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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10강-예레미야 23장 33~36절(사실과 진실의 차이)240707-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예레미야

110강-예레미야 23장 33~36절(사실과 진실의 차이)240707-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23장 33~36절입니다. 구약성경 1078페이지입니다.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하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에게나 제사장에게나 백성에게는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에 벌하리라 하셨다 하고, 너는 또 말 하기를 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하고,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사시는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씀이니라 하고”

사람들이 궁금하겠지요. ‘선지자님, 하나님의 확실하고 딱 부러지는 말씀이 뭡니까?’ 그렇게 질문을 하고 싶어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선지자의 답변은 한결같이 아주 단답으로 말 해줘요. “네가 사는 게 저주다. 너는 지금 저주 안에서, 저주를 뿜어내면서, 저주를 모아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쁘게 살아서 벌 받는 게 아니고, 사는 것 자체가 나쁜 짓이고 벌 이다”

이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설교 끝. 문제는 이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왜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엄중한 결론에 대해서 순순히 그걸 받지 못하고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질문하고 답변을 얻어서 뭘 어떻게 해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존재하는 그 자체가 답변이에요.

답변인데, 어떤 식의 답변이냐 하면,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이 살아가면서, 자기는 살고 있다고 우기는 이 현상, 이게 하나님 보시기에 “네가 참 힘들구나. 너는 살면 살수록 더욱더 저주를 자처하고 있구나”를 선지자를 통해서 그런 식으로 답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답변하느냐 하면, 어느 인간도 ‘나 안 살래. 나 그만 살래’라고 먼저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 살아야 해’라는 것이 우리 내부에 우리 욕망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그런 명령과 지시를 끊임없이 내뱉거든요. 따라서 ‘나는 살아야 해’가 기준이 되니까, 내가 사는데 방해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계속 따지게 되죠. 내가 사는데 방해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 예수님의 존재입니다. 따라서 내가 사는 이것이 우선적이라면 우리는 그다음부터는 예수님이고, 하나님이고, 찾지 않는 것이 처음에 우리가 설정한 내 확답에 맞는 거예요.

그게 합당한 자연적인 논리이고 절차입니다. 나부터 살겠다는데, 하나님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아무 소용 없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본문에 근거해서 이렇게 하십니다. “내가 이 약속의 땅에서 너희를 옛날 출애굽 이전에 이방 나라에 포로 잡힌 그때로 내가 옮겨줄게” 옮겨놓고 보면 내가 그 약속의 땅 이라는 거,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과 함께 살 형편이 못 된다는 거, 그런 입장이 못 된다는 것을 네가 하나님과 헤어지고 난 뒤에 비로소 깨닫게 될 거란 말입니다.

‘너는 하나님과 함께 있어도 네가 중요하잖아. 그러니까 너의 소원대로 해줄게. 하나님 없는 곳에서 한번 살아가 봐’ 지옥입니다. 하나님 안 계신 곳에서 한번 살아봐야, ‘아, 이곳이 나에게 딱 맞네’라고 여러분이 그렇게 나올 거예요? 택한 백성 같으면 그렇게 나오는 것이 아니고, 미쳤어. 우리가 미쳤어. 왜 하나님이 함께 해줄 때를, 그 귀한 때를 왜 우리는 그렇게 무시했는가.

나는 나 사는 것에 급급해서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귀한 상황인 것을 왜 진작에 그것을 몰랐는가.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고맙게도 예레미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예레미야를 통해서 약속의 땅에서 추방되도록 만들어요. 추방되고 난 뒤에 예레미야의 모든 말씀이 새록새록, 새로운 입장에서 납득이 될 수 있도록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신약에서 우리에게 허락했습니다.

그러면 주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명확해졌지요. ‘나는 예수님과 함께 삽니다’라는 말은 믿지 마세요. 그건 헛소리입니다. ‘왜 나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그토록 싫어했는가?’라는 식으로 물음이 바뀌는 거예요. 질문 자체가 바뀌면, ‘아, 저분은 지금 주님과 함께 살고 있구나. 대단해요’

정말 내 천성과 본성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는 본성을 내가 지금 지니고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 그게 선지자 안목입니다. 대단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한 예를 들면, 며칠 전에 나온 뉴스인데요. 프랑스에서 로카마두르라는 지역에 절벽이 있는데, 그 절벽 밑에서 10미터 위쪽에 ‘뒤랑달(Durandal)’이라는 칼이 하나 꽂혀있었어요.

몇 년 동안? 1300년 동안. 영국에 엑스칼리버(Excalibur)라는 칼이 있는데, 그건 한번 꼽아 놓으면 뽑히지 않는 칼이에요. 그런데 이걸 뽑는 자가 영국을 통일한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그 칼이 엑스칼리버예요. 그리고 프랑스에 비슷한 칼이 뒤랑달이에요. 1300년 동안, 그 칼은 녹슨 채로 아무리 뽑아도 뽑히지 않아요. 그런데 얼마 전에 그 칼이 없어졌어요. 뽑혔어요.

그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실망했는지. 그 칼을 보려고 관광객들이 밀려왔는데 칼이 없어져 버렸으니. 도둑놈이 가져갔겠죠. 칼이 없어졌으니, 마을에 관광객들이 안 오면 수입이 줄어들지요. 그래서 프랑스 당국이 발표했어요. ‘실은 그건 가짜 복제품이고, 진짜는 따로 있습니다’라고. 그렇다 해도 딱히 위로가 안 돼요. 칼은 거기 꽂혀있어야 하니까.

그걸 보면서 생각한 것은, 왜 사람들은 내가 좋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 왜 이런 현상이 교회 나와도 안 나와도, 왜 살아있는 동안에 그것이 멈추지를 않느냐는 겁니다. 신학교 가서 목사 되면 멈출까. 안 멈춥니다. 주님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주님 혼자 만나는 것보다 사람을 수백 명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하는데. 인간 만나는 것을 더 좋아해요.

그 이유가 뭐냐. 칼이, 내가 스스로 뽑을 수 없는 칼이, 기존 인간세계에 꼽혀서,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하나의 요소로써, 우리는 거기에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서, 그 영양물을 섭취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신자요, 겉으로는 교인인데, 이 예레미야에게 우리는 뿌리째 우리는 질문하고 욕이나 얻어먹는, 그야말로 하나님과 동행할 자격도 없는, 동행하고 싶지도 않은 그러한 씨앗을, 그런 DNA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선지자의 문제는 뭐냐. 이걸 어떻게 뽑아서 천국에 꽂아 넣는 작업을 주께서 하시는가 하는 그겁니다. 그건 뭐 선지자가 해야죠. 그러면 선지자가 어떻게 하는가. 열왕기하 8장 4절에 이런 말씀 나옵니다. 1절에 먼저 보면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준 여인에게 이르되” 그게 수넴 여인이거든요, “너는 일어나서 네 권속과 함께 거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명하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그래서 여인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거든요.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 권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의 땅에 칠년을 우거하다가, 칠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돌아와서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그리고 4절에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씀하며 가로되 너는 엘리사의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고하라 하니”

그러니까 왕이 게하시와 한 이야기가 뭐냐 하면 이 수넴 여인이 떠나면서 남겼던 전토를 돌려주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게 예레미야에도 나와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약속의 땅을 떠나야 해요. 왜? 우리는 약속의 땅에 살 자격조차도 안 되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서 이야기한 것은 일단 떠나고 다시 오라는 명령을 내려요.

떠나고 난 뒤에 다시 오라. 쉽게 안 떠나겠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미리, 이 세상에 하나님이 어떤 재앙을 내린다는 사실을 자기 택한 백성, 다시 돌아올 백성들에게 알려줍니다. 누가? 선지자가 그렇게 알려줍니다. 그러니까 자리를 비워라. 네가 ‘이거는 내 자리다. 나는 이거 아니면 죽는다’라고 하지 말고, 일단 자리를 비워놓고 네가 내 자리라고 여겼던 그 자리에서 어떤 흉악하고 흉측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네가 선지자의 말씀에 입각해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방금 이야기한 것이 뭐냐 하면, 말씀을 가지고 내가 살던 이 고향, 내가 살던 이 나라를 새롭게 해석하고 이해하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 어떻게 구원받아야 하느냐고, 자꾸 내 생각 하지 말고 일단 너는 비워놓고, 네가 있던 그 자리에서 벌어지는 비 복음적이고, 악마적이고, 너무나 세속적인 일에 대해서 네가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관심을 갖는다는 그것이 뭐냐 하면,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어떤 식으로 고난과 수난을 받았는지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왜 나에게 욕 안 하고 왜 예수님에게 욕을 하지?’라고 생각하면 지금 바로 네가 너를 좋게 보는 거예요. 내가 살다 보니 이 세상이 좋아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내 땅에 왔을 때, 예수님은 모든 밉상을 다 받았어요.

그러면 예수님과 나의 차이가 뭐냐. 그 차이를 성경 해석을 통해서 발견해야 한다는 그 말입니다. 내가 괜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누가복음 2장 11절에도 나옵니다. 천사가 미리 그걸 알고 있어요. 천사가. 그래서 성경은 항상 택한 백성을 자리 이동을 시키는데, 천사도 그거에 한 기능을 합니다.

주의 천사가 밤에 양을 치는 목자에게 두루 비쳤다는 이 대목을 보게 되면, 제가 예루살렘에 가서 그 들판을 실제로 보면서, 마치 들판 속에서 두루 비침을 보는 것 같았던 그런 생각이 나네요. 목자가 보이는 거 같고, 양 떼가 거기 있는 거 같아요. 물론 지금은 그 동네에 교회 예배당이 세워졌어요. 천사가 거기서 소식을 전합니다. 11~12절에,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그리고 14절에 보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어려운 단어가 동원됩니다.

진실과 사실의 충돌. 세상에서는 진실이냐, 사실이냐, 다 그게 그거라고 하죠. 인간에게는 똑같지만, 하나님에게는 진리, 진실과 사실을 예수님을 보내셔서 둘을 구분해 주세요. 사실이 뭐냐. 사실이라는 것은 내가 여기 있음을 전제로 해서, 내가 여기 있음을 유지하면서 생각하는 현실은 사실이에요. 좀 어렵죠. 어려워도 참아야 해요.

내가 여기 있다고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사실의 세계예요. 울산강의로 그런 이야기 했지만, 인간에게는 가짜가 없어요. 내가 가짜가 아니니까. 내가 왜 가짜예요? 여기 있는데. 의심하는 것이 오히려 정신병자죠. 내가 여기 있는데 왜 가짜야? 여기 있지.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누굴 보내느냐 하면 예수님을 거기에 보내시고, 예수님을 자리 이동시켰어요. 떠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이야기합니다. 나는 사실의 동네에서 존재(存在) 부재(不在)의 증명을 해버립니다. 알리바이(alibi)라고 하는데, 나는 그곳에 한때 있었으나, 지금은 그곳에 없다. 이 세상에 없다고 하셨어요. 그게 요한복음에도 나오고, 성경에 여러 군데 계속 나와요. 너희는 거기 있으나, 나는 이곳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간다고. 있었는데 떠나버려요. 그리고 다시 오거든요.

예수님 보시기에는 출애굽은 그런 출애굽이에요. 인간들이 분명히 있고, 내가 여기 있고 내가 있는 이 세상도 함께 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들이 ‘사실이다’라고 할 때, 주님은 “그거 가짜거든” 그건 진짜가 아니야. 그게 가짜야. 그러면 그게 가짜라면, 내가 있고 이게 분명한 사실이라는 이거 말고 다른 현실이 따로 있어야 해요. 그게 뭐냐. 진실의 세계예요.

진실. 진실의 세계. 진리의 세계예요. 하나님께서는 진리와 사실을 이렇게 구분시킨 겁니다. 문제는 말이 어렵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거죠.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러면 성경에서는 사실과 진실을 어떻게 나누는가. 히브리서 11장을 보게 되면 믿음의 조상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여러분들이 히브리서 11장을 여러 번 봤을 건데, 처음에 나온 사람이 아벨 나오지요, 에녹 나오지요, 노아 나오지요, 뒤에 쭉 나오거든요.

예를 들어서 에녹같은 경우에 히브리서 11장 5~6절에 보면,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라고 되어있어요. 앞에 아벨로 마찬가지고요.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이렇게 쭉쭉 나오면서, 뭘 이야기하느냐 하면, 사실은 그들이 이 땅에 살았는데, 하나님이 데려가심으로써 다른 동네로 옮겨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은 어떤 불가능성이 있느냐 하면, 내가 여기 있고, 나는 여기 살고 있다는 것을 본인이 희망한다고 떠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에요. ‘참 에녹은 좋겠다. 떠나가니까’ 하지만 다 같이 에녹같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나머지는 떠날 때, 떠나는 방식들이 믿음의 신앙인마다 다 달라요. 저와 여러분도 달라요. 그런데 뭘 제가 보자고 하느냐 하면, 히브리서의 끝부분을 가보자는 겁니다. 끝부분을. 전반기에는 이렇게 곱게 곱게 하나님께서 일 시키고, “일 다 했어? 그러면 근무 연장 안 한다”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아브라함도 데려가고 다 데려가고 좋았는데, 히브리서 11장 35~36절부터 보면 드디어 사태가 험악해집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사태가 어떻습니까?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죠. 초반에는 어떻게 조용하게 조용하게 이렇게 주께서 데려가다가 나중에는 완전히 골병들어서 데려가는 거예요. 골병들어서. 어떤 전설에 보면 이사야를 이스라엘 왕이 죽일 때, 원래 십자가 모양 말고, ‘X’자 모양 십자가에 이사야를 묶어놓고, 톱으로 가운데를 잘라서 죽게 했다는 겁니다. “톱으로 켜는 것과”

왜 조용하게 안 데려가느냐는 겁니다. 주께서는 왜 번잡스럽게 데려가느냐는 겁니다. 그 이유를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얼마 전에 다단계를 했던 사기꾼들이 체포되었는데, 거기에 한 사람에 수십 명이 가담되었는데 다 체포했어요. 속은 사람들이 대부분 60대 이상이고 거의 3천 명 정도 되는 사람이 속았다고 나와요.

60대 이상이에요. 다들 60대가 되면 이상하게 되는 거 같은데, 이 다단계 회사가 구조를 보게 되면 주님이 하시는 구조랑 딱 닮았어요. 일단 다단계 회사는 자기 자본금이 거의 없습니다. 사기성 말발만 있어요. 자본금이 없으니까, 말발로 사기 쳐서, 그것도 심지어 유명 연예인까지 동원해서 ‘나도 가입했다’라고 광고하는 식으로 쭉 가는데, 돈이 없으니까 있는 사람들의 돈을 알겨내서 자본을 형성해요.

그러면 사기 쳐서 자본금이 부풀어져요. 부풀어지면서 그 자본금이 다단계 회사를 확장하는 데 소모하다 보니 실제로 남아있는 돈은 거의 텅텅 비어 있죠. 비어 있고, 그 회사를 티 내는 껍데기 부분에 모든 자본금이 다 몰려있어요, 그러니까 속이 텅텅 비어 있는 랍스터(lobster). 안에 살점 하나도 없는 랍스터같은 거예요. 먹으려고 보니 껍데기만 있어요.

그러면서도 나중에는 부도날 때 뻥 터져버리고, 다 나 몰라라 하지 아무것도 되돌려 받을 게 없어요. 처음에는 받은 돈에 이자를 돌려막기식으로 보내 주죠. 점점 세를 키워놓고 보니 안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런 식으로 운영했습니다. ‘하나님 믿으면 율법의 백성 된다. 복 받는다’ 사기성 약속을 해요. 왜냐 하면 주께서 율법을 준 것은 복 주려고 율법을 준 것이 아니고, 저주하려고 율법을 줬기 때문에 그래요.

복 준다는 것이 저주용이에요. 여러분, 안 믿겨 지지요. 이게 성경에 보면 나옵니다. 신명기 27장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요단강 건너서 돌을 쌓는데, 축복산 있고 저주산 있어요. 그런데 어디부터 단을 출발하느냐 하면 축복산과 저주산 중간에 두는 게 아니에요. 중간에 두면 공평할 텐데, 아예 제단을 저주산에 박아버려요.

이건 하나님은 아시고 교회 나온 인간은 몰라요. 하나님이 복 준다고 교회로 불러 모은 줄 알고 있어요. 그게 아니고, 너희들만큼은 저주받을 자라는 것을 너희들만큼은 꼭 알아야 해. 너희는 다단계에 빠졌어. 너희는. 나랑 같이 회사 망하자. 나랑 같이. 같이. 예수님이 자기 백성 부를 때는 같이 망하자고 부르는 거예요. 우리를 부르심은. 이걸 왜 사람들은 몰라요?

지난 수요일에 제가 분명히 이야기했거든요. 저주받아야 복 받는다고요. 복음 아는 목사로서 제일 난처한 것이 뭐냐 하면 성경대로 하는 거예요. 성경대로. 골라서 뽑아주는 것이 아니고 성경대로. 성경대로 하면 이겁니다. 너는 지금 사실 세계 속에 있다. 왜? 나는 있으니까 망하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주님은 사실 세계를 피해서 현실 세계를 가져오는 거예요.

사실 세계가 현실 세계를 지금 가리고 있어요. 현실은 뭐냐. “내가 이 세상에 와서 간 것을 봐라. 내가 망해서 갔잖아. 망해서. 네가 뭔데 너는 안 망해?”라는 이게 복음이에요. 누가복음 2장에서 천사들이 와서 목자들의 자리를 이동시킵니다. “너는 지금 목자의 들판에 있지 말고, 후딱 가서 베들레헴에 가봐라. 거기에 어떤 표적이 있을 건데, 어떤 가난한 가족이 아기를 낳았을 것이다”

그게 이 세상이 망한다는 표적이 돼요. 이 땅에 망하러 온 거예요. 출애굽 하러 오셨다고요. “나가자. 이 땅을” 사람들은 안 나갑니다. 안 나가니까, 주께서 십자가 영을 보내셔서 이미 죽게 해놓고, 그다음에 내가 살아야 한다는 이 세상 형편을 성경 전체를 통해서 성령의 입장에서, 십자가 입장에서 다시 똑바로 보라는 겁니다. 너 혼자 보지 말고 예수님과 더불어서 십자가 지신 분과 십자가 안에서 다시 한번 봐라. 네가 지금 누구에게 속고 있는지를.

사람들은 교회 안 나옵니다. 왜? 주님에게 안 속아 넘어가려고. 자기는 자기를 안 속이잖아요. 유일하게 속이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에요. 믿을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에요. 예수님 말과 충돌되니까 예수는 안 믿고, 자기를 믿는 거예요. 간 보다가 안 나와요. 어디를 갔습니까? 그들이 간 곳이 어디죠? 사실의 세계. 안 망하는 세계. 이건 참 안타까워서 눈물 날 지경입니다.

저주받으라는 그것이 얼마나 복음인데, “내 이름으로 저주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선지자들도 이와같이 저주받았느니라”(마5:11~12)라는 이것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데. 자꾸 살 궁리를 하면서 다른 세계를 찾고 있습니다. ‘나 그냥 편하게 살게 좀 나둬~나둬~나를 건드리지 말고’라는 이런 식이에요. ‘예~~안 건드릴게요. 안 건드립니다’

그러나 할 말은 해야 하겠습니다. 사실의 세계는 진리의 세계를 가리고 감추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원수가 누구냐. 바로 우리 자신인 것을 이제야 눈 떠서 바라볼 때, 그걸 발견하면 여러분은 땡잡은 사람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약속의 땅으로 옮겨준다는 그 소식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 줄 모르고, 그 당시 예레미야에게 욕을 하고 있는 사람들, 오늘날 현대인의 모습과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지요. 주님 생각 먼저 하게 해주시고, 나중에 우리 생각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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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