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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22장 53절 (어두움의 권세) 240507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22장 53절 (어두움의 권세) 240507b-이근호 목사

예수님은 전후 사정을 다 알고 계세요. 예수님은 이미 전후 사정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 하신 말씀 중에 나중에 제자들이 성령 받고 부활한 예수님을 알고 난 후에 뒤돌아보니까 군데군데 예수님께서 방금 이야기한 이것을 다 섞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제자들이 알게 됩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3장 9절 한번 봅시다. 이제 우리가 알아차릴 차례지요.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여기 돌 나오지요. 돌이 코가 있고 입이 있고 귀가 있습니까? 돌은 인간들 보기에는 무생물, 다시 말해서 생명이 없는 무생물체에요. 또 돌의 특징은 뭐냐? 죽은 거죠. 돌의 특징은 죽은 거예요. 죽고 존재 흔적만 생명의 흔적이 아니고 죽은 존재의 흔적만 그 자리에서 시공간의 일부로 차지하고 있는 겁니다. 발로 차도 아무 소리 안 하고 차이는 그 너무나 무능력한 쉴드 치지 않습니다. 돌이 막 피하고 이러지 않아요. 그런데 그 돌이 무엇과 접촉이 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와 접촉이 되어버리면 그 돌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의 속성을 보여주는 그날이 온다는 거예요. 이걸 이미 제자들에게 다 이야기했는데 제자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못 알아들어요.

이번에 누가복음 19장 40절 한번 봅시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이거 과장법입니까? 죽음 안에서 살아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어요. 그 예수님의 그 무덤 안에 시공간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할 때에 구약에 전쟁할 때에 지진이라든지 또는 우박, 여호수아 전쟁할 때는 뭐가 멈췄습니까? 해가 멈추었다. 시공간, 시간과 공간 대자연이 전쟁을 치르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르면서 이끌지요. 18만5천명 죽은 거 보세요. 아침에 천사가 와서 앗수르 군대 다 죽였지요.

왜 그렇게 히스기야 왕 때 그렇게 죽이면서 왜 이스라엘 왜 망하게 했는가? 성경에 보면 수백 군데 나와 있어요. 내가 이스라엘 멸망시키는데 앗수르와 바벨론은 내가 쓰는 몽둥이라고 했습니다. 몽둥이 들고 누굴 치느냐? 자기 백성을 친다. 자기 백성을. 멀쩡한 자기 백성을 왜 치느냐? 멀쩡하지 않았어요. 멀쩡하다 멀쩡하지 않았다 기준을 어디에 기준 하느냐? 그 이스라엘 안에 선지자를 보냅니다. 선지자를 보내는데 선지자를 보내는 족족 선지자를 핍박하고 때로는 죽이기도 해요. 예레미야도 여러 번 죽이려고 했고요. 하여튼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는 겁니다.

아까도 했지만 다시 한번 묻습니다. 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 안 듣습니까? 그 이유가 뭡니까? 자기 안에 기존의 시공간을 통해서 자기만의 세계를 여기에다가 형성하는 거예요. 자기만의 세계를. 내 것이 있으면 내가 된다는 것. ‘나’가 된다는 것. 내 것이 있기 때문에 ‘나’가 되는 거예요. 내 것이 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요 실은요 내가 가진 것을 사랑할 때 사랑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인간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고.

그런데 마태복음 6장 33절 한번 봅시다. 주님께서 정말 무책임한 말씀하십니다.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원하는 것을 줄게 이렇게 한다고요. 이게 참 무책임하고 인간에게 능력 없게 만드는 건지. 인간은 순서를 바꿉니다. 입을 것 먹을 것 주면 그 나라 의를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이게 인간이에요. 인간은 내가 사는 게 우선이에요. 그 나라 의는 일단 살고 보고 나중이에요. 그 나라 의를 구하는데 조건부로 구합니다. 뭐냐 하면은 내 것 살려주면 제가 하겠습니다 이렇게 나와요.

주님께서 인간들 그렇게 나올 줄 알고 마태복음 5장 33절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여기 옛 사람이라고 되어 있지요. 옛 사람. 인간은 옛 사람 밖에 없어요. 그런데 새 사람은 없어요. 새 사람은 누구한테 있느냐 하면은 나는 너희 할 때, 너희는 예수님이 먼저 생기고 난 뒤에 예수님에 의해서 생산된 자기 백성을 너희라고 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인간들은 하루라도 맹세 안 하고 산 적이 없어요. 맨날 기도하고 맨날 맹세하고 해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하나님 뭐 하십니까? 나를 지켜주세요. 나를 지켜주세요. 맨날 이게 인간들의 하는 일이에요. 그러나 예수님 말씀이 너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그럼 기도하지 말라는 건가? 갑자기 해방감이 확 밀려오네. 기도 안 해도 되네. 이게 아니고 기도 안 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이 그 나라 의에요. 예수님의 하는 일에 네가 휘말려 들어가야 된다는 거예요. 그 이상으로 다른 것 생각할 필요 없다는 거예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다시 말해서 네가 끼어들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네가 함부로 할 수 있는 하늘아 땅아 예루살렘아 어떻게 해달라. 네가 요구할 쨉도 못되고 그런 자격도 없고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는 거예요. 인간은 겁을 집어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성도는 이미 죽었으니까요. 어둠의 권세도 이미 죽었고 성도도 이미 죽었고 둘 다 죽었어요. 뱃지가 주의 이름이냐? 아니면 행함책이냐? 뱃지만 달았을 뿐이지 양쪽 다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은 한결같아요. 마찬가지에요 양쪽 다. 겁을 집어먹을 자격도 입장도 있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기도라고 하는 것은 겁이 나서 하는 게 기도에요. 겁이 나서. 그래서 성도의 기도는 겁을 내서 하는 기도가 아니고 오늘도 말씀대로 저에게 쏟아져주시옵소서. 말씀이 살아있고 말씀 안에 주님이 살아있어요. 저의 지금 살아있음을 통해서 증거 되게 해달라 표현되게 해달라 그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성도는 바닥이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바닥을 주신 거예요. 모든 일에. 다시 말해서 모든 일에 자기 연민을 끼워넣지 말라. 스스로 자기한테 어후 불쌍해 이러지 말란 말이죠.

제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 터무니없이 느껴지지요. 이것은 뭐냐?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기 싸움을 했지 영적 싸움은 주님에 의해서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영적싸움을 할 마음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우리는 나의 싸움에도 지금 헉헉 거리고 있는데 거기에다가 영적 싸움까지 우리는 할 자신감이 없어요. 영적 싸움이라고 하는 것은 대자연보다 월등한 존재의 싸움이에요. 대자연을 뛰어넘는 그 존재에 대한 싸움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2절에 보면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싸우라 이 말이죠. 어떤 싸움? 영적 싸움입니다.

영적 싸움을 하면서 우리는 뭐가 되느냐? 아까 바닥 했잖아요. 바닥에 놓인 게 뭐에요? 돌. 돌 같은 존재. 돌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돌이 자기 연민에 빠질 리가 없지요. 내가 여기 놓여있는 것이 내 마음대로 안 되어있고 딸로 태어났다 아들로 태어났다 정했습니까? 아니지요. 말씀이 도달할 때 돌은 비로소 살아있게 됩니다. 말씀의 살아있는 도구로서 우리는 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이 안 오면 그냥 돌이죠. 도올 김용옥 되지요. 그냥 돌이에요. 그런데 그 돌을 가만두지 않지요. 악마가 사람 되게 만들지요.

자, 하나님의 영적 전쟁은 어떻게 하는지. 성경에서 영적 전쟁하라고 하는데 모호하게 느껴지고 감이 잘 안 잡힐 거예요. 신약은 아니지만 구약에도 영적 전쟁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냐 하면은 다윗이었어요. 다윗이 영적 전쟁을 할 때 다윗 본인도 굉장히 난처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 하면은 본인이 하지 않고 주님이 하셨는데 사람들은 누가 했다고 자꾸 오해를 하느냐 하면은 다윗 본인이 했다고 오해를 하니까 참 다윗 입장에서 난감한 거예요.

그것을 성경에서 뭐라고 하느냐 다윗에게는 성신. 그리고 다윗 본인이 안 했는데도 불구하고 또 다윗을 가지고 라이벌로 여겨가지고 공격을 해대요. 그 사울에게 뭐가 들어갔느냐 하면은 그 사울에게 악신이 들렸다 했습니다. 이건 그냥 미친 거예요. 자기 사위를 못 잡아 죽여가지고 창으로 던져도 안되고 사위도 나쁜 사위도 아니고 혜택도 많이 입었어요. 사울 왕이 악신 들렸을 때 사위가 기타 치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악신이 잠시나마 떠나있었어요. 그런데 집요하게 사울은 오직 진짜 한 놈만 죽인다 있잖아요. 한 놈만 잡는다. 오직 다윗만 잡아요. 왜 그래 정말. 왜 하나만 죽여요 그래. 다윗 숨겨줬다고 그 동네 제사장 다 죽여버리고요.

이게 뭐냐? 우리는 이제 알지요. 악마는 언약맨을 노린다. 언약이 있기 때문에 노린 거예요. 다윗에게 언약이 있기 때문에. 그걸 누가 아느냐? 귀신이 알지요. 귀신 들린 사울이 다른 사람은 관여도 안 해요. 언약을 받은 자를 노리죠. 신약에 오면 누굽니까?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모든 것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악마는 알아요. 그러나 악마 밑의 인간들은 그걸 몰라요. 모르기 때문에 악마가 시키는 대로 그들은 본성적으로 십자가라는 무덤 안에서 죽어야 영생이 있고 다른 데는 영생이 없어요. 십자가 안에만 영생이 있다는 이 사실을 질겁을 하지요.

그럼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되죠. 그래서 다윗의 가치를 알아주는 걸로 구약에. 다윗과 함께 있으면 생명, 다윗과 함께 있지 않으면 적 이렇게 돼요. 그러니까 유월절 날 양 받으면 하나님의 백성 아니면 곡소리 나는 거. 점점 더 이것이 그 율법이 이스라엘 내부로 들어가요. 그 기준이. 내부로 들어오면서 이스라엘 자체에서 균열이 일어납니다. 두 패로 나뉘어져요. 선지자 같은 경우에는 엘리아와 함께 7천명 나머지는 가짜. 바알과 함께. 나머지는 바알과 함께 있어요. 하나님의 일은 반드시 천국 갈 자와 절대로 천국에 들어서는 안 될 자를 구분하는 식으로 오늘날 성도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성도. 성도. 자기 싸움하고 있으면 안돼요. 영적싸움을 해야 되는데 자기 싸움하면 안됩니다.

사무엘상 25장에 거기에 여인 하나 등장합니다. 이름이 아비가일. 이 아비가일이 성경에 이뻐서. 안 그랬으면 다윗이 결혼 안하죠. 25장 3절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이렇게 나오지요. 둘 다 돼요. 총명하고 용모 되고. 구약이니까 구약적 안목으로 봐서 여기서 총명하다 아름답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긍정적으로. 들릴라 같이 얼굴 이뻐도 성질 더러우면 그건 안 되고. 그런데 문제는 그 아비가일이 기혼자라는 거예요. 유부녀에요. 남편이 뭐냐? 나발이에요. 나발. 이름이 나발이에요.

자, 나발에 대해서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면은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이방 족속이죠. 기준이 뭐냐 하는 거예요? 다윗 따르면 살고 따르지 않으면 죽는 이 기준에 있을 때에 그 기준이 나 다윗 믿을래 이렇게 되는 게 아니고 다윗을 따름으로서 자기 쪽에서 자기 세계, 작은 자기만의 세계가 언약으로 인하여 더불어 무너져야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겁니다. 내 것 안 다치고 구원 받는 방법은 없어요. 내 세계가 무너지는 거예요.

그럼 그 당시에 기혼녀이니까 그 세계는 가정의 세계죠. 남편에게 주도권이 있으니까. 그런데 우연히 다윗이 먼저 누굴 만나느냐 하면은 나발부터 만났죠. 나발이 양털 깎고 있으니까 다윗이 소년들 보내서 좀 도와달라고 했고 나발은 안 도와주는 거예요. 정치권들 너희들 싸움에서 나 너희 편 들기 싫다. 요즘같이 깡패들이 입후보 다 하는데 너 뭐 보고 도와주나 뭐 이런 거랑 똑같은 거예요. 차기 대통령 될래? 이런 식으로. 나는 전혀 희망 안 보이는데? 다윗?! 요즘 돌아다니는 깡패 나부랭이가 한 둘이 아니야 이런 거예요.

그때 다윗과 함께 있는 사람이 600명 정도 있었는데요 다윗이 뭘 공격하느냐 하면은 여기서 이상한 질문, 사울에게는 그렇게 쫓기면서도 욕 한마디 안하던 다윗이 이방족속 갈렙 족속 나발에 대해서는 다윗이 자기 할 일을 해버려요. 자기 할 일 뭡니까? 언약을 지키는 거예요. 이스라엘에 맺은 언약에 대해서 모독하는 것은 이거는 가자지역 남부까지 완전히 폭격을 해버려요.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거죠. 휴전 같은 소리하고 있네. 어딜 휴전해. 싹 밀어버려.

그런데 문제는 아비가일의 평가가 어디서 그런 평가가 되었느냐 하는 거예요. 아비가일은 뭐냐? 남편 집안 죽어도 내가 이 비언약과 더불어 내가 시집은 비언약 집안에 왔지만 시집 왔다고 와서 시집에 내 몸을 맡기긴 싫다. 나는 다윗을 안다. 왜? 골리앗을 이겼잖아.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있음을 다 안다고요. 그 장인어른이 그렇게 괴롭혀도 다윗은 말 안하고 계속 기름부음의 위치 그 자리를 유지하면서 계속 하나님께서 주신 왕 자리는 이건 내가 쟁취한 자리가 아니라 이거는 어디까지나 양을 하게 하신 왕의 소관이 되는 거예요. 왕의 소관. 성도가 누구 소관입니까? 성도는 성고 소관이 아니에요. 성도가 성도 되게 하고 천국 가는 것은 누구 소관입니까? 이게 주님 소관이죠. 적어도 이걸 믿어야 성도지요.

말은 이렇게 설명해놓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네~ 좋겠네는 믿음이 아니지요.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게 아니고 이거는 원하고 자시고 할 게 없어요. 그냥 나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거예요. 내가 빼도 박도 못 하고 안돼요. 내가 천국 가는 이 노선을 내 힘으로 변경을 못 시킨다니까요. 일부러 한번 시켜보지요. 개차반 같은 행동을 하면서 해보죠 되는가. 성경책 막 찢고 해보세요. 너 오늘부터 지옥 간다 이게 되던가요? 그래서 성도는 겁을 낼 자격도 없는 거예요. 겁을 먹을 자격도 없어요. 내 인생을 내가 할 것 같으면 겁 먹지요. 남들 평가 생각해서. 내가 나 죽는 것도 나와 상관없는 일. 내가 죽는 것도. 주님이 알아서 죽일 거예요. 죽어가면서 박수치면 돼요. 저 잘 죽였습니다 박수치면 돼요.

홍해 바다가 갈라졌다는 것 이스라엘 입장에서 생각하지 마세요. 애굽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따라올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고 있어요. 오늘날 성도가 그런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예수 믿고 복음 듣고 따라갑니다. 나가! 나가리 된다. 안돼요. 내가 뭘 하는 게 주께 끌려가는데 전혀 기여를 못해요. 보탬이 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운명 같은 것. 내가 어떻게 손댈 수 없는 운명 같은 것. 그걸 바로 사랑이라고 하지요. 사랑은 하나님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지 않는 관계를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해봤어요? 저사람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지 않는 관계. 결혼하기 직적의 남녀. 너무 심했나? 결혼식 2시간 전. 결혼식 입장 100m전. 상대에게 다 줘도 조금도 아깝지 않는 것. 왜 아깝지 않을까요? 상대는 평가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구약성경에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랑을 오해했어요. 사랑의 조건에 양이 대신 죽어주는 거지 나는 안 죽는 거예요.

그런데 유월절 양이 되신 예수님은 나 죽는 것에 네가 합류하는 조건 하에 사랑이고 영생이고 생명입니다. 죽는다 해가지고 뭐 이렇게 선교하다 욕 얻어먹는 거 아니고 내가 예수님에 대해서 모든 평가를 내가 중지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었어! 왜 자꾸 아프나!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 내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일체 내가 평가를 중지하고 멈춰버리는 거예요.

그 삶이 무슨 삶입니까? 믿음의 삶이에요. 믿습니다 삶이 아니고 그분의 결과물이 나라는 그 관계의 싸움이에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성도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게 되면 거기서 성도 아닌 사람은 티가 나요. 화를 막 내요.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왜 공격하느냐. 왜 열심히 하는데? 열심히 하니까 불신자의 공격이 화가 나는 거예요. 그쪽에서 너는 예수를 믿는 게 아니고 네 안에 예수 키우려고 했잖아. 대마초 피우듯이 키우니까 공격하는 거예요.

사울의 공격을 다윗은 어떻게 했습니까? 반응 안 했습니다. 너 말이야! 하고 막 술 먹고 달려들면 아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술 깨거든 이야기합시다 이런 식으로. 술 깨거든 이야기합시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니까 아내가 화가 나가지고 네가 뭐야! 이렇게 하니까 여보 잠깐 술 깨고 이야기하자 말리는 것처럼. 술 먹는 남편 없잖아요. 그럴 일은 없는데. 나는 내가 지키는 게 아닙니다. 이걸 믿는 게 아니에요. 이게 믿어져요. 내가 나를 지키는 게 아니라고. 소유권이 내게서 주님께 넘어간 것을 설명할 수 없어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따라올 수 없다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는 존재로. 거기서 나에게 기대했던 사람들이 어떤 인간적인 면에서는 좀 미안해요.

여기서 나발이 그 소리를 듣자마자 18절에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에게 가자 해가지고 직접 누굴 만나느냐 하면은 다윗을 만납니다. 그럴 때 21절에 다윗이 이런 선언을 해버려요. “다윗이 이미 말하기를 내가 이 자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그 모든 것을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라 그가 악으로 나의 선을 갚는도다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 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그 말을 하고 있는데 아비가일이 이런 말을 합니다. 25절 “내 남편은 불량합니다.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복수하지 마옵소서. 그리고 이렇게 된 일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하고 이걸 덧붙여요. 26절에. 그러고 난 뒤에 38절에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다윗이 쳤습니까? 누가 쳤습니까? 다윗은 안 쳤어요. 다윗은 나발을 죽일 마음이 없어요. 왜? 아내가 대신 사과를 했기 때문에 죽일 마음이 없는데 누가 개입합니까? 여호와가 개입했죠. 여호와가 개입했다는 말은 천국에 갈 사람과 따라오지 못할 사람의 개입에 누가 개입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개입해서 다윗 주위에 사건을 유발시킨 겁니다. 사건을 만드는 거예요. 이게 오늘날 성도의 존재의 위상입니다. 성도가 “너 지옥에나 가라” 하고 저주하고 돌아다니는 게 성도의 할 일이 아니에요. 성도는 그 나라 의에 관한 것을 주님에게 지시받는 입장에 있습니다.

자, 이래가지고는 이해 안 되니까 더 간단하게 합시다. 성도는 뭐냐 하면은 ‘내가 뭘 할까요’가 아니고 주님으로부터 지시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는 뭐가 안 보이느냐 하면은 지시받는 게 안 보이고 저 사람 따라하기, 흉내 내기, 저 사람이 구원받으면 나도 저 사람처럼 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자기 입장에서 하는 거예요. 할 때 평을 하는 거예요. 성도는 남을 평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지시받기 때문에 평을 해도 누가 평을 해요? 주님께서 그 사람으로 평할 거예요. 주님께서 왜냐 하면은 내가 주님 지시 따른 이것이 내가 따르고 싶어서 따르는 게 아니고 주님 지시가 나의 의도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더 쎄기 때문에 그럽니다. 이게 바로 그 치열하다는 영적전쟁이에요. 전혀 치열하지 않아요. 무덤덤해요. 남들이 하는 일에 무덤덤한데 가장 치열한 삶의 현장이고 전쟁의 현장이에요.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의 현장. 그냥 무덤덤해요. 예민하지 않습니다. 나는 돌이야. 나는 그냥 지시에 따라서 부르짖는 돌이야. 그냥 나는 돌이거든요.

39절 “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 나발이 무슨 악행 했습니까? 떠돌이한테 쌀이고 뭐고 다 빼앗겨야 돼요? 그래야 속이 시원해요? 나발은 다윗을 도와주기 싫어서 안 도와준 게 아니고 다윗이 누구냐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도 그렇게 불신자도 그렇고 그들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이 없어요. 예수를 알아요.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아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서 그 죄를 사하고 그걸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이걸 불신자도 알아요. 어떤 국민에게 25% 선교가 되려면 이미 100% 복음을 다 아는 국가에요. 25%가 가만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나발을 불었겠습니까. 알아도 아 예수님은 훌륭하구나 하고 끝났어요. 끝나고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열심히 일하기 나름이라고 이렇게 정리된다니까요.

그런데 그것이 악하다는 생각을 안 해요. 비바람 부는 날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면서 애쓰는 어머니. 장한 어머니 상장 줘야 되지 않습니까? 악한 자에요. 왜? 자기 세계, 내 자식 잘된다는 자기 세계. 내가 창조한 내 세계 때문에 예수님 복음이 먹히질 않아요. 나는 멋있게 살고 싶고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요. 복음이 안 들어와요. 세상에 이처럼 무서운 일이 없고 이처럼 자연스러운 일도 없어요. 너무나 평범한 일이에요 이게. 오히려 예수님한테 지시받는 게 이상한 일이지 그냥 나는 이미 죽었다. 죽은 돌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그걸 기분 나쁘게 여기는 게 아니고 성경이 그러니까 그런 거지 뭐 라고 이거는 기적에 속하는 겁니다. 돈 주고 한 것도 아니에요. 그러고 난 뒤에 이렇게 해놓고 다윗이 아비가일한테 가가지고 다윗이 당신을 아내 삼고자 합니다. 복음이 통한다 이 말이에요. 프로포즈. 지금 다윗에게 아내가 있는데 추가! 밥 하나 추가시킨 거예요.

또 43절에 보면 “다윗이 또 이스르엘 아히노암을 아내로 맞았더니 그들 두 사람이 그의 아내가 되니라” 그럼 여기에 아히노암은 왜 아내가 되었는가. 복음 통하겠지요. 다윗 좋겠다 하지 마세요. 다윗은 언약의 사람입니다. 자기 뜻이 아니고 자기 주변에 일어난 모든 사건은 언약의 가족들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를 지금 다윗이 하고 있는 거예요. 자신의 욕심 같은 것은 여기서 용납이 안 되지요.

자, 영적전쟁을 보면서 다시 누가복음 돌아가봅시다. 이제 보셨으니까 이제 이 말은 이해가 되실 거예요. 55절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벌써 정경이 눈에 훤하지요. 모닥불 빛에 의해서 베드로 얼굴에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겠지요. 그러니까 이 말은 베드로의 얼굴이 확실치 않다는 거예요. 베드로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죠.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그것도 사람들 있는 데서 나발을 불었어요.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네 말에 책임질 수 있어?! 너가 나 언제 봤다고! 일단은 대차게 한번 나가보는 거예요.

자, 보세요. 여기서 베드로가 어느 대목에서 예수님 믿었습니까? 어느 대목에서. 지금 자기 처신을 누가 조정하고 있어요? 자기가 조정하고 있지요. 마귀가 그것을 알고 있지요. 마귀가 알고 있고 베드로는 본능적이에요. 본능적으로. 단지 어두운 불빛만일까요? 무슨 권세입니까? 어두움의 권세에 이미 베드로는 놓여있어요. 어두움의 권세는 시간도 흐르고 공간 시간이 이미 있는데 그게 사람들은 현실 세계라 이야기하고 주님은 미리 뭐로 규정했습니까? 어두움의 세계라고 이야기하고. 베드로는 그걸 어두움의 세계라고 이해 못하고 이건 내가 알아서 처신하면 내가 안 죽고 있는 그런 현실 세계라고 보고.

그런데 어두움의 권세가 쪼아옵니다. “조금 후에 다른 사람이 보고 이르되 너도 그 도당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아 나는 아니로라 하더라” 그러니까 이제 베드로가 약간 큰소리를 더 냈겠지요. 왜냐하면 강한 부정이 있어야 됩니다. 나 아니야! 나 아니야! 한 시간쯤 있다가 또 한 사람이 장담하여 이르되 맞아! 맞아 그 사람 맞아. 얼굴이 왜 팔려가지고. 맞아 라고 할 때 그때가 뭐냐? 어두움의 권세죠. 어두움은 저녁부터 어디까지? 다음날 어디까지입니까? 새벽이죠. 새벽에 제일 먼저 우는 소리 나는 짐승은? 닭.

바로 베드로는 어두움의 권세 앞에서 베드로의 자신의 위상은 보잘 것 없다는 어두움이 나보다 쎄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자기는 빠져나가지도 못할 뿐더러 아예 빠져나갈 생각조차 안 했다는 사실. 비록 예수님이 자기 눈 앞에 보여도 다른 데 보면 예수님하고 눈 마주쳤다고 나와 있거든요. 예수님이 있어도 우리 인간들의 기본은 뭐냐? 예수님을 믿어도 예수를 있으나 마나한 그런 이순신 장군 강감찬 장군 정도 존경하는 인물 그 정도지 정작 존경하고 중요한 인물은 어두움의 권세에서도 기어이 살아남으려면 나 자신보다 소중한 존재는 없다는 거예요. 이걸 베드로가 보여주는 거예요. 베드로가 큰 일 한 거예요. 닭이야 새벽 되면 우는 게 자기 역할이니까. 꼬끼오 하고 우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보면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자, 여기에 베드로 있습니다. 베드로 눈에는 주변 사람들이 보이지요. 주변 사람들. 베드로는 이걸 뭐로 보지 않습니까? 어두움의 권세에 매여 있다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냥 나도 사람 너도 사람 사람 대 사람 정답게 사는 것이 유일한 인간 현실의 정확한 규정이고 정의내린 거죠. 인간이 알 수 있는 현실은 그게 전부에요. 그런데 여기 닭이 울었단 말이죠. 닭. 닭은 원래 새벽에 우는 것이 자기 할 일이니까 그래야 알을 낳으니까 울겠지. 그런데 갑자기 닭 우는 것과 이것을 한꺼번에 어디에 집어넣습니까? 이 모든 배경 위에 뭐가 있었다? 주님의 예언 주님의 말씀이 있었던 거예요. 주님의 말씀의 주인공으로서 베드로를 지목했다는 사실이에요. 베드로를 지목했다는 사실.

주님이 베드로를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어요. 그러나 주님은 11제자에게 “나는 너희를 끝까지 사랑한다” 했잖아요. 베드로가 배신하는 것도 예언되어 있지만 배신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나는 너를 놓치지 않고 만든다는 말씀도 아울러서 우리는 기억을 해야 돼요. 내 행동 엉망이다 개차반이다 이거는 기억하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한다. 우리를 의인되게 했다는 것. 그 사실을 이러한 자기의 파멸과 무너짐을 통해서 긍정적인 주님의 조치도 확신이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우리에게 믿음 주시는 방법이에요. 너 망할 대로 한번 망해봐라. 나한테 기대 걸고 나한테 자부심을 가지는 그것이 얼마나 어두움의 권세 안에서 히마리 없이 날라가는지를 네가 인생 살아가면서 체험을 혹독하게 체험을 해봐라. 예수 믿는 사람치고 동생한테 잘 해주고 해도 소용없어.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그게 나의 의에 불과한 것. 뭔가 무섭고 두려워서 나의 평가가 겁나서 주님 평가보다도 남들의 평가. 너 예수 믿더니만 별로다 그 소리 겁나서 그 모든 것이 반드시 우리가 치러야 될 뭐라고요? 복된 체험이었습니다. 그래야 내가 무너지니까. 그래야 내가 무너져요. 그래야 내가 돌이 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하면 또 이렇게 이야기해요. 돌인데 구원 안 하면 어떻게 돼요? 돌은 부르짖게 되어있다니까요. 돌로서 돌이 인간되어 부르짖는 것이 아니고 돌로서. 돌로서 부르짖고 호산나 하고 외치게 되어있단 말이죠. 그래서 62절에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통곡한다고 구원받는 건 아니고요. 그 다음에 63절부터 66절까지 예수님 눈을 가리고 때렸다 했잖아요. 우리 입장을 때리는 사람으로 생각해보세요. 때리는 사람은 어디에 속합니까? 어두움의 권세에 속하지요. 어두움의 권세에 속한 사람은 자기가 어두움의 권세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아요? 몰라요? 몰라요. 이건 예수님이 규정하신 개념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관심이 없는데 그냥 장사하고 밥 먹고 살고 월급쟁이 하고 직장 생활하는데 무슨 예수님에게 관심이 있어요. 그러니까 자기는 어두움의 권세 아니에요. 자기는 천사 같애. 아침의 천사. 엔젤. 아침에 활짝 깨어있는 천사 있잖아요. 아침에 맑은 이슬을 머금은 천사.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싶어가지고 남한테 뒤지지 않는 깔끔하고 깨끗한 사람으로 자부하는 사람인데 어두움의 권세라고 하는 것은 이거는 뭐 이단이나 신천지.

오늘 아까 유투브 이단이란 걸 녹음을 했어요. 첫 문장이 뭐였던가요. 내가 바로 이단이라고 생각해야 된다. 이단은 나 말고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이단이다. 내가 이단. 그러니까 여기 만약에 우리가 취직해가지고 경찰로 취직해가지고 그때는 로마 군병으로 취직해가지고 파견근무하면서 자칭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가 왔다. 때렸겠어요? 안 때렸겠어요? 때리지. 왜? 간수는 누구보다 높으니까? 죄인을 사람 대우하면 나중에 간수를 물어뜯어요. 그래서 길을 잘 들여야 돼요. 이유 없이 때려줘야 나는 이유 없이 맞아야 될 존재인 것을 알고 고분고분하게 되거든요. 그게 바로 매뉴얼대로 하는 거예요. 욕하고 때려서 너는 보잘 것 없는 존재. 아무 쓸모없는 존재. 너를 때리는 우리가 지금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한 생각을 우리가 대변해서 우리가 당신을 폭력을 행사하겠다 해서 간수니까 대표해서 그렇게 하지요.

그 다음에 65절 보세요.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 욕 얻어먹었어요. 바로 이것이 마셔야 될 잔 안에 다 들어있는 겁니다. 예수님 잔 안에 이스라엘 등장인물 가운데서 자기를 치는 로마 군인들까지 역할 다 맡아가지고 다 들어있는 거예요. 이 잔을 주님께서는 마시면 주님은 영생입니다. 영생이에요. 따라서 어느 인간이 이걸 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못하지요. 예수님 빼놓고 아무도 못해요. 예수님만 생명이고 예수님만 살아있고 나머지는 어두움의 권세에 매여 있는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은 무덤을 만들어요. 십자가 무덤을 만들고 성령을 보내가지고 자기 택한 백성을 그 무덤 속까지 들어와요. 십자가 속까지 들어와요.

그러면 나는 이미 죽었고 내가 사는 것은 주께서 이미 나에게 지시를 하시는 주님이 살아있는 식으로 산다. 이걸 내가 믿어라가 아니라 믿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이미 일은 이렇게 추진되고 있다. 이게 믿어지는 게 이상할 정도에요 믿어지는 게. 자신은 바닥을 치시고요 아무것도 없다 무의미하다는 사실에 대해서 기뻐하고 이것도 감사하고 자기가 무의미할 때 아무 것도 아닐 때 nothing일 때 모든 일에 감사하는 주님의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될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놀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데 우리는 주님의 일하심보다도 내가 일하는 것에 대해서 예민하고 민감하고 느끼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가 스스로 내 것 만들고 내가 높아지려는 의욕 때문에 생긴 현상이오니 주여 우리로 하여금 바닥을 치게 하시고 낮게 하시고 모든 것이 주의 일인 것을 받아들이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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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1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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