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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20장 43절 (과부의 위치) 240206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20장 43절 (과부의 위치) 240206a-이근호 목사

자, 오늘 누가복음 20장 42절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렇게 되어 있지요. 주님의 주 되심은 반드시 하나님의 원수와 관련해서 주님이 등장합니다. 원수가 없는데 주님이 그냥 등장하는 법은 없고 또 주님이 등장했다하면 하나님의 원수가 등장하고 그 원수에 대해서 이미 승리자로 판가름 될 때 그 주님이 주님 되시는 거예요.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라는 말씀이 나오지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쉽게 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상대할 수 있느냐. 인간이 하나님과 상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건방진 생각인지 몰라요. 인간이 인간도 상대 못하잖아요. 우리가 타인을 상대한다는 것은 허겁지겁 우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상대를 내 마음대로 다룰 수도 없고 그 상대가 있음으로서 내가 사는데 힘겨울 때가 한 두 가지가 아니지요.

더 나아가서 인간은 타인과 상대 못한다. 더 나아가서 뭐냐? 인간은 자신도 어찌할 수 없다. 인간은 자기도 상대 못해요. 자기성질을 자기가 다룰 수가 없습니다. 상대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내 뜻대로 굴복이 되는걸 상대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냥 만나고 고집대로 헤어지는걸 상대한다고 하지 않아요. 그는 그 갈 길가고 나는 나 갈 길 가면 상대가 안 되잖아요. 뭔가 있어야죠. 만남을 통해서 뭔가 새로운 결실을 맺던지 뭐가 있어야 제대로 상대했다 또는 관계성을 맺었다 할 수 있는데 인간이 타인과 상대를 못하고 자신의 성질도 어찌 못하는 인간이 감히, 감히 하나님을 상대할 수가 있습니까? 자기 성질도 하나 주체 못하면서. 결국 인간이 하나님을 생각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모르고 자기 단도리하는 여기에 몰입해가지고 자기가 자기를 관리하는 것으로 상대하는 걸로 쳐주세요. 하나님 이렇게 바르게 사는데 열심히 한 걸로 해주세요. 하나님 이뻐해주세요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은 인간입니다. 다윗은 인간인데 인간이 어떻게 주님과 상대를 합니까? 안되지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율법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율법을 지키면 하나님이 상대할 수 있다고 하나님이 허락을 해줬다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은 무엇과 상대합니까? 원수와 상대해요. 인간하고 상대하는 게 아니고 원수와 상대합니다. 인간하고 상대해서 이겨서 주님이 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원수와 상대해서 이기면 주님이 주님으로 그제서야 드러나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은 뭐냐? 주님이 상대할 대상 자체가 안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원수와 상대해서 주님이 되신다면 주님이 여전하게 자기 활동을 한다는 말은 인간을 상대하지는 않지만 이 하나님의 원수가 현재 누구와 더불어 함께 있다는 뜻이에요? 현재 하나님의 원수가 인간을 꽉 잡고 있다는 뜻이에요. 인간을 꽉 잡고 있으니까 인간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가 하는 짓을 인간을 통해서 스스로 내뱉고 내비치고 있는 거예요. 드러내고 있는 거예요. 꼭 하나님의 원수가 하는 그 짓을 인간이 그대로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대목에 하나님의 우편에 앉았다는 것은 원수를 이기고 거기 등극했다는 건데요. 이 대목에서 우리가 사도행전 2장 베드로 설교를 통해서 보다 구체적인 것을 찾을 필요가 있어요. 사도행전 2장에 보면 2장 27절 누가 한번 읽어보실까요.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아멘. 감사합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은 누가 이야기했느냐 하면은 다윗이 이야기한 거예요. 다윗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 하면은 자기가 음부의 버림을 당하고 썩음을 당하는 그러한 위치에 인간이 놓여있다는 겁니다. 무덤에 가고 썩는 것이 무엇과 관련되어 있느냐 하면은 내가 죽는 것을 내가 손댈 수 없어요. 내가 하나님 상대하기 전에 내가 하나님의 원수도 상대 못해 인간은. 왜? 일방적으로 원수가 당해서 우리는 죽어서 무덤에 내려가고 우리의 육신은 썩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의 육신이 썩고 그리고 무덤에 내려간다는 것은 너 마귀한테 졌다는 이야기에요 결국. 살아볼라고 살아볼라고 나답게 살아볼라고 애썼는데 결국 죽는 순간에 다 날라갔잖아요. “뭐야 너. 인생 뭐 살았어? 한번 꺼내 봐. 인생 마지막 모습을 한번 보자.” “죽었어,” “그 다음에?” “썩었어.” “기껏 그거야? 그게 다야? 다였어? 어쩔 수 없네.” 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이 인간조차도 상대 못하는 이유가 거기서 드러나는 겁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는데 사랑은 감정의 문제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힘 주시면 제가 열심히 살겠습니다 하는데 힘에 관한 문제죠. 1. 감정문제. 하나님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감정문제. 감정이 원수를 이겨요? 내가 열심히 하나님 사랑하면 우리 시체가 안 썩습니까? 안 아픕니까? 택도 없는 소리죠. 2. 힘. 그 다음에 하나님 힘을 주옵소서. 힘주시죠. 힘주시는데 그 힘의 끝은 뭐였습니까? 무덤이잖아요. 이게 지금 다윗이 고백한 거예요. 다윗이. 다윗이 인간을 대표해서 고백하는 거예요. 그럼 감정도 아니다. 사랑해도 안 되고 살라고 힘 줘도 안 된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위치입니다. 3. 위치. 우리가 원수한테 완전히 패배해서 썩고 죽는 그 위치까지 메시아가 오는 거예요. 메시아가 그곳까지 가는 거예요. 그 점에 대해서 다윗이 예언한 겁니다. 홀로 나를 남겨두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홀로. 인생 나 혼자 살았지만 내가 죽고 썩는 그 자리까지 주의 말씀이 찾아와요. 시편에 나오는 이 주의 말씀이 끝까지 찾아와서 말씀을 말씀대로 이루시는 그 작업, 그 업무를 주께서 하시는데 그 이유가 뭐냐? 바로 그 자리에 주의 원수가 우리를 압제하는 방식이 그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래요. 주의 원수를 상대하지 않으면 주가 될 수 없어요. 하나님이 원수를 상대해야 돼요. 우리는 원수에 대해서도 상대할 수도 없어요. 마귀한테 꾀어서 범죄했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를 이기지를 못합니다. 그냥 곱게 죽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의 모든 말씀 성경의 모든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까지 밀어붙이는 뜻으로 말씀을 주신 겁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7장 17절에서 23절,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인간의 열매는 마지막에 무덤입니다. 이게 인간이 평생 살아왔던 마지막 열매는 결국 헥헥 하다가 죽는 게 마지막 열매입니다. 기껏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요. 백날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 도와준 힘으로 살았지만 마지막 열매는 시신이 되는 것. 다윗이 고백한 그것, 그게 모든 인간의 열매입니다. 죽는 열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그 나쁜 열매, 하나님의 원수의 압제를 당하는 나쁜 열매를 예수님이 합세해서 그 위치까지 오셔서 말씀대로 좋은 열매로 간주하셔서 천국으로 데려가겠다는 겁니다. 말씀대로 되니까. 하여튼 나쁜 열매는 다 짤려요. 나쁜 열매가 좋은 열매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좋은 열매에요. 그래서 어디 갔는가? 아까 누가복음 말씀처럼 하늘에 앉았어요.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거예요. 예수님 자체가 좋은 열매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 좋은 열매가 이 땅에 온 경로를 보자는 겁니다. 그 열매가 어디까지 내려왔느냐 하는 거예요. 그냥 땅까지만 오고 나 볼 일 다 봤다 간다 이렇게 했는가? 그 분이 부활한 자리가 위치가 어디냐 이 말이죠. 어디에서 주님의 우편에 앉을 때까지 어떤 위치에서 그 자리까지 쑥 하고 골인했느냐 하는 겁니다. 로마서 10장에 보면 10장 5절에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율법에 의하면 본인의 의의 열매가 있을 경우에만 천국에 갑니다. 율법에 의해서만. 그런데 여기에 율법 말고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라고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거든요 3절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는데 어떻게 나타났느냐? 6절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무슨 수로 하늘에 올라갑니까. 열매도 없으면서.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라고 이야기한 거에요.

그게 뭐냐 하면은 움직임의 주체가 우리 자신이 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우리 자신이. 우리는 이 지상에서 자기 의만 열심히 모으지만 그 자기 의는 하나님의 원수에 의해서 이거는 실패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6장 6절에 보면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목숨 잃으면 무슨 소용 있느냐” 라고 했거든요. 이 온 천하 어디에도 우리로 하여금 천국에 보낼 수 있는 의는 없습니다. 이미 온 천하가 마귀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베드로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사탄아 물러가라. 이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해서 사람의 일은 악마의 일을 계속해서 되풀이해서 보여주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은 악마의 일만 계속해서 나타나는 그러한 악마의 대변자 역할이 인간이라고 아주 단정 지으시고 그 사람은 온 천하를 돌아다녀도 자기를 건질만한 것은 인간에게는 나올 수가 없다를 분명히 합니다. 여기서 로마서 방금 10장 8절에 보면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주로 시인하죠. 여기 주가 뭐냐 하면은 인간이 해내지 못한 것을 이미 주께서 다 이루었어요. 어디까지 이뤘느냐? 인간이 가볼 수도 없는 하늘, 인간이 가볼 수도 없는 그 지옥 그 사이를 이미 다 주께서 다 거쳐서 모든 것을 그 자기 위치에 부합되는 사람과 더불어 말씀과 연관된 사람이죠. 그 사람들에 이미 구원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시편 71편 20절에 오늘 많이 괴롭혀서 죄송합니다. 성경 전체가 어떻게 말씀으로 연관되는지를 볼려면 이걸 봐야 돼요. 여기 보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내가 구원받았다가 아니라 주께서 우리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일을 처리해버렸다는 거예요. 일을 처리해버린 거예요. 네가 음부에 간다고 할지라도 심지어 네가 지옥에 간다 할지라도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걱정 말아요 그대여. 지옥 간다 할지라도 걱정하지 말아라. 그러니까 지옥 가도 걱정 안하는 사람 있었어요. 사도 바울. 내가 그리스도한테 짤릴지라도 나는 걱정 안한다. 걱정 안한다는 겁니다. 이 음부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음부를 다녀간 것은 그 죽음의 세계까지 하나님의 원수가 이미 거기 지배하고 통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뭐냐 하면은 눈에 보이는 땅의 생각밖에 하지 못하거든요. 좀 지루할 것 같아서 다른 구절은 찾는걸 좀 삼가겠습니다.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사야 41장 26절 48장 1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을 하세요. 하나님이 너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네가 듣도 보도 못한 말씀을 할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어요. 네가 듣도 보도 못한 말씀을 한다. 그 듣도 보도 못한 말씀이 뭐냐 하면은 내가 하늘 끝에 갈지라도 주께서 거기 계시고 바다 끝에 갈지라도 주께서 거기에 계시는 방식으로 주께서 모든 것을 섭렵하는 작업에 나서게 된다는 이야기에요. 주께서 앞으로 그렇게 해주신다는 거예요. 이것은 인간이 위치라는 것이 마귀의 힘에 의해서 꼼짝마라 하는 그런 입장에 있어요. 인간이 설치고 나대고 뭘 해도 인간이 처해있는 위치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 상대할 수 없습니다. 뭘 해도 하나님께서는 뭐 감정, 힘,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상대 안 해주십니다. 고마운 줄 알아야 돼요. 상당히 고마운 줄 알아야 돼요. 말씀을 믿으란 말은 믿는다는 말은 설치시는 것은 주께서 다 설치시기 때문에 그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는 거예요. 그게 믿음이에요. 제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구원받습니다가 아니라 제가 뭘 해도 소용없도록 주께서 일하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거예요.

다시 한번 정리하면 하나님은 우리하고 상대하지 않는다. 그럼 누구하고 상대하느냐? 하나님은 마귀하고 상대하신다. 그건 창세기 15절의 약속이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은 뱀의 후손과 상대합니다. 인간은 들러리고요. 인간은 소용없지요. 그냥 현재 마귀의 종으로 살다가 그냥 우왕좌왕하다가 뭐 믿습니다 하고 뭐 사랑합니다 뭐 열심히 하지만 그렇게 해도 어디까지나 자기 감정으로 돌아오죠. 자기 위치를 자기 혼자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또 진리를 찾겠다고 나서봅니다. 바다 끝에 한번 가보는 거예요. 그러나 거기 주님이 계시고 하늘 끝에 가도 주님이 계시고 그런데 구약에서는 문제가 자기 자신과 작별하지 못한다는 거에요. 신약에 와서 믿음으로 나는 아무것도 한 것 없고 주께서 하셨습니다 이러면 어떻게 돼요? 자기 자신으로부터 작별, 이별한 거죠. 자기와 헤어진 겁니다. 이걸 문장으로 하면 우리는 주님으로 살지 나는 나로 사는 게 아닌 거예요. 그런데 이 문장에서 이걸 한번 지워보겠어요. 주님으로부터 지워 버리고 아니다 지워버리면 뭐가 됩니까? 나는 나로 산다가 되지요. 나는 나로 산다가 돼요. 그러면 아까 다윗이 고백한 자기 마지막 모습, 죽어서 썩는다. 우리는 이렇게 자기 혼자 살면요 그건 나중 문제고 이래요. 나중 문제라는 거예요.

자, 이렇게 되면 이게 뭐냐 하면은 내가 꾸리는 내가 장만하는 뭐가 되느냐? 나의 위치가 돼요. 나의 위치. 나의 위치를 계속 살리기 위해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에 내가 살기 위해서 살지 않는다면 남아 있는 고민과 근심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내가 살기 위해서 살지 않는다면 고민거리가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일순간에 싹 하고 없어져버리죠. 다 없어진 거예요. 내 위치를 이쁘게 장식해서 살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고민거리 걱정거리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지요. 있을 수가 없어요. 내 안에서 말씀이 살고 나는 나와 결별한다. 내가 나를 결별하는 그 일과 현상과 말씀이 사는 현상이 서로 연동되어 있어요. 같이 움직인다고요 같이. 내 안에서 말씀이 살아버리면 더는 날 위해서 산다는 것이 성립이 안돼요.

자, 그 나라와 의를 구한다. 이게 뭐냐 하면은 나와 작별하면 이게 돼요. 나와 헤어지면 그 나라와 의가 되는 겁니다. 자기와 헤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백날 그 나라와 의를 구해봐야 이거는 거짓말입니다. 이거는 그 나라와 의가 안돼요. 다윗의 이야기의 뜻은 이거예요. 아주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이 내 인생을 장악했다 이겁니다. 말씀 또는 예언. 주님이 내게 주신 예언이 내 인생을 장악했다. 장악했는데 어디까지 장악하느냐? 끝까지 내가 나로 작별하는 것. 강제로 작별하는 게 뭘까요? 내가 화장터에 들어가는 게 이게 강제 격리조치에요. 숨이 끊어지는 것. 숨이 끊어져서 화장터에서 몇 천 도의 불속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말씀이 주님께서 주님의 능력이 바로 거기서 우리로 하여금 건져내시는 거예요.

아모스 9장 2절에 “그들이 파고 스올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에서 붙잡아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붙잡아 내릴 것이며. 그들이 파고 스올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말씀이죠. “거기에서 붙잡아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붙잡아 내릴 것이라” 시편 139편 8절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라고 되어있어요. 도대체 이런 자세로 인생을 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거예요? 나의 위치는 이미 무덤으로 확정되었다는 뜻이에요. 내가 죽기 전부터 이미 죽었다는 뜻입니다. 결국은 나는 주님께서 음부에서 나를 건진다는 주님의 작업을 나를 통해서 증명해내기 위해서는 우리는 필히 죽어서 썩으셔야 됩니다. 좀 이렇게 불 뜨겁더라도 참으세요. 우리가 죽어서 썩는다 할지라도 그게 자기 과업이에요. 자기 숙제고 그래야 마땅한 거예요.

물론 죽는 방법 여러 가지 있습니다. 오토바이 타고 가는데 강아지 안고 음주운전 차에 치여 죽는 그런 방법도 있고요 뭐 우리가 고를 건 안돼요. 고를 건 아니지만 아파트에서 온 식구 뛰어내려 죽는 그런 방법도 있고요 여러 가지 있잖아요. 낚시하다가 바닷물에 떨어져 죽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제가 문제 하나 낼게요. 현재 한국에서 1년 동안 우회전 차량에 치어서 죽은 사람이 180명이거든요. 180명. 그 사람은 왜 죽었게요? 그 사람 왜 죽었지요? 1번 화물차가 신호등 못 봤다. 2번 횡단보도 신호가 너무 짧았다. 3번 건널 때 좀 보고 건너지 그냥 막 건넜다. 4번 죽을 때 돼서 죽었다. 5번 건너기 전부터 이미 죽었다. 이태원에 놀러가가지고 귀신 잔치하는데 엎어져가지고 밀려서 죽었다. 그거 예방 조치하면 그 사람 삽니까? 안 살지요. 인간은 자기 목숨가지고 거래가 안 됩니다. 자기 목숨도 자기 손에 달린 게 아닙니다. 다윗은 자기 진짜 자기의 진면목을 무덤에서 찾았어요. 그리고 썩어있는 자기 모습에서 발견한 겁니다. 아주 넉넉하게 낮아져요. 넉넉하게. 넉넉하게 낮췄어요. 나 지금 간다. 어디로? 무덤에서 썩는 쪽으로 나는 가고 있다. 왜? 말씀이 나를 거기로 이끌기 때문에. 이런 자세였습니다.

따라서 이 성경 모든 말씀은 우리 인간의 일은 하나도 여기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킬 말씀은 단 한 개도 없어요. 못 지키고 주님이 너는 이 말씀을 못 지키지 내가 다 지켜서 내가 너와 함께 위치를 하게 되면 그 위치가 하늘나라 우편에 앉는다 라는 그 말씀으로 성경은 가득 차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하도 안 죽으니까 이래도 안 죽네 하면서 계속 말씀 주는 거예요. 말씀을 주시는 거예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알면 어떻게 됩니까? 죽어라 너! 오른 눈이 범죄하거든 빼버려라. 그럼 어떻게 됩니까? 애꾸눈. 애꾸눈도 범죄하는데 둘 다 다 빼버리고. 이 소자한테 네가 죄를 지으면 너는 연자 맷돌을 목에 걸어거지고 바다 속에 빠질거야. 그 말씀을 보고 안돼! 이러고 있잖아요. 안돼 라는 말 하면 안돼요. 원래 그래야 돼요. 원래 물에 빠져야 돼요. 빠져도 괜찮아요. 어떻게? 사람 앞에서 인자를 인정한다면 빠져도 괜찮아요. 마태복음 10장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쭉. 쭉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도 상대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도 상대할 수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을 상대 못하는데 그럼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상대하느냐? 그게 히브리서 13장 20절에 나와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20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어떻게 상대했는가가 나와 있어요.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이렇게 되어있지요. 자, 예수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께서 그 자신의 아들 예수님을 뭐를 보고 이끌어내셨어요? 피는 피인데 무슨 피? 언약의 피. 계약의 피죠. 언약의 피를 보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냈다 이 말이죠.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았다는 말은 주의 자리에 앉았거든요. 주의 자리. 주의 자리가 원래 하나님의 능력의 자리가 누가 차지 됐습니까? 예수님 차지죠. 하나님 아버지가 주의 자리에 있을 때 이 지상에 죽은 예수님의 무덤에 있을 때 언약의 피로서 예수님께서 이 자리에 올라가게 했잖아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자리에 주의 자리에 올라가게 하신 거예요. 올라가게 하셔서 우리에게 뭘 줍니까? 다 이루었다 하는 예수님의 내 살과 내 피. 피를 보내주시는 겁니다. 피를 보내주는데 죽은 자가 그걸 알 리가 없지요. 알 리가 없으니까 세트로 봐요. 세트로. 뭘 세트로 보냐 하면은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는 겁니다. 성령님은 뭐만 앞장세워요? 언약의 피로 다 이루었다만 앞장세우는 거예요. 언약의 피로.

그러면 지금까지 모든 신약 구약 모든 성경해석이 어디에 다 모입니까? 그 언약의 피안에 모든 말씀을 다 이루었다가 되는 거예요. 누가 알려줘요? 성령이 와서 알려주는 거예요. 성령이 와서. 감정 아니지요. 힘 아니지요. 위치입니다. 위치. 언약의 피가 능력이 되는 경우는 어떤 경우냐 하면은 우리에게 힘을 주지 않아요. 언약의 피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둘러싼 악마를 깨부시는 그 힘이죠. 중요합니다. 인간은 그동안 홀로사는 게 아니고 무엇과 함께 인간의 위치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의 원수의 위치에요. 하나님의 원수의 위치. 원수는 영원한 음부에 들어갑니다. 심판에 들어가지요. 음부에 있으니까 악마를 못 빠져나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음부까지 들어오셨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주께서 힘 주시면 믿겠습니다. 힘 줘도 소용없어요. 힘은 이 껍데기 악마를 뚫고 들어오는 이 주님의 힘에서 이거는 뭐 그냥 멈춰있는 우리를 데리고 나가는 거예요 여기서. 뭐로? 데리고 나가면서 뭐만 생각하면 돼요? 피로 모든 율법을 다 이룬 거예요. 하나님의 의로 데려가는 거예요. 자꾸 악마가 우리보고 너의 의로 가 거룩해 맨날 이것가지고 닦달내고 맨날 협박 공갈하니까 그때 주님의 의로 뽑아나가는 거에요.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우리는 어떤 신세냐 하면은 그냥 세간살이에요. 주인은 악마고 우리는 세간살이인데 담 타 넘고 주님이 오셔가지고 악마를 꼼짝마라 해 놓고 그 다음에 도둑질하듯이 우리를 악마의 품에서 데리고 나가는 방법을 하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 나라의 작용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너무 간단하니까 못 믿겠어요? 너무 간단하니까?

요한계시록 1장 18잘에 보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열쇠 나오지요. 무슨 열쇠입니까?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갇혀있었다 이 말이에요. 자물쇠로 꽁꽁 포로 잡혀있었다. 그동안 교도소 안에 갇혀있었다. 갇혀있는 열쇠를 열고 우리를 거기서 끄집어낸 거예요. 주님께서. 끄집어낸 것도 주님의 의고 모든 하신 것도 주님의 공로고 그 모든 실체는 뭐냐? 십자가 피고. 그러니까 사도 바울은 자랑하는걸 뭐만 자랑해요? 나는 오로지 십자가 피만 자랑한다. 십자가 피만 자랑한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서 “나는 십자가만 자랑한다” 이건 뭡니까? 자기와 자기와의 작별이죠. 나와 이별한 거예요. 그 성령의 선물을 여기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십자가를 근거로 해서 우리에게 주실 때 그 십자가의 피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절 13절에서 뭐냐? 믿음, 소망, 사랑 그 다음에 뭐라고 했어요?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사랑. 요한일서 4장에 “너희들이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화목제물로 주셨으니” 이것을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아까 1번 감정. 아니지요. 2번 힘. 아니지요. 3번 위치였죠. 위치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감정이 나오고 위치에서 힘이 나오는 거에요. 예수님의 감정, 사랑이 나오고 힘이 나오는 겁니다. 이 사랑이라는 감정은 항상 근거가 내가 나와 작별하는 내용으로 되어있어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그 사랑을 보게 되면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한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찾지 않는다. 요청하지 않는다. 구하지 않는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거예요.

그럼 그동안 자기의 유익은 내가 나와 이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게 힘이 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살고 싶은 거예요. 내가 살아버리면 그 나라와 의는 나로 가리게 되고 그게 바로 마귀가 나한테 계속 시켜왔던 거예요. 어쨌든 간에 살아야지. 다윗은 무덤에 있다는데 마귀는 자꾸 살 동안은 살아야지. 자꾸 살아야지 이렇게 하는 거예요. 살려고 하니까 자기 유익을 구해야 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할려고 하니까 세상의 모든 번뇌와 고민과 걱정과 근심 모든 것은 전부 다 쓰레기같은 전부 다 자기한테 쏟아지는 거에요. 쓰레기 막 쏟아지는 거에요. 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사람이 없는데. 마귀도 상대 못하는데 사람이 할 수 있어요? 안되지요. 그래서 이렇게 됩니다. 인간의 모든 관계는 내가 살고자 한다. 그럼 주님의 피는 인간의 모든 관계 a,b,c, 모든 관계를 피로써 이걸 잘라버려요. 이걸 잘라버리고 주님의 사랑으로 붙여버리죠. 주님의 사랑으로 붙인다. 주님 주시는 자식, 주님 주시는 남편, 주님 주신 아내. 남편한테 복종하기를 교회가 주께 하듯 하라. 이거 뭡니까? 내 사랑 내 유익, 나 살고자 하는 것 잘라버리고 주님 주신 남편으로서 섬기고 복종하는 거에요.

이런 사랑을 모르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결혼 왜 해요? 남편 살릴라고 결혼합니까? 자기 살라고 하잖아요. 이왕 사는거 행복하고 외롭지 않고 행복할려고 살잖아요. 주께서 가만 두겠어요 안두겠어요? 내가 들어가면 그건 예언이 아닙니다. 내가 들어가면 말씀이 아니에요. 그걸 잘라버리지요. 자른다고요. 그걸 떼버려요. 뗄려면 너 가! 가 아니라 내가 나보고 너 가! 내가 나와의 관계를 자르도록 주께서는 이 성령으로 주의 피로서 우리에게 주어지지요. 너는 너 자신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거예요. 성경말씀에 보면 우리는 못된 열매에 불과합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뭐냐 하면은 내가 나의 모든 것을 털어내는 그 방법이 뭐냐? 내가 나의 모든 것을 나에게서 털어내는 방법이 뭐냐? 오늘 본문 봅시다. 누가복음 44절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그런 말씀 나오지요. 나의 모두 털어내는 방법은 주님께서 이미 다 이루었잖아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지요.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를 책망하는 투로 질책하는 투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거예요.

왜냐하면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추 털었다고 털었다고 하지만 우리가 아직까지 죽기 전이잖아요. 죽기 전이니까 계속해서 기도 이만큼 했으니까 응답되겠지 뭐 이렇게 바르게 사니까 이정도면 복음 아는 거지 계속해서 내 안으로 축적이 되고 괜찮은 나를 조립을 해요 우리가. 괜찮은 나를. 나를 무시하지 마라 뭐 어떻고 그러니까 나와 작별했는데 무슨 일 터져버리면 조금도 작별하지 않았음이 다 들통나버려요. 나는 복음 안다. 아내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성경에 보니까 아내 사랑하기를 주님이 자기의 목숨 바치라 하더라. 아 주여 그동안 아내를 목숨같이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남편 노릇 못해서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내에게 목숨 바쳐 사랑하겠습니다 하고 집에 왔는데 여보 오늘 명품 하나 뽑았다 이렇게 하고 있거든요. 죽어라!!!!! 예상 못한 것이 훅 들어와요. 훅 들어와요. 도저히 예상 못한 게 훅 들어온다고요. 그리고 아내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지 이렇게 하고 있는데 여보 오늘 병원에 갔는데 못 고친데. 못 고친데. 뭐? 여기 고장나고 여기 고장났어. 당신 직장 그만두고 나 병 수발해야 될 판이야. 내가 당신한테 미안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이야기하는데 우리 갈라서. 왜?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드라마를 봐도 너무 많이 봤나. 당신은 남은 생애를 좋은 사람 만나 살아. 나 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나 이미 망가졌어. 나 못 고쳐. 유전병은 못 고쳐 이렇게 나올 때 이건 도와달라는 이야기인지 뭐.

이번 수련회 때 그런 이야기했지요. 내가 미안하다 하는데 네가 왜 먼저 나한테 미안하단 소리를 한다. 가만 있어봐. 내가 추스릴 시간을 달라. 나한테 뭔가 내가 추스린다는 자체가 벌써 뭡니까? 자기와 작별 안 했어요. 작별 안 된 상태입니다. 작별했겠지요. 했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말씀으로 계속해서 말씀으로 몰아넣게 해서는 작별 안 될 수밖에 없는 일이 계속 터져 나옵니다. 계속 터져 나와요. 그야말로 우리 자리는 죽어서 썩는 자리가 우리 자리지 그 외에 그럴싸한 내 모습을 연상하거나 상상하거나 고독한 미식가처럼 바바리 입고 안경 쓰고 이 멋있는 이 모습 화장터에 넣어. 바바리고 뭐고 다 불에 타. 우리의 어떤 모습도 전부 다 판타지입니다. 환상에 불과한 거예요.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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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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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