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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강의20240411a 요한일서 2장 22절(거짓)-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일서

서울강의20240411a 요한일서 2장 22절(거짓)-이 근호 목사

일어나지 말아야 될 일이 일어났다는 그 뉘앙스가 수준 따라서 거짓이 같이 증강한다는 것을 아셔야 돼요. 오늘 요한일서 2장 22절하거든요.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이렇게 되어 있어요.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거짓말하는 자는 누구냐에 대한 인간의 반발은 뭐냐 하면, ‘하나님은 뭐하고 거짓말하는 일이 일어나도록 왜 방치하느냐? 그 책임은 하나님이 져야 되지, 우리 인간이 거짓말했다고 그걸 가지고 추궁하시면 안 되지요. 왜 하나님은 지켜보시기만 합니까? 거짓이 아예 삭제되도록 안 생기도록 조치하시면 안 됩니까?’라는 반발이 나올 수 있거든요.

“그런 일이 왜 일어납니까? 안 좋은 일이 왜 일어납니까? 뭐 병이 난다든지 그런 일이 왜 일어납니까?” “좀 일어나면 어떤데. 네가 뭔데?” 이게 정답이에요. 네가 어떤 권리로 ‘나에게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야 되는 나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건덕지, 근거를 한번 대봐라. 네가. 근거를 대봐라. 근거 못 대면 거짓이에요.

벌써 강의 결론 나왔죠. 결론 나왔어요. 혼자 나왔는데… ‘거짓이란 근거가 없는 것’이에요. 궁극적인 최종적인 근거가 없는 게 거짓이에요. 근거가 없는 자가 ‘나는 진실이다’ 하면 이건 뭐가 되겠어요? 근거가 없는 자가 나는 진실이라 하면 뭐가 됩니까? 이게 바로 거짓이죠. 근거가 없는 자가 ‘나는 평소에 바르게 살려고 힘쓴다’ 이게 뭡니까? 이것도 거짓이죠.

하나님이 인간에게 최종 근거를 줬어요. 그 근거를 주셨기 때문에 비로소 뭐가 발생되는가? 거짓과 진실이 구분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이제 여러분들이 궁금할 거예요.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는 그 근거가 뭐냐? 오늘 강의 내내 이거 하나만 생각하면 여러분 오늘 강의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7절,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다음의 말씀이에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로 거짓이란 십자가로부터 출발하지 않는 주장들, 의견들, 질문들, 답변들, 의식들 이게 거짓입니다. 진실은 오직 하나밖에 없어요. ‘전 바른 말했습니다’ 그건 진실이 아니에요. 진실은 십자가가 헛되지 않은 것,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가 헛되지 않은 것만 진실이에요. 그래서 진실은 뭐냐? 예수님의 육신을 진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육신이에요.

그러면 진실이 진실로 계속 이어지려면 출발점이 뭐냐? 예수님의 육신이 되어야 돼요. 예수님의 육신이 하신 일이 되어야 돼요. 그런데 예수님 육신 말고 또 다른 육신이 있죠. 나라는 육신. 남들의 육신. 그걸 보존하기 위해서 그걸 지켜내기 위해서 어떤 질문을 한다든지 어떤 주장을 한다든지 생각이 거기서부터 나온다면 그건 어떤 생각이 되든 그것은 거짓이 됩니다.

질문 하나 나올 타이밍 됐죠? 자, 다음의 행위가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아보세요. ‘배고픕니다. 밥 좀 주세요.’ 거짓입니까, 진리입니까? ‘제가 배고픕니다. 밥 주세요.’ ‘아들이 수술했습니다. 수술비가 급하니까 백만 원만 좀 제 쪽으로 돌려주시면 나중에 한 달 뒤에 당신 쪽으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이자 쳐서.’ 뭐 이런 거. 거짓입니까, 진실입니까?

거짓이죠. 지금 얘가 아파서 수술비 달라는 것은 뭘 헛되지 않으려고 하는 겁니까? 내가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이 헛되지 않으려고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거예요. 지키려고 하는 거예요. 어미가 되어서 자식 지키는 것이 뭐가 거짓인가? 거짓입니다. 온 우주가 온 대자연이 당신 자식 지키려고 움직인 게 아니거든요. 서울에 민주당 몰표 나온 것이 당신 자식 지키려고 나온 게 아니에요.

세상 돌아가는 것이 나한테 손해되지 않는 식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세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사람이 어려울 때 또 왜 그리 사고가 많이 나는지, 어려운 살림에 수술비도 없는데 엄마가 자빠졌다. 도움을 요청한다. 아는 친척이니까 좀 도와주세요. 진실이에요, 거짓이에요? 이거 거짓이죠.

그러니까 거짓이라 하는 것은 인간 대 인간으로 결정될 문제가 아닙니다. 너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는 권한은 인간에게 없습니다. 거짓은 하나님만이 추궁할 수 있지, 다른 사람은 추궁 못합니다. 인간 대 인간의 관계는요. 처음에는 대충 아는 관계에서 점점 더 깊은 관계로 들어가죠. 그러면 거짓도 같이 증가해요.

예를 들어서 서로 어색하고 서로를 잘 모르는 사이에 “너희 아버지 잘 계시나?” “응. 잘 계셔.” 이러면 모르는 사이에서는 그게 뭐 문제될 것이 없죠. “아, 아버지 계시는구나. 어머니는?” “어머니도 계셔.” “그래? 그럼 우리끼리 좋아하니까… 우리 만난 지 며칠 됐지?” “3일.” “좋다. 눈 맞았으니까 결혼하자.” “결혼하자.” 하여튼 3일 만에 결혼했다 칩시다. 결혼하고 난 뒤에 아버지란 작자가 왔다. 보니까 결혼한 여자가 남편보고 “당신, 전에 결혼식 참석한 그 아버지 아니네?” “아버지가 둘이거든.” 복잡하죠. “아니 분명히 나한테 그 아버지 살아계시다 했잖아.” “살아계시지. 둘이나 살아계시지.” “둘 이야기 왜 안 했노?” 그때는 깊은 관계가 아니었거든요.

사람이 인간과 인간관계가 점점 증가하게 되면 무엇도 증가돼요? 거짓이라는 것이 자꾸 드디어 같이 들추어나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둘이 결혼해서 한 46년 7개월 살았다. 46년 7개월 돼서 나이 팔십 가까이 돼가지고 이제는 뭐 알만큼 안다고요? 살아보세요. 거짓이 계속 발굴됩니까, 발굴 안 됩니까? 계속 발굴돼요.

거짓이라 하는 것은 도대체 인간이 다룰 수 없어요. 다룰 수 없고 캐낼 수도 없고. 어떤 아주머니가 임신해서 자기 자식이 초능력 가지기를 원해서 뭐 절에도 가고 교회도 가고 성당도 가고 유명한 신이란 신에게는 요란스레 다 빌었는데 걔가 이 땅에 태어났어요. 태어났는데 어떤 재주가 있느냐 하면 남 거짓말하는 것은 귀신같이 알아내는 재주가 있다 합시다. 그냥 그런 게 있다 합시다. 드라마 중에 그런 드라마가 있어요. 그래서 자기는 무당 신 내림 받았다고 거짓말해가지고 돈벌이가 꽤 잘 돼요. 거래하는 데 가서 거짓이면 삐삐, 진짜면 삐, 이런 식으로.

자, 그럴 때 그 사람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가려낼 수가 있습니까? 타인의 거짓을 가려낼 수 있습니까, 인간이? 인간은 거짓을 가려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거짓은 근원적이기 때문이에요. 인간이 넘볼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게 거짓의 세계입니다.

요엘서 같은 경우에, 요엘을 후기 선지자라 하는데 후기 선지자 같은 경우에 또는 작은 선지서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여호와의 날’이 있죠. 여호와의 날. 여호와의 날은 쉽게 말해서 이겁니다. ‘태초에 끝이 있었다.’ 태초에 끝이 시작되었다. 알파요 오메가니까 시작과 끝이 태초부터 계속 있어온 거예요.

아주 작정하고, 세상 멸망을 작정하고 하나님께서는 일을 벌여나갔습니다. 태초부터 이미 심판을 전제로 해서 천지를 창조했으니까요. 심판하려면 심판의 대상이 있어야 돼요, 없어야 돼요? 있어야 되죠. 태초에 심판의 대상이 뭐겠습니까? 진실 말고 반대말은? 거짓이죠. 그럼 태초에 뭐가 있었다? 태초에 거짓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잘 한번 생각해보세요. 십계명 중 제일 끝 계명이 뭐냐? “탐내지 말라”죠. 탐내지 말라. 그럼 태초에 탐심이 있었다. “거짓 증거하지 말라” 태초에 거짓말이 있었다. “부모를 공경하라” 태초에 부모에 대한 살인 의지, 살해 의지가 있었다는 거예요.

바로 ‘~하지 마라 하지 마라’ 하는 것은 이 세상은 그걸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겁니다. 이 말은 ‘진실은 거짓 속에 있다’는 거예요. 거짓이 없는 곳에는 진실도 없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빛이 있기 전에 어두움이 먼저 있었고 빛은 어두움이 있고난 뒤에 그 뒤에 오게 되어 있어요. 그럴 때 어두움이 자기 본색을 드러내죠. 빛을 어두움이 믿지 아니하는 거예요. 어두움이 믿지 않는 것.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1:5)

방금 이야기한 것을 여러분들이 중요시해서 이야기를 한번 시작해봅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영생이든 뭐든 간에 또는 요한일서도 마찬가지지만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했거든요. 요한복음 11장에서(11:25-26).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으라고 했다고요. 나를 믿으라. 예수님 말씀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요. 굉장히 간결해요. 나를 믿으라.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어느 누구도 나를 믿는 자가 없다는 뜻이에요. 나를 믿으란 말은, 어느 누구도 나를 믿는 자가 없다. 이미 인간들은 믿는 자가 있어요. 자기 판단을 믿어요. 인간은 자기 판단을.

그러면 진실 된 게 뭐냐 하면, 이 말이 재밌는데 진실 된 게 뭐냐 하면 ‘나는 당신을 못 믿겠습니다.’가 진실이에요. 나는 당신을 못 믿겠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거짓이냐 하면 ‘예. 믿으려고 애쓸게요.’ 이게 거짓이 되는 거예요.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비유가 쫙 나와요. 비유가 한두 가지 나오는 게 아닙니다. 많이 나오죠, 비유들이. 비유들이 바로 그런 것을 지적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믿으라 할 때는, 인간들이 이미 본인 판단에 믿을만한 것은 다 알아서 믿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겁니다. 그걸 환경으로 하는 거예요.

따라서 주님께서 이야기할 때는, 이미 인간들이 딱 체계가 갖춰져 있어요. 나 이런 이런 거 믿는다. 납득되는 걸 믿는다. 내가 이해되는 걸 믿는다. ‘이해 안 되는 것은 믿으려고 애쓸게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지금 확실하게 믿는 것은 이미 따로 챙겨져 있는데, 내가 믿으려고 애쓰는 것은 확고하게 챙긴 것 말고 여분의 것, 내가 더 생각해보고 판단할 것이 아직 남아있는 게 있다. 그건 앞으로 노력하게 되면 현재 기존에 있는 믿음체제에 그걸 합류시킬 수 있다.’ 이런 생각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그런 인간의 믿음 창고를 가만두지 않죠. 폭파시켜버리죠. 폭파시키면서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나를 믿으라는 거예요. 내가 너를 심판할 테니까 믿으라. 내가 너를 심판하는 것도 믿어라 이 말입니다.

그럼 그걸 믿습니다, 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입니까?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주님 앞에 저주받아야 합당합니다.’ 이걸 받아들이는 것인데 이런 인간은 없어요. 인간세계에 믿음이라는 게… 예수님은 믿으라 하는데 아무도 안 믿어요. 마지막 버틸 수 있는 것은 나는 어쨌든 버텨야 되니까 인간들은 생각하기를 어떤 믿음이냐 하면 내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보는 거예요. 내가 없으면. 주님께서는 그러니까 못 믿는다는 거예요.

인간의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여기 있음이 곧 의미의 개시(시작)다.’ 내가 여기 있음이 곧 의미의 개시이고 시작인 거예요. 그러니까 이미 인간은 자기 자신의 존재함을 의미 있게, 그것도 그냥 있는 게 아니고 중요하다고 여기고 의미 있게 여기면서 이미 자기 믿음을 시작한 거예요. 개시를 한 거예요.

여기서 주님이 마주쳐 오죠. “나를 믿으라.” 나를 믿으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너 알아서 죽어라’ 이 말입니다. 화투판에서 화투 초보가 두 장을 딱 쥐고 있다. 그러니까 화투 타짜가 화투 숫자 딱 헤아려보더니 “야, 알아서 죽어. 알아서 죽어.” “뭘 갖고 있는데요?” “묻지 말고. 나 너 뭐 갖고 있는지 아니까 알아서 죽어.” 알아서 죽을 거 같으면 화투 왜 칩니까? 화투란 가능성보고 치는 건데요.

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믿으란 말은요, 이런 뜻으로 생각하시면 여러분 오케입니다. 너는 너 혼자 못 산다는 거예요. 너는 혼자 살 수가 없다는 거예요. 자꾸 혼자 살면 혼자를 위한 질문이 나와요. 나 아프면 안되잖아. 나 병원가서는 안되잖아. 나 목 아프면 안되잖아. 혼자 있기 때문에 혼자 평소에 자기가 믿고 있는 그것이 질문으로 계속 나오는 겁니다.

아까 진실은 뭐라 했죠? 진실은 예수님의 육신이라 했죠. 예수님의 육신, 이게 진실이에요. 예수님만의 육신입니다. 요한일서에서. 그러면 거짓은? 예수님만이 진실을 이미 완전히 홀로 장악했어요. 모든 진실은 예수님 육신이 다 장악했어요. 이 말은, 예수님 빼놓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진실은 없어요.

그럼 뭐 성경에 보면 이웃 사랑하라고 나오고 뭐 여러 가지 말씀 나오는데 그런 건 우리는 못한단 말입니까? 못해요. 왜냐하면 그런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해야 되니까. 예수님과 함께 해야 되지, 단독으로 못해요. 그러면 왜 단독으로 못하느냐를 알아야 될 게 아닙니까? 예수님과 더불어 해야 되고 더불어 한다는 말이 성령이 함께 하는 거예요.

이걸 요한일서에서는… 요한일서 하니까 한번 봅시다. 요한일서 1장 3절,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함이라” 이렇게 되어 있죠. 우리끼리가 아니고 아버지까지 그 아들까지 함께하는 거예요.

함께하는 이유가 뭐냐 이 말이죠. 이건 우리한테는, 예수님을 안 믿는 거예요. 믿을 수가 없어요. 나를 이미 믿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자꾸 혼자 살기 위한 속성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거예요. 나 혼자 모든 걸 처리하면 괜찮다는 그런 속성을 이미 타고났어요. 이게 거짓이잖아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짓되게 태어나게 합니까? 물으신다면 진실은 거짓과 짝을 이뤄서 진실이 되는 거예요. 나는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다. 이래서 진실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은 특징이 뭐에요? 나는 있음 자체로 진실되다. 그러니까 나보고 누구 믿으란 소리하지 마세요. 나는 나를 믿고 있을 테니까. 알아서 잘 할 테니까. 이렇게 하면 이건 뭡니까?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죠. 그걸 요한일서에서는 세상에 속한 자라고 해요.

요한일서 2장 6절에 보면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 요한일서 3장 9절은 더 노골적이에요.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그다음에 뭡니까?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뭐가 그 안에 있음이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아, 굉장히 도발적인 표현을 했죠. 하나님의 씨가 네 안에 있다는 거예요. 씨가 다르다는 겁니다. 씨가. 네가 어떤 판단과 행동을 하고 싶어도 씨가, 그 들어있는 씨가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이삭은 야곱으로 구원받고 야곱은 요셉으로 구원받고 그렇게 되죠. 그 후손에 의해서 구원받죠. 그 후손에 의해서.

태초에 끝이 있었으니까. 끝이 시작되니까. 그 끝에 있는 효용성, 끝이 주는 효용성이 먼저 있는 것까지 영향이 파급되어서 그들을 마지막 끝지점으로 끌어당기죠. 나의 끝. 나의 끝에서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나의 끝에서. 그러면 나의 끝이 되지 않으면 누구를 믿는다? 아직 끝이 아니니까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능성을 믿어요.

예를 들어서 과연 여러분들이 믿음 있는지 한번 테스트해보면 되죠. 요한일서 3장 8절,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자, 이 대목. 믿습니까? 이렇게 되거든요. 믿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성도이고 싶은 사람은 ‘믿습니다’ 하죠.

‘믿습니다’란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할 게 더는 없습니다’라는 뜻이에요. 주님이 마귀를 멸하는데 내가 거기에 왜 끼어듭니까? 내가 할 게 있어요, 없어요? 주님 하는 걸 못 믿겠다. 내가 나서야 되지, 뭐 나 대신 누가 하는 건 영 못 미더워. 못 미덥다는 게 뭐에요? 불신 아닙니까. 안 믿는단 뜻이잖아요.

인간이 평소에 무심코 내뱉는 행동과 태도 뒤에 숨어있는 추임새가 있어요. ‘나는 나 말고는 안 믿는다.’ 이게 모든 행동과 말에 다 붙어있는 거예요. 내가 알아야 내가 미덥지. 내가 안하고 누가 해 준다 하는 건 영 믿음이 안가. 그걸 가지고 못 믿겠다 하는 거예요. 그게 못 믿는 거예요. 못 믿는 거.

‘그럼 못 믿으면… 믿어서 영생 얻고 천국 가는데 못 믿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데요?’ 거짓이죠, 뭐. ‘그럼 거짓이면 지옥 가는데 그럼 나는 어떻게 돼요? 거짓되면 지옥 가는데 나 어떻게 돼요?’ 본인이 본인 혼자 있기 때문에 계속 자기 자신의 결심에 최종 근거를 두는 거예요.

성경에서 말하는 최종 근거는 인간을 뚫고 지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거든요. 아까 고린도전서 1장 17절에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서에요.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아, 얼마나 강렬합니까.

내가 뭐 마음 편하게 살고 행복하게 살고 그거 아니에요. 그거 지키는 게 아니에요. 십자가가 헛되이 되지 않는 것이 주께 진실이라면 거짓은 뭐냐? 어떤 믿음으로 기적을 행하고 믿음으로 병이 낫고 백날 하면서도 계속 관심사가 십자가에 관심이 없고 내가 어떻게 하나님 덕분에 복 받아 잘됐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욕되게 하는 거고 모독하는 거예요. 헛되이 하는 거예요.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거기 거짓 사도가 나와요. 11장 13절에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자, 여기서 거짓 선지자가 이 고린도후서 11장 13절부터 15절을 이야기했을 때 그걸 어떻게 알아봅니까? 거짓 선지자가 방금 읽었던 이 대목을 교인들에게 설교하면서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우리 교회 잘 오신 거예요. 여러분들 속을 뻔했어요.” 이렇게. 꼭 부동산 사기하는 것처럼. “이건 뭐 아무나 이야기하는 게 아닌데. 여러분들은 행운을 얻은 겁니다. 여러분들께만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이러이러한 자가 부동산 사기 치는 사람이라는 거 여러분들한테만 알려주지, 다른 사람한테는 안 알려줍니다.”라고 그런 말까지 하는 사기꾼을 어떻게 알아내냐 이 말이죠.

답변해보세요. 뭐 있는데. 아까 이야기했는데, 정답. 뭐라고 했습니까? 고린도전서 1장 17절. 십자가를 헛되이 하지 않게 하려함이라 했죠. 그러면 그 말과 같은 말이 뭐냐? 나를 헛되이 하는 것이 주님의 진실이죠. 나의 꿈, 나의 희망, 비전, 모든 것을 허사로 돌리는 것. 이제 뭐 감이 오렌지 막 옵니까? 와요?

나의 모든 인생 시도를 헛된 걸로 돌려주시는 그 고마운 말씀. 그 고마움. 얼마나 그동안 우리 정신머리가 엉뚱한 데 가 있었던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되는 그것에 관심 있는데, 우리는 내 인생, 괜찮은 쓸 만한 인생으로 구축하는 데에 거기다 혼신의 힘을 다했으니 이런 배은망덕이 있어요, 그래. 진짜 성령이 아니면 누가 알겠어요. 성령이 안 오시면.

갈라디아서 2장 21절 한번 봅시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아, 이것은 개인적인 구원을 어떻게 받느냐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께 개인 구원은 하나의 절차고 궁극적인 것은 예수님이 헛되이 죽지 않은 죽음이라는 것을 알리는 그것만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진실이에요. 그것만이 거짓이 아닌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우리보고 믿으라는 거예요. 십자가를 믿으라는 겁니다. 3장 1절,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이러잖아요. 십자가를 누가 방해하느냐? 본인들이 방해하죠.

나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걸 믿습니다, 그거 거짓이에요, 진실이에요? 거짓이죠. 도대체 하나님께서 지키고자 하는 그런 데는 관심이 없고, 천지는 하나님이 창조했으니까 이 완벽한 믿음을 하나님이 인정해주셔서 나를 죽어서 좋은 데 데려가 달라, 이 이야기잖아요. 이거는 누구를 지키는 거예요? 십자가를 지키는 겁니까, 자기 신세를 지키겠다는 거예요? 자기 신세를 지키겠다는 거잖아요.

왜 자꾸 혼자 살려고 해요? 왜 자꾸 혼자 살려고 그러죠? 갑자기 전두환 말이 생각나네. 왜 자꾸 나만 가지고 그래~ 주님께서는 십자가가지고 우리를 푹푹 매일같이 everyday 매일같이 쑤셔대요. “오늘도 십자가 지켰냐?” “안 지켰습니다.” “지켰냔 말이야?” “안 지켰습니다.” 더 쑤시면 학교에서 옛날에 선생님들이 작대기가지고 하는 것처럼 하면 “쌤, 이러면 학교 안 나옵니다.” 그래서 교회 안 나오잖아요. 그 교회는 십자가만 이야기하고, 왜 내 사정은 이야기안하나. 기도 응답도 없고. 자꾸 십자가만 이야기하나.

그 이유가 여기 나옵니다. 나눠드려야죠. 잠시 쉬어가는 시간도 괜찮죠. 이렇게 인원도 몇 명 안 되고 소박할 때는 음악도 한번…. 저번 강남강의는 내가 급해가지고 너무 빨리 끊었는데 오늘은 왠지 또 음악이 듣고 싶네요. 가사를 한번 보세요. 영어되는 사람은 영어가사로….

The water is wide 바다가 너무 넓어
I can't cross over 건너갈 수가 없어요
and neither have I wing to fly 내게는 날아갈 수 있는 날개도 없어요

give me a boat 나에게 배를 한 척 주세요
that can carry to 2인용 보트요 (두 명이 탈 수 있는)
and both shallow row 둘이 같이 노를 저어 건너 갈게요
my love and I 내 사랑과 내가

보세요. 노래가 얼마나 아름다워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바다를 물 있는 바다라 보지 마시고 앞에 거짓만 넘실대는 바다로 보세요.

거짓만이 넘실대는 바다를 건너갈 수 없어요
내가 휙 날았으면 좋겠는데 날아갈 날개도 없어요
어떻게 하느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같이 사랑의 노를 저어가면서 건너갈 수가 있겠죠.
그 다음에 계속,

Oh love is gentle and love is kind
사랑은 참 부드럽고 다정하죠
the sweetest flower when first it's new
사랑이 처음 싹 틀 때는 가장 달콤한 꽃이지만
but love grows old and waxes cold
사랑도 시간이 지나고 차갑게 식으면
and fades away like morning dew
아침 이슬처럼 희미하게 사라져 버려요

(간주는 지나가고)

There is a ship and she sails the sea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하나 있어요
She's loaded deep as deep can be
배에는 짐이 가득 실려 있지만
but not as deep as the love I'm in
내 사랑만큼 가득하지는 않아요
……

여기까지. 아무리 배에 짐이 많다 할지라도 짐보다 더 많은 것이 우리의 사랑이지 않습니까, 하는 그 이야기에요. 이 바다를 누가 먼저 지나갔죠? 우리 예수님이 먼저 갔죠. 이 바다, 거짓만 있는 세상을 지나가면서 예수님은 알았어요. 자기 빼놓고는 아무도 이 악마의 거짓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그러면 천국 백성은 아무도 올 수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아까 갈라디아서 3장 2절에 십자가 이야기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절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이렇게 되어 있어요.

성령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모든 일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이에요, 이게. 그러니까 혼자 끙끙대면서 이 세상을 혼자서 헤쳐가려고 그런 부질없는 짓거리를 하지 말라 이 말이죠. 내가 말씀 지키고 율법 지키고 그래서 하겠다, 그런 짓은 하지 말란 말이죠. 그러니까 성경의 어느 구절도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구절은 단 한 군데도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거짓이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 자신이 우리 위주기 때문에요.

이 십자가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 세 분의 하나님이 동원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그 세 분의 하나님이 오직 주목하는 것은 십자가가 헛되지 않는 거예요. 십자가가 헛되지 않는 것. 예수님의 공로가 헛되지 않는 것. 바로 그러한 취지에서 요한일서가 쓰여진 거예요.

그러니까 야, 거짓말하는 거 빨리 정체 드러내. 숨지 말고 나와, 이 적그리스도야. 적그리스도가 뭐냐? 요한일서 다시 봅시다. 본문 요한일서 2장 22절 하는데 적그리스도는 뭐냐 하면 22절,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나는 하나님 믿는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먼저 하나님 아들 된 셈이 되죠. 하나님을 아버지라 믿는다면. 여기 성령으로 인하지 않고서는 아버지를 아바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고 되어 있다고요. 로마서도 그렇고 갈라디아서에도 나오거든요. (롬 8:15, 갈 4:6)

그러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지, 뭐. 부르면 어떻게 돼요? 성령이 아니고서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다 되어 있으니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 또는 경상도 말로 ‘아부지’ 이렇게 불러버리면 그러면 나는 성령 받은 사람 돼요? 어떻게 돼요? 말씀대로 했잖아요, 말씀대로. 그러면 성령 받은 사람 되는 겁니까?

아들이 부르는 아버지가 아버지에요. 아들 자리에서. 그런데 그 아들 자리를 제치고 현재 내 자리에서 부를 수 있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 하나님은 없어요. 그러면 아들 자리에서 부른다는 그건 성령이 임해야 비로소 부를 수 있는 아버지죠. 성령 없이 부르는 아버지가 아니고, 성령이 있을 때야 나타나는 아버지.

그러면 성령 있을 때 아버지하고 성령 없을 때 아버지하고 그게 다른가? 성령 있으면 ‘아버지~~~’ 막 떨리고 성령 없으면 그냥 성의 없이 ‘아버지’하고 뭐 차이 나는가요? 그 차이는 바로 자기 자신에게 어떤 사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게 십자가가 헛되지 않기 위한 조치에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남을 감사하면서 그렇게 하신 예수님과 아버지께 아버지라 부르는 거예요.

나의 존재 의미의 개시가 나부터 출발해서는 안 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손 못 대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를 뭉개버리고 박살내는, 그걸 구멍 뚫어버리는 십자가, 십자가 끝이 뾰족하잖아요, 그걸로 구멍 팍 뚫어서 내 안에 다른 것이 더 있다는 것을 노출시키는 거예요. 나보다 더한 게 있단 말이죠.

탐험, 모험을 즐기는 탐험가 영화 보면 나오잖아요. 분명히 끝인데 뭔가 또 비밀번호를 입력하니까 분명히 끝인데 그 뒤에 동굴 나오고 동굴이 또 그 안에 숨어들어있죠. 하나님은 우리를 동굴로 사용하는 거예요. 오늘 안양강의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케이블로, 복음을 전달하는 케이블, 아버지 집에 보일러 놔드릴 때 배선 있잖아요, 배선, 성도는 그냥 얼기설기 배선의 연결망이에요.

독자적인 게 없어요. 독자적인 건 예수님만 독자적이고 우리는 독자에게서 흘러나온 연결망, 연결선이라고요. 촘촘한 연결선들이에요. 그러니까 성도끼리 서로 비교한다는 게 성립 안 되죠. 배선과 배선끼리 뭘 비교해요. 배선인데. 그래서 주님 안에서 서로 사귄다는 요한일서의 말씀이 성립되는 겁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왜 인간은 자꾸 거짓됨을 본인이 내부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왜 거짓말을 하고 싶어 하느냐? 욥기 6장 6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사람이 자꾸 구라, 거짓말하는 이유가 세상사는 게 재미가 없어 그래요. 맛이 없어요. 맛은 타인을 속여먹을 때 짜릿한 맛을 느껴요. 남을 속여먹을 때. 그러니까 인생 제대로 맛있게 살려면 직장생활하지 말고 사업해야 돼요. 속여먹을 수 있잖아요. 인간이 자기에 대한 자기의 자부심을 느끼는 경우가 뭐냐 하면 내 말에 남이 속아 넘어갈 때 비로소 인간은 존재감을 느껴요. 먹혀들었어. 그래, 나의 세계는 누구도 침범 못하는 나만의 세계. 나만의 세계가 확보됐어.

이러한 거짓이 그냥 사소한 대인관계에서 대인관계가 깊어지면 같이 증강하잖아요. 하나님 보시기에 그 거짓의 끝모습, 끝물, 어디까지 거짓이 계속 자라나고 있는지는 마태복음 7장에 보면 나옵니다. 아, 그거 보면 참 무서워요. 거짓의 끝모습이. 마태복음 7장 15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아까 질문을 다시 해야겠는데요. 거짓 선지자가 이 본문을 언급할 때 여러분 어떻게 파악할 수 있습니까? 아까 같은 질문인데. 같은 문제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데요. 정답 알려주고 내일 시험 쳐도 다 까먹을 거예요. 정답 미리 알려드렸잖아요. 정답이 뭐였습니까? 나를 헛되이 하는 것. 나를 헛되이 하는 그것이 거짓이 아니고 진실이에요. 나를 헛되이 하는 것.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헛되지 않는 것은 따로 이미 끝장내놨으니까요. 십자가니까요. 예수님의 육신이 하신 일만 헛되지 않아요. 내 육신이 하는 일은 전부다 헛돼요. 자꾸 십자가 얼쩡거리고 십자가 가리지 마라. 주님이 하는 일에 왜 네가 하는 일이 자꾸 얼쩡거려? 나와. 비켜! 사진 좀 찍자, 십자가. 자꾸 앞에 얼쩡거려가지고 짜증나잖아.

거짓 선지자는 결국 뭡니까? 거짓 선지자는 오늘 낮에 안양 강의 때도 했지만 자꾸 우리를 격려해요. 잘할 수 있어. 너 남한테 지면 안 되잖아. 남들 봐. 너는 뭐하고 있어? 저 사람만큼 따라가야 될 거 아니야, 이런 거. 이번에 총선 패배해서 제가 사퇴하겠습니다.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 사퇴했단 말이죠. 그거 진실이에요, 거짓이에요? 거짓이에요. 그런 게 거짓이에요.

그럼 목사님, 거짓 아닌 게 어디 있습니까? 다 거짓이죠. 여기 노래 한번 더 틀어줘요? ‘바다가 너무 넓어 건널 수 없어요.’ 모조리 거짓의 바다에요, 거짓의 바다. 나 좀 알아줘. 나 좀 지켜줘. 나 좀 살려줘. Help me. 전부다 이런 소리만 하고 있다고요. 서로에게. 자기 집에 재산이 20억 있는 사람이 500억 있는 사람보고 나 좀 살려달라는 거예요. 이게 거짓이잖아요. 거짓.

마약을 왜 합니까? 마약을 왜 하는데? 마약, 술, 담배 그거 왜 하는 거예요? 안 무너지려고 하는 거예요. 안 무너지려고. 그런데 그걸로 인하여 무너지잖아요. 인간은 자기를 지키는 것 때문에 자기가 무너져요.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옷을 입는데 비에 젖은 옷만 자꾸 입다보니까 나중에 비에 젖은 바바리부터 옷부터 코트까지 점점 비에 젖어. 지키려는 그 모든 시도가 자기에게 무게감을 더 증강시키는 겁니다.

거짓 선지자는 10분 뒤에 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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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1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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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