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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40408b 부산강의 : [시편]67(51:4)-율법과의 불일치자유게시판시편

20240408b 부산강의 : [시편]67(51:4)-율법과의 불일치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죄를 짓는다고 죄가 되는 건 아니에요. 죄를 지어보면서 진짜 죄와 내 지은 죄와 불일치, 불합치 된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되는 겁니다. 여기서 죄 속에 있는 나와 그리고 진짜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그분 사이에 지금 내 인생에 제3의 요소, 꺾어진 뼈가 들어가야 돼요. 십자가를 경유하지 않고서는 죄와 죽음과 의와 천국, 모든 성신, 성령, 율법 개념, 어떤 개념이라도 인간들은 알 수가 없어요. 그냥 멍청한 거죠.

그 점에 대해서 약간 더 설명을 가미한다면 인간의 자아가 아까 했지만 상세하게 하면, 자아가 뭘 만드느냐? 의식세계를 만들어요. 의식세계는 진짜 세계를 억압을 하고 있다 이 말이에요. 무의식을 억압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허투루 티내는 것, 멋있어 보이는 것, 그 의식세계의 순환구조 안에서 그 흐름을 따라가다가 세월 다 보냄. 그 의식세계의 순환구조에요, 흐름을 따라가는 거예요. 유행 따라 남들 가는 식으로 세월 다 보내는 거예요. 의식세계에서 ~인 체하는 그렇고 그런 세계.

이 의식세계가 무슨 세계냐 하면 바로 의미 세계거든요. 의미가 있다. 진짜는 억압, 꽉 눌러놓고 가짜들의 세계, 망상 세계. 그래서 정신분석학에선 이걸 망상이라 하지 않고, 상징이라 하죠. 가짜, 허위다 말이죠. 태극기가 우리나라 아니잖아요. 그러나 태극기는 무엇을 상징한다? 우리나라를 상징하잖아요. 고 상징.

원래 신체가 진짠데 자아는 신체에서 연관돼 있는 상징물로서 자아란 나. 나는 신체가 아닌데 신체를 대신해서 나라고 신체가 내 거라고 우기면서 살아가는 거예요. ‘너, 왜 나 기분 나쁘게 해?’ 이 전부 다 가짜와 가짜의 대화에요. 만남이고 거기서 해석들이 오고가는 겁니다. ‘너, 나한테 섭섭하게 하면 안 되지’ 이런 거요.

나단 선지자 같은 경우에 ‘앞으로 그런 짓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똑바로 살아’ 이걸 나단 선지자가 하는 게 아니고, 나단 선지자는 진짜 선지자기 때문에 율법이 뭐냐? 율법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불일치하고 있느냐, 율법의 근처도 안 가고 있다는 것을 까발리는 간격과 차이를 드러내는 일을 선지자가 하고 있는 겁니다.

나단 선지자가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게 사랑하는 애지중지 아끼고 있는,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나와 있어요. 3절에, “가난한 자는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저와 저의 자식과 함께 있어 자라며 저의 먹는 것을 먹으며 저의 잔에서 마시며 저의 품에 누우므로 저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일치성을 가져요, 일치성.

주인과 양은 일치성을 갖는데 다윗 너는 율법과 일치성을 갖고 있는지 묻고 있는 거예요. 너는 지금 율법 따로, 너의 욕망 따로 벌어져있다는 겁니다. 그게 다윗이고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라면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로 율법의 취지를 모르고 율법과 벌어진 상태에서 이 자아와 의식세계에 농락당하고 있는 거예요. 죄악 된 세계에서. 그 차이가 벌어지는 겁니다. 이게 진짜 선지자는 나단 선지자요.

그러면 나단 선지자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여기서 다윗이 어떤 고백을 하느냐 하면 성신을 언급해요. 그렇게 되면 율법에서 다윗과 일치가 된다, 안 된다? 안 돼지요. 다윗의 조치는 죽여 버려라. 그러면 다윗은 내 나라에 그런 못된 인간이 있어? 죽여 버려라. 그러면 그 죽음은 무슨 죽음이냐 하면 율법에 의해서 죽는 죽음이어야 되죠.

율법에 네 배나 갚는 것은 네 배 갚으면 그만이에요. 어떤 부자가 자기는 양이 많은데 한 마리밖에 없는 양을 잡았다. 그럼 율법대로 네 배나 갚아주면 되지 뭐. 고급차, 외제 스포츠카 타고 막 달리다 걸리면 어떻게 해요? ‘벌금 내면 되잖아.’ 그거는 인간관계에서 아까 보편적과 개별성은 서로 소통이 돼요. 전체 안에 개인이 있고, 개개인이 모여서 보편적이라는 상위집단, 상위개념을 형성했기 때문에 둘 다 호환이 돼요. 주고받는 게 돼요.

그러나 특이성은 그야말로 특이해서 이 안의 호환성에서 특이성이 안 나옵니다. 따로 있어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문장을 쓸 테니까 이 문장에서 뭐가 특이성인지 알아 맞춰보세요. 목사와 중이 내기 골프를 해요. 진 사람이 개종하기. 이 중에서 특이성이 어디서 나옵니까? 어디에 매여 있는지 보란 말이죠. 내기 골프지요. 둘 다 내기 골프에 미쳐있는 거예요. 내기 골프가 얼마나 최우선적이냐 하면 그까짓 것 종교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

바둑 내기, 화투치는 것, 전부 다 내기에 있지요. 내기하는 것은 어디에 매여 있습니까? 내기를 왜 해요? 그냥 골프 치면 되지 내기를 왜 합니까? 자기가 수에 칠 가치가 없기에 수에 칠 가치가 없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골프는 잘 치잖아. 바둑은 잘 두잖아. 주식은 잘 하잖아. 비트코인은 잘 하잖아.’

어떤 내 행위를 통해서 수치스러운 내 존재가 아닌 그다음 뭐가 된다? 자아, 나. 나에 매여 있는 거예요. ‘내가 비록 돈은 없지만 자식 하난 잘 키웠잖아. 내가 비록 비리비리하고 몸은 아파도 우리 아들 서울대학 갔다.’ 이 이야기를 왜 합니까? ‘내가 이혼녀지만 자식 하나 이번에 카이스트 들어갔다.’ 그 이야기 왜 하는 거예요. 세상을 뭐로 보는 거예요. 내기하는 세상으로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뭐냐 하면 보편성과 개별성, 다시 말해서 인간 속에 끼어있는 상징적 세계, 이 세계에서 누구만이 특이하다? 제발 나만이 가치를 초월할 대단한 가치 있는 자로 좀 나를 알아 달라. 그것을 흔히 쓰는 말로 이렇게 해요. 위로. 이게 위로에요. 에서 저 뒤에 계신 어머니의 아들인 사람 뛰어나오라 하면, 엄마는 하난데 아들이 열댓 명 뛰어나오는 거예요. ‘저 뒤에 계신 분이 우리 엄마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엄마, 나 여기 있어.’

이 세상이 무대라면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법은 그런 보편성에 묻히지 않고 내가 나로 그 가운데서도 기어이 버티고 살아남은 이 개별성의 끈질김, 내 존재의 끈질김을 드러내는 식으로 인간은 생각하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행동합니다. 아무 이유도 없어요. 그냥 내가 있으니까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특이성 얼마나 숨어있냐 말이죠.

여기서 우리가 나단 선지자가 와서 다윗은 뭘 알았습니까? 내가 일치되지 않는다. 무엇과? 율법과 일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러면 일치 안 되는데도 주께서는 일치가 되게 하셨다는 겁니다. 뭐로? 내가 ‘간음+살인=꺾어진 뼈’에요. 뼈가 나왔다는 이 말은 다윗은 완전히 나에 의한 해석, 나의 아이디어에서 나올 수 없는 획기적인 것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이게 뭐냐 하면 다윗의 일 아니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이게 시편 51편의 핵심입니다. 나의 일은 하나님의 일에 보조적이라는 거예요. ‘나는 나를 위해서 태어났다’ 이건 거짓말이에요. 이거는 태어났는데 마귀가 나한테 그렇게 현혹한 거고, 내가 태어난 것은 죄를 짓기 위함이 아니라 죄가 되기 위해서, 내가 죄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거예요. 죄를 짓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죄가 되기 위해서. 이게 선악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와 결국은 연결되는 연결 관계에요.

다윗이니까 다윗에게는 뭐가 돼요? 자아의 일이죠. 그래서 다윗이 나는 아니고 하나님 일이라고 다윗이 말을 못해요. 다윗이 말을 못하니까 다윗이 결과가 되려면 간음하고 살인해서 꺾어진 뼈라 했잖아요. 이 공식(간음+살인=꺾어진 뼈)이 무슨 일이 되느냐 하면 이게 하나님 일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다윗은 이 공식 속에 자기가 들어가면 되는 겁니다.

그 들어가는 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시편 51편 17절, 다 같이 읽어볼까요? “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아하 참 감격스럽지요. 16절에,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율법과 일치되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내가 죄 지으면 안 돼요. 내가 죄와 하나가 돼야 돼요. 그래야 이 방정식이 무슨 방정식입니까? 나의 일의 방정식이 아니고, 누구 일? 하나님 일의 방정식이에요. 주님께서 살인케 하셨고, 주님께서 간음케 하셨고, 주께서 스스로 뭐가 됐다? 꺾어진 뼈가 되는 이 방정식에 다윗은 끼어들 수가 없어요.

끼어들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누굴 보내느냐 하면, 하나님이 뭐 이쁘다고 나단 선지자를 보내느냐 말이죠. 이 뼈, 자아 없는 상태, 자아 이전의 상태, 자아의 근원적인 진짜 토대, 그냥 꺾어져도 아무 소리 못하는 상태, 되어진 모든 상황과 모든 변수들이 나로 하여금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언어 이전의 세계를 누가 이것을 다윗에게 보여줬습니까?

말이 있어도 자기 죽음에 대해서 반항 못하고, 저항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도 못하는 그 세계를 누가 보여줬습니까? 우리야 장군이죠. 우리야 장군은 충실했어요. 우리야 장군이 전쟁에 나갈 때에 요압이 일부러 우리야 장군을 쪼다 만들어놓고 ‘빠져, 빠져’ 작전상 후퇴해놓고, ‘우리야 장군에게만 이야기하지 마’ 자기들은 다 빠지고 우리야 장군만 덜렁 있으니까 성에서 쏘는, 사무엘하 11장 암몬 자손들이 이건 뭐 표적이 있네. 양궁에서 10점 만점 표적 같은. 막 쏘는 거예요. 쏘니까 화살이 집중하지요. 그러니까 죽은 거예요.

고의가 아닌 척하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했을 때에 우리야 장군 입장에서는 내가 왜 죽어야 되는지, 왜 다윗이 내게 휴가를 보냈는지 온통 우리야 장군의 관심사는 뭐냐 하면 이거는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전쟁에 이스라엘은 할례 없는 민족을 할례 있는 우리가 이겨야 된다는 그 생각이 인간들 보기에는 쪼다 같고 바보 같은 생각이고 하나님 보시기에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전형적인 모델, 샘플이 되는 거예요.

‘사람이 요령이 있어야지’ 이게 인간세계잖아요. 그런데 우리야 장군은. ‘내가 다윗에 맞아죽어야지. 다윗에게 내 아내 빼앗겨야지’ 그런 생각이 없어요. 나에게 이런 상황이 주어질 때까지 그 변수는 그걸 아는 게 자기 소관 아니에요. 자기는 그냥 하나님만 생각하면 그만이에요. 누가 사용했습니까? 하나님의 일에 우리야 장군을 집어넣은 거예요. 사용한 거예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죽은 거예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내를 빼앗긴 거예요.

자기 생각 이전에 아내 빼앗겼고, 그 사태의 연속적인 여파가 자기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적들이 나를 죽였다, 적의 화살이 나를 죽였다? 아니요. 다윗이 죽인 겁니다. 다윗이 죽였다? 아니요. 누가 죽인 겁니까? 하나님이 죽인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언어 이전에 세계, 다시 말해서 우리야 장군은 말할 필요도 없고 말한 이유도 없어요. 왜냐하면 우리야는 없는 데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똑같아요. 없는 데서 태어나고 죽은 데서 잠시 사는 거니까. 없는 데서 태어난 거예요.

그래서 우리야는 없음과 자기 죽음을 통해서 아무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죽은 것이 아니고 진짜 인간세계에 없는 분, 진짜 인간세계의 특이한 죽음, 이 둘을 합치면 없는 데서 있게 하고, 죽은 데서 살리는 이걸 합쳐버리면 로마서 4장의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야의 만두 속이 되고 우리야는 뭐냐? 만두 피가 되는 겁니다. 이걸 기념해서 다음에 만두 만들어볼까요? 속을 적당하게? 아니요. 꽉꽉 피가 터져버릴 정도로 속을 집어넣어야.

이 꺾어진 우리야와 관련된 것을 여기 우슬초라 돼 있지요. 시편 51편 7절. 우슬초에 대해서 우슬초가 전체 율법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지금부터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우슬초가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출애굽기 12장 22절에 나옵니다. 유월절이에요. 유월절 날 유월절 양으로 잡고, 아까 공부한 것도 다시 기억되지요.

유월절 양 할 때 사람들은 유월절 양의 피를 문지방과 문설주에 바르니까 천사들이 그냥 통과했잖아요.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상당히 고맙다고 여기지요. 고마우면 안 돼요. 고맙다는 것은 아직까지 자아가 있다는 거예요. 그 양에 본인이 합치돼야 돼요. 양 덕분에 살면 안 돼요. 그건 종교입니다. 그건 지식이에요. 내가 그 양 속에 들어가야 돼요. 그러니까 예수 안에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양 속에.

그래서 22절에 보게 되면,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이렇게 돼 있지요. 그러니까 우슬초의 기능이 역할이 뭐냐? 피를 적셔서 페인트칠하는 역할이에요. 페인트칠하면 피막이죠. 이 인간세계, 인간들의 사회, 인간들의 공동체, 또는 보편적 의미의 세계에 피막을 형성하는 거예요. 표면을 형성하는 겁니다. 여기에 우슬초가 등장하는 거예요.

그럼 우슬초의 존재는 율법 안에 있는 거예요, 인간세계 안에 있는 겁니까? 어느 쪽에 있어요? 율법 안에 있는 우슬초죠. 율법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니까. 피만 내선 안 되고 피를 바를 때 손가락으로 바르면 안 되고, 우슬초까지 동원해서 피를 발라야 된다. 피를 바르니까 그 죽음이 찾아오는, 선악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그 죽음을 실해에 옮겨야 될 천사들이 그 피막 때문에 그걸 그냥 넘어간 거예요.

그 말은 율법이 완성이 돼 버리면 의가 되고, 의가 있는 곳에는 축복이 있어요. 저주하면 저주 건더기가 있어야 되는데 저주가 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율법이 완성할 경우에는 심판이나 저주가 있을 리가 없다니까요. 수가 없어요.

이스라엘 백성, 이스라엘 공동체, 공동체라고 제가 표현한 이유는 여기서 출생하기 때문에 그래요. 공동체가 인간의 언어로 소통되는 그 관계성을 이야기하거든요. 인간이 여기서 태어났다 하면 그 들려오는 신체는 갖고 있지만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왕왕거리는 언어들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잡소리가 많아요. 잡음이 많아요. 야옹야옹 하는 다른 잡소리가 많아요. 그래서 욥기에 보면 욥이 말이 많아. 1장부터 42장까지 욥이 그렇게 말이 많아요. 잡소리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 말한 내용은 뭐냐 하면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 신체가 왜 아픕니까? 자아가 말로서 자기 신체를 지켜보려고 방어해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아까 했지요. 하나님은 수비적이다, 공격적이다? 공격적입니다. 하나님은 공격적인데 뭘 앞장세워서? 율법을 앞장세우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착한 것 내놓으라는 게 아니라 율법 내놓아봐라. 율법과 네가 합치되어서 완성했다는 것을 내놔봐라. 인간은 못 내놓잖아요. 하나님께서는 양을 대신 잡아서 피를 내게 되면 이게 율법의 완성으로 해서 죽음의 천사가, ‘이 집은 끝났다, 가자. 이 집은 아니래, 가자.’ 그걸 passover 그냥 패스하는 거예요. 건너뛰는 것, 사망에서 생명으로 그냥 안 보고 뛰는 거예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장 24절 말씀. 보지도 않아요. 네 똑바로 안 해, 멱살 쥐고 이것 아니에요. 하나님은 인간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죄에 있기 때문에 죄에 예속돼 있기 때문에 우두머리 되는 죄만 하나님과 문제 해결됐으면 네가 어디서 뭐하면 어떻게 살든지, 희미한 등불 아래 하다가 지금은 치매 걸려 있지만, 옥경이.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치매 걸렸는지 뭐하는지, 여러분 묻지도 않는다니까요.

나를 문제 삼는 것은 나에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럴싸하게 보여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나를 망쳐요.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나를 무너지게 만든다니까요. 나를 돋보이게 하는 게 뭐냐 하면 수요일에 하는 총선 투표. ‘저 어때요? 저 어떻습니까? 표 주세요.’ 왜 줘야 되는데? 네가 뭔데? 고양이학 고양이한테 투표하고. 그 세계 속에 인간은 태어났다니까요. 어릴 때 학생회장하려고, ‘제가 된다면 학급에 꽃꽂이를 해놓겠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떡볶이 파티를 열겠습니다.’ 이래서 애들부터 벌써 운동권 시켜서….

율법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이미 자체적으로 자기는 이 정도하면 착하다는 반열에 속했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율법에 대해서 일치성에 관심조차 없는 거예요, 인간은. 이렇게 잘난 척하다가 율법까지 알았으니까 말씀 알았으니까 더 기고만장하겠지요. 여기 우슬초라 하는 것은 반드시 꺾어진 뼈와 연관되어야, 피 흘린 쪽이 연관되어야 우슬초도 같이 일치성으로 완성이 된다고요.

그다음에 아까 출애굽기 12장 22절 봤지요. 그다음에 레위기 14장 7절. 점점 율법이 추가가 돼요. 추가가 되면서 율법의 내용의 진보와 발전이 이뤄집니다. 어디까지 가겠어요? 예수님의 십자가까지 가도록 계속 흐름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율법은 자체적으로 흐름이 발생돼 있어요. 그 흐름에 뛰어들게 이끌림을 받은 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이고요. 율법이 십자가를 향하여 자체적으로 달려갈 때 거기에 걸려든 자들이 누구냐? 이스라엘 백성들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추가적인 율법이 주어지는 겁니다.

우리 생각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참 힘들겠다,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 남의 이야기하지 마세요. 성도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혹시 행여나 구원될까 싶어서 가지요. 성도는 이미 다 이루었다, 구원된 상태에서 율법의 진척과정을 그대로 구원된 우리에게 적용시켜버려요. 그래야 왜 피를 흘려야 했지, 왜 내가 천국을 가게 됐지? 그 이유를 살아가면서 그걸 계속해서 발생시킵니다. 다윗처럼 중첩된 상태에서. 죄와 의, 완성된 죄, 완성된 의가 함께 하면서 죄와 의 사이에서 우리들이 끼어있는 거예요. 우리의 자아가.

레위기 14장 7절은 이런 이야기에요. 문둥병 환자 나옵니다. 문둥병 환자는 저주의 구체화, 저주의 가현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제일 기피하고 싶은 인물 문둥병. 문둥병의 특징은 인간의 신체성에서 인간다움이 무너지는 양상을 노골적으로 다 노출돼 있다는 특징이 있어요. 내부의 병이 아니고 외부로 드러난 질병이 문둥병입니다. ‘어딜 봐서 사람이야? 괴물이야 사람이야’ 이게 문둥병이에요.

그래서 인간의 신체는 저주를 못 이긴다. 저주의 궁극적인 모습은 문둥병을 통해서 너희들이 직접 경험해라, 해서 이스라엘에 문둥병이 발생하도록 했어요. 진짜 인간 모습은 문둥병이 진짜 네 모습이다. 그러면 문둥병이 최초에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냐? 모세입니다. 모세가 멀쩡한 손을 자기 품속에 들어갔다 나왔지요. 자기 내부에서 외부로 손을 이동시킵니다.

손이라 하는 것은 외부적 요소지만 일단은 네 내부로 들어갔다 나와 봐라. 네 품속으로. 품속은 외부에서 안 보이는 곳이고, 은밀한 곳이고, 자기 본질이 있는 곳이죠. 모세는 주님 시키는 대로 간단하게 넣었다 뺐는데 손이 허옇게 되었어요. 문둥병이 되었습니다. 현실입니다. 모세한테는 현실이에요. ‘이거는 가짜야. 이거는 그냥 시범 보이는 거야.’ 이게 아니에요. 진짜로 문둥병 된 거예요.

‘아아, 나 끝났구나.’ 드디어 모세의 자아로서는 끝난 거예요. 모세의 자아는 문둥병이 모세다. 나는 ~에서, 나는 문둥병이다, 이걸로 끝나는 거예요. 인생 소풍하듯이 가야 되겠네. 귀천 갈까, 이런 식으로 나오겠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명령합니다. ‘다시 넣어봐라.’ 다시 넣어보니 멀쩡했어요.

자, 여기서 문제 나갑니다. 모세 내부가 멀쩡합니까, 아니면 문둥병입니까? 문둥병이죠. 그게 바로 십자가로 구원받은 자의 자세가 이래야 된다는 거예요. 나는 십자가로 의인 되었다는 게 아니라 의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는 관계에서 의고, 진짜 나는 여전히 죄인 중에 괴수라는 사실, 이걸 유지해줘야 이게 하나님의 일이 돼요.

아까 처음 시간에 뭐라 했습니까? 다윗의 일이 뭐로 변한다? 하나님의 일로 드디어 드러나는 것이 시편 51편의 핵심이라 했지요. 다윗의 일은 하나님의 일의 일부가 된 거예요. 다윗은 기존의 이스라엘의 일부가 아니고 하나님이 생각한 이스라엘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시작과 끝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시작은 모세니까 모세가 문둥병자니까 이스라엘은 다 모조리 문둥병자고, 그 문둥병자가 피 흘림으로 치료되면서 등장하는 도구가 뭐다? 우슬초에요.

우슬초가 어디에 등장하는가? 제사장이 진찰해보니까 다 나았어요. 다 나았을 때 이게 율법이 없으면 하나님의 언약이 없으면, ‘그래 내가 한 때는 참 더러운 인간이지.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깨끗케 되었어’ 이렇데 돼버리죠. 이거는 자아에 대한 자기 자랑이죠. 율법의 완성을 드러내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요. 이거는 신체도 아니고 자아에요. 건방진 자아. 물론 한 때 다윗도 그렇게 생각했지요. ‘내가 이스라엘 왕이다. 내가 없으면 전쟁이 안 돼.’

그런데 다윗이 자기가 간음죄와 살인죄 하게 된 것도 뭐 때문에 그렇습니까? 전쟁 때문에 그렇잖아요. 암몬과의 전쟁. 부하인 우리야 장군이 다윗이 성 안에서 어슬렁거릴 때 진정한 다윗의 기능을 다윗이 못하고 우리야 장군이 수행을 한 거예요. 요압은 한 패고 우리야 장군이 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야 장군이 아주 다윗의 본질을 드러내는데 적절한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겁니다.

다윗을 교체할 수 있는 꺾어진 뼈로서 우리야 장군만한 자가 그 시대는 없었다. 그 시대의 예수님, 그 시대의 십자가가 바로 우리야 장군이에요. 물론 우리야 장군이 예수님이란 뜻은 아니에요. 왜냐? 우리야 장군의 육적인 요소와 주님의 영적인 요소가 중첩돼 있으니까. 자기는 이유도 모르고 뜻도 모르고 죽었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야 장군을 그 시대의 십자가를 보여주는 사람으로 사용했을 뿐이에요.

레위기에 나오는 우슬초라 하는 것은 모든 이스라엘은 항시 문둥병자 된다 할지라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들 수 있는 권한은 없다. 왜? 역시 그들도 수에 칠 가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언약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용하고 활용했을 뿐이에요. 오늘날 여러분 같은 성도는, 이 말을 함부로 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십자가 덕분에 나는 만두피인데 내 속에 십자가 들었다. 십자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성령을 통해서 구원해주신 거예요. 그런 겁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 오후 설교 때 기도할 때 이런 기도했어요. 복음이 안 나오면 사람이 아니라고. 내 아들 서울대학, 그런 것 좀 자랑하지 말고. 내 아들 삼순데 또 떨어졌다. 그런데 복음 나오더라. 물론 그런 걸 자랑, 삼수한 걸 자랑 굳이 해야 되는지 약간 문제됩니다만 세 번 떨어졌는데 복음이 나오더라, 그걸 대외적으로 자랑할 엄마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그러니까 대구강의에 의하면 엄마가 믿음 없는 거예요. 그 엄마에게 세 번 떨어진 자식을 줬느냐? 엄마 믿음 없는 걸 티내기 위해서 그 자식 준 거예요.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산과 자식을 줬느냐? 우리가 얼마나 믿음 없는지 티내기 위해서 재산과 여러 가지를 내 거다, 이런 식으로 주신 거예요. 그것도 감사하세요. 집에 다들 25억 있지요. 감사하세요. 부동산 한 십만 평 있잖아요. 빌딩 서너 채 있지요. 다 감사하세요. 내가 얼마나 죄인이면서도 죄와 일치되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다음에 한 군데 더 본다면 민수기 19장 18절입니다. “정한 자가 우슬초를 취하여 그 물을 찍어서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

아까 모조리 문둥병자라고 그렇게 했다 했지요. 여기 민수기 19장 18절은 한 수 더 나갑니다. 모든 인간들이 더러운 인간, 문둥병이든 멀쩡하든. ‘멀쩡해? 더러워. 문둥병보다 더 못한 저주받은 더러운 거야.’ 더러운 것을 만졌을 때는 여기 우슬초 동원됩니다. 흐르는 물과 함께 찍어라.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 민수기 19장, 레위기 14장 이런 이야기가 그 토대가 뭐냐? 출애굽기 12장 22절 이야기에요. 유월절 이야기에서 파생된 거죠. 네가 양을 잡지 말고 네가 너를 잡아라. 너를 양이라 하고 잡아버려라. 양 자체가 중복돼 있으니까. 양 자체는 동물이잖아요. 동물이니까 육이죠. 흙에서 만든 육이죠. 양 자체가 중복돼 있어요. 하늘의 요소와 땅의 육적 요소가 중첩되듯이 너 이스라엘이냐, 너 성도야? 그럼 너도 중첩된 거예요. 나는 육신이고, 나는 영이고 중첩된 겁니다.

그러면 불신자는 어떻게 돼요? 육신만 있을 뿐이에요. 죄가 다스리는 육신. 물론 영적 요소도 있지만 그건 악마의 지배를 받고 있지요. 거룩한 영이 아니지요.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누굴 언급하느냐 하면 성신을 언급해요. 성신은 뭐냐? 신은 신인데 어떤 신? 성스러운 신, 거룩한 영이에요. 거룩한 영이 등장합니다.

다시 시편 51편 돌아가 봅시다.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8절) 7절에,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처바르는 거예요. 내게다가 우슬초로. 뭘 발라서? 피 발라서. 피로 페인트칠하는 겁니다. 007영화에 첫 번째 나온 영화가 에요. 그 영화에서 여자에다 죽일 때 황금 페인트칠해서 세포 숨 막혀 죽이는 장면 있다고요. 주께선 골드핑거가 아니고 블러드(blood)핑거, 우슬초로 피를 발라버리는 거예요. 우리 육신의 피막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가 되게 만들어요.

우리는 피의 가현체, 불신자는 악마의 가현체. 그래서 우린 그걸 즐거워하는 거예요. 피라는 것은 예수님을 말하는 게 아니고 죽은 예수님이죠. 아기 예수가 아니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에요. 고생하신 예수님이 아니고 고난 받는 예수님이에요. 고생하신 예수님은 남들에게 밉상 받은 예수님이고,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것은 고난의 예수님이에요.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거예요, 아들이.

아들이 아버지에게 버림받는다는 것은 독생자거든요. 사랑하는 독생자가 버림받은 것은 아버지가 자체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내버린 거예요. 이거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 사이의 간격, 차이를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차이에서 주님이 나옵니다. 그러면 거기서 주님만 나올 뿐만 아니라 뭐냐? 성신도 성령도 나와요. 버렸으니까 다시 찾는 거죠. 이것은 새 창조. 새 창조가 언급돼 있습니다. 이 점을 설명해줘야 되겠어요.

아까 창조에 대해서 창조란 죄를 짓기 위해서 창조된 게 아니고 죄가 되기 위해서 창조했다. 그러면 이 창조 행위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창조되잖아요. 만물을 새롭게 하는 근거가 뭐냐?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을 새롭게 하는 자체적인 작업을 두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자신이 새롭게 되는 그 여파가 세계 창조에요. 재편하는 거죠. 개편하는 것.

어제 주일 낮 설교에서 성도가 인간의 자리에서 어느 자리까지 올라간다 했습니까? 주의 자리까지 올라가죠. 왜 인간이 건방지게 주의 자리까지 올라가죠? 왜 올라가야 돼요? 그걸 시도한 존재가 있었어요. 누가? 사탄이. 그게 떨어졌으니까. 원래 천사는 결속력으로 움직여요. 여럿인데 하나 같이 움직여요.

그게 에스겔 1장에 보면 천사들의 그룹이, 그룹이란 이름의 그룹이 있어요. 이름 자체가 그룹인데 집단을 형성하고 있으면서 집단의 특징이 하나 같이 움직여요. 발에 바퀴가 있어요. 그처럼 천사의 반란이 있으면 안 돼요. 천사의 반란이 있었잖아요. 사탄이. 그러면 하늘나라는 어떻게 돼요? 재편돼야 되고 개편돼야 돼요.

다시 재편될 때 어떻게 하느냐? 하나님의 아들을 주의 자리에 올려 보내서 이제부터는 천사들이 주님의 독생자를 섬기는 그런 천사 그룹으로 재편해가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 사탄으로 말미암아 훼손된 부분이 뭐냐? 인간이 범죄하게 됐잖아요. 범죄한 그 부분도 재편돼요. 범죄하지 않고 의롭게 되는 사람들을 그 천사가 섬기는 주의 자리에다 합류시켜버려요.

합류시킬 때 그 성도의 특징은 뭐냐? 천사들이 하나 같이 결속돼 있잖아요. 그 결속성을 보여줘야 돼요. 새로운 성도들의 집합은. 성도는 전체지만 뭐 같이 움직인다? 하나 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전부 다 하나 같이 움직이려면 나라는 개성은 날아가고 주님의 지시에 따라서 가면 가고 오면 오나이다, 하는 천사들이 지시와 동일한 지시로 움직이는 그 세계가 재편된 하늘나라입니다.

그게 시편 51편에서는 이렇게 예언돼 있지요. 18절에 보면,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예루살렘 성은 사람들이 주민들이 있더라도 예루살렘 성에 하나밖에 없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 성전입니다. 그 성전을 신약에 보면 하나의 성전을 위해서 여러 명이 여러 성도들이 하나의 성전을 이룹니다. 성도가 열 명이라고 성전이 열 개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성전이라 하는 것은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이기 때문에 세상적으로 여러 곳이라도 진짜 계신 곳은 주의 이름 그 자체에 있지요.

그럼 다른 건 뭐냐? 시편 84편에 나는 성전의 문지기로 있어도 좋사오니. 참새도 제 집을 짓고. 참새가 성전에서 제 집 짓는다고 참새 집입니까? 주의 이름이죠. 성도가 성전에 하늘나라 간다고 자기 집입니까? 그런 참새는 뺨 맞아요. ‘나가!’ 제비도 새끼줄 보금자리를 얻나이다. 보금자리 얻더라도 그건 주의 집이죠. 내 집이 아니고 주의 집이에요. 이름 바꾸기 해야 돼요.

인간의 신체, 인간의 자아가 없다가 아니라 있어요. 있는데 인간의 신체는 인간의 자아는 인간의 신체에 결합된 누적된 과거가 집대성되어 자아를 형성해요. 인가의 자아는 자기가 살아오면서 했던 모든 감각들이 다 뭉쳐져 있어요. 이게 자아에요. 인간의 일이에요. 다윗이죠. 하나님은 다윗의 일을 뭐로 바꿨어요? 하나님의 일로 바꿨지요.

그러면 내가 살아오면서 겪는 고초, 각가지 경험들, 많은 변수들 인생, 누구 집에서 태어나고 어디서 살고 용두리에서 살고 모든 일이 천국에서 보면 다 누구 일입니까? 주께서 뜻이 있어서 태어나게 하신 거예요. 구약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가? 내가 엄마 잉태할 때부터 출발했다는 거예요. 예레미야 1장에 나와요. 1장 5절,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현실세계와 그 바깥의 세계 경계선에 선택이 있지요. 하나님의 택한 작용이 현실세계에 나오면서 비로소 구체화되고 알려지는 겁니다. 성도는 신약에 가면 이것보다 더 길어요. 아예 창세전이에요. 창세전부터 우리가 구원되는 이유가, 예수님이 창세전부터 계신 분이기 때문에. 계획 잡은 것이. 이게 언약이거든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창세전부터 이미 계획 잡힌 게 있는데 그 계획 잡힌 것 중에 사랑하기로 작정된 자도 창세전부터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자아라 하는 것은 사실은 아버지에서 예수님의 자아, 그 자아성 안에 그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그러한 경험들, 감각들, 과거의 체험들, 이런 것을 주님만을 섬기기 위한 필요한 인생살이를 우리 성도가 태어나면서 지금도 체험하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멸치 해먹으면서 주께서 이것도 주셨네, 뭐 이런 식으로 하게 하지요.

그래서 시편 51편은 다 끝난 거예요. 그래서 성신을 주셔서 나로 하여금 바꿔치기해 달라. 창조로 하여금 새로운 창조가 내 죄 많은 마음에 새로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창조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그게 성신 담당입니다. 성신은 율법이 완성될 때 성신이 활동하거든요. 더 이상 나는 율법에 대해서 불일치입니다. 일치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일치하시는 분이 나로 하여금 그 일치했던 능력, 창조의 능력을 내 안에서 발휘하옵소서. 다만 제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더럽고 상한 심령, 문둥병자 더러운 것을 만진 시체를 만진 시체와 일치되는 이 마음밖에 없으니까 주께서 창조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왕으로서 이스라엘이 했던 거거든요.

요구해서 벌어진 것이 하나님 일이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왕을 위해서 이스라엘 만든 게 아니고 이스라엘 위해서 왕이 있기 때문에 나한테 일어난 일을 나와 똑같은 경우를 복제를 해서 예루살렘에 성을 쌓으소서. 꺾어진 뼈로 인하여 만들어지는 새로운 이스라엘을 창조되게 하옵소서. 그게 바로 시편 51편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가 시작은 내 자아를 내 개인적인 자기 방어기제, 잘난 척으로 시작하다가 성령이 거기 안에 제3의 요소로 꺾어진 뼈로 뛰어들어서 그것마저 내 일이 아니고 주의 일인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창세전의 일에 대상이 되어서 관여하게 되어서 그 벌어진 실제적인 현상으로서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서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서 내 일만 나오게 하지 마시고 주께서 다 이루심이 계속해서 매사에 튀어나오는 언약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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