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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40705a 울산강의-역대기하(5강) 7장 1절 : 성전확장자유게시판역대하

20240705a 울산강의-역대기하(5강) 7장 1절 : 성전확장
(강의:이근호 목사)

역대하 6장,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완공했는데 역대하 5장 13절, 14절에 보면 특히 14절 같은 경우에 보면 하나님의 전에 구름이 가득하다, 하나님의 전에 영광이 가득하다, 이렇게 돼 있어요. 성전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 장소에 오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엄청 신기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성전은 모형입니다. 장난감이에요. 인간이 신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지어드린 거예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 말이죠.

그게 역대하 6장에 보면 초반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둘 만한 어떤 건축물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둘 만한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는 이 말은 성전은 인간 용도로 모형을 만든 거예요. 모형을 만들었는데 하나님이 거기에 임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여기에 임재했잖아요. 하나님이 여기에 기공식에 직접 참여했다고요.

하나님의 참석, 귀빈으로 참석을 했다는 말은 성전 사이, 이게 틈이거든요. 틈 사이 이게 뭐냐 하면 모든 백성, 왕+모든 백성, 이게 인간입니다. 인간 전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뭐가 되느냐 하면 모형으로 다루겠다는 겁니다. 인간 자체가 모형이라면 어떤 결론에 도달되느냐 하면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증거할 수 없다’가 돼요. 인간을 스스로 자기를 증거할 가치나 권한이 없다가 돼요.

나. 이런 사람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어떤 권한도 인간에겐 없습니다. 왜? 인간은 모형이기 때문에. 모형이란 말은 모형 자체를 증거하기 위해서 모형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성전에 찾아오지 아니하시고 인간에게 찾아오지 아니하면 인간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느냐 하면, 이건 좀 어려운 이야기인데 어려운 이야기도 해야지요. 여러분 감당할 수 있을 거예요.

‘이 세상에 가짜는 없다.’ 이 세상에 가짜는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모형이 아니고 나는 진짜기 때문에. 나는 진짜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인간은. 왜냐? 진짜기 때문에. 나는 나이기 때문에 진짜기 때문에 진짜를 진짜라고 하는데 이게 뭐가 문제 되느냐 이 말이죠. 내가 누구의 모형이라는 것은 자존심이 상해서 우린 못 받아들여요. 우리는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 내가 있는 것이지, 나 말고 다른 분에 대한 모형, 또는 다른 말로 할까요? 더 여러분이 알기 쉬운 것, 인형. 누구의 인형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처녀 때 처음에 남편과 결혼해서 남편이 엄청 애교를 부리잖아요. “당신은 나한테 인형 같아.” 그럼 여자가 뭐라 합니까? “계속 앞으로 죽을 때까지 인형 해줘?” 이래 돼야 제대로 대화된 거예요. 만약에 남자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당신은 인형 같아.” 그러면 여자가 주먹을 쥐고, “나는 인형 아니야. 진짜야” 하면 그 사랑의 말귀를 못 알아들은 거예요. “내가 왜 인형이야. 진짜야.”

인간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본인이 가짜기 없어요. 전부 다 진짜에요. 진짠데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찾아오게 되면 졸지에 뭐로 되느냐? 하나님이 갖고 노는 인형, 모형이 되는 겁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워요.

인형의 특징은 뭐냐 하면 그 자체로 의미 없음이에요. 의미 없음, 가짜란 뜻이에요. 누가 나를 갖고 놀아야 돼요. 나를 예뻐해야 돼요. 그게 인형의 존재가치입니다. 나의 존재가치는 내가 스스로 정하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 굳히는 게 아닙니다. 누가 나를 갖고 놀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가짜가 없고 자기가 진짜라고 여기기 때문에 인간들의 삶은 뭐냐 하면 (이런 건 적어놓으면 좋은데) ‘인간의 삶은 스스로 자기 가치를 증명하는 일’ 이게 인간의 삶입니다. 스스로 자기 가치를 증명해요. 남한테 꿀리지 않으려고, 남한테 기죽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성전에 찾아온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어요. 이 세상에 가짜는 없다, 인간세계는 그렇게 주장하지요. 이왕 어려운 것 더 어렵게 가겠습니다. ‘이 세상에 가짜는 없다. 나는 진짜다’라고 스스로 우기지요. 이게 인간이 스스로 자기 가치를 증명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주님께선 어떻게 이걸 이용하시느냐? 이렇게 이용합니다.

가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들은, ‘나는 가짜가 아니고 진짜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하나님은, ‘가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말이 둘 다 똑같은 말로 여겨지지요. 똑같은 말이 아니에요. ‘가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너를 공격하겠다. 공격해서 이스라엘 다 없애버리겠다.’ ‘나는 진짜다’를 다 없애버려요.

그럼 남는 건 뭡니까? 진짜만 남아요. 어떤 진짜? 스스로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 없이 되는 진짜, 내가 굳이 내가 잘났다는 것을, 내가 살만한 가치 있다는 것을 내가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그 구조를 주께서 성전을 통해서 만드시려고 하는 겁니다.

오늘 강의가 굉장히 어려워요. 왜 어려우냐 하면 여기 역대하 6장, 7장, 8장에서 솔로몬은 엄청 하나님을 높이잖아요. 그런데 그 솔로몬이 가짜에요. 열왕기상 11장에 나오는 솔로몬은 다른 이방나라 여자들, 공주들과 결혼해서 우상 섬기는데 열중을 다하고 마지막 인생을 거기다 열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성전 지어드렸는데 하나님이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등장하지 않으면 귀빈으로 오지 않았으면 솔로몬은 처음과 하나같이 지 기분에 살았다, 이게 딱 정리가 될 수 있잖아요. ‘내 성전 지을 때부터 알아봤어. 괜히 사람들의 종교성을 부흥해주는 왕이라고 티내려고…’ 왕 자체가 스스로 왕다움을 증명하는 것에 쉬지 않는 거예요. 그래야 나라꼴이 되거든요. 나라가 왕 중심으로 결집을 할 수 있다 이 말이죠.

여러분들이 사회 생활할 때 각자 자리가 있잖아요. 과장이면 과장, 부장이면 부장 자리가 있다 이 말이죠. 그럼 부장 자리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에요. 부장이면 부장다움, 사장이면 사장다움의 티를 내줘야 월급 그 이상의 다른 요소가 붙어요. 그걸 상징적 권위라 합니다. 상징적 권위란 일종에 자리가 갖는 권력이에요. 자리가 갖는 권력이 있어야 이게 지시가 아래 사람한테 먹힙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학교에 자기 아버지나 엄마가 오잖아요. 올 때 애들은 학교에 온 순간 아버지, 엄마 권위보다 선생님의 권위를 우선 내세우게 돼 있어요. “아빠, 우리 선생님 이야기할 때 입 다물어야 돼. 우리 선생님이 다 알아서 잘해주니까 아빠, 엄마는 입 좀 다물고 있어. 우리 집처럼 나대면 안 돼.” 이러거든요. 그곳이 어디기 때문에? 학교 나와바리거든요. 선생님 자기 영역이잖아요. 개도 자기 오줌 싸는데 자기 영역 표시하는데, 자기 영역인 거예요.

그러면 왕은 하는 일이 뭐냐 하면 국가의 영토와 백성들의 안녕과 생명을 지키는 의무가 있는 게 왕이에요. 따라서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니까 왕이 당연히 여호와를 섬겨서 하나님이 계신 곳, 성전 지어드렸다. ‘나 잘했지. 그러니까 나한테 대들 생각하지 말고 왕으로 잘 섬겨라’ 이 말씀입니다, 라고 충분히 큰소리칠 수 있지요.

이게 성전에 하나님이 안 올 경우엔 그래요. 그런데 성전에 하나님이 떴다 이 말이죠. 와버린 거예요. 그러면 솔로몬은 뭐가 돼야 돼요? 솔로몬은 진짜 이스라엘 왕이 돼야 됩니까, 가짜여야 합니까? 첫 번째 문제 나갑니다. 솔로몬은 가짜 왕이 돼야 됩니까, 진짜 왕이어야 됩니까? 큰소리로 해보세요. 둘 중에 하난데 어느 쪽입니까? 가짜 돼야 돼야죠, 가짜. 이게 성전을 짓게 된 이유에요.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 가짜에요. 왜? 주님만 진짜만 되지 굳이 내가 진짜로 나설 이유가 없어요. 내가 진짜인 것처럼 나서게 되면 그다음부터 어떤 심적인 부담을 갖느냐 하면 내가 신자인 것을, 내가 천국 백성인 것을 내가 스스로 증명해야 되는 부담을 갖게 돼 있습니다. 아아, 그것 마귀가 좋아하는 거죠. 마귀가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고 마귀의 밥이라고 보면 돼요.

마귀가 그것으로 교인들을 계속 평생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니가 교회 40년 다녔으면 신자답게 행동해야지. 늘 항상 쉬지 말고 감사로 기도하고 그래 해야지.” 마귀가 계속해서 말씀으로 짓궂게 우리의 마음을 공격을 합니다. 마귀가 마음을 공격하는 이유가, 인간은 죽으면 육과 마음에 해리현상이 일어나거든요.

하나님께선 어딜 공격하느냐? 육에 성령이 오시는 게 아니라 마음에 성령이 오시지요. 고린도전서 2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깊은 마음이 너희들 마음속에 도달하면 너희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비로소 너희들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나한테 준 걸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을 대구강의에서 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것을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을 일체 안 받는다. 우리가 한 것, 헌금, 전도, 선교, 교육, 하여튼 예배, 찬양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일체 안 받습니다.

하나님이 찾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넣어준 걸 찾지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것을 회수하는 식으로 우리를 구원한다, 이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에 감당이 되지만 예수님이 우리에게 넣어준 것은 우리가 감당이 안 돼요. 이게 보관이 안 됩니다. 우리가 붙들 수가 없어요. 이거는 주인이 와서 붙들어야 돼요.

에어컨 설치할 때 실외기 누가 설치합니까? 주인이 에어컨 사서 지가 설치합니까? 아니지요. 뭐 굵은 선이니 복잡해요. 그럼 실외기 고장 났다. 누굴 불러야 돼요? 기술자 불러야 되지요. 방금 제가 기술자라고 이야기했지요. 인간은 스스로 자기 가치를 증명한다. 이게 인간의 삶입니다. 참 힘들지요.

기술자가 성전을 짓고 난 뒤에 성전 누가 지었습니까? 솔로몬과 일꾼들이 지었지요. 그럼 성전에 뭔가 타일이 떨어져나갔다, 무늬가 낡았다. 페인트칠 누가 합니까? 인간이 하잖아요. 성전을 두고 인간 기술자가 늘 거기에 대기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선 뭘 하느냐 하면 이 성전 누가 접수했어요? 주님께서 접수했지요. 접수하고 솔로몬은 여기서 자기 포기가 돼야 됩니다.

성전이란 나를 제거하는 장소, 이게 성전이거든요. 왜냐하면 여기 역대하 6장, 7장, 8장에 보면 지금 솔로몬은 껌벅 반했어요. 누구한데? 직접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직접 찾아오신 하나님에게 너무 반해서 본인의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본인은 아무렇게 돼도 괜찮아요. 내가 나를 증명한다고요?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어떻게 구겨지든지 펴지든지 상관도 없어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성전에 찾아왔다는 그게 중요하지 내가 어떻게 드리고 자시고 할 그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솔로몬이 자기를 증언한다, 이런 것 없습니다.

성전을 하나님이 접수함으로 말미암아 인간 기술자로 운영되는 유지되는 성전을 성전1, 하나님의 기술자로 유지되는 성전2로 드디어 여기서 갈라집니다. 그럼 성전은 모든 하나님의 계획의 저장고, 하나님께서 했던 모든 정보를 거기다 담아 있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성전은 보이지 않는 저장소입니다. 그 저장소에는 뭐도 있느냐 하면 누구는 천국 가고, 누구는 지옥 가는 그 내용이 들어있어요. 보이지 않는 도서관, 들어가고 싶지요? 어떻습니까? 성전은 들어가는 게 아니에요. 성전은 스스로 확장하고 팽창하는 겁니다.

일단 솔로몬은 자기 성전에 나타난 하나님 때문에 자기를 치워버리는 데 성공했어요. 왜 솔로몬이 자기를 치워버리느냐? 하나님이 일하는 장소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저장고로 일하는 장소에 내가 끼어들면 나는 그곳에서 내 인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따로 살림을 차려요. 그 안에서.

여러분, 새 아파트에서 바퀴벌레가 살림 차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건설회사에 동영상 찍어 유튜브로 고발한다고, 새 아파트에 바퀴벌레가 뭐냐고 회사 망하게 해봐, 이렇게 나올 거예요. 왜냐하면 새 아파트는 백 프로 건설회사 작품만 남고 우리는 짐만 들고 들어가야 돼요. 그런데 거기에 벌집 생기고 바퀴벌레 있고 거미줄 생기면 이거는 곤란하지요. 못 살지요.

하나님께서 말하는 성전은 인간을 제거하는 장소거든요. 인간은 자신이 가짜가 아니라고 보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진짜로 보기 때문에 누구의 모형이 아니라고 본다는. 나는 누구의 귀염둥이 인형이 아니라고 보는 거예요. 따라서 이 성전을 관리하는 보이지 않는 기술자는 인간의 기술자로 관리되는 성전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걸 없애버리겠지요. 이렇게 정리합시다. 하나님의 성전은 인간으로 하여금 성전 만들도록 유도해놓고 그 성전을 없애는 방식으로 자기 팽창, 자기 성전의 확장에 나서셨다, 그것에 돌입했다 이래 보시면 되지요.

열왕기상 11장에 나오는 대목을 4절부터 보면,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 같이 좇지 아니하고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저가 또 이족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그렇게 돼 있지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이라면 어떤 조치를 내리겠습니까? 첫째, 그냥 놔둔다. 둘째, 성전 다 부순다. 셋째, 꼴 보기 싫다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떠난다. 몇 번이겠습니까? 이 질문 중요한 거예요. 왜? 현재 우리 삶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오늘 역대하 6장에서 솔로몬은 6장, 7장, 8장 쭉 읽어보면 껌벅 죽어요. 솔로몬이 자기가 만든 성전에 내왕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격해서 껌벅 죽는다고요.

역대하 7장 봅시다. 7장 1절,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이게 무슨 이벤트입니까? 한강축제 폭죽보다 더 대단한 거죠. 기도를 마치니까 불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거예요.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거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있는 것을 보고 박석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라고 돼 있어요.

자, 제가 여러분한테 물어봅니다. 하나님이 이 성전을 접수했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이 성전의 용도가 뭐냐? 성전에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접수한 성전에서 무슨 행사를 벌여야 돼요? 그냥 축제나 하고 놀기나 하고 그래야 됩니까? 뭘 해야 됩니까? 그게 그 긴 역대하 6장 오늘 이걸 할 텐데요. 그 내용이 나옵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전에서 백성들이 해야 될 일은 뭐냐? ‘성전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아까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어떤 인간도 자기가 가짜라고 인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자기가 가짜가 아니지요. 자기가 진짜란 말이죠. 자기가 진짜라면 진짜와 진짜 사이에 여기서 경쟁이나 다툼이나 비교가 발생되겠어요, 발생 안 되겠습니까? 반드시 여기서 경쟁이 비교가 생겨요. 왜? 나만이 진짜여야 하니까.

그러면 인간들이 각자 잘난 맛에 살아가면 자연적으로 사회는 무슨 사회? 평등이 아니고 불평등이죠. 평등은 나에 대한 모욕이에요. 절대로 평등하면 안 돼요. 될 만한 인간은 돼야 되고 못 될 인간은 못 돼야 그게 정의롭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모든 인간은 다 그래요. 왜? 자기가 진짜니까.

그런데 이런 생각이 인간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이게 부담으로 작용해요. 압박감이 된다고요. ‘나는 진짠데 다른 사람이 나를 우습게보면 나 어떻게 살지?’ 나는 내가 진짠데 남들 보기에 ‘니가 진짜에서 좀 빠진다. 내가 보기에 너는 70% 인간밖에 안 돼. 네 옆에는 맛이 더 갔네. 40%.’ 40%에서 더 내려간 사람은 요양병원에 가 있어요. 치매란 병명으로 요양병원에 다 가 있습니다. 요양병원에 가면 40 안 되는 30, 20 수두룩해요.

그런데 그것이 나이 들면 들수록 90 넘으면 10 단계로 떨어져요. 자기 아들도 못 알아보니까 어떻게 그걸 점수를 줍니까? “할머니, 이름 뭡니까?” “몰라.” 25점. “할머니, 자식이 몇 명 있습니까?” “몰라.” 16점. 다 한 때 100점이라고 자부했던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치매 걸려서 저렇게 요양병원에 가니까 자식도 안 찾아오지요. 찾아가도 못 알아보니까 찾아갈 맛이 안 나지요. 나중에 장례식이나 찾아가고.

성전 앞에서는 모든 인간이 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게 어떻게 차이가 없는지를 성경을 보면서 봅시다. 역대하 6장 솔로몬이 이야기합니다. 솔로몬이 여호와한테 뻑 갔어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곳에 와서 기도하면 주께서 응답해주세요, 하고 자기 자신을 치워버려요. 기도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치울 때나 가능해요. 자기 의식하면 기도가 안 됩니다. 자기가 자기와 대화하는 거예요. 그걸 뭐라 하느냐 하면 중언부언, 또는 중얼중얼. 그걸 네 자로 하면 ‘정신병자’ 자기가 자기 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나 솔로몬은 지금 자기를 치워버렸다고요. 하나님이 계신 곳에 이걸 뭐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되겠지, 이런 것도 없어요. 그냥 내가 어떻고 그런 것도 치워버리고 주께서 하시는 원칙대로 그냥 밀어주시면 그걸로 족합니다, 그런 마음자세로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주기도문만 제대로 해도 엄청 은혜 돼요. 왜냐하면 내가 할 게 거기에 끼어들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을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주기도문 외울 때도 은혜롭게 하면 이렇게 돼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뒤에 추임새를 넣으세요.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이름을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나는 죽어도 좋습니다.’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거건 없어도 괜찮아요.’ 그게 추임새로 들어가야 돼요. 판소리 할 때 ‘얼쑤’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저는 안 줘도 괜찮아요.’ 모든 것을 주께서 알아서 해주는 게 주기도문이에요. 우리가 낄 자리가 없어요, 거기는. 그러니까 자꾸 기도를 오래 하려고 하지 마세요. 기도 오래 하면 백 프로 장담합니다. 잠 옵니다. 본인이 본인한테 주문 거는데 잠 안 올 리가 있어요?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하는데 잠 오지요. 소용없는 짓이에요, 그것.

“저를 치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하실 일은 주께서 하면 됩니다. 저는 인형이니까요. 저는 주님의 모형이니까. 저한테 신경 쓰지 말고 주께서 하고 싶은 대로 저한테 퍼부어주시면 돼요.” 이런 자신감, 이런 자유함.

그렇게 해놓고 22절 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하므로 맹세시킴을 받고 저가 와서 이 전에 있는 주의 단 앞에서 맹세하거든”라고 돼 있지요. 어떤 사람이 범죄, 죄를 지었습니다. 이게 인간세계에선 어떻게 됩니까? 죄 지은 사람과 죄 안 지은 사람 중 어느 쪽이 우수한 사람이에요? 어느 쪽이 질적으로 우수한 사람입니까? 죄 안 지은 쪽이죠. 죄 지은 쪽은 죄 안 지은 사람보다 못하지요.

그럼 여기서 뭐가 생겨요? 불평등이 생기겠지요. 그런데 성전에서는 모든 게 평등하지요. 뭐냐 하면 모든 인간을 가짜로 규정해서 자신이 가짜임을 아는 자는 성전 앞에서 평등해요. 그러니까 죄 지은 사람은 땡 잡은 거예요. 왜? 죄를 지었기 때문에 뭘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성전의 의미, 성전의 평등성 앞에 자기의 몸을 바칠 수가 있기 때문에.

성전은 죄 지은 사람이나, 그 뒤에 나옵니다. 죄 지은 사람이나, 전쟁에 패배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이나, 가뭄이 들었거나, 농사가 안 되었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28절에 메뚜기에 농사가 싹쓸이 당하더라도 성전 앞에 나오면 평등해요. 왜? 주님이 갖고 노시는 인형이 되니까. 인형 하나 소개시켜 드릴 게요. 선지서에 나오는 인형.

하박국 3장 17절,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아하 뭐 이런 인형이 다 있어요. 대단한 인형이에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다시 말해서 인형에다 태엽 감아주잖아요. 주께서 나에게 태엽을 감아주시는 분이라는. 그 태엽 안에 뭐가 들어있겠어요? 성전 자체가 보이지 않는 도서관이니까, 저장고니까 하나님이 하는 모든 일, 인간이 했던 모든 일, 지옥 갈 자가 하는 모든 일, 천국 갈 자가 하는 모든 일이 성전이 확장되면서 그 안에 차곡차곡 도서관처럼 모든 내용이 차이게 돼 있어요. 그런 도서관 한 번 키워보시지요. 집에 하나 들여 보시지요.

왜 용서가 되고 왜 사함이 되는가? 인간이 범죄 할 때는 변수가 있을 게 아닙니까? 집안에 남편과 아내가 부부싸움을 하는데 남편이 염색하고 난 뒤에 좀 마르고 난 뒤에 씻어야 되는데 염색한 채로 마침 점심시간 돼서 뭘 먹을까 하다가 싱크대에 염색약이 묻었어요. 그것 보는 순간, “내가 차려준다고 할 때 가만있지 뭔데 니가 차린다고 부엌 들락거리다가 염색약을 묻혔는가?”

퀴즈입니다. 염색약은 지워질까요, 안 지워질까요? 염색약은 안 지워져요. 메틸알코올로도 안 지워지고, 여자들 매니큐어 지우는 아세톤으로도 안 지워요.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안 지워져요. 그걸 보고 화내겠어요, 안 내겠어요? 그러면 점심은 왜 먹고자 했을까요? 이 육신은 먹어야 살지 않습니까.

그러면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런 이야기에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을 뻔했다. 결국 모든 이야기가 당신 같은 남자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돼. 안 태어났으면 내가 너한테 염색할 일도 없고 점심한다고 싱크대에 염색약 묻힐 일도 없을 것 아니겠어요. 차라리 안 태어났으면 너와 결혼도 안 했을 거란 말이죠.

그런데 태어났잖아요. 결국 무슨 이야기입니까? 결국 그 책임을 누구한테 돌리는 거예요? 하나님께 돌리는 거예요. “하나님, 왜 저 인간 태어나게 했습니까?” 이것과 똑같은 거예요. 싱크대에 염색약 묻은 것이 발전해서 뭐냐 하면 ‘하나님, 저 인간 왜 태어났습니까’와 변수가 연결돼 있어요. 이게 변수에요.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실수했다고요? 그것 실수가 아닙니다. 왜 실수가 아니냐? 여러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자체가 실수에요. 안 태어났으면 그런 일이 없을 거예요. 그럼 주님께서 조치를 어떻게 합니까? 죽여 버리는 거죠. 제가 설교시간에 그런 이야기했지요. 이 세상에 제일 좋은 치료가 뭐라 합니까? 죽여 버리는 것.

주님의 주특기가 뭐냐? 죽여 버리는 거예요. 어디서? 성전 안에서. 성전 안에서 제물이 죽잖아요. 그 죽음이 누구 죽음이냐 하면 모든 인간을 평등한 인간으로 새롭게 만들기 위한 조치가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으로 지금 대신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범죄 한 자를 죽여야 범죄 한 자는 성전 앞에서 평등한 사람이 되어서 이건 뭐가 되느냐 하면 의인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핑계든 어떤 구실이든 좋으니까 항상 그 기준점을 되는 성전 앞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라는 것이 우리 주님께서 솔로몬 성전을 찾아온 취지입니다. 그런데 아까 봤지요. 솔로몬부터 시작해서 모든 인간이 성전에게 고맙습니다, 하고 난 뒤에 다시 어디로 갑니까? 자기가 자기를 증명하는 삶으로 돌아가 버리죠. 나는 가짜가 아니야. 진짜야, 하는 그 짓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 아이디어를 동원하면 성전을 확장시킨다는 말은 곧 무엇을 의미하겠어요? 인간이 범죄를 하든지 전쟁에 지든지 태풍이나 깜부기나 메뚜기가 쳐들어오는 재앙과 환란을 퍼부어주는 방식으로 뭐가 확장되겠어요? 성전이 확장되는 거예요. ‘너 같은 인간은 살 가치도 없어.’ 왜? 가짜거든. 가짜가 죽어야 주님의 인형이 되니까, 모형이 되니까.

솔로몬이 성전 처음 짓고 난 뒤에 주님 찾아올 때 그 관계, 그때 솔로몬은 더 이상 본인이 왕이 아니고 나는 가짜 왕이라는 사실을 알아요. 그러면 진짜 왕은 누구겠습니까? 진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진짜 왕이라는 걸 기꺼이 너무나 부담 없이 너무나 좋아서 어쩔 줄 몰라서 모든 자기의 권한과 그런 걸 양도했지요. 주께서 뜻대로 하시옵소서, 라고 다 양도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 순간만큼은 솔로몬은 성전의 취지를 아는 사람이에요. 그 앞에 솔로몬이나 백성의 차이는 없습니다.

아까 열왕기상 11장에서 솔로몬이 우상을 만들어줬고 산당을 만들어줬다 했는데 이게 솔로몬이 여호와 섬기지 않고 우상 섬기려고 자기 좋으라고 만든 거예요? 자기 좋으라고 만든 게 아니에요. 자기 부인들 좋으라고 만든 거잖아요. 산당 지었잖아요. 그러니까 자기 부인들, 왕비들 좋게 해야 왕의 모든 사생활이 이렇게 안정적이어야 백성들이 왕 하는 모습에 대해서 아까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그 권위발, 말발이 서지요. 그래야 나라꼴이 되니까. 말발이 서잖아요.

그렇다면 왕비한테 산당을 지어주고 우상 섬기는 것을 장려했다는 말은 지금 솔로몬은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느냐 하면 나는 지금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자기 놀이를 하고 있는 거예요. 누구의 인형이 아니고 누구의 모형이 아니라 본인이 진짜라는 거예요. 그 진짜인 것을 스스로 증명해가는 거예요, 솔로몬이.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솔로몬이 성전 지어놓고 왜 우상숭배하지? 솔로몬이 그만큼 의지가 약하나? 의지가 약한 게 아니고 인간의 자리가 그렇게 만들어요. 자리 내놓으면 되는데 인간은 자리 못 내놔요. 왜? 자리가 자아를 만들기 때문에. 나라는 게 있는 자리가 나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 내놓으면 내가 없어지는 데요?

목사가 목사 자리 못 내놓는 이유도 거기 있잖아요. ‘하나님의 계시 받았다’ 하는 그게 있어서 못 내놔요. 그럼 교인들이 목사보고 나가라. 교인은 왜 교인 자리 안 내놔요? 남보고 나가라 하지 말고 자기 교인 되는 걸 왜 안 내놓지요. 꼴에 그것도 권력이라고 안 내놓지요. 이러면 됩니다. 하나, 둘, 셋 하면 둘 다 내놓기. 교인 아니고 목사 아니다.

그걸 누구 앞에서? 성전 앞에서.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그걸 반복하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죄인 되는 거예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바로 자리 이야기니까 먼저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3장 20절 누가 크게 읽어보세요.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우리의 시민권은 어디 있다 했습니까? (하늘에) 아하 참 말씀하시는 분이 부럽습니다, 정말. 하늘에 있으니 모자 큰 것 쓰나 작은 쓰나 관계없어요. 하늘에 있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하늘의 시민인 거예요. 그게 누가 마련한 자리냐? 내가 마련한 자리가 아니라서 고마운 거예요. 내가 획득한 게 아니고 내가 얻어 챙긴 게 아니고 그걸 지키려고 애쓴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주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니까. 애쓴 사람에게 더 주고 노력 안 한 사람 덜 주고 그러면 불평등이잖아요. 주님 앞에선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성전 앞에서 다 자기 자신을 치워버려야 될 대상자들이에요. 어떤 인간도 진짜가 아니에요, 주님 앞에. 가짜밖에 없기 때문에 가짜 둘 데리고 너는 착하고 너는 못 됐고 너는 훌륭하고 너는 … 그렇게 평가할 의미 없다니까요.

시체 둘 놓고 너는 세상에 얼굴이 좋네. 둘 다 시첸데 얼굴이 좋은 게 어디 있어요. 둘 다 죽어 있는 상탠데. 둘 다 죄인인데 무슨 둘 사이를 평가를 합니까? 그런 평가는 마귀나라에서나 하라 해. 우리의 시민권은 지옥에 있으니, 이런 사람이면 하라. 지옥에선 지 잘난 맛에 살아가요. 거지 나사로와 부자 비유 보면 나옵니다. 부자는 지옥 가도 부자 되려 하고 참. 불속에 있으면서도 나는 부자다. 살아 있을 때 부자였다. 부자였다고 어쩌란 말입니까? 지금 지옥에 가 있으면서.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차이만 없다면 여러분들이 살기 훨씬 마음이 편했을 거예요. 남이 차이를 주는 게 아니고 내가 차이를 자꾸 의식한다니까. 보다 더 훌륭하게 보다 더 완성스럽게 보다 더 대단하게 보다 더 칭찬 많이 받는 존재로 어떻게 변신해봐? 이걸 숙제, 과제처럼 갖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시민권, 하늘의 시민이란 사실을 누가 방해하느냐? 여러분, 우리 자신들이 방해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별로 안 좋아지는 거예요, 자꾸. 하늘나라 시민 같으면 그 자리 누구 관리입니까? 주님 소관이에요. 주님이 관리합니다. 어떻게? “죄 지었잖아. 빨리 와, 빨리 와. 너 깜부기 받았어. 빨리 와. 오늘 최고기온 35도야. 빨리 와, 빨리 와. 너 이 땅에 더워서 못 살아. 앞으로 환경 오염돼 못 살 거야. 내가 그렇게 온도 확 올려놨어.”

우리가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동네에 태어난 게 아니고 날 가짜임을 증명해 줄 세상에 태어났다는 거예요. 거기에 우린 하나님이 없어요. 하나님이 없이 인간들만 가짜들만 있는 동네에 세상에 하나님이 그 성전에 찾아왔다는 사실을 솔로몬은 지금 너무 감격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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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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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