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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22장 30절 (현실의 현실화) 2404016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22장 30절 (현실의 현실화) 2404016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22장 21절부터 하겠습니다.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예수님 중심으로 예수님 스스로 자기와 인간관계를 일방적으로 연결시키죠. 여기 21절에 보면 “보라 나를 파는 자”, 나를 파는 자에요. 나, 예수님입니다. 어떤 진실을 규명을 할 때에 내 중심으로 진실을 볼 수도 있죠. 3+5=8이다. 누가 봐도 이건 7이 아니고 8 맞다. 이거는 내가 보기에 진실이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 보고 3+5=얼마지요? 8, 그걸 물어보는 게 아니고 “나를 파는 자가 나와 함께 있다”. 아무리 가룟 유다가 수학 박사라도 주님께서 수학을 얼마나 잘하느냐 물리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가룟 유다하고 나하고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을 주님께서는 이걸 진리 또는 진실 이렇게 규정하는 겁니다. 인간과 인간끼리 얼마나 친하고 잘 사느냐 그런 건 묻지 않지요. 예수님과 무슨 관계있느냐가 결정적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이야기하느냐 하면은 누가복음 21장에 보게 되면 34절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라고 되어있고 그 다음에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그렇게 되어있어요. 이 세상이 무너지는 거예요. 이 세상 천지가 대자연 천지가 무너지는데 이 무너짐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 무너지는 이유가 예수님 자신과 관련 있다는 거예요. 너하고 관련 있어서 무너지는 게 아니고 예수님 자신하고 관련해서 무너짐이 있다는 겁니다. 그날이 뭐냐? 인자가 올 때. 예수님이 이 땅에 올 때요. 누가복음 21장 25,26절에 보면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라고 나와 있잖아요. 누구 때문에 흔들리느냐는 거예요 이게. 너 때문에 흔들리는거야? 아니면 부처 때문에 흔들리는거야? 마호메트 때문에 흔들리는거야? 누구 때문에 흔들리죠? 예수님 한 분 때문에 이 대자연이 흔들리는 게 된다는 거예요.

그럼 진실은 뭐냐 하면은 진실은 내 중심으로 3+5=8이다 이거 백날 알아도 이건 진실이 돼요? 안돼요? 진실이 아니고 예수님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가 이게 진실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예수님 중심으로 이걸 보지를 못해요.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중심을 보면서 대자연, 우주 대자연과 자기가 직접적으로 이렇게 연결 시켰어요. 직접적으로 이렇게 관련 있다고 본 겁니다. 창세기 3장에 의해서. 쫓겨나서 땅의 토지를 갈면서 이마에 땀을 흘릴 때까지 살면서 그들의 관심사는 이 환경이 이 자연환경이 나에게 얼마나 식량을 공급해줄 수 있느냐? 내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느냐에 전적으로 생각한 겁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관여하고 이런 건 모르죠. 자기 살 궁리를 생각하니까 인간이 철썩 같이 믿고 있던 이 대자연, 이 대자연이 무너지면 자기는 못 살잖아요. 어쨌든 간에 대자연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길 바라는 이것 때문에 예수님 중심으로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누가복음 22장에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그렇게 이야기할 때는 이거는 뭐냐 하면은 현실 재조정. 현실을 재조정에 나서야 된다 이 말이죠. 그동안 너희들이 한 현실은 자기의 살 궁리, 자기중심의 현실관이었다면 이걸 뭘로 조정해야 돼요? 예수님 중심으로 조정을 해야 돼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현실의 현실화’. 눈에 보이는 현실을 제대로 새로 중심 잡아서 정리할 필요 있다 이 말입니다.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현실화가 없어요. 현실 그 자체로 그게 인간은 전부거든요. 굳이 현실을 현실화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거예요.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는 작업이 현실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에 나섭니다. 기존의 인간의 중심의 현실에서 예수님 중심의 현실로서 그것을 전환시키는 작업을 합니다.

전환시킬 때 어떻게 전환을 하느냐? 이 대자연이 뭐냐 하면은 공간이잖아요 이 우주가. 3차원이죠. 3차원을 뭐로 바꾸느냐 하면은 2차원으로 바꿉니다. 2차원으로 바꾸고 그 다음에 뭐로 보느냐 하면은 예수님의 몸으로 바꿔버려요. 이게 바로 현실의 현실화에요. 현실이 현실화되지 않으면 이게 바로 환상이에요. 환상. 망상이 돼요. 왜냐 하면은 이것은 인간의 자기중심이기 때문에. 자기중심으로 봤을 때 현실은 3+5=8이라고 하지요. 이게 진리라고 했어요? 진리가 아니라고 했어요? 이게 진리가 아니지요. 왜냐하면 예수님과 무슨 관계있습니까? 3+5가 예수님과 무슨 관계있습니까? 없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망상인 거예요. 주님의 시작하는 현실의 현실화에 인간들이 알고 있다 자부하는 물리적 수학적 공식 같은 것이 현실화에 전혀 끼어들 수가 없는 겁니다. 그 현실을 모르니까 아까 누가복음 21장처럼 이 세상이 와르르 무너질 때 세상이 왜 무너지지? 이 안정적인 세상이 왜 무너지지? 아까 했잖아요. 세상이 왜 무너진다 했습니까? 그거 누구 때문에 무너진다고 했지요? 인자가 임하니까 무너지는 거예요. 인자가. 예수님이 이 땅에 방문하니까 무너지는 거예요. 그게 진실이다 이 말이죠. 내가 똑똑해서 뭘 이렇게 알고 내가 뭘 알고 연구하고 탐색했다 이거는 진실이 아니에요. 그건 현실도 아니고 망상이고 예수님과 어떤 관련성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이 대자연 3차원 세계가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예수님의 몸과 관련되기 위해서 먼저 2차원부터 먼저 걸치고 3차원 넘어와요. 2차원 이게 뭐냐 하면은 이스라엘 역사에요. 이스라엘 역사. 3차원에서 이스라엘 역사가 된다는 말은 2차원을 그냥 이렇게 이해하면 쉬워요. 필름입니다. 필름. 필름은 인화지 뒤에 뭐가 있느냐? 이미지로 붙어 있지요. 이미지. 3차원 공간이 3차원 우주가 그냥 제대로 그냥 3차원대로 움직이도록 그렇게 허락한 게 아니고 그 안에 기차가 달린다고 봅시다. 3차원 안에 기차. 광야를 지나는 기차. 이게 무슨 역사죠? 이스라엘 역사죠. 언약을 싣고 달리는 기차, 그 언약의 작용하는 그 따라서 멀쩡한 이방민족들의 운명이 파멸하거나 항복하거나 골로 가거나 그들이 무너지거나 안 그러면 그들이 항복하거나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거예요. plan 이게 뭐냐 하면은 면 또는 내재면. 이게 2차원이에요. 필름 면. 필름 안에 보면 필름 안에 보면 뭐가 들어 있어요? 촬영한 이미지가 들어 있잖아요. 이미지. 딱 들어붙어있지요. 기차처럼. 현실을 2차원으로 압축시켜놓아가지고 이걸 이스라엘 역사에 실어서 그냥 마지막까지 종말까지 내딛는 거예요.

이스라엘 역사가 뭐냐? 구약 역사에요. 그 안에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는 겁니다. 현실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3차원을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되도록 농축시켰다 또는 축약시켰다 또는 거기에다가 집대성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특이한 역사에요. 특이한 역사인데 어떻게 특이하느냐 하면은 일단 이스라엘 역사는 없는 나라에요. 없는 민족인데 생겼다. 없는 민족이 생겼지요. 없는 민족이 생기면서 그 나라가 나중에 도로 없어진다. 잠깐 있었는데 없어져요. 잠깐 있으면서 없어지면서 이 와중에서 드러나는 나타나는 게 뭐냐 하면은 언약의 실 내용, 실질 내용. 실제로 언약이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실제 내용이 구체화되는 것이 뭐냐 하면은 남은 자, 남은 자들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을 만들었으면 다 구원해야 될 건데 하나님 구원하지 않아요. 계속 잘라내기 시작합니다. 잘라낼 때 잘라내는 그 도구가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엘리야 시대 때 그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지만 바알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 7천명 있었어요. 많아 보이지만 사실 얼마 안돼요. 그런데 그게 그 표현이 로마서에 나옵니다만 바알에 굴복하지 않은 것이 남은 자가 된다는 말은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마땅히 모든 인간은 바알에 굴복하는 것이 그들의 현실관으로서는 이게 마땅하다는 거예요. 바알의 유혹을 이길 재간이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게 로마서에서 뭐냐 하면은 은혜로 남았기에 7천명이다. 은혜. 하나님께서 따로 빼돌린 자,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해서 은혜의 작용으로 언약의 작용입니다. 은혜의 작용으로 빼돌렸는데 남은 자가 7천명 남아있다는 거예요. 로마서 11장 4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들이 똑똑하고 믿음 좋아서 남겨진 게 아니고 하나님이 개입했더니만 7천명 남은 거예요.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그러면 남은 자가 있다는 말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 하나님에 계속 따라 붙었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바알 섬기면서 하나님을 떠났는데 그 떠남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떠나지 못할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드러낼 자를 계속 남겨둔 자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났고 엘리야 시대 때는 7천명이었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7천명은 어떤 고백을 해야 되느냐 하면은 로마서 11장 6절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남은 7천명이 해야 될 고백은 뭐냐? 나 착해서 남은 게 아니라는 고백을 해야 돼요. 내가 훌륭해서 내가 바르게 살아서 남은 자 되었다는 고백을 하지 말아야 될 자들이 7천명 남아있는 겁니다. 이걸 이스라엘 역사를 하나의 필름으로 보게 되면 필름 자체가 7천명이지만 나중에 가면 더 적어져요. 점점 더 적어지는 거예요. 적어지다 가 특징이 뭐냐? 아까 이스라엘 없어진 나라죠. 남은 자가 하나도 없어요. 남은 자가 하나도 없어집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이유가 어떤 어떤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 은혜를 준 게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 은혜를 준 게 아니고 하나님의 하신 일 그 자체를 건지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건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계속 언약대로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작용을 한 겁니다.

그럼 이스라엘 역사가 이렇게 결국 하나도 없다는 말은 마지막에 남은 자가 단 한 사람만 남게 돼요. 한 사람만. 그러니까 아까 제가 이야기한 것처럼 3차원에서 시작했다가 2차원, 면. plan, 내재면. 현실을 필름처럼 보고, 필름 앞뒤로 현실의 모든 이미지를 앞뒤로 꽉차있다고 보시면 돼요 현실이. 필름을 이렇게 흔들어버리면 세상 현실도 같이 흔들려지는 거죠. 이스라엘 역사를 흔들어 버리면 덩달아 세상역사, 나머지 이방민족도 같이 2차원 면을 따라서 흔들리는 거예요. 세상을 3차원으로 보지 말고 2차원으로 보자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를 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게 납득이 될 거예요. 왜? 그들은 언약에 이미 주어진 언약, 이미 이루어진 언약 앞으로 이루어질 언약 그러니까 뭐가 돼요? 하나의 시간의 계열이 돼요. 시작, 끝이 있는 연속적인 직선이 돼요. 직선은 공간이 아닙니다. 그냥 연결해보면 그냥 선이죠 선. 면적을 가지면 이건 하나의 내재면. 흔들어 버리면 필름처럼 흔들어지지요. 필름을 옆으로 보면 뭡니까? 하나의 선이 되지요. 언약의 시작과 완성, 그게 이스라엘 선지자들이 내내 외쳤던 거예요. 하나님께서 예언한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게 선이란 말이죠. 선. 우주선 타고 목성에 가고 그거는 3차원적이죠.

이스라엘 역사의 핵심은 이 언약이 미리 주어진 언약이 앞으로 어떻게 시간 따라서 마지막 때에 어떻게 성취되느냐. 이게 그들의 선지자들의 관심사입니다. 예레미야의 관심사죠. 이 2차원의 이미지를 담아버릴 때에 아직도 정신 못 차려가지고 그 언약 속에 들어가서 미래의 예언된 언약을 기다려야 될 텐데 지금 나는 얼마나 잘났느냐 이렇게 우긴다면 그건 흔들어버리면 환상 덩어리로 다 떨어져나가죠. 환상, 3차원으로. 내 중심의 3차원은 다 떨어져나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에 남은 자 한 명도 없고 남은 자 누구밖에 없다? 모든 언약의 성취자 누구밖에 없다? 예수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3차원, 2차원 그다음 뭐냐? 1, 한 분. 오직 한 분만 남게 되는 거예요. 모든 언약의 성취자 한 분, 예수님이에요. 그래서 누가복음 22장 21절에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어떻다고요? 언약의 유일한 남은 자인 나에 대해서 저주하고 나를 팔아먹으려는, 팔아먹는 이유는 그만큼 밉다는 거예요. 싫다는 겁니다. 싫으니까 팔아먹지요. 좋아하지 않는 거예요. 예수님 한 분을 싫어서 예수님을 죽음에 넘겼고 죽음에 넘기도록 팔아먹은 거예요. 그럼 죽는다는 것은 이 현실세계에서 소멸되는 거죠. 날라가버리죠.

그러면 마지막 남은 자인 예수님이 가룟 유다한테 팔려서 십자가에 죽어서 날라가버리면 남아 있는 현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자가 다시 올 때에 어떻게 되겠어요? 자연세계와 더불어 몽땅 다 와르르 무너지죠. 누가복음 21장 35절 말씀처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제 이 세상의 재앙 이유를 아시겠지요? 현실이 한 분에게 응축되어있는데 3차원 공간이 현실인줄 알고 있어요. 예수님은 현실을 현실화시켰다. 모든 현실을 예수님 몸 안에다가 다 집어넣었다 이 말이죠.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고 했잖아요. 지금껏 있었던 세상의 해와 달, 예수님 마지막 오실 때 해와 달과 별 다 무너지지요. 별들도 무너진다 이 말이죠. 이게 무슨 뜻입니까? 별, 해와 달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존재할 때 존재하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게 뭐냐 하면은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해와 달과 별이 존재했던 겁니다. 이게 마지막 때에 드러난 사실이죠. 해와 달과 별들과 모든 자연세계. 그러니까 현실세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비춰주는 일종의 스크린이죠. 영화 스크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 때문에 3차원 이 현실이 있다면 예수님이 사라진 입장에서 다시 예수님이 오시면 그동안 제대로 된 무너질 현실 말고 새롭게 될 현실이 예수의 몸을 통해서 복구가 되겠습니다. 영광스런 현실의 복구. 창조세계의 복구. 이 말은 기존의 창조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데 충분치 않았다는 거예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확실치 않았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충분하게 보여주는 것은 마지막 때 예수님의 주 되심을 보여주는 것은 마지막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와야 현실이 주님 중심으로 복구가 되어야 가능하겠지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만약에 예수님이라면 현실복구에 있어서의 관심사는 어떤 관심사냐 하면은 이 세상을 창조의 원래 뜻에 온전하게 합치되지 못한 이 창조물, 여기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어떤 작업에 나서는가? 그 다음부터는 예수님은 죄, 무엇이 죄냐? 무엇이 의냐? 죄와 의에 대해서 기준세우는 작업에 나서게 되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은 3+5=8 나는 맞췄어! 나는 진실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에서는 진실은 뭐냐 하면은 무엇이 죄며 무엇이 의라는 것을 들추어내는 이 작업이 진실이에요. 그 무엇이 죄냐? 무엇이 의냐 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할 때는 의가 되고 예수님과 함께 못할 때는 이게 죄가 되겠지요. 주님의 관심사가 죄냐 의냐 관심이 그렇게 가는 거예요. 왜? 이 창조가 제대로 창조의 본 뜻, 예수님 중심으로 창조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쪽으로 나가시는 거예요. 선과 악의 구분 짓는 것부터 주께서는 계시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28절에 보면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라고 되어있지요. 이거 보세요. 예수님 중심으로 양쪽으로 나눠져요. 한 쪽은 악, 한 쪽은 선. 또는 하나님의 의. 이런 식으로 이제는 예수님께서 예수님 중심으로 일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 중심으로 일할 때에 그러면 여기 12제자들이 전부 다 가룟 유다보다 더 훌륭한 사람입니까? 다 의인이에요? 그들 남은 자 아니에요. 남은 자는 예수님밖에 없어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12지파를 다스립니까? 다 죄인인데. 그것은 주님의 하시는 일로 인하여 계속해서 기존의 무너질 세상, 이 세상이 무너집니다. 아까 21장 봤지요. 해와 달 다 무너지지요. 인자 올 때 다 심판받지요. 이 무너질 세상에서 계속해서 질문을 유도하십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행위를 통해서 끊임없이 사람들이 질문을 하도록 그렇게 환경이 조성되어있는 겁니다.

자, 질문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기대하는 거예요? 질문을 한다는 것은 무엇과 연계된다는 거예요? 답과 연계되지요. 질문을 인간들이 하고 예수님이 하는 일을 통해서, 답은 누가 제공하고? 주님 쪽에서 제공함으로서 주님께서는 12지파에 앉을 천국 백성들을 드디어 구성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예수님께 질문한다는 것은 예수님께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럼 이걸 다시 정리하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과 일에 대해서 관심 있는 자는 주님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될 것이고 그들에게는 무엇이 제공되는가? 답변이 제공될 것이고 그들은 바로 예수님 중심에서 벌리는 새로운 현실의 현실화, 제대로 된 새로운 현실복구에 대해서 그들은 다스리는 자, 예수님처럼 다스리는 자의 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강의 끝. 이게 주님의 작전이에요. 주님의 작전입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가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가룟 유다가 배신한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시작을 가룟 유다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가룟 유다의 하는 일은 이미 하나님이 이 세상이 필히 무너져야 된다는 이유를 제시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으니까 다른 제자들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23절에 “그들이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질문을 하게 해요. 누구지? 누구지? 예수님을 팔아먹다니. 우리 가운데 그런 배신자가 있단 말인가? 질문을 하게 하는 거예요 질문을. “서로 묻되”. 그러니까 가룟 유다의 이 작업조차도 예수님의 개입된 자율성이 포함되어있습니다. 그게 22절입니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이스라엘 언약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필름같이 2차원입니다. 모든 이 세상의 모든 3차원 현실이 2차원 언약 속에 2차원 속에 다 포함이 되어있지요. 그래서 그 언약에 보면 뭐냐 하면은 뭐가 나옵니까? 복이 나오고 저주가 나와요. 복과 저주가 나와요. 복과 저주가 되려면 샌드위치같아요. 여호수아에 그런 게 있지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는 대목이 나와요. 여호수아 1장 한번 봅시다. 7절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은 율법이 패널, 그런 2차원적인 경계선 라인에 구실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라인의 구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줄을 쭉 긋는 것과 똑같아요. 줄을 쭉 긋는 것. 줄을 쭉 그어버리면 3차원 세계에서 네가 과연 2차원 라인에 들어올 수 있느냐를 묻는 거예요. 이스라엘 사람보고 “줄 똑바로 서서 따라와” 이거하고 똑같은 거예요. 줄 똑바로 서서 따라와. 3차원 공간 좌우로 살피지 말고. 초등학교 애들 소풍갈 때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얼마나 합니까. 참새 짹짹. 오리 꽥꽥 왜 자꾸 합니까? 라인 따라 오라는 거예요. 라인 따라. 라인 따라 오라는 거예요.

그럼 우리는 뭡니까? 하나의 폭이 돼요. 폭. 그걸 세상 사람들은 이런 소리해요. 너 왜 자꾸 고지식해! 이래요. 그런 소리 안 들어봤습니까? 뭐 신앙생활 해야 듣지. 너 왜 고지식해. 융통성이 하나도 없어. 다른 것에도 좋은 가치가 많아. 좋아 복음 좋지만 다른 것도 좋다고 이야기해. 이런 식으로 압박감이 안 들어오던가요? 이것도 좋지만 저것도 좋다는 건 어떤 경우냐 하면은 세상을 내 중심으로 볼 때 그래요. 언약 중심이 아니고 라인 중심이 아니고 내 중심으로 봐 버리면 두루두루 3차원에 내가 포함이 되어있어요. 그러면 우리는 어떤 질문을 하는가? 우리는 라인 중심에서 질문을 안 해요. 내 환상에 맞는지 안 맞는지 그것만 따지면서 질문을 하는 거예요. 내 환상에. 이 무너질 세상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세상은 멀쩡하고 동시에 그 안에 있는 나도 멀쩡하고 그러면 됐지 뭐. 제가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다들 여기 있잖아요. 진실이 왜 필요하지? 한번 답변해보세요.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여기 있잖아. 나는 여기 있는 나를 위해서 사는 거예요. 그런데 진리, 진실이 왜 필요하죠? 내가 여기 있는데.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여기 있는데. 진실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지요 그다지.

내가 여기 있다에서 내 중심이잖아요. 여기서 나오는 것을 가지고 실생활이라고 합니다. ‘실생활’. 이 실생활과 관련되는 사자성어가 뭐냐 하면은 ‘생활물가’에요. 실생활, 생활물가, 내가 있다. 우리가 생활에서 이것 3개 빼놓고 뭐 더 중요한 것 있습니까? 있어요? 교회 50년 다니고 뭐 복음 많이 알고 그딴 게 무슨 소용 있어요. 지금 생활물가가 올랐느냐? 양파 값? 대파 값?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우리한테 중요한 게. 석유 값, 기름 값, 전기세, 실생활. 왜? 내가 여기 있으니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어요. 이것보다. 오늘 참석 안하신 분들은 다 이거이거. 또 참석하고 싶어서 환장했는데 주께서 못 가게 한 사람도 있지만. 지금 그 사람들의 관심사가 뭐에요? 생활물가 아닙니까. 돈 수입은 한정되어 있고 누가 살아야 돼요? 내가 여기 있으니까 누가 살아야 돼요? 내가 살아야 되죠. 이것만 해도 충분하잖아요. 이 관심사가 99.9999999%에요. 노래있어요. 99.9. 복음이고 뭡니까. 0.0000001% 잖아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중심이 예수님 중심이 아니고 뭐 중심입니까?? 내가 여기 있음이 중심이에요. 내가 여기 있음 중심. 내가 여기 멀쩡하게 건강하게 잘 살면 되지. 물가 오르더라도 수입되면 내가 무슨 걱정 있어. 애가 공부도 잘하고. 그런데 진실, 진리 쓰잘데기 없는 거 왜 알아야 돼요? 알 필요 없지요.

거기에 대한 답변은 누가복음 21장 35절에 나옵니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게 무너져요. 내가 여기 있음, 3차원 공간이 이게 무너지니까. 무너지는 징조가 나라와 나라가 전쟁을 하고 서로 미워하고 난리도 아니고 특히 25절에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달과 별도 다 무너지니까 문제잖아요. 그러니까 뭐냐 하면은 12제자들도 사실은 여기에 속해요. 12제자가 하나님의 율법도 알고 다 알잖아요. 유대인들이 율법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유대인이 백날 율법을 알고 해도 그들은 이스라엘 역사가 모든 인간 언약이 인간을 없애버렸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던 겁니다. 언약이 언약 지키겠다는 이스라엘 역사를 없애버렸어요. 이스라엘 역사만 없앤 게 아니고 언약을 지키신 누구도 없앴어요? 예수님도 가룟 유다가 와서 없애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참 이런 거예요. 그냥 메시아 없다 치고 그냥 살자 이거예요. 메시아 없다 치고 그냥 살자. 이게 왜? 그게 속 편하니까. 나는 나 하는 대로 살래. 요즘 라일락이 많이 핍니다. 휴대폰 들고 라일락 꽃이 이쁘다고 찍어요. 찍을 때 그 라일락의 꽃 모습은 찍을 수 있는데 향기는 찍힙니까? 안 찍힙니까? 향기. 이거 발명해야 돼요. 냄새나는 필름만들어야 해. 라일락 향기는 안 찍히지요. 이 라일락이 존재한다 이쁘다 좋아요. 하지만 라일락은 향기 내는 맛으로 사는 거잖아요. 향기로.

예수님이 이 땅에 왔다. 왔지요 목수의 아들로. 예수님이 계시다. 나도 있지. 이거는 막 가는 겁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풍겨내는 언약적인 그 반응들 그러한 하늘나라에 대한 진리에 대해서 우리가 향기를 지금 뿜어내고 있습니까? 아무도 없어요. 예수님이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그러다가 말겠지 뭐. 그러다가 말겠지 이래요. 우리는 이 세상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향기도 없으면서 눈에 보이는 사진만 찍고 실제론 향기가 전혀 없어요. 자기 중심이니까. 없다는 것을 우리는 뭐로 표현할 수 있느냐? 반복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반복인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반복이 있어요. 1. 습관성 반복. 자전거 타고 이런 것. 헤엄치는 것, 운전하는 것, 오래 하다보면은 딴 생각해도 운전할 수 있어요. 몸에 배여 있는 습관성. 2. 기억성 반복, 이걸 가지고 지식이라고 합니다. 지식. 성경지식은 내가 다 안다. 다 안다. 마태복음 7장 나오는 이야기 다 알아요. 지식이에요. 지식. 이 반복이 내 중심을 바꾸지 않아요. 여전히 이런 습관성 반복, 기억성 반복도 굳건하게 내 중심으로 그냥 가는 겁니다. 세 번째는 이건 주님만이 할 수 있는 반복인데 3. 죽음의 반복.

지금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2장 이야기할 때 어느 제자도 감히 짐작 못했어요. 예수님께서 내뱉는 이 말씀이 예수님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어느 제자도 짐작을 못했습니다. 죽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발언하고 있는 거예요.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꺼져버리기 위해서. 이 땅에서 사라지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기존의 현실세계를 현실화되기 위해서 이 땅에서 사라져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세상을 뭐로 바꾸느냐? 이 세상을 죄의 천지로 만들어요. 죄의 천지. 몽땅 악의 천지.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시는 일은 어떤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가 아니라 모두 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로 만드는 작업에 나서시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은 이 지식적 반복이 되게 되면 이게 1,2번은 내 중심이거든요. 내 중심이라는 것은 내가 굳이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중심이에요. 내가 안 죽으려고 복음 이야기하는 것은 뭡니까? 주님 중심이에요? 내 중심이에요? 내 중심이에요. 나 살겠다고 복음 연구하는 것은 내 중심이란 말이죠. 내가 왜 죽어? 내가. 이런 것도 아는데 이런 것도 기억하는 내가 왜 죽어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도로 예수님을 죽여버린다고요.

모든 인간을 죄인 되게 하심으로서 내 중심으로 버틸 수 있는 그것은 이 세상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그 원인과 내 중심으로 사는 그 이유와 원인과 서로 통한다는 겁니다. 사람이 내 중심으로 산다는 것이 뭐냐 하면은 내가 계속 여기 있는 나를 계속 있게 하잖아요. 그게 바로 환상이 되는 거예요. 그게 환상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내가 잘되기 위해서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으니까 내가 잘되기 위해서 이 기억성 반복가지고 뭘 만들어 내느냐 하면은 여기서 의인과 죄인을 인간들이 구분해요. 의인과 죄인을 구분하면서 구분하는 본인은 반드시 어디에다가 집어넣겠습니까? 의인에다가 집어넣는 거예요. 세상에 이런 나쁜 인간이 다 있나. 이거는 죽여야 돼. 바리새인의 기도 나오지요. “나는 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기도하고 간음하지 아니하고 십일조하고 구제했습니다.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게 자기중심이잖아요. 나는 여기 있고 그냥 있는 게 아니고 나는 선한 존재로 있고 한 거예요. 그러면서 그렇게 한 것이 뭐냐 하면은 바리새인이 율법에 비출 때 나는 선하다는 거예요. 왜? 나는 율법을 지켰으니까. 주님 보기에는 누가 율법대로 살았대?! 그 율법이라는 언약, 언약은 예수님만 남은 자니까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가 없어요. 율법의 완성이 언약의 완성이 나한테 주어졌을 때 그 주어진 결과가 뭐냐? 예수님이 죽으시는 겁니다. 그럼 이 땅에서는 진리 없는 세계가 돼요. 아예 없어요. 진리가 없어요. 진리가 없고 남은 것은 예수님이 돌아가셨다. 달랑 그 하나가 남는 겁니다.

그럼 누가복음 22장부터 쭉 나오는 이야기는 제자들이 이 이야기를 할 때 알아먹었어요? 못 알아먹었어요? 전혀 못 알아먹는 거예요. 33절에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베드로가 이런 이야기할 때 베드로가 지금 무슨 소리하는지 못 알아들어요. 왜냐 하면은 31절에 사탄이 개입되어있었던 거예요. 사탄이 개입되어있는 그 상황, 악마는 눈에 안 보이죠. 인간에게는 대자연과 실생활과 생활물가, 거기에 무슨 악마가 있어요. 시장가서 악마 한 그램에 얼마입니까? 이런 거 안 묻잖아요. 그게 바로 뭐냐 하면은 환상 속에 있는 거예요. 나는 착하다는 환상 속에. 그걸 가지고 28절에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환상, 시험, 유혹. 악마가 뒤집어씌운 유혹 속에 나와 함께. 너는 모르지만 그때 나는 너희들이 당하는 그 유혹에 그때 나도 같이 있었잖아. 주님이 같이 있는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은 12지파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아직 그들은 몰라요.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이 환상이라는 게 얼마나 우리를 뒤집어씌우는지 습관성 반복, 기억성 반복. 그러면서도 세 번째는 싫어해요. 살기 위해서 첫 번째 두 번째 들어가요. 세 번째는 싫어요. 이 환상, 이 환상은 10분 쉬고 두 번째 시간에 인간의 환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를 한번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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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1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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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