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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240509b고후4장10절(교회의 발생)-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

안양20240509b고후4장10절(교회의 발생)-이 근호 목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악과 따먹도록 허용한 이유가 생명나무에서 나오는 새로운 인간 만들기는 필히 생명나무 되시는 분의 고난을 받아야 그 고난을 본질로 해야 하나님의 천국 백성이 돼요. 여기 45페이지 제일 밑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뭐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이 고난은 두 개가 있어야 돼요. 선악과 지식만 있으면 안돼요. 선악과 지식을 가지고 아무리 고난을 받아봤자 선악과 지식이 제거되지 않습니다.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선이 되기 때문에 그래요. 두 개가 있어야 그 차이가 나고 그 차이가 거룩인데, 혼자 스스로 선악과 속에서 혼자 몸부림치면서 내가 악에서 벗어나 선대로 하겠다. 이건 티벳 불교 같은 그런 것들을 많이 하거든요.

종교에 대해서 공부하려면 여러분이 어디까지 공부해야 하느냐 하면 미리 제가 팁을 드릴게요. 종교에 대해서. 공부할 사람도 없지만. 팁을 드린다면. 어디까지 해야 되느냐 하면 티벳불교를 부처로 했어요. 천주교의 수도원들의 이론이 있어요. 천주교 수도원. 그 다음에 뭐냐, 천주교 수도원보다 급이 높은 자가 누구냐, 동방 기독교의 신비주의가 있어요. 동방 기독교의 신비주의.

동방 기독교의 신비주의보다 더 막상막하 격이 높은 것이 뭐냐, 이슬람 쪽의 신비주의가 있어요. 공통점은 다 뭡니까? 신비주의에요. 그 신비주의인데 그 신비주의와 비슷한 것이 브라만, 흰두교에 신비주의가 있어요. 티벳불교의 신비주의는 유명한 사람 자기 몸에 휘발유 부어놓고 대로가에서 스스로 불타죽은 사람이 탕비한인가 있지요. 그런 사람이 대표적인 사람인데.

그 사람들이 이런 행동할 때 영성에 관한 어떤 이론이 있어요. 이론이. 그걸 공부 좀 해봐야 아, 인간이 어디까지 뻗쳐나갈 수 있는가를 알 수가 있어요. 공부를 해봐야. 신이 된다는 것. 그냥 백날 해봐야 그거 뭡니까? 자기 속에 있는 선악지식을 뽑아낼 수 없어요. 자기가 안 다치고 구원받고자 하기 때문에. 여기 안 다친다는 말은 고난을 안 받는다는 뜻이 아니고 아무리 심한 순교를 당하고 고난을 받아도 그 자존심만큼은 그 마지막 액기스처럼 살아있는 조건하에 자아가 살아있는 조건하에 이 정도 수난과 역경은 이겨내리라, 이런 비장한 각오 이런 거 있잖아요. 그걸 하기 때문에 뽑히지를 않아요. 꼭 티눈 같아요. 뽑히지를 않아요. 그게.

강원도에 있는 수도원 있잖아요. 예수원 이런데. 뭐 뒤에 원이 있으면 원장님들 다 있지만. 골치 아파요. 이쪽 종교는 다 베껴가지고. 백날 해봤자 가장 기본은 뭐라고 했습니까? 첫 째 시간에 두 가지가 있지요. 내가 여기 있고, 이걸 부정을 못해요. 내가 살아있고. 살아있다. 이걸 부정을 못해요.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첫째 시간에 끝에 이야기한 거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언약에 의해서 인간을 진노의 불에 보냅니다. 진노 받아 마땅하지요. 할 때, 그래서 진노 받는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고 여기에 동참을 해줘야 돼요. 성령 받은 분이 동참을 해주게 되면 똑같이 그 분의 진노에 가되 사는 것은 언약이 살아버려요. 말로 들어가서 말씀이 다고요. 인간의 말, 인간의 선악지식. 그 선악지식이 불쏘시개가 되어가지고 말씀이 고난받는 말씀으로 이게 부활되어버려요. 고난받는 말씀. 그러니까 창자국 못자국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제자들은 닭 쫓던 개가 되어가지고 관계가 다 끊어졌어요. 끊어졌는데 고난받는 주님이 찾아와요. 그 때 성령을 통해서 찾아오지요. 고난받는. 그러면 인간은 말을 남기고 자기는 없어지지만, 주님은 뭐를 남기고 본인은 없어졌습니까? 말씀만 남기고 없어졌어요. 언약대로 다 이루었다, 하시고 없어지니까 그 말씀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거예요.

찾아오게 되면 고 말씀 안에 뭐가 들어있느냐 하면 아버지께서 받으시는 예수님 자신의 믿음, 자신의 소망, 자신의 사랑이 들어있어요. 그걸 은사라고 합니다. 은사. 우리말로 하면 선물이지요. 그 선물이 들어와요. 선물이 들어오면서 아까 첫째 시간 끝에 한 것처럼 우당탕탕 한바탕 우리의 내부에서 치열하게 이게 죽을 때까지 계속돼요. 치열하게 다툼이 일어나는 거예요. 야곱이 씨름하듯이. “나 복 받은 사람 맞잖아요. 왜 이래요?” 개산?하면서. 이거 경상도 말입니다.

피테르 브뤼헐(1527~1569네덜란드 화가) 이라는 화가가 있어요. 별로 유명하지 않는데 사실은 미술계 속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인데 네덜란드의 3대작가 중에 한 사람이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이 그린 그림을 제가 책에서 이렇게 있는데 마침 앞에 카메라가 있으니까 잘 보이도록 10초 드리겠습니다.
제목이 이에요.

이 그림에서 예수님이 안 보여요. 예수님이 보이지를 않아요. 이게 뭐냐 하면 이 사람 화가가 비꼬는 거예요. 교회마다 그 당시 이게 16세기거든요. 교회마다 기독교 문화고 사회고 문명이고 모든 사람이 다 날 때부터 자동적으로 자동 세례를 받아오면서 살아온 그들이 십자가는 없고 일상만 남아있는 거예요. 일상만. 주인공이 날아가 버렸어요. 왜? 본인이 있고 본인이 살아 남아야 되니까.

그거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겁니다. 그거부터. 내가 여기 있고 내가 살아있고. 그거부터 이야기하자는 거예요. 나는 없고 나는 선악지식을 아는 말뿐이라는 생각부터 출발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얼마나 선해지느냐 그걸 선한 게 아니고 내가. 내가. 선하면 안돼요. 이 세상 가짜 인간들은. 선하면 안 되고 내가 선해야 돼요. 내가. 왜? 내가 여기 옆에 있으니까. 선악지식이 선악지식 값을 하는 것은 내가 선할 때만 그 값이 난다는 거예요. 그 가치가 빛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뒤에 뭘 잘라낸 거예요? 선악을 아는 것은 어떻게 된다? 정녕 죽으리라를 잘라버린 거예요.

그런데 인간들은 선악지식을 알기 위해서는 이 성경말씀 본문을 성경 전체를 반갑다 성경아! 이리 되는 거예요. 반갑다! 성경아! 이걸 지키면 내가 기본에 갖추어져 있는 시스템은 선악지식, 성경은 말도 거룩한 성경, 따라서 이 성경을 보고 익힘으로서 지식을 확보함으로서 그걸 소유함으로서 나는 점 점 더 갱신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말이에요. 갱신. 지금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된다는 거예요.

있기는 있는데 더 괜찮은 인간. 살기는 사는데 괜찮은 훌륭한 사람으로 살아남는 것. 그것 때문에 생긴 것이 가짜교회잖아요. 교회라 하는 것은 말씀이 나와야 교회지, 말이 나오면 교회가 아니에요. 말씀만 나와야 돼요. 말씀만. 그 말씀 앞에 우리는 하나도 그 성경 말씀에 지킬 것은 하나도 없다가 나와야 돼요. 그걸 확인해야 돼요.

교회라는 것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 말씀만 남기고 사라진 그 말씀만 나와야 된다고요. 예수님 보고 싶다. 이러면 안돼요. 하나님께서 인간세계는 날아가도 선악지식은 남게 만들었어요. 선악지식은 남고 모든 인간은 다 날아가요. 그리고 선악지식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죽이는 것이 참으로 합당하다. 왜? 정녕 죽으리라로 합당하다는 것을 선악지식에 흐름 속에서 증명해 내시는 겁니다.

정녕 죽으리라 된다면, “선악에서 조금만 알았어! 그럼 지옥이나 가라.” 그게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저는 어떻게 됩니까? “니는 성령으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무슨 저가 있어?”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은 가짜인데요. 그런데 성령을 받았으면 어떻게 되느냐, 받아도 마찬가지에요. 받아도 나는 어떻다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분은 말씀이어야 되지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성령께서는 내 말을 항상 구박하고 오직 그 구박을 통해서 감추어졌던 내 말이 감추어졌던 내 선악지식과 윤리와 규범과 도덕에 감추어졌던 예수님의 생명을 나를 핍박하고 짓밟음으로서 드러나게 하는 거예요. 드러나는데 그게 핍박하고 짓밟을 때 나도 그냥 있는 게 아니고, 어떻게 했습니까? 야곱이 천사하고 씨름할 때 밤새 씨름했잖아요. 우리가 믿어야 될 말씀도 나로 인하여 상처를 입은 거예요. 그게 고난인 거예요. 주님의 고난.

니가 나를 죽이는도다. 우리가 언제 주님을 죽이려고 했습니까? 서로 대화가 되지를 않아요. 예수님과 인간 사이에.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될 건 뭘 해야 되느냐 하면, 악마가 어떻게 활동하고 악마가 인간을 어떻게 지옥으로 몰아세우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지 그러면 그 흔적을 우리는, 악마는 말이지요. 말. 선악을 통한 말. 인간은 자기 말을 통해서 자기 존재가 살아있다. 여기 말하는 것으로 봐서 내가 살아있잖아를 증명하는 방법이 말밖에 없어요. 말을 하는 거예요. 내가 안 죽었잖아. 말을 하는 거예요.

그 말을 어디서 찾는가, 제가 오늘 공부를 위해서 오면서 두 가지를 뽑아봤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도 뽑아보기를 바랍니다. 두 개의 프랭카드의 문구를 두 개 적어봤어요. 하나는 뭐냐, ‘최강취업’이에요. 우리동네에 이시아폴리스에 보면 뭐가 있는가 하면, 이시아에 섬유대학이 있어요. 3년제 전문대학급 섬유 디자인만 가르치는 대학. 그래서 딴에 취직이 잘되는 요새 50%되면 잘된다 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90%되어야 잘된다고 하는데 요새는 점점 다운되어가지고 반타작해도 취업되었다. 괜찮은 대학이라 볼 수 있어요. 그 정도 이상 되는 대학이에요. 그래서 프랭카드가 최강취업이라고 되어있어요. 최강취업.

자, 우리가 공부하는 거 여기서 적용시켜 봅시다. 응용해 봅시다. 이게 왜 마귀 말인지. 말씀이 아니고 왜 말인지. 딱 보면 최강취업했잖아요. 그럼 뭡니까. 누가 취업하는데? 내가. 니가 왜 취업하는데? 내가 시체가 아니거든. 내가 살아있잖아요. 내가 있잖아요. 있으니까 있는 인간끼리는 말씀은 이해 안 돼도 뭐는 이해된다? 말은 이해된다. 최강취업. 최강취업 옆에 붙은 간판은 ‘탱탱 치킨’. 뭐 이해 안 될 수가 없어요. 쏙쏙 들어와요. 탱탱 치킨. 나름 브랜드를 갖고 있어요. 최강취업.

옆에 옆에 이런 프랭카드가 있어요. 프랭카드 길게. 이건 대구시 민주당에서 한 건데요. ‘공정을 포기한 편파보도. 매일신문은 국민의힘의 기관지인가’ 이게 프랭카드에 있어요. 이제 분석 들어갑니다. 이게 말씀이 아니고 뭡니까? 말이지요. 말은 성령 받지 않은 자의 입에서 나오는 게 말이지요. 그러면 그들은 왜 이게 의미 있다고 보는 이유가 뭐냐, 민주당에서 했다 말이지요. 매일신문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오래된 신문사입니다. 아직 안 망하고 있어요. 안 망하고 있는데 안 망하는 이유를 알겠지요. 국민의힘의 기관지이니까.

이걸 뭐해서 노리겠다는 겁니까? 언론이라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공정한 언론기관이라면 무엇을 위해서 공정해야 되는가, 누구를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고루 줘야 되지요. 칸트의 이론에 의하면 그게 뭡니까? 인간의 존엄성이지요. 인간의 존엄성. 먹혀들어가지요. 뭐 민주당 고난받고 있어요? 지금. 아니지요. 힘이 모자르지 고난받는 건 아니잖아요.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이 자기를 믿지 말라고 오셨어요. 왜? 성령을 안 받은 게 분명하니까. 성령은 자기만 받았으니까. 믿는다고 한다면 이건 전부 다, 믿는다고 한다면, 그건 안 되지요. 자기에게서 나온 능력이 나왔을 때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뭐 이렇게 잡았을 때에 그 때는 능력이 있지만, 이건 그 능력이 먼저 미리 온 능력이에요.

십자가의 능력은 언약대로에요. 없는 자를 없는데서 있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거예요. 없는 것을 있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은 없는 존재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사라져버린 겁니다. 인간들은 눈에 띠는 것만 있으니까. 그것만 의미 있으니까. 주님은 너하고 안 논다 하고 빠져버린 거예요.

아까 제단에 제물을 올릴 때 우리가 진노의 불로 완전히 저주 받아야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인간은 인간의 단독적인 자기 죽음은 죽을 때에도 죽음이 작동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죽을 때에도. 죽음 앞에서 죽을 때에도 죽음이 뭔지를 몰라요. 왜 죽는지를 몰라요. 죽으면서 죽음을 모른다는 말은 성령이 오게 되면 지금 살아있으면서도 뭘 미리 안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이 죽음에서 나온 말인 것을 성령을 받는 순간부터 미리 알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과 나의 하고자 하는 말 사이에서 거룩이 나오니까 그 틈새가 거룩이니까 거룩이라 하는 것은 차별화, 거리 간격을 두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와 주님과의 간격에서 거룩이 나와요. 단독적으로 인간의 말만 들으면 거룩이 없어요. 틈이 없기 때문에. 따라 잡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천교도가 그게 문제 아닙니까. 따라 잡을 수 있는 거예요. 천교도. 빡시게 모든 걸 하고 그리고 정통 유대주의 같은 경우에 따라 잡을 수 있어요. 군에도 안가고 열심히 토란연구하고 율법 공부하면 누구나 펭귄 옷 입고 돌아다니면 메시아 만날 수 있다. 그거 따라 잡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말씀은 이미 절단된 거예요. 끊어진 거예요. 누가 구원받는다고 해서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언약이 들어오지 아니하면 언약을 완성하신 성령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들어오지 아니하면 우리는 죽어도 죽음이 뭔지를 몰라요. 당연히 살아도 사는 게 모르지요. 그래서 주님의 작전은 이겁니다. 마귀가 인간에게 속인 거 하고 반대지요. 주님의 작전은 뭐냐 하면 “전체를 알라.” 전체를 알라에요. 전체.

전체를 알라. 그럼 악마는 뭡니까. 악마는 어떻게 해요? “부분에 매진하라.” 이거지요. 부분에 매진하기 때문에 돈 빼먹는 것을 뭐라고 합니까. 보이스피싱. 당신 딸이 휴대폰 액정 나갔다. 그러니까 지금 딸목소리해가지고. “엄마, 돈 한 사십만원 보내줘. 액정 나갔으니까.” 엄마가 왜 돈을 보내줍니까. “어디서 죽은 딸이 어디서 전화해?” 이런 말하는 엄마 없지요. “아이구, 니가 오랜만에 전화하는구나!” 살아있으니까. 이것은 바로 그 딸은 누구 것입니까? 나의 것이거든요.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나의 것이 있음에서 나의 이 전체를 가지고 나라고 하는 거예요. 나의 기억, 나의 자존심, 체면 모두가 내 것이 있기 때문에. 내 딸도 시집가던 말든 내 딸이에요. 내 딸 다치면 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나서는 거예요. 이걸 바로 피싱 낚이지요. 어떤 음성, 피싱. 보이스피싱이지요.

그럼 교회가 뭡니까? 영혼의 보이스피싱. 교회는 말씀이 안 나오고 뭐밖에 안 나와요? 말밖에 안 나와요. 왜? 고객들이 내 여기 있고 나를 살려달라는 거예요. 나를 죽이지 말고 나를 살려달라는 거예요. 바르게 살 테니까. 나름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 왔으니까 이 노력을 가상히 여겨 달라. 목사님이 기도하던지 빽쓰던지간에 내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좀 이렇게 잘 보여 달라는 거죠.

그러니까 그 교회에 뭐가 가득 차 있느냐 하면, 말들만 가득 차 있겠지요. 그럼 거기서는 보이스피싱만 신난 거예요. 하나님은 당신만 사랑합니다. 제가 강남강의하면서 잠시 노래 하나 언급했잖아요. 18세 순이. 18세 순이의 그 의미가 뭐냐 하면, 참 좋은 시절을 자기가 못 놓겠다는 거예요. 순이와 있었던 그 순간은 그 다음 몇 년 지나면 아휴, 식상하고 뭐 그거 인물도 아니야. 하면 좋겠는데 이게 꽂혀가지고 그 때 18세 때 만났던 순이도 예쁘지만, 그 때 그 시절이 참 좋았었었어. 이리 되는 거죠.

그러니까 나라는 것은 무엇으로 구성된다? 타인으로 구성되는 거예요. 내가 욕망이 원하고, 내가 바라는 것들이 나의 것으로 들어올 때 그건 놓치고 싶지 않은 자아가 되는 겁니다. 아~ 그 때 거기에 가고 싶어. 하고 싶어. 그런데 그 순이가 사라져도 뭘 남긴다? 인간은 사라져도 뭘 남긴다? 말을 남겨요. 살구꽃이 필 때면 돌아온다는 말을 한 거예요. 살구꽃이 폈어요. 폈는데 한 해가 지나고 틈새에 찬바람이 와도 계속 난 기다린 거예요. 안 와요.

안 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가만히 있어야 돼요? 찾아나서야 됩니까? 찾아나서야 되지요. 그러니까 인간들의 말들세계서 나오는 그 말의 노래가 그거 생각하면요, 가스펠송이 아무 맛이 없어. 가스펠송들이. 위선적인 노래 같아. 18세 순이가 가스펠송 같아요. 왜? 우리의 저주성을 그대로 보여주니까요. 우리의 저주성을.

우리는 바로 그 세계 속에 말들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신자라는 것을 티를 내기 위해서 나는 그 대중가요 18세순이 그거 나는 누가 불렀는지 몰라. 나훈아가 불렀는지 나는 몰라. 이런 식으로. 나훈아 알면서도 모른다해가지고 가스펠송 나와버리면 이건 인위적인 조작된 차이 만들기지요. 그게 무엇이 작동합니까. 선악지식이 작동하는 겁니다. 저거는 나쁜 거고, 가스펠송은 좋은 거고.

차이를 스스로 만들어서 그 차이남을 아니까 나는 거룩한 존재로 그 다음에 뭡니까? 나가 뭐가 있다? 여기 있다. 나는 여기 있다. I am here. 나는 여기 있다. 그냥 있는 게 아니고 살아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게 자기 역사, 자기 말만 튀어나오는 거예요. 말씀이 안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인간들은 영원토록 본인의 입에서는 말씀이 안 나와요. 성령이 임할 때 그것도 성령으로 곱게 나오는 게 아니고 말을 나불나불하다가 어디서 까불고 있어. 마동석한테 몇 방 맞고 난 뒤에 나는 망해도 좋습니다. 할 때 그 때 말씀이 나오는 거예요. 망해도 좋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이상합니다. 내가 왜 아직도 살아있지? 어제부로 죽어야 되는데.

그럼 주님께서 말씀의 성령께서 가만두지 않아요. 늘 시비 걸어요. “니가 제대로 죽어봤어?” “한 번 목숨 끊어지고.” “그게 죽음이야? 그게?” “너 저주 받아봤어? 니가 예수님이 당한 저주 받아봤어? 그럼 너는 죽음도 몰라.” 주님의 고난에 성령께서 예수님의 그 저주의 죽음을 우리한테 주님께서 섞어넣어버리면 우리는 당황스럽고 우리가 예상 못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갑자기 누가 집을 사주겠다든지 갑자기 한 10억 정도로 그냥 주신다던지 나오면 이게 내가 얼마나 엄청난 죄인인가를 니가 어디 돈맛을 한 번 알아봐! 착한 가게 사주는 걸 뭐라고 합니까? 돈질하러 왔다 하는 거. 돈줄 내러 왔다! 한 번 맞아봐라. 니가 돈으로 25억으로 맞아봐야 정신 차리지. 패지요. 죄인인데. 돈은 돈대로 챙기고. 또 돈을 내놓지는 말고. 챙기고 죄인입니다.

이게 돈이 있던 돈이 없던 성령께서 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늘 나의 항상 어떤 죽음이나 말씀을 생각해도 나 여기 있고 나는 살아야 되겠다는 욕망 속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게 되는 겁니다.

이왕 그 사람 그림을 하나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아까 그림 후딱 지나가서 섭섭한데 다시 한 번 카메라 보여드리겠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없어요. 인간 우산들 밖에 없어요. 갈보리 십자가라 했는데 십자가 없어요. 또 비슷한 이야기가 있어요. 이에요.

아무리 여러분이 눈뜨고 봐도 여기 이카로스가 없어요. 하여튼 이 화가는 희한해. 제목은 세워 놓고 제목 주인공은 못 찾아요. 여기 눈에 보이는 그림은 어떤 그림인가 하면, 여기 한가로이 소 몰고 농사짓는 농부 보이지요. 그럼 주인공 어디 있는가, 자세히 보게 되면 물에 빠진 다리가 보일 거예요. 자세히. 자세히. 자세히 보면.

이게 뭐냐 하면 신화, 신, 하늘이야기는 농사짓는 것보다 이건 시답지 않은 내 일상의 돈 버는 일보다 중요한 일 없다는 거예요. 이카로스는 하나의 신화지요. 자기 아버지가 이카로스라는 아버지인데 재주꾼이에요. 재주꾼인데 자기 제자가 지보다 더 뛰어나니까 죽어버린 거예요. 분노사가지고 유명한 미이라 하는 거. 미이라에 갇혀가지고 또 이게 재주꾼이니까 어떻게 아이디어를 줘가지고 어떤 사람이 미이라에 잡히니까 실풀어가지고 빠져나가라는 아이디어를 줘가지고 나중에 본인도 잡혀요.

잡힐 때에 새가 날아오잖아요. 새의 깃털을 모아가지고 밀랍으로 파라핀으로 해가지고 날개를 만들어가지고 2인용해서 한사람 한사람 해가지고 아들도 잡혔어요. 둘 다 잡혀가지고 수평적으로 갇혀있으니까 수직적으로 날아가면 되지 않겠느냐 아이디어를 내가지고 날개를 하는데 그 주의사항이 있어요. 뭐냐 하면 너무 낮게 날면 습기 때문에 이게 떨어지고, 너무 높게 날면 태양에 가까이 가면 파라핀이 녹아서 분해되어 떨어진다. 했는데.

그 다음에 중요한 교훈이 뭐냐, 자기는 그걸 자기가 만들어서 바짝 신경 쓰는데 아들이 공중을 날다보니까 다시 말해서 창공을 날다보니까 약간의 신과 같이 된 거예요. 스카이다이빙하는 것이 그런 기분일 거예요. 하고 난 뒤에 한참 올라가도 한 번 맛본 자유는 내려올 줄 모르고. 다시 내려올 줄 모르는 거예요. 맛을 봤으니까. 규범을 초월한. 규범이라는 대기권에 벗어난 만끽한 일종의 마약이지요. 마약.

마약은 뭐예요? 홀로 신이 되잖아요. 그게 마약 아닙니까. 시안24라는 그 연예인이 방송중에 아무도 안 하는 짓을 해요. 뭐냐, 담배를 피우는 거예요. 실제로. 그래서 벌금 물고했는데. 이런 거 왜 아는가, 말의 세계기 때문에 내가 굳이 알 필요 없지만. 건드니까 나타나니까 한 예가 되는 거예요. 인간은 인간 본인을 주체하지 못해요. 비싼 옷 샀다. 그걸로 만족하지 않아요. 어떤 목사가 미국에서 와서 가방 사줬다. 돈 많을텐데 그걸 거절하지 못해요. 누구 이야기인지는 아시겠지만. 이건 세상이 자기를 공중에 붕 뜨게 만드는 겁니다. 한 때 3~40대 골프치는 게 유행이잖아요. 요새 골프도 시시해요. 골프가 시시하면 뭘 하느냐, 지금 40대는요, 돈 있는 사람한테는 뭘 해야 안 시시한지를 답이 없어요. 그게 문제에요.

어디에다가 내 욕망을 불태워야 될지 못 찾아서 문제에요. 못 찾아서. 그래서 하는 게 데모나 하고 있지. 그게 재미있을 거 같애. 아니면 국회의원 나오던지. 데모하고 국회의원 나오는 코스. 운동권에서 국회의원 나온 코스 하던지 하여튼 돈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불 지른 마약 중독자 나를 더 욕망을 키울 수 있는 먹거리 없을까, 그리고 돈도 개뿔도 없는 20대는 그게 모델이 되어가지고 나도 언젠간 돈 벌어서 마음껏 저런 짓 해보느냐 그게 또 모델이 되어있고. 이게 무슨 세계라 했습니까? 말의 세계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선악지식의 세계.

선악지식의 있음과 있음으로 가득찬 세계. 주님 거기서 그냥 사라진 게 아니고 고난받고 사라졌지요. 따라서 말밖에 없는 여기에 성령을 통해서 말씀을 준 거예요. 말씀을 주니까 말밖에 모르는 인간들이 자기가 있음과 여기 살아있음을 주장하는 자들이 그 말씀을 자기가 새로운 욕망이 나왔지요. 왜? 저거 믿으면 나중에 천국 가서 천국 백성 된다. 하나님 나라 백성 된다. 이게 새로운 욕망의 불씨를 일으킨 거예요. 그래서 성경 공부하는 거예요. 자기 안 다치고 그게 저주인줄 모르고.

성령께서 오셔가지고 “니 뭐 지키려고? 이거 지키려고?” “요거요. 저거요.” “지키는 거 좋아하네. 지킬게 어디 있는데. 저주나 받아라.” 그것이 바로 주님의 고난이 주는 즐거움이에요. 주님이 주는 고난의 즐거움. 고린도후서 잠시 봅시다. 11장 사도바울 이야기인데. 일단 하나 질문을 드리면서 시작할게요. 고린도후서11장13절,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라고 되어있지요. 분명히 보셨지요.

그러면 4절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하고 지금 비난내지는 꼬고 있어요. 사도바울이. 자, 그렇게 보셨지요. 질문 하나 합니다.

사도바울 본인이 하는 것은 다른 예수 아닌가요? 다른 영 아닌가요? 다른 복음 아닌가요? 사도바울이 자기는 저 사람은 거짓사도라 하는데 본인은 거짓사도 아니라는 증거 대보세요. 저 사람들보고 사탄들이고 광명한 천사로 위장한다 하는데 본인은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지 않았다는 근거를 제시해보라고요. 그게 제 질문입니다. 어떻게 답변해요?

그게 고린도후서11장에 나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자, 사도가 말하기를 자기의 몸에 있는 증상, 자기 인생의 증상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자기를 살리고자 하는 거예요? 죽이고자 하는 겁니까? 둘 다를 포함하지요. 나를 죽이고자 하면서 뭐만 살리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복음이라 하는 것은 그때그때마다 내가 죽을 자라는 것을 인식하지 아니하면 복음은 가리워져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게 빌립보서4장에도 나와 있어요. 내게 능력주사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모든 것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에 의해서 죽도록 얻어터지고 있다는 거예요. 내가.

그래서 사도바울의 내심 소원이 있어요. “그만 할래. 그만 할래. 나 사도 그만할래. 나 안할래. 빨리 죽여주옵소서.” 이거에요. 뭐 사도라고 자랑질하고 그런 거 없어요. 자기를 가만두지 않아요. 누가? 성령님이요. 그 사람들의 모임을 가지고 교회라고 하는 겁니다. 주님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가만두지 않아요? 고난 받으면 영생주겠다고 가만두지 않아요. 그게 아니라니까요.

나를 가만두지 않는 이유는 내가 나의 존재 나의 있음과 나의 살아있음이 무엇을 가리고 있느냐, 무엇을 가리고 있는가, 에요. 무엇을 가리고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를 죽이는 저주의 십자가라는 것을 내가 가리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뭘 싫어하기 때문에? 저주를 싫어해요. 우리는 희망이 있어야 살지, 낙이 있어야 살지, 낙이 없으면 안 살아요.

그럼 저주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싹둑 잘라버리는 겁니까?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본능적인 축복, 내가 잘되기, 지금도 살아있지만, 더 잘되기, 지금도 존재하지만 더 빛나게 존재하기, 이 종교적인 여망, 욕망을 우리는 스스로 포기 못하지요. 왜? 나는 착하니까. 이게 근본입니다. 나는 착하니까. 나는 저희들과 같지 아니하고. 나는 착하니까.

이 말을 듣는다고 해서 우리가 새 사람되는 거 아니에요. 어떤 목사가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잘 전했습니까? 내가 복음 잘 전했지요?” 라고 할 때 그게 정신없는 말이에요. 그 복음에 자기가 왜 들어가지요. 복음을 전하면서 얼마나 후두려 맞는지 요 설교한 다음에 교인수가 몇 명 더 늘어나고 유튜브 조회 수가 몇 명 더 늘어났는지, 헌금 얼마나 더 나오는지, 사람들이 교인들이 나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이거 계산 안 할 사람 있어요?

그것과 관련되어 있는 말 같으면 주께서 다 빼게 하시는 거예요. 그것과. 아무리 예수님 십자가 부활 백날해도 그것과 내가 알고 있는 십자가와 부활은 어제까지 알고 있던 십자가는 다 없애버려요. 그래야 또 다시 어제로 끊어진 내가 또 다시 말의 종에서 말씀의 종이 되려면 말씀의 주도권을 알고 말을 했던 내가 복음을 전했지만 어느새 그것이 내가 했다가 되어버리면 말씀이 뭐로 전락됩니까? 말로 전락되는 거예요. 내가 내뱉은 말이 되어버려요. 그 말을 끊어주는 것은 말씀이 개입되어야 돼요. 성령께서.

그럴 때 나를 조지고 짓밟고 나올 때, 내가 예상 못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예상 못한 말을 했다는 말은 내가 한 게, 내가 설교했다고 할 수 없지요. 그걸 사도바울이 하는 거예요.

또 고린도후서12장에 보면 똑같은 말을 해요. 아까는 고난받는 이야기했지요. 12장에 보면 요번에는 신나는 이야기를 해요. 내가 십 사년전에 어디 끌려갔는데 삼층천에 올라갔다. 그런데 거기 내가 올라갔다 합니까? 뭐라고 합니까? I가 아이고 it. 그가 셋째 하늘에 알렸는데 그가 몸밖에 있었는지 몸안에 있었는지 모르는데 하나님은 아신다.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본인이 본인보고 안다고 하니 이상하지요.

여기서 대구강의 한 거 잠시 그 부분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말을 한다고 했어요. 말이지요. 말의 내용의 주체는 뭐냐, 내가 들어가 있으니까 남이 한 게 아니고 내가 말을 했어. 내가 말을 했어. 라는 내용, 그 내용의 주체는 내가 돼요. 내가 되는데 이 말을 누가 하느냐 내가 해버리거든요. 내가 한다고요. 그러니까 인간은 말을 할 때 어떻게 됩니까. 벌써 주체가 몇 개 돼요? 반드시 두 개가 되는 겁니다.

“아, 배고프다.” 그 때는 내가 빠져있지요. 빠져 있어도 배고픈 사람은 누구에요? 내가 배고프면 남이 대신해 주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배고픈 것을 누가 말해요? 내가 이야기하지요. 이 인간에게는 말만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똑같은 원리로 예수님께서는 뭐만 나와요? 말이 아니고 말씀이 나와요. 십자가에서 다 이룬 말씀만 나와요.

누구에게 저 사람에게 영생을 줘야겠다. 하면 영생을 주겠다는 그 자체가 이미 완성이에요. 받고 잘 관리해라. 이게 아니고 그 자체가 완성이에요. 왜냐하면 말의 행위의 주체자가 받는 사람이 아니고 행위의 주체자가, 주체자가 자기를 집어넣어서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요한복음5장39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누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겁니까? 모든 성경에 예수님에 대하여 이야기한다고 누가 이야기해요? 예수님이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게 요한복음8장에도 나옵니다.

율법에 보면 내가 정당하다는 것은 두 증인만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그 두 증인이 누구냐 하면 바로 아버지와 그렇게 말하는 내가 하나, 둘이니까 둘이잖아. 이렇게 말해요.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유대인들은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이리 된 거예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니까 너는 말의 세계고, 나는 말씀의 세계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아무도 예수를 못 믿게 하기 위해서 오신 거예요. 너희는 갇혀있으니까 말의 세계에. 선악과 세계에 갇혀있으니까요. 기적이라는 말 이외에는 할 말이 없어요. 기적이에요. 기적입니다.

내가 망했다. 라는 것은 내가 말의 행위의 주체 나는 내가 망해서 싫다, 라는 뉘앙스가 뒤에 깔려있어요. 나는 망했다. 내가 보기에 진짜 내 인생이 짜증난다. 이리 되는 거예요. 그런데 집에 한 10억 있고 차 석대있고 애들 공부잘하고 아무 문제 없고 고부간에, 부부간에 다복하고 하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나는 망했다! 하고 활짝 화색이 환한 나는 망했다!가 되면 이건 누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자체 15억에다가 40억 있고 부동산있고, 보험5개 넣어있고, 이 자체가 망했다는 것은 같이 계신 주님이 그걸 보고 니는 망한 거야, 평가해 주는 거예요.

그럴 때 그 재산은 다 불 타야 되고 다 헌금해야 돼요? 어떻게 해야 돼요? 그 안 망했다는 나보다, 망했다는 말씀이 있는 재산보다 더 귀하게 여겨지는 거예요. 여러분! 매일같이 그렇게 살지요? 10억씩 다 있지요. 다 그리 사시지요? 망한 거예요. 그런데 망한 게 내가 나를 평가해서 나는 조졌어. 조졌어. 나 안 살래. 자살할래. 이게 아니라 주께서 이야기 해 줄까? “너 망했어!” “할렐루야!” 진짜 돈이 있던 없던 관계없이 할렐루야! 에요. 그게. 그 말씀을 내뱉은 그 모임을 가지고 교회라고 하는 겁니다.

주님이 이 말밖에 모르는 인간들에게 수난받는 수난과 더불어 함께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교회는 없기 때문에 교회가 있는 거예요. 성도는 없기 때문에 성도는 있는 거예요. 성도는 있는 거예요. 왜?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안 보이는 주님이 계셔서 오늘날 교회와 성도를 없는 성도 없는 교회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그런데 만들어낸 그걸 가지고 이건 나라고 되어버리면 갑자기 말에다가 뭘 집어넣은 거예요? 말씀의 세계에 말이 들어가 버린 거예요. 우리는 육신이 있는 한 평생 그럴 거예요. 그러면 5분대기조가 삥야~ 삥야~ 해가지고 성령이 와서 그걸 나를 짓밟아버리는 거예요. 어떻게 짓밟아버리는가, 예상 못할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혼줄 내는 게 아니고 돈줄을 내가지고 25억이다! 더 추가요! 패버리는 거예요. 이래도 너가 안 망했어? 비트코인 이렇게 많이 올라가도 안 망했어? 그러면 그 맞는 게 기쁘지요. 돈줄 맞는 게 기쁜 게 아니고 그 말밖에 모르는 나의 세계에 나를 저주의 대상으로 보시는 그 말씀이 너무 기쁜 거예요.

“왜, 내가 이런 복을 굳이 받아야 됩니까?” 어제 수요 설교한 것처럼. 왜 내가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합니까? 한쪽은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한쪽은 찡그리면서 이야기하면서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당해야 됩니까? 똑같은 말이에요. 내가 왜 말씀을 듣고 있는 기쁜 수모를 당해야 됩니까?

따라서 교회 책임자는 교인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를 관리하겠다는 것은 아직도 선악기준에서 나를 악한 쪽보다 선한 쪽으로 더 발전시키려는 악마의 노림수가 있는 겁니다. 규범이지요. 나를 하나님보다 더 존엄있게 생각하는 겁니다.

끝으로 이 문장을 내가 내세울테니까 여러분이 판단해 보세요. 피가 중요합니까? 내가 중요합니까? 답은 딱 나와있지요. 피가 중요하지요. 그럼 내가 여기 감지하는 순간 뭐가 중요해요? 내가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의 피로 죄사함을 얻으려고 시도할 거예요. 교묘하지요. 죽고 난 뒤에 부활하고 싶은 거예요.

말씀을 내거로 가져오게 되면 그게 말씀이 돼요? 말이 돼요? 말이 되어버려요. 말씀이 아니에요. 계속 주님께서 이걸 묻는 거예요. 성령께서.

피가 중요해? 니가 중요해? 피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이지요. 그게 뭐냐 하면 보쌈원칙이에요. 보쌈원칙. 주님께서는 자기 피를 상추쌈. 상추같은 흐리무리한 우리를 가지고 안에 돼지고기하고 홍어하고 간장하고 두부하고 요렇게 맛있게 먹으려고 하는데 우리는 상추쌈에 불과한데, just a moment! 잠깐만요!해가지고 자기가 예수님을 쌈으로 사용해가지고 영생 얻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게 교회 보이스피싱의 주특기 아닙니까.

“십자가 믿고 여러분 씻음 받으시고 부활했으니까 새생명으로 삶을 삽시다. 믿씁니까? 아멘.” 이러고 헤어지는 거예요. 가짜가. 가짜는 반드시 가짜에게 가짜들끼리 속아넘어가게 되어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성령께서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거예요. 니가 생각할 수 있는 것. 니가 공부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침투하지 못한 다른 세계.

그것이 뭐냐, 바로 예수 죽인 것을 내 몸에 짊어지는 성령이 찾아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믿음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예수님 믿음으로 구원받는 나는 하나의 쌈, 또는 쓰레기처럼 취급해도 나는 좋소. 하는 그리스도만 드러내는 그런 현상이 성령님의 살아계심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고 우리는 살아있지 않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우리가 무슨 생각하고 있었는지 앞으로도 우리가 무슨 생각하고 있을지 우리는 모르는데 주께서는 다 익히 아셔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 함을 미리 던져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를 쌈으로 사용하사 그 안에다가 십자가 피가 담길 수 있는 성도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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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1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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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