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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수요설교(240710)요약 말라기 2장 4-6절(거짓 동행)자유게시판말라기

수요설교(240710)요약 말라기 2장 4-6절(거짓 동행)

어제 한 수요 설교를 요약해 드리면, 말라기로 끝이 난다는 것, 그 말라기로 끝이 날 때에 주께서 제시한 것은 레위 언약이라는 말을 했어요. 레위 언약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말라기 외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세하고 언약을 맺었지, 레위하고 언약을 맺은 적이 없어요. 그래서 모세하고 했으면 모세언약이라고 해야 되는데, 왜 레위언약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이스라엘 내부에 언약이 위배된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레위언약이 나온 겁니다. 시내산에 가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을 받았다. 어디서? 시내산에서. 시내산에서 언약을 받았는데, 그때 모세가 받았기 때문에 모세언약이라고 된 거예요. 그런데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서 율법 받을 때 끄떡없었어요. 40일 동안 있었지만 아무 하자 없이 무사히 땅으로 귀환했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사람인데 40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어떻게 살 수가 있는가? 사람인데...사흘만 굶어도 못사는데, 모세는 그걸 이겨냈다 이 말이죠. 뭐, 이겨낸 게 아니겠죠. 거기서 모세는 무엇과 함께 있었느냐 하면, 율법의 영광과 같이 있었습니다. 그 영광이 모세의 얼굴까지 번졌죠. 모세 자신은 몰랐죠.

산에 올라갔을 때도 모세, 내려올 때도 모세, 그러니까 헤어질 때 편하게 만났던 사이, 산에서 내려올 때도 편하게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뭔가 달라졌단 말이죠. 뭐가 달라졌냐 하면은 모세가 율법의 영광과 같이 있었다 했으니까, 이건 율법 완성의 상태에 모세가 들어갔던 겁니다. 율법 완성의 상태에..

그런데 레위 언약은 뭐냐? 레위 언약은 모세 율법이 백성들과 사달난 거, 깨어진 거예요. 율법의 영광과 같이 있으면, 모세처럼 40일 동안 아무것도 안마시고, 안 먹어도 살 수가 있게 돼있어요. 율법이 완성되면...몰랐죠? 율법이 완성되면 마트 같은 게 필요 없어요. 안 먹어도 되니까. 이케아고 뭐고 필요 없어요. 모세는 그냥 율법의 영광 그 자체로 충분했던 겁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 ‘동행’이라는 문제에서, 동행하는 이 모세의 입장에서는 내가 어떻게 되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동행하면 이건 생각하지도 못하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누구와 동행하느냐, 무엇과 동행하느냐에 따라서 거기에 귀속되면 되고, 따라가면 되지 굳이 나는 율법 지켜서 뭘 얻고, 뭐 지켜서, 예수 믿어서 뭘 얻고 이럴 필요가 없단 말이죠.

이걸 가지고 장(場), field 라고 하죠. 어떤 영역, 장, 개인의 존재가 아니고 구성된 특별한 공간 같은 것, 거기에 모세가 있었던 겁니다. 그런 데에 비해서 모세가 떠나고 난 뒤에 나머지 사람들, 모세 외의 모든 사람들은 율법의 영광에서 지금 소외되어 있죠. 소외되어 있을 때에,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뭐냐, 그냥 ’산다’가 아닙니다.

아니고, 율법의 완성이 영광이라면, 산 밑에 있는 이 사람들에게는 뭐냐 하면 ‘저주’가 되는 겁니다. 저주. 그러면 언약이 뭘 제공한다? 저주를 제공한다는 것을 모세가 들고 온 율법 안에 그 내용이 담겨있어요. 왜냐하면 율법을 못 지키면 필히 뭐가 주어지게 되어 있어요? 저주가 주어지게 되어 있어요. 이스라엘 역사는 말라기에서 이제는 막장입니다.

네, 끝장이 났어요. 끝장날 때 이유가 있어야죠. 그냥 하나님께서 시작할 때 멋지게 시작했으면, 그냥 뭐 쉬쉬하면서 끝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뭔가 이유가 있어야 된단 말이죠. 그 이유로 들이대는 것이 바로 레위 언약이었어요. 레위 언약 안에 뭐가 들어있다? 저주가 들어 있었던 겁니다. 레위 언약 안에 저주가 들어 있어요.

그래서 모세는 단독적으로 시내산에서 살았지만, 밑에 있는 백성들에게는 집단적으로 레위 언약이 주어지는 겁니다. 레위 언약이 주어지면서 제대로 레위 언약의 취지를 못 할 경우 너희들에게는 저주가 주어진다. 그 첫 번째 경우가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부터 시작이 되는 거예요.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그 때 3천명이 죽게 되는데, 거기에 뛰어든 자들이 레위 지파였어요. 레위지파가 칼 차고 모세 편에 섰던 겁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왜냐 하면, 그 전에 이미 레위 지파는 저주받기로, 자기 땅이 없이 흩어지기로 창세기에 야곱의 예언에 의해서 이미 저주받죠. 저주 받는 지파의 입장에서 자기와 같은 지파에 속하는 모세의 이 상황을 그들은 앞 뒤 보지 않고 전적으로 거기에다가 자기 몸을 던집니다. 우리의 살 길은 이거밖에 없다.

그런데 모세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이 저주가 가져오는 율법의 위반이 가져온 것에 대해서 불만 있는 사람은 죽여라.’ 라는 지시에 레위 지파가 주저하지 않고 나섰습니다. 자기는 뭐 어차피 저주받은 지파이기 때문에 거침없이 나섰어요. 그런데 그걸 가지고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헌신’했다고 나옵니다.

(출32:29-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헌신이 뭐예요? 모든 걸 다 드렸다. 다시 말해서 모세와 함께 동행하기로 작정을 한 겁니다. 그러면 이 레위 언약이 뭐로 구성되어 있는가? 내부적으로 이렇게 되어 있어요.

율법에 의해서 이 전체를 저주를 퍼 붓되, 이 저주가 레위 언약이 기본적으로 수립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레위 언약에 레위 지파, 레위 지파에 뭐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제사장! 제사장의 역할에 그들은 모든 것을 헌신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가 저주 받아 마땅한데, 마땅하기에 이제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기대하거나 희망을 갖지 않고, 제사장이 하는 제사에 대해서 거기에다가 모든 걸 거는 겁니다.

그러면 이 제사라 하는 것은 아시다시피 제물을 바침으로써 죄 사함 하는 그러한 효과를 주는 거예요. 그 효과가 뭐냐 하면, 레위 지파가 기업이 없거든요. 땅이 없어요. 자기 고유의, 집단적으로 모이는 땅이 없어요, 흩어져 있으니까. 레위 지파는 어떤 지파냐? ‘붕 떴다.’ 어디에서? 지면에서 붕 뜬 지파에요.

이스라엘 12지파인데, 13지파가 된 것은 레위 지파가 붕 떠서 그래요. 붕 떴는데, 어느 쪽으로 붕 떴느냐? 하나님 앞에 근접하는 쪽으로 붕 떴어요. 그러면 하나님께 근접한다는 표시가 뭐냐 하면, 언약궤 주변을 포진하는 겁니다. 왜냐 하면, 저주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궤에 가까이 가는 순간, 그들은 다 죽습니다.

용서 하고, 죽지 않는 방법은 저주가 그들에게 직접 다이렉트로 오지 않도록 중간에서 차단해주는 지파의 역할 때문에 그들은 저주받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레위 지파가 얼마나 중요해요? 레위 지파가 없다면, 그들 열 두 지파는 몽땅 다 죽어야 됩니다. 레위 지파가 손잡고 언약궤 주위를 둘러쌌지요. 붕 뜬 지파예요.

붕 뜬 지파라 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거예요. 그것을 민수기 3장에 보면 ‘레위 지파는 내 것이라’ 고 하나님께서 이야기했어요.(민3:12-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레위 지파는 내 것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이에요? 다른 지파는 내 것이 아니다.

레위 지파는 내 것이다. 이걸 말라기에서는 ‘레위 지파는 영원하다. 그 안에만 생명과 평온이 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말2:5-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악이라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그럼 다른 지파의 내부의 모순은 뭐냐? 산다는 것에 두 개의 개념이 있어요. 떡 먹고 살 것인가? 제사로 살 것인가? 두 개의 ‘산다’가 등장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내부에. 이 두 개의 ‘산다’가 병존한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되게 모순되게 보여요.

뭐냐 하면, 레위 지파는 자기 땅이 없기 때문에 다른 지파가 십일조를 안내면 그들이 못 먹고 삽니다. 먹을 게 없어요. 그런데 다른 지파 입장에서는 레위 지파 없어도 밥은 먹고 살아요. 밥은 먹고 사는데, 그게 저주에요. 산다는 그 자체가, 열심히 밥 퍼먹고, 라면 끓여먹는 그게 저주에요.

왜냐 하면, 어서 무슨 지파가 돼야 돼요? 어서 레위 지파처럼 붕 떠야 돼요. 붕 떠야 된다고요. ‘그냥 있는 양식 가지고 살지.’ 이래 가지고는 레위 지파가 존재하는 이유가 없다니까요. 우린 벗어나야 돼요. 무엇에 의존해서.. 이게 동행이란 말이죠, 동행. 어제는 안했습니다마는, 동행이라는 말은 이런 뜻이에요. 소진되는 인간.

옛날에 초코렛 선전에 그런 게 있었어요. 가나 초코렛인가? 그 선전에 쪼매난 아가씨가 덩치 큰 남자 품에 안겼다가 배시시 웃으면서 뭘 하나 들고 나오죠. 달콤하다 이 말이죠. 사랑처럼 달콤한 게 가나 초코렛입니다. 이처럼 떡으로 사는, 양식 가지고 사는 인간이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배시시 웃을 수밖에 없는, 언약과 동행하게 해주신 것에 감사하는 거예요. 언약과의 동행.

그러니까 이 동행이 되려면 뭘 극복해야 돼요? 저주를 극복하고 저주 안에 있는 복, 저주와 복이 언약 안에 같이 장착되어 있으니까. 그 저주받을 대상이 복 받을 대상으로 전환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배시시 웃는 거죠. 그래야 되는데, 그렇게 동행해야 돼요. 동행한다는 것은 내가 소진되는 거예요. 내가 사라지는 거예요, 에녹처럼.

그래서 어제 그랬죠. 에녹은 사람하고 동행하지 않는다고요. 사람하고는 배시시할 게 없어요. 사람하고는 역정만 날 뿐이에요. 사람하고 산다는 것은 각자 자기 자존심이 있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거든요. 그런데, 나를 사라지게 만들어요. 마법처럼. 내가 있는데, 주님 안에 있으니까 내가 없어져요. 손가락 있죠? (감추면서)손가락 없어요~ 마술처럼. 없어져도 상관없지요, 없어져도.

세례요한도 그런 이야기 했어요. 세례요한은 ‘나는 쇠해도 상관없다. 내 제자들 주님한테 다 가라 해. 주님한테 간다면 내 제자 없어도 괜찮아.’다시 말해서 동행이라는 것은 자기 것과 동행하지 않는 것, 자기 것과. 자기 것과 동행했던 12지파가 레위 언약에 의해서 바로 레위 지파와 동행하는 그러한 것을 하나님께서는 모세 언약의 진수로서, 핵심으로서 드러내는데, 그 드러내는데 소모되는 기간이 이스라엘 역사, 멸망하는 이스라엘 역사 전체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내내 보여주면서 그들이 얼마나 세상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아주 개무시 했는가를 다 보여주죠. 이스라엘 나라 멸망하고 맙니다. 그러니까 비가 한 5밀리, 10밀리 왔을 때는 괜찮았어요. 50밀리 오니까 앞이 하나도 안보이듯이,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순간에는 오직 이방나라의 힘과, 그 힘의 원천이 되었던 이방나라의 복 주는, 저주가 없는, 바치는 대로 복만 주겠다고 약속하는 그 이방 종교에 완전히 그 저주의 빗줄기가 너무 세차게 내려서 앞이 아무 것도 안보였던 거예요.

심지어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이 제사장 되시고, 제물 되시고, 레위 언약을 성취함으로 그 다음부터는 나랑 동행하는 사람을 모집할 수 있는 근거를 주님께서 말라기에 의해서 마련해 주시죠. 성령이 오시게 되면, 사는 게 살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죠. 내가 존재하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이 땅에서 세월 보내는 것, 연세가 많아지는 게 이건 죽음이지 사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와 동행하지 않는다는 뜻이죠. 자기와 같이 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마치 모세가 율법의 영광과 함께 있는 것처럼, 율법에 있는 저주와 복의 작용이 바로 오늘날 성도에게 그대로 개입되는, 주입되는 쪽으로 주께서 이 언약을 완성시켜 주시는 겁니다.

어제는 ‘동행’까지만 했어요. 시간 관계상 다 못하고...동행은 자기와 같이 하지 않는다. 왜? 자기 가치보다도 월등한 가치를 발견한 이상은 나에 대해서 내 것을 지킨다든지, 내가 내 것을 사수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퐁당’ 그냥 그 언약적 소용돌이에 주저 없이 뛰어들게 되면, 그게 바로 에녹이 동행했던 동행입니다.

어제는 안했는데 오늘 추가 한다면, 과연 인간적인 자기 의지와 능력으로 언약 속에 모든 걸 버리고 뛰어들 수 있느냐? 안되지요. 뛰어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말씀의 저주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내가 하는 모든 것을 가치 없게 만들어요. 가치가 없게 만들어요. 실컷 성공했는데 시시해. 그래서 뭐? 그래서 뭐? 별로 흥미가 없어요.

그렇게 해서 그 배후에 주께서 동행하고 있다는 것. 내 인생은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이끄시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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