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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22장 22절 (허상과 실상) 240402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22장 22절 (허상과 실상) 240402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22장 1절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다가오매” 성경에 깊이 모르는 사람한테는 부담이 되는 내용이죠. 유월절이 뭐며 무교절이 뭐며 광복절도 아니고 삼일절도 아니고 남의 나라 절기까지 굳이 신경 써야 되느냐 생각이 들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가져왔습니다. 유대인은 그 현재 우리는 4월 달이지만 유대인은 1월 달. 1월 달도 중요하지만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그렇게 되어있죠. 목요일은 수요일 해질 때부터 다음날 해질 때까지 목요일이에요. 그것은 유대인들이 “저녁이 되고 아침에 되니” 그걸 그대로 적용해서 그렇습니다. 두 번째 유월절 준비의 날, 그 다음에 금요일 날. 드디어 금요일 날 유월절 및 무교절 축제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유월절이 무교절 축제 첫째 날이 된다. 유월절은 하루, 무교절은 일주일 그렇게 되는 겁니다. 토요일은 드디어 안식일. 제칠일 안식일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잖아요 옛날부터. 영어 학원부터 시작해서 돈 벌어가지고.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그 다음에 일요일. 안식일 이후에 첫 주가 일요일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

자, 이 날짜가 유월절 무교절인데. 유월절 무교절이 왜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에 양을 잡아서 피 흘려서 양고기는 먹고 피는 문설주에다가 발라놨더니만 저주를 주는 죽음을 주는 천사들이 그 집 만큼은 패스 그냥 통과한 거예요. 그것은 죽었다 치고 그냥 이거는 벌써 죽었다 치고. 왜냐하면 집에 묻혀있으니까. 피가 있다는 것은 죽었으니까 피가 있을게 아닙니까. 피가 있는데 또 죽일 필요가 없잖아요. “어이 천사 이집은 갔어. 죽었어.” 죽었으니까 그냥 건너뛰는 거예요. ‘passover’. 건너뛴다. 패스한다. 죽기는 누가 죽었느냐? 죽기는 양이 죽었지요. 그런데 양이 죽었는데 그때부터 이스라엘은 죽은 양이 살았다고 하고 살았다고 하는 그 이스라엘 장자가 죽었다가 되는 겁니다. 죽은 자가 영원히 살고 산 자는 죽은 자가 되는 겁니다. 바꿔치기가 돼요. 그 말은 뭐냐 하면은 양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 잡았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유월절 양 살리기 위해서 죽을 사람 모집해서 죽여버렸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애굽 사람이야 어차피 다 죽을 사람이고. 그걸 신약에 오게 되면 죽은 예수님 살리기 위해서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다루어 주시는 겁니다. 그게 유월절이에요.

유월절은 율법에 의하면 하루고 무교절은 일주일 동안 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시간 루트는 시간 순환은 일주일이 끝이에요. 일주일이 끝입니다. 일주일 지나면 끝났어요. 일주일 지나면 종말이에요. 종말 되면 또 양 잡아야 돼. 또 안식일 또 지켜야 돼요. 양 잡아야 돼요. 그러니까 안식일을 순환시킨다는 말은 시작과 끝을 루틴, 반복해서 계속해서 활용하는 겁니다. 반복해서. 순회하는 시간이에요. 순회하는 시간. 그게 어디에 박혀있느냐? 율법에 박혀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은 안에는 뭐가 있느냐?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지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형과 그림자로 만들어 버리죠. 모형과 그림자라고 하는 것은 샘플이다 보면 돼요. 샘플. 설계사무소에 가면 자기가 설계한 아파트, 아파트를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 조그맣게 모형 샘플 만들어놨지요. 이스라엘의 일어날 일이 온 지구상에 그대로 확산되어서 일어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렇게 샘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뭐가 주어지느냐? 율법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 지키면 살고 못 지키면 저주받고 그렇습니다.

그게 이 세상 인류에 확산이 되면 예수님을 사랑하면 영생 얻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받고 그걸로 온 인류에게 75억, 현재는 75보다 더 돼요. 모든 인류에게 차별 없이 똑같은 문제지가 나가요. 똑같은 문제지. 수능이에요. 똑같은 문제지에요. 주를 사랑하느냐? 똑같은 문제가 주어지는 겁니다. 나는 절에 가기 때문에 예수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 거 소용없어요. 벌써 내가 다 이야기했는데 출제 범위 다 이야기했는데 딴소리해. 나 알라신을 믿기 때문에 모른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알라신을 믿든 어르신을 믿든 그런 거 완전 묵살하고 이미 확정졌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애가 태어난 지 15일 됐는데. 15일이고 일주일이건 간에 그런 거 일체 고려하지 않습니다. 15일 된 애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이 네가 왜 판정해? 내가 사랑주면 사랑하는 것이지 네가 그 애에 대해서 아는 게 뭐가 있어. 우리 아버지는 치매 걸려가지고 옛날에는 교회 좀 나갔는데 치매 걸려서 몰랐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남의 사정 느그 아버지 사정 생각하지 말고 본인만 생각해.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유월절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남자나 여자나 성별 관계없이 나이 관계없이 직업과 인격과 성격 관계없이 고루 똑같이 제공되는 겁니다. 마치 율법의 기능 같아요. 그러면 율법을 지킨 사람이 있더냐? 율법을 지킨 사람은 없습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은 인간이 자기 문제에 대해서 자기가 출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천국가기 위해서 문제를 내가 출제하지 않았어요. 내가 문제 출제하지 않았다는 말은 문제도 못 낼뿐더러 해답을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해답을. 십계명 끝에 보면 탐내지 마라 나오거든요. 그런데 어디서 어디까지가 탐심인지 탐심인데 아닌지 그거는 본인이 몰라요. 출제자만 알지 모른다고.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문제를 내 놓고 하나님께서는 심판해버리는 겁니다. 인간들 입장에서 어떻게 됩니까? “이거는 반칙입니다” 이러거든요. 그럼 하나님은 “네 존재 자체가 반칙이야. 네가 생겨났다는 게 반칙이야”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바로 여기 3절에 나옵니다.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 사탄이 들어가요.

자, 이 말은 가룟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는 말은 가룟 유다가 사탄의 가현체가 되었다는 말이에요. 가룟 유다가 사탄의 가현체. 우리 보기는 인간이죠. 인간인데 이거는 허상이 되고요 허상, 가룟 유다의 실상은 뭐냐? 실상은 악마입니다. 악마. 악마가 인간 속에 들어갔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허상이니까 허상은 뭐가 되느냐? 없다가 돼요. 그럼 실상은 있다가 되겠지요. 여기서 내린 결론은 뭐냐? 악마만 있다. 인간은 없고 악마만 있다. 모든 인간은 허상이 돼요. 이 허상이 실상인 척하면 안 되기 위해서 율법을 준 거예요. 율법을 본인이 인간이 감당을 못해요. 왜? 율법은 본인이 실상이 아니고 허상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마태복음 26장 24절에 보게 되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상당히 어렵고 난해한 말씀이 나왔어요. 어느 정도 어려운지 어느 정도 난해한지 이제 이 문장을 꼼꼼히 한번 생각해봅시다.

마태복음 26장 24절 가룟 유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는 예수님이죠. 예수님과 누구와 비교합니다. 가룟 유다와 비교합니다. 가룟 유다와 비교하면서 그 문장을 그대로 한번 써볼께요.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렇게 되어있지요.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여러 가지 하신 말씀 중에 다 어렵지만 특히 이 말씀도 굉장히 어려운 말씀이에요. 이 말씀을 가룟 유다한테 돌려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말씀을. 이 말씀을 가룟 유다에게 직접 이야기하면 가룟 유다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어요? 못 알아듣겠어요? 못 알아들어요 이 말을. 왜냐하면 이 문장을 한번 분석해봅시다. “그 사람은”이라고 했지요. 그 사람이니까 이걸 뭐로 바꾸느냐 하면은 가룟 유다의 자아로 바꿔요. 자아, 나. 나1.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이게 뭐냐 하면은 자아2가 됩니다. 나2. 왜냐 하면은 주님께서 가룟 유다에 대해서 “나지 아니하였더면”이라고 했어요.

이 말은 뭐냐 하면은 인간에게 꼭 나는 태어나야 될 정당성은 인간에게 돌려줄 수가 없다는 뜻이에요. 나니까 꼭 태어나야 돼 라는 말이 인간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해당되지 않습니다. 되지를 않아요. 인간은 없는데서 생겨났다 이 말이죠. 없는데서 생겨나니까 인간에게는 뭐가 실상이냐 하면은 없는 게 실상이에요. 없는 게. 인간이 태어난다 할지라도 없음이 무효가 되지를 않아요. 없음이 무효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뭐를 지적하느냐 하면은 가룟 유다야 행동 똑바로 해라. 제대로 살아 이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가룟 유다야 너는 네가 없다는 그때를 너는 왜 평소에 생각을 못하느냐 이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너는 네가 없다는 생각을 왜 못해 이 말이에요. 이게 예수님 관점이에요. 예수님 관점이기 때문에 예수님 관점을 가룟 유다 개인적 관점에게 돌려줘도 가룟 유다는 못 알아들어요.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은 가룟 유다는 모든 예수님 말씀이든 뭐 공자 말이든 부처 말이든 어디서 와서 멈추느냐 하면은 자아1에서 멈춰요. 자아1. 나1에서 멈춰요. 아 다 나 잘 되라고 하는 소리구나. 나1에서 더 이상 진도가 안 나가요. 모든 것은 나1에서 수집이 되어버려요. 멈추게 된다고요.

나 참 행복해. 어디서 멈췄어요 지금? 연세 많은 아버지가 어디서 멈췄어요? 나에서 멈췄잖아요. “아버지 없는데요.” 그 생각을 못하는 거예요. “뭐가 없어 내가 여기 있는데. 네가 미쳤구나. 내가 여기 있는데 왜 없다고 하느냐.” “아버지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왜 아버지는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없는데. 실상은 없는데. 없는 게 실상이라는 말은 뭐냐 하면은 인간은 실상이 악마에요. 악마의 가현체가 인간입니다. 이것을 죄가 인간에게 왕 노릇한다는 뜻이에요. 죄라는 것은 지은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보이지 않는 악한 인격이 악마가 실상이고요 악마 말고 또 실상이 뭐냐 하면은 여자의 후손이에요. 뱀의 후손 실상이고 여자의 후손, 예수님 실상이고 그 외에는 없습니다. 다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없어요. 그래서 가룟 유다의 경우는 이렇습니다. 실상1, 악마죠. 악마가 허상1을 만들었고 허상1이 허상2를 만드는 거예요. 왜 그럼 가룟 유다에게 허상1으로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허상2라고 왜 하느냐?

가룟 유다가 자기 자신이 살아오면서 자기 욕망의 결여, 뭔가 충족되지 못한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자기 욕망이 충족되는 그런 이미지를 상상하는 겁니다. 나는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2가 되는 거예요. 사실 가룟 유다 이야기는 모든 인간의 샘플이고 엑기스에요. 진액이에요 진액. 나는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의 나1은 그 다음 이렇게 되는 나2를 목표로 해서 내가 내 욕망을 손질하겠다. 조절하든지 그걸 충족시키든지 그렇게 되는 거예요. 12제자 가운데서 인간에게 보이지 않으면서 인간을 허상으로 만든 진짜 실상, 사탄이죠. 사탄과 직접 관련되어 있는 12제자 가운데 오직 누구밖에 없습니까? 가룟 유다밖에 없어요. 가룟 유다와 예수님이 관련이 되어줘야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완성할 수가 있습니다. 그 바로 뒷면에, 뒷면이 아니죠. 가룟 유다 안에 사탄이 들어갔으니까 안에 들어갔으니까요.

이렇게 되어버리면 인간의 관점과 예수님의 관점이 이런 차이가 납니다. 인간의 관점은 하나님 제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인데 제가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바르게 살면 천국 가는 사람으로서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방법 이야기해주시고 저한테 성령을 역사를 주시고 은혜를 주시옵소서. 누구한테? 저한테요 저. 저한테 그걸 주시면 제가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서 천국 백성 되겠습니다. 이거 12제자 가운데 11제자가 이 생각했어요. 예수님 알았으니까 예수님이 나를 구원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 12제자는 전혀 주님의 사건에 직접 관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허상이었어요. 그냥 허상. 실상을 보여주는데 11제자가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습니다. 진짜 관계되는 자는 가룟 유다였어요. 뒤에 보면 22장 17절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9절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했지요. 여기 잔, 예수님의 피입니다. 떡, 예수님의 찢기신 살이죠. 이 잔과 피를 제공이 되려면 12제자 가운데 어느 제자가 관여해야 피가 나오고 살이 찢겨집니까? 어느 제자입니까? 가룟 유다죠. 가룟 유다와 관련되어있어야 돼요. 다른 제자들은 먹기만 하고 아무 직접 관련성이 없어요.

그러면 이 십자가 사건은 결국은 가룟 유다라는 허상과 관련되어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상 누구죠? 악마와 예수님 사이에 단판 짓는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이 누구 관점이다? 이것이 가룟 유다 개인적 관점이 아니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관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관점에서 우리가 매일같이 예수님 십자가 생각 안 들고 예수님에게 관심사가 없는 이유는 지금 그 이유가 가룟 유다를 통해서 이유가 드러났지요. 가룟 유다는 사탄이 뒤에서 작동을 해서 가룟 유다는 나1에서 나2로 갔어요. 나1에서 나2로 가면서 가룟 유다는 어떤 욕망이 있느냐 하면은 예수님과 같이 있고 싶은 욕망이 있었는데 사탄이 딱 들어가니까 무엇이 와해되느냐 하면은 내가 원하는 예수님 이용하기 또는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하기가 이게 끊어졌지요. 그러니까 자기 욕망이 달성 안 되니까 어디로 도피했느냐 하면은 자기 자신에게로 도피해버린 거예요. 그 도피의 극단적인 모습이 뭐냐? 바로 자살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자살하는 게 취미가 아니에요. 그냥 나1, 허상1이 있을 때는 자살 생각이 없어요. 그런데 가룟 유다를 놔두고 외부요소, 실상요소가 누구냐? 둘이거든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악마와 예수님과의 그 투쟁과 충돌 여파에서 본인이 예수님과 이렇게 제대로 해보겠다는 생각이 좌절되면서 그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망치는 방법이 내가 나를 죽임으로서 자기 생을 마감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가룟 유다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모든 인간의 주체는 ‘나’라는 것은 결여, 모자람, 부족함을 통해서 주체로서 한 평생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계속 현재의 나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기대하는 나 사이에 모자람을 그걸 어떻게 그걸 가까이 충족시키고 일치시키고 그걸 동질화시키는데 부지런 떨면서 등장하는 게 뭐냐? 나. 나나나나나나나나. 주체. 끊임없이 노력하는 거예요. 끊임없이. 가룟 유다가 그걸 다 보여주는 거예요. 이게 마귀에 예속된 인간들의 특징이에요. 마귀에 예속 안 된 인간이 어디 있어. 다 그렇지. 그리고 거기서 무서움을 느껴요. 충족되지 않는 나의 욕망이 무서워서 인간은 계속 도피하고 도망치고 숨는 거예요. 숨다가 또 빼꼼히 얼굴을 가끔 내밀어 봐요. 가룟 유다가 인간 세계에서 가장 정상적입니다. 가장 인간의 원액이에요. 정상적이에요. 하루 눈뜨면 아침부터 해서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게 있어요. 원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어떤 욕망도 충족되지 않고 있다. 어떤 욕망도.

그리고 욕망이 어디까지 뻗힐지는 이거는 실상이 결정하지 허상인 나는 놀아나고 있어요. 농락당하고 있는 거예요. 뭐 이만하면 됐다. 이런 거 없어요. 이만하면 됐다가 어디 있어요. 이만하면 됐다가. 국산 차 타고 다니면 됐지. 아니야. 외제 차 정도는 타줘야 되는데. 외제 차는 어디까지? 세상에 길 가는 인간 아무나 붙들고 물어보세요. 너 인생 어때? 뭐 내 인생 이 정도하면 나는 됐어. 그런 인간 없어요. 나 이 정도하면 됐다는 인간은 없어요. 오늘도 계획 세워야지 이런 거예요. 오늘 전세에서 아파트,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야지. 맨날 사람이 목적이 없으면 사는 맛이 없다는 게 인간들인데요. 전부 다 허상이에요. 허상. 그러면 그것이 좌절되고 실망되면 어디로 간다했습니까? 인간은 자살 쪽으로 가지요. 자살 쪽으로. 제가 오늘 노래 안 틀 줄 알았지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처신하는지 허상이면서 주체가 있으니까 내가 막다른 길에서 유일하게 감지되는 느낄 수 있는 감각될 수 있는 아무리 모든 게 없다 없다하지만 유일하게 있는 게 내 신체고 몸이니까 이 신체 몸을 가지고 뭐를 만드는가? 자아1에서 자아2를 목표로 했을 때 세상에 나와서 요령부리고 여러 가지 설치면서 애쓸 때 그게 좌절되었을 때는 인간에게 본심이 어떤 본심인지를 제가 노래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난 돌아가야겠어.이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모든 것이 낯설기만 해외로움에 길들여진 후로차라리 혼자가 마음편한 것을어쩌면 너는 아직도 이해 못하지내가 너를 모르는 것처럼언제나 선택이란 둘 중에 하나연인 또는 타인뿐인걸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나의 슬픔을무심하게 바라만 보는 너

여기까지. 끝에 가사는 너 떠나면서 약한 모습 보여서 미안해 나와요. 이게 ‘서울의 달’이라는 노래거든요. 옛날 유명한 드라마의 주제곡이었습니다. 아시죠? 이 드라마. 촌에서 와서 서울에서 한번 버텨볼라고 애쓰다가 결국 외로움에 길들여진 거예요. 외로움에. 이게 일종의 자살이죠.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합류가 안 되는 거예요. 내 자리가 낄 듯 낄 듯 못 끼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 탓을 누구 탓을 하지요? 그 탓을? 세상, 더러운 세상 탓으로 돌리는 겁니다. 그러면 이 말은 뭡니까? 자아1에서 나가지를 못해요. 내 배후에 실상은 내가 실상이 아니고 마귀가 실상이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농락하는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아까 유월절 이야기했잖아요. 유월절이 뭐라고 했습니까? 유월절은 양 살리고 나죽이는게 유월절이에요. 유월절 어린 양 살리고 날 죽이는 거예요.

하나님 뜻은 무슨 뜻이다? 나를 죽이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안 죽으면 자꾸 내가 최종적인 실상이라고 우기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나 성경은 악마만 실상이 아니고 또 다른 실상이 있어요. 예수님이 또 실상인 거예요. 출발을 마귀부터 출발하는 건 아는데 주님의 뜻은 지금 뭘 바꾸느냐? 12 제자들을 악마에 속한 실상을 예수님 실상부터 시작하는 그러한 인간으로 바꾸는 겁니다. 악마는 실상이고 가룟 유다는 허상이 되지요.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허상으로 보는 거예요.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제게 좋을 뻔했다” 할 때 ‘나’가 두 개 들어가잖아요. 중간에 뭐가 들어갑니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나2가 날라가버리죠. 나1도 날라가버리죠. 이 비슷한 이야기가 욥기에 나와요. “차라리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런 시련도 안 받을건데” 욥기 3장에 보면 그렇게 되어있어요. 성경은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학문에서 이야기하는 그걸 더 뚫고 지나가는 거예요. 가룟 유다가 이렇게 한다면 가룟 유다는 결국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게 인간에게 실상이다. 인간이 태어나지 않았으면 뭐만 있다? 악마만 있지요.

그러면 악마에서 악마와 실상과 실상이 전쟁을 벌여서 예수님의 실상이 악마 실상 이겨버리면 그때부터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없음에서 새로운 있음이 시작되는 겁니다. 새로운 있음이 시작되는데 그 있음은 우리를 허상으로 만드는 게 아니에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오늘 대목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 아마 성경에서도 제일 어려운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한복음 6장 56절, 보시기 전에 다시 한번 마귀가 우리한테 뭘 했는가? 마귀는 실상이면서도 비겁하게 숨어있고 우리로 하여금 태어난 인간이 악마가 장악해서 태어난 인간이 계속해서 악마의 욕망의 시달리면서 그 욕망을 허겁지겁 그걸 충족시키기 위해서 맹목적인 투쟁과 노력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 욕망이 끝도 없는데요. 거기에 농락당한 거예요. 쉽게 말해서 세상 모든 것은 그냥 사기입니다. 교회든 뭐든 다 사기에요. 그릇 사기 말고 다 사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허상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6장 56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이거 뭐예요. 예수님 자체가 실상인 동시에 그 실상 안에 성도라는 이름의 허상이 아니고 실상이 그 안에 박혀버리면 더 이상 여기에 추가적인 욕망이 침투를 못해요. 나 이거 되야지 하는 게 없어요. 내 안에 예수님 있고 예수님 안에 내가 있어 버리면 그 둘 다가 유일한 실상. 어린 양 안에서 우리가 새롭게 실상으로 생산된다. 만들어진다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유월절 어린 양 안에서. 유월절 어린 양의 기능은 피 흘리는 거예요. 피 흘림. 피 흘린 그 피 먹고 찢겨진 그 살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과 일체가 된다는 뜻이에요. 하나가 된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그래서 여기 12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죠. 하나에 대해서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7장 11절 12절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여기 우리가 누구냐 하면은 아버지와 아들을 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말해요.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지금 여러분들이 이걸 이해하려면 제가 또 이야기할 게 있어요. 그 이야기 듣고 이게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시면 됩니다. 12절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이렇게 되어있지요. 이 일에서 악마의 허상에 불과한 우리가 여기서 뭔가 할 게 있어요? 없어요? 우리가 할 게 없어요. 예수님이 알아서 다 해주는 겁니다. 지켜주는 겁니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라고 되어있어요. 여기 성경에 응한다는 말이 무슨 성경을 두고 이야기하느냐?

요한복음 13장 18절 19절에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라고 되어있어요. 예수님께서 여기서 시편 41편 9절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발꿈치를 들었다고 되어있지요. 여기 발꿈치를 들었다는 것이 여러분들 아시다시피 창세기 3장에 15절에 보면 뱀의 후손이 여자의 후손의 무엇을 상하게 합니까? 발꿈치를 상하게 하죠. 이게 전부 다 말씀이 응하게 함이라. 말씀이 말씀대로 응한 입장에서 감히 인간 주제에 없던 데서 태어난 인간 주제에 우리가 할 게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전혀 우리가 할 게 없어요.

우리가 할 게 없는데 또 질문합니다. 그럼 우리가 할 게 뭡니까? 방금 우리가 할 게 없다고 했는데 또 뭘 하면 됩니까 라고 이야기해요. 그럼 거기에 답변은 뭐냐? 모든 것이 말씀대로 응해질 겁니다. 그럼 말씀대로 응해지는 게 뭡니까? 너희를 보호하사 멸망치 않고 예수님 안에서 실상이 되게 함이라. 이렇게 된다고요. 그럼 또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목사님 그건 안 믿어지는데요. 당신보고 믿으라고 하는 게 아니고 말씀대로 된다니까. 왜 당신 믿음이 왜 거기서 나와. 거기서 왜 나와 당신 믿음이. 나는 그게 안 믿어지는데요. 믿고 안 믿고 그거는 주님 앞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어요. 주님의 결심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를 못해요. 뭐 언제는 믿었어요? 언제는 믿었습니까? 치매 걸리면 믿는 거 다 날라가버리는데. 언제는 믿었습니까? 모든 것이 말씀대로 된다는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될 문제. 김고은의 굿인지 모르겠습니다만은 물론 여기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다는 것은 적절치 않아요 왜냐 하면은 굿하면서 우리가 같이 죽어나가니까. 우리로 하여금 악마가 남긴 허상을 주께서 해소를 합니다. 해소를 해서 우리가 없던 데를 가요. 없던 데로 가게 되면 우리는 뭐냐 하면은 악마에 속했다는 실상의 노예, 실상에 농락당한 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자, 여기서 그 악마의 종이 어떤 것인지를 제가 아주 빠른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뭐가 악마의 종인지? 스페인은 남쪽과 북쪽의 빈부격차가 굉장히 심합니다. 통계적으로 북쪽의 소득이 남쪽의 2배가 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같으면 수도권과 지방권이 20% 차이가 나요. 그러나 스페인은 거의 두 배입니다. 스페인이 왜 소득차이가 나느냐 하면은 스페인이 옛날에 중세 때 북이슬람이 스페인을 반을 점령을 했어요. 반을 점령해서 북쪽은 기독교 남쪽은 이슬람이었거든요. 기독교가 자기 나라에 쳐들어온 이슬람을 쫓아내기 위해서 400년 이상 긴긴 세월동안에 조금씩 조금씩 남하하면서 그것을 니베리아 반도 전부 다 이슬람을 쫓아내기 위해서 조금씩 조금씩 전쟁을 하면서 추방을 시켰어요. 오랜 세월이에요. 711년에 시작해서 1150년 마감됩니다. 거의 400년입니다. 그 전쟁을 하면서 그 전쟁을 하려면 왕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되겠지요. 그러니까 북쪽에 있는 주민들은 결집력을 하면서 그 촌락이나 마을이 안정권을 갖고 있었어요. 왕의 통치 안에서 안정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쪽은 이슬람이 지배하면서 이슬람이 세금만 빼가기 때문에 남쪽 사람들은 안정권을 갖지 못하고 토지가 자기 토지가 아니고 전부 소작인이에요. 자기 농토가 아니에요. 북쪽은 오랫동안 있다 보니까 자기 것이 되고 자기 농토가 있어요. 자기 농토가 되는데 남쪽에는 자기 땅이 없고 뭐 했느냐. 이슬람이 압박을 하기 때문에 그냥 농사 못 짓고 목축을 한 거예요. 목축을 하니까 도시가 형성되지 않고 전부 다 촌락, 군데군데 쪼가리 난 촌락 숫자 얼마 안 되는 마을들만 있는 거예요. 언제 떠날지 모르니까. 목축이니까 또 다른 데 가야되니까. 그러다 보니까 나중에 이슬람 물러나고 산업화가 되면서 산업화가 되니까 철도는 놓이고 하는데 밑에 사람들은 교육을 못 받았어요. 교육을 못 받으니까 산업화가 되면서 산업화에 필요한 인재들을 취업을 할 수 없어요. 취업도 못하고 모든 자본들이 북쪽에 다 모여 있으니까 자금이 있어야 기업이 되고 기업이 돼야 공장을 짓고 공장이 돼야 물건 팔아서 해외수출해서 이윤이 남는데 남쪽은 목축하고 양치고 이래가지고는 안되는 거예요. 특히 교육을 못 받아서 회사에서 교육시켜 하려고 하면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요. 일용직밖에 안되는 거예요. 재능들이 없어서. 기술이 없어가지고. 이게 현재까지 이어진 거예요.

자, 이게 뭐냐?? 이게 바로 빈부격차는 인위적 요소가 가미되었죠. 무슨 세계에? 인간 사회에. 인간 사회가 인위적 요소가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오랫동안 정착했다는 말은 도시가 발달할 조건이 된다는 것이고 도시가 발달하게 되면 거기서 교육 인프라부터 해서 재산 인프라가 성립되는 거예요. 그리고 같은 마을끼리 결속력을 다지고 그것이 산업을 일으키는 인적 자원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떠돌이들은 소용없어요. 돈이 없으니까 애들 교육을 또 못 시켜요. 그때 먹고 입는 것밖에 못해요. 또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뉴질랜드. 뉴질랜드는 남쪽과 북쪽으로 되어 있는데 그 북쪽 섬은 너무 살기 좋아요. 너무 살기 좋고 평지고 산도 별로 없고 남쪽 섬은 300m 고봉이 1200km쭉 뻗어가지고 이거는 안돼요. 특히 서쪽은 산지고 남쪽 섬에 평탄하지만 이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습지, 여기는 비가 많이 와요. 비가 많이 와서 어떤 지역은 12000mm 왔어. 여기는 농사가 안돼요. 북쪽은 적도가 가까우니까 따스하다 이 말이죠. 그럼 이거는 인위적 요소가 아니고 무슨 요소입니까? 자연적 요소지요.

보세요. 방금 이야기한 인위적 요소, 자연적 요소 거기서 나타나는 것은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이거죠. 이게 바로 마귀의 세상이에요. 이게 마귀의 세상이라고요. 방금 이야기한 게. 왜? 예수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예수 있다가 안 되잖아요. 될 수가 없지요. 왜 예수님께서는 산업을 일으킬 생각을 안 하고 왜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 취직시킬 생각 안 하고 왜 예수님은 왜 마귀 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사탄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매” 그것도 말씀을 하니까 사탄이 들어가매. 왜 마귀 이야기를 했을까요? 북스페인처럼 잘 살고 북쪽 뉴질랜드처럼 자연적 요소로 잘 사는 것, 이게 인간들을 뭐라고 합니까? 이걸 성공한 국가, 성공한 사람, 출세한 사람이라고 하지요.

자, 출세했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어느 쪽과 같은 쪽이냐 하면은 출세한 당사자가 있지요. 출세한 당사자가 누굽니까? 나지요. 나. 내가 계속해서 뭘 추구한다?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목표에서 내가 부자 되기를 원하지요. 부자 되기 원하는데 뉴질랜드 보세요. 됩니까? 안됩니까? 자연적 환경 때문에 안 되지요. 스페인은 어떻게 됩니까? 스페인 남쪽은 인위적 요소 때문에 안 되지요. 그러면 내가 부자 되기 위해서는 어딜 찾아가는가? 자연적 환경도 괜찮고 인위적 요소도 제도도 잘 구비되어있는 체제 있는 쪽으로 내가 이민 가면 되지요. 호주, 캐나다 뭐 이렇게 잘 사는 나라. 요새는 잘 살지도 못해요. 가면 되겠지요. 모든 생각이 하루 온종일 생각이 그 생각으로 돌아가겠지요. 그게 바로 허상입니다. 악마가 준 허상이에요. 왜 주님께서 인간이 원하는 것을 인간 관점에서 원하는 것을 왜 제공하지 않습니까? 왜 기도의 응답이 없어요? 주님의 기도 응답은 이것밖에 없어요. 내가 너 안에 들어가는 거예요.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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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1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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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