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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22장 3절 (유월절의 의미) 240305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22장 3절 (유월절의 의미) 240305b-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첫째 시간에 이야기했듯이 막혀있다. 그 언약궤를 덮고 있는 그룹이 바로 창세기 3장 24절에 생명 가는 길을 인간들이 오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오지 못하도록 단절시키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예수 믿으면 되지 않겠느냐? 예수님도 짤렸는데요. 예수님도 짤렸잖아요 버림받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 같은 경우에는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면은 여기 로마서 8장에 보면 “내어주사”라고 되어있어요. 내어주사. 짤리기는 짤렸는데 예수님이 그 사탄에 의해서 죽어서 인간의 모든 약속은 엉터리라는 그 내용, 그 내용이 하나님께서는 고스란히 회수를 하겠다는 거예요 그 내용을. 어떤 인간도 천국에 오지 못하는 그 내용을 버리는 게 아니고 그 내용이 구원의 근거가 되게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이걸 가지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이야기해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거예요. 죄인이 없으면 예수님의 주 되심이 성립이 되지를 않아요. 예수님께서 죄인과 함께 되셔서 죄인과 함께 버림을 받을 때 그 버림받았다, 아버지로부터 짤렸다 그게 유일한 구원의 근거가 돼요. 약속 성취가 되요. 그런데 이슬람의 알라신은 뭡니까? 이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냥 막 최선을 다하여 주의 뜻이라고 하면서 주권사상 있잖아요 개혁주의에. 그냥 정성을 다하여 하루에 5번씩 기도하고 이러잖아요. 여자는 수건 뒤집어쓰고.

신약에서 사도 바울은 그걸 십자가로 이야기하면서 그걸 가지고 육이라고 합니다. 그게 육이에요. 육은 요한복음 3장에 육은 뭐다? 육은 육이요 딱 같은 단어를 이렇게 쓸 때 거기에 어떤 의미가 담기는지 알 수가 없지요. 육은 육이요. 육은 육이지 그럼 육은 육이요 이게 무슨 뜻이냔 말이죠. 안 된다 짤렸다 소용없다 그런 뜻이에요. 다시 말해서 육이 아무리 분투 노력해도 영이 될 수 있다? 없다? 막혀있으니까. 막혔다는 걸 어떻게 아는데? 예수를 통해서 보여줬잖아요. 막혀있다고. 하나님 아들도 짤렸는데 인간은 말할 것도 없이 짤리지요. 못 들어가요.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통해서 아는 것은 바로 들어갈 수 없는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지요. 인간은 못 들어가는데 못 들어가는 나라가 천국이라는 사실. 그럼 인간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는 뭐다? 모조리 다 사탄의 작품이라는 겁니다. 이사야 52장 3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값 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속량되리라” 인위적으로 뭘 할 수 있는 것을 차단시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한다 그런 뜻이고 고린도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죠 지식이 아닙니다. 이게 지식이 되면 안돼요. 왜 지식이 되면 안 되는가? 그게 능력이 되는 이유가 뭐냐? 19절에 나옵니다.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라고 되어있어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요 이런 뜻입니다. 지식은 아니라고 했지요. 지식은 아니고 지식 대신 뭐가 나옵니까? 능력이 된다는 말은 인간 세계의 인간들이 지식을 할 때 이 지식은 어디서 왔는가? 자기가 혼자 터득한 것이 아니고 인간을 둘러싼 이 환경 자체가 인간에게 지식을 제공했다는 겁니다. 인간 세계는요 빈 진공상태에 놓여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우리는 여기 왔다갔다 왔다갔다 하면서 의미 체계 안에 이미 놓여있어요. 소위 똑똑하고 지혜롭고 총명한 자들에 의해서 계속 생산돼있는 의미와 그리고 약속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꽉 차 있는 것이 바로 뭐다? 우리가 놓여있는 환경이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인간의 지식은 혼자 터득한 것이 아니고 환경에서 주입된 거죠. 얻어진 겁니다. 학교 교육도 얻어진 거예요. 그런데 이 환경 속에 누가 뛰어들었습니까? 예수님도 뛰어들었잖아요. 예수님도 뛰어들었지요. 그러니까 여기 예수님 뛰어드니까 여기 누가 동원했느냐 하면은 숨어 있는 영, 사탄이 동원해가지고 사탄이 인간 세계의 신이니까 신이 동원해서 설치니까 모든 인간은 갖고 있는 가진 모든 윤리와 도덕과 성실함과 종교성과 함을 총동원해서 그게 누구 공격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까? 사탄이 그렇게 했지요. 쭉 하니까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예수님이 죽었잖아요. 여기서 죽었다는 것은 뭘 흘렸다? 피를 흘린 거예요. 예수님이 피를 흘린 거예요. 벌써 인간과 예수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거예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거예요. 의도적으로. 인간 존재 자체가 주님 존재와 충돌하게 되어있어요. 베드로도 마찬가지고 다 마찬가지에요. 충돌하게 되어있다 이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의 육에 뭐가 왔습니까? 성령이 오셨잖아요. 성령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부활이 되어버리면 예수님의 육은 무슨 육이 되느냐 하면은 영이라는 이름의 육이 돼요. 영이라는 이름의 육이 돼요. 육이 있고 영이 있는 게 아니고 영이라는 이름의 육이 돼요. 이거는 인간의 육하고 달라요. 인간의 육은 죄인 된 육을 말하고요 더러운 육이고 예수님의 육신은 영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럼 예수님에게 속한 자는 어디에 속한? 영적 사람이고 예수님의 영이 없는 사람은 성령 오지 않은 사람은 육적 사람이 된다고 해서 고린도전서 2장에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영의 일을 받지 아니한다” 되어있어요. 받지 아니한다는 그 뉘앙스가 묘하기 짝이 없어요. 열심히 노력하면 안 받는다가 아니라 일부러 영은 육적인 인간들을 기피한다는 뜻이에요 이게. 너 까짓 것 구원받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 너는 인간의 육신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해서 인간은 기계잖아요. 죄의 종, 그러니까 지옥 갈 거냐? 천국 갈 거냐 권한은 십자가 사건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고유 권한이에요. 양이냐 염소냐? 인간 하기 나름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고 일방적으로 한쪽은 저주받기로 선택하고 한쪽은 구원받기로 선택해버린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인간이 이의 달고 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됩니다. 모든 인간은 사탄에게 속하고 사탄은 예수님을 죽임으로서 이 세상에 구원받을 존재는 존재하지 않아요.

구원은 예수님의 육신만 구원받습니다. 그걸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고 두 자로 하면 그걸 ‘교회’라고 이야기해요. 또 다른 말로 하면 ‘성전’이라고 이야기하고. 공통점이 있다. 몸, 교회, 성전 공통점은 다 같이 성령이 함께 있다. 주의 부활한 영이 함께 있다는 겁니다. 주님의 영은 십자가 지고 난 뒤에 우리에게 온 거예요. 오게 되게 되면 뭘 아느냐 하면은 이런 환경에서 우리는 죄인이 되면서 성령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이 되신 예수님과 성령께서 합류가 돼요. 합류가 되는데 그냥 합류라 하면 세례를 말하잖아요. 여러분들이 아는 식으로 쉽게 이야기하는데 이걸 더 알기 쉽게 말씀드릴께요. 창세기에 보면 창세기 2장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뭘 시키느냐 이름을 지으라고 해요. 자, 아담 이름은 하나님이 지었고 이름 받은 아담이 동식물 이름을 짓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3장에 들어가면 아담이 죽습니다. 죽을 때 죽는 이유가 뭐냐 하면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라고 해요. 그럼 하나님의 일의 일관성이 뭐냐 하면은 그 이름을 자기에게 이름을 주신 분 안에 인간의 이름이 있는 거예요. 이걸 예수님이 경유를 한 겁니다. 예수님이 경유를 한 거예요. 예수님이 죄 있는 육신으로 오셨기 때문에 마땅히 썩어야 마땅한데 이게 썩지 아니함으로 썩지 아니함이 되는 것은 예수라는 이름이 지닌 그것이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한 이름이기 때문에 죄인을 건진 이름이기 때문에 이쪽 아담이름에서 예수 이름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아요 그것 때문에. 바뀌게 된다고요.

이런 이야기하면 여러분 또 골치 아프기 때문에 제가 또 쉬운 예를 들겠습니다. 어떤 두 사람이 내기 바둑을 둬요. 내기 바둑을 두는데 내기가 뭐냐 하면은 이기는 사람한테 자기 이름을 말하기에요. 어떤 왕이 있는데 왕이 자기 여자 부하 직원하고 바둑을 뒀어요. 이름이 기대령이에요. 바둑 두는데 그때까지 부하 기대령으로 이해하지 본 이야기는 안 해요. 그런데 청나라 스파이로 갔다가 돌아와서 바둑을 둡니다. 내가 기어이 바둑을 이겨서 이름을 이야기하게 하리라. 바둑 한번 두자! 둡니다. 바둑전문가한테 이길 수가 있어요? 못 이기잖아요. 세작이라는 드라마 마지막에 보면 바둑과 관계없이 자기 이름을 말해요. 임금님 제 이름은 강희수입니다. 이제 제 이름을 강희수로 불러주세요 하고 이름을 알려요. 이것은 뭐냐 하면은 자기 이름을 이제는 본래 이름을 주신 그분에게 도로 갖다 바치는 거예요. 갖다 반납하는 거예요. 반납할 때 그 모습이 뭐냐?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표현을 하면서 반납을 하는 거예요. 왜? 흙이기 때문에 그래요. 흙. 사람인데 죄를 짓고 보니까 사탄이 인간 세계에 개입토록 하나님께서 허락해서 결국 인간으로 하여금 흙이 되는데 자기 백성은 흙에서 멈추는 게 아니고 먼저 흙에서 육신에서 영적, 부활의 영이 되신 예수님이 하신 스케줄대로 되어가는 절차를 따라서 흙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는 백성 되는 그 과정을 예수님이 이루신 그 능력에 의해서 십자가의 능력에 의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사람이 누구냐? 성도입니다. 성도에요.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32절 33절 누가 읽어보세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아멘. 여기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누가 개입했습니까? ‘나’라고 하는 예수님이 개입했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개입한 이유가 뭐냐? 더 이상 ‘너’라는 존재를 유지하지 말라는 거예요. 나는 남이라고 하지 말고 누구를 시인해야 돼요? 내게 이름을 주시고 이름을 반납하라고 요구하시는 그분에게 내 인생을 그냥 드리면 되는 거예요. 왜?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니까. 드릴 때 드리는 능력이 어디서 오는가? 바로 성령으로부터 오는 거예요. 값없이 팔렸기 때문에 아무 대가 없이 그냥 원주인을 향하여 원래 이름을 주신 분의 이름에 운명이 들려있다고요 운명이. 그 미래가 다 확정되어있다고요. 확정되어있는 다 이루신 그분에게 그냥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주께서 알아서 쓰시는 기계입니다’ 하고 돌려주면 돼요. 실제로 내 안에 누가 계시다? 그리스도가 계신 거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고 우리 성도라는 것은 그렇게 움직여야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은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12절에 나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이렇게 된다고요. 내가 죽지 아니하면 그 부활의 영광에 들어갈 수가 없다는 거예요. 11절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라고 이야기해요.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요. 네 인생 네가 알아서 착실하게 살면 안 됩니까? 부모한테 효도하고 돈 벌고 자식 키우고 그러면 되잖아요. 왜 너를 대체하고 너를 대신하는 다른 존재를 왜 자꾸 내세우고 거론하느냐 이 말입니다. 불신자들이 보게 되면.

그런데 그게 사랑이거든요. 그게 사랑이라고요. 파리의 여인이라는 드라마에 보게 되면 박신양이 주인공 되는 그 사람한테 막 화를 내요. “이 남자가 내 남자다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왜 말을 못해!” 그때 상대역 김정은 씨가 이렇게 이야기해요. “내가 말하면 당신이 우습게 되잖아요 이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해요. 김정은 대사가 이래요. 내 자존심 세우려고 창피 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때 그 다음부터는 박신양이 말을 안 해요. 왜냐? 구원은 말의 능력에 있는 게 아니에요. 그 앞에서 보란 듯이 뽀뽀를 해요. 이게 능력입니다. 그 말, 내 사람이다 내 남자다 말을 뽀뽀해서 말을 막아버려요. 쳐들어와서 보는 앞에서 키스를 해 버려요. 그 대목이 기억나지요 지금. 마태복음 10장에서 그 박신양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나는 주님의 것이라고 왜 말을 못해! 주님이 나 대신 살아가고 있다 왜 말을 못해. 왜 독립적이냐 왜 자립적이냐 이 말이죠. 그 이유를 다시 고린도전서로 한번 돌아가봅시다. 이게 십자가의 의미를 통해서 사도 바울 편지를 안 볼 수가 없어요. 왜? 편지는 아무라도 그대가 되어서 날라오기 때문에 여기 1장에 보게 되면 1장 20절에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참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너나 십자가 똑똑하게 믿으면 된다 이 말을 한 게 아니에요. 너는 이미 이 세상과 한 통 속이고 이미 물들었다. 그래서 뭘 친다? 이 세상에 십자가 지혜가 그동안 너를 옥죄었던 너를 둘러쌌던 그 모든 인간의 지혜와 이 세대의 변사와 이 세상의 지혜를 전부 다 어리석은 걸로 다 공격하는 능력이 어디서 나온다? 십자가에서 나오는 거예요 능력이.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의 철학과 신학과 그 어떤 인간의 지혜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느냐? 없는 존재에서 구원이 나타나게 해줄 수 있는 재주가 있느냐? 없는데 끊어진 것을 천국과 인간이 끊어진 것을 이어줄 수 있는 그러한 능력, 능력입니다. 지혜가 아닙니다. 능력이 이 세상에 있느냐? 없지요. 오직 누구밖에 없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밖에 없지요. 그래서 성령이 왔다는 것은 성령이 온 게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일이 들이닥칠 때 값없이 용서함을 받고 구원받을 때 그때 바로 그 상태가 바로 무슨 사랑? 영적 사랑. 다시 말해서 주님의 하신 일만 증거하는 기계, 또는 주님의 자리에 할당받은 그 자리의 기능을 발휘한 사람이에요. 기능인에요. 기능인. 그래서 성도는 하는 일이 있어요. 뭘 하느냐 하면은 이 지상에다가 가는 곳마다 휘발유를 줄줄 뿌리는 일을 해요. 왜? 휘발유를 뿌려놔야 주께서 성냥해서 불날 게 아닙니까. 그래서 성도는 이 모든 세상이 십자가에 의해서 어리석고 무지하고 멸망당해야 될 세상인 것을 선도적으로 선도하면서 앞장서서 그것을 완전히 까발리는 그 역할을 누가 한다? 십자가 영을 받은 성도가 하는 겁니다. 성도가 세상 끝까지 합니다. 어떤 것을 하느냐? 절대적 절망을 선포하지요. ‘절대적 절망’.

재미있는 게 절대적 절망을 전하면 성도는 싱글벙글이에요. 희한해요. 누가복음 6장에 그 내용이 나옵니다. 21절에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뭐가 있다? “복이 있도다” 주님이 어깨를 탁 치면서 이 복 받을 것. 이 다행스러운 것. 네가 예수 이름으로 욕을 얻어먹어? 횡재한 거야 너. 이런 거예요. 그리고 24절에 반대로 복이 아니고 화입니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이 세상에서는 경쟁체제거든요. 누가 누가 잘 먹고 잘 사느냐 경쟁체제 거기에 내몰리고 있어요. 십자가? 사탄? 관심 없어요. 수수수 우수수수 그것만 필요하지. 이 세상에는 누가 실력 있고 능력 있나 그것만 있는 세상이에요. 십자가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인간이 자기가 지혜롭다고 여기며 살아요. 지혜에 지혜를 더하면 경건에 경건을 더하면 하늘나라도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율법의 끝을 몰라요. 율법의 끝은 막힘이에요. 절망입니다. 막혀있어요. 못 간다 입니다. 25절에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절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조상들 거짓 선지자들 다 이런 짓 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완전히 뒤엎어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성경의 예를 들 테니까 슬슬 여러분들이 ‘아 성경은 이런 바탕 위에 전개되었구나’를 아시기 바랍니다.

엘리야가 만났던 사렙다 과부. 엘리사가 만났던 수넴 여인.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이야기. 공통점이 뭡니까? 절망적이에요 절망적. 절망적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앉은뱅이. 뭐에요? 절망적이에요.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간수. 죄수가 다 탈옥해버렸어요. 간수. 절망적이잖아요. 그런데 그 정말적인 상황이 바로 그걸 주님의 살아서 일하시는 능력으로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영에 속한 사람이에요. ‘영에 속한 사람’.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돼요. 그러면 내 마음이 있다는 이 마음 자체가 절망적인데도 불구하고 이 절망적인 것을 일깨워주는 새로운 마음이 들어와버린 거예요. 그러면 나의 이 절망적인 모든 것이 절망적이다 라는 이 사실이 더 없이 기쁨과 감사의 거리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언약의 본질 내용이에요. 본질 내용. 아들이 하나님께 짤렸다는 자체가 구원의 능력이 되는 겁니다. 끊어졌다는 사실이 이제는 우리 쪽에서 손 내민다고 구원되는 게 아니고 주께서 손 내밀 때 구원이 아니 될 수가 없다는 이미 완료된 구원으로 이게 받아들이는 것,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게 성령의 역사에요. 그럼 목사님 우리가 할 건 뭡니까? 휘발유만 뿌리면 돼요. 초만 치면 되요. 초만 치면.

방금 이야기한 것을 도표로 해보겠습니다.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자본은 어떻게 자체 확장이 되느냐? 참 이게 마르크스가 보기에 신기하기 짝이 없는 거예요. 돈이 어떻게 돈을 불리나. 돈이 어떻게 돈을 불릴 수 있느냐. 이게 그렇게 신기한 거예요. 은행이 이자 받으면 추가적 이익이 온다. 이거는 돈의 증가지 자본의 증가는 아니에요. 약간 돈 더 벌었다는 것이지 자본 자체의 증가는 아니다. 자본 자체. 네가 돈 100만원 가지고 150만 됐는데 50만원 벌었다. 그거 돈 벌은 거죠. 자본 자체가 증가되는 거 아닙니다. 그거는 개인적으로 이익 본 거예요. 마르크스는 그걸 생각한 게 아니고 어쨌든 이 사회 자체가 자본이 계속 자본을 낳는 구조가 되었느냐 그게 그렇게 궁금했던 거예요. 그 전에 그걸 해답을 준 사람이 없었고 방법은 이겁니다. 자본을 뭐로 바꾸느냐 하면은 상품으로 바꾸고 상품을 다시 화폐로 걷어오면 이게 자본이 증식이 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플러스 뭐냐? 노동값을 다 주지 않고 남아있는 잉여 노동의 가치가 추가가 되기 때문에 돌아간다는 거예요. 이 차이점이 뭐냐 하면은 이건 개인적인 이익이라면 이것은 전체 사회가 총동원해서 오직 자본 하나만이 더욱 더 확장되는 쪽으로 사회는 어떠한 융통성 없이 그냥 밀어붙이게 되어있는 사회다. 사회 자체를 이렇게 설명하는 것 외에는 더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노동자, 노동하는 노동의 대가가 항상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떨어지는 다른 것. 그 떨어진 돈 가지고 은행 세우면 은행 이자 벌고 살잖아요. 은행 돈 말고 전체 구조, 전체 구조는 뭐냐? 인간이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데 있다는 거예요. 그럼 그 전의 사회는 뭡니까? 그 전의 사회는 상품을 상품으로 사고 파는 것이지 자본을 증식하는 용도는 아니에요. 내게 필요한 상품을 구입하는 게 목적이지 그 추상적인 자본 자체를 증식하는 의도는 없었는데 그냥 나 필요한 물건을 돈 주고 사서 쓰면 되는 건데 그게 아니고 인간 사회 전체가 뭐로 하느냐 하면은 얼마나 여분의 자본을 넌 얼마 가지고 난 얼마 가지는가 그걸로 대조하는 사회로 모든 것이 변신, 전환되었다는 겁니다. 이건 고칠 병도 아니고 이건 이대로 그냥 밀어붙인다는 거예요. 왜? 인간 사회의 타고난 욕망이기 때문에. 욕망이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대안은 하나밖에 없어요. 자본가들 죽이자 이것밖에 없어요. 자본가들 죽여도 해결 안 돼요 사실은. 왜? 자본가들 죽여버리면 노동자가 자본가 돼요. 해결이 없어요.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경제와 철학은 이미 결론이 나와 있습니다. 해결책 없어요. 그냥 자본이 왕이에요. 자본이 왜 있어야 되는가? 내 욕심 안에 다 담겨있어요. 그럼 이 말은 뭐냐? 인간은 욕심을 통제할 수 있다? 없다? 인간이 자기 욕심을 통제 못하면 이 사회는 그냥 자본주의에요. 사회주의 이름의 공산주의 이름의 자본주의에요. 중국이고 북한이고 모두 자본주의에요. 이걸 마르크스가 발견한 겁니다. 다 병 들었어요. 그리고 여기서 발을 못 빼요. 빼지를 못합니다. 내일은 발명왕? 소용없어요. 발명해봐야 그거는 뭐냐 하면은 돈이 돼야 발명이 돼요. 자본이 돼야 발명이 되지 돈 안 되는 발명은 그건 휴지통에 집어넣습니다. 왜 마르크스 이야기가 갑자기 튀어나왔느냐? 세상의 인간의 욕망이 마르크스는 육적인 것만 보지요. 육적인 것. 영적 세계가 더 원판입니다. 더 근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줬잖아요. 말씀을 주니 인간들은 뭐냐? 나를 위한 성취를 시도해요. 그럼 여기 나오는 구원은 누구의 구원입니까? 나의 구원. 이게 바로 여기 뭐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구원에 대한 나의 욕망. 구원에 대한 욕망은 어디에 대한 무지다? 나에 대한 무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무지, 메시아에 대한 무지, 죄에 대한 무지, 율법에 대한 무지. 인간은 죄도 모르고 의도 몰라요. 모든 죄, 모든 의는 어디서 나온다? 유월절 사건에서 기준해요. 유월절 사건. 사탄이 개입해서 모든 인간의 총 궐기해서 오신 메시아를 죽이는 그 사건에 기준해서 비로소 죄가 나오고 의가 나오고 다 나오는 거예요. 인간의 존재에서 인간의 도덕 윤리적 관점에서 죄가 의가 안 나옵니다.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럼 뭐가 죄냐? 바로 이게 죄지요. 나의 구원 성취를 위해서 말씀을 분해하고 연구하는 게 죄죠. 그럼 육과 영과 혼은 뭡니까? 그 개념 자체가 자기 구원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죄가 되는 거예요. 성경을 보면서 고린도전서를 보면서 육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 사람 워치만 니의 육과 혼 그 연구하는 그 모든 것이 뭐가 돼요? 죄가 되는 거예요. 사탄의 일이 되는 거예요. 사탄의 일이. 막혀있다는데 안돼요 인간은. 안돼요 안돼. 되지를 않는 겁니다. 되지도 않으면 어떻게 하자는? 되지도 않는 그 상황이 구원의 토대가 되고 근거가 돼요. 내 구원받지 못하는 조건 하에 내가 구원이 돼요. 내가 예수님과 상관없다는 조건을 갖고 있는 한 그것 때문에 우리가 구원이 되는 겁니다. 내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바탕이 돼요. 약속을 모르고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약속의 본질이 되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계속 한번 봅시다. 1장 17절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라고 되어있지요. 그러면 이것은 무엇과 무엇의 충돌이다? 십자가 복음의 능력과 그 반대쪽에 뭐가 있습니까? 인간의 십자가라는 신학이라는 말로 지혜로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이 유대인뿐만 아니고 계속해서 그 다툼이 일어난단 말이죠. 다툼이 일어나는데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싫다 이렇게 하지는 말잔 말이죠. 왜냐 하면은 2장 끝에 보면 2장 12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되어있지요. 은혜입니다. 선물로 준 거예요. 그 다음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아까 1장 17절 말의 지혜가 아니다 해 놓고는 입을 다물다가 2장 13절에 와서 비로소 빈칸이 채워져요. 사람의 지혜가 아니고 뭐다? 성령의 가르침이죠. 그러면 성령의 가르침에 인간의 지혜가 끼어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끼어들면 안되지요. 그럼 끼어들지 않는 방법이 뭡니까? 그게 뭐냐? 아무리 가르쳐도 이것은 능력이 아닙니다 하면 되는 거예요. 인간의 가르침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인데 인간을 구원하는 자체가 하나님이 허락한 적이 없다는 거예요. 성령이 와서 인간을 구원하는 거예요.

그러면 성령이 와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과 인간의 지혜 그 경계선 틈 사이에 경계선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절대적 절망. 절대적 절망. 여러분들이 신구약에 나오는 사건들 쭉 보세요. 특징이 한결 같이 뭡니까? 모조리 절대적 절망이에요. 사울이라는 사람이 다메섹에 내려가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 체포하려고 할 때에 본인은 절망인줄 몰랐지요. 나중에 예수님 만나고 난 뒤에 자기가 뭐가 됐습니까? 눈이 감겼잖아요. 눈이 완전히 갔어요.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겠지 그런 거 없어요. 눈이 갔어요. 끝났어요. 소경이에요. 아나니야에게 데려가가지고 안수 받으니까 비늘이 벗겨졌지요. 비늘이 안 떨어졌으면 어쩔 뻔했어요. 평생 소경이에요. 사도 바울은 소경이다 절룩발이다 내안에 사탄의 가시가 있다 그거는 본인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에요. 왜? 본인은 십자가를 위한 하나의 자리를 배정받은 기계에 불구하니까 십자가의 취지가 얼마나 이 세상과 대비가 되고 충돌되는가를 그 충돌 사항을 자기 내부에 두면 되는 겁니다. 자, 이 뜻이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런 뜻이에요. 고린도전서 2장에서 영에 속한 사람, 영의 반대말 육에 속한 사람 있지요. 육에 속한 사람. 나는 여기 둘 중에 어디에 속해야 합니까? 오늘 1강 2강 다 했는데도 답변 제대로 해야 돼요. 나는 이 둘 중에 어디 속해야 돼요? 제 질문 자체가 이거는 반칙적인 질문이에요. 나라는 존재는 이미 이름을 누구한테 반납했어요? 주님한테 반납했다. 다시 말해서 주의 이름과 내 이름을 바꾼 거예요. 나는 자리 제공한 거예요. 내 이름으로 활동하는 내 몸이 내 육신이 주님이 활동하는 육신이 돼요. 이 육신은 더러운 육신이고 아프고요 담 걸리는 육신이에요. 갈수록 점점 더 그래요. 그 육신인데 그 육신을 통해서 주님께서 뭘 보느냐 하면은 육에서 영으로 옮겨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무대가 되는 거예요. 하나의 자리가 되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디 속하는가? 둘 다를 포함하고 있는 거예요. 둘 다를. 그래서 감사는 영에 속했기 때문에 하는 감사는 엉터리 감사에요. 영에 속해서 감사하는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이에요. 육과 영에서 바뀌어 가면서 여기서 틈에서 뭐냐 하면은 성령의 일방적인 일하심이 나오겠지요. 이게 바로 감사가 되는 거예요 이게. 이게 감사가 되는 거예요. 나는 내 식대로 성경공부해서 구원받고자 하는 이것, 이것이 다 허사고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오는 감사. 나는 이 두 개의 상반되는 요소가 있어야 여기서 감사와 기쁨이 나오는 거예요. 범사에 감사가 나오는 거예요. 범사에. 감사가 나오는 겁니다.

과연 그런지 고린도전서 4장을 보겠습니다. 4장 9절에서 13절까지 읽어보면서 여러분들이 사도 바울의 심정에서 생각해서 기쁜지 아니면 짜증나는지 한번 보세요.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지금 이 이야기가 짜증납니까? 아니면 기쁩니까? 어때요? 느낌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게 감사가 됩니까? 이게 막 굉장히 고마워요 이게? 되게 고마운 거예요? 다시 한번 봅시다. 말씀이 들어왔을 때 우리가 육에 속했기 때문에 나의 구원이라고 여기고 내가 실시한다든지 또는 내가 믿든지 해서 말씀을 내 쪽에서 받아들여요. 나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고 내 유리한 쪽으로 받아들여서 결국 나온 것은 나의 구원이죠. 이게 어디 속했다? 이게 바로 육신에 속한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동일한 말씀으로 이걸 작살내는 거예요. 만물의 쓰레기처럼 만들었다. 이 육신을 내 손으로 걷을 수는 없어요. 왜? 이게 나의 본성이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이게 뿜뿜 막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우연적인 예상도 못했는데 이딴 게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충분히 만물의 찌꺼기가 되어도 괜찮은 겁니다.

자유, 자유의지라는 것은 뭐냐? 나의 자유를 주님께 반납하는 게 자유에요. 왜냐하면 내가 자유를 활용하면 안 되니까. 그래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께서 허락한 것을 배급받는 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에요. 이게 자유거든요. 왜냐하면 주님은 이미 도망쳤잖아요. 어디로? 예수 안으로 또는 성령 안으로 또는 하늘나라 처소로 가버렸단 말이죠. 그 간 곳에 인간이 노력한다고 따라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갈 수가 없어요 막혀있다니까요. 막혀있어요. 막혀있는데 그러면 인간은 절대적 절망이죠. 절대적 절망에서 흑흑 울고 있죠. 안되겠다. 아들아 밀가루 얼마 남았나? 마지막입니다. 기름도 마지막입니다. 그거 같이 먹고 장렬하게 죽자. 우리 팔자 이거 밖에 안 된다 했는데 여기 엘리야가 등장해가지고 홀라당 뭘 뺏어가요? 마지막 나의 장렬한 죽음까지 자존심마저 싸그리 내가 먹는다 가져가버리죠. 절망적인 상태를 누가 활용했어요? 하나님 쪽에서 온 사람이 그걸 활용했을 때 나의 절망도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겁니다. 나의 절망도. 여러분 보고 하라는 말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살아가면 항상 여러분들이 예상 못한 우연 요소가 여러분들 인생 방향을 자꾸 틀어줘요. 영생은 있습니다. 있는데 좁은 길에 있어요. 이게 문제에요. 영생은 어떤 길이냐? 아무도 찾지 않는 것. 심지어 나도 찾지 않는 길에 영생이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말씀이 와서 나도 찾지 않는 것을 나는 어디 찾아요? 좁은 길 찾아요? 넓은 길 찾아요? 고생고생 하겠습니까? 호화롭게 살겠어요? 넓은 길로 가지요. 육신의 본성이니까. 가는 것을 뒤통수 쳐가지고 대절망으로 만들어버리지요. ‘뭐야 내 것은 없잖아!’ 할 때 그게 그 절망이 뭐로 바뀌게 합니까? 예상 못한 아 내 절망 마저 주님의 십자가 재료로 사용한다는 것. 주님의 기계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에도 알았지만 새삼, 새삼스럽게 그걸 깨닫는 순간 그 기쁨으로 감사가 되어집니다. 감사가 될 수밖에 없어요. 몇 초 가게요? 한 10초 가는데 아버지 만나면 다 없어져. 아버지 요양병원 버티고 있으면 돈 다 날라가죠. 아버지 나 괴롭힐라고 자식 말 안 들어. 은혜 받고 갑자가 은혜 다 쏟았어. 헨젤과 그레텔처럼 은혜 받았는데 새들이 다 주워먹은 거 같애. 걱정하지 마세요. 반복됩니다 반복. 반복 돼야 전에 있던 감사 말고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감사가 우리가 육신에 산 만큼 또 튀어나오게 되어있어요. 기다려봐요 또 튀어나올 거예요. 내일 치 또 튀어나옵니다 내일 치. 내일 비트코인 내려가서 튀어나옵니다. 절망이야 끝났어 끝났어 나 죽었어 이제. 그때 팔 걸 까불다가.

우리에게 일어난 이 모든 사건은 이제 결론내고 마치겠습니다. 모든 사건은 십자가의 능력으로 지워버리는 일들이에요. 지워버린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인간에게 혹할 수 있는 인간들 그러한 유혹거리를 많이 만들어줘요 하나님께서. 마귀가 그렇게 하는걸 허락해요. 해놓고 성도로 하여금 방향을 틀게 만들어요. 그거 좋지? 좋지요. 성공했지. 구원도 받고 돈도 벌고 성공했습니다. 넓은 길 좋아? 그런데 찾는 사람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쪽 아니거든. 하고 다시 방향을 영생 쪽으로 방향을 틀어요. 틀면 외롭지만 감사하고 남한테 내세울 것 없지만 감사가 나오고 남들 보기에 너 인생 망했다고 욕은 하지만 비천하지만 쓰레기 같지만 기쁨이 사람이 모르는 예상 못한 큰 기쁨이 넘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성령의 한결같은 쉬지 않는 일하심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어질 것을 우리가 느끼는 겁니다. 아까 빨리 이야기했지만 사랑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아낌없이 반납하는 게 사랑이죠. 내 사람이다 내 여자다 왜 말을 못해. 보이지 않는 사람을 자기를 대신하는 사람으로 하는 거예요. 이순신 장군을 봅시다. 이순신 장군은 훌륭한 분이라고 하지요. 학교에서 배웠잖아요. 명량, 초량 영화 세 개나 나오고. 하지만 과거 사람이에요. 옛날 사람이라고요. 지금 살아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보라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고 했어요. 이미 다 이루신 분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거예요. 무슨 뜻입니까? 네가 육신이고 너는 육신밖에 모른다는 사실을 날마다 일깨워주는 식으로 너는 나를 증거하는 증인으로 다루겠다는 겁니다.

끝으로 물어봅시다. 우리가 고칠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가 뭘 고친다는 자체가 이거는 시건방진 일이에요. 고쳐서 뭘 할 건데요? 더 깨끗한 나의 구원을 확보하려고? 하지 마세요. 고치는 것이 아니고 고치든 안 고치든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변수는 우리에게 나온 것이 아니고 우연하게 주께서 주신 겁니다. 우연하게. 그것을 통해서 세상에 어떤 지식과 지혜는 이미 주님 앞에 짤렸다는 사실. 이미 무지하고 절망적이고 그들은 지옥 가는 마귀들의 지혜만 사람들이 믿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웃으면서 혹시 집에 여분의 돈 있거든 휘발유 사가지고 초를 치고. 주께서 그으면 확 붙도록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의사 아무것도 아니야. 데모나 하고. 의사들 데모하니까 한의사협회에서 우리를 믿으세요. 모든 이 세상은 자본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자본. 자본은 우리의 욕망의 대상이기 때문에 멈출 수 없어요. 나의 육신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멈추지 않는 그것이 세상에 우리가 구원받은 증거로 활용해주시니 진짜 이런 복이 어디 있어요. 말을 더 못하겠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마음대로 살았는데 주의 뜻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 것도 안 했는데 그게 주의 일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주님만 살아계심을 증거 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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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1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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