻게 돼요? 나머지는 그냥 있는 게 아니고 그 자체가 이미 지옥에 가는 겁니다. 그들의 지옥 가려고 애쓴 것도 아니고 지옥이 좋아서가 아니라 한쪽을 일방적으로 빼내버리니까 그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지옥 가는 거예요. 구원을 못 받았으니까 지옥 가는 거예요. 지옥 가고 싶어서 죄 지어서 지옥 가는 게 아니고. 구원이 안 됐으니까 지옥 가는 겁니다.

제가 지난 화요일에 늦게 강의 마치고 기차 타고 오는데 제 뒷자리에 내 나이 또래 됐어요. 그 사람이 밤에 조용한데 휴대폰으로 전화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돌아보면서 전화하시려거든 기차에선 밖에 나가서 전화합니다, 그랬어요. ‘제가 몰랐습니다’ 이래야 되는데 갑자기 소리 지르면서 “끊으면 될 거 아이가” 시끄럽게 그러는 거예요. 제가 얼마나 점잖습니까? 가만있었지요.

그런데 마침 승무원이 들어와서 이분이 객실에서 전화하는 걸 잘 모르고 그런 것 같은데 잘 이야기 좀 해주세요, 하니까 그 사람이 객실에서 전화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들키니까 화가 난 거예요. 뭐라 하느냐 하면 “나를 감옥에 처넣어라” 이러거든요. 야, 그때 제가 잠시 잃어버린 단어가 확 떠올랐어요. 뭐냐 하면 ‘처’라는 단어, ‘처’라는 단어는 어떤 때 쓰냐 하면 무가치하기 때문에 함부로 다룸, 이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구원되지 못한 사람은 저쪽 사람이 대통령이든 검사가 되던 판사가 되던 의사가 되던 얼마든지 함부로 다뤄도 괜찮은 무가치한 존재로 보는 거예요. 지옥 갈 때는. 그냥 안 가요. 처넣어버리는 거예요. 속으로 고맙다, 이 사람아. 지옥 갈 때 처넣어버리는 거예요. 지 입으로 처넣어버리라 했으니까.

주님께서는 법이냐, 내 인생이냐? 우리 인생은 주님에 의해서 둘로 나눠있어요. 따라서 여기 구원받은 사람은 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란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이뤘는데 그 이루는 방식이 우리를 살려놓고 우릴 구원하는 게 아니고, 자신의 죽음에 같이 동참해서 우리를 죽여 놓고 그래서 이제는 내 인생 어떻게 해볼까, 하는 것이 아예 그 자체가 이거는 하나님 말씀과 안 맞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가운데서 우리를 예수 안에서 구원하신 겁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그리스도, 기름 부은 자라 하거든요. 그런데 오늘 본문 구약에 보면 왕을 뭐라고 합니까? 그리스도. 기름 부어야 왕이 돼요. 선지자, 제사장, 왕은 기름 부어야 돼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계약을 할 때 기름이란 특별한 거예요. 선택했다, 특별히 선택한 분과 계약함으로서 모든 인간을 배제하신다. 모든 인간의 하나님 섬김, 찬송, 순종, 봉사, 헌금, 전도 모조리 다 거부합니다. 인간이 세웠던 교회, 성당 다 거부해요.

그거는 계약에 포함돼요, 안 돼요? 계약에 포함 안 됩니다. 예수님 홀로 다 이뤘기 때문에 인간의 요소가 끼어들면 그거는 하나님께서 허락한 적이 없어요. 이제 무척 어렵고 어려운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아까 이야기한 것 중에 중요한 것, 죄가 뭐라고요? 죄란 내가 나를 지키는 것. 착해도 소용없고요, 양심적으로 살아도 소용없고, 악한 일해도 소용없어요.

어쨌든 간에 우리와 계약을 한 적이 없습니다. 습격해서 우리를 죽이는 계약만 있을 뿐이지 우리가 살아서 뭘 하는 계약은 일체 하나님 앞에 계약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문장이 성립돼요. ‘내가 욕을 얻어먹어도 싼 이유는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욕을 하던 뭐 칭찬을 받던 그것 내 구원과 아무 상관없는 거예요.

아까 솔로몬 이야기 조금만 하고 10분 쉽시다. 점선 이야기. 하나님께서 왕에게 줬다. 솔로몬이 왕이잖아요. 솔로몬이 왕인데 무슨 언약이라 했습니까? 다윗언약이죠. 야아 이것 또 무서운 이야기에요. 제가 아까 그림 그릴 때 하나님은 왕과 계약했습니다, 하고 밑에 이스라엘 해놓고 이스라엘을 뭐로 했어요? 실선입니까, 점선입니까? 점선으로 둘러쳤지요. 그런데 솔로몬도 다윗 앞에서 뭐냐? 점선으로 둘러쳤어요. 다윗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점선인 거예요. 점선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다윗 구원받았으니까 솔로몬 구원받는다? 안 되지요. 다윗 구원받았으니까 이스라엘 구원받는다? 이거는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솔로몬이 구원되면 안 돼요. 뭐로 돼야 되느냐? 다윗의 복사판, 다윗의 흔적. 솔로몬이 구원되려면 솔로몬이라는 그 자체를 인정하면 안 되고 나는 다윗의 자손입니다, 라고 이야기해야 돼요.

잠언 볼까요? 잠언 1장 1절 누가 크게 읽어볼까요?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됐습니다. 솔로몬이 자기 시대로 한 게 아니고 누구 아들? 다윗의 아들. 지금 북한 김정은은 김일성 할아버지를 섬기면 뭐하노 나를 섬기라, 우리 아버지 말고 나, 나 김정은이 섬기라 하잖아요.

전도서 1장 1절도 마찬가지죠. 이건 솔로몬 자기 이름도 없어요.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다시 말해서 솔로몬은 자기를 나타내는데 환장한 게 아니고 누굴 드러내는데? 내가 계약자가 아니고 아버지가 계약자입니다. 나는 그 계약의 결실물, 계약의 그 열매, 생산물이 바로 접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신약시대에 하나님이 누구와 계약했어요? 예수님이죠. 그러면 성도는 뭐라 합니까? 예수님의 흔적으로서 납니다. 예수님의 증인으로서, ‘예수님으로 끝났습니다’를 증거하라고 우리가 호출 받았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이게 성령이 임해야 돼요. 성령이 임하면 네가 땅 끝까지 나의 증인 되라 했잖아요. 사도행전 1장 8절에.

이제 성경 전체의 내막이 점선에서 실선으로 바뀌지 않습니까? 나를 실선으로 여겼던 그 실선은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가 다 하심으로 나를 새로운 실선으로 완전 둘러 감기는 느낌 들지 않습니까? 그 감기는 느낌으로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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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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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