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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40607a 울산강의-역대기하(4강) 5장 8절 : 성막과 성전자유게시판역대하

20240607a 울산강의-역대기하(4강) 5장 8절 : 성막과 성전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역대하 3장, 4장, 5장까지 솔로몬 성전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 언급해 드리겠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모세 때에 성막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성막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난 뒤에 성막이 된 겁니다. 시내산, 불붙은 시내산.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나와서 남성만 육십만, 이스라엘이 여기에 대기하고 있었지요. 육십만 여기 있을 때 사람은 있는데 뭐가 없느냐? 율법이 없어요. 하나님의 율법이 여기 없습니다. 그러면 시내산이 지상이라면 시내산에서 지상에 없는 것을, 모세와 여호수아가 올라가요. 여호수아는 중간에 놔두고 모세만 단독으로 올라갑니다. 단독으로 올라가서 구름 안으로 가요.

그럼 구름 안에 뭐가 있느냐 하면 여기 화산이 있습니다. 불붙는 화산 속으로 들어가요. 밑에는 불이 없어요. 불 속에서 뭐가 나오느냐? 모세가 불 속에 들어가고, 화산 속에. 막 소리도 들려요. 나팔 소리 들리고. 구름 있고 불붙는 화염 보이고 거기에 모세가 들어갔는데 사십일 동안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십일 있다가 내려왔는데 모세 양편에 돌 판을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십계명이죠. 돌 판은 가져왔고 여기서 들었던 모든 율법은 자기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습니다. 뭐 그 후에도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요. 그러면 이 육십만 이스라엘 사람에게 뭐가 없느냐 하면 여기에는 성막이 없어요.

성막이 없고 성막에는 율법이 주어질 때 율법 안에 성막 설계도면이 다 들어있거든요. 구체적으로. 성막은 어떻게 지어져야 되고, 거기에 놓여 있는 기구들, 여러 가지 도구들, 장치들. 이런 것도 율법에 의해서 규격까지, 색깔까지 다 만들어서 줍니다. 그러면 육십만 대군 중앙에 뭐가 생기느냐 하면 성막이란 게 생깁니다. 가로, 세로 대략 오십 미터, 이십오 미터. 십 미터, 오 미터 뜰이 있고. 번제단도 있어요. 오 규빗, 삼 규빗. 물두멍도 있고. 울타리는 개수가 육십 개.

이것이 있다는 말, 다시 말해서 이건 뭘 뜻하느냐 하면 현재 육십만 이스라엘에게는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의식하는 사람들이에요. 의식한다는 것은 과거가 이렇고, 현재가 이렇고, 미래는 이렇다고 내다본다, 그게 의식이거든요. 의식은 반드시 시간과 관련돼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 그 시절을 다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들이 과거에 애굽에 없었던 것, 없었던 것이 모세가 시내산 가서 내려오면서 턱하니 성막이란 게 생겼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성막은 인간에게서 나온 거예요,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은 겁니까? 적어볼게요. 성막이란 것은 인간에게서 나왔다. 인간의 머리에서 또는 인간의 의식에서 나왔다. 인간의 두뇌에서 나왔다, ①번. ②번, 성막은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인간의 의식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맞습니까? 율법, 성막 다 어디서 나온 거예요? ①번이 맞아요, ②번이 맞아요? 묵언수행을 하는지 답변을 안 하시는데 이건 오늘 강의 시작부터 끝까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인간에서 나왔어요,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은 겁니까? 인간에서 나오지 않은 거죠.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인간에게 나오지 않은 것에 그들은 무엇으로 지금 함께 섞여 있느냐 하면 인간에서 나오지 않은 의식되지 않는 것, 의식에서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들은 의식적으로 다가가고 있는 거예요. 의식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그러면 의식적으로 알던 그들이 인간의 의식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대할 때에 이것은 백 프로 잘못 생각할 가능성이 아니고 백 프로 잘못 생각하겠지요. 오해하겠지요. 왜? 인간에서 나온 것은 기존의 의식에서 나오기 때문에. 의식이란 뭐냐? 시간적으로 과거의 기억과 과거의 경험에서 축적된 것이 지금의 현재 의식이란 말이죠.

지금까지 제가 한 취지를 여러분들이 쉽게 알기 위해서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9장 3절에 어떤 중풍병자가 예수님을 찾아왔어요. 친구와 같이. 그때 친구와 중풍병자는 뭘 의식하는 겁니까? 과거에 자기에 기억하고 알고 있는 걸 하겠지요. 중풍병자와 친구들은, 내 친구가 중풍병에 걸린 거예요.

예수님을 시내산에서 온 율법 덩어리로 봅시다. 예수님을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 가져왔듯이 율법 돌 판이라고 봅시다. 그러면 중풍병자 친구들은 예수님을 대할 때에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관심 없어요. 뭐냐 하면 자기가 의식하고 있는 중풍병 걸린 것을 의식하면서 중풍병 낫기 위해서 온 거예요, 예수님한테.

왔는데 마태복음 9장 2절에 뭐라고 돼 있느냐 하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들은 생각하기를 중풍병 낫는 것, 그게 전부에요. 그게 자기의식의 한계인데 주님께서 전혀 의식하지 않는 이야기를 해버렸어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소리를 듣고 3절에 보면, 옆에 있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병을 얼마나 잘 고치느냐에 관심 두고 유심히 봤던 바리새인들이 여기에 그만 발칵 그들의 의식이 드디어 심기가 틀어진 거예요. ‘병이나 고쳐라. 병 고치러 왔잖아. 병이나 고쳐. 병 고침 받으러 온 사람에게 왜 죄 사함이 없다고 그렇게 선언해버리느냐’라고 바리새인들이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표해서 이야기한 거예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교회에 왜 오지요? 여러분 의식하고 교회 와요. 뭔가 하나님께 행운이나 뭔가 인간은 할 수 없는데 내가 위험한 게 있는데 주께서 채워주고 들어줄 거라고 오지요. 그런 우리를 향하여 주님께선 뭐냐 하면 네 죄 사함 받아라 할 때 우리가 교회 올 때 가진 의식이 죄에 포함됩니까, 포함 안 됩니까? 질문이 딱 둘 중에 하나에요.

자, 우리가 교회 와서 하나님께 도움 받아야 된다는 그 생각이 죄에 포함돼요, 죄에 포함 안 되는 거예요? 포함되죠. 그 죄를 내가 일방적으로 용서하겠다, 이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 교회 와서 천국 갈래, 그게 죄에요, 죄 아니에요? 그게 죄에 해당되는 거예요. 왜? 우리가 보험들 듯이 이미 노리고 교회 오기 때문에. 하나님은 뭔가 특별한 기적을 베풀 것이라고 우리가 짐작하고 오기 때문에.

이처럼 마태복음 9장에서의 중풍병자는 난데없이 최고의 복을 받았지요. 그런데 애굽 사람들은 이미 의식하고 있는데 애굽 사람에게 없는 성막을 여기다 강제로 투입시킨 거예요. 여기서 우리가 그 당시 애굽 사람이라 치고 애굽 사람의 현장에 있다고 치고 우리가 뭘 해야 되는가?

출애굽기 40장 34절에 보면, 성막을 다 완공했습니다.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봅시다. 성막을 인간이 지었다고 해서 꼭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해야 돼요? 어떻습니까? 사람이 어떤 건축물, 건축물도 아니지요. 어떤 구조물을 설치해놓으면 그건 인간이 만든 거잖아요. 인간이 의식적으로 만들었지요. 인간이 만들었으면 백 프로 하나님의 영광이 거기에 임하는 겁니까? 꼭 굳이 임해야 돼요?

이게 어려운 거예요. 내가 교회 나왔다는 의식을 하면 꼭 은혜 받아야 됩니까, 우리가. 이게 어려운 거예요. ‘인간이 어떻게 의식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신께서 복을 줘야 된다.’ 그런 것은 엘리야 시대 때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가 그 짓했어요. 거짓 선지자들이. 뭐 밤새 온종일 그들은 가슴을 치면서 칼로 자기 몸을 난도질하면서 ‘신이시여, 신이시여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소서’ 하고 부르짖고 통성하고 그야말로 총화적인 흥분에 사로잡혔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가 팔백오십 명이에요. 엘리야는 혼자고. 팔백오십 명이 그렇게 될 때 그 경쟁을 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있었겠어요. 그때 바알 선지자가 자기를 치고 찬송하고 가슴 치면서 주여 응답해달라고 할 때 누가 흥분이 고조되겠습니까? 본인부터 해서 보는 백성들이 고조되겠지요. 고조, 고조 흥분이 올라가겠지요. 북한말로.

인간이 스스로 자기 감정을 고취하기 위해서 인간이 의식적인 행동을 하게 되면 누가 흥분합니까? 하나님이 흥분해요, 인간이 흥분해요? 인간 본인들 흥분하는 거예요. 철야 안 해본지 너무 오래됐지요. 부흥회 손뼉 친지 너무 오래돼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하는데 여러분들이 부흥회 가보세요.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이 뭘 자극합니까? 인간의 흥분을 자극시키지요. 왜? ‘인간부터 움직이면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주게 돼 있다.’ 이 원칙이잖아요. 그게 무슨 종교입니까? 그게 바알과 아세라 종교지요. 이방종교지요. 왜? 인간의 의식에 하나님께서 거기에 동조한다는 논리지요. 인간의 의식적인 흥분상태나 열심 상태에 하나님이 필히 도와준다는 논리가 있는 거예요. 이것은 인간의 의식이 그러니까 인간은 내재적으로 타고난 거예요. 이 사고방식은. 모든 인간은 다 이렇게 종교적이에요.

그래서 열심내고 열심을 더 내고 헌금을 더 많이 하고 봉사를 하게 되면 그냥 가만있는 게 아닙니다. 자기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내가 뭘 했는지 의식하고 거기에 대한 보상과 내 인생이 만회되기를 은근히 노리고 있잖아요. 신을 그런 식으로 다루잖아요. 그런데 보세요. 이 성막은 어떻습니까? 인간의 의식에서 아이디어를 창안한 게 아니지요.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식한 게 있지요. 신은 뭐냐? 모세가 시내산 올라갔을 때 그들은 뭘 만들었습니까? 그들은 나름 금으로 신을 만들었어요. 황소 신을 만들었어요. 그것은 어디서 나왔느냐? 애굽에서 신이 황소에요. 황소는 그냥 무대포지요. 앞에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는 완력의 상징이 황소입니다.

옛날은 또 농경시대고. 밭을 갈고 논을 매고 할 때 소가 들어가잖아요. 소 없으면 우리의 생명이 없으니까 소의 힘 같은 대단한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은 이처럼 당차고 힘찬 그런 하나님을 우리가 믿습니다, 해서 황소 만든 거예요.

내 속에 있는 의식과 본심을 담아서 가만있지 못하고 그걸 형상화시킨 것이, 그걸 성경에서 뭡니까? 우상이라 하지요. 우상은 단순히 가짜 신이 아니고, 이 우상이라 하는 것은 무엇을 공격해요? 의식하지 않은 데서 온 하나님의 진짜 말씀을 도전하고 공격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우상이란 말이죠. 그래서 우상 숭배하지 말라 하지요. 그런데 우상을 누가 만들어내는 거예요? 의식하고 있는 인간들이 자기를 의식해서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막 보여줘야 돼. 첫 페이지 성막입니다. B.C.12세기 성막. 그다음에 B.C.10세기경에 나오는 이것, 솔로몬 성전. 다르지요. 성막은 이동용이에요. 그러나 성전은 고정성입니다. 고정적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 성막, 그다음에 솔로몬 성전. 그다음 페이지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평면도가 나와 있어요. 에스겔 새 성전, 에스겔 40장부터 나오는 에스겔 새 성전 평면도.

그다음에 나오는 게 뭐냐 하면 솔로몬보다 지가 더 위대하고 싶어서 환장해서 백성들 세금 짜내서 헤롯 대왕이 신자도 아닌 게 성전을 지었어요. B.C.10년부터 망하는 것은 A.D. 서기 80년에 홀라당 불타버린 이 헤롯 성전. 현재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것이 헤롯 성전의 서쪽 벽만 남아 있고, 그림에 안 나타나 있는 그 헤롯 성전의 지성소에 대해서 마지막 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네 가지 성전 가운데서 어느 것이 제일 크겠습니까? 헤롯 성전이 규모가 제일 큽니다. 그러면 성전 지어놓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합니까, 임하지 않아요? 임하지 않지요. 그런데 성막 짓고 난 뒤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다 했지요. 출애굽기 40장에. 그런데 이것 한 번 생각해보세요.

모세가 성전 지었는데 계획한 치수보다 0.1밀리미터가 틀어졌어. 그러면 영광이 임합니까, 영광이 임하지 않습니까? 그때 자가 정확하지 않아서 2센티미터 더 나가고, 홍색, 자색, 청색으로 실을 짜야 되는데 청색에 홍색이 한 가닥이 끼었어.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합니까, 임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임하지요. 내 설계대로(이야기했다 하면 다 틀려요) 완벽에 완벽을 기하면 영광이 임하는 게 이다, 아니다? 그게 아닌 겁니다.

오늘 역대하 봅시다. 역대하 4장에, 성전 다 지었습니다. 아니 5장 13절에 다 해서 나팔 불고 장고 치고 다 했지요. 그다음에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순금 백 프로여야 하는데 순금 99.5%로 하면 영광이 임합니까, 임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임하겠지요. 의식적으로 인간이 완벽하게 행할 때 완벽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의식 따로 하나님의 영광 따로에요. 인간의 행동 따로 하나님의 은혜 따로입니다.

그래서 지금 사람이 내가 이렇게, 이렇게 완벽하게 성막 만들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다, 라고 우리가 의식적으로 예상한다면 출애굽기 40장, 영광 임할 때 사람들이 놀랐겠어요, 안 놀랐겠어요? 뭐 놀라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요. ‘우리가 애써서 성막 만들었는데 영광 정도는 임해야지, 그 정도는 성의를 보여야지’ 이러잖아요.

전혀 그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렇게 돼요. 왜 임하지? 만들기는 우리가 만들었는데 여기에 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지? 왜 굳이 임하십니까, 그렇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인간의 의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면 우리는 신앙 자체가 근원적으로 잘못된 거예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벌써 몇 번 이야기했는데 또 이야기해야 되겠어요.

마태복음 1장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서로 모르는 사이가 아니에요. 이미 정혼, 약혼, 사실은 관계는 안 했지만 부부관계라 할 수 있어요. 그때 약혼도 장난이 아니니까요. 정식으로 했으니까. 분명히 둘이 동침한 적 없는데 자기 약혼녀 마리아가 임신이 된 거예요. 어느 날 카페에서 볼래, 했는데 배가 불러 왔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때 요셉이, “야 참 마리아 네가 신앙 좋기는 좋은 모양이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임신을 시키다니.” 이렇게 이야기했습니까? 세상에 어느 인간이 그렇게 생각해요. 백 명의 남자는 소위 교양 있고 이성 있고 점잖은 정말 아내를 사랑한 사람은 이래요. 딱 한 마디입니다. “보내줄게.” 얘 아빠한테 보내줄게. 딴 소리하지 마. 뭐 이상한 소리하지 마. 이게 증거야. 보내줄게. 나 쿨한 남자야. 이것으로 붙들고 치사하게 내가 준 가방 내놔라, 치사한 소리 일체 안 할 테니까 그냥 조용히 끊고자 하지요.

이 이야기가 왜 중요하냐 하면 요셉이 신앙생활 안 했습니까? 요셉이 신앙생활 했지요. 여호와 믿었지요. 믿으면 뭐합니까, 막상 하나님의 개입에 대해서는 전혀 자기가 갖고 있던 과거의 의식으로선 그걸 받아들일 바탕이 없는데요. 혼자 상상한 신앙이에요. ‘내가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이 날 구원하겠지.’ 이거는 시작도 끝도 그냥 자기 생각 속에 맴도는 의식이에요. 신앙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만큼 성의 있게 했으면 성막 지었으면 영광 임해야지.’ 아닙니다. 오히려 임한다는 것이 기절초풍할 지경이에요. 여기 솔로몬 성전도 마찬가지고. 물론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시키는 대로 다 했지만 시키는 대로 다 한 인간들의 손때가 묻은 그 건축물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다는 것은 딴 문제에요. 내가 이렇게 성의를 표했으니까 하나님께서 반응을 보인다, 지금 이것과 매치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이 하는 것은 인간이 하는 걸로 끝나는 거예요. 약혼한 것은 약혼으로 끝나는 문제고.

그러니까 요셉의 입장에서는 아내가 임신한 것에 대해서는 의심한 여지도 없어요. 요셉이 아내가 임신한 것은 다른 남자와 동침했음에 의심한 여지가 없지요. 그렇다면 이미 요셉은 뭐냐? ‘믿습니다’에요. 뭘 믿어요? 자신의 의식과 예상을 믿고 있는 신앙인이에요. 자기 자신을 믿는 거예요. 그래서 의식은 아까도 했지만 의식은 자기 자신에서 맴돈다.

의식은 이거는 하나님을 동원하고 예수님을 동원하고 백날 동원해도 그건 의식적인 거예요. 이만한 성의를 보였으면 하나님도 뭔가 천국 보내주겠지, 라는 자기 내부 안에서 메아리에요.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주여, 주여 하면서 동굴 속에서 지 혼자 주여 하고 있다고. 그냥 메아리에요.

그럼 제가 이렇게 하면 목사님은 모든 인간이 그 정도밖에 아닌데 무슨 대책이 있습니까? 모든 인간이 그 수준밖에 안 되고 자기 한계를 못 벗어나서 백날 하나님이 듣는지 안 듣는지도 모르고 맨날 주기도문 외우고 그냥 기도하고 있고,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어쩔 거야’ 이건 뭐 도박도 아니고. 하나 얻어 걸려라. 하나 걸리면 간증집회 나서지요. ‘기도 빡세게 했더니만 복 받았다.’

그럼 이게 아니라면 이게 신앙도 아니고 자기가 의식적으로 하는 놀이에 불과하다면 거기에 대한 대책은 뭐냐? 대책은 간단하지요. 성령이 오게 되면 또는 성전에 영광이 임하면 그러한 의식 자체 덩어리가 전체가 바로 죄입니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는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지요. 인간은 죄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구원받는 거예요.

뭐 성경 시키는 대로 하면 갑자기 죄인에서 의인되는 줄 알아요? 아닙니다. 인간은 평생 죄라는 굴레 그 안에 들어있고 주님께선 그걸 고대로 네가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면서 예수님 자신의 생명으로 건져 올리면 그 사람은 축하드립니다. 천국 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죄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래서 여기에 성경적 논리가 하나 필요하지요. 일종의 공식 같은 건데요. ‘인간은 자기의식 안에서 맴돈다.’ 그걸 한 자로 뭐라 했습니까? 이게 ‘죄’지요. 죄의 특징은 뭐냐? 잘 보세요. ‘인간은 어느 누구도 자기를 대신할 수 없다.’ 이게 인간 죄, 또는 의식 안의 내용입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할 자가 없다.’ 이렇게 돼요.

그런데 사도 바울의 편지에 보면 뭐라 합니까? 예수님이 너를 대신하여 모든 죄를 대신 담당했기에 그걸 대속이라 해요. 이걸 믿는 자는 네가 사함을 얻고 영생을 얻느니라, 이렇게 돼 있어요. 어떻습니까? 이 방정식, ‘인간은 어느 누구도 나를 대신할 없다’에 갇혀 있는 우리, 그런데 그 바깥에서 들려오는 말씀은 뭐라 합니까? “너, 대신할 없다고 이야기했지?” “예.”

그런 그게 죄인 거예요. 그 죄로 인해서 주께서 대신 했다는 거예요. 그럼 그걸 듣는 우린 뭐라 합니까? ‘근거를 대. 근거를 대야지.’ 대신했다는 근거를 대야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마땅히 의식적으로 그걸 요구하겠지요. 요구한 적 없어요? 마땅히 요구하겠지요.

그게 뭐냐 하면 너는 죄로 인하여 네 안에 뺑뺑이 메아리치는 네 안에서만 대화하고 평생을 아무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는 이거는 그야말로 그냥 젊은 애들 말로 꼴통이고요, 나르시시즘이죠. 철저한 갈수록 자기 안으로 함몰돼요. 이게 점점 더 자기밖에 몰라요. 함몰된다고요. 이게 타고난 거니까, 아담의 죄에서.

이 죄는요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행위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저주받아야 돼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저주를 받았어요.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놓고 하는 말이, 내가 저주를 받을 때 이 저주는 내가 찾아가야 될 그 사람과 더불어 함께 십자가에서 저주받았다, 라는 것을 이미 다 이루시고 그것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통보를 해주는 거예요. 성령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방금 이야기한 것 로마서 편지에 다 나옵니다. 로마서나 에베소서 사도 바울의 편지에 다 나오는 이야기에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뭘 자꾸 믿고자 해요. 나한테 이익 되는 것, 나한테 이득이 될까 싶어서 교회 와요. 하지만 백날 해봐야 뭐냐 하면 내가 의식적으로 뭔가 노리고 들어오는 거예요. 기대하고 들어오는 거예요. 소망이니 사랑이 어떠니 백날해도 소용없고.

기대하고 들어오는데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런 기대조차도 죄가 되어서 아버지로부터 끊어진 상태다. 이미 저주받은 상태고 이거는 저주받아 죽어야 되는 거다, 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결정적으로 십자가의 결과물이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면 주님의 행하심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채워야 될, 우리의 모든 치러야 될 것을 주님 안에 다 치러졌다는 사실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확 들어와요. 확 안 들어오면 곤란한데…. 확 들어온다고요.

지금 제가 이야기한 것을 사도 바울의 복음에 나온 거예요. 근데 이걸 구약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구약적으로 이렇게 설명하고, 이렇게 설명하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설명하는 거예요. 성막을 설명하면서 제가 해답부터 먼저 말씀드리는 것은,

이 하나하나의 설명이 만약에 해답 말씀드리지 않고 그냥 성막 이렇습니다, 이렇습니다. 이건 예수님의 뭘 상징하고, 뭘 상징하고 이렇게 해버리면 그 듣는 사람이 뭘 하느냐 하면 그걸 의식적으로 받아들여서 ‘나 그렇게 살면, 성전에서 교훈한 대로 살면 하나님 저 구원해주실 것 맞지요?’ 이렇게 나온다니까요. 그러면 기껏 요셉밖에 안 돼요.

지금이 모든 성막, 성전의 해석이 바로 성막이 이렇고, 성전이 어리니까 우린 정신 바짝 차려서 성막 안의 하나의 기구처럼 우리고 그렇게 바르게 살아보자,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는 거예요. 그거는 성경을 보면서 은근히 우리가 의식적으로 기대하는 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해석에 대해서 속아 넘어간 거죠.

방금 이야기한 것을 전체적으로 공식 하나 들어갑니다. 이 공식은 상당히 함축된 공식인데 지난 수요일도 언급했으니까 수요 설교 들으면 이해될 겁니다. ‘사건이 존재보다 앞선다.’ 뭔 뜻인지 이제 아시겠지요. 주님이 일으킨 사건이 내가 여기 있음, 이 존재보다 앞서는 거예요. 마리아라는 존재보다, 요셉이란 존재보다 성령이 임한다는 사건이, 예수님이 마리아 속에 들어온다는 사건이 먼저인 거예요.

이걸 뭐라 하느냐 하면 사건화 된 존재라는 거예요. 주님께서 마리아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임신했어요. 마리아는 자기가 임신한 처녀라는 의식과 나를 처녀 아니고 임산부로 만든 주님의 사건과 함께 중첩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리아가 모든 성도의 원형이고 모델이에요. 누구든지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 말을 달리 하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잉태하지 못하면 그거는 성도가 아니란 뜻이에요. 천국 못 간다는 이야기에요.

인간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사건이 아니에요. 나라는 존재가 먼저 있고 내가 만든 사건, 그걸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요. 내가 고등학교 삼학년이고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 간다. 나라는 존재가 먼저 있는 거예요. 서울대학 들어갔다는 사건은 내 존재가 먼저 된 사건이에요, 그게. 나는 남자다. 드디어 내일 장가간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모든 게.

그걸 교회 와서도 똑같이 적용하거든요. 뭐냐? ‘하나님, 나 여기 왔습니다. 존재가 여기 있습니다. 나 천국 보내는 사건 일으켜주소서.’ 이래 나온다고요. 이거는 성막 만들 때 열심히 만들었으니까 하나님의 영광 임해달라는 이거는 강도도 아니고 억지스러운 거예요. 그게 바알과 아세라 종교입니다.

그러면 사건화 된 존재니까 사건화 된 구조물, 사건화 된 건축물 이게 성막이요, 그다음 뭡니까? 성전이 되겠지요. 성막이고 성전이란 말이죠. 그럼 성막과 성전의 차이점이 뭐냐? 성막은 같이 움직이죠. 그런데 성전은 그 자리에 있지요. 뭔 뜻이냐 하면 성막 할 때는 광야니까 이스라엘이 살아 움직이고 덩달아서 성막이란 하나님이 임하는 곳이니까 하나님도 살아 같이 움직이는 것이 성막 시대에요.

그런데 성전은 거기에 제물이 죽어요. 하나님이 죽는 장소에요. 죽는 장소기 때문에 성전에서 누가 죽어야 돼요? 그 앞에 모든 이스라엘은 성전에서 자기의 의식과 자아는 어떻게 돼요? 죽어야 되는 거예요. 성전에 와서 나 잘 되라고 빌면 안 돼요. 왜냐하면 내가 살아 있어버리면 이거는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 멀쩡하게 살아 있는 나의 일이 되거든요.

여기 하박국 봅시다. 하박국 2장 20절에, “오직 여호와는” 어디에 계십니까?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뭐하라? “잠잠할찌니라” 그 잠잠한 게 입 다물고 있으면 되겠네. 입 다물고 있는 게 잠잠한 게 아니에요.

하박국 3장 17절에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게 잠잠한 거예요.

전에 유명한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이고 해태 야구팀 감독(김응룡)이 ‘올해 해태 팀 잘 되겠습니까’ 하니 이런 유명한 말을 했어요. “아아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이랬다고요. 차 떼고 포 떼니 할 게 없다는. 여기 보세요. 무화과나무 열매도 없고, 포도나무 심었는데 열매가 없고. 외양간의 주인이 누굽니까? 외양간에 누가 있어야 돼요? 소도 없고. 양 우리에 양이 없고.

없고, 없고 뭐예요? 죽었다는 이야기에요. 죽었는데 기뻐. 왜? 그동안 나는 나의 존재에 신명을 바치고 온 나의 의식적 과거가 이제는 다 옛말이고 한스럽다, 이 말입니다. 나 잘되기 위해서 하나님 믿었던 그 과거가 추접스럽고 더러워 죽겠다, 이 말입니다. 나 잘되기 위해서 교회 나온 이 모습이 어떻게 그런 마귀 짓을 삼으면서 믿음 좋다고 남한테 자랑질했는지 진짜 한탄스럽다는 거예요. 한심스럽다는 겁니다. 나를 있게 한 것은 주님인데 나는 내가 악착스럽게 살아서 내가 있는 줄 알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하박국을 보면서 또 여러분 주의할 게 있어요. 하박국 보니까 종범이도 없고 동렬이도 없고, 이래서 내 인생 차도 포도 다 떼버리고 없고, 자식도 없고, 남편도 없는 것처럼 없고, 그렇지만 나는 주님 이름으로 살아야지. 플리즈, 제발 이러지 마세요. 그게 의식이에요. 그냥 자기 존재로 사세요. 살게 되면 주께서 마동석 보내서 조팹니다. “내가 이게 죄라 했어, 안 했어? 무화과나무 없다고? 네가 무화과나무 없는 것도 주의 복인 줄 알아.” 패는 거예요. 그게 뭐냐? 존재보다 우선되는 사건이에요. 매일같이 그 사건이 터져야 돼, 매일같이.

제가 강남강의를 했는데 강남강의하고 난 뒤에 우리교회 집사님께서 이런 말씀하셨어요. 강남강의 다 듣고 보았는데 강남강의에 나왔던 그 노래를 팝송이 되어서 무슨 가사인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팝송 가사와 번역한 걸 일일이 다 해줘야 음성 듣는 참석 안 한 사람도 아는데 제가 그걸 깜빡 했어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이걸 다 하게 되면 복음 이야기할 시간이 너무 모자라요.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또 그러한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프린트해서 왔습니다. 영어 선생님도 계시는데 번역에 뭔가 문제 있더라도 참작해주시고, 한 3분밖에 안 걸려요. 후딱 할 거예요.

이걸 왜 하느냐? 울산강의에서 왜 하느냐? 이게 의식이에요. 의식을 도발할 수 있는 유발할 시킬 수 있는 거예요. 가사 내용이.

Sing the wondrous love of Jesus, 찬송하라 주의 크신 사랑 놀라우신 주의 큰 은혜
Sing His mercy and His grace;
In the mansions bright and blessed 천국에서 우리 쉴 곳 예비하고 계시네
He'll prepare for us a place.

이건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말씀이죠. 네 처소를 마련하겠다. 제가 왜 이걸 하느냐 하면, 요한복음 14장을 장례식장에서 하잖아요. 하늘나라에 처소 있어서 간다고. 그때 우린 그걸 들으면 그걸 의식한다고요. ‘바르게 살아서 하늘나라 처소 따내야지.’ 청약해서 당첨돼야지, 그걸 생각한다고요. 그 의식하는 걸 뭐라 했어요? 그게 죄에요. 왜? 내 존재가 우선되기 때문에. 주실 분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단 말이죠. 그다음에,

When we all get to Heaven, 우리 모두 하늘을 오를 때,
What a day of rejoicing that will be! 그날이 얼마나 기쁜 날일까요!
When we all see Jesus, 우리 모두 예수님을 볼 때
We'll sing and shout the victory! 우리는 찬송하며 승리를 외칠 거예요

While we walk the pilgrim pathway, 이 세상의 나그네 길 갈 때 구름 잠시 하늘 덮어도
Clouds will overspread the sky;
But when traveling days are over, 머지않아 주님 뵐 때 슬픔 다시 없겠네
Not a shadow, not a sigh.

주께서 다시 그림자나 슬픔 같은 한숨 같은 건 없어진다, 이 말입니다.

Let us then be true and faithful, 우리 앞에 보상 바라보고 주님 맡긴 일을 행하세
Trusting, serving every day;
Just one glimpse of Him in glory 영광의 주 만나 뵐 때 모든 수고 끝나리.
Will the toils of life repay.

그다음에 뭐냐? 후렴 같은 건데,

When we all get to Heaven,
What a day of rejoicing that will be!
When we all see Jesus,
We'll sing and shout the victory!

우리가 천국에 납치당할 때, 그날이 얼마나 기쁜 존재가 되겠느냐.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victory 승리, 이것 싫어하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나 교회 가서 인생 승리할래, 다 이러고 온다 이 말이죠.

Onward to the prize before us! 우리 앞으로 상이 주어지고
Soon His beauty we'll behold; 곧장 예수님의 아름다음을 보게 됩니다.
Soon the pearly gates will open; 곧 진주 문이 열리고
We shall tread the streets of gold. 우리가 금의 길을 밟게 됩니다.

When we all get to Heaven,
What a day of rejoicing that will be!
When we all see Jesus,
We'll sing and shout the victory!

여기까지만. 귀한 복음 시간 아깝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어떻습니까? 은혜 되지요. 갑자기 희망이 확 생기기 않습니까? 그런데 집에 가면 부도났다고…. 바로 주께서 이런 일이 있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신앙생활 잘하면 주는 게 아니고 이게 이상하다는 거예요. 이걸 우리한테 왜 주느냐 이 말이에요. 천국을 왜 줘요? 왜 줍니까, 줄 필요도 없는데 우리가 뭐 했다고? 평생 죄만 지었는데 천국 주잖아요.

바로 That's right. 오늘 영어 막 나온다. 바로 그거에요. 죄만 지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의식, 나의 인간은 어떤 경우라도 자기를 전적으로 죄인으로 간주 안 해요. 아무리 죄 지어도 약간 의의 구석은 있는데 전적인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 천국을 무상으로 주시는 겁니다. 10분 쉬어야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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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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