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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수요설교(240612) 요약 말라기 1장6-8절 (본질의 노출)자유게시판말라기

수요설교(240612) 요약 말라기 1장6-8절 (본질의 노출)

어제 수요 설교 요약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어제 수요 설교 내용에 몇 가지 요소가 포함이 되어있냐 하면, 주의 이름, 아들 개념 문제, 제사 문제, 더구나 이 문제를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난 뒤에 책망을 했다 이 말이죠. 멸망하고 난 뒤에 책망했기 때문에, 그들 유대민족은 버티기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고 있는데, 거기다가 말라기가 일방적으로 책망을 했다는 거거든요.

책망을 한다는 말은, 알아서 잘하란 뜻이 아니고, 너희들은 잘렸다는 뜻이에요. 희망을 주는 게 아니에요. 너희들이 멸망한 이유를 그냥 일방적으로 퍼붓는 게 책망이에요. 그러니까 그들이 “예, 무엇 때문에 책망하는지 제가 이해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올 리가 없어요. 오히려 반발심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언제 그렇게 더러운 제물을 드렸냐고 반발심이 나온다는 것은 반발심이 나옴으로써 가속화되겠죠. 그들 유대나라는 파장 중에도 파장이다. 끝나겠지요.

그러면 말라기 선지자의 말 앞에 우리가 현장에 인간으로서 있다고 했을 때에,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냥 망하게 하면 되잖아요. 책망하려면 뭔가 개선의 여지가 보일 것을 기대하면서 책망을 하든지, 책망해봤자 말라기가 그야말로 마지막 末이라 말라기인지..이미 끝났으면 곱게 끝내버리든지, 아니면 책망을 하면 “예, 잘못했습니다.”하고 회개하든지 해야 되는데, 그것도 아니고 책망했는데 반발하고 반발하는 거 보고 “이거 봐, 반발하는 거봐. 그러니까 너는 모르잖아. 모르니까 너는 이제 작살나야 돼.”하고 왜 굳이 그걸 확인 사살하는 식으로 말라기 선지자가 왜 거기에 이미 끝났는데..

이제 성전도 없어요. 성전 같은 성전도 없고, 왕도 없어요. 국가도 아니에요, 그냥. 공동체도 아니고 제사장은 있으니까 그냥 제사 드리면서 꾸역꾸역 ‘메시아 오시겠지’ 하면서 막연한 기대만으로 버티는 마지막 남은 그 단체에다가 아주 그냥 군화발로 밟듯이 끝까지 밟는 식으로 “거 봐, 내 예언대로 너희들 망했잖아.”라고 확인 사살 들어가듯이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뭐냐는 거예요.

그 이유를 아들 이야기, 그 다음에 이름 이야기, 그 다음에 제사 이야기 이런 걸 다 해서 설교가 돼야 되는 거예요. 그리고 특히 그 중에서 제사법을 위반했다는데, 구체적인 현장을 우리가 잡았습니까, 포착했습니까? 판사는 제 집에 있었고, 재판하러 나왔는데 피고와 원고 말이 달라요. 어떻게 해야 돼요? 현장 검증을 우리가 못하잖아요.

이쪽 말 들으면 이쪽 말이 맞고, 저쪽 말 들으면 저쪽 말이 맞는데, 우리가 판정내리는 그 말라기 판정할 때, ‘이건 말라기가 좀 심했네.’, ‘아, 이건 제사장이 정말 잘못됐구나.’ 하고 한 쪽 편을 들 수 있는 중립적인 위치에 있지 않단 말이죠. 중립적인 위치에 있지 않으면, 말라기 해석 못합니다. 해낼 수가 없어요.

자기들끼리 싸우는데 그 말씀을 보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되어야 됩니까?’라는 질문 자체를 끄집어낼 수가 없죠. 우리는 참관인이고, 방관자가 되기 때문에. 말라기 말씀이 맞겠지, 그런데 극구 아니라고 부인하는 거 보니까 말라기 말 가운데 과장된 것이 없는가? 어떻게 병든 것을 드리는가? 어떻게 제물로 병든 것을 줄 리가 있겠어?

말라기 말을 들으면, 어떤 잘못이 있느냐 하면, 병든 것, 저는 것, 눈 먼 것을 드렸다 하면, 그건 뭐가 가능해요? 다음에 제물 드릴 때, 방금 잡은 깨끗하고 싱싱한 것, 눈이 초롱초롱한 것 드려가지고 ‘자, 됐습니까? 또, 또 뭐 시비 걸라고? 자, 자 말라기 선지자, 이거 봐. 이 제물 보라고..삼차에 걸쳐서 정화가 된 이 제물. 또 뭐 제사 잘못 지낸다고 시비 걸 거 있으면 시비 걸어봐.“하고 내 놓는다면, 그 다음 부터는 ”그래? 제사 잘 지내는구나. 너희 나라 영원하리라.“ 뭐, 이렇게 나옵니까? 그래서 유다 나라 영원했어요? 아니지요.

숨어있는 다른 게 있다는 거예요. 숨어있는 다른 걸 묘사할 때, 제가 본질과 존재라고 표현한 겁니다. 본질과 존재. 일각수 이야기. 분명히 본질은 있는데, 막상 일각수라는 동물은 신화적 존재로서 없어요. 본질은 설명할 수 있으되, 막상 그 본질과 합하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게 뭐냐, 말라기 1장에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 할 때, 그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야곱은 너희들이 없어져야 그 뒤에 나온다는 거예요.

너희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야곱의 자손이라는 그 자기 자존감, 정체성 이것이 그들에게는 본질로 작용한 게 아니고, 존재로 작용한 거예요, 존재로. 존재로 작용해서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고자 하는 쪽으로 그들은 제사를 드려왔던 거예요. 그러면 그 말라기를 보는 오늘날 많은 교인들도 똑같이 생각해요. ”봐, 그 사람들 봐라. 거 좀 성의 있게 제사 지내지. 병든 걸 드리면 돼? 우리 같으면 그렇게 안했어. 딱 가려서 깨끗한 것 드렸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그 자체가 똑 마찬가지에요.

마찬가지로 그들은 지금 제사 자체를 모르는 거예요. 이스라엘, 유대민족은 진짜 제사의 본질을 완전히 왜곡하고 가려버리는 존재의 기능을 해왔던 겁니다. 그래서 주님의 언약은 야곱은 사랑한다고 이미 확정 나고, 현재 야곱의 자손이라는 인간들은 자기 주제 파악도 안 된 채 자기는 제사 드리니깐 야곱의 자손이라고 우기고 있고, 그러면 여기서 주님이 취할 조치는 뭡니까?

그 유대 민족을 치워버리고 소멸시키는 방법이죠. 소멸시킬 때 언약적 근거가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 근거가 뭐냐? 바로 이사야 1장을 제가 언급한 거예요. ”나는 너희들의 모든 절기와 피와 기름을 안 받는다. 왜냐하면, 너희들이 어려운 사람을 학대했기 때문에 그렇다.“그러면 이사야 1장에 그렇게 나오면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뭘 하면 되겠어요? 그러면 우린 학대하지 말자. 혹시 어려운 사람은 구제하고, 사회보호 정책을 해서 도와주고,

”자, 이정도 하면 됐지요? 더 이상 우린 학대 안했습니다. 도와줬습니다.” 이러면 도와준 거냐 이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 유대나라, 이스라엘 나라가 영원할까요? 아니지요. 주님께서 책망을 한다는 것은, 주님이 생각하는 본질은 누가 아는가? 주의 이름이 알고요, 그 주의 이름을 안다는 그들만 하나님의 진짜 야곱의 아들이 돼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돼요.

그러면 어디로 가야 되냐? 야곱으로 가야돼요. 야곱으로 가면, 쌍둥이가 있죠. 야곱은 쌍둥이였어요. 둘 다 아들인데, 하나가 아들이 아니래요. 하나는 아들이랍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우쭐대면서 ’내가 아들이다‘ 했지요. 야곱은 아들이 아니었어요. 에서에 비해서 아들이지만, 하나님에 비해서 아들이 아니었어요. 아들은 누구냐? 야곱이 아니고,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야곱이 자기가 자기의 존재를 견디는 힘이 박살나야, 환도뼈가 깨져야 거기에 등장하는 것이 뭐냐? 이스라엘이에요. 그분이 누구냐? 진짜 아들이 누구냐?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이 뭘 아느냐? 그냥 예수님이다 하고 끝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뭘 아느냐? 제사를 알아요. 제사법, 율법은 ’무‘를 마주보는 위치에서, 그 속에서 나온 겁니다.

그래서 율법이라 하는 것은 인간 세계에 없는 거예요. 없는 세계에서 인간 세계, 있음의 세계에 들어온 게 율법이거든요. 그러면 율법은 없는 세계를 그냥 있는 세계에 그걸 구체화시키는 기능이 있어요. 그걸 위에서부터, 구체화라 했는데, 아까 강의에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없는 사람 이야기 했죠.

그렇다면 그건 뭐냐, 없는 세계에 계신 분이 제시된 율법을 통해서 미끄럼틀, 슬로프라 했죠. 미끄럼을 타고 쭉 내려와서 어디서 완성이 되느냐? 이 세상에 처박히는 거예요. 이 세상에 처박히면, 처박힌 상태는 어떤 특징이 있냐 하면, 본질을 날것으로 드러내고 더 이상 나의 생존, 내 목숨 부지할 필요가 없는 사람, 오늘 강의에서 같으면 힘 있는 자들이 마음껏 조롱하고 놀릴 수밖에 없는 자들, 그게 누구냐? 예를 들었죠.

힘 없고, 병들고, 자기 몸 하나 가눌 수 없고, 돈도 없어, 그냥 갈 곳도 없는 세상 힘의 공격에, 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걸칠 존재의 껍질조차 없는 것, 덧입을 것 없이 날 것 그대로, 생 것 그대로 방어체제조차 갖출래야 갖출 수 없는 대상, 그들이 바로 주님과 밀착돼 있는, 딱 붙어 있는 자예요. 그래서 제가 설교할 때 이렇게 말했죠. 고아와 과부, 나그네가 이 세상에 있느냐? 없나이다!

전부 다 부자 되고 싶고, 병들고 가난하다 해도 주님만 쳐다보지 않고, 언젠가 나도 건강하게 돼. 나도 돈 많아. 나도 이런 주특기 있단 말이야. 절대 이 땅에 가난하고 병든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진짜 모든 걸 포기한 사람들이 군데군데 등장해요. 개 같은 여자, 그리고 강도, 세리와 창기,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사람, 그런 사람들은 더 이상 내 것, 내 존재, 내 껍질을 내세울 그런 타이밍이 안 되게, 없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건들지 말아야 될 사람은 바로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커버하지 않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사람이에요. 뭐, 자존심도 없어요. 개뿔 내놓을 게 있어야죠? 없어요. 그 분이 누구냐? 바로 강도 만난 사람과 일치시킨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마음껏 모독할 때, 모독하는 그들이 내놓는 멘트가 평소에 자신들은 어떤 식으로 살아왔던가를 그대로 다 보여줍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내가 원하는 나를 구원하는 그 하나님을 나는 하나님이라고, 메시아라고 믿고 싶은 마음으로 지금껏 살아 왔다를 그대로 노출시켰습니다. 나를 위한 하나님, 나를 구원하는 하나님, 그런데 예수 당신은 어떤 낌새도 나를 건질 수 있는, 나에게 나올 매력적인 가능성을 일체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은 조롱받아야 된다. 그러한 예수님을 조롱하는 인식, 조롱은 안했지만 똑같은 사고방식이 뭐냐? 열두 제자들, 다 도망치고 말았죠.

그래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무도 없고, 사랑받을 야곱이 없습니다.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주의 이름에 의해서 새롭게 열두 제자를 뽑음으로써, 끝까지 사랑함으로써 없는 데서 나온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천국 백성 만든다는 이야기가 어제 설교의 요약입니다.

가로등 예를 들었는데, 가로등 밑에서 열쇠를 찾는데, 열쇠를 잃어버린 자가 잃어버린 장소에서 찾아야 되는데, 어두우니까 밝은 데서 열쇠를 찾겠다고 밝은 가로등 밑으로 갔단 말이죠. 그것은 열쇠를 잃어버린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나름 할 수 있는 것부터 내가 시작하겠다는 어쩔 수 없이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가 그거니까 시작한 거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이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를 알지 못한 곳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 열쇠를 어디, 나라는 게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주의 이름을 어디서 잊어버리고, 아들이라는 개념이 어디서부터 상실했는지, 제사를 왜 꼭 버려야했는지, 왜 유대 나라가 망하게 됐는지 그런 것에 대해서 이미 역사적으로 확정이 돼 있는데, 인간들은 그저 열심히 제사 드리고 율법 지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 하고 나올 때, 그것이 바로 멸망의 이유가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심화되고 강화되어 버리면 결국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보내서 잃어버린 장소를 지정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소를 문대버리죠, 없애버리죠. 그게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 말라기의 내용이라는 것은 상극, 또는 대립을 극단화시키되, 선지자 말라기로 말미암아 진정 구약의 끝장, 이스라엘의 소멸, 그리고 왜 이스라엘은 끝까지 언약을 지킬 수 없는가를 끝까지 추궁하시는 그 내용이 말라기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 하면, 말라기 4장에 보면, 선지자, 구약을 대변하는 말라기로 끝났고, 이제는 선지자 다음에 메시아가 오는 것이 아니고 메시아가 먼저 선지자를 지정하는 그 시대에, 그게 신약시대입니다. 세례요한이 태어나기는 먼저 태어났잖아요. 먼저 태어나놓고, 세례요한 고백이 요한복음 1장에 나옵니다. 그분이 나보다 먼저 계시다. 요한복음 1장 15절“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이게 놀라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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