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40503a 울산강의-역대기하(3강) 3장 1절 : 천사의 심판자리자유게시판역대하

20240503a 울산강의-역대기하(3강) 3장 1절 : 천사의 심판자리
(강의:이근호 목사)

오늘은 역대하 3장,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그렇게 돼 있지요. 이미 성전 짓는 장소는 정해져 있습니다. 솔로몬이 정한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하나님 사이에 만났던 그 장소가 성전 짓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지요. ‘성전은 만남의 장소다.’ 이 만남의 장소에서 뭘 할 거냐? 만남의 장소에서 어떤 것이 있느냐 하면 ‘묻고 답하고’가 이루어지는 곳. 신약에서 성도를 하나님께선 성전이라 하잖아요. 성전은 이게 되는 곳, 묻고 답하고가 이루어지는 곳이 성전이에요.

성도의 삶은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일어나야 돼요. 하나님에 대해서 질문이 일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만남의 장소가 아니 되지요. 물어야 돼요. 묻는 겁니다. 그런데 질문은 어떻게 생기는가? 질문은 일어 터지고 난 뒤에 생겨요. ‘인간의 의식은 사건 이후의 온다.’ 인간의 의식은 사건 후에 오니까 어떻게 돼요? 항상 늦어요.

인간은 죽지요. 인간은 왜 죽느냐 하면 미리 답을 몰라서 죽는 거예요. 우리의 인생이 우리를 뭉개버립니다. 평생 살아왔던 그 나의 인생이 나를 뭉개니까 이와 같은 공식이 되죠. ‘나는 나의 의해서 무너진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나에게 깔려죽는다.’ 내가 죽는 이유는 나한테 깔려죽어요. 나 때문에 내가 죽어요.

하나님께서는 남 탓하지 말라는 거예요. 평소에 하는 모든 것이 너를 죽였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나님의 응답이에요. 하나님의 답변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항상 일 터지고 난 뒤에 의식해요. 아까 했지요. 의식은 사건 후에 오기 때문에 항상 늦어요. 죽고 난 뒤에 ‘나 왜 죽지?’ 이렇게 돼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여러분들은 나 아직 안 죽었는데, 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고, 우리 안에 죽음이 들어있어요.

찰리 채플린의 영화에 보면 이런 게 있어요. 어떤 주인공이 호루라기 불다가 잘못해서 삼켜버렸어요. 그런데 마침 유명한 소프라노의 성악발표회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고요하게 아름다운 여자 오페라 가수의 노래를 경청하고 있는데 앞에 있는 찰리 채플린에서 자꾸 호루라기 소리가 나오는 거예요. 우리 안에 누구든지 들어있는 호루라기가 뭐냐? 죽음이라는 겁니다.

죽음이라서 시도 때도 없이 우리는 두려움과 공포와 걱정을 엑엑 하면서 계속 내놓는데 이미 죽음이 우리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죽음이 우리한테 삼킴을 당했기 때문에 안에 들어있는 것은 우리의 통제권한을 벗어납니다. 죽음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어요.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과 염려, 걱정은 미래에 대한 내가 지옥 갈 수 있다는 그 걱정은 내가 어떻게 관리대상이 안 됩니다. 빡세게 기도한다고 없어질 게 아니에요. 교회 나온다고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이 어떻게 구원받느냐는 이야기가 아니고, ‘네 안에 괴물 있다’ 이걸 이야기하는 게 성경이에요. 이게 답이에요. 우리는 답을 알고 질문을 나중에 해요. 하나님 왜 딸꾹질이 왜 생깁니까? 네 안에 네가 통제 못하는 다른 요소가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 안에 우리가 원치 않는 게 들어있는 것, 이걸 성전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나 말고 타자, 남이죠. 내 안에 타인이 들어와 있는 그런 것을 하나님께선 성전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 타인이 뭐냐? 그게 바로 괴물이에요. 이거는 뭐냐 하면 사탄입니다. 우리 허락도 없이 사탄이 들어왔어요. 사탄의 종이 귀신인데 귀신의 특징은 꼭 거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사람한테 있든지 아니면 돼지한테 가든지 귀신은 영체가 되어서 따로 있질 못하고 완전 물질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 속에 들어와서 기거합니다. 그래서 인간 속에는 본인이 감추지도 않았는데 본인 안에 숨어있는 게 있어요. 본인이 일부러 감춘 것도 아닌데 뭔가 숨어들어왔어요.

그 숨어있는 것을 인간은 어떻게 대처하는가? 항상 의식은 사건 이후에 들어오지요. 그 괴물이 우리 안에 들어오고 난 뒤에 의식하는데 어떻게 의식하느냐 하면 자기 속에 있는 약점이 안 들키는 식으로 모든 의식과 행동은, 생각들은 그렇게 움직입니다. 누굴 만나서 이야기해보세요. ‘저 사람이 내 약점을 알아채면 안 되는데’ 그러한 전제를 깔고 누구와 이야기하고 대화하고, 그리고 그 사람과 만나요.

만약에 상대가 우연히 실수해서 그 사람이 뭘 감추는지 몰라요. 우리는 살기 바쁜데 남 감추는 걸 밝혀내는데 신경 쓸 게 안 되잖아요. 그런데 우연히 지나가는 말, 개념 하나가, 단어 하나 무심코 이야기했는데 ‘이번 거래 건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하고 발칵 성을 내고 나가는 거예요.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상견례를 갔는데 아주 조심스럽잖아요. 그래서 결혼식은 이렇게 하고, 애들 축하해주면서 양가가 빛내줍시다, 하고 좋게, 좋게 이야기를 하는데 남자 쪽 사돈이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약간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농담 비슷하게 ‘우리 그날을 위해서 운동 열심히 뱃살 나온 것도 줄이고 사진 잘 받도록 옷도 깨끗하게 입고 옵시다’ 이랬는데 그 소리 듣고 갑자기 저쪽 사돈이 ‘그렇다면 이번 혼사는 없던 걸로 합시다’ 나온다면,

도대체 내가 건들지 말아야 될 뭘 건드렸는지 모르지요. 왜냐? 저쪽은 약점을 감춰놨는데 이쪽은 뭘 감췄는지 모르고 그냥 이야기했는데 그렇게 나온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바깥사돈은 안 오고 안사돈만 왔는데 바깥사돈이 젊을 때 사고로 하반신 마비된 거예요. 그 말을 일부러 끄집어낸 것도 아니에요. 그냥 건강하게 반듯하게 합시다, 이건 상대방의 사정을 모르고 한 이야기에요. 근데 듣는 사람은 이번 혼사 없는 걸로 합시다. 그래서 파토 났다.

이 말은 뭡니까? 인간은 평소에 자기가 들키고 싶지 않는 괴물과 동거하고 있다. 괴물이라 했는데 다른 말로 하면 유령, 사람도 아닌 것이 사람 속에 들어온 것. 인간은 유령과 함께 동거하고 있어요. 감추고 있어요. 유령이, 귀신이, 인간은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게 해요. 내가 네 속에 있는 것을 남한테 들켜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네 속에 있다는 것.

모든 인간이 이렇게 자기가 남한테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될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니 행복이란 것? 물 건너갔어요. 자기 약점이 있으니까. 그래서 자기에게 있는 치명적인 약점, 자기에 의해서 통제 안 되는 약점을 남들에게는 어떻게 이야기하느냐? 이렇게 이야기해요. ‘나는 잠잘 때 코를 골아. 우리 딸은 공부를 못해.’

이게 뭐냐 하면 남들 보기에는 겸손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큰 덩어리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 작은 약점, 자기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고, 남한테 겸비한 모습, 겸손하게 보일 수 있는 약점을 계속 계발해서 남들 내줌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우리 딸이 공부를 못하고 게으르고, 그게 내 약점의 끝판이라는 그것까지만 탐색하도록 인간은 그런 식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거예요.

‘우리는 잘 살지 못해요. 우리 집은 하꼬방인데. 평수 47평. 그게 살 집인가요? 아니지요. 차 두 대밖에 없어요. 나 인생 뭐하고 사는지 몰라.’ 남에게 허세부리는 게 아니고 자기 딴에 나에 대해서 더 이상 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문제는 남들이 나에 대해서 알 생각하지 말라. 내 숨어있는 아지트에 함부로 발 들여놓을 생각하지 말라. 가만두지 않고 죽여 버린다는 그러한 살인충동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그런다고 해서 철저한 자기 방어태세가 해결책이 아니에요.

왜 그러냐 하면 내 한계 너머 뭐가 있는지 인간은 자기를 몰라요. 내 안에 들어있는 것이 분명히 나보다 센데 그 정체를 몰라요, 인간은. 그냥 거기에서 그 호루라기에서 뭔가 불안이 자꾸 생겨나요. 남들 보기에 애 공부 잘하지, 만사형통하지, 부부사이 좋지, 하는 일마다 다 잘되지 이런데 분명히 행복해야 돼요. 그런 요건들 다 갖추면 분명히 행복해야 되는데 그 행복을 시시하게 만드는 더 큰 공포가 그 어떤 행복으로도 커버가 안 돼요.

내 속에 있으면서 내가 관리 안 되고 그러면서도 계속 ‘가만있어 더 깊이, 계속 숨어있어 들키면 안 돼. 너 들키면 나 자살하는 거야. 들키지 마. 가만있어’ 이런 식으로 협상과 타협을 해야 겨우 숨 고르기에 나서는 그 괴물, 참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있으니까 이것을 뭐로 커버하는가? 교회 다니면서 하나님 찾으면서 어떻게 대충 덮어볼까 하는 식으로 하지만 그것 뻥뻥 구멍 다 뚫립니다. 소용없어요.

왜냐? 교회 다니는 것은 내가 하지만 항상 의식은 내가 원치 않는 사건 이후에 오기 때문에. ‘하나님, 이럴 순 없습니다’ 맨날 속으로 하지요. 주일학교 때 불렀던 노래, 내게 강 같은 평화, 율동할 수 있습니까? 노래 부르면 애들한테 뭐라 했어요? 이 말씀처럼 네 마음은 예수 믿으면 평화롭다고 이야기하지요.

이 노래 가사처럼 네 마음은 이제부터는 성령에 의해서 강 같이 평화롭게 될 거야, 라고 하면서 하는 도중에 내 율동이 맞나, 안 맞나? 율동 못하는 걸 들키면 안 되는데, 하고 약점으로 작용하지요. 내게 강 같은 평화, 노래 부르면서 그것이 내 약점을 노출된다는 의식이 사건 이후에 오는 거예요.

그래서 뭡니까? 인간은 눈치 채기가 항상 늦은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구원에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항상 늦게 오기 때문에. 여러분 보고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차 밀려서 늦게 오는 것 말고, 강의시간 늦게 오는 것 말고.

인간의 의식은 사건 터지고 난 뒤에 항상 뒤 수습하듯이 오기 때문에 이게 수습이 안 돼요. 수습이 안 되면 그만큼 공포스러움이 또 내 속에 있는 내 속의 약점이 나를 이겼다는 데서 오는 후회감,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 이게 인생에 평생 동안 하는 짓이 이 짓이에요. 그러니까 뭐라 했습니까? 내 인생이 나를, 나는 나에게 깔려죽는다. 내 속에 있는 괴물을 내가 어떻게 처리를 못해서.

그러니까 나니까 내가 통제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메시아를 기다리죠. 내가 안 되니까 나보다 메시아 와서 구원자 와서 내 속에 있는 귀신, 괴물, 마귀 어떻게 처리해 달라 하지요.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하느냐? 메시아는 이미 왔다는 거예요. 이미 오셨기에 오지 않아요, 메시아는.

예수님 재림은 이미 오신 분의 재림이에요. 오신다가 아니라 오신 그분의 다시 오심이에요. 그래서 이미 오신 분이 오시지 않으면 그 인간에게는 주님이 재림해도 소용없어요. 이미 오신 분이 오셔야 재림이 성립되지 이미 오신 분이 우리 속에 오지 않는데 재림도 그 사람한테는 관계없어요. 그래서 성령을 받았다는 말은 내 허락 없이 주님이 내 속에 들어왔다는 뜻이에요.

그걸 로마서 8장에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어요.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9절) 그 성령을 제공할 수 있는 교회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오지도 않은 성령을 우리 교회 오면 성령 넣어드리겠습니다. 어디 교회가 가스충전소에요? 돈 내면, ‘어떻게?’ ‘가득요.’ 그렇게 되는 거예요, 교회가? 안 돼요.

교회는 있는데 늘 가스가 없어요. 성경에 그게 여러 군데 나옵니다. 가게는 차려놨는데 물건은 하나도 없어요. 이스라엘이 그리 했고 이방나라가 그리 했어요. 하나 예를 들어볼까요. 다니엘 5장에서 벨사살 왕이 나와요. 이 사람이 성전 기념 파티를 엽니다. 유다나라에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 사람 바보 같아요. 성전에 있던 그릇 가져왔지요. 다니엘 5장 보면 나와요. 전리품이라고 그릇 가져왔잖아요. 그것 왜 가져오지요? 화를 자초한 거예요.

그릇을 왜 가져옵니까? 사무엘상도 마찬가지죠. 사무엘상 4장부터 전쟁 시작하고, 5장에 보면 블레셋이 언약궤를 가져오지요. 그것 왜 가져와요? 바보 아니에요? 그것 언약궤 이스라엘 것 아닙니다. 누구 것이냐 하면 여호와의 것이에요. 그러나 블레셋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전쟁했다 생각 못하고 하나님 믿는 이스라엘과 전쟁했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겼는데 누구는 못 이겼어요? 여호와 하나님을 못 이긴 거예요. 그래서 블레셋 사람은 이스라엘 패배를 앞장세우는 하나님의 전략에 속아 넘어갔어요. 이스라엘의 패배를 전면에 내세운 여호와 하나님의 전략, 내 백성이 패배함으로써 여호와가 이기는 이게 하나님의 언약 방식입니다.

옆집은 절에 가고 이쪽은 교회 간다. 절에 간 사람은 만사형통해서 부자 됐고, 교회 간 사람은 있는 돈도 날리고 완전히 파탄 났다. 그래서 절에 간 사람이 부처가 예수를 이겼다고 하잖아요. 그게 우리 주님의 전략입니다. 참 전략치고는 참혹하지요. 망했어, 망했어. 그 전략에 망한 거예요. 언약궤를 왜 가져가요? 가져가서 블레셋 신상 모가지 날아갔지요.

모가지만 날아갔습니까? 그 언약궤를 도저히 여기 있을 것이 아니라 해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데 가는 곳마다 이번에는 사람들 모가지 날아가 사람들이 다 죽어요. 신상부터 사람들이 막 죽어요. 독종에 죽는다고요. 악질이 번창하고. 그걸 뭐라고 하느냐? 감당이 안 된다는 거예요. 이방민족이 여호와를 감당을 못하고 있어요. 그러면 그 무서운 여호와를 감당하고 있는 사람은 누굽니까? 이방민족은 감당을 못해요.

그럼 감당하고 있는 사람은 어느 민족이에요? 이스라엘. 그들이 오늘 성도 아닙니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분이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들어오면 우리는 그때부터 감당하지 못한 분을 모시게 되는 거예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영이 없으면 찾아오지 않으면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 사람이 아니라고 돼 있으니까요.

그러면 메시아는 이미 와버렸어요. 이미 메시아가 왔단 말이죠. 왔기 때문에 자기 구원을 위해서 교회 나온다는 것은 이거는 사기 당한 거예요. 그 목사한테 사기 당한 겁니다. 자기 안에 그리스도 있는데 왜 구원이 필요합니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교회 와서 가장 제일 큰 오해가 뭐냐 하면 하나님을 소유하려는 거예요. 왜? 하나님이 뭘 가져오기 때문에? 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나는 멀쩡한 내가 하나님마저 소유하고 복 소유하면서 멀쩡한 내가 더 멀쩡하게 된다는 거죠. 이 계산 하에 교회 나오잖아요. 교회 나와서 박살나려고 교회 나오는 사람 누가 있어요? 사람들은 손해 보는 장사 안 합니다. 인간은 어떤 행동을 해도 그 행동이 나한테 어떤 실적을 줘야 돼요.

여러분 가끔은 가계부 쓰잖아요. 뭐 수입이 있어야 가계부 쓰지, 수입도 없는데 가계부 쓸 것도 없고. 그런 사람도 있지만은. 뭐 들어와야 쓰지, 아무 것도 안 들어오면 필요 없지만. 좀 들어왔다 싶으면 가계부를 쓰잖아요. 가계부 왜 씁니까? 최선을 다해서 손해에 대해서 저항하기 위해서, 손해되는 것을 줄이고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 앞으론 절제해야 되겠다고 가계부를 쓰잖아요.

가계부 쓰듯이 인간은 멀쩡하게 있고 거기다 하나님이 천국의 주인이라 하니까 그것 괜찮네, 하고 그걸 소유하려고 덤벼드는 거예요, 인간이. 소유하려고 또 복 준다니까. 그래서 더욱더 자기가 빛나고 싶은 거예요. 사는데 편하게 살고 싶은 겁니다. 인생 악착같이 힘들게 괴롭게 살았는데 하나님 믿고 이제 편해볼까, 이러는 거예요. 이걸 구약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바로 우상이라 하는 겁니다.

우상을 정리해볼게요. 간단하게 정리됩니다. 혹시 하늘나라에서 시험 치거든 정답 쓰세요. 우상이란 나를 위한 신. 참 외우기 쉽지요. 나를 위한 신을 우상이라 해요. 그게 예수가 됐든, 삼위일체, 여호와가 됐든 명칭은 관계없어요. 무조건 나를 위한다면 그 예수가 우상이고, 여호와가 우상이에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허락도 없이 괴물처럼 쑥 들어왔다는 말은 뭘 바꾸겠다는 말이에요? ‘나를 위해서’를 뭘 바꾸느냐 하면, ‘주님을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바뀌지 아니하면 주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 국민학교 다닐 때 수위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 찍개라 했어요. 고상하게 말해서 지킴이, 학교지킴이, 그걸 찍개라고 이야기했어요. 성경에 천사가 있는데 그룹이란 천사는 찍개에요. 뭘 지키는가? 생명나무를 지키는 거예요. 천국 지킴이에요. 그래서 인간이 천국에 가겠다고 나서면 누가 거부합니까? 천사가 막아버리죠. 넣어주질 않아요.

그런데 왜 교회는 많은지? 이게 참 교회가 많다는 게 수상해요? 왜? 천국에서는 안 넣어주겠다는데 천국에 들어가자고 사람들 모아서 으샤으샤 시위하듯이 통성기도하고 집회하고 난리도 아니거든요. 뭐하는 시추에이션인지 뭐하는 상황인지 이상하잖아요. 저쪽 본부 쪽에서는 안 받겠다는 데 우리는 죽고 난 뒤에 대책이 있어야 된다고 윽박지르고 있어요. 하나님께 압력을 가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인간들의 압력에 말려드실 분입니까, 그런 분이에요? 아니면 하나님이 뜻이고 뭐고 모르겠고 우리 하나님 이름으로 그냥 놀자는 판인지?

그 교회에서 겉으로는 주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가 돼요. 근데 그들이 교인들이 감추고 있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주를 위해서 살 테니까 주님도 나를 위해서 행운을 주시겠습니까, 구원은 보장하시겠습니까’가 뒤쪽에 감추고 있어요.

내가 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할 테니까 이 정성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딴 사람은 지옥 갈 때 나만은 천국으로 빼돌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인간은 거래하는 쪽으로 나오지요. 그 거래는 인간 대 인간이 하는 거예요. 하나님한테는 거래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인간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확정을 내린 거예요.

아까 제가 어려운 글이지만 다시 한 번 써보겠습니다. ‘의식은 사건 후에 오기에 항상 늦다.’ 이 문장이에요. 의식이란 것, 예수님이 누구고 하나님이 누구고 의식은 사건 뒤에 오기에, 사건은 이미 결정나버린 뒤에 와서 예수님은 이런 분이구나, 하나님은 이런 분이구나 해도 소용없어요. 이미 사건은 터져버렸으니까.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선 일을 할 때에 우리하고 의논하거나 합의하거나 거래하는 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아요. 앞에 있는 것 다 줄이면, 구원하지 않는다. 너희들이 어떤 정성을 바쳐도 하나님은 구원하지 않습니다. 이미 구원하지 않기로 작정하신 거예요. 그러면 사람들이 이야기하기를 구원도 안 받는데 교회는 왜 가는가? 지금 인간은 구원을 못 받지요. 구원이 없어요. 안 되지요.

그럼 인간의 뜻은 뭡니까? 구원 안 될 것 같으면 내가 미쳤다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느냐, 이렇게 되지요. 그러면 인간이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인간적인 근본적인 인간의 죄와 괴물 의식에 의하면 구원받는다는 조건 하에 하나님을 위해서 살 용의가 있다는 뜻이 되잖아요, 그죠? 이게 바로 마귀의 생각, 사탄의 생각이에요.

하나님의 뜻은 뭐냐? 인간을 구원 없다고 해서 계속해서 인간 속에 진짜 인간이 몰랐던 것, 하나님께서 일을 차단시킴으로서 안에 있는 인간이 왜 구원될 수 없는 이유를 하나님께서 발췌해내시는 겁니다. 끄집어내는 거예요. 내 속에 나는 구원받고 싶어도 구원 안 되는 근원적인 것이 나를 구원 못 받게 했구나, 하는 사실을 인간을 알아야 돼요. 눈치 채야 되고, 그리고 내 속에 있는 괴물은 우리 손으로 처리가 됩니다. 괴물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의 거래하듯이 되는 게 아니에요. 서로 좋게, 좋게 되질 않아요. 이미 들어왔으니까요.

안에 있는 이미 들어온 사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걸 노려요. 왜냐하면 창세기 3장 15절, 여러분 아시죠. 여자의 후손은 누구와 싸운다? 뱀의 후손과 싸워요. 그게 약속이에요. 하나님께선 그 약속을 위해서 우리 안에 우리가 처리 안 되는 사탄이 있다는 걸 노리고 주께선 찾아오지요. 우리에게 찾아오는 게 아니고 우리 안에 있는 사탄을 향하여 찾아오지요.

찾아올 때 자비를 베풀겠습니까, 아니면 복수를 하겠습니까? 복수를 하지요. 사탄, 너 좀 맞아야 되겠다고 복수를 하는 겁니다. 우리 안에서 복수를 해주는 그것을 뭐라고 하느냐? 그걸 하나님의 자비라고 이야기하죠. 그걸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는 겁니다. 의사가 있는데 안에 암세포가 가득한 환자가 왔어요. 그럼 의사가, 객관식 문제입니다. 다음 중 의사가 환자를 사랑하는 방법, ①생일 챙겨준다, ②꽃다발 사준다, ③같이 결혼해준다, ④배 짼다, 몇 번입니까? 배 째는 것만큼 큰 사랑은 없어요.

환자가 말하기를, ‘의사 선생님, 저 이쁘지요?’ ‘이쁘고 자시고 간에 이쁜 건 맞는데 쨉시다. 겉모습은 이쁜데 속은 괴물이네요. 괴물 있는 것 몰랐지요? 내가 꺼내줘요?’ 그게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찾아온 이유입니다. 그게 어디 나오느냐? 역대상 21장에 나옵니다. “사단이 일어나” 이렇게 시작하지요.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그다음에 “다윗을 격동”했지요.

다윗이 사탄아 물러가라, 이렇게 했습니까? 못하지요. 왜냐하면 이미 사탄의 종인 귀신이 다윗과 교류하는 입장에서, 그걸 죄라 합니다. 사탄이 원하고 있고 하나님은 원하지 않는 것이 죄거든요. 하나님은 원하지 않는데 사탄이 원하는 바가 인간 속에 욕망으로 자리 잡고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사탄이 격동한다는 것은, 다윗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 하면 친근감, 친밀함을 느끼지요.

제가 대전강의 두 번째 강의에서 이야기했지요. 이것이 어떠냐 하면 자연스럽다 했어요. 자연스러워요. 그만큼 우리는 그동안 죄와 친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죄와 친하게 지내왔다는 말이 어려우면 바꾸겠습니다. 인간은 자기를 위해 사는 욕망과 친하게 지냈어요. 자기를 위한, 아까 손해 보면 안 된다 했지요. 이익 봐야 돼요.

남이 불행하든 말든 자긴 행복해야 되고 편하게 살아야 돼요. 자기에게는 고민거리가 일체 오면 안 돼요. 그게 자연스러워요. 그게 죄라는 사실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의식하고 있는 건데 뭐냐 하면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 의식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모습은 아니에요.

하나님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인간에게 극히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는 율법이라 하는 것은 인간이 지키지 못하는 것을 제시한 겁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지키려면 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해야 지킬 수 있는 거거든요. 이참에 계시가 뭔지 정리까지 할 것도 없이 간단하게, 하나님의 계시란 십자가가 나오는 게 계시에요.

성도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들어온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친밀한 것, 하나님이 창세전에 생각해놓은 바가 우리를 경유해서 이게 하나님 앞에 튀어나오는 겁니다. 이걸 하나님 계시의 환원이라, 환원이라 하는 것은 원래의 것으로 되돌아가는 것. 주로부터 와서 주로 말미암아 주께 돌아가는 거예요.

그 과정 속에서 이 절차 가운데서 하나님이 하신 일은 인간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겁니다. 천사도 동원시켜서 배제해요. 천사는 너는 낄 자리가 아니야, 하고 우리를 배제해버리는 겁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께서 하셨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거예요. 인간은 배제당하는 거예요. 배제당하는 그 이유를 하나님께서 알려줄 때 그게 바로 계시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나는 이렇게 하면 구원받는다가 계시 해석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해서 탈락돼야 되고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주님 나라로 환원돼야 된다는 것, 이것이 여러분 속에 나오신다면 여러분들은 언약에 걸려든 사람, 언약에 의해서 언약 사람이 되면서 구원이 되는 겁니다.

언약 사람의 표현을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이게 마태복음 21장에 나오는데 언약 사람은 아브라함은 언약을 받는다?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구원받는다? 아니지요. 이삭 구원받는다? 아닙니다. 야곱 구원받는다? 아닙니다.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구원받고, 이삭의 하나님이 구원받고, 야곱의 하나님이 구원받아요.

구원받는다는 것은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이 이 지상에 이름으로 오시고 그 이름이 원래 자리를 찾아가는 거예요. 주의 자리 찾아가는 게 구원이에요. 아브라함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구원을 통해서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걸 고백하지요. 하나님은 나를 사용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너는, 그다음에 성령이 임하면 어떤 사람이 된다? 성령이 임하면 누구의 증인이 된다? 땅 끝까지 누구의 증인 되는 겁니까? 예수의 증인 되는 거죠, 예수의 증인. 이게 감이 오지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다윗과 인간에게는, 참 이런 것도 골치 아프고 어려운데, 그냥 지나가듯이 이야기할게요.

인간의 기억은 항상 과거의 산물이에요. 과거가 없으면 없는 게 기억입니다. 과거가 있기 때문에 기억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기억이 있다는 것은 뭔 뜻이냐 하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음을 인간이 느껴요. 왜? 인간 속에 기억은 뭐라 했습니까? 과거가 있기에 미래는 과거에 포함 안 됐기 때문에 기억 속에는 미래가 오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미래가 인간 속에 이미 와버린 거예요. 오실 분이 미리 와버렸어요. ‘이미’와 ‘아직’은 인간세계에서는 같지 않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가 ‘아직’이에요. ‘아직’ 속에 ‘이미’가 들어 와버린 거예요. ‘이미’가 ‘아직’이고, ‘아직’이 ‘이미’가 된 겁니다.

미래가 과거밖에 모르는 우리 속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의 인생은 내가 설계하는 게 아니고 일방적으로 주님이 설계하는 인생을 펼치게 돼요, 우리가. 그런데 우리는 과거만 알고 있잖아요. 과거만 기억한다고요. 그럼 어떻게 돼요? 그걸 펼치면서 뭘 배제하겠습니까? 인간의 행함을 다 배제하는 거예요.

그래서 은혜가 뭐냐? 하나님의 행함이 은혜가 아니고 믿음이 은혜지요. 믿음으로 구원받는 거예요. 행함이 아니고. 로마서에서. 그것도 값없이. 값없이 의롭게 하는 방법을. 왜 ‘값없이’란 말을 할까요, 정말 값이 없을까요?

제가 대전강의 두 번째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성경에 값없이 구원받는다 하니까 공짜, 공짜니까 아까 계산에서 손해 안 보겠네. ‘하나님, 공짜라면서요? 그 공짜 저한테 주세요.’ 소유지요. 달라하는 것은 나는 멀쩡하고 공짜니까 챙길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이 하는 말이, ‘값 내놔라.’ 십일조. 십일조로 값이 되겠어, 그게? 감사헌금. ‘그까짓 것 되겠어?’ 제 목숨 바치고. 그 목숨도 값이 안 돼요.

예수님이 치렀던 값은 인간이 목숨을 바쳐도 턱도 없이 값을 치룰 수 없는 그 값이기 때문에 이것은 인간이 어떻게 그 값에 끼어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 값없음이 인간을 장악하는 것, 그게 바로 성도 아닙니까. 값없음이 우리를 장악하는 거예요.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도 그걸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값으로 쳐주질 않는다는 것이 성도의 복이에요. 성도의 기쁨이고 감사입니다. 어떤 짓을 해도.

사람들이 말하는 착한 짓, 헌금하고 전도하고 천 가지 그것도 짓이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어떤 악독한 짓도 그 값없음과 상관없어요. 세리와 창기 얼마나 나쁜 짓 많이 했겠어요. 상관없어요, 구원에. 내가 하나님의 복수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 이걸 아는 걸 자비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이 덮쳐지는 것이지 사랑을 소유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에요, 우리는. 매사가 사랑이지 우리가 사랑을 써먹고 사용하는 게 아닙니다.

안 믿는 남편들이 아내가 교회 가니까 뭐라고 합니까? ‘너는 교회 다니면서 그렇게 자비심이 없나. 내가 술 좀 먹고 들어온다고 그걸 용납 못하다니.’ 이게 자비다. 프라이팬 들고 자비가 뭔지 정신 들게 해봐? 자비란 프라이팬으로 맞아 머리 빵꾸나도 그걸 감사하는 게 자비에요. 어려운 사람 돈으로 구제하는 게 자비가 아닙니다.

가장 좋은 자비는 자기가 하나님께 당했다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게 최고의 자비에요. 나 까불다가 이렇게 당했다고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 믿음 소유해서 믿음으로 천당 갈 줄 생각했던 이것이 얼마나 사기고 거짓말이란 사실을 고백하는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너나 나나 똑같은 인간인데 나한테 일어난 일을 너도 일어날 거니까.

결국 이 이야기는 첫째 시간 처음에 이야기했지요. 인간 속에는 본인이 감춰놓은 게 있는데 본인이 감춰놓은 걸 처리를 못해서 인간은 맨날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서 신앙적인 생색을 내지요. 그 생색내는 방법이 뭐라 했습니까? ‘나는 이렇게 성질도 급하고 이런 죄도 짓고 이렇게 나쁜 짓도 했어요, 하나님.’

남들 보기엔 굉장히 회개하고 반성하고 신앙적인 사람처럼 보이지요. 그게 뭐냐 하면 진짜 큰 약점을 교묘하게 감추려는 술책을 벌이고 있는 거예요. 상대방이 눈치 채는 약점을 제공함으로써 나에 대해서 깊이 알 생각하지 마, 그러니까 초 치는 방식, 이게 우리 안에 괴물이 마귀가 그런 식으로 했던 겁니다.

바로 역대상 21장 1절,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어떻게 다윗을 성전의 핵심으로 만드는지 그거는 10분 쉬고 두 번째 시간에 합시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13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8,122 자유게시판 안양20240509a고후4장10절(교회의 발생)-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24-05-22
8,121 자유게시판 한 몸 창세기 최고관리자 24-05-20
8,120 자유게시판 103강-예레미야 21장 11~14절(돌아온 언약궤)240512-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4-05-12
8,119 자유게시판 16강-히브리서 3장 12-14절(약속의 회절)240512 - 이근호 목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4-05-12
8,118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삼손의 희생 / 240512 - 최고관리자 24-05-12
8,117 자유게시판 서울강의20240509b 요한일서 2장 22절(가짜 인간)-이 근호 목사 요한일서 최고관리자 24-05-11
8,116 자유게시판 서울강의20240509a 요한일서 2장 22절(가짜 인간)-이 근호 목사 요한일서 최고관리자 24-05-11
8,115 자유게시판 수요설교(240508)요약 스가랴14장16-19절 (초막절) 스가랴 최고관리자 24-05-09
8,114 자유게시판 43강-스가랴 14장 16-19절(초막절) 240508 - 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4-05-08
8,113 자유게시판 471강-YouTube강의(숨겨진 것 이사야 6:13)20240507-이 근호 목사 이사야 최고관리자 24-05-08
8,112 자유게시판 470강-YouTube강의(이단 로마서 1:6)20240507-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24-05-08
8,111 자유게시판 102강-예레미야 21장 8~10절(나의 죽음)240505-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4-05-05
8,110 자유게시판 15강-히브리서 3장 7-11절(광야)240505 - 이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4-05-05
8,109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야곱의 변화 / 240505 - 최고관리자 24-05-05
열람 ➜ 자유게시판 20240503a 울산강의-역대기하(3강) 3장 1절 : 천사의 심판자리 역대하 최고관리자 24-05-05
8,107 자유게시판 42강-스가랴 14장 12-15절(삼분지일) 240501- 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4-05-01
8,106 자유게시판 대전-십자가를 아십니까(27강) 창24:60(원수의 등장) 20240429b(강의: 이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24-04-30
8,105 자유게시판 대전-신명기(21강)신9:7(분노의 유발)20240429(강의: 이근호 목사) 신명기 최고관리자 24-04-29
8,104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2장 30절 (현실의 현실화) 2404016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4-04-29
8,103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2장 30절 (현실의 현실화) 2404016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4-04-29
8,102 자유게시판 101강-예레미야 20장 14~18절(죽음 유통)240428-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4-04-28
8,101 자유게시판 14강-히브리서 3장 4-6절(집 만들기)240428 - 이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4-04-28
8,100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바뀌어진 복 / 240428 - 최고관리자 24-04-28
8,099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240426b 출애굽기 3장 16절(언약과 세상 사이)-이 근호 목사 출애굽기 최고관리자 24-04-28
8,098 자유게시판 말씀을 듣고나서... - 최고관리자 24-04-24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