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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32강-히브리서 7장 1-3절(존재의 뒤편)240908 -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히브리서

32강-히브리서 7장 1-3절(존재의 뒤편)240908 - 이 근호 목사

하나님 말씀은 히브리서 7장 1-3절입니다.

히브리서 7:1-3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 여러 임금을 쳐서 죽이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복을 빈 자라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아브라함은 실제로 있었던 사람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사람이 여러 왕과 전쟁해서 이기고 돌아오는데 어떤 분을 만나게 돼요. 아브라함 보기에 자기가 실제로 있고 아브라함이 만났던 그 사람도 실제로 있고, 실제로 있는 그 사람에게 아브라함이 자기의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나눠 줬습니다.

그런데 그 십분의 일을 받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3절에 보면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는 사람이에요. 갑자기 전쟁을 통해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이 역사의 현장에 나타났습니다. 한쪽 사람은 아비도 있고, 어미도 있고, 족보도 있고요, 다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브라함이 만났던 사람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끝도 없는 그 사람입니다. 한쪽은 족보가 있는데 한쪽은 족보 없는 족보, 족보도 없는 분을 만났다 그 말이지요. 그럴 때 아브라함이 한 행동을 보게 되면 “이번 전쟁의 승리는 저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당신에게 있습니다” 하고 십분의 일을 그에게 바쳤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족보 있고 아비도 있고 어미도 있는 나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는 그 앞에서 마땅히 제거되어야 된다’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멜기세덱 그분 앞에서 자기 자신이 있어도 없는 존재인 것을 감사해서 십분의 일을 바친 겁니다. 이것은, 나는 여기 있지만 있는 것, 이것은 가짜고 나는 없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그분 앞에서 고백한 셈이 됩니다.

인간의 모든 고민과 걱정은 내가 여기 있다는 것 때문에 발생되는 거지요. 장래에 대한 계획, 기대감, 지금까지 자기가 구축해 온 인생살이, 그 모든 것은 계속해서 도중에 ‘없음’으로 사라지지 않고 있고, 또 있고, 계속 있어 왔다는 ‘있음’의 이 굴레에서 자기가 자기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추석이 가까우면 동대구역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뭘 하느냐 하면, 바로 벌초를 하는 거예요. 무덤이 있다 이 말이지요. 그런데 그 무덤 속에 있는 주인공은 이 세상에 없어요. 벌써 죽은 사람이에요. 죽고 난 뒤에 무덤만 남기고 죽었잖아요. 그러면 벌초가 뭐냐? 그 무덤에 풀이 자라는 것을 추접하다고 깎아내는 작업이 벌초입니다.

죽은 조상이 그걸 알 필요도 없고 알 리도 없지요. 살아 있는 후손들이 남들에게 욕 얻어먹기 싫은 거예요. 고향의 어른들이 “저 뒷산 묘 있잖아. 자식들이 찾아오지도 않네. 가끔 보면 무덤에 풀이 무성해서 자기 조상도 버린 모양이라. 내가 그 자손들 잘 되는가 한 번 보자.” 이렇게 험담 듣는 것이 걱정이 되어서 깔끔하게 산소를 정리하지요. 고향 어른들에게 인정받는 후손이 되기 위해서 벌초를 하는 겁니다.

벌초를 한다는 것은 자꾸 껍데기만 깎아내는 거예요. 산 사람은 이발 하잖아요. 살아 있기 때문에 하는 거지요. 산 사람 모가지를 따는 것은 아니에요. 그야말로 이발 하는 거지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벌초가 아니고 파묘(破墓)에요. 무덤을 파내는 겁니다. 무덤을 파내면 거기에 조상이 있었다는 흔적은 있지만 사실은 조상은 없지요.

없다는 것이 인간의 기본이고 인간의 출발점이고 토대라는 말이지요.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아비라는 분도 돌아가시고, 어미라는 분도 돌아가시고, 아비 어미에게서 태어난 본인도 이제는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끝나는 날도 없고, 도대체 없는 것밖에는 없는 것, 이 세상은 바로 없음만 있는 세상이다. 없다는 것만 있는 세상이 이 땅의 세계에요.

인생은 안개 같아서 아침에 부옇게 뭐가 보였는데 해가 나오면 아무것도 없어요. 없어야 돼요. 없는 게 우리의 팔자고 운명이고 마땅한 겁니다. 죽는 게 마땅해요, 죽는 게 마땅하다고요. 그런데 살아생전에 죽을까 싶어서 아등바등 애를 쓰잖아요. 여러분, 죽은 자에게서 편지를 받아본 적이 있어요? 그것도 손 편지를.

이미 죽은 분에게서는 손편지를 받아 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가 편지를 쓸 능력이 없다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났다는 말은 죽은 자로부터 편지 받는 거예요. 소식을 듣는 겁니다. 설교 처음부터 다시 할게요.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혼자 집에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이게 정상이에요.

그게 정상인데 아브라함이 길에서 누굴 만났어요. 누굴 만났는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끝도 없는 분을 만났어요. 유령인가? 유령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하고 스쳐 지나간 것이 아니고 자기가 얼마 전에 했던 전쟁의 모든 수고와 애씀을 몽땅, 그 만나게 된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는 사람에게 갖다 바칩니다.

이 말은 뭐냐? 연결 connection, 열결하고 싶다는 거예요. 자기가 연결되고자 하는 거예요. 아비가 있고 어미가 있는 나를 포기하고,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그 존재와 connection, 연결되고 싶어하는 거예요. 십일조 방식으로 연결되고 싶어하는 겁니다.

그리고 다시 집에 올 때는 아브라함이 홀로 돌아옵니다. 홀로 돌아왔지만 아브라함의 어깻죽지는 저 하늘나라와 연결이 되어 있지요. 자, 이 멜기세덱이라는 이 사람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는데 존재가 있을 리가 있느냐? 이 세상은 아비와 어미가 있어서 생식기능에 의해서 자식이 나옵니다. 있음에서 있음이 나오는 것이 오늘날 이 세대 사람들의 상식이고 이게 과학의 세계에요.

과학의 세계는 항상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걸 탐색하는 그게 과학의 세계거든요. 과학의 세계는 없음을 탐색을 못해요, 그 없다는 것을. 멜기세덱은 없음의 대표자에요. 아브라함은 있음은 대표자입니다. 둘이 만났어요. 그래서 있음이 우선인가, 없음이 먼저인가? 거기서 아브라함은 고백합니다. 있음이 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없음이 있음 보다 먼저다, 하는 것을 고백하고 알려줍니다.

자,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궁금한 것은, 이렇게 멜기세덱을 만나기 전의 아브라함이 아니고 이제 멜기세덱을 만난 후의 아브라함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그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지요. 그냥 맨날 있는 인간끼리 만나서 어떻게 변화되는가, 그것은 변화되지도 않지요. 그런데 이 땅에서 시작도 끝도 없는, 하늘에 속한 인물을 만났을 때 아브라함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그 멜기세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름만 남기고 가버렸어요. 아브라함을 만나는 역할만 하고 사라졌습니다. 그 이름이 뭐냐? 멜기세덱의 이름은 공의의 왕이에요. 공의로움의 왕, 왕은 왕인데 공의로움의 왕. “번역한 즉…” 해놓고는 “첫째 의의 왕이요”라고, 공의로움의 왕이라고 나오잖아요.

그런데 2절에 보면 “번역한 즉 첫째 의의 왕이요” 해서 첫째가 왜 나오는가? 첫째가 있다는 말은 둘째가 있다는 말이고, 또 셋째가 있다는 말이거든요. 그 이름자체는 공의로움의 왕, 의의 왕이에요. 그 이름은 멜기세덱으로 끝났어요. 그런데 뒤에 ‘살렘왕이요, 평강의 왕’이라고 해서 둘째가 있고, 더 나아가서 셋째가 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준비한 절차가 있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 되는 야곱이 꿈을 꿀 때 하늘에서 사다리가 내려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혹시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혹시? 그 사다리에는 인간들은 근처도 못갑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인간들이 아닙니다. 그게 누구냐? 천사들이에요. 자기들끼리 바빠요. 굉장히 분주해요. 땅에서 인간들만 일하는 줄 알지요. 천사들 되게 바빠요.

일하면서 어떤 절차를, 정확한 절차를 보여줍니다. 정해놓은 절차가 있습니다. 그 절차가 뭐냐? 공의요, 그다음에 살렘이요, 그다음에 평강이요. 그 세 가지 절차를 천사들을 동원해서 완료를 시킵니다. 공의라는 것은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거예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어느 것이 의인지, 어느 것이 악인지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쪽은 의요 패배한 쪽은 악이 되는 그 작업을 위하여 전쟁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전쟁을 할 때 누가 하느냐? 왕이 해요, 왕. 분명히 야곱의 사다리에서는 숫자가 많아요. 천군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한다고요. 천군천사의 그 집단을 ‘마하나임’이라 하는데 ‘하나님의 군대’라 해요. 그게 군대니까 한둘이 아니고 여러 존재가 있다는 말이지요.

여러 존재가 있다는 말은 여러 존재를 부리면서 단 하나의 왕이 그들을 전쟁에다 투입시켰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지상을 향하여 공의로움, 의로움을 성취하기 위해서 사람은 빼고 천사들을 동원시켰고 그 천사를 부리는 대장 되시는 분은 두 분이 아니고 세 분도 아니고 딱 한 분이라는 말이지요.

그 한 분을 지칭할 때 그걸 King, 왕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멜기세덱은 공의의 왕이에요. 왕인데 무기가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전쟁하려면 무기가 있어야 되지요. 그 무기가 바로 성전이에요. 제사가 이루어지는 성전, 성막, 성막이 발전하면 성전 되잖아요. 성막은 이동용이고 성막이 드디어 한 장소로 정해져 버리면 성전이 되는 겁니다.

정해진 장소에 성전이 되는데 그 자리가 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의 살렘.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전쟁이 마감이 될 때 세 번째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 두 번째, 제사를 주관하는 왕 그게 바로 살렘왕이에요. 세 번째, 그 왕이 하시는 일은 모든 제사가 완료가 되었을 때에 죄사함이 되고, 죽은 자를 살려줬다는 것이 완료가 되기 때문에 그때 살려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이걸 가지고 평화의 나라, 바로 평강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에요.

그런데 그 평강이 각자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왕에게 돌아가는 평강이에요. 그래서 평강의 왕입니다. 공의의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중간에 제사하는 왕이 되시고, 그다음에 평강의 왕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멜기세덱,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시작도 없고 끝 날도 없는 분을 친히 주관하시는 분이 멜기세덱이라는 존재를 통해서 자기의 직능과 자기 하는 일을 지상의 아브라함에게 드러냈습니다.

그게 뭐냐?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이것은 바로 제사장 직분과 왕 직분을 겸직했다는 의미거든요. 중첩되어 있다가 이것이 둘로 갈라졌다가 드디어 마지막에 이스라엘이 끝나고 예수님이 오시면 왕과 제사장직이 하나로 결합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의 기능이에요. 하나의 일이라는 말입니다, 일.

누구의 일인가?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끝도 없는 분의 일이에요. 그러니까 이 일은 ‘누가 일합니까?’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요, ‘이 일이 어떻게 이 세상에 나타납니까?’로 이야기해야 돼요. 무슨 말이냐 하면…, 복잡하지도 않은데 벌써 잠이 오면 곤란한데요. 본격적으로 복잡하게 들어갑니다.

이게 뭐냐? 여기 있다는 것, 우리가 있다는 것은 창조되었기 때문에 있는 거예요. 창조되었기 때문에 있는 것인데 문제는 창조되었기에 있는 인간을 덥석 누가 물었느냐 하면, 악마가 아담과 하와에게 덮쳐서 인간으로 하여금 ‘있음’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게 만들어요. ‘나 있다. 나 잘되어야 해.’ 모든 생각이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나 여기 있잖아. 나 오래 살아야 해.’ 이렇게 ‘있음’부터 ‘있음’이 시작되도록 인간 속에서 그렇게 하게 되면 인간이 하는 일은 ‘없음’으로 넘어가지를 못해요. ‘있음’부터 모든 것을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은 뭐냐? 존재의 이편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니 인간은 자기 존재의 뒤편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자기 존재의 뒤쪽으로 못 가요. 이게 미칠 일이에요. 자살해도 존재의 뒤편으로 못 가요. 죽어도 존재의 뒤편으로 못 가요.

백날 교회 나와도 존재의 뒤편을 못 본다니까요. 우리 쪽에서 내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문제는 내가 여기 있다는 거예요. 만약에 예수님이 여기 계시다. 또는 사도바울이 여기에 있다. 여기 있는 내가 “예수님, 믿습니다.” 혹은 “사도바울, 믿습니다.” 하고 달려가면 있는 내가 있는 예수님, 있는 사도바울에게 달려가는 셈이 돼요.

그러면 예수님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주춤주춤 물러가는 거예요. 예수님은 자기 존재의 뒤편을 절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예수님이 자기와 똑같이 있음을 발견하고 달려드는 그 인간들을 향하여 주님께서 주춤주춤 밀려가면서 결국 떠밀려 돌아가시죠, 존재의 깊이는 보여주지 않으시고.

교회 50년 다녔어요? 60년 다녔습니까? 모태신앙이에요? 그렇다면 여러분, 존재의 뒤편으로 가본 적 있습니까? 목사 되었다고요? 신학교 졸업했다고요? 존재의 뒤편으로 가본 적 있습니까? 존재의 뒤편으로 가보지를 못하면 신학을 하든 목회를 하든 전도를 하든 전부 다 있는 것들을 상대해요, 있는 것들을. 이게 아브라함의 한계입니다.

히브리서 1장 1절,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이 ‘있음’의 세계에서는 그 ‘없음’의 실체가 그 인간 세계에 섞일 수가 없어요. 기껏해야 약간의 부분, 흔적이 나타날 뿐이에요. 여러 부분으로 여러 모양으로 나타날 뿐이에요.

그것을 가지고 히브리서 9장에서는 ‘모형’이라고 해요. ‘있음’ 자체가 ‘모형’이에요. 모형은 모형일 뿐입니다. 실체가 아닙니다. 가짜에요. 모형은 어디까지나 가짜고, 내가 인간이라는 것은 이게 가짜 인간을 두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는 인간이다, 나는 사람이라는 게 가짜에요.

주님께서 너는 흙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우리는 안 믿습니다. 우리는 가짜니까요, 가짜. 우리 존재의 뒤편에 우리는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 모형 중에 하나가 지난 시간에 이야기 했던 성막입니다. 성막이 세 공간으로 되어 있죠. 한 주 지나서 벌써 잊어버렸죠? 세 공간이 있고 의미적으로는 네 가지 공간이 나와요.

어쨌든 간에 세 개의 공간인데 하나는 성막 바깥이 있고요, 그건 소용없는 공간이고 소용 있는 공간은 성막 안쪽이고요. 그러면 성막 전체가 하나의 공간이 되죠? 성막 전체의 공간이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눠집니다. 나누기 하는 것이 휘장이라는 커튼으로 나눠져요. 입구에서 커튼까지가 성소, 커튼 뒤에 있는 것이 지성소, 하나님께 의미 있고 필요한 공간, 하나님 자신에게 필요한 공간, 하나님 자신에게.

인간에게는 필요 없지만 하나님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해서 만든 공간이 성막이고 성막은 둘로 쪼개져 있습니다. 성막 안에서 거기서 하나의 절차, 하나의 경로를 보여주는데 그 경로는 모형인 제사장이 모형인 성막 안에서 모형적인 경로를 보여줘요. 장차 오실 하나님이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서, 이렇게 들어간다는 것을 모형으로서 미리 보여준 세상이 바로 이스라엘 세계였습니다.

그 세계에서 휘장은 예수님 오실 때까지 찢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럼 지성소를 아무도 못 봤느냐? 본 사람이 있어요. 1년 동안에서 7월 10일 날, 그것도 대속죄일날 대제사장이 단 한 번입니다, 단 한 번…, 그 안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바깥에서 확인하기 위해서 치마 밑에 방울을 달아요. 딸랑딸랑 방울을 달고 들어갈 때 대제사장은 휴~, 심호흡 한 번 하고 ‘오늘로 난 끝났어. 나 죽었어.’ 유서 쓰고 드디어 들어갑니다.

제사장 한 사람만이 들어간다는 것과, 아무도 못 들어가고 일 년에 한 차례만 들어간다는 말은, 일반인들, 아비가 있고 의미가 있고 족보 있는 인간은 아무도 들어가지를 못한다는 거예요. 들어갈 수가 없어요. 저쪽 세계는, 지성소 세계는 멜기세덱의 세계에요.

멜기세덱의 세계를 표현하면서 지상의 성막이라는 모형을 가지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하나님, 히브리서 1장 3절 마지막에는, 마지막 끝 날에는 “시간은 끝났습니다” 하죠. 남자들 다 알잖아요. 당구장에서 당구 친다고 몰입하고 있는데 주인이 와서 “시간 끝났습니다!” 또는 당구 치다가 “여기 났어요!” 하기도 하고요. 시간이 끝났어요.

우리가 ‘있음’을 ‘있음’으로 유지할 타임이 끝났어요. 허용된 시간은 끝났어요. 시간이 끝났을 때 끝났다는 걸 어떻게 하느냐? 아들을 통해서, 그 모형과 부분으로 보이던 그 모든 것을 아들을 통해 다 보여 줬습니다. 주님 가신 그 길로 바로 존재에서 ‘존재 없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임을 예수님이 보여줬습니다.

이 말은 존재한다는 것, 있다는 것은 다 엉터리라는 것을 예수님이 보여준 거예요. 그동안 인간들이 예수를 믿어도 구원받지 못한 이유는, 자기가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요. 자신이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있음’을 ‘있음’으로 유지하려고 예수 믿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옛날에 제사장은 휘장, 커튼을 젖히고 그 안에 들어가면 천사가 언약궤를 보호하듯이 덮고 있고요, 그 언약궤 위에 염소나 송아지 피를 거기에 뿌리고, 그다음에 다시 돌아오면 돼요. “후유~, 살았다.” 그 작업 할 때는 “짤랑짤랑!” ‘아직 살아 있구나’ 하고 듣고 있고.

그게 되면 그걸 지켜보고 있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본인이 알든 모르든, 부지중이든 그게 아니든, 실수든 고의든 하나님과 더불어, 함께 할 수 없는 조건이 되는 그 죄, 그 죄가 7월 10일의 대제사장의 활동 하나로 모든 것이 다 삭제가 되고 날아가 버려요. 그리고 “내년에도 또 살자, 같이.” 이렇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게 평강입니다. “내가 널 의롭다고 해 줄게.” 왜? 죄가 날아갔으니까 의롭게 되는 거예요.

그 중심의 기능이 뭐냐? 제사 기능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들어갈 때는 어떻게 되느냐? 젖히고 들어가는 게 아니고 그 휘장을 찢어버리니까 공간이 어떻게 돼요? 두 개로 있던 공간이 하나로 통합이 되면서 들어갈 수 없는 영역인 지성소의 권능이, 그 저주의 권능이 휘장이 찢어지면서 인간 세계 쪽으로 모조리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존재의 뒤편엔 저주의 힘이 있었던 겁니다. 모여 있었던 거예요. 댐처럼 저주가 있었던 공간, 그게 바로 존재의 뒤편이에요. 우리 존재의 뒤편에는 우리를 한없이 저주하는 힘이 있었던 겁니다. 이걸 우리가 몰랐던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살아 숨 쉬고 있으면 그게 산 건 줄 알아요. 숨 쉬고 있는 게 저주라는 사실을 몰랐던 겁니다.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아오고 있어요, 죽기보다 못한 삶을. 뭐 나중에 죽으면 저주 받아요. 그러니까 저주의 힘에 의해 우리가 살아오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뭐냐? 불을 싸지를 세상이에요. 불탈 세상이에요, 이 세상이. 이건 저주의 발현이죠. 저주의 인덕션, 벌건 불판. 오늘도 우리는 이 저주의 일상을 편하게 대합니다. 저주의 일상을 제가 잠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우리 동네 대형마트에서 광고지를 하나 줬습니다. 추석맞이 세일을 한다는 거예요. 자, 어떤 게 저주냐? “오양맛살 480원, 아이스크림 바 10개에 4,900원, 쌀 10킬로에 2만 6천800원, 촉촉한 우유식빵 1,000원, 꿀 꽈배기 1,100원, 신라면 5개 2,980원, 진라면 5개 2,800원, 추석 당일 11시에 오픈합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세상에 이걸 보고, 이게 바로 저주의 권능이라는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런데 그 광고지에 재밌는 게 있어요. 저 혼자 재미있습니다만, 그 사진 그림 뒤에 가격표가 붙어있어요. ‘오양맛살 2,480원’ 이 말은 뭐냐? “오양맛살 먹고 싶죠? 2,480원 없으면 못 삽니다”라는 뜻이거든요. 저주의 세계는 돈의 세계에요. 돈만 살아 있는 세계에요. 말씀이 살아있는 세계가 아니고. “저 말씀 아는데 좀 주세요.” 오양맛살 안 줍니다. 돈이 있어야 살 수 있고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는 데예요, 이 세상이.

이 세상이 저주의 인덕션 위에서, 그 불판 위에서 마귀가 우리에게 추동질한 것은 ‘어쨌든저쨌든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심어준 우리의 본성은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럼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하느냐? 남을 밀쳐야 되지요. 남이 죽어야 내가 살아요.

여러분, 제가 한 5분 동안 어려운 거 할 테니까 그냥 들으세요. 창세기 1장에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할 때에 어둠이 있고 빛을 만들었어요. 빛이 있다는 것은 어둠을 전제로 한 거예요. 그다음 두 번째 날에 물을 만들어요. 물을 만들어서 물이 하늘과 땅을 구분하는데 하늘과 땅은 땅이 있어서 구분되는 것이 아니고 물을 통해 구분 돼요. 위에 있는 물과 아래에 있는 물로 구분되면서 두 번째 날이 돼요.

이게 왜 어렵냐 하면 빛의 의미는…, 빛이 없을 땐 어둠이 의미가 없어요. 그러나 두 번째가 빛이 생기면 그제야 어둠이 소급해서 발생된다는 점이 어려워요, 소급해서. 이 의미가 어렵다고요. ‘소급해서’. 인간이 있고 난 뒤에 비로소 ‘없다’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거예요.

그다음 세 번째 날에 땅이 생겼는데 땅을 만들 때 물에서 만들어요. 물밖에 없는데 뭍이 드러나면서 땅이 되고, 나머지 한쪽은 바다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바다라는 것은 땅이 없으면 바다의 의미가 없어요. 아래가 없으면 위의 의미가 없고요. 어둠이 없으면 빛이 의미가 없고 빛이 없으면 위, 아래도 없고 바다와 땅도 없어요.

그다음 셋째 날에 식물이 나오거든요. 지금까지 사람은 없습니다. 6일째 마지막 올 때까지는 사람이라는 게 없어요. 사람이라는 게 의미 있기 위해서는 앞에 있는 것들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앞에 있는 것들에 순서를 맞춰 사람이 등장해야 돼요.

자, 이게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느냐? 기왕 어려운 거 계속 어렵게 갑시다. 열왕기상 8장 12절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때에 솔로몬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캄캄한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여기 보면 캄캄한 데가 나와요. ‘하나님께서 캄캄한 데 계시다.’

캄캄함은 모든 존재가 있어도 안 보이는 곳이에요. 인식되지 않는 곳입니다. 깜깜함만 있지 거기 누구 개체가 있다는 것이 안 나타나요. 깜깜한 데 있는 거예요. 그 말은 현재 인간들이 사는 곳은 훤히 밝은 곳이라는 거예요. 밝은 곳이다, 밝은 곳이라고 생각하니까 인간들은 ‘밝은 곳에서 밝은 곳으로, 그 밝은 것으로 나를 살자.’ 이렇게 되는 겁니다.

어두운 곳에 계신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 밝은 성전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성전이 완성되는 게 아니에요. 성전이 제대로 되려면 그 어두운 것이 밝은 모습을 완전히 어둡게 정복을 하고 다 저주를 해 줘야 성전이 성령 받게 되는 겁니다. 지성소에 있던 그 저주가 휘장이 찢어지면서 이쪽으로 저주가 엄몰해서 다 덮쳐져야 이게 성전다운 것이고 멜기세덱다운 것이에요. ‘…답다’ 이 말이죠. 그게 정당하다, 이 말입니다.

조금 더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어려운 걸 해야 합니다. 자, 세 번째 날에 바다와 땅이 갈라졌습니다. 이제부터 어려워요. 하나님이 그 땅에서 마지막 6일째에 사람을 만들어요. 그리고 이스라엘 때는, 아브라함 때는 하나님이 사람과 동행했고요.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에 갈 거라고 약속을 했고요. 이스라엘에서는 드디어 신명기 12장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계실 약속의 땅에 너희들을 데려가겠다고 약속을 했고, 여호수아 때가 되어서 드디어 약속의 땅에 도착합니다.

그러면 약속은 어디 있는가? 셋째 날 만든 그 땅 위에 약속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그 뒤에 이스라엘이 이런 하나님의 약속을 버리고 약속이 없는 신, 우상이죠, 이방신을 섬길 때 하나님이 어디를 동원 시키냐 하면 바로 바다에 있는 괴물로 하여금 약속의 땅을 공격하도록 하는 겁니다. 바다에는 약속이 없어요. 그래서 악마는, 짐승은 바다에서 기어 올라오는 거예요.

약속이 없는 비언약적 존재가 약속이 있는 땅의 약속이 있는 존재를 공격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평소에 여러분들이 이런 말씀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은 지금 오양 맛살 2,480원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 땅에서 내가 있어 밥 먹고 사는데 모든 정신을 24시간 거기다가 다 몰입해서 그래요. 쌀 10킬로 2만 6800원, 난 뭐 이게 싼 것인지 어떤지도 잘 모르겠어요. 바다엔 그냥 해수욕 하러 가지, 거기서 짐승 안 나오고 그냥 해파리만 나와요.

근데 성경 전체를 한번 보세요.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다고요. 바다에서 와서 뭘 겨냥하고 공격하는가? 제사를 공격해요, 제사를. 이번 겨울 수련회는 다니엘 합니다. 뭐 광고해도 오지도 않지만 하여튼. 다니엘에 보면 거기에 제사 제도를 특별히 노리고 등장하는 게 바로 첫째 짐승, 두 번째 짐승, 세 번째 짐승, 네 번째 짐승이고 그 짐승을 진두지휘하는 왕이 있는데 그 왕을 뿔이라고 합니다, 뿔.

제가 요한계시록 17장 3절을 읽어드릴 테니까 여러분은 이게 무슨 뜻인지를 알아맞혀 보세요.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이게 무슨 뜻이죠? ‘열 뿔이 있더라.’ 신라면 5개 2,980원. 얼마나 이해하기 쉽습니까? 이해하는 데 전혀 부담이 없죠. 그런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더라.’ 이게 무슨 뜻이죠?

여기 17장 8절에 보면 “짐승의 비밀을 내가 알려줄게.” 하면서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이전엔 있었는데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 하나의 절차를, 경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에요. 12절에 보면 “열 뿔은 열 왕이니” 그 뿔이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그 뿔은, 이방인의 왕이죠. 그 왕들이 노리는 게 뭐냐? 도대체 뭘 노리는가? 그게 바로 구약 다니엘에 보면 나와요.

노리는 것이 뭐냐? 제사 제도에요. 성전이에요. 예루살렘 성전을 노리고 있는 겁니다, 다니엘에. 안티오쿠스 4세라는 그 인물에 대해서 미리 다니엘에서 수차례 예언되어 있습니다. 다니엘 7장 19절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나중에 쭉 지나가서, 그 짐승의 뿔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가 다니엘 12장 11절에 나옵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제사를 폐하는 겁니다. 약속의 땅을 공격하는데 거기에 성전이 있잖아요. 그 성전에서 제사를 금지하게 만들어요.

‘있음’에서 ‘없음’으로 통하는 그 구멍을 악마가 노리고 있었던 거예요. 왜? 악마는 없는 존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잖아요? 악마는 인간을 배후에서 조종합니다. 조종하면서 자꾸 인간끼리 싸움을 붙이는데 그 인간들 문명을 짐승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로마는 네 번째고, 헬라 마케도니아는 세 번째 짐승, 두 번째 짐승은 매대-바사, 첫 번째 짐승은 느부갓네살의 바빌론, 이렇게 그 나라가 전에는 없었는데 본격적으로 나타난 이유가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했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의 제사가 멸망하고 난 뒤에 비로소 제사의 의미가 소급해서 밝혀지게 되는 겁니다. 제가 아까 창세기 1장이 어렵다는 말이 그 말이죠. 뭔가 뒤에 나오는 게 앞에 나온 의미를 소환시키는 겁니다. 왜 땅이 있느냐? 땅에 뭔 일을 벌이고자 하는구나. 누가? 하나님이. 뭘? 제사. 제사를 왜 드리는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과 만나야 되잖아요. ‘있음’이 ‘없음’으로 가야 되잖아요, ‘있음’이 ‘없음’으로.

그런데 그걸 누가 싫어하느냐? 악마, 이 세상이, 짐승이 싫어하는 거예요. ‘그냥 추석이나 지내. 벌초나 해. 이 땅에서 자식이나 잘 키우고 잘 먹고 잘살아. 그러면 되는 거야. 그게 인간 존재의 의미야.’ 지금 마귀가 우리를 계속 부추기는 겁니다. 마태복음 6장, 여러분들도 21절의 이 말씀은 많이 들었을 건데 제가 읽겠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 보물이라는 것은 가치가 있잖아요. 인간이 자기 가치를 찾기 위해서 마음을 집중해서 모으는 겁니다. 왜 청년들이 촌에 안 가고, 중소기업에 안 가고 LG 같은 그런 대기업을 선호하는가? 내가 가치 있는데 마음을 둘 때 그게 나한테 보물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우리집에 보물 있다~! 대기업 다니는 보물 있다~.” 가문의 영광이에요, 가문의 영광. “우리 딸 이번에 의사랑 결혼했다~.” 가문의 영광이에요.

‘있음’의 가치예요, ‘있음’의 가치. 내가 여기 있고, 그 ‘있음’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있음’의 가치 때문에 우리는 죽기 살기로 애쓰고 노력하는 겁니다. 지난 금요일 울산 강의 하면서 울산역에서 운전해 주시는 그 권사님, 참 그분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부다 복음 같아요, 저한테는. 저는 늘 메모 준비합니다.

그분이 말씀 하시기를, 말이 아니에요, 말씀, 그분이 말씀 하시기를 ‘내 둘째 아들은 힘든 것 하기 싫어서 공부를 했다’는 거예요. 힘든 것 하기 싫어서 공부했다. 아, 이 세상의 모든 젊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힘든 것 싫어서 공부했다’라고 열 자로 줄인 거예요. 뭐 강사 나와서 강의 하고 뉴스 나온 거 다 듣기 싫어요. 짧은 이 열 글자가 끝이에요. “힘든 것 싫거든 공부해라.”

비수를 찔렀습니다. 바로 딱 저거다, 이 세상은 한마디로 말해서 이거에요. “힘든 것 하기 싫거든 공부해라.” 그럼 힘든 당사자는 누구냐? 나다. 나는 지금 뭐다? 있다. 그러니까 ‘있음’, 내가 존재의 뒤편으로 갈 생각은 안 하고 어쨌든 존재의 이쪽, “존재의 뒤편에 뭐가 있는지 난 모르겠고 내가 여기 ‘있음’, 있다는 거기에서부터 내가 잘되는 데 나는 전 일생을 바칠 거야.” 이거 말고 인간을 더 명확하게 묘사한 표현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시 이 자릴 빌어서 감사드립니다.

또 그분이 이런 이야기 했어요. 두 개입니다. 메모 두 개 나왔어요. 자기가 옛날에 어떤 사람한테 간증을 듣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내가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가 묵은 호텔 방 옆방에 있었는데 그때 마릴린 몬로에게 전도를 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는 거예요. 그때 전도를 했으면 마릴린 먼로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전도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시계 보고 기다린 게 아니에요. 종교라는 것도 마귀 짓이에요. 교회도 마귀 짓이에요. 옛날에 없었는데 이스라엘 망하고 난 뒤에 새롭게 등장한 짐승이 노리는 게 있어요. 마귀는 드디어 긴장이 된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시시하게 이스라엘이 했던 모형 제사 말고 진짜 제사, 단번에 십자가 죽으시고 모든 죄를 사해서 평강을 이루는 제사가 남아있다는 것을 누가 감을 잡았냐면 마귀가 감을 잡은 거예요.

그래서 그 마귀가 이 땅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십자가로 못 오도록 하기 위해서 ‘있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기적을 다 베풀어요. 인간이 ‘있음’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기적, 그게 요한계시록 13장 12절에서 14절에 나옵니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게 무슨 뜻이냐하면요, 성전이 이 땅에 있다가 예수님께서 휘장을 찢음으로써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에요. 그러면 예수님 자신이 땅에 계시다가 하늘로 올라가게 되면 하늘에 올라갔다는 그 절차에 의해서 그전에 있었던 땅의 의미가 확립돼요. 땅에 거하는 모든 인간은 이제는 불판이에요. 불의 대상이 되고 저주뿐이에요, 이 세상의 이 역사라는 게. 불사름을 받기 위해 있다고 했어요,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7).

그래서 주님께서는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하면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했거든요. 주께서 하늘로 가야 ‘아, 이 땅은 망하는 곳이구나.’ 아는 거죠. 누가복음 16장에 거지 나사로 이야기 여러분 다 아시죠.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극히 비극적인 이유는요, 동생들 다섯 명이 땅에 그대로 있다는 거예요. 지옥 간 부자 형님의 입장에서 동생들 다섯 명이 땅에 있어요. 그런데 그들은 땅이 위험한 곳이라는 걸 몰라요.

‘있음’이 ‘있음’으로 살기 위해서 이 땅에 악마는 인간들에게 뭘 했는가? 인간들 자체가 악마의 권총입니다. 각자가 무기예요. 이 땅에 태어나면서 본인 자신이 살육의 기계가 된 겁니다. 이 세상은 인간 서로가 죽고 죽이는 사냥터가 되고 있고, 그걸 교육받는 게 사냥꾼의 양성이에요. 영웅적인 사냥꾼, 창세기 10장에 니므롯, 그 니므롯을 인간들은 숭배하잖아요. 사냥꾼이에요. 영웅이에요. 무기를 들고 있는 거예요. 무기를 가진 자가 왕이 되고 스타가 되는 세계에요.

그 강한 무기를 못 지녀서 사람들은 환장을 하고 있는 거예요. 무기 가지려면 공부를 해야 됩니다. 공부를 해야 돼요. 공부를 해야 무기다운 무기가 돼요. 쓸데없이 조폭이나 하다가는 나중에 왕따당합니다. 선지자들의 예언서에 의하면 구약에 이스라엘이 망하고 난 뒤에 선지자들이 등장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어둠이, 지성소의 깜깜한 어둠이 드디어 세상으로 나와 저주로 덮일 것이다.’ 그게 요엘 3장에 보면 이렇습니다.

요엘 3장 15절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여러분들이 요엘 3장 15절의 이 대목을 보시면서 마태복음 24장 28절 29절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이 말은 제가 창세기 1장 설명할 때 했습니다. 뒤의 것이 오게 되면 앞의 것의 의미가 비로소 발생돼요. 아, 땅 자체가 저주에요.

‘아비가 있고’ 이 말은 저주가 있고, ‘어미가 있고’ 그러면 저주가 있고, ‘내가 살 영토가 있고’ 저주가 있고, ‘내가 자식을 낳고’ 그러면 저주를 낳았고, 모든 ‘있음’ 자체는 존재 뒤편으로 가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자기 존재 자체가 자기 인식의 전부가 된 거예요. 예수님이 오시는 건 전쟁을 일으키러 왔어요, 전쟁. 이 전쟁을 하는 데 다니엘에 보면 이 전쟁을 사람이 못 해요. 누가 하냐 하면 미카엘이 해요. 다니엘 10장에 나옵니다.

짐승의 힘을 받은 자들이 그 제사, ‘없음’의 세계로 통하는 제사를 공격해서 아예 틀어막아 버려요. ‘딴생각 하지 마라~. 너 출세할 생각을 해야지. 십자가 복음이라는 소리 해서 주님 가신 그 하늘? 그런 거 잊어라. 그게 밥 먹여 주는 거 아니다. 그게 돈 벌어 주는 거 아니야. 잊어버려!’ 할 때 그 짐승의 손가락을 제끼고 거기서 빠져나갈 인간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어요. 목사? 장로, 집사 다 소용없습니다.

거지 나사로, 살아있을 때 개무시 당했습니다. 부자가 무시했어요. 부잣집의 개도 무시했어요. 막 핥았어요. “아이고, 인간아. 네 ‘있음’이 왜 그래? ‘있음’ 자체가 왜 그래? 나 ‘있음’을 봐. 부자잖아. 그런데 네 ‘있음’은 정말 무가치한 ‘있음’이잖아.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놀렸겠어요.

그러나 말씀과 율법과 선지자에 의하면 이 세상은 인덕션이라는 거예요. 벌건 인덕션, 벌건 불판이에요, 이 세상은. 이 세상은 서로가 권총을 꺼내 서로를 살해하는 세상이에요. 그냥 살육의 현장이에요. 여기서 설교 끝나면 너무 허망하겠죠? 그래서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20장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서 예수님께서 “천국은…” 이렇게 시작하지요. 천국은 모든 인간을 무가치하게 봐요. 마태복음 20장 3절에 “또 제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모조리 다 천국에서 소용없어요. 놀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무가치한 거예요. 다섯 시에, 마지막 퇴근 시간 한 시간 전인데 그때까지도 놀고 있어요.

놀고 있는 사람을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놀고 있는 사람을 들여보냈을 때 그 놀고 있다는 것, 아무 의미가 없어요. 백날 백 살을 살아도 의미가 없어요. 이 땅에 우리는 의미가 없어요. 70년 사신 분들 벌써 아시잖아요. 80까지는 이야기 안 합니다. 70까지 사실 분들 아무 의미가 없어요. 여행해 봤자 의미 없어요. 병원에 가서 나아도 의미 없어요. 하여튼 그냥 놀고 있는 거예요. 천국과 무관해요. 그냥 놀고 있어요. 그냥 이 땅이 전부인 줄 알고 살고 있어요.

그런데 이 포도원이라는 천국에 의미 없는 인간을 들여 일을 시킬 때에 그 사람이 얼마나 감격하겠습니까? 얼마나 감격하겠어요! 난 무가치한 인간으로 알았는데 주님께서 이렇게 찾아와서 나에게 천국의 일을 시켜주다니, 비로소 이게 사는 게 사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사는 이유가 제사와 관련되어 있듯이, 제사 제도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관련되듯이 주님의 십자가를 드러내는 그 일을 시킬 때 얼마나 가치를 느끼겠습니까?

그런데 포도원 주인이 퇴근 시간 마지막 제일 끝에 온,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에게 하루치 품삯을 줘요. 그게 복음입니다. “주님, 제가 이 복음이라든지 천국 생활을 받을 가치가 없습니다. 저는 무가치한 존재입니다.” 여기서 나온 게 감사입니다. 이 지옥 같은 불판 위에서 살면서 감사와 감사, 주님께 고마움, 고마움.

이것은 바로 주께서 불러서 일을 시킬 때 비로소 우리가 소급해서 뒤돌아보니 내가 있음 자체가 저주받은 무가치한 ‘있음’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게 감사가 되고, 그 감사가 이미 시작된 천국의 일이고 멜기세덱의 order, 그 질서에 속한, 반차에 속한, 그 클래스, 계층에, 계급에 속한 천국 백성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존재의 뒤편 가보지도 못한 주제에 저주받은 주제도 모르고 그저 눈에 보이는 게 다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게 마귀가 조성한 환경인 것을, 마귀도 저주받고 우리도 저주받는 저주의 지옥인 것을 이제는 저희들 발견하게 해 주시고, 이 지옥 같은 세상 살면서 무가치한 자를 살게 하시고 복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인간인 것을 주께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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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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