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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강의20240628a 마태복음 26장 52절(지옥 확인)-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마태복음

광주강의20240628a 마태복음 26장 52절(지옥 확인)-이 근호 목사

p.86 제목은【숨어 계시는 하나님】.【종말 때의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형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여기 ‘종말’이란 말을 안 해도 되는데요. 하나님은 늘 숨어계셨는데 종말이란 말을 집어넣은 것은, 구약 때 이스라엘에게 나타났음을 전제로 할 때에 신약에 오게 되면 그 이스라엘에게도 숨어계시는 하나님처럼 그렇게 등장하게 되죠. 그걸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럼 여기서 ‘숨어계시는 형식’이라 했는데 이 형식이 오늘의 주제가 되겠습니다. 숨어계시는 형식. 방식. ‘숨어계신다’ 이건 곧 ‘없음’이죠. 숨어계시니까 인간에겐 없는데, 그 뒤에 ‘형식’이라고 되어 있어요. 아, 형식은 이 세상에 ‘있음’이 되는 거예요. 숨어계신다=없음. 형식=있음.

그러니까 이 형식이 숨어계시는 방식의 형식으로 하나님께서는 나타내신다. 본문에서 뒤에 말에 ‘계시하신다’고 되어 있거든요. ‘자신을 계시하신다.’ ‘계시하신다’ 해놓고 그 앞에 ‘자신을’이라 했어요. 자신을 계시하시니까 하나님의 계시는 자기 자신을 계시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계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초반부터 어렵지만 어려워도 그냥 밀어붙이겠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는 형식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 형식 속에 숨어계심도 내용에 포함되려면 어떤 문장이 적절하냐? 이 문장이 적절해요. ‘예수님은 자신이 이미 죽은 것을 아신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죽은 몸으로 오셨어요. ‘죽음’이란 것은 있음이 아니고 없음으로 이야기하고, ‘자신’이라 하니까 자신을 계시하는 내용과 이게 부합돼요.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것을 아신다’는 이것을 계시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계시가 이 안에 다 함축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모든 계시가. 해와 달, 별, 만들어낸 모든 계시가 예수님 자신의 죽음 안에 함축되어 있죠.

따라서 성도에게 확실한 것은 딱 하나에요. 하나만 확실하면 돼요.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것. 성도는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이 한 개만 알면 되는 겁니다. 수능치기 위해서 고등학생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그만큼 공부를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수능 문제 딱 한 문제 나온다면, ‘숨어계신 하나님의 형식을 말하라’ 딱 한 문제 낸다면, 성도라면 답을 뭐라 해야 돼요?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이러면 끝나는 문제에요.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었다는 이 답변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몽땅 잘려나가느냐 하면 ‘나는 ~한다’가 다 잘려나가요. 나는 ~한다, 나는 ~안다, 나는 ~행한다, 나는 ~소지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시에 포함돼요, 포함 안돼요? 포함이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계시에 포함이 안 되는데 사람들은 이것 때문에 고민하는 거예요, 지금. 고민하고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있는 거예요. 애 시집도 안 가고 집에 있다 아이가. 그거는 고민할 문제도 아니에요. 물론 장려할 문제도 아닙니다만. 걱정하거나 고민할 문제가 아니에요. 뭐 교회를 어떻게 하면 되나, 이런 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셨다’부터 출발점으로 해서 그다음에 성도한테 요구하는 게 있어요. 성도한테 요구하는 것은 ‘나랑 죽자’. 이 ‘나랑 죽자’를 회개라고 합니다. 나랑 죽자=회개. 계시의 확장이죠. 주님의 구축된 계시가 확장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제 그다음 문제. 이 계시를 어떻게 찾아내는가 하는 거죠. 숨어있다니까.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숨어있으니까 이것을 어떻게 찾아내느냐 이 말이죠.

요새 마술 프로그램도 있습니다만, 여기 편평한 A4용지가 하나 있다 합시다. A4용지가 있는데 마술사가 여기다 기를 불어넣습니다. 잘 보세요, 하면서 기를 불어넣으니까 손도 안대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여기서 이 평평한 반듯한 A4용지가 저절로 구겨지고 여기에 굴곡이 생기고 돌출이 생기고 이런 현상이 생긴다면 이게 얼마나 신기하겠어요.

‘평평한 데서 주름이 발생한다’ 이게 징후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 계시의 징후가 되는 거예요. 평평한 데서. 그러면 평평하다는 이게 뭐냐? 평평하다는 것은, 자연에다가 인간의 이성(理性)-이성이란 reason(라틴어:ratio), 따지는 것, 조리 있게 절도 있게 합리적으로 질서를 잡게 하는 게 인간의 이성이에요-을 집어넣으니까 이 자연이 평평해졌습니다. 그러니까 평평해졌다는 것은 ‘질서 잡혔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다림질이 잘 되어 있다’. 다림질이 잘 되어 있는 거예요. 똑바로 다림질이 잘 되어 있는 것.

어떤 때 그렇습니까? 무엇이 투입될 때? 이성이 투입될 때. 이성의 대표적인 모습이 뭐냐 하면 수학이에요. 수학. 수학, 물리학. 수학, 물리학에 인격이라는 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인격은 따지지 않아요. 수학, 물리학에 인격은 따지지 않습니다. 화학에 뭐 감정 이런 것은 전혀 따지지 않아요. 이걸 질점(質點), 하나의 질점으로 보는 거예요. 하나의 물체, 존재로만 보는 거예요, 그냥.

이 수학이 경제 분야로 파급됩니다. 수학적, 합리적, 이성적인 것, 질서 잡힘이 경제로 파급되면 어떻게 되는가? 경제의 가치는 평평해져요. 뭐로 평평하냐 하면 돈 있음과 돈 없음으로 평편화돼요. 평편화. 질서가 잡히는 거예요. 질서가. 넌 줄 뒤에 서. 뒤에 서. 너는 앞에 서세요~ 이렇게. 이게 야고보서 2장에 나오잖아요. 부자는 환영하고 가난한 자는 뒤로 밀쳐지는 것(2:2-3).

인간의 이성, 합리적 판단이 개입되게 되면 가치를 논하는데 그 가치는 무엇의 가치입니까? 인간세계, 이 A4용지의 평평한 세계에서의 생명이란, 생명을 측정할 때는 돈의 가치로서 측정이 돼요. 너라는 생명은 나중에 얼마를 더 빼먹을 수 있는 생명이냐, 이걸로 측정이 된다고요. 경제 분야에 들어가면.

경제 분야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 요소를 다 빼는 거예요. 옛날에는 물물교환해서 인간이 물건을 나눈 게 아닙니다. 정(情)을 나눈 거예요. 정을. 그래서 어떤 학자는 그걸 증여라 하는데 present, 선물하는 거예요. ‘아이고, 아재요. 전에 좋았습니다.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아이고 뭐 이런 걸 갖고 오다니. 이거 드세요.’ 증여. 거저 주는 것.

농심에 나오는, 밤중에 쌀가마 지고 나누는 형제 우애 같은 거. 돈으로나 합리적 이성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 돈, 자본으로 표현할 수 없는 여분의 것이 있어요. 끈끈한 연대성. 사랑 또는 우정, 의리. 옛날부터 농사지을 때는 노동 집약적이 되어서 끈끈한 정이 들어가야 농사를 한꺼번에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농사짓던 그 사람이 도시로 이주를 해서 뭐 철공소에서 일하든지 할 때 손님을 만나든지 사업을 할 때 끈끈한 인정이 통하겠습니까, 안 통하겠습니까? 끈끈한 인정을 주장하면 등신 되죠. 그걸 ‘사기 당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사기 당했다. 사기를 당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가 심리적으로 치명상을 입겠죠.

치명상을 입는다는 말은 나라는 인간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그동안 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었던 토대 자체가 이게 소용이 없어진 거예요. 이 새로운 도시 사회에서 소용이 없는 거예요. 소용이 없으면 돈 없는 것도 무가치한데 내가 갖고 있는 인정과 성의, 이게 도시사회 구조에서 써먹을 데가 없는 거예요.

내가 써먹을 데 없으면 어떻게 돼요? 나는 존재가치가 없잖아요. 그러면 뭘 생각하겠어요? 나 죽을까 생각하겠죠. 그러니까 생명이라 하는 것은, 목숨은 원래 부모가 내려준 거다 하는데 부모가 내려준 게 아니고 부모가 살았던 상황, 그 환경이 내려준 거죠. 그 환경이 바뀌어버리면 목숨이 위태하게 되는 거예요. 등신 같이 살게 되면 목숨이 위태하게 되는 거예요.

자연에 이성이 개입되면 다림질이 되는 거예요. 이걸 경제적으로 봤는데, 이제 정치적으로 봅시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 평평하게 펴놓은 판이 권력체계라는 거예요. 권력체계. 마태복음 26장 한번 보겠습니다. 지금 제가 설명하는 것은, 숨어있는 계시가 어떻게 흔적을 내는가?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흔적을 내는 것은, 숨어있는 계시를 덮어주는 게 있어요. 그게 하나님의 대적이겠죠.

그래서 평평하게 수학적으로 이성적인 질서 잡힌 이 인간세계가 어떻단 말이냐? 전에도 했어요. 자연을 인간이 가져오면 자연을 그냥 자연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지배해요. 인간이 지배한다고요. 자연을 인간이 지배하고요. 그 인간을 인간이 지배한다고요.

자연을 인간이 지배할 때는 이 무질서한 자연을 인간이 사는 데에 편리하도록 인간이 지배한다니까요. 장악하는 거예요. 인간이 장악하죠. 인간 속에서, 자연은 혼란스럽다. 그럼 인간은 혼란스럽습니까,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인간도 혼란스럽죠. 혼란한 것을 장악하기 위해서 인간이 인간을 또 지배하게 되죠.

그럼 이 흐름(자연→인간이 지배→이 인간을 인간이 지배) 속에 무엇이 포착되겠습니까? 무엇이 포착되겠어요? ‘권력’이죠. 마태복음 26장 봅시다. 51절, 52절, 그리고 55절.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가 손을 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베드로죠. 52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그 다음에, 53절이 의미 있어요.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뭐 할 수 없는 줄로 알았죠. 베드로와 열두 제자 모두 다. 예수님 체포될 때 지금이라도 천사들을 보내서 예수님이 체포되지 않게 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제자들은 왜 몰랐어요?

제자들이 지금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머릿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겁니까? 무엇이 작동되죠? 이성이죠, 이성. 이성은 어디에 썼던 겁니까? 자연을 누구 위주로? 인간 삶 위주로 생존 위주로 바꿀 때 인간의 이성이 개입되잖아요. 이 이성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게 그대로 작렬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열두 제자가 딴에 예수님 보호한다고 손에 쥔 게 뭐죠? 검. 칼이죠. 칼. 54절 보면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55절, “그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그 다음 56절에 뭡니까?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무엇의 글을 이루려 함이라?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여러분 이제 이해하시겠습니까? 평평한 이성으로 체계 잡힌, 권력체제로 서열화 된 질서를 잡아놓은 이 세상에서 마술사가 뭔가 구부러뜨리고 윤곽을 생기게 한 거예요. 저절로. 윤곽이 생긴다는 것은 징후죠.

여러분들이 잊어버리지 않았다면 아까 한 것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시는 뭡니까? 이 땅에 뭐 하러 오셨다? 그냥 죽으러 오신 거예요. 그냥 죽으러 오신 거예요. 그런데 인간이 자연을 보면서 이성을 집어넣는다는 것은 본인이 죽겠다는 말입니까, 죽지 않겠다는 거예요? 죽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말하는 성령 이후에 주께서 말하는 회개란 뭐냐? 나랑 같이 죽자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다른 말로 하면 너는 나의 징후여야 되고 이 이성밖에 모르는 이성으로 질서 잡힌 이 세상에서 특이성을 보여줌으로써 이 평평한 세상에 인간의 이성과 권력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자발적인 어떤 윤곽이라든지 굴곡을 생기게 만드는 거예요. 다림질이 불가능한 거예요. 다림질이. 돌출부분이 있고 쑥 들어간 부분이 있고. 그것도 어쩔 수 없이 저절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저절로.

아, 이거 어렵죠. 지금부터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이 검, 칼, 열두 제자도 같이 생각했던 검이 그 뒤에 어떤 식으로 계속 권력을 발달시키고 있는가를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예요. 지금부터는 어렵지 않아요. 앞부분은 전체적으로 압축을 했기 때문에 어려웠는데….

쉽게 말해서 자기생활과 신앙생활이 절단 나는 거예요. 끊어지는 거예요. 단절되는 거예요. 단절. -생활(生活), -생활(生活). 자기‘생활’, 신앙‘생활’. 자기생활은 일상생활이죠. 자기 일상생활과 신앙생활 중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보통 이 세상에서 누가 하는 걸 말하는 겁니까? 내가 하는 걸 말하죠. 내가. 난 엄마 옆에 있는 게 최고 좋아. 일상생활이죠. 내가 하는 거죠.

일상생활을 내가 하니까 신앙생활도 누가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한다고 생각하죠. 이것을 절단시키는 겁니다. 자기생활은 자기가 하되, 신앙생활은 본인이 하는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죽음이니까. 생활이라는 것은 죽으려고 하는 게 아니고 살려고 하잖아요.

성도한테는 신앙생활 자체가 성립 안돼요. 신앙생활은 누가 하느냐 하면 주님이 주님의 죽음으로서 드러내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드러내는 신앙생활을 크게 쓰겠어요. 성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신앙생활은 뭐냐 하면 이거에요. ‘지옥 확인’. 지옥 확인입니다.

예수님이 죽잖아요. 자살하진 않아요. 예수님에게 누가 덮쳐요. 평평한 질서체계가, 권력체계가 덮는데 이 덮는 권력체계가 요지부동으로 그냥 밀어붙입니다. 뭐 하나님이 오든 예수님이 오든 메시아가 오든 관계없어요. 권력체계는 막아설 수 없어요. 막아설 수가 없다고요. 누가 그렇게 하는 거예요? 주님께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내가 예수 믿고 바르게 살면 저 사람이 회개하고 반성하고 교회 나오겠지, 그러한 환상은 버리세요. 인간의 이성체제는 그냥 브레이크 없는 거예요. 브레이크 없는 벤츠 같아요. 그냥 밀어붙이고 나가는 거예요. 음주운전도 그런 음주운전이 없어요. 그냥 밀어붙여요. 막아설 수가 없다고요.

그럼 성도는 어떻게 사느냐? 거기에 받쳐서 깔리면 되는 거죠. 그게 뭐냐? 지옥 확인하는 거예요. 이상한 기대, 어떻게 바르게 기도하면 변화 받아서 회개하고… 이상한 기대는 안하시는 게 편해요. 안하시는 게 좋습니다. 안하시는 게. 그건 인간의 이성, 권력을 얕봐도 너무 얕보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여러분들이 이해하시니까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진행해봅시다. 그다음 쉬운 것, 아니 이게 쉬운 건지 어려운 건지 잘 구분 안 되는데…. 기독교 세계관하고 복음의 세계관이 정반대입니다. 이게 정반대에요. 복음의 세계관은 방금 제가 이야기했어요. 지옥 확인. 기독교 세계관은 뭐냐? 인간이 말없는, 이게 중요해요, 말없는 신에게 말을 건네는 것. 이게 기독교 세계관이에요.

여기 뭐가 중요하다 했어요? 말없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계시는 죽으러 왔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자기 죽음과 관련되어 있고, ‘너도 나랑 같이 죽어’ 그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답변하거나 상담할 거리는 하나도 없어요. 제가 전에 설교 때 했죠.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치료는 뭐냐? 죽는 거예요. 죽는 것보다 더 깨끗한 치료방법은 없어요.

그런데 기독교 세계관은 뭐냐?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기독교니까 하나님에게 예수님에게 말을 건넴으로써 뭐를 수호하려고 하는 겁니까? 이 기독교 세계관을 수호하려는 시도가 기독교 들어오고부터 계속되었어요. 지금까지 계속됩니다. 어떻게 계속되었는가? 이게 교회사에 쭉 나와 있어요. 기독교 세계관의 수립.

그러니 기독교 세계관은 무엇과 반대입니까? 복음의 세계관하고는 정반대가 되죠. 정반대니까 기독교 세계관을 다른 말로 두 자로 하면 뭡니까? 이게 ‘지옥’이 되죠. 기독교 세계관이 지옥 되는 겁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반드시 여기에 무엇이 작용되어야 되는가? 인간의 이성이 작용되어야 돼요. 인간의 이성. 기독교로 평평하게 되는 거예요.

콘스탄티누스 대제(Magnus Constantinus). 로마가 있는데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유럽 이렇게 있는데 여기 이탈리아, 프랑스 이쪽에 있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이쪽 이탈리아를 장악하고 있는 황제(막센티우스)와 마지막 결전을 해서 황제가 누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전쟁에 나설 때에, 그 사람이 PX가 겹친 표시로 승리를 했다는 거예요. 이게 그리스어로 ‘그리스도(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에요. 그리스도로 이겨라. 그걸로 이겼다는 거예요.

그때부터 서기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어요. 드디어 이탈리아를 점령하고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는데 밀라노 칙령이 뭐냐 하면 모든 로마 시민들은 자기가 원하는 종교를 자유롭게 믿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기독교 성직자는 부역에서 제외한다. 일종의 특혜가 되는 겁니다.

그 당시 동쪽에서는 그전에 기독교 신자에 대한 박해가 심했거든요. 박해가 심해도 동쪽 터키 이쪽에는 기독교 신자가 20%였고 나머지에는 10%였어요. 그렇게 박해해도. 그런데 391년 테오도시우스라는 황제가 기독교를 믿을 수 있다,가 아니라 기독교를 아예 국교로 정해요. 국교로 정하고부터 전체 기독교 신자가 80%로 증가했어요. 모든 공직에, 경찰, 군인, 그땐 경찰이 없었지만 하여튼, 모든 데에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 공무원이 될 수가 없었어요. 군인도 될 수 없고.

갑자기 신자가 급증합니다. 뭐 성령이 역사해서 그래요? 어떻습니까? 왜 갑자기 불어났죠? 칼. 다시 말해서 기독교라는 칼, 이 칼보다 더 센 칼이 없다는 것을 그 당시에 백성들은 감 잡은 거예요.

다시 한번 봅시다. 전에는 1.자연이 인간을 지배했죠. 지배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잡신들을 많이 섬겼어요. 자연마다 신을 하나씩 해서 그냥 비리비리 기었단 말이죠. 그러다가 인간이 그다음부터는 뭐를 지배했습니까? 2.인간이 자연을 지배하죠. 여기에 동원된 게 뭐라고 했습니까? 이성이에요. 이성. 신에게 제사할 거 없다. 우리가 신의 비밀을 뽑아내서 그걸로 체계를 잡으면 되잖아, 체계. 그러면 하늘에 있는 신을 쳐다보고 제사할 게 아니고 우리의 지식과 이성을 뽑아내서 우리가 신의 질서를 다룰 수 있으면 되잖아.

그 다음에 세 번째가 뭡니까? 3.인간이 인간을 지배하죠. 보다 이성적 인간이 보다 무식한 인간을 다스리면 되겠죠. 그럼 이성적이라 하는 것은 그만큼 학문적으로 수준이 높은 자. 결국 이건 고위층이 돼요. 고위층.

이런 (세 가지) 과정을 통해서 이 안에 어떤 자세한 게 들었나? 인간이라는 것은 이렇습니다. 인간이란, 모두가 나의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요. 타인은 내 이야기를 해주는 대상체라고 여깁니다. 이걸 흔히 ‘관심사’라 해요. 관심사. 사람은 타인의 관심을 먹고 사는 거예요. 관심이 없으면 그 모임이라든지 단체에서 들썩들썩 나가요.

이건 뭘 의미하느냐 하면, 강의할 때 여러 번 했어요, 인간은 주변에 있는 타인의 평이 곧 내 자아가 되는 거예요.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내 이야기를 좀 해 달라 이 말이죠. 전에도 설교 시간에 이야기했는데 결혼 왜 한다 했습니까? 결혼을 왜 하느냐? 말이 통하니까 결혼을 하는 거예요. 말이 통한다는 말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거기에 대해서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 사람하고 결혼할 용의가 있다.

그런데 뭐 남자가 없다, 이 말은… 남자가 왜 없겠어요. 있는데 나보고 ‘너 누구고?’하고 그냥 지나가니까. 왜 나한테 관심이 없어? 내가 그렇게 못 생겼어? 내가 그렇게 뚱뚱해? 뭐 온갖 억측들을 전부 내세우는 거예요. 내 집안이 변변치 못해서 그래? 뭐 이런 거.

그런 데에 머리를 쓴다는 것은 인간이라 하는 것은 나의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는 거예요. 이 나의 이야기를 모을 때, 권력이 나에게로 굴러들어오는 거예요. 권력이. ‘봐. 내 편 많아.’ 이렇게 되는 거예요. 내 편 많아. 그런데 이것은 내가 타인에 대해 일종의 지배하는 게 되는 겁니다. 타인에 대한 일종의 지배.

지배가 되는데, 이렇게 남들이 다 나에게 이야기해주기를 다 원하지만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가 되고 이야기되는 사람을 영웅이라 해요. 영웅은 나중에 뭐가 되겠습니까? 왕이 되겠죠. 왕.

그러니 왕이라 하는 것은… 권력 속의 인간 중에서 최고의 권력자가 왕이 되는 이유가, 내가 뭐 감기 들고 목 쉬고 해도 별로 안 알아주는데 만약에 왕이 감기 걸렸다 하면 온 국민이 그렇게 관심사를 보내죠. 그러니까 내 이야기보다 왕 이야기가 월등히 더 많다 이 말입니다.

‘우리 집안이 말이야. 우리 집안에 이런 사람 있어.’ 왜 자기 이야기 안하고 자기 집안 이야기를 하냐 이 말입니다. 상견례 가서 ‘얘 형님이 판사입니다.’ 지금 판사하고 결혼합니까? 얘하고 결혼하지. 신랑 형이 판사인 것을 왜 언급합니까? 우리는 권력을 만만치 않게 갖고 있다는 거예요, 권력을. 보통 뼈대 있는 집안이 아니란 거예요. 뼈대만 남았지, 뭐.

그러니까 모든 인간이 ‘권력은 나쁜 거다’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원하고 있어요. 이성에 의해서 권력을 추구하는 이걸 ‘주체’라 해요. 주체가 뭐로 바뀌느냐? 주체가 개별화로 바뀌어요. 주체가 개별화가 되면 이미 갖고 있는 권력을 기존의 나보다 센 권력 앞에 비굴하게 굽신굽신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권력을 챙기는 식으로 자기생활을 하는 거예요.

‘제발 나보고 집에서 나가란 소리하지 마. 아빠, 엄마 관심 없으면 아무도 나한테 관심 없어.’ 아빠, 엄마 있음이 자기한테 하나의 권력이 되는 거예요. 그 권력이 있을 때만 자기는 주체가 되는 거예요. 주체가. 그래서 내가 몸이 있다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요. 주체가 확립되어야 돼요.

내가 여기 있어도 너 있나? 하고 관심 못 받는 사람들, 그걸 노숙자라고 이야기합니다. 노숙자에게 관심 없어요. 그런데 노숙자가 어느 날, 이상하게 바람에 날려 오는 로또에 당첨돼서 1등 돼가지고 그다음부터 중고 벤츠 한 2500만원주고 사서 타고 돌아다니면 그 다음부터는 그거 가지고 어디 가겠어요? 자, 노숙자가 벤츠 탔다. 갑자기 양복 딱 입고 제일 먼저 어디 가겠습니까? 자기 노숙생활 했던 그 자리에 가겠죠. ‘나 이런 사람이야.’ ‘야, 부럽다. 나 너희 회사 자리 나면 취직시켜줘.’ 갑자기 굽신거리죠. ‘너 노숙할 때 빵 남은 거 내가 반 나눠줬잖아.’ 이런 식으로 환심을 사고 관심을 획득하려고 애쓰는 겁니다.

그러면 기독교 세계관이란 것은 뭐냐 하면 말없는 신에게 호소를 함으로써 뭐를 정당화하느냐 하면 이 기독교 로마세계 자체가 하나님에 의해서 인정받은, (내 이야기를 해줄) 그 타자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 로마시민 전체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왕이 하는 거예요. 콘스탄티누스 대제 그 사람은 죽을 때 세례 받았어요. 그 그림이 나와 있습니다. 세례 받은 그림. 기독교를 국교로 하고 난 뒤에 기독교 신자가 80% 되었다는 사실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1차 대전 끝나고 난 뒤에 유럽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 제국 밑에 유고 연방이 있었어요. 유고 연방 아래 그리스 있고 지중해 있고. 있었는데 2차 대전 때 히틀러가 크로아티아를 독립시켜놨어요. 사실은 독립보다는 위성국가죠. (크로아티아는 나치 독일을 지지하고 부역하며 독일 지지하에 독립)

이름이 안테 파벨리치 (Ante Pavelić, 1889-1959)라는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은 크로아티아 독립국이 세워지면서 국가 원수로 취임했는데, 유고 연방에 보면 슬로베니아-천주교, 크로아티아-천주교, 세르비아-러시아 정교, 중간에 보스니아-이슬람, 나머지는 잡동. 왜냐하면 오스만 제국이 1차 대전 때 이곳을 지배했기 때문에 이렇게 잡종이 섞였었어요.

아까 얘기한 안테 파벨리치라는 사람이 뭘 했느냐 하면, 천주교 신자가 아니면 유고 이 땅에 살 수 없습니다, 해서 종교 개종을 시도하면서 인종 청소를 했어요. 몇 명 죽었는가? 백만 명 죽었어요. 백만 명. 천주교 신자가 아니면 다 죽였습니다.(세르비아인 대량학살)

그럼 어떻게 천주교 신자인지 아는가? 십자가 성호를 한번 그어보라 해요. 위에서 아래, 왼쪽, 오른쪽 순서로 하면 천주교 신자에요. 그런데 세르비아 동방 정교는 위, 아래하고 오른쪽, 왼쪽 순서로 해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순간적으로 딱 물을 때 순간적으로 탁 튀어나오는 거예요. 3곱하기 3은 얼마? 9. 손가락도 천주교는 다섯 개 모아서 하는데 동방 정교는 세 개 모아서 하거든요. 다르면 단두대 목에 걸어 죽여 버렸습니다. 그때 신부들은 이 독재자를 도와주는 거예요.

왜 그런 짓하느냐?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일요일을 주일로 바꿨거든요. 그걸 왜 바꿔요? 일요일을 주일로 왜 바꿉니까? 벌써 그때 당시로부터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다신 세계를 기독교 일원화로 만드는 거예요. 이게 기독교 세계관이에요. 하나님은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했다는 거예요. 지옥이 이루어진 것도 모르고.

백만 명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르비아가 나중에 2차 대전 끝나고 가만있겠어요? 백만 명 죽었으니까 두고 보자 하잖아요. 티토(Josip Broz Tito, 1892-1980)라는 사람이 등장해서 내전이 벌어져 (안테 파벨리치가) 죽었거든요. 티토라는 유고 사람이 유명한데 소련군에 포로 잡혀 와서 거기서 사회주의를 배웠어요.

빨치산이라 하는 거 있죠. partisan(파르티잔). 우리말로 하면 빨치산. 이 파르티잔 활동을 했는데 사회주의는 뭐냐 하면 이 민족주의, 종교 단일화를 어떻게 하면 없애서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나. 그것은 공산 사회주의 사상이 종교보다 우위에 있는 거예요. 왜? 이성적으로. 이성적으로 맞는 거예요. 종교로 인해 내전이 일어나서 나라가 완전히 엉망된 거예요. 백만 명 죽었잖아요. 그러면 종교보다 위에 있는 게 뭐냐? 사회주의에요. 사회주의가 더 환상적이에요. 환타지에요, 종교보다도.

물론 당연히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 사회주의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라고 이야기했겠죠. 완전히 남미의 해방신학하고 똑같은 거예요. 사회주의, 빈부의 격차가 없는 것이 예수님의 진정한 복음 정신이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Misson 영화에 나오는 것.

그렇게 해서 그다음부터는 민족보다도 사회주의라는 종교에 동조하면 종교를 묻지 않고 형제로 봐 주겠다 해서 그 다음부터는 경제 발전에 치중했고 동유럽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됐어요. 티토. 티토가 87세로 죽습니다. 병들어 죽고 난 뒤에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나흘 동안 전 국민이 애도했습니다. 유고가 제일 잘 살았던 나라에요. 그 시기에.

티토 끝나고 난 뒤에 드디어 세르비아에서 복수의 칼날을 가는 거예요. 밀로 세비치(Slobodan Milosevic, 1941-2006)라는 지옥에서 올라온 검은 천사. 1989년도입니다, 극단적 민족주의로 해서 동방 정교 아닌 거 다 죽여 버려. 이제 복수에 나서는 겁니다. 복수에. 동방 정교 아닌 거 다 죽여 버려.

그러니까 천주교가 이슬람교와 손을 잡았어요. 이게 중요해요. 천주교와 이슬람하고 손을 잡는다는 거. 무엇 때문에? 권력 때문에 하는 거예요. 종교고 뭐고 살기 위해서는 뭐. 그 손잡은 나라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요. 손잡은 나라가. 그들과 세르비아가 드디어 한바탕 붙습니다.

그런데 세르비아가 왜 그렇게 세냐? 티토 때 경찰과 군인의 80%가 세르비아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정규군이 힘이 세죠. 그래서 보스니아의 수도, 동계 올림픽으로 유명한 사라예보를 완전히 포위했어요. 거기를 완전히 포위해서 4년 동안 점령하는데 나토(NATO, 북대서양 조약기구)가 해도 너무 심하게 한다 해서 미국에서 평화협상해가지고 물러갔습니다.

여러분 한번 보세요. 어떻습니까? 종교보다 무엇이 더 세다? 민족주의. 종교보다 사회 잘 먹고 잘 사는 이것이 더 세죠. 그렇죠? 이게 역사적으로 증명이 된 거예요. 결국 이 이야기 들어보니 어떻습니까? 권력보다 더 센 게 없죠. 왜? 내가 권력을 추구하니까.

보통 보름이나 설에 해 보고 비는 사람들 있죠. 그들에게 ‘기도를 어떻게 했습니까?’ 물어보면 ‘그저 우리 가정 애들 다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때요? 그게 권력 집중화에요. 권력 집중화입니다. 그러니까 일상생활이라 하는 이것이 얼마나 지옥인가 하는 그걸 주께서는 성도를 통해서 확인해가는 거예요.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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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1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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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