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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강의20240613a 요한일서 2장 27절(기름 부음)-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일서

서울강의20240613a 요한일서 2장 27절(기름 부음)-이 근호 목사

오늘은 요한일서 2장 27절부터 하겠습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여기 이 말씀에서 우리 일반 인간들로서는 수긍하기 힘든 단어가 나옵니다.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한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예수님이 거한다’ 많이 들었던 이야기고 ‘예수님의 정신과 양심이 네 속에 거한다’ 잘 생각하면 수긍이 되는 이야기인데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한다 했으니까 굳이 기름 부음이 우리에게 올 이유가 없다는 말이죠. 이유가.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되면 적어도 기본적으로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게 있는데 예수님으로부터 그만한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받았으면 이제는 누가 나설 차례입니까? 이제 인간이, 정신 차린 인간이 나서서 주님을 위해서 섬기고 봉사하고 충성하고 헌신하는 게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남아있다 하죠. 그게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은혜를 받았으면 그다음에 뭐가 있느냐? 뭐와 뭐가 있다. 윤리와 도덕적인 삶. 윤리적 삶과 도덕적 삶을 우리가 의무감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 윤리적 삶, 도덕적 삶을 의무감을 가지고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성령을 받고 은혜를 받은 모습을 드러내고 이런 윤리적 도덕적 삶의 의무감이 쇠퇴하거나 이것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은혜를 안 받은 것이다, 이렇게 단정 짓죠.

위의 이것, 이것이 바로 악신의 주장입니다. 이게 악령의 주장이에요. 왜 이런 게 추가가 되느냐? 이게 뭐가 무서워서냐 하면 실패가 무섭다는 거예요. 내 인생 실패가 무섭다. 그래서 ‘윤리적 도덕적 삶을 의무로 장착하게 되면 나는 이제 앞의 것도 갖추고 뒤의 것도 갖췄으니까 둘이 합쳐서 온전한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전반전 뛰고 후반전 한 골 넣고. 예선 3차 진출하고. 이래야 온전하게 구색은 다 갖췄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뭘 추구하느냐 하면 천국을 가고 구원을 따내는 데 있어서 실패할까봐 무섭고 두렵다는 그러한 본인 심정의 표현이에요, 이게. 그리고 이것이 모든 교회사(敎會史)에, 사람들에게 먹힙니다. 이것 때문에 교회가 운영되고 이것 때문에 교회가 부흥되고 교회가 유지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뭘 모르느냐 하면 ‘아무도 옳지 않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아무도 옳지 않아요. 아무도 옳은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가능성이 있으면 ‘실패하면 안 돼’ 이렇게 되거든요.

집안에서 안정된 직장을 권해서 학원비 대가면서 ‘너는 공무원 해야 돼. 공무원 해야 돼.’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 준비하는 내내 공무원 시험은 에듀윌? 공무원 시험에 열중한다는 것은 뭐가 무서운 거예요? 자기 인생이 꼴아박거나 망하거나 실패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 실패하면 안 되죠? 왜 내 인생에 실패가 없어야 되죠? 그 근거를 한번 제시해보죠. 그 이유가 있습니까? 왜 우리는 구원에 실패해서는 안 되죠? 거기에 대해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는 사람 있어요?

은혜 받았으면 윤리적 도덕적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악신이 그동안 이 기독교라 하는 것을 자기가 주물렀다는 거예요. 지배했다는 겁니다. 이게 악신이고 악령의 주장이라면 그럼 성령의 주장, 주님의 생각은 뭐냐? 지금까지 쓴 것은 싹 다 지우겠습니다. 이게 악령의 주장이라면 자신 있게, 성령의 주장은 뭐냐?

로마서 11장 35절,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갚으면 안 되는 겁니다. 갚으면 안돼요.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해서 갚으면 안 되는 겁니다. 갚겠다는 것은 악마의 노림수에요. 악마가 인간보고 배후에서 그렇게 시킨 겁니다.

성도에게는 의무감이란 자체가 성립 안돼요. ‘은혜 받았으니까 선교하고 은혜 받았으니까 헌금하고 은혜 받았으니까 봉사하라.’ 이런 것은 성령의 세계엔 없어요. 악령의 세계엔 있어요. 인간은 자기 인생에 구원에 혹시 실패할까봐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기 때문에 실패할까 하는 그 두려움을 자기 나름대로 하고 있는 의무감으로 총동원해서 이 실패 가능성으로부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평생을 분투노력합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 교회에 어떤 목사가 이와 같은 주장을 한다 합시다. ‘한국 교회는 비성경적인 주장을 한다. 뭐냐? 믿음으로 구원 받으라 해놓고 그다음부터는 행함은 없다. 따라서 그것은 반쪽짜리 복음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친 바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은 지금 뭘 모르고 있느냐 하면 하나님에 대해서는 인간이 이 세상 어떤 누구에게도 피해 보상을 해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피해 보상을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남에게 피해 보상할 입장에 있지 않고 그러한 자격이 없어요. 왜 그러느냐 하면 모든 인간의 행위는 타인과의 행위가 아니고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죄로 집결되기 때문에 그래요. 사람 같으면 한 20퍼센트, 속건제에 나오잖아요, 20퍼센트 갚아주면 되는데 하나님에 대한 범죄는 갚을 길이 없다는 게 기쁜 소식이에요. 이게 기쁜 소식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거기에 혹했으면 여러분들은 쏙았어요, 쏙았어요. 여러분들 속은 겁니다. 본인이 속은 거예요. 왜 속아 넘어갑니까? 행여나 내 구원에 실패할까봐 하는 공포와 두려움, 마귀의 꾀임에 놀아난 거예요. 협박, 공갈과 겁박에 놀아난 겁니다.

율법 수행과 성령 수행의 차이점은 율법 수행은 우리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합니다. 예를 들면, “네가 맹세했거든 갚아라” 이렇게 나와요. 그런데 산상설교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맹세해도 안 갚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아예 원천적으로 차단시켜요. “맹세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가 우리 속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맹세하지 말라는 율법을 지키고 싶어 해요. 참 이게 왜 그러느냐 하면 우리는 구원에 실패하지 않고자 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맹세해서는 안 된다. 맹세 안해야지. 안해야지.’가 우리에게 공포와 두려움과 실패에 대한 겁을 제공합니다. 복음이 복음으로 들어와야 되는데 복음을 가지고 뭘 하려고 해요. 내 인생을 스스로 만회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악신의 말이 인간세계에 다 먹혀들어가요. 제가 여기에 악신의 말을 크게 한번 써보겠습니다. 이게 욥기에 나오는 건데요. 빌닷이 이야기한 거예요.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에는 창대하리라(욥 8:7)’ 다단계 회사에서 얼마나 좋아하는 구절이겠습니까. 약간만 투자하시면 나중에는 다이아몬드 됩니다. 이런 다단계 회사의 속임수, 빌닷이 주장하는 이게 다단계인지 교회인지 분간도 안 됩니다만, 왜 이런 데에 말려드는가? 뭔가 내가 창대해야 될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거예요. 창대해야 될 자격이 있다고.

율법은 모든 인간을 죽이는 기능이에요. 율법은 모든 인간을 죽이는 기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명기에서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고 율법을 못 지키면 저주받는다 했죠. 그 대목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3장에서 그걸 어떻게 해석합니까? 율법을 지키면 복을 받고 율법을 안 지키면 저주받는다는 그 율법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뭐라고 해석하느냐 하면 이렇게 해요. 율법을 준 것은, 모든 인간은 의인은 없고 하나도 없으며 입을 막고, 입을 아예 틀어막고 저주 아래 있게 하려 함이라.

다시 말해서 율법을 제시한 것은 복과 저주가 균등하게 공평하게 주어졌다고 하는 것인데 사도 바울은 이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 저주만 주어졌다고 해석 내려버려요.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그 당시 유대인한테 이단 소리 들어도 싸죠. ‘너는 눈도 없나? 성경을 성경대로 해석해. 네가 율법을 준 하나님이 아닌 이상은. 감히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반토막내고 네 맘대로 해석하면 안 되잖아.’ 하는 게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에 대한 비난의 근거였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지 않는 분이 사도 바울보다 앞서 계셨죠.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예수님이었어요. 예수님이 왜 율법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지 않고 그 당시 통용되는 율법을 왜 거부했습니까? 그래야 십자가에서 인간한테 매 맞아 죽게 되니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면 ‘율법을 어떻게 해석하자’가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는 먼저 주어진 율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 문제죠. 율법을 인간들이 받기 전에 인터셉트, 새치기하고 들어온 분이 계셔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먼저 율법을 주신 분이고 율법을 주셨기에 율법의 정신, 취지에 대해서 예수님만큼 아는 분은 없어요.

유대인들은 복에 빠져가지고 ‘내가 율법 따내면 그 보상도 같이 주어진다’ 여기에 몰두해서 다이렉트로 직접 이 율법을 본인이 해석하려고 덤벼든 겁니다. 왜 그런가? 본인의 인생의 가능성을 도박으로 걸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사도 바울은, 그러지 마라. 네 인생을 율법에다 말씀에다 걸지 마. 왜? 너는 애초부터 죄인이니까. 네가 그럴 자격도 없다는 거예요. 저주받아 죽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네가 뭐 밑천이 있나? ‘하나님 이거 받으소서.’ 안 받아, 그거는. 더러워서 안 받아. 더러워서 안 받아요. 주님께 바칠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맹탕이라. 차라리 세리와 창기가 너보다 먼저 천국 간다. 왜? 내놓을 게 없기 때문에 그래요. 내놓을 게.

예를 들면 우리가 타인에게 경제적 피해를 줬다든지 뭐 욕설을 했다든지 진단서 끊을 만큼 신체적인 상처를 줬다 합시다. 상처를 줬잖아요. 그러면 상대방에게 피해 보상을 하라 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이 아파서 일 못하는 일당부터 해서 병원비 다 갚아줬어요. 그게 피해 보상 된 겁니까?

인간사회에서 인간 대 인간끼리는 예를 들어 차를 좀 긁어놨는데 차 견적이 2만원 나왔어요. 그래서 최태원이 한 1조 2천억 줘버렸습니다. 2만원 나왔는데 1조 2천억 줘버렸어요. 그럼 피해 보상됐습니까? 2만원짜리 나왔는데 1조 2천억 받고 하는 말이, 나는 돈을 원한 게 아니고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고 하는 거예요. 참… 돈은 돈대로 챙기고.

진심어린 사과를 원한다. 네가 뭔데? 아니, 진심어린 사과가 됩니까? 내가 네가 아니고 네가 내가 아닌데. 다시 말해서 네가 사과하면 내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리라. 눈물 흘리지 말고, 시중에 약국 가서 만원만 주면 인공눈물 있어요. 그거 사서 넣으면 돼요.

지금 인간이 어느 정도로 악하냐 하면 자기 인생 조진 것에 대해 남한테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있어요. 그 정도로 악해요. 그게 어디에 속하느냐? 하나님에 대한 범죄로 직결되는 태도에요. 그 마음 자세가. 모든 인간의 행동과 생각은 하나님을 창으로 찌르는 행동이에요, 그 행동들이.

내 인생 조진 것 남편 잘못 만나서 그렇다 하고. 그 남편 만나라고 뭐 강제로 집어넣었습니까? 옆에서 김정은 인민군 와가지고 그 남자하고 동침하라고 결혼식 하라고 뒤에서 총가지고 위협했습니까? 이 남자 아니면 못 살겠다고 못 살겠다고~ 죽겠노라고 죽겠노라고~ 술 한 잔 먹고 창문 두드리면서 창문을 열어다오. 나는 당신한테 꽂혔으니까 내 인생 책임지라고 책임지라고 해가지고 남자가 사천만 땡겨주면 가줄게 해서 사천만원 주고 결혼해놓고, 내 인생 조진 것은 너 때문이다. 뭐 어쩌란 말이에요, 그럼?

지금 인간사회가 어느 정도 개판인가 하는 것은 기독교 교리가 어느 정도 개판인가와 똑같은 거예요. 기독교는 인생 만회를 위해서 만든 사이비 종교입니다. 은혜 받았으니까 의무감으로 책임을 다하면 하나님이 구색 맞췄다 해서 천국엘 간다. 그렇게 은혜로운 구원 받고 행함으로써 상급 받고. 보너스 받고.

주님의 뜻은 간단해요. 아예 죽여 버려요. 아예 죽여 버린다고요. 왜? 이런 짓 하니까 죽일 만하죠. 이런 짓 하니까.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이.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가 자기가 제사에 실패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실패하니까 복수할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누구한테 복수합니까? 아벨에게 복수하죠. 아벨에게 복수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고 간주할 수밖에 없어요.

인간 대 인간의 행위가 보이지만 아닙니다. 인간의 행위 모든 것은 하나님에 대한 범죄로 집결되어 있고 연결되어 있어요. 전기가 지지직 하고 주님에 대한 공격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내에 율법을 확장시켜 놨고요. 율법의 촘촘한 망이 결국 십자가 사건으로 완성이 되어버립니다. 거 봐. 내가 뭐랬어. 율법의 망에 걸려든 모든 인간들은 평소에 율법에 대한 인상과 그 태도가 결국 마지막에 어디서 집약됩니까? 메시아를 죽이는 쪽으로 집약되죠. 메시아를 죽이는 쪽으로.

로마서 12장입니다. 로마서 12장 19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갚지 말아야죠.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네가 남한테 피해 보상을 요구한다든지 너는 내 손에 죽어야 한다든지 네 인생 때문에 내 인생 조졌다고 할 수 있는 자격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왜냐? 아무도 옳지 않기 때문에.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인생 살면서 어렵고 힘든 건 뭐냐? 타인을 통해서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순간 순간을 내 인생으로 채우고 있다는 것을 만나는 타인을 통해서 깨닫게 하는 거예요.

자식을 키우면서 진심으로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아들아, 너한테 몹쓸 짓을 했다. 아들아,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서 내가 하나님 앞에 몹쓸 짓을 했다. 나는 하나님보다 내 자식을 우선시하는 그런 나쁜 짓을 난 매일같이 너한테 행사하고 있다. 매일같이.” 수학여행 보내줘, 학습지 사줘… 중학교 진급 안하고 밖에 공장 보내서 앵벌이 시켜도 되는데 중학교 넣어줘.

어떤 의미에서 부모가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자식을 앞장세워서 하나님이 저지른 망가진 내 인생을 하나님한테 보란 듯이 복수하는 행위에요. 복수하는 행위. 결혼 안 한 사람은 좋아서 히 웃는다. 잠재적 결혼입니다. 언젠가 좋은 사람 만나면 하게 되어 있어요.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요구는 이겁니다. “나한테 갚지 말라.” 나한테 갚을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게 복음이에요. 갚을 자격이 안 된다면 우리는 뭐냐? 쪼다죠. 그게 복음이에요. 얼마나 네가 무능한가를 네가 알란 말이죠. 자꾸 예수 믿고 유능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란 말이에요.

무슨 비유? 달란트 비유? 한 달란트? 아이고 참 내. 아니, 달란트 비유를 제대로 알고 또 그 말씀대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열두 제자 가운데 있습니까? 다 토꼈어요. “목자를 치니” 그다음에 뭡니까? 양다워야 되죠. 목자를 치니 그중에 두 마리 양은 헌신했다, 그런 건 없어요. 목자를 치니까 양다움이 뭡니까? “각기 제 갈 길로 갔거늘”. 거 봐.

너는 그런 식으로 평소에 살아왔잖아. 그런 식으로. 목자를 언급하는 것은, ‘좀 이용해볼까? 예수님을 통해서 인생 만회해볼까?’라는 꿍꿍이속이 있었던 거예요. 오늘날 교인들하고 똑같아요.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하면 사람들 뭐라고 하는 줄 압니까? ‘그렇다면 내가 교회 안 나간다.’ 이러거든요. 처음부터 너는 교회를 음흉한 마음으로 갔기 때문에 와도 의미 없고 안 와도 의미 없는 거예요.

그러면 목사가 교회를 세운다? 이거 뭐 다단계죠. 하나 걸리기만 해봐라. 사기 칠 인간 걸리기만 해봐라. 딱 물면 그거잖아요. 은혜 받았으면 적어도 양심이 있으면! 인간적으로! 우리 인간적으로 합시다. 양심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피까지 흘려줬는데 피까지 흘려줬으면 적어도 김천 대학교 하나는 인수해야 될 거 아니냔 말이죠. 박옥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복음 전파에 무슨 감? 사명감을 감당해야 하늘나라가 확장되지. 확장을 왜 니가 해? 니가 왜 신경 쓰는데? 니가 나폴레옹이가? 정복욕에 빠져가지고.

뭐 한국 교회 썩었다고? 한국 교회는 썩은 게 아니고 없어요, 아예! 뭐 있어야 썩든지 말든지 하지. 아예 없는데 무슨. 썩을 것이 없어요. 한국 교회는 없어요. 교회는 있어요. 그런데 한국 교회는 없어요.

자, 주님의 십자가 이후에 인간들이 이 십자가에 대해서 어떻게 나올 것을 주께서 뻔히 아시면서 미리 설정(設定, setting)을 한 겁니다. 설정이란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날 더울 때 집에 있는 에어컨 온도를 미리 설정해두면 그 온도보다 낮을 때 안 돌아가죠, 자동적으로. 그게 설정이에요. 딱 정해 놨다. 확정지어 놨다. 그게 뭐냐 하면 기름 부음이에요. 기름 부음.

성령께서는 철저하게 예수님에 종속돼요. 예수님에 예속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미움 받았죠. 성령은 더합니다. 왜? 똑같이 예수님의 미움 받음을 내용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난 뒤에 성령은 그 십자가를 이 세상에 들이댑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뭐냐 하면, 너는 나를 ( )했다. 뭐겠어요? 너는 나를 핍박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질 때까지 예수님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그 동네 안 살았어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동네 살지도 않았는데 왜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사울이라는 사람에게 왜 찾아왔는가? 사울은 예수님의 성령 받은 사람과 관련성이 있어요.

어떤 관련성이 있느냐 하면 스데반 집사를 핍박했거든요. 스데반 집사를 죽이는 사건에 그야말로 준책임자로 현장 책임자로 거기 있었단 말이죠. 현장 책임자로. 일종의 그걸 증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돌로 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른 행동을 한 것이라는 것을 증인으로서 대변해줄 사람으로 사울이란 사람을 한 거예요. 왜냐하면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고 쉽게 말해서 우리 당이다. 우리 당. 우리 편이니까 우리하고 한통속이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스데반 집사는 지금 누구하고 있느냐 하면 성령이 충만했죠, 스데반 집사가. 성령이 충만했다는 말은 스데반 집사가 어디에 충실했다는 말입니까? 주님이 하는 설정에 충실한 거죠. 주께서 설정했다는 말은, 어떤 인간도 나한테 갚을 수 있는 자격자는 없다는, 아무도 없음에 충실한 거예요. 어떤 인간도.

그러니까 ‘예수 믿고 훌륭하게 되어라’가 아니라 예수 믿기 전에도 훌륭하지 않았고 예수 믿고 난 뒤에도 훌륭한 사람은 없음을 설정한 거예요. 그게 기름 부음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얼른 잘 이해하기 힘들죠.

창세기 4장 4절에 보면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했다. 제물을 열납할 때는요. 아벨의 정성을 보고 열납하지 않아요. 제물 자체에 하나님의 뜻, 장차 행하실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있으니까 그 함축된 계획을 하나님 자기 계획이니까 하나님께서 수납한 거예요. 앞으로 그런 식으로 이 땅에서 일할 거라는 것을 아벨이 드린 제물을 통해서 그걸 확인하고 인정해주는 겁니다. 그럴 때 아벨과 주님 사이에는 관계가 성립되는 거예요.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벨하고 하나님하고 관계가 없어요. 관계가 없는데 아벨이 드린 그 제물이 관계없는 아벨과 하나님 사이를 잇게 만든 겁니다. 그 이음에서 투입된 것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에요.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중보자가 되는 겁니다. 아무 상관없는 아벨과 하나님 사이를 이어버린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하고 무슨 관계있습니까? 관계없어요. 모든 사람은 하나님하고 관계없어요. 끊어졌어요. 끊어졌는데,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의 중보자란 사실이 원인도 모르고 이유도 모르는 채 그냥 와버린 겁니다.

물리적으로 이야기해서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 고대 그리스 철학자)라는 철학자는 혼자 측정하고 분석해보니까, 왜 움직이는가? 왜 변화하는가? 물질은 왜 변화하는가? 가만있는 이것(음료수 병)이 왜 이렇게 움직이는가? 그리고 내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이거 한 3년 6개월 간 있으면 못 먹죠. 자체적으로 세균 때문에 변하죠. 왜 변하는가? 왜 움직이는가?

전부다 운동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이걸 운동이라 하는 거예요. 운동. 네 가지 원인(존재의 4원인)을 이야기했어요. 작용인, 형상인, 목적인, 또 운동인. 누가 외부에서 건드려주니까 이것이 움직였다고 하는 거예요. 철학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이건 맞는 말이라 하는데, 성경적으로는 어떻습니까? 성경적으로 그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자의 말이 맞습니까? 누가 여기서 건드려줘야 움직이잖아요. 건드려주면 움직이잖아요. 그러니까 맞잖아, 이렇게 하잖아요.

내가 성질난 것은 네가 나한테 욕설했으니까 화낸 거다. 이것은 작용인이죠. 작용인. 왜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는가? 아버지의 형상이 아들에게 전수돼서 그렇다. 요새 말로 하면 DNA가 있어서 그렇다. 이게 다 틀린 말입니까, 맞는 말 같아요? 이게 다 맞는 말 같죠.

그런데 성경에선 틀린 말이에요. 왜? 성령의 기름 부음의 설정에 의하면 인간은 죽음에 변함이 없어요. 왜? 똑바로 있어도 죽었고 누워 있어도 죽었고 애가 되어도 죽었고 나이 들어도 죽었고. 이 죽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벨은 변함이 없어요. 변함이 없는데 변화를 주는 것은 아벨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끼어들어서 비로소 아벨로 하여금 변할 필요도 없는, 아벨은 구원받을 필요도 없어요, 구원받을 필요가 없는데 아벨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님이 아벨에게 찾아온 거예요.

여러분 표정 보니까 뭐 안 믿는 눈친데…. 뭐를 빼는 거예요? 이 설정에서 뭘 빼는 겁니까? 인간으로 하여금 죄인으로 확정짓는 거예요. 죄가 뭐냐? 모든 인간의 존재 자체가 주님에 대한 공격이고 핍박이고 배후에 원수 악마가 있으니까 대적해서 핍박하는 것으로 설정을 해놓았기 때문에 인간은 설정한 범위를 벗어날 수 없어요. 21도로 설정해놨으면 그다음부터는 19도로 안 내려가요. 에어컨 틀어도. 21도가 한도기 때문에.

이미 인간은 범죄했기 때문에 인간은 전혀 달라지지 않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인간은 죄인이에요. 그리고 그 결과 죽어요. 뭐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때깔 있으니 뭐합니까? 죽게 되면 똑같은 건데. 아무 상관없어요.

주님이 이야기한대로 왜 간단하게 못 삽니까? 은혜 받았으니까 은혜에 대한 의무감으로 바른 생활해야 된다, 이러니까 이제 복잡해지는 거예요. 복잡해지는 이것이 얼마나 이게 사기에 걸려든 안타까운 모습인지. 제가 예를 들 테니까 여러분 답변해보세요. 이게 얼마나 사기꾼에 속아 넘어간 건지.

인간의 행함의 경우 수가 많습니까, 아니면 율법의 성경의 계명 수가 많습니까? 어느 쪽이 많습니까? 어느 쪽이 많아요? 인간 행함의 경우수가 많죠. 이게 많아요. 왜? 율법은 뭐 369가지밖에 안되는데. 인간의 행함의 경우 수, 예를 들겠습니다. 어제 새벽 2시 반부터 3시까지 꾼 꿈. 그 꿈이 율법에 저촉되었어요, 안 되었어요? 인간이 행한 모든 것이 율법이란 그물에 포착됩니까?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다 빠져요.

예를 들어서 순진한 교인이 목사한테 묻습니다. “목사님, 기도할 때 어떤 자세로 하는 기도가 가장 경건합니까? 두 손을 쫙 펴서 모을까요, 깍지를 낄까요? 안 그러면 고개를 들까요, 반만 숙일까요, 90도로 숙일까요? 무릎은 꿇어앉아야 될까요? 내가 지금 관절이 안 좋아서 꿇어앉지는 못하고. 양반다리를 할까요? 한쪽 다리를 세우고 교차로 다리를 꿇어서 할까요? 도대체 뭘 해야 됩니까? 기도를 어떻게 해야 됩니까?”

거기에 대해서 목사가 뭐라고 합니까? 여러분이 목사님이라면 뭐라고 이야기해주겠어요, 순진한 교인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기도는 나쁜 기도가 있고 좋은 기도가 있는데, 좋은 기도가 있고 나쁜 기도가 있는데, 기도 자세와 관계없이 나쁜 내용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만약 하면 그다음부터 그 순진한 교인이 어떻게 나오겠어요? 턱 괴고 다리 하나 걸치고 이럴 거란 말이죠. 세상 제일 편한 자세로. 그러면 목사가 “그건 아니고.” 그럼 도대체 규격을 제시해. 규격을. 어느 정도는 되고 어느 정도는 안 되는지 이야기 해달라.

자, 순진한 교인이 그걸 묻고 순진하게 그걸 요청하는 이유가 뭡니까? 하나님께 보복하려는 마음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께 보복하려는 마음. ‘하나님은 내 인생을 조져도 나는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성의를 보이니까 이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답할 차례입니다. 복 줄 차례입니다.’ 이거잖아요.

진짜 우리가 하나님 같으면 총 쏴 죽여 버려요. 두두두두두두. 오늘 제목을 ‘두두두두두두’로. 우리가 숨 쉬는 것조차도 주님에 대한 도전인데 하나님께서 그걸 은혜로 숨 쉬게 하잖아요. 히말라야 산맥 꼭대기에 한번 꽂아져봐야 아, 숨 쉬는 것 이게 큰 선물이구나. 산소통 메고 나중엔 머리 어지러워서….

주님의 은혜를 어찌 평생 다 갚으리오. 갚으려고 하지 마. 갚지 마! ‘갚으리오’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못 갚지만 그러나 마음가짐은 갚을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 생각도 하지 마. 그 생각도 하지 마. 그 생각 가지면 주께서 뭐 복 줄줄 알고? 아, 네 마음이 가상하도다. “이 도끼? 금도끼?” “제 거 아닙니다.” “은도끼는?” “제 거 아닙니다.” “쇠도끼?” “내 겁니다.” “아이, 가상하도다. 보너스로 금도끼, 은도끼 다 줄게.” 은근히 그거 노리는 거 아니에요? 노리죠.

어떤 아들이 부모한테 효도한답시고 기초생활 연금을 받는 부모한테 전기 자동차를 사줬어요. 자식은 효도 참 잘했어요. 그 부모가 기초생활 잘렸습니다. 차가 사천만원 이상 되게 되면 기초연금이 안 나와요. 아주 큰일 했어요. 부모 위해서 큰일.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뭔가 나보다 더 큰 대상이 있으면 인간은 거기서 힘을 뽑아낼 대로 뽑아내는 식으로 기생,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있죠, 기생해가지고 들어붙어서 자기 살 길을 챙기는 것.

거기에 대해서 강의 제목이 뭐라고요? 두두두두두두. 두두두두. 주님은 돌아가셨는데 인간은 지 살 궁리하고 있어요. 십자가 피 찍어 발라가지고. 십자가가 어디 뭐 파운데이션입니까? 기초 화장품이에요?

기름 부음의 특징은 인간에다가 메시아의 흔적을 새겨 넣는 방법이 기름 부음이에요. 그게 설정이에요. 확정이에요. 장차 메시아는 이 설정에 맞추어서 오신다는 것을 자기의 택한 백성을 가지고 주께서 미리 사용하신 겁니다. 이제 기름 부음이 감이 오십니까? 기름 부음은 구원하러 온 게 아니에요. 주님이 기거할 자기 집 설계도가 기름 부음이에요. 나 네 몸 좀 빌릴게, 그래서 오는 게 기름 부음이라고요.

주님 자신의 일을 위해서 기름 부었는데 이거 뭐 성도가, “저를 성령으로 기름 부어주니 고마워서 성의 표시로 제가 마르다처럼 주님 오실 때 섬기겠습니다. 주님 뭘 좋아하십니까? 짬뽕 좋아하십니까? 탕수육 좋아하십니까?”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그런 쓸데없는 거 하지 말고 네 동생처럼 딱 턱 밑에 앉아가지고 싸가지 없이 말씀이나 들어라. 마리아처럼.”

왜 자꾸 은혜에 보답을 생각합니까? 이것은 아직도 자기 가치에 대해서 그렇게 낮추어 보이기 싫다는 거예요. 내가 진짜 벌레보다 더 못한 그러한 무가치한 인간되기는 내가 용납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신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누가 감히 내 가치를 망가뜨려?’ 이거는 노골적으로 예수님, 하나님 이렇게 비난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자존감, 자존심이 있어요. 모든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 이게 없는 인간이 없습니다.

심지어 베드로는요. 예수님 사랑한다 해놓고는 돌아서서는… “너는 네가 원치 않는 죽음으로 죽을 것이다.” 할 때에 “그러면 저 제자는?” 하고 사도 요한보고 얘기하니까 주님께서 그 심보를 아시고 “내가 올 때까지 살아진다 할지라도 너는 너 할 일만 하세요. 그딴 거 신경 쓰지 말고.” 그랬다고요.

이건 자신의 가치를 운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런 자를 구원할 때 뭐라고 하겠습니까? “너의 가치보다 우월한 능가하는 가치로 찾아갈게.” 이거잖아요. 그게 바로 히브리서 1장에 나옵니다. 기름 부음입니다. 히브리서 1장 한번 보겠습니다. 1장 9절,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그다음 뭡니까?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이건 예수님보고 한 이야기거든요. 예수님을 위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이 세상의 어떤 인간의 가치보다 월등한 가치를 줬다는 증거로서 기름 부음이 있습니다. 기름 부음이 뭐라고 했습니까? 설정한 것, 확정짓는 것. 이래야 네가 다른 것과 차이나는 구별된 것입니다. 이게 거룩이라는 겁니다. 거룩.

그래서 출애굽기에 보면 제사장들을 일반 백성과 차이 나게 할 때 제사장에게 바르는 게 있어요. 출애굽기 28장 41절에 보면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한 그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기름을 붓는데 그럼 인간+뭐가 돼요? 인간+기름이 되겠죠. 인간+기름이 되기 때문에 그 기름이 같은 인간 동류보다 월등하고 우월한 거예요.

그러면 아론이 기름을 가진 겁니까, 기름이 아론을 사용하는 거예요? 기름이 아론을 사용하죠. 기름은 어디서 나왔는가? 제물에서 나오죠. 그러니까 아론은 제물화 된 인격화. 제물 인간. 제물화 된 인간.

제물은 그 당시 모세 율법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자기 백성과 소통하는 매개체입니다. 그게 제단의 제물이에요. 제물 없으면 하나님과는 연락이 안 됩니다. 그 제물의 모든 규모와 그런 모든 종류는 하나님이 친히 없는 데서 나온 율법을 통해서 주신 거예요.

그러면 아론과 모세는 그 율법에 낚인 거죠. 율법에 낚인 거죠. 율법에 낚일 때, 그걸 기름 부었다 하는 거예요. 그럼 오늘 본문도 그렇지만 “너희에게 기름 부음이 있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네가 바로 제사장이라는 거예요. 뭐 제사장 된다고 해서 월급 더 줍니까? 월급 더 주는 게 아니고, 아까도 얘기했죠. 내 쪽에서 하나님께 추가적으로 뭘 갚는다든지 할 게 전혀 남아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 기름 부음의 취지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평생 동안 수고하고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죠. 나라는 짐에서. 나. 나의 가치라는 허망한 환상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우리도 한 10분간 벗어나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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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1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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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