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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40311a 부산강의 : [시편]66(50:8)-태어난 언약자유게시판시편

20240311a 부산강의 : [시편]66(50:8)-태어난 언약
(강의:이근호 목사)

시편 50편 하겠습니다.

시편 50편 전체 내용을 말씀드리면, 첫째는 멈추지 않는 하나님의 활동인데 그 내용이 뭐냐 하면 자기 백성 모집하는 활동을 시편 50편에서 죽하고 있어요. 시편 50편을 보든 안 보든 내 소관 아니고 여러분 소관이니까 다 읽어 와야 돼요. 그다음에 두 번째가 뭐냐 하면 모집이 된 자를 뭐로 바꾸느냐 하면 모집책으로 바꿔요. 모집이 된 자로 하여금 모집책이 되게 하는 거예요. 점조직으로 분열되게 하는 거예요.

세 번째가 뭐냐 하면 이 멈추지 않는 작업 중에서 새로운 존재가 나오는데 그 존재가 악인의 등장, 악인의 출현되는 겁니다. 모집책이 모집하면서 백성들만 모집하는 게 아니고 백성들 하면서 주님의 멈추지 않는 작업이 분류작업이에요. 분류 작업을 하면서 악인이 출현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1번, 2번, 3번의 진행을 시편 50편에서 나열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뭘 알아야 되느냐 하면 악인에 대해서 나 중심의 악인은 악인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지옥 가는 것 아닙니다. 악인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에 의해서 모집책이 되면서 비로소 악인이 등장해요. 그러면 이 악인은 나의 악인입니까, 하나님의 악인입니까? 어느 쪽이에요? 하나님의 악인이에요.

그러면 하나님의 악인을 누가 방해하느냐? 내가 내 선입관으로 저 인간은 나쁜 인간이라고 규정되는 그것이 하나님의 작업에 방해물이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분류작업을 할 때 시편 50편은 하나님이 분류작업을 하는 거예요. 모집책을 통해서 하는데 분류작업을 건방지게 내가 또 따로 해요. 하나님의 분류작업을 내가 따로 하니까 여기서 엄청난 오류가 발생 돼요.

내가 나를 분류하게 되면, 여러분 물어봅니다, 초반부터. 나는 천국 갈 사람으로 분류할까요, 지옥 갈 사람으로 분류할까요? 자기를 천국 갈 사람으로 분류하지요. 이 배후에 누가 있느냐 하면 배후에 악마가 있어요, 마귀가 있어요. 마귀는 인간에게 네가 신이라 했거든요. ‘내가 신으로 만들어줄게. 어떤 도움과 어떤 후원을 다해서라도 너는 절대적 존재로 만들어주겠다.’ 신은 절대적 존재를 말합니다.

절대적 존재의 특징은 뭐냐? 하자가 없어요. 오류가 없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입장에서 오류가 없으니까 이걸 자기 의라고 하는 거예요. 인간 속의 괴물을 인간 속의 마귀는 어떤 모습이냐 하면 모든 걸 포기해도 포기 못하는 모습, 뭐가 나오느냐 하면 자기 의에요. 자기 의의 특징이 뭐냐? 괴물이고 마귀의 특징이 뭐냐?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성경적 근거가 없으니까 이걸 세 자로 하면 ‘무조건’이에요. 무조건, 무조건. 내가 하는 생각, 행동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의로워요. 아니 무조건 의로워야 돼요. 이걸 지난 번 부산강의에서 이걸 판타지라 했지요, 환상. 환상의 끝은 뭐가 나타난다? 나는 무조건 옳다. 나는 무조건 정당한 존재가 딱 들어있어요. 판타지, 환상이죠.

환상의 특징은 중간에 내가 있고, 내가 나의 어려운 말로 외연이라 하는데, ‘외연’이란 말 잘 안 쓰지요. 바깥에 자기 영향력을 확장시켜서 생긴 그 관계망을 외연이라 합니다. 바깥에 있는 껍질, 안에 호두알이 들어있지만 바깥은 호두껍데기가 있지요. 땅콩 있으니까 땅콩껍질이 있지요. 사탕 있으면 사탕껍질 있지요. 포장지를 바깥으로 계속해서 확장시키는 그걸 외연, 바깥에 있는 그러한 장막 같은 걸 외연이라 하는 겁니다.

나라고 하는 인간이 외연이 되면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것을 ‘사회’라고 이야기하고요, 이걸 ‘세상’이라고 이야기라고 하고요, 이걸 ‘자연세계라고 하는 겁니다. 자연세계를 탐구하는 걸 뭐라고요? 과학. 과학은 어디서 나왔다? 판타지에요. 과학은 환상에서 나온 거예요. 과학은 정답이 아니고 환상입니다. 뉴턴이 발견한 것은 환상이고,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것은 환상이에요.

과학이란 환상, 내가 보기엔 미신인데요. 과학이란 미신은 무엇과 관련돼 있느냐 하면 참 이건 너무 중요해서 크게 강조하고 싶어요. 과학이란 환상은 무엇과 관련 있는가? 나에게 무엇이 이익이냐? 나의 생존에, 내가 여기 살아가는데 어떤 이익을 줄 것인가가 환상을 유발하게 돼 있습니다.

성경을 일독했습니다. 창세기부터 일독을 했어요. 일독하고 난 뒤에 느낌이 뭐냐 하면 이 성경이 내 생존에 어떤 이익을 줄 것인가? 누구에게? 나에게. 이것 뭡니까? 환상이죠. 그 안에는 뭐가 들어있습니까? 나의 절대적 존재가, 나는 어떤 경우라고 하자 없고, 오류 없고 나에게는 어떤 경우라도 실수가 없다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이거는 철학자 칸트가 발견한 건데 인간은 실수를 할 때 그다음에 뭘 하느냐 하면 실수+‘반성’을 해요. 그러면 실수는 실수지만 반성을 해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실수와 반성이 만나서 이것이 나의 의가 돼요. 부흥회하면 뭘 하죠? 내 죄를 자복하죠. 내 잘못 끄집어내고 부흥회하고 남는 결과는 자기 의로움이에요.

이게 뭘 유발한다?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 전부 다 환상을 유발하는 거예요. 이것은 모든 인간이 다 그렇게 합니다. 왜? 모든 인간이 마귀에 속했기 때문에 그것을 쉽게 말해서 인간은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간다, 이렇게 표현하는 겁니다. 그 인간의 잘난 맛의 극단적인 것, 최정점에 있었던 민족이 누구냐? 유대민족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와 접촉해서 죽었습니까? 유대민족과 접촉해서 죽었지요.

그 유대민족의 중심처가 여기 2절에 나옵니다. “온전히 아름다운” 그다음에 지명, 공간 나오지요. “시온” 감람산 근처에 산이 세 개 있어요. 첫째 감람산 하나 있고, 중간에는 성전 산이라 하고, 성전 산 동쪽에 시온 산이 있어요. 예루살렘은 세 가지의 산으로 구성돼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라마단(رمضان)이란 이슬람교도들이 기도하는 제일 큰 절기를 맞이해서 이스라엘 군대가 성전 산에 들어갑니다. 어느 정도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혼란이 일어나지 않는 숫자 외에는 이스라엘 군이 총 들고 자기 성전 산 사원에 오는 것을 배척하지요. 데모하면 안 되니까. 현재 이스라엘이 장악하고 있어요.

예루살렘이 여기 있으면 동쪽에 감람산, 성전 산, 이쪽에 시온 산 합해서 예루살렘이라 합니다. 가본 사람들은 알아요. 감람산이 유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한 것. 감람산 위에는 예수님이 승천했다고 해서 승천교회가 있고, 밑에 내려가면 올리브나무가 있어요. 그 밑에 겟세마네 교회가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가고, 맨 시온 산이 성벽 안에 들어있어요.

강의했으니까 물어보겠습니다. 시온 산은 공간입니까, 공간이 아닙니까? 공간이죠. 공간은 어디에 속하느냐? 자연에 속합니까, 속하지 않습니까? 자연에 속하지요. 자연은 시간과 공간으로 돼 있어요. 그러면 시온 산을 볼 때 여기 시온 산이고 예루살렘이라 할 때 그게 환상일까요, 실제입니까? 환상이에요. (그러니까 늦게 오신 거예요.) 여기 시온 산이 있다? 환상이에요.

거울 보면 내 모습이 비추지요. 그 내 모습이 나일까요, 아닐까요? 나라고 할 때 그게 환상일까요, 실제일까요? 그게 환상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인간은 자기 환상을 자기 능력으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어제 낮 설교한 것 잠깐 예를 들어볼게요. 사울 왕이 죽은 사무엘을 불러내요. 여기서 사울 왕이 완전히 오류를 발견합니다.

사울 왕이 사무엘을 부를 때 사무엘은 죽었고 죽음 사이에 있고, 자기는 신접한 여인과 더불어 산 자에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이 자체가 자기는 만지면 있잖아요. 살아 있는 것 맞잖아요, 숨 쉬잖아요. 살아 있다는 게 환상인 줄 몰랐던 거예요.

사울과 신접한 여인이 어느 쪽이냐 하면 죽은 자의 쪽이에요. 사무엘 쪽은 산 자의 쪽입니다. 그게 히브리서 12장에 나오거든요. 왜냐 하면 사무엘은 무엇과 함께 있느냐 하면 언약의 완성과 함께 있어요. 하나님의 계시와 함께 있고 사울과 신접한 여인은 계시에 잘린 쪽, 반대쪽에 있어요. 죽은 자의 세계지요. 결국은 자기 무덤이 될 거예요.

예루살렘을 오늘 이야기할 텐데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2절, 제가 읽겠어요.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죠. 묻습니다. 시온 산이 지에 있습니까, 하늘에 있습니까? 지금 모세 있는 데 아니에요. 모세는 공간이고 공간은 인간의 이익과 관련돼서 뭐가 됐습니까? 환상으로 이해되는 거예요.

그러면 실제 시온 산은 어디 있습니까? 하늘에 있고 거기에 누가 있습니까? 거기에 천만 천사들이 함께 있지요. 여기에 시온 산에 살아계신 하나님도 계시고 천사도 있고,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23절)이 함께 있는 곳, 그걸 다른 표현을 인간이 할 수 없어요. 그걸 실제가 아니고 ‘실재’ 영어로는 똑같아요, reality.

실제는 허상과 가상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진짜배기는 뭐냐 할 때 실제로 있느냐? 실제로 일어났어? 실제로 그 사람이 살아 있단 말인가? 이런 거예요. 드라마에서 남편이 실종됐는데 나중에 12년 뒤에 ‘우리 남편이 실제로 살아 있어’ 할 때는 ‘실제’에요.

내 눈에 안 보이지만 실제로 있는 건 실제고, ‘실재’란 것은 이 세상 모든 것에서 찾을 수 없는 것,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언어로 온전하게 합치 되게 표현할 수 없는 세계, 이게 실재 세계에요. 영어로는 그냥 reality. 인간은 오류의 세계기 때문에 이미 범죄 한 세계기 때문에 real이 아니에요. 이걸 다른 말로 쉬운 말로 하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할 때 그 진리, truth라 할 수 있는데 real. 진리는 이 땅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땅은 멸망해야 돼요.

그런데 언어로 표현 못하는 것을 성경에서는 뭐로 표현되느냐 하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일어났던 개념과 결부된 언어들이 있어요. 시온 산, 예루살렘, 천사 전부 다 뭡니까?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인간들의 언어로 통용되는 개념을 실어버린 언어들이에요. 그런데 그 언어들 단어 만 개 외우면 구원받습니까? 아니죠. 아닌 거예요.

그래서 어느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어요. 강남강의인지 설교 때인지 기억이 없어요. 고린도전서 2장 4절 누가 읽어보세요.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보세요. 언어가 수단이어야 되는데 수단이면서 수단을 그 다리를 발로 차버리는 겁니다. 내가 전하는 것은 인간의 말로 효과 있게 전할 수 있다, 없다? 이게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뭐냐? 말 말고 다른 무엇? 그것이 바로 2장 13절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돼 있지요. 괄호 열고 여러분들이 그 뒤의 말을 집어넣어 보세요. 사람의 말로 설교라든지 강의라도 안 된다, 괄호 열고 여러분들이 빈 칸에 집어넣으세요. 정답은 모른다 치고 뭘 집어넣겠어요? 없지요.

그러니까 구원은 하나님이 찾아와야 되는 거예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말발 밖에 없어요. 많이 듣고 많이 배우고 많이 익히고 소용없습니다. 그게 방해로 작용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요. 인간은 나한테 무엇이 이익이냐가 요지부동 변하지 않는 무조건이에요. 성경 봤다, ‘나에게 이익은?’ 기도했다, ‘나에게 이익은?’ 전도했다, ‘나에게 돌아올 이익은?’ 본인이 본인을 삭제를 못해요. 잘라낼 수가 없어요.

이것은 왜 그러냐 하면 마귀가 이미 우리를 자기 것으로 삼았기 때문에 내가 죽고 싶어도 마귀 허락 없이는 자살도 안 돼요. 가룟 유다가 사탄이 들어갔으니까 자살한 거예요. “할까요, 말까요?” “죽어!” “예예.” 이걸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살고 죽는 것도 인간 마음대로 안 된다. 평소에 다 아는 거고요.

구체적으로 말해서 마귀의 허락 없이는 죽고 살고도 안 되는 거예요. 이걸 누가 아느냐? 하나님이 아시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은 우릴 살려주느냐? 우리를 살려주지 않습니다. 판타지를 왜 살려줘요? 하나님은 우리를 살려주는 게 아닙니다. 뭘 살려주느냐? 하나님이 살려주는 건 언약입니다. 우리 속의 언약을 살려줘요. 우리를 죽이고 우리 안에서 말씀을 끄집어내죠.

흉측한 예지만 드라큐라가, ‘오 사람이구나’ 하고 사람이 좋아서 사랑하는 게 아니고 사람의 간을 빼먹는 것처럼 하나님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를 구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껍데기로 땅콩껍질로 갖다버리고 우리 안에서 본인이 언약을 집어넣고 그 집어넣은 언약을 되찾는 식으로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러면 언약을 되찾는 게 뭐냐 하면 이걸 신약에 와서는 성령을 집어넣고 성령을 되찾으면 죽은 자를 살리는 그 힘, 능력이 있으면 우리도 죽은 자에서 산다고 했어요. 마태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안 믿어? 좋아, 좋아. 나를 부정해? 괜찮아. 나를 부정하고 나를 안 믿는 것은 내가 일시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장차올 성령을 모독하게 되면 오는 세대까지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한다 했어요.

이 말은 하나님이 사람들이 무시하는 것을 예수님이 인간에게 무시당할 쪽으로 오신 것은 우리 속에서 우리의 오류,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자신의 죽음과 결부시켜서 파악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네가 나를, 모든 인간이 예수님을 무시해요. 왜? 자기가 이미 절대적 신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밖에 없는데 예수님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더 중요하니까.

그렇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유가 모든 인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다, 없다? 아무도 없어요. 베드로도 따라가다 놓쳤어요. 끊어졌어요. 끊어졌는데 베드로가 구원받은 것은 무엇 때문에 구원받느냐 하면 성령이 오셔서 구원받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믿어서 구원받은 게 아니고요 성령이 와서 구원받은 거예요.

똑같은 절차를 사도 바울이 합니다. ‘예수 믿으세요?’ 무슨 뜻입니까? 못 믿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으세요. 구원을 받습니다. 로마서 10장에 나오지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 아무도 없어요.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예수 믿으세요. 구원받는다’ 해놓고 성령이 말씀과 더불어 해버리면 예수 믿어서 구원받는 이게 맞는 말이고, 그 증거가 뭐냐? 시편 50편에 있는 모집책으로 강제로 뽑힌 자가 누구다? 바로 나였다는, 나라는 겁니다.

내가 구원받기 시도한 것이 아니고 시편 50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주께서 선방 때린 거예요. 찾아와버린 거예요. 찾아왔을 때 그다음에 성도의 뜻은 뭐냐? 왜 내 행함으로 구원 못 받았지? 내가 성경 달달 외우는 것으로 이게 왜 하나님은 안 받아주지? 하나님은 나의 어떤 것도 안 받아주는 이유가 뭐지? 이것을 이미 구원받은 기쁨으로 파악하는 거예요.

시편 50편이 그냥 농담 삼아 던져보는 일이 아니고 이게 반드시 이루어져야 될 일이구나. 여기 시온 나오지요, 여기에 하나님 나오고 인간 나오지요. 이게 이스라엘 역사 속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뭐냐 하면 하나의 히브리서에 보면 그게 비유에요. 실재가 아니에요. 역사는 실제는 맞는데 실재는 아니에요. reality는 맞는데 real은 아니에요. 진리를 모방한 건 맞는데 진리 자체는 아니에요.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실제에요. reality 맞아요. 하지만 real은 아니에요. 진짜 real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관계를 맺어줘야 돼요. 너는 내 백성이고, 할 때 그게 real이에요. reality가 아니고 real이라니까요. 이게 실재에요. 그래서 우리는 항상 어디까지 맴돌아요? 환상이냐, 실재냐 그 범위 내에서 맴돌아요.

환상은 언어로 이해되는 것, 언어로 파악되는 것. reality 실제는 언어 말고 바깥 세상에 있는 그 무엇, 이게 실제인데 그래도 그걸 안다할지라도 우리는 우리 환상에서 빼낼 수 없어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두 계열을 다 안다고 하면 그걸 종교라 하는 거예요. 그걸 기독교라 하는 거예요. 기독교는 구원의 능력이 아닙니다. 그냥 인간의 탐색, 탐구의 결과입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이룰 수 있고 어디까지 이룰 수 없음을 누가 판단해요? 본인이 내리거든요. 그거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유대교라고요. 나는 어디까지 알고 어디까지 모른다는 것은 그래봤자 무엇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그렇게 아는 지식이 나한테 어떤 이익을 제공할 수 있겠느냐, 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이게 못 벗어나요. 이것 자기 의, 자기 이익 셉니다. 이것 세요.

여기서 질문 하나 들어갑니다. real 실재로 성령 받고 난 뒤에 자기 이익 없어집니까, 안 없어집니까? 안 없어져요. 충분히 이용하지요. ‘네가 이랬던 자였었어. 그래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거예요. 성령 받아도 자기 이익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육신이 가만 두지 않습니다.

그러면 내 몸을 통해서 영광을 받겠다는 주의 뜻은 좌절되지 않는가? 여기서 주님께서 뭘 하느냐? 역사를 절단 내버립니다. 역사 절단 이야기하겠습니다. 역사 절단 이야기, 역사를 두 동강내요. 잘라버리는 거예요. 절단해야 새로움이 나온다. 역사를 자르지 않는 것, 이걸 반성이라 합니다.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해야지, 이런 것. 회개, 반성이에요. 내가 두 번 다시 하면 손모가지를 자른다. 내 눈을 빼버린다, 이런 것.

역사를 자르지 않으면 과거의 추억과 과거의 기억을 개조를 하고 개선하고 보정하고 질이 좋은 것으로 전환시켜 계속 내 것으로 붙드는 경향이 있어요. 자아의 질을 높이는 데 역사적 반성만한 것이 없다. 나라는 질을 나라는 성질을 보다 향상시키는 데 역사적 반성 외에 적절한 게 없습니다. 그러면 나의 자아의 질을 유지한다는 것은, 마귀가 심어놓은 내가 신이기 때문에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역사적 반성할 때 역사적 반성에 들어가는 것 중에서 최고의 역사적 반성은 뭐냐? 성경공부 외에는 더 뛰어난 게 없겠지요. 성경공부, 말씀 듣기, 설교 듣기, 최고지요, 이거는. 하나님이여 관계회복 되겠습니까, 하나님이여 저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다시 소통하는 관계가 되겠습니까? 맨날 기도가 그런 기도. 그러면 살아계신 하나님 같으면 답변도 안 해, 그런 시시한 것. 만약 한다면 그렇게 해서 너한테 돌아올 이익은 뭐냐, 이렇게 묻죠. 그렇게 해서 네가 얻고자 하는 게 뭐냐 말이죠. 주고받는 게 인간관계인데.

그러면 하나님께 모든 것 버리고 헌신하고 선교사 하겠다고 전부 다 진짜 재산 다 버린 선교사의 최초 누구냐 하면 베드로, 야고보, 요한, 열두 제자에요. 자기 목숨까지 다 바친다고 했어도 삼 년 만에 다 떠났잖아요. 소명감이 가득 찬 그들보다 더 선교적인 게 어디 있어요? ‘네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라’ 언어로 들었단 말이죠. 자기가 환상인 것도 모르고 그렇게 해서 주님과의 관계가 돈독해진다고 착각한 거예요.

주님은 나의 기억을 추억을 끊어버리는 거예요. 기억을 끊어줘야 새로움이 나와요. 옛날에 전설에 이차돈이란 중이 헤모글로빈이 있어서 벌건 게 나왔는데 이 사람은 치즈가 들어있는지 허연 게 나왔다는 거예요. 이건 뭐 모차렐라 치즌가. 말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내 역사주의가 방해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걸 절단하면 절단면이 나오겠지요.

절단면에서 과거보다 나은 새로움이 아니고 그 새로움조차도 옛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상상도 못한 새로움이 주님의 성령으로서 우리를 잘라버립니다. 그러면 나는 뭐가 되느냐? 반 토막 난 나, 온전한 나가 아니지요. 문제 있는 나가 될 때 그 나에서 쏘아지는 게 뭐냐? 온유와 화평과 양선과 자비와 형제우애, 성령의 열매가 나오는 거예요.

다시 사울 이야기해봅시다. 사울과 신접한 여인, 지요. 무당. 신접한 여인이 누굴 불러내느냐 하면 사무엘을 불러내요. 이게 코미디에요. 왜 그러냐 하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사무엘은 지금 누구와 함께 있습니까? 하나님의 계시 완성과 함께 있어요. 그럼 히브리서 12장에 보면 이쪽이 산 자에요. 그리고 이쪽은 관계가 끊어졌거든요. 그럼 이쪽은 뭐냐? 죽은 자들이에요. 죽은 자들의 동맹, 연합, 계모임. 죽은 자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있어요. 신접한 여인이 사울 왕이 희망이 좌절되니까.

끊어졌다는 말은, 역사는 흐르잖아요. 잘라버렸으니까 뭐가 날아갔습니까? 기대와 희망이 잘려진 거예요. 그런데 기대와 희망 속에 뭐가 들어 있느냐 하면 나의 이익은요, 나에게 돌아올 이익은 뭡니까가 기대와 희망이란 고상한 단어 안에 포장돼 있습니다. 어제 낮 설교할 때 그런 이야기했거든요.

사람이 분노하는 게 남에게 분노하는 게 아니고 자기에게 믿음 없음을 제대로 못 감추고 남한테 들켰다는 자기한테 분노가 일어나는 거예요. ‘왜 너는 철저하지 못해, 이 바보야.’ 그래서 분노가 일어나면 마귀 일이고, 감사가 되면 무슨 일입니까? 성령의 일이에요. 사울이 분노를 일으킵니다.

자기는 확인받기 위해서, 왜냐하면 사무엘은 계시를 갖고 있으니까 계시 앞에서 과연 이스라엘은 역사가 희망과 기대를 갖고 이어지겠는가를 궁금해서 왔는데 사무엘이 하는 이야기가 이걸 사자성어로 뭐라 하느냐 하면 ‘확인사살’이에요. ‘너는 뭘 해도 안 돼. 끝났어. 빠이빠이, 부르지 마라.’ 가버려요.

왜 이렇게 죽어야 되는가? 사울 본인 자꾸 자기가 살았다고 자기 자신에 대해선 무조건, 무조건 나는 괜찮은 존재라고 단정 짓고 그다음에 뭘 받습니까? 성경이고 복음이고 완전히 뒤집어씌운 거예요. 복음에 공부한 두께가 많으면 자기에게 뭔가 질적으로 향상되었다고 여기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삼겹살에 비계 많으면 그게 향상된 좋은 상품의 삼겹살입니까? 아니지요. 잘라내야 되지요.

어린애가 돼야 되는데 어린애가 아니고 점점 더 고상스러운 어른이 되는 게 신앙생활의 목표처럼 그렇게 간주된 겁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어느 자리에다 하느냐 하면 환상이 시작된 그 자리를 되돌려줘요. 되돌려주면 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할 때 비로소 거기서 시편 50편의 말씀처럼, 일번 초반에 나온 단어가 뭐라고 했습니까? 멈추지 않는 것, 새로움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처럼 새로움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왜? 주의 일은 멈춘다, 안 멈춘다? 멈추지 않아요. 주님 혼자 바빠요. 자를 때에 주님께서 여전히 일하시는구나. 그걸 예수님도 이야기했어요.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예수님은 멈추지 않아요. 세상 끝 날까지 멈추질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자기 역사를 다듬다보니까 나중에 나이 한 오십, 육십 되어 어지럽다 이러면서 ‘요새 갱년기인가? 힘이 빠져. 아이고, 이제 내 할 일은 집에서 들어 눕는 것밖에 없네.’ 자기 일밖에 모르니까 나이 많으니까 자기 일 멈추면 주의 일도 멈춘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자기 일 멈췄는데.

주의 일은 새로움인데 그동안 새로움을 누가 계발했냐 하면 본인이 계발한다하니까 그게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힘든 기간이 너~~~무 길어요. 자기가 한 것에 만족스러운 기대와 희망을 갖는 그 힘든 일이 너무 길기 때문에 어린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자꾸 자기가 어른스럽다고 우기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 50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시편 50편에서 첫 번째는 쉬지 않고 일한다. 멈추지 않고 일해요. 멈추지 않고 어떻게 하느냐? 자기가 원하는 백성을 친히 모집해요. 그러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거기에 방해되는 건 뭡니까? 내가 하나님의 백성 되겠다는 노림수가 있겠지요. 자기 일이 있겠지요. 그게 자기 유익이니까. 존재 했으면 천당까지 가야 존재의 소기의 목적을 이루잖아요.

그러니까 인간들은 뭘 하느냐 하면, 율법으로 뭘 하느냐? 제사를 드려요. 어디에서? 특정 장소에서, 예루살렘에서. 주께서 이걸 폐기시켜버리는 겁니다. ‘하나님이여, 율법대로 예루살렘에서 제사 드렸습니다. 제물 드렸습니다.’ 시편 50편에서 하는 말이, ‘니 제물 어디 있는데? 네 게 어디 있어?’ ‘니가 번제를 드렸다고? 번제 드리면서 실수를 했다고? 나는 니 번제에 대해서 일체 내가 거기서 책임을 묻지 않겠다.’

8절, “내가 너의 제물을 인하여는 너를 책망치 아니하리니” 야아, 이 말 딱 듣는 순간 여러분 어떤 생각 들어옵니까? ‘나 헌금 안 할래. 헌금의 부담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애 피아노 사줘야지. 학원비 대야지. 교회 간식비나 드려야지.’ 간식비나 하면 되지. 목사 사모 잘 버는데 내가 책임질 것 없고, 이것 하나 안 하나 구원받는데 뭐 하려고 헌금 하느냐 말이죠. 결국 어떤 성경을 봐도 마지막 노림수는 뭐냐? 내게 무엇이 이익이냐? 어떤 구절이 나한테 이익을 가져다주느냐? 내 생존에 손해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는 겁니다.

여기서 바로 제물에 대해서 책망하지 않겠다는 것은, 여기 있는 네가 하나님께 제물 바쳐서 들어오는 이 길을 내가 절단시키겠다, 끊어버리겠다는 거예요. 너는 구원의 대상이 안 된다는 거예요. 너뿐만 아니고 모든 인간도 마찬가지로 구원의 대상이 안 돼요.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께서 번제, 제물, 또는 제사장 이것을 통해서 이 말씀이 율법이 인격화 되는 그 시대까지 이스라엘 역사를 끌고 갑니다.

말씀이 인물로 등장하는 그날까지, 말씀이 육신이 되는 그날까지 주께서는 이스라엘 역사라는, 인간들이 다 아는 역사라는 실제, 환상에서 실제, 인간의 언어로 설명되고 실제로 거기 있네, 라고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그 역사를 주님께서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면서 그걸 비유로 만들어버려요. 하나의 모형으로 만들어버려요. 역사인데 이게 모형이 돼버리고, 인간이 존재하는데 이게 하나의 비유가 돼버려요. 판타지가 돼버려요. 모형이 되게 만드는 거예요. 실재는 없어요. 실재는 없다고요.

유대인들의 특징은 뭐냐? 그냥 기다림이에요. 예수님이 왜 돌아가셨습니까? 예수님 돌아가신 이유를 이제 알겠지요. 기다림을 없애버렸어요. 너희는 메시아를 기다리잖아요. ‘여기 왔네, 까꿍.’ 메시아가 와버렸어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 총동원 다해 말씀 구약, 그때는 성경이죠. 예수님 놓고 대조해보는 거예요.

예수님 맞나, 안 맞나 대조해보니까 이리 봐도 메시아 아니고, 저리 봐도 메시아 아니에요. 왜? 주님이 피해갔으니까. 인간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쉽게 말해서 인간 속에 악마가 요청하는 메시아 관을 다 피해간 거예요. 악마가 요청한 메시아 관은 뭐냐? 이스라엘이라는 이유 때문에 자동적으로 구원받는다는 그 메시아 관이에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냐? 그러면 합격.’

세 가지를 보면 돼요. 율법을 압축해서 그들이 만든 게 세 가지입니다. 안식일, 할례, 그다음에 성전. 기원전 167년에 안티오코스4세가 등장했어요. 다니엘에 예언된 사람이에요. 안티오코스4세가 뭐를 가지고 유대인들을 공격했느냐 하면 이 세 가지입니다. 성전에다 돼지를 제물로 바쳤어요. 강제로 법적으로 안식일을 못 지키게 만들고, 모든 유대인 남자들 할례를 금지시켰습니다.

그전에 안티오코스3세 기원전 323년경에 누가 왔냐? 알렉산더 대왕이 유대를 방문할 때 야두아라는 대제사장이 있었어요. 야두아 대제사장이 알렉산더 대왕을 마중 나갔어요. 그때 알렉산더가 뻣뻣하게 나온 게 아닙니다. 작은 나라 유대 제사장에게 절을 했습니다. 절을 하면서 내가 이 성전에 제물을 드리고 유대인의 여호와 신에게 신명을 바치겠다고 나왔어요.

그 이유가 뭐냐? 다니엘서에 보면 뭐라고 예언돼 있느냐 하면 바사 나라가 헬라 나라한테 정복당한다는 예언이 나왔어요. 그걸 보고 알렉산더는 깜짝 놀랐어요. 진짜 여호와 신이다. 그럼 내가 이 신에게 어떻게 해야 되는가, 앞으로 내 장래는 어떻게 되는가? 장래를 위해서는 내가 이 신에게 굴복하는 자세, 신이 보호하고 인도하심에 내가 굴복하겠다는 겁니다.

어떻게 알렉산더 신자 됐습니까, 신자 아닙니까? 모집책이에요, 아니에요? 알렉산더에게 뭐가 빠졌습니까? 하나님을 내 이익과 내 장래와 희망과 기대와 결부시켰지요. 자기 이익을 포기 못한 거예요. 자기가 이익 받아야 되죠? 그것은 내 존재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절대적으로 무조건 옳기 때문에, 자기 존재가.

알렉산더가 그러고 난 뒤에 11년 만에 죽어요. 죽고 난 뒤에 나라가 20명의 장군이 예선전, 준결승을 거쳐서 최종 4명의 장군이 남았어요. 남아서 땅 갈라먹기를 했어요. 현재 이라크, 이란 이쪽은 셀류쿠스 가문, 톨레미 가문은 이집트와 그 당시 예루살렘, 그때 그것을 접수했다 이 말이죠. 네 명이.

그런데 이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자기 선배 되는 왕 알렉산더의 유지를 따라서 여호와를 건드리면 자기한테 이익이 오지 않는다는 미신 같은 게 작용해서 유대나라는 세금을 경감해주고, 그다음에 그들의 전통적인 유대교의 신앙은 보장해주는 쪽이었어요. 유대교는 마카오 왕조 때생겼는데 그건 알 필요 없고요. 어쨌든 일단은 괜찮았어요.

그런데 특이한 자가 안티오코스4세가, 3세는 너무 잘해줬어요. 근데 4세가 와서 요것 봐라 해서 네가 세나 내가 세나 시비를 걸면서 의도적으로 박살내버렸어요. 톨레미와 셀류쿠스가 서로 유대 땅을 밀고 당기는 것이 다니엘 11장에 다 나와요. 나오다가 나중에 로마 때 와서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아예 예루살렘 불타버리고, 6월 9일. 유다나라가 바벨론한테 잡힐 때도 6월 9일이었습니다. B.C.586, 6월 9일. 나중에 티토스한테 A.D.70 망할 때도 6월 9일이에요. 6월 9일에 액운이 이상한지….

그러면서 여호와 신, 우리는 제우스 신을 믿는 거예요. 제우스 신당을 첨가시켰어요. 그때 유대나라가 반란을 일으켜서 전쟁이 일어나는 겁니다. 전쟁에서 셀류쿠스 주둔군이 물러나고 약간의 독립성을 보장받지요.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이 말라기가 끝나고 마태복음 오기 전에 예수님 오시기 전에 계시가 끊어졌지요. 계시가 끊어졌을 때는 뭐로 채운다? 인간의 역사로 억지로 가짜 실로 이어보는 거예요. 계시가 아닌데 역사를 계시로 대체해서 하는 거예요. 역사로 이어본다는 것은 무엇에 대한 부정 못 하겠다? 역시 후손들 혈육, 아브라함 혈육을 포기를 못하는 거예요.

포기 못하면서 신약성경까지 이어져온 겁니다. 뭐로? 역사로 이어졌지요. 결국 역사, 계시가 없는 B.C.330부터 예수님 탄생 이전의 역사를 통해서 나타난 것은 역사 안에 뭐가 그만큼 성장돼 왔겠어요? 바로 유대주의가 성장, 여기서 자라나기 시작한 겁니다. 유대주의는 뭐가 빠졌다? 계시가 빠진 거예요.

계시가 빠지고 뭐가 들어갔는가? 구약에 대한 모든 인간들의 해석이 그 빠진 자리를 다 채웁니다. 우리가 율법 지키면 우리는 택한 민족 된다고 채운 거예요. 그 해석적 전통을 채우는 겁니다.

이것이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괴물을 최종적으로 끄집어내기 위한 함정이고 덫이라는 사실을 인간들이 몰랐던 겁니다. 내가 말씀을 듣는 순간 그 말씀이 내 속의 괴물을 들춰내는 엑스레이 기계 같은 것이라는 것, CT 촬영기라는 사실을 인간들은 까맣게 모른 거예요.

말씀 앞에서 비로소 나는 죄인이라는 고백을 인간은 할 능력이 없지요. 그때 어떻게 하느냐? 사울에게 누가 찾아왔지요? 예수님 찾아왔지요. 딱 하는 이야기가, ‘너는 나를 그동안 핍박했다’ 그런데 사울은 뭐냐? 나는 바리새인 중이 바리새인이고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에요.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가 주님 만나니까 뭐로 바뀌었습니까? 핍박하는 자로 바뀌었지요. 비늘 떨어지면서 내가 알고 있던 우주관, 세계관, 메시아관, 구원관, 하나님관은 모조리 비늘과 함께 다 떨어져요. 그것이 바로 나 자체가 환상 덩어리였다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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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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