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40301a 울산강의-역대기하(1강) 1장 6절 : 솔로몬의 자기포기자유게시판역대하

20240301a 울산강의-역대기하(1강) 1장 6절 : 솔로몬의 자기포기
(강의:이근호 목사)

역대하 1장 1절부터 하겠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가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하사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 그렇게 생각하지요. 방금 했던 그 말씀 그 뒤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궤가 나옵니다. 언약궤. 4절에, “다윗이 전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궤를 위하여 장막을 쳤었으므로 그 궤는 다윗이 이미 기럇여아림에서부터 위하여 예비한 곳으로 메어 올렸고” 그다음에 이 궤가 어디 있었느냐 하면 13절에, “이에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 회막 앞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치리하였더라”

일천 번제를 드리는 장소가 기브온 산당, 예루살렘과 상당히 가까운 곳입니다. 여기에 방금 제가 언급했던 등장인물을 다시 칠판에 적어보겠습니다. 다윗 아들, 솔로몬, 그다음 여기 하나님 등장하거든요. 그다음 궤, 언약궤를 말합니다. 아들은 관계를 말하고, 다윗 아들 솔로몬, 하나님, 언약궤. 그 뒤에 일천 번제 드리고 난 뒤에 솔로몬이 기도를 할 때 언급되는 어떤 무리가 나와요. 그게 뭐냐 하면 백성이 나옵니다.

이런 조합, 다윗 아들 솔로몬, 하나님, 언약궤, 백성 이 조합을 통해서 우리는 두 가지의 상반되는 서로 대조가 되는 결론에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는 첫째는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한다. 이런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 이런 것을 조합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구원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한다, ‘나’ 자리에 하나님이 율법을 구원한다, 또는 하나님의 언약을 구원한다. 하나님께서 모세언약을 구원한다.

이 두 가지가 같을까요, 상반될까요, 대조될까요? 대조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한다는 이것만 있으면 이러한 다윗, 솔로몬, 하나님, 언약궤, 백성 이것이 나를 구원하기 위한 용도라고 하나의 결론만 맺어지면 우리한테는 별로 어려운 게 없는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한다는 나를 비껴서 ‘하나님은 언약을 구원한다’ 이렇게 돼버리면 ②번의 결론에 노출되면 ②번 결론의 방해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①번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한다가 아니고(not a but b 용법입니다), but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구원한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언약을 구원한다는 이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아니고’에 뭐가 있어야 돼요? ‘그것은 아니고, 아니야’가 먼저 등장하는 거예요. 그 ‘아니고, 아니야’의 등장 용도로서 동원되는 게 뭐냐? 하나님은 나를 구원한다, 또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한다, 또 하나님은 백성을 구원한다. 이러한 식으로 성경을 이해하도록 하나님께서 유도하신 겁니다.

그래서 ①번을 거쳐야 돼요. ①번을 거쳐야 ②번에 도달돼요. 그러면 이 말은 뭐냐 하면 나를 팽개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언약은 구원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팽개친다는 말, 또는 다른 말로 적당한 것은 뭐냐 하면 나의 것이 깨어졌다. 그런 말로도 할 수 있어요. 내 것이 깨어지고 내 세계가 와해되고 무너지고 내 것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이 다 없어지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은 언약을 구원하는 것을 인간은 알 수가 없습니다. ①번이 ②번을 가리고 방해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①번부터 먼저 나오거든요. ①번부터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 강의하기 전에 ②번을 지워보겠어요. ②번을 제가 언급했기 때문에 ②번이 있다고 생각하고 ②번을 지워보겠습니다. 그럼 남는 건 뭐만 남게요?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한다’가 남겠지요. 그러면 이 ①번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성경의 역대하에 다윗 아들 솔로몬, 하나님, 언약궤, 백성 이렇게 나오면 어떤 개념이 나오고 어떤 단어가 나오든 어디에 다 쏠리게 돼 있어요?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건지신다’에 초점이 모아지겠지요. ②번을 모르니까 이렇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나를 구원한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나는 그 어떤 경우라도 와해되지 않는다’ 또는 쉬운 말로 깨어지지 아니한다. 이렇게 이해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역대하에서 솔로몬이, 첫 번째 나오는 중요한 게 시작됩니다. 솔로몬이, 솔로몬이 왕이잖아요. 백성들에게 뭘 보여주려고 한 겁니까? ①번이겠습니까, ②번이겠어요? 솔로몬이 보여주고자 한 게 뭐였던 거예요?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에요. 이게 인간은 불가능합니다. 쉬운 말로 하겠어요.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인데 백성들은 이미 자기 뜻이 굳어져 있습니다. 뭐로? ①번으로 굳어져 있어요. 하나님은 나를 구원한다는 뜻으로 이미 백성들은 굳어져 있지요. 하나님은 나를 복 주신다, 굳어져 있지요. 이것을 피해서 백성들이 원하는 것 말고 솔로몬이 백성들의 의견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나를 구원한다는 백성들이 은근히 노리는 것과는 이게 완전히 대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 쉽게 설명하려고 애를 써보겠어요. 쉽게 들어갑니다. 백성들은 결혼해서 백성들은 부부가 되어 뭘 낳기를 원합니까? 자식을 낳기를 원하지요. 그런데 솔로몬은 자기 자식에게 관심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역대하의 내용에 대해서 일천 번제나 기도하는 내용에 대해서? 자기의 원수 죽는 거나 자기의 수명이 길거나, 자기의 재산에 관심 없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만을 알리기를 원했을 때에 솔로몬은 자기 자신한테 관심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관심이 없지요.

그러면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면 솔로몬은 어디에 관심 있을까요? 오늘 이 강의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솔로몬은 어디에 관심 있는가? 놀랍게도 아버지한테 있어요. 다윗에게 있습니다. 이미 솔로몬 자신이 자기를 포기했어요. 솔로몬 자신이 자신을 포기한 거예요. 하나님의 뜻을 얻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내가 획득한 것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버리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솔로몬을 통해서, 역대하 1장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1장, 2장, 3장을 통해서.

①번을 포기하지 아니하면 ②번이 나타나지 않는다 했지요. ②번이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뭘 건진다? 백성을 사람을 건지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모세 율법을 모세언약을 건진다했지요. 하나님은 사람이 원하는 걸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으며 그것은 평소에 사람이 원하는 것에서 방해받고 온 거예요.

솔로몬이 기도할 때에 기도 내용에 뭘 안 했다는 거예요? 자기의 수명 오래 가는 걸 안 했다 했지요. 자기가 부자 되는 걸 하지 않았다 했지요. 원수가 자길 공격하는 것, 그걸 위해서 지켜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했지요. 이건 내 자신을 지켜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나를 지키는 기도를 안 했단 뜻이에요. 그러면 솔로몬이 지키고 싶은 게 뭐냐 이 말이에요.

그거는 바로 아버지께 주었던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아버지가 누구에요? 다윗이지요. 솔로몬은 다윗에게 철저하게 종속돼 있어요. 철저하게. 와아 이거 사실은 무서운 이야기에요. 솔로몬은 아버지에게 철저하게 종속돼 있다. 왜? 자기한테 언약이 안 왔어요. 누구한테 언약 왔습니까? 아버지한테 온 언약이거든요. 아버지한테 온 언약이 무슨 언약? 다윗언약.

다윗언약에만 왔고 자기에겐 안 왔기 때문에 자기를 기꺼이 포기한다는 말은 자신을 지키는 용도로 하나님을 끌어당기지 아니 했다는 말입니다. 이걸 확장시켜서 이야기하면 솔로몬은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생각한 적이 없다는 말이에요. 솔로몬의 소원은, ‘아버지에게 준 언약이 이 땅에 이뤄지게 하옵소서’ 이거에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땅에서 이뤄지는 주기도문은 어디서 어느 사건을 통해서 완성이 됩니까?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완성되지요. 그러면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데 왜 십자가라는 죽음 사건이 벌어져야 됩니까? 땅에 있는 인간들의 방해, 무엇이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 방해되는지를 같이 동반해서 들춰내는 사건이 십자가 사건이에요.

여러분, 십자가 믿지요? (웃음) 내가 나의 존재성, 나의 소유성, 내가 구원받고자 하는 모든 시도, 그러한 생각, 의식 무엇에 방해라고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그게 방해물이 된다는 겁니다. 방금 이야기,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우리가 안 들었다 칩시다. 뭐 들어도 마찬가지지만 하여튼 모른다고 칩시다. 들어도 모르긴 마찬가지인데, 이것 다 지워볼게요. 이걸 지우게 되면 이 칠판은 화이트보드는 비어있습니다. 지웠으니까 비어있지요.

여기서 누구에게 글 써보라 한다면 이 빈 공간에 어떤 글이 채워지겠습니까? 너무 질문이 허황되어 죄송합니다. 그냥 답변하겠어요. 이것은 나의 이야기로 채워지는 거예요. 나의 인생이야기로 채워져요. 그런데 이 상태가 어떤 상태냐? 언약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 언약이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나의 이야기가 내 ‘빈 마음’(타불라 라사(tabula rasa)는 라틴어로 '깨끗한 석판'을 뜻하며, 철학에서는 보통 영어식 번역인 '빈 서판(blank slate)'으로 통용된다)의 전부를 차지하고 나의 인생이야기가 내 심령을 전부를 차지하고 내 머리의 생각과 의지의 전부를 차지합니다.

이 나의 이야기, 나의 인생이야기에 하나님의 이야기가 써질까요, 안 써질까요? 당연히 쓰여지지요. 왜? 교회 다니니까. 당연히 쓰여진다 이 말이죠. 하나님 이야기도 쓰여지고, 무슨 이야기도 안 사라지고? 나의 이야기도 같이 쓰여지는 거예요. 나의 이야기 일부로서 하나님 이야기가 개입되는 거예요. 하나님 이야기에 의해서 나의 이야기가 없어져야 되는데 추호도 없어질 마음이 없어요. 하나님을 포함해서 구원되길 원하기 때문에.

그렇다면 나의 인생, 나의 이야기는 뭘 뜻하느냐 하면 어떤 이야기를 쓰던 이건 변명입니다. 어떤 변명? 구차한 변명. 노골적으로 지저분한 변명. 인간이 신 앞에 하나님 앞에서 내놓는 모든 것은 전부 다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말씀대로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사는 게 좀 후달리네요. 바쁘네요.’ 이런 변명 이야기가 빈자리를 채워요. 하나님께서 변명 이야기하라 했습니까? 듣지도 않습니다. 안 들어요. 안 듣는데 인간들은 주저리주저리, 주저리주저리 하니까 어떤 시가 생각나네.

청포도 - 이육사(1939)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주저리주저리 계속해서 이어지듯이 이어지고, 이어지고 계속해서 나오는 것은 변명+변명+변명+변명+……, 주저리주저리 이어져오는 거예요. 왜 변명을 하느냐? 왜 인간들은 자꾸 변명을 늘어놓습니까? 그거는 사는 것이 억지니까. 사는 것이 억지로 살아요. 이게 바로 인간이 처한 형편입니다. 억지로 삽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산다는 것은 비참한 짓입니다. 비참한 짓을 하면서 그래도 죽기는 싫을 때 여기서 등장하는 것은 뭐냐? 자기연민. 자기연민에서 글자 하나 빼버리면 뭐가 되느냐 하면, 드디어 나옵니다. ‘자기 의’

율법을 배제하고 언약을 배제하고 꼭 쥐는 것은 나, 신이시여 나는 나를 연민을 갖고 불쌍히 여기니까 하나님도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처럼 불쌍히 여겨서 이 처참하고 비참하게 인생 억지로 살아가는 인생인데 좀 봐주소, 이거에요. 나름 하나님 위해서 애썼습니다, 하고 그다음 주저리주저리 나오는 게 뭡니까? 변명이죠.

자기연민, 자기 의, 사는 것이 억지, 인생은 죽지 못해 산다. 인간은 죽지 못해 살아요. 그래서 기도한답시고 하나님께 눈만 떴다 하면 나를 힘들게 한 원수를 내 대신 보복 좀 해주시고, 내가 몸이 아프니까 오래 살게 해주시고, 또 남한테 꿀리지 않는, 자기가 생각해도 처참하게 사니까 부자 되게 해주세요. 그리고 그것 외에는 기도할 게 없네요. 기도 끝. 이렇게 되지요.

내 위주로 사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은 이미 결론이 나와 있어요. 나 잘되는 것이 하나님의 결론이라고 이미 확정됐어요. 확정짓고 난 뒤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주저리주저리 나오는 것은 이미 변명으로 가득 차 있는 내 인생을 정당화하고(자기 의) 그것을 사수하기 위해서 이 비참한 가운데서 그냥 몸부림 만부림 쳐보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인간들이 노리는 것은 뭐냐? 내 자식 잘되는 거예요. 내 자식 나와요, 내 자식. 역대하 초반에 솔로몬은 자기 자식에 관한 이야기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어요. 이 말은, 이것도 어려운 말인데 솔로몬에 와서 시간은 다윗언약은 시간적으로 스톱이 된 거예요. 스톱이 됐다는 말은 최고 완성단계의 언약을 하나님을 주셨다는 것을 솔로몬이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전에 신명기 때 하나님이 예언을 했어요. 그 예언한 것이 어디서 최종 스톱이 됐다고 솔로몬은 믿었습니까? 아까 역대하 1장에 무슨 이야기 나왔다 했습니까? 다윗 나오지요, 아들 나오지요, 솔로몬 나오지요, 하나님 나오지요, 그다음에 제가 뭘 썼습니까? 언약궤 나오지요. 언약궤가 스톱이 돼버리면 이거는 하나님이 자기 언약을 구원하는 최종 레벨에 이르렀다는 거예요. 최종점에 이른 거예요.

사람들이 이에 관심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 행복하고 싶은데 환장했기 때문에 이런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에 대해선 들어올 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필요한 것 달라 이 말이야, 하고 땡강 부리는 것과 똑같아요. 하나님에 대해서. 왜 하나님은 내 뜻에 응답치 아니하십니까, 이러고 있다고요. 하나님이 지 요구에 왜 응답해야 되는데요?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서 언급해드릴까요? 언급해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응답, 기도의 응답, 그렇게 사람들이 헷갈리는 기도의 응답,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3절, 누가 읽어보세요.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끝.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끝이에요. 다윗의 아들 누구지요? 솔로몬이죠. 하나님의 아들 누굽니까? 예수님이죠. 그 예수님이 아버지의 언약에 의해서 영광 받으면 그것이 끝. 그것으로 끝났어요. 그게 기도 응답이에요. 거기 인간이 왜 낍니까?

인간이 이 땅에 산다는 것은 죽지 못해 사는 것. 그것은 뭐냐? 이 세상이 인간과 맞지 않는 곳이란 뜻이에요. 우리가 태어난 것은 맞는데 우리가 태어난 이 세상이 우리 인간과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은 누구한테 맞는 거예요? 이것은 누구를 위해서 이 세상이 있는 겁니까?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되었나니, 어디서요? 이 세상이란 공간에서. 언제 말입니까? 예수님 십자가 지실 때, 시간이죠. 이 시간과 공간은 인간을 위함이 아니었고 뭡니까? 인자를 위함이었다는 겁니다.

다시 한 번 요한복음 12장 23절에 보면,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돼 있지요. 어디서요? 이 세상에서. 언제요? 인자가 죽으실 그 시점에. 그래서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다 이루었다고 하잖아요.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고 했지요.

다시 물어봅시다.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제시하려는 게 뭡니까? 아까 똑같은 질문했어요. 뭡니까? 하나님의 뜻이지요. 하나님의 뜻을 솔로몬이 제시한다면 솔로몬이 사적이고 개인적인 영달이나 자기 사수, 자기 잘 되는 것, 거기 포함이 됩니까, 안 됩니까? 포함이 안 되지요. 그래서 자기포기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은 고스란히 나타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솔로몬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데 자기 뜻이고 뭐고 솔로몬은 그렇게 신경을 못 씁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존재하게 하는 것은 누구냐 하면, 본인이 아니고 아버지 이름이 누구에요? 다윗이고, 다윗에게 준 아버지의 언약이 있어요. 그 언약을 위해서 자기가 언약이 어떻게 해서 이 땅에 성취를 보이기 위해서 자기가 아들로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 번 생각해보세요.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났으면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벤다고 사람이 태어났으면 자기 포부나 뜻이 있을 게 아니겠습니까? 그걸 솔로몬에겐 하나님이 인정 안 해준다는 거예요. 아버지 뜻으로 끝났어. 네 뜻은 필요 있다, 없다? 필요 없다는 거예요. 그걸 흔쾌히 솔로몬이 받는 거예요. 내 뜻이 필요 없는 거예요. 이 땅에 예수님 왔으면 예수님 뜻이 중요하지 내 뜻은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다? 종요하지 않는 겁니다.

참 얼마나 보세요. 인간들은 이 세상을 억지로 살면서 사는 족족 하나님의 뜻을 가리고 방해하고 공격하고 그걸 저주하잖아요. 하나님이고 뭐고 나한테는 내가 더 중요해. 진짜 그들이 속에 하고 이야기, 대외적으로 외치고 싶은 이야기, 저 높은 산에 가서 외치고 싶은 이야기는 뭐냐 하면, ‘신이시여, 신이 있다면 내 소원 좀 들어주소’ 그것 딱 하나에요.

바로 인간의 소원은 하나님의 뜻에 위반된다는 것을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통해서 기도 응답 받으면서 인간들의 모든 뜻은 응답에 이를 수 없는 오히려 응답을 훼방하는 거짓된 응답을 요청하는 거짓된 존재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 걸 정리하면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은 언약을 구원한다, 건져낸다. 어디에서? 지옥 같은 세상에서.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사람은 건지는 게 아니고 언약을 건집니다.

근데 인간은 행동을 하게 되면 내 행동이 잘했는지, 못했는지 따지지요. 왜 따집니까? 올바른 행동은 나를 구원하고 나쁜 행동은 나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이런 의식이 있는 거예요. 그런 의식 자체가 누구 생각이에요? 본인이 본인을 지키는 것을 포기 못한 생각이에요.

그럼 다시 솔로몬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솔로몬이 왕이잖아요. 여기 보면 1장 1절에 보면,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가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하사 심히 창대케 하시니라” 물어볼게요. 솔로몬이 획득하지 못한 게 뭡니까? 솔로몬이 왕위가 견고하고 왕 되었고 많은 재물이 넘쳐났는데 솔로몬이 획득하지 못한 건 뭐지요? 많은 재물도 획득하고 왕위도 획득했는데 획득하지 못한 것, 그것은 솔로몬 자신의 자리가 자기에게는 없어야 된다는 겁니다. 이걸 획득하면 안 돼요, 내 자리는.

솔로몬은 자기 자리를 포기하고 대신 하나님께 받은 자리가 있습니다. 이게 두 번째로 오늘 강의에서 중요한 거예요. 자기 자리를 포기하고 대신 획득한 자리가 있어요. 왕위를 포기하고 대신 받은 자리가 뭐냐? 기름 부음의 자리에요. 이건 광주강의 때 제가 했지만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길 때 다윗은 자기가 왕 됨을 원했습니까, 아니면 어떤 자리에 대해서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리라고 귀히 여겼습니까? 어떤 자리를 귀히 여겼지요?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면서 사울을 단칼에 죽일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을 해치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성경에 뭐라고 돼 있습니까? 사울을 단칼에 죽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왜 못 죽입니까? 사울에게 뭐가 결합돼 있어요? 기름 부음이 있지요. 기름 부음이 있다고, 기름 부음이. 기름 부음은 신적인 겁니까, 인간적인 겁니까? 신적인 거죠.

요한일서 2장 27절,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라고 돼 있지요. 주 안에 거하라, 공간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영향 받지 않는 공간,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동됨이 없는 특별한 공간, 신적 공간, 이 이름을 ‘기름 부음’이라 했어요. 기름 부음으로 주 안에 있게 된 겁니다.

그러면 요한일서 2장 27절 이 말씀은 불신자에게 준 거예요, 성도에게 준 겁니까? 성도에게 준 거죠. 성도에게 주었다는 말은, 백성들에게 주었다는 말이 아니고 언약에 의해서 새롭게 생성되는 백성, 왕이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새롭게 생성되는 왕, 솔로몬 왕이 아니고 아버지의 언약대로 기름 부은 그 자리 안에서 솔로몬은 왕이에요.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다윗언약에 의해서 기름 부음이 있는 왕을 가진 민족이 이스라엘이에요.

그러니까 요한일서 2장 27절은 무슨 말이냐 하면 아주 쉽게 이야기해서 기름 부음에 들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천국 백성이 아니다, 성도 아니다 그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들어보니까 무척 쉽지요. 그런데 기름 부음의 자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내가 내 자리에서 획득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받지 아니한다. 거부해버려요. 왜? 인간 것 받지 않고 대신해서 기름 부음이 주어졌기 때문에.

내가 획득한 것 쥐고 있다고 구원되는 게 아니에요. 쥐고 있다는 것, 재물만을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다. 내가 신앙생활하면서 얻었다고 하는 굉장히 고상하고 거룩해 보이는 모든 것들, 사람은 그 안에 자꾸 거하고자 하거든요. 그게 아까 제가 그걸 뭐라고 하느냐? 그걸 획득했다고 해요. 인간이 내가 획득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면 인간이 획득한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외연적인 외부적인 조건이 뭐냐 하면 시간+공간, 시공간이 돼요. 인간은 시공간 속에서 자기가 구원받기 위해서 온갖 공작과 노력을 다했을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세 번째 중요한 것, 나 첫 번째 뭔지 모르겠어. 하여튼 세 번째 중요한 것, 솔로몬의 번제란 뭐냐? 솔로몬이 일천 번제 드렸거든요. 기브온 산당에서.

번제를 일천 번이나 했으니까 최고 번제, 최고점을 찍은 번제, 끝장낸 번제, 번제의 끝장, 천 번이나 번제했는데 번제는 뭐냐 하면 시공간을 벌리는 것, 틈을 내는 거예요. 시공간에서 시간을 찢어버리고 공간을 찢어버려서 틈을 내는 겁니다. 자, 시공간에 틈을 내니까 기도의 응답이 주어졌지요. 기도 응답 받았잖아요.

첫 번째, 솔로몬이 했을까요, 기름 부음이 했을까요? 어느 쪽입니까? 솔로몬이 한 게 아니고 기름 부음이 했지요. 이 기름 부음이라는 것은 아까도 다윗과 사울 이야기도 했지만 이거는 누구한테 받은 거예요? 아버지 다윗이 받은 거죠. 아버지 다윗이 받았다고 해서 기름 부음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건 아니에요. 기름 부음 받은 다윗이 언약 속에서 하나님이 제시한 언약의 내용이 나옵니다. 그게 바로 성전입니다.

성전은 건물 있다고 성전 되는 게 아닙니다. 성전 안에는 제일 필요한 요소가 담겨 있어야 돼요. 성전의 지성소 제일 깊숙한 곳에 안치된 게 뭘까요? 언약궤죠. 그래서 아까 언약궤 이야기 나온 거예요. 산당에서 일천 번제 드릴 때에 언약궤 중심으로 드린 거예요. 그리고 성전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고 솔로몬도 아니에요. 뭐가 주인공입니까? 언약궤에요. 언약궤 있어야 언약의 인물화가 돼요. 언약의 인격화가 돼요. 언약의 인격화란 것은 언약궤가 사람으로 변화, 변신되는 겁니다. 사람으로 드러나는 겁니다, 언약궤.

아까 강의한 것 다시 정리해봅시다.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주고자 한 것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에요. 사람의 머리에서 나와서 백성에게 줘버리면 백성들은 자기들이 백성인 줄 알고 있어요. 그러면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인간들은 뭘 원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원합니까, 아니면 내 뜻이 신에 의해서 후원받기를 원합니까? 도움 받기를 원하지요. 그렇게 해서 도움 받으면 인간이 노리는 게 뭐예요? 자기 구원이잖아요. 참 이거…

인간은 생각하든 행동을 하든 심지어 기침을 하던 뭘 하든 시공간, 자기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활용해서 자기 구원을 도모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신의 뜻은 뒷전이에요. 신의 뜻보다 내 뜻이 중요하다고요, 내 뜻이. ‘주여, 하나님 뜻이 무엇입니까’ 말은 그럴싸한데 이미 자기 뜻을 포기한 게 아니에요. 자기 뜻을 포기 안 했다는 말은 내가 이미 가진 것, 획득한 것을 잃어버리기 싫다는 고집 같은 거예요.

‘내가 평생 이것 일궈왔는데 이걸 잃어버려, 미쳤어? 이것 없으면 나는 못 살아. 이것이라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내가 이 땅에서 고생했다고.’ 참 더럽게 살았는데 비참하게 살았고 참 찌질하게 살았단 말이죠. 그런데 그게 자기연민이잖아요. 자기연민이 굳히면 뭐가 된다 했어요? 자기 의가 되는 거예요.

목사님, 자기 의 있는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구원이 안 되지요. 그럼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기름 부음이 있어야 돼요. 기름 부음은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에 인간이 노력한다고 내가 획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만약에 여러분이 기름 부음을 획득했으면 기꺼이 여러분들이 획득한 것을 무가치로 내팽개칠 수 있어요. 내팽개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냥 갖고 있어도 괜찮아요. 신경 거기 안 써요. 내가 획득한 것 신경 안 써요.

인간들이 획득한 것 중에서 제일 버리기 싫은 것이 뭐냐? 자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뭘 바치라 했습니까? 자식 바치라 했지요. 자식 바치라 할 때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하겠어요? ‘내가 자식을 죽이면 어떻게 살까, 자식 살까, 자식 죽을까?’ 이것만 생각하고 올라갔을 것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 생각에 없었던 게 있어요. 빠진 게 있어요. 그게 뭡니까? ‘여호와이레’에요. 하나님이 자기 자식, 그것도 미운 자식이 아니에요. 사랑하는 자식을 죽이라 했을 때에 그때 비로소 그 근처에 등장한 게 여호와이레입니다. 어린양이었어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우리는 그렇게 발견되는 겁니다. 성경 공부한다고 발견되는 게 아닙니다.

나를 목 졸라 죽을 때마다 내가 평생 애쓰고 사는데 힘들 게 사는 나를 목 졸라 죽이는 그때 목 졸리면서 눈 떠보니 뭐 있어. 누구야 너? 누구기는 널 살리는 죽이는 어린양이지. 어린양이 나를 목을 조를 때, 목을 졸라서 요새 기침이 나는가? 목을 조를 때 누구십니까? 여호와이레다, 됐냐? 너의 것 받지 않는 여호와이레다.

이 시공간, 말씀을 같이 나누는 시공간 어디 갔습니까?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더 획득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내 생각에. 더 획득한 것을 안 놓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자식? 재산? 돈? 다 저질스럽게 살아가는 하나의 단면들입니다. 다 비참하게 살아가는 거예요. 억지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거예요. 죽는 것보다 훨씬 못한 삶을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는 그 버릇, 내 것 지킨다는 그 더러운 버릇, 개 같은 버릇, 귀신들린 버릇 그것이 바로 솔로몬이 맞이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 왕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왕이 백성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나 왕 됐다는 게 아닙니다. 그럼 그 전의 그것과 똑같아요. 우리 자식도 왕 된다, 그것도 아니에요. 내가 이야기할 것은 이 성전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어떤 식으로 이어져왔는지 어떻게 해서 언약궤가 내가 보기에 여러분 백성들 보기에 언약궤가 왜 있는지? 언약궤가 있다는 말은 공간적으로 있다는 거고 일천 번제 드린다는 말은 시간적으로 그만큼 시간을 소비했다는 말이잖아요.

그러나 그 드린 시간과 그 공간의 대가로 응답이 오는 게 아니에요. 왜? 번제니까, 번제란 말은 뭐냐 하면 불이 있어야 되고, 불 위에 제물이 있어야 되죠. 불이 뭘 태웁니까? 제물을 다 태우는 거예요. 일천 번제니까 몇 번을 태운다? 천 번을 태우는 거예요. 번제의 끝장을 보는 겁니다. 번제의 끝판 왕이에요. 이것은 시공간을 태워버리는 거예요.

시공간을 태우는 그 번제의 순간 흐르는 시간을 솔로몬이 포집, ‘날아다니는 것을 꼼짝 마’ 묶어버리는 포집하는 거예요. 시간을 묶어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공간을 찢어버리는 겁니다. 공간을 찢어야 위에서 뭐가 주어집니까? 하나님의 기도의 응답이 주어지겠지요. 진짜 숨어있던 누구도 몰랐던 하나님의 뜻이 찢어져야 나오는 거예요. 이게 마가복음 1장에도 나옵니다. 하늘이 찢어지사 성령이 예수님께 임하니, 예수님 세례 받을 때 그 대목이에요. 하늘이 찢어지는 거예요.

닫혔다는 말은 시공간이 닫혔다는 것. 닫힌 상태에서는 인간이 획득한 것만 거기다가 집중적으로 유지할 뿐이지 전혀 어떤 것도 주의 뜻은 없습니다. 시공간이 찢어져야 돼요. 구약에서는 뭐냐? 언약으로 찢어져요. 언약이 뭐냐? 모세언약, 번제지요. 율법에 제사법이죠. 제사법에서는 홀라당 다 태우니까.

죽음은 시간의 정지를 의미합니다. 시간이 없어요. 죽었으니까. 제물의 죽음을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 또는 그러한 번제를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 비로소 그 자리는 솔로몬 왕이 된 자리가 아니라 바로 기름 부음의 자리고, 기름 부음의 자리에서 인간은 솔로몬이 왕이라는 그것과 기름 부음의 자리의 토대 경쟁, 토대 싸움이 벌어지는 겁니다.

기름 부음과 솔로몬의 왕위, 여기서 하나님의 응답이 주어졌지요. 응답의 요소에 솔로몬의 왕위다움, 솔로몬의 왕위라 하는 것은 세습제에요. 솔로몬의 아들도 포함되지요. 솔로몬 본인도 포함되고. 이것이 바로 응답된 토대에 기여할 것이냐, 아니면 기름 부음이 기여할 것인가? 어느 쪽이겠어요? 왕상 11장 36절, 다른 분이 읽어보세요.

“그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 다윗의 등불이죠. 그래서 제가 했잖아요. 솔로몬은 아버지를 바라본다고요. 다윗은 죽었어요. 죽은 아버지를 바라본다고요. 시간이 거꾸로 가는 거예요. 기존의 인간 시간은 미래로 흘러가야 되는데 미래로 흘러가지 않아요.

언약이 시공간이 찢어짐으로써 다윗언약의 시공간이 이게 중간에 하나님의 뜻이 위에서 천정이 찢어지면서 위에 있는 것들이 쏟아지듯이 쏟아지면서 그 쏟아진 자리에서는 시간은 멈추지요. 그게 다윗의 뭐라고요? 다윗의 등불이 이스라엘을 이스라엘 되게 하는 토대였습니다. 10분 쉽시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3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20,092 자유게시판 서울강의20240314a 요한일서 2장 19절(소외와 분리)-이 근호 목사 요한일서 최고관리자 24-03-16
20,091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다니엘의 삶 / 240310 - 최고관리자 24-03-15
20,090 자유게시판 수요설교(240313)보충 스가랴 (12:10-14) 생명의 보관함 스가랴 최고관리자 24-03-14
20,089 자유게시판 35강-스가랴 12장 10-14절(생명의 보관함) 240313 - 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4-03-14
20,088 자유게시판 20240311b 부산강의 : [시편]66(50:8)-태어난 언약 시편 최고관리자 24-03-13
20,087 자유게시판 20240311a 부산강의 : [시편]66(50:8)-태어난 언약 시편 최고관리자 24-03-13
20,086 자유게시판 94강-예레미야 18장 1~4절(쌍둥이 세계)240310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4-03-10
20,085 자유게시판 7강-히브리서 2장 4절(기적의 극단)240310-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4-03-10
20,084 묻고답하기 천사보다 못한 것 - 최고관리자 24-03-10
20,083 자유게시판 3월 부산 성경공부 안내 시편 최고관리자 24-03-09
20,082 자유게시판 34강-스가랴 12장 7-9절(맏이의 변천) 240306 - 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4-03-08
20,081 자유게시판 463강-YouTube강의(패배 사사기 20:28)20240305-이 근호 목사 사사기 최고관리자 24-03-06
20,080 자유게시판 462강-YouTube강의(운명 에스더 7:9)20240305-이 근호 목사 에스더 최고관리자 24-03-06
20,079 강의 유튜브강의 (462강, 463강), 운명 , 패배 240305 에스더 최고관리자 24-03-05
20,078 자유게시판 20240301b 울산강의-역대기하(1강) 1장 6절 : 솔로몬의 자기포기 사무엘하 최고관리자 24-03-04
열람 ➜ 자유게시판 20240301a 울산강의-역대기하(1강) 1장 6절 : 솔로몬의 자기포기 역대하 최고관리자 24-03-04
20,076 자유게시판 93강-예레미야 17장 19~22절(안식일과 예루살렘)240303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4-03-03
20,075 자유게시판 6강-히브리서 2장 1-3절(악마의 알박기)240303-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4-03-03
20,074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가인과 아벨 / 240303 - 최고관리자 24-03-03
20,073 묻고답하기 표적과 기사 - 최고관리자 24-03-03
20,072 자유게시판 33강-스가랴 12장 1-6절(언약의 속) 240228 - 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4-03-01
20,071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1장 6절 (종말속의 메시아) 240213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4-02-27
20,070 자유게시판 대전-십자가를 아십니까(25강) 삼상15:22(헌금의 순환구조) 20240226b(강의:이근호 목사) 사무엘상 최고관리자 24-02-27
20,069 자유게시판 대전-신명기(19강) 신9:4(율법의 시간) 20240226a 신명기 최고관리자 24-02-26
20,068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난파선 / 240225 - 최고관리자 24-02-25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