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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강의20240314a 요한일서 2장 19절(소외와 분리)-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일서

서울강의20240314a 요한일서 2장 19절(소외와 분리)-이 근호 목사

요한일서 2장 18절,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을 때 그것이 바로 마지막 때다. 이것은 우리가 뭘 시도한다든지 우리가 추가적으로 행동을 해야 될 게 이제는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겁니다. 마지막 때는 인간이 꾸려간다든지 인간이 개발해서 마지막 때라고 조성할 수 있는 때가 아니에요, 마지막 때는. 마지막 때는 인간이 손을 다 놔버린, 인간으로 더 이상 할 게 없는 때가 마지막 때에요. 인간이 무능력해야만 하는 때, 내가 어떻게 조치할 수 없는 때, 이게 마지막 때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를 아주 간편하게 이야기하면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는 때’ 그게 마지막 때입니다. 어느 누구도 구원될 수가 없는. 모든 인간은 율법에 의해서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될 수 없는 것이 확정난 때, 이게 마지막 때에요.

그런데 그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들이, ‘많은’ 적그리스도에요, 적그리스도가 하나가 아니고 여럿 적그리스도가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러면 적그리스도가 일어나는 그 현상에 대해 원인제공은 누가 하느냐 하면 인간들이 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께서 적그리스도를 일방적으로 유포하고 계시다고 보시면 돼요. 예수님이 적그리스도를 유포시키는 겁니다.

사람들이, 야, 그리스도다! 어? 저 그리스도네. 그리스도가 뭐냐 하면 구원자에요. 예수님을 십자가 못 박아 죽였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은 구원될 수 있는 권한이나 그러한 노림수, 그런 기대를 갖고 있으면 안 됩니다.

구세주가 왔는데 인간들이 힘을 다하여 추방시켰잖아요. 그러면 인간세계는 구세주가 쫓겨난 세계에요. 구세주마저 추방된 세계에요. 구세주가 추방되었으니까 인간나라에는 구원이 있을 수 있어요, 없어요? 구원이 있을 수 없죠. 구원이 있을 수 없는데 ‘구원이 있을 수 없다’는 그 점을 감안해서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겁니다. 구원해줄게. 구원해줄게.

그러니까 이것은 예수님을 놓쳐버린 그 대체로서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거예요. 진짜 예수님은 믿기 싫고 우리가 믿을만한 대체물로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적그리스도에요. 따라서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 예수님이 먼저 나타나지 않으면 적그리스도가 성립될 수 없는 거예요. 놓쳐버린 그리스도의 대체물로 그리스도들이 막 나타나는 거예요. 그리스도가.

다시 말씀드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추방함으로써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는 자격이나 권한은 없어졌습니다. ‘구원해주세요’ 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아요. 그게 마지막 때에요. 마지막이라는 것은 끝났다는 거예요. 모든 것이 이제 끝났어요. 인간이 설쳐대 봐야 안 통합니다. 소용없어요. 열심히 믿을게, 해도 소용없습니다. 마지막 때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때에요.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네 구원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안 된다는 것이 확정난 때, 이것이 마지막 때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를 저는 두 글자로 표현하겠습니다. ‘분리’. 하나님 나라와 이 세상 나라가 영원히 분리되었음을 보여주는 때가 마지막 때입니다. 닭 좇던 개꼴이 된 거죠. 개꼴이 된 겁니다.

하나님 쪽에서는 이렇게 분리했는데 인간 쪽에서는… 예수님께서 인간과 분리되고 떠났잖아요. 떠났는데 인간 쪽에서는 메시아를 고대하고 메시아를 기다리는 그 희망이 인간에게선 떠나지 않았습니다. 악착같죠. 자기 구원에 대한 집착이 아주 대단합니다, 인간은. 못 먹어도 그냥 천국은 가고 싶습니다. 짜장면 먹어도 천국은 가고 싶어지죠. 끝까지 내가 천국 한번 들어가고 만다, 이런 거. 그러한 고집 같은 게 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그러한 요구에 대해서 충실하게 도와줍니다. 그래서 ‘적그리스도의 본질은 인간의 구원희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적그리스도를 구성하는 본질은 인간이 구원을 얻고자 하는 욕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래서 적그리스도와 인간이 같아요(적그리스도=인간). 적그리스도들도 인간이니까. 인간도 인간이고. 인간과 인간이니까 말만 잘하면 안 통할 리가 없죠. 좀 논리가 어렵고 힘들고 하지만 다 같은 인간이니까요. 말하고 또 말로 안 되면 빌기도 하고 빌어도 안 되면 더 애착을 가지고 매달리기도 하고 하소연하게 되면 구원이 안될 수가 없죠.

그런데 그리스도는 뭐냐? 그리스도는 인간의 시도 바깥세상으로 갔어요. ‘바깥세상으로 가셨다.’ 만지지 말라 했죠. 똑같은 몸인데. 인간과 똑같은 몸이 아니에요. 그리스도는 인간이 시도하는 그 바깥으로 가버렸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가신 그 나라는 인간이 들어갈 수도 없고 그다음에 알지도 못할뿐더러 인간으로서는 살 수가 없어요. 인간으로 살 수가 없는 세계. 들어갈 수도 없고 살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곳.

반대로 적그리스도는 들어보게 되면 들어갈 만하고 살 수 있을 만하고 잘만 하면 내가 눈치 채고 알아먹을 수 있는 세계, 이게 적그리스도가 제공하는 천국입니다. 왜 주님은 적그리스도를 허락했을까요? 너희들의 모든 시도는 이것까~지. 인간의 한계를, 적그리스도를 통해서 장벽이 조성되게 하신 거예요. 너희가 시도하는 건 이것까지.

제가 베들레헴에 간 적이 있는데요. 그 베들레헴에 보면 예루살렘과 베들레헴 사이에 높이가 굉장히 높은, 8m도 넘는 장벽이 쳐져 있어요. 제가 그걸 보고 뭘 생각했느냐 하면, 알라신을 믿는 사람은 여기까~지. 이 장벽까지가 알라신 믿어요. 알라신 믿든 어르신 믿든 하여튼 알라신 믿어요.

그들의 생업을 어디서 하느냐?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 가까우니까 예루살렘에 가서 아르바이트 하든지 직장생활하고 퇴근은 장벽 안의 베들레헴으로 와요. 베들레헴은 현재 팔레스타인 땅이에요. 알라신 믿는 사람들의 거주지에요. 그러면 그들이 장벽 밖에 나가서 검문소를 통과할 때 ‘나 알라신 믿는다.’ 이렇게 하면 통과시켜줍니까? 아니죠. ‘취업증 한번 봅시다.’ 군인들이 취업증 없으면 통과를 안 시켜줘요. 그리고 검사하죠. 테러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그러면 팔레스타인 알라신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혹시 이런 사람 있을 수 있습니까? ‘그래, 우리 알라신은 장벽에 갇혀서 한계가 있어. 이것은 엉터리란 뜻이지. 그러나 저 장벽 밖에 있는, 저 잘 사는, 베들레헴 근처 보면 잘 사는 이태리식 저택들이 굉장히 많아요, 너무너무 잘 살아요, 이스라엘 사람들의 여호와는 잘 사니까 나는 이 알라신을 버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는 여호와를 내가 섬기겠다.’ 그런 사람 있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거의 없죠. 거의 없어요.

거의 없다는 말은 태생이 알라에서 나서 알라로 말미암아 알라로 돌아가겠다고 작심하고 있는 거예요. 비록 서러움 받고 고난 받고 역경이 있지만, 어떻게 하나님이 바뀔 리가 있느냐 하는 그 생각. 하나님이 바뀔 리가 없다는 거예요.

이 점이 중요한데 팔레스타인의 알라신이 절대적 요소를 갖고 있어요. 영원한 유일한 신이에요, 알라신이. 하나밖에 없는 신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신을 바꾼다는 자체가 그들에겐 논리상 말이 안돼요. 하나밖에 없는데 뭘 바꿔요? 못 바꾸죠. 그건 유대인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예수님이 모든 인간에게 충격적인 것은 하나님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는 사실이에요. “주께서 내 주에게”(행 2:34, 시 110:1). 하나님이 둘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여기서 적그리스도가 자기의 정체를 팍 나타내는 거예요. 인간의 존재는 자기가 하나에요. 자기가 둘 될 수 없잖아요. 아까 질문이 그거였잖아요. 어떻게 자아가 둘 되냐, 그 질문 아닙니까. 둘이 연락체계를 어떻게 하느냐, 그 질문이 그 질문이잖아요.

그런데 고린도전서 15장에 보면 아담 안에 있는 것과 예수 안에 있는 것, 두 종류의 인간을 하나님의 복음으로 설명해버립니다. 인간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아담 안에 있는 인간과 또 하나는 예수 안에 있는 인간. 로마서 5장에도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5:14) 이렇게 해서.

그런데 알라신을 믿는다든지 여호와를 믿는 유대인들은 뭐냐? 내가 어떻게 둘이 될 수 있어요? 안되죠. 나는 하나에요. 내가 하나라는 말은 내가 만든 신도 절대 불가한 오직 유일한 하나밖에 없는 단일신이어야 믿을만해요. 왜? 내가 하나니까. 내가 하나인데 신이 둘 나와 보세요. 어느 한쪽으로 균형 맞추기가 힘들다니까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하나라 하면 아버지가 하나인 것을 믿는 것에 대해서는 자식 된 도리로서 이건 하자가 없어요. 나도 하나고 아버지도 하나니까, 그 아버지의 아들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아저씨가 와서 “내가 네 애비다.” 이렇게 하면서 그냥 오는 게 아니고 “네 유전자 조사했다.”하고 나오면…. “친자 조사해보니까 산부인과에서 바뀌어서 지금 네 아버지도 아닌 사람한테 아버지라 하고. 진짜 아버지는 나다.”라고 할 때, 그 아들이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심지어 진짜 딸이 근무하는 병원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안치했는데 진짜 딸은 와보지를 못해요. 근무시간이니까. 근무시간이기 때문에 바뀐 가짜 딸이 아버지를 모시고 있단 말이죠. 병원에서 바뀌어가지고. 참…. 그러니까 인간의 입장에서는요. 어.느. 메.시.아.가. 진.짜. 메.시.아.인.가. 또는 어.느.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지. 곤란하다는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 입장에서는 전혀 곤란하지 않아요. “네가 믿던 하나님, 네가 믿던 메시아와 함께 지옥가라.” 이게 하나님 뜻이에요. 진짜 메시아는 ‘너희들이 골라잡아라’가 아니라 아예 분리를 시켜놨기 때문에. 너희들이 알지도 못하고 너희들이 들어갈 수도 없는 그 세계에서 나타나신 분이 진짜 메시아에요. 그 말은 뭐냐? 너는 너 자신에게 가짜라는 뜻이에요. 너는 네게 가짜라는 사실.

적그리스도는 여기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내가 왜 가짜야? 진짜지. 진짜니까 이 진짜 나를 살릴 수 있는 메시아나 하나님도 오직 절대적 유일신, 하나밖에 없다.’ 이게 바로 적그리스도가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제가 적그리스도라면 이 성경가지고 적그리스도적인 복음을 전할 거예요. 그럼 어떤 설교가 나오느냐? 뭐 교회에서 다 하는 얘기 나오죠.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이게 적그리스도적인 설교입니다. 마귀가 하는 설교에요. 지금 뭐를 빼먹고 있어요? 주님께서 너 가짜라고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기존의 교회에서는 뭡니까? 구원받고자 하는 너는 가짜라고 누가 지적해줍니까? 아무도 지적 안 해줘요. 아무도 지적안합니다. ‘세상 살기 힘들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처소를 예비했습니다. 힘들더라도 참으시고 예수님 가신 길 가게 되면 여러분께도 좋은 날 있을 겁니다. 다 같이 기도합시다.’ 뭘 기도해. 뭐했다고 기도하는데요? 뭐했다고 기도합니까.

왜 분리를 이야기 안 해요? 사람들은 말하기를, 십자가가 분리라는 생각을 못하고 십자가 피 찍어 바르면 내가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왜 피를 흘려야 되는데? 몰라요. 그건 아는 거 없어요. 그냥 피 찍어 바르면 된다는 거예요. 어디 핫도그에 찍어 바르는 케첩입니까? 왜 그걸 찍어 발라요. 그 피는 무슨 피인 줄 알아요? 너 가짜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널 구원하러 온 게 아니라 널 죽이러 왔다는 겁니다. 가짜를 가짜로 폭로하는 거예요.

고린도후서 5장에 보면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우리가 지금껏 예수님을 육체로 봤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들도 육체고 인간이고 예수님도 인간으로 본 겁니다.

제가 아까 했잖아요. 적그리스도 특징이 뭐냐? 인간이에요. 인간이니까 인간끼리는 안 통할 구석이 없어요. 말발만 잘하고 기적만 베풀면 내가 원하는 거 그쪽에서 제공할 거고 그러면 제공받은 만큼 잘 섬기고 찬양하고 따르면 되잖아요. 이게 바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및 열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랐던 동기였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고. 예수님은 자꾸 이상한 이야기하고,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이상한 이야기하는데 그거는 듣지도 않고요.

빌립 같은 경우에는 예수님한테 뭐라고 했느냐 하면 “예수님, 아버지를 보이소서.” 이러고 있다고요. 아, 빌립 참 고마워. 악수하고 싶어요. 자신의 허점을 거침없이 질문으로 그대로 내놓잖아요. “예수님은 봤으니 충분하게 됐고 아버지와 함께 있다니까 이제는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이소서.”라고 요한복음 14장에서 그런 이야기하죠.

14장 보기 전에 우선 요한복음 10장 30절,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되어 있죠. 12장 44절에는,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여기 예수님이 ‘나’라고 하는 것과 ‘보내신 이’라 하는 것으로 예수님은 두 개를 제시했죠. 두 분을 제시했잖아요. 제시해놓고 보내신 이와 예수님은 서로 아는 사이다 이 말이거든요.

그런데 이 말씀은 뭘 전제로 하느냐 하면, 너희들이 나를 보기는 보지만 문제는 너희들이 나는 보고 있지만 나를 보내신 이는 너희들이 지금 모르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인간의 입장에서는요. 하나님이 둘 된다든지 메시아가 둘 된다는 것은 성립이 되질 않아요. 45절에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그리고 14장에 아까 말씀드렸던 내용을 보면 8절,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말씀은 이렇게 하는데 이게 그 제자들 마음에 합치되지 않아요. 이게 와닿지를 않는 거예요. 결국은 십자가로 인하여 제자들과 예수님과의 분리가 일어나는 겁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분리가 일어나는데, 제자들은 예수님과 분리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를 떠났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제자들은 뭘 지금 오해하고 있느냐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 죽을 때 아버지하고 아들 되신 예수님 사이에 분리되었다는 이 분리, 인간 자기 자신은 이 분리가 불가능한 거예요. 내가 나와의 분리는 불가능한 거예요.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에 분리될 일도 없고 두 개로 쪼개질 일도 없다는 거예요. 나는 처음부터 하나요 나중도 하나요. 완전 알파와 오메가다. 나는 애초부터 하나고 중간에 둘로 갈라질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갈라졌으면 너희도 갈라져야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기독교 들어와서 모든 설교가 다 헛방이에요. 소용없는 설교를 하고 있는 거예요. 소용없는 설교를. 백날 성경 달달 외우고 성경 적고 막 요새는 성경을 아나운서 멘트로 듣고 잘 때도 듣고 그냥 졸고 뭐 백날 이렇게 퍼붓듯이 갖다 퍼부어도 내가 분리가 안돼요. 내가. 그 내가 한결같아. 하여튼 착실하기도 해요. 착실하기도. 자기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그리 착실한지.

하나같이 나는 나고 변함이 없다는 거예요. 정신분석학에서는 그걸 망상이라 하는 거예요. 그게 망상입니다. 내가 하나라는 것은 하나여서가 아니라 내 기억이 나를 하나로 기억하기 때문에 하나에요. 내 기억이. 그 기억이 약간 흐트러질 때가 언제냐 하면 술 처먹을 때. 깨고 난 뒤에,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지? 증인이 한둘이 아닌데. 아이고, 내가 이제 술 먹으면 난 개다. 그 다음 날 또 술을 먹어요. 술 먹으면 개라며? 가끔은 개이고 싶다. 뭐 이런 거. 참내.

그래서 정신분석학에서 인간은 의식적으로 자기가 인간이지만 무의식은 자기를 인간으로 보질 않아요. 고함을 지르고 테이블 치고 난리도 아니에요. 그러다 정신 돌아오면, 내가 왜 그러지? 그것은 바로 성경에서 그렇게 이야기한 악마가 인간을 하나로 절대적인 신으로 계속해서 옹립해왔기 때문에 그래요. 악마가.

악마와의 관계가 없이 자기를 안다? 이것은 대한민국 교육학에서 이야기하고 대한민국 교육시스템이 그렇게 이야기하겠죠. 한국 교육시스템, 과학시스템에 의하면, 인간은 진화되는 존재다. 인간은 진화되는 존재에요. 무엇에 의해서 그동안 진화되었는가? 환경에 의해서.

5백만 년 전 유인원에서 원숭이, 고릴라에서 분화되어 나온 게 인간이라는 겁니다. 그전까지 따지면 인간은 양서류, 개구리이고 그전까지 따지면 인간은 하나의 원세포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단세포에 지나지 않는 게 유구한 역사를 거쳐서 57억년인가 하여튼 역사를 거쳐서 인간은 진화된 존재들이에요. 그러면 앞으로 환경 바뀌면 인간은 달라진다.

듄2 영화. 듄1. 듄(dune)이라는 것은 큰 모래언덕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모래에 오래 있으면 우아앙~ 모래벌레처럼 둥그런, 하수구 공사할 때 나오는 하수관처럼 생긴 모래벌레가 기어 올라오죠. SF(science fiction)영화에서 환경 바뀌면 인간의 모양도 플랑크톤의 다양한 모양 이상으로 인간은 바뀌어요. 한쪽에 촉수가 길다든지 온갖 흉측하기 짝이 없는 모양으로 바뀐다는 그걸 누가 이야기하는가? 인간 본인이 그걸 감수하고 있어요. 인간이.

인간이 진화하는 존재로 형태는 바뀌지만 영원히 바뀌지 않는 건 뭐냐? ‘나는 나다’ 하는 거예요. 나는 나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름으로 이야기해요. ‘나는 나다’ 하면, 땡! 틀렸어. ‘나는 흙이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돼요. 왜냐하면 이름 안에 자신의 출처가 담겨있어야 되기 때문이에요. 흙에서 나왔기 때문에 나는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한국 교육이나 과학에서는 그 이야기를 못해요. 왜냐하면 출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인간 외부에 인간 바깥에서 인간의 처음 시작과 끝을 다 알고계시는 다른, 인간보다 월등한 지능을 가진 존재를 전제로 해야 이 말이 성립되기 때문에 그래요. 지금 한국의 교육, 세계 교육이 다 그렇지만 그건 뭐냐 하면 내가 나를 판정하는 교육이잖아요. 내가 나를 검토하고 판정하고 분석하고 관찰하는 그 세계 아닙니까.

그 세계에서는 서로 서로의 의견을 물어서 공통점을 끄집어내요. 인간끼리 모여 공통점을 끄집어내니 거기서 절대로 인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대전제가 나와 버려요. 인간은 인간을 스스로 부인해서는 안 된다. 그럼 뭐냐? 인간에게 필요한 것만 우리가 만들어내자. 그게 뭐냐? 신이고 알라신이고 여호와신이고 그게 메시아고 그런 거예요. 참고도서는 성경이 있으니까요. 물론 성경도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는 거예요. 성경해석도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굳이 믿을 건 없는데 굳이 믿을 게 있다면 인간은 환경 따라 달라진다는 이 진화론은 믿을만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진화론이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다’에 대해서 반발로 나온 거예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데에 대해서 반발로 만들었다. 그럼 처음엔 어떻게 했느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건 맞는데 그 절차를 세분화해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 때 진화론적으로 만들었다’ 그거 하나 살짝 삽입한 거예요. 그거 하나 집어넣은 거예요.

그거 하나 집어넣으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는데 진화론적인 그러한 체계를 가지고 만들었다’에서 나중에는 앞에 것을 떼어버렸어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었다’를 떼어버리니까 뭐가 남겠어요? 인간은 환경 따라 달라진다. 다시 말해서 영원한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뭐냐? 나는, 영원히 변하는 그 자체가 바로 나다.

영원히 변하는 나는 무슨 뜻이냐? 나는 내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뜻이에요. 뭐 남자가 남자랑 연애하든지 여자를 만나든지 그건 내 마음이다. 왜? 내 마음이다. 오토바이타고 음악을 틀든지 그건 내 마음이다. 컵라면 먹고 차 창문 열어서 창문 밖 길거리에 붓든지 그건 내 마음이다. 모든 게 내 마음이에요.

그래서 적그리스도는 인간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하나 더 추가하게 되면 ‘인간과 함께 영원히’. 인간과 함께 영원하자. 이 적그리스도는 ‘나는 너희를 배반하지 않고 떼어내지 않을게. 나는 너희들과 함께 영원히 가겠다.’ 이게 적그리스도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떤 결론에 이르느냐 하면, 인간들이 믿는 그리스도가 바로 적그리스도였다. 왜? 나를 부정하지 않으니까. 내 구원을 탓하지 않으니까요. 문제 삼지 않으니까요. 나 있다는 게 가짜라는 걸 지적하지 않는 그리스도니까 영원히 함께 안할 이유가 없어요. 인간의 친구인데. 인간이 원하는 걸 다 채워주잖아요.

설교하려고 성경본문 뽑을 때 어떤 본문을 뽑든 간에 하나님은 너희들을 못 도와줘서 환장했다는 식으로 설교해보세요. 그 하나님을 굳이, 굳이 내칠 일은 없다 이 말이죠. 바빠서 교회는 안 나오겠지만. 교인들 짜증나서 교회는 안 나오겠지만. 그러나 하나님마저 내칠 이유는 없잖아요. 하나님은 우리 편이고 모든 걸 도와주고 희망을 갖게 해준다는데 그 하나님을 왜 내치냔 말이죠. 안 내치겠죠.

요한일서에서 적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결정적 차이는 적그리스도에게는 성령이 안 나온다는 겁니다. 성령이 안 나와요. 세례 요한의 한계가 뭐냐 하면 세례 요한은 인간이 마음먹고 하려면 할 수 있는 세례를 줬어요. 그건 물속에 들어가면 되니까요. 요단강물에 들어가서 ‘아저씨, 세례 주세요.’하고 세례 받으면 돼요. ‘선지자여, 세례 주세요.’하고 세례 받으면 돼요.

그런데 문제는, 성령세례는 전 펴놔도 성령 안 오면 그만이라는 거예요. 성령세례가 인간으로서는 대단히 난처한 일입니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필연적으로 전 펴면 돼요. 여기 물 있고 여기 사람들 모이고 하면 되는데, 성령세례는 필연이 아니고 우연이거든요. 사건이 터져야 돼요. 성령이 내려오는 사건.

마치 예수님 같아요. 예수님을 붙잡는다고 붙잡힐 분이 아니란 말이죠. 부활하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에요. 딱 세 번밖에 안 왔어요. 부활하고 난 뒤에 그 친했던 제자들에게 세 번밖에 오질 않았어요. 요한계시록 빼놓고 전체 있을 때 세 번, 개인적으로 온 경우는 빼고. 사도 요한 같은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왔잖아요. 50명 있을 때 온 것 빼고, 전체 있을 때는 세 번밖에 오질 않았습니다.

이것은 어느 쪽에서 어느 쪽을 못 잡는다? 인간 쪽에서 메시아를 못 잡아요. 왜? 분리되었기 때문에. 인간이 들어갈 수 없는 세계, 인간이 들어가봤자 살 수도 없는 세계, 그리고 자기 자신이 알 수 없는 세계, 그 세계가 바로 천국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실 때는 인간의 모든 기대치와 예측을 피해가면서 오시게 되어 있어요. 이게 은혜라는 거예요. 은혜는 인간이 예측한대로 오질 않습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충실하게 인간이 너무나도 인간적인, 니체가 지은 책 이름이 그거에요, 인간적으로 충실할 때, 성령께서 오실 사람에게는 와버립니다. 인간이 충실하다는 것은 인간 자기가 충실한 영역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령께선, 특히 요한일서에는 그래요, 이걸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구역 또는 영역은 인간 바깥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인간이 할 수 있다는 것,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 안, 그 안에서는 철저하게 인간적이죠. 철저하게 인간적이에요. 여기 메시아, 하나님, 삼위일체 다 들어있어요. 심지어 인간이 자기를 부정하는 것, 부인하는 것도 이 안에 다 들어있죠.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못났습니다. 나는 천하의 죄인입니다. 가슴을 막 치면서, 죄인입니다. 왜 더 치지, 왜? 더 치지? 막 치니까 뭔가 뜨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불 질러줘? 식용유 공장에 한번 집어넣어줘서 홀라당 타게 해줘?

인간의 어떤 행동도 이미 인간이 행동하는 그 영역을 주님께서 아시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 나온다는 그 예측 바깥에 주님이 계셔요. 그 바깥에. 그래서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이것은 하나의 겸손이고 윤리도덕적인 자기 낮춤을 위해 노력하는 건데 자기 낮춤은 결국 자기 높임이잖아요. ‘내가 이처럼 낮추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뭐?’ ‘안 봐줍니까?’ 이런 식으로. 네가 아주 용을 쓰는구나, 용을. 네 옆에 있잖아, 적그리스도.

그런데 그땐 적그리스도라는 말을 빼야죠. 인간에겐 적그리스도가 없어요. 인간은 그리스도도 본인이 선택하기 때문에 세상에 적그리스도를 선택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잖아요. 아니, 자기가 다니는 교회를 이단이라 하는 교회가 어디 있어요. 이단은 바깥에서 이야기하는 거죠.

이 구천지야, 너 이단이다. 벌써 오래 되었으니까 신천지도 오래 되면 구천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쪽에서 뭐라고 하느냐? ‘우리가 진실하다’ 이러잖아요. 그러한 구분, 그러한 분류가 주님하고 무슨 상관있어요? 아무 상관없는 거예요. ‘우리는 진짜 교회입니다.’ 그 말하는 자체가 그게 이단이라는 뜻이에요. 주님께서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없어요.

주님께서는 “너한테 성령 갔다. 그거 받았나?” 이렇게 합니다. 성령입니다. 그런데 요한일서에 보면 그 성령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1장 7절,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되어 있죠. “아들 예수의” 뭡니까? “피”죠.

자, 이제 여러분들이 답변해야 돼요. 피가 왜 생기죠? 예수님의 피가 왜 흘려졌습니까? 무엇 때문에 흘려졌습니까? 초반에 이야기했는데요. 두 자. 하나님과 인간이 ‘분리’되었기 때문에 생긴 피거든요. 분리되었기 때문에 생긴 피입니다. 분리될 건데? 아니에요. 분리될만하다? 아니라니까요! 분리될까 말까 하다가 분리 안 됐다, 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완벽하게 분리되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 피에요. 완벽하게.

인간에게는 구원이 없음이 완벽하게 명확해진 게 피다 이 말이죠. 그런데 이미 끊어진 그 끊어짐을 가져와서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걸 들이대는 거예요. 성령께서.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예수님이 이 땅에 왔을 때 아버지하고 함께 있었잖아요. 그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성령이 있었어요.

요단강에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을 때 하늘에서 성령이 오면서 명확하게 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하고 이미 그 관계가, 제3 제4 누구도 끼어들 수 없고 그 관계가 그 자체로 확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어떤 자도 하나님이 아버지가 아니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에요. 그걸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렇게 확정되었고 그다음부터는 예수님께 성령이 오셔요. 그래서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받는 것도 누가 그렇게 지시를 내렸느냐 하면 성령에 의해서 예수님께서는 광야에 가셨고 마귀한테 시험을 받았어요. 예수님 자기 마음대로 못했어요.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서 그렇게 한 겁니다.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의 언약, 그 중간에 그걸 준비하신 분은 성령, 그 구조 그 틀을 예수님이 피 흘리시고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하는 겁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서는 분리. 그런데 성령께서, 예수님께서 분리되었다는 그 피를 성령과 동반해서 찾아오게 되면 그것은 그다음부터 피 가운데 예수님과 서로 사귐이 생겨버려요. 피 가운데서 사귐이 생겨버려요. 이미 분리되었다는 그 사실이 재료가 되어서 사귄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그 피 앞에서 내 구원 시도가 성립이 됩니까, 안 됩니까? 그 피 앞에서? 성립이 안 되죠. 성립이 될 수 없어요.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만져보라 했어요. 그때가 이미 예수님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첫 번째 찾아오셨을 때에요. 찾아와서 성령을 받으라 하시면서 창 자국, 못 자국 만져보라 했어요. 도마가 “나는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다.”라고 했기 때문에.

그러니 이 관계는… 예수님께서 자기 창 자국, 못 자국을 보여줄 의무는 없어요. 그러나 그 제자들에게 무엇이 주어졌다 했습니까? 성령이 주어졌잖아요. 성령이 주어졌죠. 그러니까 성령은 제자들을 구원하는 용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어떤 분이고 어떤 메시아가 참된 메시아인지를 증거해야 될 사명이 제자들에게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진짜 메시아, 적그리스도가 아니고 진짜 그리스도의 차이점은 뭐냐? 피를 생산한 창 자국과 못 자국과의 관련성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주님께서.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적그리스도의 특징이 뭐냐 하면 보인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이미 예언했어요. 마지막 때에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해도 나가지 마라. 모조리 다 적그리스도에요. 주께서 오실 때에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게 아니라 완전히 세상이 다 깨지면서 찾아오기 때문에. 이 세상 자체가 무대 세팅한 거거든요. 무대장치란 말이죠. 무대장치를 찢어버리고 이걸 완전히 허물어버리고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이 예상한 이상이죠. 인간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진화론에서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잖아요. 이 말은 인간만 달라질 뿐이지, 환경은 인간이 어떻게 손댈 수 없다는 걸 전제로 하잖아요. 그런데 환경 그것은 하나의 무대 세트장이었어요. 환경을 치워버리니까 환경 뒤에 누가 나타났어요?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이 나타나버렸죠. 따라서 이 자연세계라는 환경도 덫이었고 이게 트루먼쇼의 세트장 같은 거예요. 이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게 진실이 아니고 이것은 허울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을 흙이라 이야기하겠습니까. 무슨 흙이 밥을 먹고 흙이 운동을 하고 하겠어요. 그러니 인간이 아는 흙이라 하는 것은 진흙뿐인 흙이죠. 이 진흙뿐인 흙 속에 인간은 자기 자신을 포함시킬 의사는 전혀 없습니다. 자기는 흙이 아니라고 우기는 거예요. 흙인데 흙이 아니라 했으니까 악마의 형상이 인간과 만난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적그리스도가 이끄는 대로, 악마가 이끄는 대로 인간은 조종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첫째 시간 마치면서 다시 한번 중요한 것 정리해봅시다. 세례 요한은 눈에 보이는 세례를 줬어요. 그게 물세례. 물세례 받았다고 자동적으로 성령세례 옵니까, 안 옵니까? 안 오죠. 이게 분리에요. 이게 단절된 거예요. 이게 끊어진 거예요.

그러면 인간들 세계는 뭡니까? ‘성령세례 줄 것도 아닌데 그럼 물세례 받을 필요도 없네.’ 이렇게 되겠죠. ‘물세례 받을 필요가 없지 아니한가. 물세례 받으나 안 받으나 성령세례 온다면 귀찮게 물세례를 받을 이유가 없지 아니한가.’라고 물세례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물세례를 보면서 내 구원에 이익이냐, 내 구원에 보탬이 되느냐를 염두에 두고 물세례를 봤다면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성령세례 받아도 그건 성령세례를 안 받은 거예요. 성령세례 받아도 소용없어요. 성령세례 받으면 나 구원받을 거야. 누구 마음대로? 누구 마음대로 성령세례를 줘요.

성령세례 받겠다는 이 자체도 적그리스도가 조성한 종교 내에 있는 하나의 교리로 자리잡고 있어요. 하나의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고요. 왜? 인간들이 원하고 있으니까. 적그리스도는 무조건 인간들이 원하는 걸 주는 거예요. 분리가 아니고 도와주는 거예요. 천국 가도록 서비스해주는 겁니다. 천국 가는 여행사에요. 천국 가는 여행사. 천국 갈 때 노정 필요하다고 5만원짜리 전부다 하나씩 옆에 차고 가시는 길 곱게 보내주는 보람상조 같은 거예요, 이게. 종교라는 게.

끝으로 이 얘기를 하나의 숙제처럼 남기고 두 번째 시간 넘어가겠습니다. 뭐냐 하면 ‘예수님에게는 이항대립이 없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환청을 겪고 있는 사람은 환청이 막 들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환청이 들리는 환자보고 다른 가족들이 이야기합니다. ‘여기 아무도 너보고 이야기하는 사람 없어.’라는 말이 환청 들리는 사람에게 도움 되겠습니까, 도움 안 되겠습니까? 도움 안 되죠.

왜냐하면 멀쩡한 사람은 ‘여기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 이게 이항이에요. 서로 반대되는 두 항이잖아요. 그러니까 두 개의 항, 이항대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가운데 아무도 아까 이야기한 사람 없어. 없으니까 들리는 소리도 없다고.’라고 이항구조 안에서는 이게 멀쩡한 사람끼리는 통하는데, 환청 있는 사람은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본인이 이야기가 안 들리는 게 아니거든요.

서로 이야기하는 사람 있으면 들리고 없으면 안 들린다는 이항대립구조가 환청 들리는 사람한테는 통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 당신들한테는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안 들리지. 문제는 나한테 들린다는 게 문제잖아요. 나한테.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거냐 이 말이죠. 그래. 물세례는 있어도 성령세례는 없다. 그런데 나는 성령세례 받았는데 어떻게 할 거냐. 어떻게 할 건데요? 그건 10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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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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