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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240509a고후4장10절(교회의 발생)-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

안양20240509a고후4장10절(교회의 발생)-이 근호 목사

시작하겠습니다. 45페이지에 보게 되면 그 중간에 고린도후서4장10절,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또 고난은 우리에게 상을 가져다 준다.(살후1:7,계2:10) 마태복음5장 11절에 나로 인하여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신약에 와서 복이 주어지는 방식은 구약에서는 율법을 지켜야 복을 받는다고 되어있는데 여기서는 뭐냐 하면 예수님으로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악한 말을 할 때만 복이 와요. 신약에 와서 그렇습니다. 구약에서는 그냥 복이 오지 않아요. 신약에서는 은혜가 오지요. 아이고, 이거 중요해요. 은혜하고 복하고 다릅니다.

은혜는 김정은이라도 선이든 악이든 관계없이 햇빛과 공기주는 은혜에요. 나중에 그 은혜 준 책임추궁 들어올 겁니다. 마지막에. 인간은 은혜를 뭐로 바꾸느냐 쓰레기로 바꿔요.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너무 많아서 소모를 다 못해서 쓰레기처리 하고 있는 거예요.

은혜가 쓰레기로 변하는데 거기에 뭐가 끼어드느냐 하면, 여기에 인간이 끼어들어서 은혜가 쓰레기로 변하는 겁니다. 뭐 신자라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하나님 은혜는 쓰레기로 변하기 전에 요 성도는 인간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존재로서 들어가게 되게 되면 이것은 뭐냐 하면 생명이 되고 이게 복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은혜가 우리한테 주는 은혜가 아니고 우리와 함께 계신 그리스도에게 준 은혜가 되겠지요. 은혜라는 것은 우리가 있다면 은혜가 우리한테 주는 것은 없어요. 은혜는 반드시 예수님에게서 나와서 예수님에게로 돌아가는데 우리가 여기에 이 경로에 끼어들었을 뿐입니다.

주님이 하신 자기 노력을 주님이 건사하는 거예요. 회수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농부요, 포도나무의 원리지요. 아버지는 농부, 나는 포도나무다. 주께서 나를 키웠다. 키웠는데 그러면 성도는 뭐냐, 너는 나한테 붙어있는 가지지요. 가지다 말이지요. 그런데 이 말씀 자체가 철저하게 예수님은 우리 인간존재하고 다른 존재로 구분 짓는 겁니다.

이렇게 교회의 본질이라는 제목하에 45페이지잖아요. 초반의 이 이야기는 요 교재 전체 이야기 ‘뒤에서 본 한국교회’의 전체 이야기는 교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것은 없어요. 신약 성경이 되어야 교회가 생기지 그 전까지는 이방인과 이스라엘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교회가 아닙니다. 이방민족도 교회가 아니고요.

교회라 하는 것은 사도행전20장 28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피를 흘려야 교회가 돼요. 피로 값 주고 사야 교회가 된다고요. 그러면 예수님의 피가 동원되기 전에는 이스라엘의 집단을 이루기 위해서는 뭐가 동원되겠습니까. 인간들의 자기의 노력과 자기의 애씀과 시도와 또는 순교하는 피, 이런 게 동원되겠지요.

순교자가 순교했다고 구원받는 거 아닙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자기 피지 메시아 피 아니잖아요. 메시아 피를 모형으로 보여주었지 모형은 모형일 뿐입니다. 모형은 실체가 아닙니다. 따라서 교회는 없다는 말은 교회는 없어요. 이 역사 속에 교회는 없는데 그럼 역사 속에 사도행전에 보면, “교회가 있잖아.” 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요. 그러나 사도행전은 역사가 아니고 역사의 끝부분이에요. 끝을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요엘에 보면 마지막 때에 오는 게 뭐냐 하면 성신이 오게 되어있어요. 요엘2장에 보면. 그러면 교회 이전에 뭐가 있다? 성령 있다. 사도행전 2장이야기입니다. 오순절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 됐잖아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어요. 이 성령은 언제 온다 했습니까? 역사 속에 옵니까? 아니면 마지막 때 옵니까? 마지막 때 성령이 와요. 마지막 때에.

역사의 진전이 의미가 없을 때에 그러니까 성령이 오셨다는 자체가 역사는 이제 그만! 그런 뜻이에요. 역사는 그만! 그 뒤는 뭐냐, 마지막! 마지막! 마지막! 제자리 뛰기 하는 겁니다. 어제도 마지막! 오늘도 마지막! 내일도 마지막! 마지막에 스카이 퐁퐁 하듯이 마지막을 뛰는 거예요.

그러면 멀쩡한 역사가 마지막이 되었느냐, 궁금하지요.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심판 받기 때문에, 심판이기 때문에 마지막인 거예요.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타작마당이라 하는 거예요. 타작마당. 한식집 간판 이름 아닙니다. 그냥 살벌해요. 타작마당이에요. 심판은 가려내고 분류하는 거예요. 짝퉁하고 진짜하고 가려내는 거예요. 뭐 중국산하고 가려내는 거예요. 이거 또 이야기하면 중국 비난하지 말라고..., 뭘 말을 못해.

심판 이게 가짜와 진짜를 가려내는데 가려내는 방법은 예수님의 자신의 몸이 기준이 되어서 가려내지는 거예요. 예수님의 몸이 어떤 몸이냐 하면, 성령 받은 몸입니다. 성령을 입은 몸이에요. 왜 교회가 없느냐, 역사 속에 있기 때문에 역사 속에 있는 인간세계는 교회가 없다.

왜 역사세계는 인간세계는 교회가 없느냐, 다 가짜기 때문에 그렇다. 왜 멀쩡한 인간을 가짜라고 매도할 수 있느냐, 그 이유는 모든 인간은 처녀로부터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요. 처녀로부터. 동정녀로부터 안 태어나서 그래요. 참, 하나님의 기준이 가혹하지요. 하나님의 기준은 따라 잡을 수 없게 만들어버렸어요. 흉내내기도 안될 정도로 만들어버렸어요.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성령을 입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다는 말은 그 분만이 뭐가 된다는 말이에요. 참된 진짜 인간이다 말이에요. 진짜 인간이라면 나머지 예수님 빼놓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처녀 몸으로 태어난 예수님 빼놓고 나머지는 뭐가 돼요? 전부다 가짜가 되겠지요. 당연히 가짜지요. 로마서3장에 나옵니다. 모든 인간이 죄를 범했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가짜라는 뜻이에요. 가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율법을 만족시키지 않으면 가짜에요. 어떤 강도가 있었다. 제사장이 있었다. 가짜. 레위인 가짜. 그러면 누가 진짜냐, 율법을 만족시켜야 돼요. 누가 그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라는 이웃을 사랑하는 율법에 딱 들어맞아야 진짜가 돼요.

강도만난 사람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과 제사장 그리고 레위인을 날카롭게 분류시키지요. 분류시킵니다. 그건 하나의 비유니까요. 진짜 거기서 진정한 자비를 베푸는, 자비를 뭐 줬다 뺏다 하는 정도가 아니고 그 사마리아인이 가면서 그냥 내가 돌봤습니다. 하고 끝이 아니라 혹시 여비가 더 들면 끝까지 보장해줄게. 책임져줄게. 이리 된 거예요.

피가 필요하면 헌혈하고 의료보험카드 필요하면 내거 갖다 쓰고 이런 거. 끝까지 가자. 끝까지. 이웃사랑하려면 끝까지 갈 수 있는 사람. 그런 분 누굽니까? 예수님 밖에 없어요. 끝까지 가는 거. 언제까지? 강도 만난 사람이 회복될 때까지. 책임지고 끝까지 가는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왜? 나머지는 안 되는가? 가짜기 때문에. 내가 나를 돌보면 안 되는가, 내가 가짜기 때문에. 아주 냉철하게 봅시다. 여러분이 처녀의 몸으로 태어난 게 아니지요. 왜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의도적으로 육의 내림에서 그걸 절단시키는 게 뭐냐 하면 남녀, 남녀, 남녀관계에 의해서 난자, 정자 만나서 태어난 그걸 의도적으로 그걸 배제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런 식으로 해야 우리들은 다 인간 맞지. 라는 이러한 통속적이고 선입감을 한꺼번에 몰아서 모조리 가짜가 가짜끼리 이야기한다가 되는 거예요. 가짜가 가짜끼리.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것은 뭐냐 하면, 인간은 왜 잠시 인간이었는데 왜 도로 흙이 되느냐, 그 내막도 살펴주는 거예요. 인간 존재는 다이소 물건이에요. 헐한데 소모용이에요. 신상 나오면 언제든지 매장에서 또 갈아치우지요. 매장 개념 딱 떠오르지요. 신상. 일시적으로만 있는 것, 한시적으로 있는 것은 가짜입니다. 있다가도 없는 안개 같은 거예요. 상품을 매장에 진열하고 팔면서 그 매장하는 그 가게 주인도 상품과 같은 존재지요. 있다가 없어지는 거. 가짜입니다.

“예수님은 참 착해서 훌륭하다.” 아니에요. 성령이 함께해서 그래요. 성령님이. 그러면 우리도 성령 주면 되지 않겠느냐, 니 역사 포기할래? 성령은 마지막 때 오는 거예요. 성령이 올 때는 조건이 있습니다. 뭐냐 하면 역사 접어라. 지나간 것은 지나간 걸로 끝났어요. 역사 접어라. 옛날에 70년도에 나왔던 노래 중에 이런 노래 있어요. 과거는 흘러갔다. 라는 노래가 있어요. 과거는 흘러갔다. 여러분들은 모르지요. 나는 그 때 그 가락이 좋고, 가사가 좋았는데 지금 보니까 약간은 의미가 있어요. 지나간 거지만.

인간이 가짜라는 것은 성령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짜가 되는 겁니다. 사도행전2장16~18절 볼게요.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언제 내 영이 온다 했습니까? 언제? 말세에. 마지막 때에. 마지막 때는 심판 때입니다. 착 착 착 책꽂이에 정리하듯이 정리합시다. 뭐든지 집안에 착착착 정리가 되어야 보는 사람이 마음이 편해요.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모든 것은 차이나는 어떠한 종교나 민족이나 학력이나 이런 거 없이 그냥 주실 때나 받을 수 있는 것. 자기 인격으로 당연히 받아야 된다는 조건이 다 철폐되는 것. 열심히 했으니까 교회 충성했으니까 전부 다 이런 거 없어요. 기도 많이 해서 주는 거 없어요. 마지막 때니까 인간의 역사는 어떻습니까? 가짜 역사로서 판명이 됐지요. 그러면 주고 안 주고는 누구 마음이에요? 하나님 마음이지요.

그러면 성령을 왜 주느냐, 바로 심판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줄 때만 복을 받고 안 주면 그냥 저주 아래 저주 그대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주고 싶은 사람이 그냥 자기 마음대로 주는 거예요. 내 인생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자체가 참 시건방진 일입니다.

남은 가졌는데 나는 왜 안 줘. 이 자체가 이건 그만큼 그 사람은 자기만의 과거가 있다는 티를 내는 거예요. 내가 이걸 얻기 위해서 과거에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이리 되어버리면 왜 나는 안 주는데? 이리 되는 거예요. 왜 성령이 나한테는 오지 않는가, 거기 2장에 보면 마지막 때에 예언을 할 것이요, 라고 되어있어요. 여기부터 약간 어려워집니다.

자, 먼저 성령 받은 분이 예수님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성령 받을 때 아무도 성령 받은 사람이 없어요. 누가 있어요? 구약 때는 성신 받았어요. 아무도 성령 받지 않았어요.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아~ 정말 어려운데요. 여러분한테 말씀드리고 싶어요.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에 내용이 함축되어서 성령이 그대로 인수인계해서 받은 거예요. 모자람이 없이. 성령 받았다는 말은 모자람이 없는 거예요.

성령의 능력이 임했다, 이건 성령 받은 게 아니에요.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힘이 오는 게 아니고 재주가 오는 게 아니고 기적이 오는 게 아니라 주님이 쓱 들어오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말씀이 내 앞에 있다가 이제는 말씀이 들어오는 게 아니고 다 이룬 말씀이 들어와요. 다 이룬 말씀이. 참, 이거 하면 마귀가 이런 이야기에 아주 분노를 느낍니다. 분노를.

마귀는 골기퍼잖아요. 들어오지 말라고 공을 막고 있는데 대한축구협회 회장님이 공을 안고 골기퍼 비켜서 들어온 거예요. 요새 대한축구협회 욕 얻어먹고 있지만. 그냥 골 하나 들어온 게 아니에요. 축구게임 끝났음을 통고하는 거예요. 축구게임 끝났어. 인간은 게임으로 희망을 갖는데 희망을 갖는 게임 자체가 더 이상 불필요해져 버린 거예요. 그냥 성령이 왔다는 말은 그냥 생명이 쓱 들어온 거예요.

생명이 쓱 들어왔다는 말은 그 생명을 지으신 분이 끝까지 책임지는 정도가 아니고 그 생명을 증거해야 될 포장지가 필요한 거예요. 포도나무의 가지가 필요하듯이. 주인이 바뀌지요. 그래서 그 45페이지에 후딱 읽었던 본문 다시 보겠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나타나다. 우리가 병원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 같으면 뭡니까? 증상. 증상이에요. 증상. 발현된 증상. 어떻게 열이 나십니까? 목이 칼칼하십니까? 요런 거. 한약 한 번 달여 잡수시겠습니까? 증상이지요. 증상을 우리가 어떻게 관리합니까. 이 말은 성도는 자기 인생을 자기가 관리 못해요.

주님이 계시는 증상이 나오는데 이걸 자기 행함으로 단도리 한다. 안 되지요. 성령이 가만두지를 않아요. 요렇게 정리하면 쉽지요. 성령을 입은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어요. 다 이루고 그걸 그대로 성령님께서 그걸 그대로 가지고 가짜 인간 속에 그걸 집어넣으신 거예요. 그게 요한복음 16장에 나옵니다. 16장15절,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여기서 그가 누구냐 하면, 13절에 보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이리 되어있어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한다. 하지요. 성령은 자존심도 없어. 자기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성령은 자기 말을 안 해요. 누구 말을 하느냐 하면 예수님 말씀을 하셔요. 예수님의 것을 그냥 계속 재탕하되 어디서 재탕하느냐, 우리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왕왕거리면서 재탕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도의 만남은 왕왕거림이 있어야 돼요. 왕왕거림이. 생명에 관한 왕왕거림.

제가 여러분에게 초반이지만 문제 하나 낼게요. 고린도후서4장10절인데요,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리 되어있지요. 문제 나갑니다. 여러분들이 성도 같으면 성령을 통해서 이걸 지키는 겁니까? 말씀을 우리보고 지키라는 말씀이에요? 무슨 이야기에요? 1번 지키라는 이야기다. 2번 못 지킨다는 이야기다. 어떤 겁니까? 말씀이. 성령까지 동원하면 성령께서 이걸 하게 해서 우리가 지켜낼 수 있다고 보면 어떻습니까? 돼요? 안돼요? 안되지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이 말씀대로 살아라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나타나게 하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지켜주는 거예요. 요 말씀을 지키는 거예요. 요 말씀을. 요 말씀을 내가 지키는 게 아니고 나 빼버리고 성령이 그 속에 이 말씀을 말씀되게 지켜줘서 우리는 하나의 발현현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증상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이.

똑같은 문제인데 여러분이 쉬울 거예요. 요한복음3장16절 유명한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그 말씀은 우리가 지키라는 말입니까, 아니면 그 말씀 자체를 지키도록 해준다는 말입니까. 그 말씀을 지키도록 해준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그 성령이 지킬 때 무엇이 떨어져나가고 성령께서 뭘 발로 차버리는 겁니까. 요한복음3장16절을 내가 지키려는 그것을 차버리는 거예요.

“이 가짜가 말씀을 지켜? 내가 지킨다는데 니가 왜 그 말씀을 니가 왜 지키고자 해? 수상해. 왜 지키고자 해? 왜 지키려고 하는데?” “영생을 얻으려고요.” 그러니까 가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킨다는 자체가 행함이 되지요. 행함이 모이면 역사가 돼요. 자기만의 역사. 즉 자기의 과거가 되고. 참 쉽죠잉. 쉽다는 이야기 수천번 했어요.

우리는 헛껍데기라니까요. 우리는. 인생은. 내 안에 말씀이 살아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걸 지키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지킨다는 것은 어디서 나왔는가, 도대체 자꾸 말씀 보면 지키려고. 지키려고 끈을 찾기 위해서 말씀을 보는 이 성향. 이것도 일종의 증상인데요. 이 증상은 어디서 나왔는가, 에덴동산에 나무가 두 개 있었어요. 하나는 선악을 아는 과일을 가진 나무, 또 하나는 뭐냐 하면 생명을 주는 생명나무, 생명나무의 과실을 맺힌 나무. 이 두 가지 나무가 있잖아요. 이 두 가지 나무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선악을 아는 과실을 따먹지 말라고 했지요.

뒤에 조건이 붙어있어요. 뭐냐 하면 정녕 죽으리라, 되어있어요. 정녕 죽으리라. 그러면 마귀가 와서 인간으로 하여금 선악과 따먹은 과실을 이걸 따먹게 했습니다. 그러면 따먹고 난 뒤에 어디로 쫓겨났습니까? 땅의 근본 이 대지로 쫓겨났지요. 저주가 늘 일어나는 저주가 용암처럼 벌벌 거리는 어디가도 저주가 일어나는 그 대지 속으로 인간들은 갔지요. 가게 되면 나라가 두 개 됐지요. 하나는 선악을 아는 지식이 있는 곳과 그 다음에 선악을 아는 지식은 있지만, 뭐가 없어요? 생명이 없는 곳과 생명이 있는 곳으로 둘로 나누어졌지요.

나누어졌는데 선악을 아는 지식에 뭐가 따라 붙느냐 하면, 정녕 죽으리라, 따라 붙는 거예요. 그러니까 선악을 알면 뭐가 된다? 정녕 죽으리라가 되는 거예요. 따라 붙어있으니까. 그래서 창세기3장에 보면 니가 실컷 살고자해도 죽게 되고 나중에 흙이 되는 겁니다. 흙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첫 째 강의 가장 중요한 테마입니다.

흙이 된다는 말은 너가 없다는 말이에요. 너가 없다. 하나님이 원하는 인간은 없다. 가짜밖에 없어요. 가짜니까 인간 취급하지 말고 진짜 인간은 없는 거예요. 자, 인간은 없다는 인간은 흙덩어리밖에 없고 인간은 없는데 여기에 대해서 인간들이 동의를 못하지요. 왜? 나는 엄연히 있고 엄연히 있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엄연히 나는 살아가야 되니까. 돈 벌고 애써서 자식 키우고 살아있어야 되니까.

인간세계에서는 이 두 가지를 포기를 못해요. 내가 엄연히 있고 나는 엄연히 살아있다. 이 모든 스토리 이야기를 여기서부터 출발하자는 거예요. 이 세상 인간들은. 성경을 보든 뭘 보든 하나님을 대하든 모든 문제를 내가 여기 있고 나는 살아있다부터 출발하자는 거예요. 내가 없고, 나는 죽었다고부터 출발하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왜? 모든 인간이 다들 거기에 다 동의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진짜 인간을 뭐로 만들었어요? 뭐로 출생케 했습니까? 처녀인데 여기에 성령이 임해서 동정녀에서 예수님이 태어났지요. 그러면 예수님이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태어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와의 차별함이 이 세상에서도 드디어 구분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성령으로 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러면 둘 중에 하나는 진짜고 둘 중에 하나는 가짜가 되는 겁니다. 둘 중에 하나가 가짜가 되는 거예요.

사도행전2장에서 마지막 때에 심판 때에 성령을 주시는데 그 성령을 주시는 내용이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이리 되어있지요. 환상, 꿈, 예언, 이게 다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 구약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 언제 이루어진다? 마지막 때에 이루어지는 거예요. 어떻게 와서, 성령이 와야 이루어지는 거예요.

아까 제가 이야기했지요. 성령은 바로 오는 게 아니라고요. 누구한테 와서 성령이 오는 거죠? 성령 받았던 예수님이 모든 것을 예수님이 독단적으로 다 이루어 냈다는 것이 성공을 해야 그 다음에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등장함으로서 우리는 있는 존재에요? 없는 존재에요? 없는 존재에요. 우리는 죽은 자에요? 산 자에요? 죽은 자죠. 그러면 살아있는 것은 영원히 계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지요. 그러면 영원히 살아계신 분도 예수님밖에 없지요. 그러면 누가 활동하는 거예요? 영원히 활동한다는 그 의미도 예수님의 활동만 인정받고 우리 활동은 인정하지 않지요. 우리 활동 속에서는 죽음만 나오기 때문에. 예수님의 활동은 생명만 나오지요.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만 나오지요.

자, 그렇다면 누가 예수님을 가로막지요?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누가 예수님을 가로막습니까? 첫째 예수님이 안 보여요. 안 보이니까 이론상은 있지만, 실제상은 없어요. 그러면 누가 있어요? 때려죽여도 내가 있어요. 내가. 내가 있다고요. 내가 있어서 어버이날 대전 가서 부모님 모시고 하는 거예요. 내가 있는 거예요. 갈 때 빈손 갑니까. 용돈드리고 밥 먹으러 가면 용돈 드려야 되지 않습니까.

매사가 내 있는 것부터 출발하니까 매사가 주님의 있음을 밀치게 되는 거예요. 밀어내는 겁니다. 내가 가로막아요. 인간이 내뱉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말이라고 해요. 말. 요번 수련회 신명기 제목을 ‘말과 말씀’입니다. 인간이 내뱉는 것은 말이에요. 말. 가짜 인간에서 나오는 건 말입니다. 말.

그런데 주님께서 나오는 것은 말이 아니고 뭐냐 하면 말씀이에요. 그 말씀이 어떤 말씀이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라고 하신 분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예언이고, 예언은 성령과 동반해서 하지 않으면 예언이 성취성이 없어요. 반드시 성령과 동반해야 돼요. 그 모든 예언을 누가 이루었습니까. 예수님 홀로 단독으로 이루었지요. 분명히 합니다. 모든 말씀은 예수님 단독으로 이루었습니다. 단독으로.

단독이라 하는 것은 인간세계는 뭐가 있다? 선악지식이 있지요. 그럼 인간의 말들은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말만 하면 뭐가 나와요? 선악지식이 마구 마구 쏟아지는 거예요. 폭탄 쏟아지듯이 쏟아지는 거예요.

철학자 두 명을 제가 언급해 드리겠습니다. 칸트하고 하이데거인데. 들어보세요. 칸트. 칸트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이 세상사는 윤리와 원리는 도덕은 오직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야 된다. 이런 이야기했어요. 무슨 뜻인지 감이 오지요.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둔다.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은 어떤 것도 악이다. 따라서 인간이 완벽하지 않고 실수 많고 오류가 많고 지식도 모자르고 하지만, 그러나 그 방향성 하나가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방식이라면 그가 뭐가 돼도 우리는 그걸 용납하고 용서의 대상이 된다고 했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인간의 존엄성 외에 다른 것에 목적을 두면 안 된다는 거예요. 사랑하되 돌보되 “내가 사랑하면 너는 얼마 줄 건데?” 이런 식으로 하지 말라는 거예요. 칸트 이야기는. 그냥 인간 자체의 존엄함, 존재함 자체를 목적으로 두고 해야 가장 완벽한 도덕이고 윤리라고 한 겁니다.

그 칸트의 주장을 그 당시 신학교는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게 바로 산상설교의 핵심이라고 본 거예요. 인간 자체를 사랑함으로서. 이웃을 사랑한 걸로 인간 자체를 사랑함으로서 철학적으로 이웃 사랑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했어요. 그걸 신칸트주의 학파라고 하는 거, 신학에서 나온 것.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이 한 번 시비 걸어 보세요. 바로 이 언급에. 이 시비를 건 사람이 하이데거에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간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면 반드시 이 사회에 뭐가 있어야 하느냐 하면 규범이 있어야 돼요. 규범. 법률. 도덕. 이게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이데거 말이. 뭐 지킬 것은 지키고 이런 거죠. 있다면. 그러면 그 규범이 그 법이 우리에게 족쇄가 되지 않느냐. 족쇄가 되지요.

다시 말해서 규범은 나는 말고 다른 사람은 지켜. 나는 내 맘대로 할 거야.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본성을 갖고 있는 거예요. 하이데거가 보기에. 그렇다면 “다 같이 불편하더라도 사람들이 힘들더라도 지켜줄 것은 지켜줘야 그게 인간이 인간다움으로 짐승과 다른 차이점이다.” 라고 한다면 그게 하이데거가 칸트를 비판한. 한다면 규범 자체를 어떻게 할 건데요. 규범 자체를. 그게 우리한테 짐이 되지 않는가, 일종의 간섭 받는 게 아닌가. 하나님이 간섭하는 게 아니고 옆에 있는 너와 내가 서로가 서로를 간섭하고 있는 이런 것에서 어떻게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얻겠느냐 하는 거예요. 어떻게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겠는가.

동네에 20대의 청년이 100명 있다. 다른 애들 청년들 군에 보내가지고 우리가 밤잠 잘 때도 보초서가지고 적들로부터 지켜 줘. 하지만 우리 애는 빼련다. 우리 애는 어떻게 하던지. “야, 너 어디 아픈데 없어? 니는 어떻게 군에 후딱 갔다 오는데 없어?” 우리 애는 꼭 전방 가서 제일 위험한데 가자. 이런 부모는 없어요.

아예 전방 보내려하면 밤잠 자지 말던지 아니면 새벽기도 빠지지 말고 기도하던지. 제일 위험한 지뢰가 바로 앞에 있는 잘못 실수하면 터지는데. 거기 가기를 원합니까, 후방에 마산통합병원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위생병원 가던지. 아침에 일어나면 바다향이 확 나오는 그런데서 한 2년 보낼 건지. 어디를 가고 싶어요? 부모보고 선택하라 해보세요. 애 군에 갔다 왔지요. 보세요. 이게 어떻게 됩니까?

규범은 남은 지키되 나는 이 자체가 짐이 된다면 그렇게 타인이 있다는 것, 또는 그런 규범이 있다는 자체가 우리의 진정한 존엄성을 훼손하는 게 아니냐 이론 따지지 말고 실제적으로 이 느낌. 느낌 알지요. 유교 집안에 시집가가지고 신혼여행 갔다와가지고 첫날 하는 게 “아버님, 어머님, 나 다른 거 다해도 제사는 못 드립니다.” 그럴 때 시부모가 “우리 집안은 대대로 지금 28대가 유명한 영의정, 좌의정 했고 유교 집안인데 그 제사 우리 1년에 야야~ 몇 번 안 된다. 열 번밖에 안 돼.” 그럼 며느리가 나는 제사하면 아직까지 혼인신고 미뤄놨는데 나 혼인신고 안 합니다. 우리 여기서 헤어져. 이럴 판이에요.

왜? 우리 집안은 제사드리지 않는 집안이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스스로 자유를 과거에 키워온 내 자유를 내가 여기서 와장창 다 부서트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간이 내부에 갖고 있는 자유성. 다시 말해서 악마가 심어준 절대적인 신성이지요.

그러면 규범을 철폐, 밀어낸다는 말은 그럼 규범이 없다는 말이에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니까요. 없다는 말이 아니고 규범을 하던 법을 하던 누가 정한다? 내가 정한다. 이게 바로 마귀가 모든 인간에게 집어넣은 거예요. 내가 기준이 되는 거예요. 내가. 그럴 때 나는 비로소 신적인 감정을 느껴요. 내가. 왜 아들이 아버지 자리를 왜 그렇게 부러워하는지 알아요? 아버지가 오야붕이거든요. 제일 돛대거든요. 집안에서. 지금은 좀 바뀌었지요. 돈 버는 쪽이 오야붕이지요. 돈 버는 쪽이 오야붕이지 뭐.

그래서 인간에서 말하는 것은 뭐냐, 자기가 윤리이고 자기가 도덕이고 자기가 기준이기 때문에 그래서 쏟아지는 것은 말씀이 아니고 말이에요. 선악에 관한 지식이에요. 선악이 있는 한, 이거 중요하니까 적어볼게요.

‘선악지식이 있는 한, 나는 여기 분명히 있다. 없다가 아니라 있다.’ 뭐가? 선악지식이 나한테 있으니까요. 선악지식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인간은 선악지식의 증상이에요. 선악지식의 증상인 동시에 죽으리라, 의 증상이에요. 아~ 그래서 니가 죽어야 돼. 그래서. 그래서 니가 죽어야 된다고.

그러면 영생 얻는다는 말은 뭐를 죽여야 돼요? 선악지식을 이걸 죽여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걸 안 죽이고 생명나무 따먹을까 싶어서 하나님이 내린 조치가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킨 사건이에요. 이거 애들도 창세기3장보면 다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추방하는 이유. 선악지식은 인간이 소유하면 안 된다는 뜻이에요. 선악지식을. 선악지식을 소유하게 되면 니는 마귀가 되는 거예요. 사탄이 되는 거예요.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왜 배신했습니까? 가룟유다가 멍청이라서 그래요? 바보라서 그래요? 아는 게 있어서 그래요. 아는 게. 나름대로의 자기 판단으로 하여금 자기가 신이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요모조모 따져도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한테 덕이 안 돼요. 자기의 이상과 자기의 꿈과 맞지가 않아요.

그러면 인간의 이성과 꿈은 왜 있어야 됩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내가 여기 있기 때문에 그래요. 가짜고 뭐고 모르겠고 아무튼 무조건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여기 있음이에요. 내가 여기 있음을 부정할 수 있는 재주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있는 걸 어떻게 없다고 해요. 살아있는 걸 죽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내가 있는 걸 어떻게 없어요. 있는데 있는 것을 뭐가 있는가를 조사해보니까 막 말이 나오는 거예요.

들리는 말을 종합해 보니까 뭐냐, 선악지식이에요. 이러면 되고, 이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없는 주제에. 존재가 없는 주제에 계속해서 선악지식을 앞장세워서 내 있음을 강하게 어필하라고 있는 거예요. 남들 앞에.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러한 가짜를 주님께서는 어떻게 활용하고 자기 성도로 만들겠습니까.

자, 아까 이야기했어요. 이 땅에 교회는 없습니다. 동시에 이 땅에 성도도 없어요. 성도, 교회라는 건 없어요. 인간만 있어요. 선악과 아는 인간만 있어요. 그러면 없는 성도, 없는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뭐냐, 성령이 인간을 찾아온다. 아니지요. 그냥 찾아오면 안 되지요. 반드시 누구한테 거칩니까? 예수님한테 거치지요.

예수님이 성령이 함께하셔서 마지막 한 작업이 뭐냐, 있는 자기를 살아있는 자기를 뭐로 바꿉니까? 죽음으로 바꾸지요. 그 잔을 마신 거예요. 교회는 없지요. 없는데, 예수님이 죽고 난 뒤에 죽으실 때, 또는 자기 죽음을 전제로 했을 때,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줍니다. 빵과 포도주. 빵과 포도주 안에 뭐가 들어있을게요? 뭐가 들어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의 살과 내 피지요. 내 살과 내 피를 먹어라. 그 안에 예수님의 죽음이 들어있지요.

성령 받은 분의 죽음이에요. 따라서 빵과 포도주 없이 그냥 죽으면 인간은 죽으면서도 죽음이 뭔지를 몰라요. 선악체제에 의해서 죽는 줄 알고 있어요. 선악체제에 의해서. 그러니까 자기는 죽어도 뭐는 남아있다? ‘선악체제는 남아있으니까 죽고 난 뒤에 선악체제로 나를 재조성하면 안 되겠는가’ 이리 생각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뭐냐 하면 염라대왕 앞에서 하는 거예요. “니가 이 생애 살 때 뭐했냐?” 이리 묻는 거요. 그러니 염라대왕의 아이디어는 극락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만들어냈느냐 하면 이미 내가 선악체계 안고 살아가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거예요.

미리 죽고 난 뒤의 세계를 자기가 그려내기 위해서 그걸 구성하기 위해서 미리 만든 거예요. 모든 사람의 동의를 구할 필요 없지요. 모두 동의하니까요. 나쁜 놈은 지옥 가고, 착한 사람은 극락 가고. 그러니가 인간이 내가 그냥 있는 게 아니고 선악체계로 가득 찬 존재로 있다니까요.

그 선악지식이 좋은 쪽으로 선악지식이 선과 악 쪽에서 선 쪽에 있으면 내가 사는데 보다 많이 유리하다는 아이디어를 지을 수가 없어요. 바르게 살았으니까 복 받을 거야. 이런 거 있잖아요. 천국까지 뚫어 낼 거야. 이런 거.

그럼 이걸 어떻게 죽이느냐, 이걸. 여러분이 잘 압니다. 구약의 번제단이 있어요. 숯불로 확 피워버립니다. 숯불로. 확 피워버리면. 그 제물의 특징이 뭐냐, 새카맣게 다 타버려요. 그 제물이. 그게 진노의 불이에요. 진노의 불.

자, 여기서 문제 나갑니다. 진노의 불에 하면 영생 얻습니까? 영생 못 얻습니까? 아, 이거 어려운 문제다. 진노의 불에 타면 우리의 몸이 제단에 누워있는 제물로 생각하고 진노의 불이라면 우리가 그 타고 난 뒤의 영생 얻습니까? 못 얻습니까? 주저하는 거 봐라. 얻어요? 못 얻어요? 둘 중에 하나인데 아무거나 하나 찍어보세요. 진도 나가 게. 못 얻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주님과 함께 되어야 돼요. 주님과 함께 죽어야 돼요. 장렬한 순교 구원 안 됩니다. 내가 나를 치는 거 구원 안돼요. 십자가에 들어가서 죽어야 돼요. 말로서 죽어서는 안돼요. 계속 말속에서만 남아있어서 안돼요. 나는 죽어도 선악지식은 살아지지 않기 때문에. 선악을 아는 지식은 정녕 죽으리라, 할 때 그 죽음을 아버지로부터 심판 받아야 돼요.

그런데 그 심판은 심판받는 자가 그냥 심판받으면 그냥 죽는 것도 진노지만 그 사람이 나중에 요한복음5장에 보면 인간도 무덤에서 부활하잖아요. 모든사람들도. 부활했을 때 지옥 갑니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생명나무 되시는 분이 함께 죽어줘야 돼요.

자, 아까 다시 한 번 봅시다. 45페이지,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의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이 말을 하면 한결같이 여기 우리는 처음에도 죽은 인간이고 생명이 있어도 우리 몸은 어떻게 됩니까. 죽은 몸이지요. 어느 구석에 내가 살았다는 게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나는 보이는데 여러분은 안 보이십니까?

여기 고린도후서4장10절에 어디에도 내가 살았다는 게 없지요. 제가 이리 이야기하면 또 뭐 반발이 일어나가지고 이 말씀을 내가 지키면 되잖아요. 하는데 아까 제가 그럴 줄 알고 내가 뭐라고 그랬어요? 이 말씀 우리가 지키는 게 아니에요. 주님이 지켜요. 죽은 우리 몸에다가 증상을 일으킨다니까요. 말씀이 말씀을 자체적으로 지키는 거예요. 우리가 지키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계속 줄곧 죽어있으면 돼요. 가짜면 돼요. 그걸로 충분한 거예요. 우리 안에 다른 분이 살아있는 거예요. 그럼 나는 살아있는 게 아니에요. 주님이 우리 안에 살아있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안 든다는 것은 뭐냐 하면 선악을 아는 내가 평소에 내가 살아있고 내가 살아있으니까 활동하고 생각하는 건 내가 생각한다. 하니까 자꾸 누가 가리워지는 겁니까? 주님이 가리워지는 거예요.

내가 마치 진짜인 것처럼 행세하니까 진짜 주님이 핍박받고 모독받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밑에 있는 구절이지요. 나로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 그 말씀. 그 밑에 보면 결국 고난이 없는 교회는 성령이 소멸된 교회. 주님의 고난이 드러나야 되는 거예요. 주님의 고난. 주님의 역사, 히스토리.

다시 한 번 첫째시간 정리해 봅시다. 교회는 없습니다. 성도도 없고요. 그냥 가짜 인간들만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처녀로 하여금 성령으로 어떤 특수한 인간을 만들었어요. 이 땅에 태어나게 했습니다. 성령이 그 분한테 집중했어요. 세례 받을 때부터 해가지고 집중 했거든요. 모든 그 분 하는 일이 집중이라고요.

그러면 성령이 있는 몸과 성령이 없는 몸으로 확연해지겠지요. 완전히 달라지겠지요. 성령이 없는 몸을 가지고 육의 몸이라 해요. 육의 몸. 육이라 해요. 육의 몸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요한복음7장19절에 수요일에 했지만, 어떻게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 하지요. 예수님이 생뚱맞는 질문을 했어요. 생뚱맞는 질문을 했다고요. 그러니까 듣는 사람이 이상해요. 언제 당신을 죽이려고 했느냐?

결국 모세 율법이 방향성을 지난다 했는데 어제. 그 방향성은 결국 뭐였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서 모든 인간은 선악지식이라는 정녕 죽으리라에서 누구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들통나는 겁니다. 제자들도 다 흩어져버리고 그런데 성령이 왔어요. 성령이 와서 무슨 이야기하느냐 하면 인간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말씀만 해요.

예수님이 하신 그 많은 말씀과 행하심의 결과물을 성령이 와서 알려줍니다. 알려주니까 성령이 온 우리 내부는 우당탕탕 이제 난리가 난 거예요. 나는 살았고 나는 존재한다는 이것이 속에 있는 말씀이 앞세우는 성령의 활동과 우당탕탕 여기서 대충돌이 일어나겠지요.

“내가 지키겠습니다.” “니는 못 지킨다.” 그 싸움이겠지요. “이거해서 영생 얻겠습니다.” “니는 영생 얻을 자격도 안 돼!” 그 싸움이에요. “저는 살겠습니다.” “니는 살지 마! 말씀이 살아야 돼. 니가 살면 안 돼! 너는 영원히 죽어있어야 돼.”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모르지만, 그 성령이 있는 사람에게는 내부에 일어나지요. 그 일어나는 그 경우를 미리 성경에 쫙 깔아놓은 것이 사도바울의 편지입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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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1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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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