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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24장 3절 (죽음 속의 죽음) 240716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24장 3절 (죽음 속의 죽음) 240716b-이근호 목사

첫째 시간에 인간은 십자가를 해석을 못한다. 해석할 수 없다. 그것은 예수님은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저주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인간은 저주인줄 모르고 저주 아래 있기 때문에 거기서 저주 받아야 될 이유만 자꾸만 내놔요. 악착같이 살아야 돼. 어렵지만 공부해야 돼. 언젠가는 죽으면 희망 있겠지. 예수 믿고 있으면 나중에 구원되겠지. 피를 믿었으니까 주께서 구원 시켜주겠지. 자꾸 이런 식으로 계속 나오는 거예요. 광야 때 한번 생각해봅시다. 광야 때 이스라엘이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어요? 안 믿었어요? 그들은 자칭 하나님을 믿었다고 생각한 거예요. 왜냐하면 찬송했으니까. 출애굽기 15장에서. 미리암 선창으로 해서 찬송을 했어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실제로 현실 그대로 인정했어요. 왜? 홍해 강가에서 자기는 건너오고 뒤따라오는 애굽 군대들이 군사들이 갑옷과 병거들이 물에 떠다니는 것을 봤기 때문에. 실제 자기가 여기 눈으로 확인하는 한 그들이 망한 것을 봤어요. 문제는 본인을 못 보고 있다는 것. 희한하지요 그게.

하나님은 우리 편이라는 것을 자기의 적들이 죽음으로서 인정을 했는데 본인이 하나님의 편이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린 거예요. 그게 인간의 한계지요. 무엇이 한계입니까? 자기도 하나님의 원수라는 사실을 발견을 못해요. 항상 자기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자기가 여기 있다는 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 달릴 때 못 박혀 죽었잖아요. 그거는 주님은 못 박아 죽어도 되는데 나는 못박히면 안된다는 거예요. 왜? 아프기 때문에. 아야 하기 때문에 안된다는 거예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길 간 것은 장차 올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시험하기 위해서예요. 구원자는 당해도 되는데 왜 너는 당하면 안 되느냐? 거기에 대해서 그들이 어떤 이유가 없어요. 예수님 혼자 당하라는 식이에요. 혼자 고생하고 우리는 덕 보자는 식이잖아요.

광야에서 그들이 올 때에 그들이 멸망했다 망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망한 이유는 딱 한 가지예요. 감사가 없었습니다. 감사. 고마움이 없어서. 고마움이 없는 대신 그들에게는 자신에 대한 욕망이 살아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럴 때마다 그 인간의 욕망을 사랑으로 바꾸는 진리 사건들을 수시로 하나님께서 일으켰어요. 놋뱀을 쳐다보기만 해도 네가 아픈 거 낫게 해줄게 살려줄게. 그런데 그것이 자기 자신의 본질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생각 못하고 애굽에서 내 위주로 살던 것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어떤 하나님의 특별한 조건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겁니다.

요나 이야기하기 전에 이 이야기를 먼저 할 수밖에 없어요. 요나 이야기 어렵기 때문에. 안드레센 동화에 빨간 구두라는 동화가 있어요. 그 아가씨 이름이 카렌인데 몸 위쪽은 멀쩡한데 아래쪽 다리가 음악만 나오면 자꾸 춤을 춰요. 빨간 구두가 춤을 추게 만들어요. 자기 몸인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통제가 안돼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카렌이라는 아가씨가 제발 이 아래쪽 다리 부분을 잘라주세요. 그러나 위쪽은 자르지 마세요. 왜? 위쪽은 내가 살아야 되니까. 이게 무슨 뜻이지요? 결국은 뭡니까? 내가 살아야 되니까. 그러면 아래쪽이 미친 거예요? 위쪽이 미친 거예요? 전체 다 미친 거예요. 전체 다.

범죄도시4 영화에 보면 유명한 조연이 나와요. 장이수. 이런 멘트를 반복해서 했어요. "또 못살게 구네!!" 마동석이 와서 자꾸 불러내서 너 나하고 일 좀 하자. 만약에 거부하면 무서운 신체적 형벌이 가해지죠. 또 못살게 구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하나님이 좋고 하나님이 사랑스럽고 십자가 다 믿겠는데 제발 나를 힘들게 하지 마, 나를. 내가 주의 일에 끌어당기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께 찬양하고 믿을 테니까. 그러니까 장이수도 마찬가지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고 전체 곽 있잖아요 프레임, 전체 프레임을 몰라요. 이 세대가 하늘로 쏘아 올리는 기도, 그 모든 요구 그것은 그 희망은 도로 이 세상에 눈물로 떨어지게 되어있어요. 왜? 갇혀있으니까. 주께서 이야기한 것은 이 세대가 아닙니다. 이 세대가 아니고 오는 세대에요. 예수님께서 한두 번 이야기하신 게 아니에요. 제자들은 무슨 말인지를 몰랐어요.

이 세대가 아니고 오는 세대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해요. 이 세대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시간 지나고 오는 시간으로 이해한 거예요. 이 시간 지나고 오는 시간. 시간의 전후 순서를 이 시간 지나면 오는 세대 이렇게 본 거예요. 그러나 주님은 오는 시간도 어디에 속한다? 이 세대에 속해요. 그러니까 이 시간이 아무리 길어도 이거는 여전히 이 세대에 속해요. 이 곽, 박스에 속해요. 저주의 박스에 속한다고요. 저주의 박스. 주님께서 가신 것은 이 세대가 언어로서 해명되지 않고 납득되지 않는 것, 무덤에 뭐가 없다? 시신이 없어요. 이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빠져나간 겁니다. 빠져나가기 전에 먼저 십자가에서 삼일 있었어요. 삼일. 삼일 의미는 뭐냐 하면은 이겁니다. 삼일의 의미가 요나에 잘 나오거든요.

자, 요나의 물고기. 물고기 속에 요나가 있거든요. 그럼 물고기는 어디 안에 있어요 지금? 물고기는 깊은 바다에 있지요. 지금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뛰어든 게 아닙니다. 요나는 지금 죽기 위해서 뛰어든 거예요. 죽기 위해서 바다 속에 뛰어들어가면 인간은 무조건 죽어요. 아가미가 없기 때문에 죽습니다. 그런데 죽음 속에 특수한 죽음이 따로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죽음이 다가아니고 죽음 안에 진짜 리얼리티가 아니고 리얼, 실재하는 죽음이 따로 마련되어있어요. 그 속으로 요나가 들어간 겁니다. 요나는 이 속에 들어가서 바다 자체가 뭐라고요? 죽음이죠. 죽음 안에서 요나는 어떻게 돼요? 죽음 안에서 요나는 제대로 죽은 거죠. 제대로 죽었다는 것이 죽음 안에서 살아있는 방식이 제대로 죽은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은 이런 세대, 죽음의 세대 속에서 성도에게 부활의 영이 오게 되면 성령 오게 되면 제대로 죽은 거예요. 제대로. 자유입니다. 이게 자유에요.

육체의 죽음 이후에 오는 세대의 삶을 이 죽음 세대 속에 벌써부터 우리가 실현시키고 있어요 그것을. 죽음의 증인이죠. 단번에 죽으신 예수님의 죽음의 증인이죠. 그 죽음이 진리이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구원 받는 것이 진리가 아니고 예수님이 진리에요. 예수님에게 일어난 사건이 진리에요. 내가 만약에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다면 내가 뭐가 됩니까? 진리가 돼요. 그러면 아직까지 텍사스 전기톱에 모가지 안 날라간 거예요. 율법은 됐고 율법은 제치고가 아닙니다. 율법이란 저주 아래서 율법의 완성이라는 새로운 저주, 십자가라는 저주 안에서 우리는 생명을 얻으리라 예요. 십자가에서 생명을 얻는 거예요. 다른 사람 보기에는 뭡니까? 십자가 안에 있는 거예요. 다른 사람 보기에는 이미 우리가 죽은 거예요.

누가 갈라디아서 6장 한번 읽어보세요. 6장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아멘. 이걸 제가 잠깐 각색하겠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고래 외에는 자랑할 게 없나니 나는 고래로 인하여 세상에 대해서 내가 죽었고 세상은 내게 대해서 죽어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이 세상이 저주에 갇혀 있다를 설명하기 위해서 주께서 부활의 영을 주신 거예요. 성령을 주신 거예요. 세상에 갇혀있다. 하지만 우리는 맨날 세상 사람처럼 살고 싶죠. 나를 포장하고 꾸미고 싶고 나를 정제하고 싶고 나를 순수한 존재인 것처럼 남에게 티내고 싶지요. 주께서는 성령을 보내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맨날 장이수예요. 또 못살게 구네!! 왜 내 뜻대로 안 해주는 거야. 왜 내 뜻대로. 그래서 기껏 하는 것이 내 뜻대로 안 되는 이 아랫도리를 좀 잘라주세요. 그럼 윗도리는? 남겨줘야죠. 회개할라고. 아이고 참 요령을 부려요 요령을.

금식하면 용서됩니까? 십일조하면 용서가 되겠습니까? 교회 충성하고 봉사하고 선교회비 내면 다 용서가 되겠습니까? 맨날 통밥 굴리고 요령 부려요. 그냥 죽어라 인간아 그냥 죽어있어. 제대로 된 죽음 안에 죽어 있으면 되는데 자꾸 뭘 할라고 해. 왜 자꾸 뭘 할라고 하느냐? 그래야 남들이 나를 보고 신앙이라고 하는 거예요. 남들이 나를 신앙이라고 해줄 때 나는 신앙인 것이 확신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까 제가 뭐라고 했던가요? 이 세대는 아무리 언어로 설명해도 진리와 일치가 안돼요. 오는 세대. 설명되지 않은 오는 세대에 속해버리면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납득 못합니다. 이해 못합니다. 정상인 줄 아세요 그게. 그게 정상입니다. 다른 사람이 말합니다. 네가 행한 것, 네가 신앙생활 제대로 한 것, 네가 봉사한 것 내놔라. 이게 성도한테는 없어요. 왜 없느냐 하면은 이 세대에 대해서 오는 세대로 가려면 공백, 우리는 비어있는 게 되거든요. 공백. 빈자리에요. 공백에 여기 예수님 말씀이 오게 되는데 우리는 주님이 부르신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겁니다. 하나의 결과물이 돼요. 꽃이 있더라도 내가 꽃이라고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그냥 너는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너를 꽃이라 부를 때 너는 내게 다가와 하나의 의미가 되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의 시잖아요. 주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뭐냐?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부른게 아니고 예수님에게 의미가 되는 거예요. 오는 세대에. 오는 세대가 이 세대 다음에 오는게 아니고 이 세대 안에 오는 세대가 이미 담겨있는 식으로 성도를 출현시키는 겁니다. 그게 바로 부활의 영이에요.

고린도전서 15장 한번 보겠습니다. 15장 3절에 보면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10절에 보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내가 아니고 은혜다 이 말이죠. 이 세대에 이미 오는 세대가 여기 벌써 발생하고 있는 거예요. 생성되어있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래 하나 나갑니다. 공백이라는 말은요 더 이상 지킬 내가 없다는 뜻이에요. 나를 증명할 내가 없다는 말이에요.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죽음에 넘겼기 때문에. 김지하 시 곡은 김민기 곡 제목은 ‘금관의 예수’. 금으로 된 관을 쓰신 예수.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텅 빈 얼굴들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구름 저 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야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이렇게 되어있어요. 김지하 씨가 얼마 전에 죽었지만 몇 년 되었어요. 이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서 엄청 오해하고 있어요. 뭘 오해하고 있느냐 하면은 광주 사태를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여기 가사에 보면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인간이 무얼 찾아 헤매이겠어요. 무얼 찾아 헤매이겠습니까? 내가 어느 정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느냐 그걸 찾아 헤매이는 거예요 인간은. 문제는 언제부터 내가 이런 고질병이 생겼는지를 몰라요. 왜 나는 나만 챙기는지 그 병이, 이 고질병이 어디서 왔는지를 몰라요.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자기가 악마와 공모했다는 사실을 몰라요.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공모했어요. 하나님이 이 땅에 아들 보낸 거예요. 악마와 인간은 공모했지요. 이 세상은 누가 주인공이다? 인간이 주인공이라고 누가 배후에 누굴 파견했어요? 인간을 파견한 거예요. 그래서 배후에 악마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 땅에서 활동하신 거예요. 인간의 언어로 인간이 스스로 진리가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인간이 성경의 한 구절도 설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데 여기 가사에 보면 거절당한 손길들, 박정희 독재시대 때 사회적 약자 그런 거 이야기겠죠. 이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천국을 왜 찾아요 천국을. 어디 있을까 천국은? 누구 좋으라는 천국입니까? 자기 좋아라 천국이죠. 끝까지 인간은 십자가 자국을 해석을 불가능한 그 세대 안에 살고 십자가 자국을 해석 못하는 것은 자기 안에 악마가 같이 있다는 것을 자기가 몰라요. 알 수가 없어요.

자, 요나서 다시 한번 봅시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아버지와 공모해서 이 땅에서 하실 일을 예수님이 명확하게 알고 있어요. 땅속에 웅크리고 있거라. 왜냐 하면은 죄의 몸을 지녔기 때문에 동일하게 죄의 몸을 지닌 형편에 대해서 예수님이 먼저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거예요. 모든 인간은 이 죽음에서 못 벗어나는 거예요. 그러고 난 뒤에 요나가 빠져나왔잖아요. 요나가 빠져나오고 난 뒤에 12장 41절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세대 나오지요.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라고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 전에 먼저 예수님이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아가 어떤 식으로 온다는 것을 먼저 누구한테 보여줬어요? 요나의 일대기, 요나의 일생을 통해서 먼저 보여준 거예요. 먼저 보여줬습니다. 왜냐 하면은 그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무지 알지를 못했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점에서 신기하느냐 하면은 그 이스라엘 보기에 더 악하고 독하게 죄 지었다고 보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를 했잖아요. 그 회개를 그들이 뭘 알고 회개를 했느냐는 거예요. 뭘 알고 회개했느냐. 그들이 어떻게 해서 회개했는가? 그들이 회개할 만한 무슨 이유가 있었습니까? 니느웨 사람이 회개한 것을 이스라엘 사람이 해석을 못해냄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사람들은 회개 안 했음으로 드러나요.

어떤 사람이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여서 이 십자가를 자랑한다면 다른 사람이 그 사람에게 설명을 못하잖아요. 왜 그렇게 되어야 되는지를. 설명 못하는 그것을 가지고 회개 안 했음으로 판정이 나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날 성도가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내가 이미 죽어있고 이미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있다고 할 때 이 세상 사람들이 너는 어떻게 그걸 알았다는 그 질문 자체가 성립이 안 됩니다. 왜? 실제 세계는 현실 세계, 나 있음의 세계에서는 설명이 안 되기 때문에 그래요. 설명할 수가 없어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 상처를 설명 못 한다는 말은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우리를 구원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설명할 수 없는 힘. 부활의 영이 우리를 구원한 거예요. 구원하고 난 뒤의 설명은 뭐냐? 이거는 내가 구원받기 위한 설명이 아니고 이미 구원이 끝난 상태에 대해서 예수님이 어떤 일을 했는가 대해서의 설명이죠. 내가 나 구원받은 설명을 하는 게 아니고. 주께서 무슨 일을 하셨느냐의 대한 설명이죠. 주께서 무슨 일을 하셨는가. 따라서 이 노래에 어디 있느냐 천국은. 지금 이 노래 가사 전체가 저주 세대 속에 속한 사람으로서 나름대로의 하늘에 소망을 두고 예수님께 갈구하고 예수님께 부탁하는 그 모습이 금관의 예수라는 가사로 나와 있는 거예요. 김민기가 곡도 자기가 쓰고 노래도 자기가 불렀고. 가락은 슬프기 짝이 없어서 안 틀어줍니다. 여러분 알아서 들으세요. 서글퍼요. 장송곡도 아니고 슬퍼요.

자, 계속해서 남아 있는 문제는 이거예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주님께서는 해명도 안 되고 설명도 안 되고 납득도 안 되는데 왜 우리를 구원하느냐? 무슨 방식으로? 우리가 남한테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구원을 한다면 어떻게 그게 설명이 가능하겠느냐 하는 거죠. 아까 이 세대에 속한 사람은 악몽 속에 있다고 했죠. 악몽. 악몽은 특징이 뭐냐? 악몽은 쫓기는 거예요. 누구한테 쫓기는가? 악마로부터 후달립니다. 더더더더더 음주운전 측정하고 똑같아요. 더더더더더더. 계속 후달려요. 더 완벽해야지. 전교 1등? 전교 1등 했다고? 우리나라에 고등학교 3천 개야. 3천등 할래? 그런 엄마 있었어요. 계속해서 쫓기고 있어요. 계속 쫓기죠. 어디까지? 노골적인 것이 꿈속에서도 쫓깁니다. 꿈속에서. 더 완벽해야 되고 더 완전해야 되고 남보다 뛰어나야 되고 앞서야 되고 계속 후달리는 쪽으로 가지요. 후달린다는 말은 악마가 우리를 뭐로 간주하느냐? 계속해서 우리를 진정한 사람, 진정한 인간으로 이미 간주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하나의 개체로서 독립체로서. 너를 잃어버리거나 너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마귀가 계속해서. 이런 처지에 있기 때문에 쫓기는 인간들의 특징은 뭐냐? 납득이 되고 설명이 되는 쪽으로 계속해서 찾아다닙니다. 어느 목사 만나면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되는지. 어느 복음을 만나면 내가 납득이 되는지. 내가 구원받은 걸 납득을 할 수 있는지. 자꾸 내 구원에 내가 자꾸 설명을 하게 되면요 나는 사실과 진리가 일치가 되는 사람이 돼요. 나는 안 죽었어. 기어이 살아남아서 내 구원에 대해서 설명이 성립되는 그런 사람으로 독립적으로 나는 우뚝 서고 싶은 거예요.

그러나 주님의 뜻은 이렇습니다. 쫓기면서 완전하면서 수도원과 수녀원에서는 뭐합니까? 점점 더 자기 자신을 깨고 낮아지려고 하지요. 한번 적어볼게요. 너무 중요한 문장이라서. "원 없이 망가지고 아무리 망가져도 부활에 직면한 망가짐에 미치지 못한다." 스스로 자기를 망가트리고 자기를 타락으로 몰아넣고 자기를 살인 강도의 온갖 나쁜 짓을 해도 하나님 이 정도 망가지면 됐습니까? 이정도 죄인 되면 됐습니까? 해도 부활에 직면한 망가짐 앞에서는 그게 빛을 잃어요. 아무 짝도 소용없는 짓을 했다는 거예요. 이게 뭐냐? 바로 누가복음 24장에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가 누구와 직면했습니까? 몰랐어요. 24장 보면 동행하는 자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15절에 이유가 나옵니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절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그러니까 본인이 알고 있는 방식의 타락, 본인이 알고 있는 나의 망가짐 이거는 아무리 망가져봐도 본인이 어느 정도 망가진 지 본인이 알고있잖아요. 내가 확인되는 내가 나 자신을 확인되는 망가짐은 망가짐이 아니에요. 자기만 고생이에요. 사람들 교인들 중에 그런 사람 있다는데 내가 복음 알았으니까 헌금 안 한대요. 왜 헌금 안 하는데? 망가질라고. 목사님 기도 할 필요 없네요? 하나 둘 씩 망가져. 나 기도 안 합니다. 선교 회비 안 낼 거예요. 더 나아가면 교회도 안 나갈 거예요. 이렇게요? 저렇게요? 내가 아이디어 끄집어낼 수 있는 극한의 망가짐까지 가요. 그래서 스스로 자기를 타락으로 밀어 넣는다고 밀어넣는다고 해서 그것이 죄인입니까? 아니에요. 그러면 어디서 망가져야 되는가? 예수님께서 동행하지요. 예수님께서 동행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아느냐?

25절에 나옵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7절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주님께서 미련하다고 이렇게 책망하시고 다시 말해서 좀 어렵지만 잘 들어보세요. "너는 내가 눈을 가릴 거다" 이렇게 책망하는 게 아니고 "너는 미련해!" 라고 책망하는 거예요. 참 어렵지요. 이게 뭐냐 하면은 안 믿고 똑똑해도 그 똑똑을 주께서 인정을 안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계획은 이 말이 어려운데 간단하게 하면 이렇습니다. 일을 누가 하느냐 하면은 주님이 일을 하셔요. 왜? 인간은 죽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율법을 이루신 것은 주님이지 주님만이 말씀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하심의 권한자예요.

그런데 우리는 누구와 공모했어요? 마귀와 공모해서 자꾸 우리가 말씀을 지키려고 하는 거예요. 지키려고 하니까 자기가 부인되는 게 아니고 자기가 망가지고 타락을 해도 본인이 자기 타락한걸 본인이 조종하고 있어요. 본인이 그런 식으로 극한 죄인 되어서 십자가 피 믿으면 구원받겠다 본인이 자기 스케줄을 하고 있다니까요. 아주 요령을 부려도 그렇게 부린다고요. 어떤 영화에 보면 이렇습니다. 어떤 여자가 남자를 스토킹해요. 여자가 남자를 지독한 스토킹을 하는데 그 남자의 취미입니다. 그런데 여자의 취미가 뭐냐 하면은 자기를 스토킹 하는 스토커를 스토킹 하는 게 취미예요. 인간은 자기를 구원하는 게 취미예요. 인생의 보람이고. 그걸 누가 스토킹 했습니까? 모세와 선지자가 스토킹 하고 있었어요 그동안 꾸준하게. 바보에요 바보. 다시 말해서 그동안 말씀으로 할 때 그 말씀 내용이 뭐냐? 예수님 죽으시고 부활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말씀은 누가 이룬다? 인간이 이룬다? 주님이 알아서 이룬다? 주님이 알아서 이룬다 를 그렇게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미련해가지고 이걸 모르는 거예요. 알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31절 누가 한번 읽어보세요.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주께서 처음부터 동행할 때 목적이 있었어요. 첫째는 뭐냐? 그들로 하여금 눈을 어둡게 함으로서 어떤 효과를 준다? 모세와 선지자로서 이미 이야기를 충분히 했다는 것. 예수님이 하나님과 공모해서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 게으르지 않고 충분히 했다는 거예요. 그러고 난 뒤에 책망하고 난 뒤에 눈을 떠버리면 어떤 효과가 있느냐 하면은 앞으로도 마찬가지고 지금껏 주께서 하신 모든 일이 내가 한 것이 없고 일방적으로 주님이 홀로 하셨다는 뭐가 나오겠어요? 감사가 나오겠지요. 감사가. 그래서 아까 광야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잘못한 것은 뭐가 없다 했습니까? 왜 원망했습니까? 감사가 없기 때문에. 왜 감사가 없지요? 주인공이 누구이기 때문에? 내가 살기 위해서 하나님 믿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내가 약속의 땅 한다니까 본인을 버릴 수가 없는 거예요. 본인 자신을. 말씀이 살아야 되는데 내가 살려고 한 거예요. 주님은 말씀이 살기 위해서 너를 채택했다고 보고 우리는 내가 말씀 지키고 믿고 지킴으로 내가 구원받으면 되잖아요 이런 식으로 나온다고요. 무덤에 시체 없는 이유도 모르면서.

그래서 그다음 32절에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이렇게 되어있어요. 또 뜨겁지 아니한가 이 대목가지고 또 교회 여러 군데 난로 피워가지고 말씀 보면서 그게 팔 다리가 뜨겁지. 우리 속 마음이 뜨겁진 않잖아요. 더워 막 더워. 이상하게 덥네. 난로 피워서 더운데 마음은 전혀 안 뜨거워요. 마음이 뜨겁다는 말은 이게 공백 상태의 우리 마음을 말씀 자체가 불을 질렀다는 뜻이에요. 그걸 이제부터 설명합니다.

자, 부활의 영이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이 고래 뱃속, 여기서 어떻게 우리를 빼내주느냐. 이 세대에 속한 우리 현실이 전부인데 어떻게 실제 세계로 리얼 세계로 어떻게 빠져나오는가. 쉽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정말 망가진 것은 내가 뭐가 망가진 것도 모른다는 게 망가짐이에요. 내가 망가졌다는 망가진 것도 아니에요. 근처도 안 갔어요. 눈이 어두워진 게 망가진 거죠. 그럼 이걸 어떻게 하는가. 쓰다듦. 다른 말로 하면 애무하는 거예요. 쓰다듦. 애무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아무것도 찾지 않는 것. 아무것도 찾지 않는 거예요. 그냥 등을 쓰다듬지요. 쓰다듬고 돈 내라 이렇게 합니까? 아무것도 내가 찾지도 않고 내 쪽에서 아무것도 내가 가질 수 없는 능력, 이것이 바로 부활의 능력입니다.

부활의 능력을 내가 소지할 수가 없어요. 주께서 나한테 요구하지도 않고 주께서 나한테 뭘 주지도 않아요. 그냥 쓰다듬어줘요. 애무해요. 애무란 나로 하여금 유한의 실패를 즐거워하는 것. 이게 애무에요. 늘 실패하는 즐거움을 줘요. 늘 실패하는 즐거움. 그러니까 이 쓰다듦, 애무 이렇게 했지만 성경에서는 뭐라고 했느냐 입김으로 해요. 입김. 마음 같으면 오늘 제목을 이걸로 하고 싶어요. 호~. 아이가 엄마한테 아파! 엄마가 어디 아파? 여기 아파. 후~~. 호~ 해주잖아요. 입김이 뭐냐? 그게 후하 히브리어. 이게 성령의 바람이에요. 소유 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호 해주는 거예요. 왜? 우리를 개무시하니까. 우리의 실력과 능력을 개무시해줘요. 쓰다듬어주니까. 뭐를 뺏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아요. 그냥 쓰다듬어줘요. 아이고 이 불쌍한 것. 불쌍한 것. 엄마손은 약속이다. 난닝구 올려봐라. 아랫배 엄마 손은 약손이다 약손이다. 잘 낫지요. 왜? 벌써 잠 들었기 때문에. 잠 자면 아픈 것도 모르죠. 엄마손은 약손이다. 외부에서 내부를 그냥 몽땅 용납해주는 거예요. 우리 속에 욕망이 있더라도 사랑으로 잠재워주는 거예요. 이게 애무입니다. 이게 입김이에요. 호~ 해주는 거예요. 그게 바로 성령의 바람이죠. 성령은 이미 우리에게 주도권을 갖고 있어요. 성령이 주체에요. 우리가 주체가 아니고 성령이 주체에요. 대구강의에서도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12장 이야기, 인자를 거역한자는 용서를 받되 성령을 거역한 사람은 호~ 해줌이 없는 사람은 쓰다듦이 없는 사람은 이 세대뿐만 아니고 오는 세대에서도 네가 용서 받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어떻게 해서 구원을 받습니까 질문하지 마세요. 인간은 어떻게 해서 구원을 못 받습니까? 성령의 쓰다듦 성령의 입김이 없어서 그래요.

니고데모가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다시 거듭날 수 있습니까?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된다. 니고데모가 그걸 알아들을 턱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 주님이 하시는 말씀이 너는 가만 있어도 돼. 가만히 있어 내가 다 해줄게. 아직까지 안 죽은 장로님이 계셔요. 남진 아직 안 죽었어요. 가만히 있어 내가 다 해줄게. 내가 내려왔다가 올라가면 되잖아. 내가. 내가 내려가서 올라갈 때 호~ 해주면 되잖아. 무 금관의 예수고 곤욕의 세계 어디 있을까 고생 다하지 뭐. 이 세상 자체가 악몽인데 아까 쫓긴다는 말 했지요. 늘 쫓기는 게 뭡니까? 자기가 자기를 살릴려고 도피하고 있는 거예요. 어딜 가면 날 살릴까? 어딜 가면 안전빵일까? 어딜 가면 내가 고정 수입이 많을까? 늘 쫓기고 또 쫓기는 거예요. 학생들 보세요. 학생들 입시 앞두고 뭐 합니까? 성적이 보니까 7등급 나왔어. 안돼!! 하고 보니까 꿈이야. 막 답안지 밀려 써서 엉망이야. 꿈이에요. 아 꿈이구나. 네가 꿈이다! 그게 꿈이야 그게. 그게 마귀의 공모와 함께 있는 꿈이에요. 악마가 그걸 계속해서 그 죽음의 세계 바깥으로 못보게 하는 거예요. 이게 죽음의 세계라는 것을 못보게 만드는 거예요. 교회 다니면 천당 갈 수 있다 자꾸 그걸 강요하는 거예요. 네가 선택하기 나름이고 네가 순서 정하면 그만이야. 순서 정해서 네 신앙생활 알아서 하란 말이야. 부처 선택하지 말고 예수 선택하면 구원받는다고요.

끝으로 히브리서 한번 봅시다. 히브리서 11장 24절에서 25절. 이거 안양강의에서 한 거 같은데 제가 히브리서 11장을 보자고 하는 것은 주님께서 실습으로 자기 백성들을 어떤 식으로 구원했는가를 보자는 겁니다. 입김으로 쓰다듬음으로 이렇게 한다는데 그 하는 과정 속에서 24절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믿음으로'를 '예수님으로' 바꾸면 돼요. 예수님으로. 믿음은 설명할 수 없으니까. 지금 내가 믿음 가지면 내가 믿었다는 내가 설명이 되잖아요. 히브리서 11장은 그게 아니에요. 설명할 수 없는 거예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이에요. 설명할 수 없는 리얼리티 세계가 아니고 리얼의 세계, 현실이 아니고 실제 세계에 대해서 언급하는 겁니다. 그걸 대구강의에서는 외래종이라고 했지요. 바깥에서 오는 거예요. 바깥에서.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걸 모세가 더 좋아했습니까? 더 좋아했어요? 안 좋아했지요. 안 좋아했어요. 모세가 얼마나 하나님께 원망했다고요.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해가지고 이 골치 아픈 백성들을 내가 건사해야 됩니까?! 이렇게 대들었다고요. 그래서 화 나가지고 반석 내려찍어가지고 자기는 약속의 땅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게 모세였습니다. 고난 받기를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따라서 여기 모세는 뭐냐? 예수님에 의해서 재해석된 모세가 돼요. 예수님에 의해서 재해석된 모세. 모세의 자아가 본인이 본인을 어떻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 모세의 자아가 어떻든 간에 주님께서 모세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단정 짓고 해석한 거예요. "너는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도리어 거절하고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이 솜씨는 주님의 솜씨지 모세의 솜씨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 말씀이 뭐냐? 모세가 이렇게 했다 가 아니라 말씀이 모세를 이렇게 이끌었다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규정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똑같은 법칙이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어질 겁니다. 그래서 그걸 어떻게 아느냐? 사후적이에요. 일 끝난 뒤에 돌아보는 겁니다. 시간 순서 바꾸기예요. 나중 사건이 지난 사건을 설명하는 거예요. 지난 사건을. 새 세대에 속한 것이 중심이 십자가라면 이 세대는 바로 십자가의 영, 성령이 활동하는 십자가로서 오늘날 우리의 이 세대의 인간들이 있는 이 세대에 모든 활동을 십자가의 능력으로 규정하고 설명하고 이끄시고 인도하고 그리고 단정하고 규정을 내리시는 겁니다. "착하고 훌륭한 종아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구나", "제가 언제요?",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입 다물어", "네가 믿음이 좋아서 나의 부활을 믿었구나",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네가 부활 만나고 난 뒤에 엠마오로 돌아가지 않고 도로 예루살렘에 가가지고 뭐했습니까? 예수님 살아나셨다 이야기했지요. 본인이 했어요? 주님이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주께서 만들었지요. 일 끝나고 난 뒤에 사후적으로. 소급해서 보니까 모든 게 주께서 그렇게 하게 하신 거예요.

똑같은 처지에 입장에 놓여 있을 때 저나 여러분이나 오는 세대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 지난 세대. 이 세대가 아니고. 오는 세대. 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다만 이 세대에 사는 게 힘들다는 거예요. 육신이 있으니까. 힘들다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서 힘든 거고요 하지만 사도 바울처럼 자기의 소원이 뭐였습니까? 자기 죽기를 소원했잖아요. 그래서 주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지뢰가 있는 지뢰밭에 보내버린 겁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마다 그 현장에 있는 지뢰가 어떻게 됩니까? 펑! 펑! 터지겠지요. 똑같은 일을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시킵니다. 여러분의 직장과 모든 가정에서 이 복음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폭탄을 터트리고 텍사스 전기톱을 작동시킨다는 사실을 그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지뢰밭으로 보내십니다. 힘들지요. 호~~~. 쓰다듬어주시고 다시 은혜를 주시고 위로해주시고 그게 바로 성령입니다. 부활의 영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다 하셨는데 말로만 그렇게 했는데 말씀과 우리 실체를 연관시켜서 요나처럼 그렇게 부리고 사용하시는 그 친절하신 하나님의 친절하심이 우리에게 사랑으로 느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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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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