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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4 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 [에베소서] 1~9강(재정리)자유게시판에베소서

2024 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 [에베소서] 제1강 - 침투

강의 이근호, 녹취 한윤범

시작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아계셔서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한 진행을 우리가 예측할 수는 없지만, 미래의 것은 주님께 맡기고 지금 말씀 앞에 모였사오니,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어떤 내용인지 저희들이 깨닫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이번에는 에베소서를 하겠는데, 에베소서 1장부터 사도바울이 모든 인간에게 매우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즉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4절에 보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라고, 그렇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런데 창세 전에는 정작 우리가 없었는데, 우리 인간은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태어나지도 않은 우리를 창세 전의 이야기로서 우리에게 언급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바로 '통보' 라는 방식을 사용한 것인데, 즉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있었던 이야기를 그 뒤에 태어나게 만들어놓고, 그것을 통보해준다는 겁니다.

* 통보, 그리고 충돌 !!

그러면 통보, 즉 '알려준다' 라는 것은, 기존의 인간 세상에서 사용하는, 즉 "내가 있고 내가 필요한 것을 내 쪽에서 찾아서 가지게 된다" 라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통보하는 방식에서, 우리가 나중에, 즉 창세 이후에 우리 인간이 태어났으니까, 여기에 통보를 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우리 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이것이 서로 충돌, 또는 마찰이 일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성경말씀인 에베소서를 시작하면서, 충돌을 유도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인간 쪽에서 하나님 쪽으로 나아갈 때,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 쪽에서 언어, 말, 또는 문장과 같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포섭하기 위해서 나아가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이것이 서로 충돌과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는 없는데,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식인 창세 전의 언어로서 우리 인간에게 다가오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창세 전에는 인간의 언어라는 것은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때는 인간 자체가 아예 없었으니 말이죠. 그렇지요?

사람이 언어를 가진다는 것은 '자아' 라는 것이 있다는 뜻인데, 즉 사람이 옹알이를 하는 것을 지나서 말을 하기 시작할 때는 벌써 자아가 무르익게 된다는 겁니다. "나, 김 먹을래. 김치는 안 먹을래" 라고 한다면, 그것은 벌써 자아가 형성된 것인데, 즉 자기 판단이 시작되었다는 말이죠.

* 시작은 있다. 그러나 끝은 모르겠다 !!

인간에게 나오는 모든 언어는 만들어진 자아를 지켜내기 위해서 터져 나오는 것들인데, 자기를 없앨 생각이 전혀 없고, 자기를 지킬 요량으로 언어를 사용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인간의 언어가 시작이 있다는 것인데, 그런데 끝은 어떻다는 겁니까? 그것이 "시작은 있다. 그러나 끝은 모르겠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여기서 "끝은 모르겠다" 라고 하는 것은, 뭔가 끝을 향해서 가기는 가는데 일단 시작해보자는 겁니다. 즉 "갈 데까지 한번 가보자" 라는 것인데, 끝은 모르니까 말이죠. 가기는 가는데, 이 시작이 진짜 의미가 있는 시작인지, 제대로 된 방향이 맞는 것인지, 그것은 모르겠다는 겁니다.

이것을 바꾸어서 말하면, "그냥 갈 데까지 시간이나 때우면서 인생을 살아보겠다"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끝을 모르니까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끝을 모르는데, 그러니 누군가가 아무리 끝을 이야기해주더라도 그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어차피 끝을 모르니까 말이죠.

* '나는 내가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 VS '나는 죽는다' !!

지금 문장을 적어볼 테니까, 무슨 뜻인지 맞추어보세요. "나는 말한다. 내가 죽을 것이라고" 라고 하는 것과, 그리고 "나는 죽는다" 라고 하는 두 개의 문장, 이것이 서로 같아요? 달라요? 같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두 번째 문장에는 '나' 라는 것이 하나가 있는데, 첫 번째 문장에는 두 개라는 말이죠.

처음의 "내가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한다" 라는 문장에서, 이 '죽는다' 라는 말은 어디서 나온 것이냐 하면, 지금 자기가 말하기 때문에, 이 '나' 라는 게 죽은 상태라는 겁니까? 산 상태라는 겁니까? 이게 살아있는 상태라는 겁니다. 그 살아있는 상태가 무엇을 언급했는고 하니, 자기도 알지 못하는 자기의 끝, 즉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죠. 모르는데 말이죠.

그것은 "남들이 죽는다고 하니까 나도 죽겠구나" 라고 이야기를 하기는 하는데, 이것은 남들이 죽는 것이고, 그런데 정작 자기가 죽을 때는 가려움증이나 그런 것을 압니까? 자기가 죽을 때 어깨가 마구 쑤시고 하는, 그런 것 알까요? 천 명이 죽더라도 자기가 죽는 것과는 그 경험이 다르다는 겁니다.

* 나는 가짜다 !!

인간은 자기가 직접 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영원히 죽음에 대해서 모른다는 말이죠. 그렇게 죽음을 모르는데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언급했기 때문에,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모르는 사실을 언급한 자기는 가짜라는 겁니다. 즉 "나는 가짜다" 라는 것인데, 개코도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니까, 그 '나' 라는 것은 진짜가 아닌 가짜라는 말이죠.

그러니 "나는 죽는다" 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살아있다는 게 아니라, "죽음이 나를 함몰시키고 있다", 즉 "죽음이 나를 덮치고 있다" 라는 겁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살아있음 그 자체가 곧 나의 죽음이다" 라는 것이죠. 남들은 자기를 보고 살아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나 정작 자기는 지금 죽음 안에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이 두 개의 문장이 같아요? 달라요? 이 두 문장이 비슷한 문장도 아니고, 전혀 다른 문장이라는 말이죠. "나는 말한다" 라고 할 때, 이것은 무엇을 전제로 하느냐 하면, 자기 앞에서의 타인의 존재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해서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나는 죽는다" 라는 것은 독백으로 가능한데, 즉 "이제 죽는구나. 이렇게 끝나는구나" 라는 것은 굳이 남이 없어도 괜찮다는 말이죠. 혼자서 중얼거려도 문장이 되는데, 그런데 "나는 내가 죽는다는 것을 말한다" 라고 한다는 것은, 이것은 누군가가 들어달라는 겁니다. 즉 타인을 의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

* '뜻'과 '의미'의 차이 !!

여기 교재 2페이지서 '뜻'과 '의미'의 차이를 이야기하는데, 어떤 연극배우에게 "너는 강감찬을 해봐라" 라고 하면, 이번에 최수종을 보니 강감찬 역할을 매우 잘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의 가장 역할도 잘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가 제일 못하는 것이 뭐냐 하면, 자기 역할이란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 역할을 제대로 하려고 해도, 정작 자기가 누구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은 숨쉬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 모든 것이,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해서 꾸며서 살아왔다는 것인데, 그게 언어를 사용하는 자아의 주특기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그렇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런 자아가 제일 난처한 것이 어떤 경우인고 하니까, 그것은 자기 자신을 연기할 때라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연기할 때는, 그야말로 자신감이 전혀 없다는 말이죠. 자기가 자기를 연기하면서, 이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가 그야말로 헷갈리게 된다는 겁니다.

* 말할 수 없는 '암' 이야기 !!

더 쉽게 말씀을 해드리면, 여러분, 속임수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일까요? 예를 들어서, 서로 아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의 어떤 모임이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암에 걸렸다는 소문이 그만 퍼졌다는 겁니다. 일곱 명의 멤버 중에서 한 사람이 그만 암에 걸렸는데, 그야말로 이제 곧 죽을 말기 암 환자라는 말이죠.

이들 일곱 명이 카페에 모여서 여러 가지 이야기로 잡담을 나누는데, 그들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어떤 사람은 새로 나온 책 이야기를 하고, 어떤 사람은 영화를 본 이야기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직업과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그렇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2시간 정도 수다를 떨다가 그만 헤어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가정 이야기, 영화 이야기, 책 이야기, 누구와 다투었던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뭐냐 하면, 진짜 중요한 '암' 이라는 주제를 피하기 위해서 동원된 것인데, 그게 인간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지금 우리 인간이 말을 하고,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것은 자기가 누구인지 몰라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모습인데, 그렇게 주변을 돌아다닌다는 겁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이재명이 어떻고 하면서 정치 이야기를 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이야기를 하고, 만난 본 적도 전혀 없는 김정은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나는 내가 누군지 도대체 모르겠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 성경말씀도 자기를 달래는 용도로서 !!

그렇게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라고 하고 있는데,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니까, 사도바울이 "창세 전에 예수 안에서 우리를 선택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얼른 주워 담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모르는 자기를 달래는 용도로서 말이죠.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다시 말해서, 너무나 허해서 자기를 달래야 하니까, 후딱 주워서 자기를 커버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뜻' 이라는 것인데, 그 뜻은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동원된 것들이란 말이죠. 얼마 전에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는데, 이 세상에는 각종 지진과 전염병과 같은 재앙들이 발생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모든 재앙들에 대해서 어떻게 나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일어났다" 라고 하면서, 그게 성경적으로 맞는다고 우긴다는 말이죠. 그러면 "지진이 일어난 것과 하나님이 어떤 관련성이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 그러면 대답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진을 일으켰데. - 왜? - 나는 모르지. 하나님, 자기 마음대로지. 나는 몰라"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즉 의미를 모른다는 겁니다. 그런데 의미도 모르면서 지진이 일어나고 자기가 아는 사람이 돌아가셨다고 하면, "그것은 다 주의 뜻이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 뜻은 뜻이 없는 장소에서 나온다 !!

그러면 그런 이야기를 왜 발설하고 왜 언급할까요? 그것은 그 의미는 모르지만 뜻이 있어야 허망함을 달래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자기는 내일 또 하루를 살아야 하기 때문에 말이죠. 즉 오늘 일은 마감을 짓고 또 내일은 힘차게 살아야하기 때문에, 즉 "정리는 되지 않았지만 일단 정리가 되었다고 치고 그냥 넘어가자" 라고 하는데, 그렇게 또 하루를 때우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문제가 뭐냐 하면, "뜻은 뜻이 없는 장소에서 나온다" 라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 인간들로서는 가장 골칫거리라는 말이죠. 아까 에베소서 1장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어디서 나왔는가?" 라고 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이것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해서 필요했던, '언어' !!

그러면 정답은 뭐냐 하면, "나는 내가 없는데서 나왔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자기가 없는데서 자기가 나왔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라는 것을 가리기 위해서, 우리는 뭐가 필요하냐 하면, 자기 쪽에서 하나님께 다가가는 언어가 필요했다는 말이죠.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것이고, 우리는 그 성경이 필요하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모르는 '나'를, 해결되지 않는 것을 덮기 위해서 에베소서가 필요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에베소서, 여기에 뭐가 있는지 어디 보자" 라고 하는데, 봐서 무엇을 하자는 겁니까? 거기에는 노림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바로 해답을 얻기 위함인데, 그러니까 이게 '거짓말' 이라는 겁니다. "나의 해답을 얻기 위해서 성경을 보겠다" 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해답보다 먼저 있어야 돼" 라는 고집을 의미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성경인 에베소서는 자기가 없던 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때의 이야기를 말이죠.

그래서 이 '자아' 문제를, 언어라는 게 있음으로서 자아라는 '나', 그렇게 없는 것에서 생긴 것을 인간들은 어떻게 커버하느냐 하면, 일단 "내가 있다" 라고 치고, 그런 자기가 현재 있기 위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고, 예수님은 어떤 분이고" 라고 하면서, 그런 식으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모두 자기에게 끌어당긴다는 겁니다.

그렇게 "내가 먼저 있다" 라고 하고 나서, 그 다음에 "내가 여기에 왜 있습니까?" 라는 답을 구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답을 구하면서, "하나님이 계심에 내가 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게 뭐냐 하면, "나를 얻기 위해서, 나를 찾기 위해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서, 내 쪽에서 성경을 통해서 신에게 접근한다" 라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말이죠.

* 엉터리, 속임수, 틈, 빈곳 !!

그러니 그 자체가 어떻다는 겁니까? 그것이 다 엉터리고 속임수라는 겁니다. 즉 자기가 여기에 있고, 자기가 원하는 그 '나'를 알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정작 해답은 모르고 있으면서도, "여기는 해답을 아는 나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그 사이에서 속임수가 필히 나오게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것이 '틈' 이라는 것인데, 즉 빈곳이라는 겁니다.

지금 제가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하지만 그 해답은 아직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죠. 오늘 제가 해답을 제시하지 않으면 아마 여러분이 잠을 자지 못하지 싶은데, 그래서 해답을 벌써 제시하도록 하겠는데, 그러니 잠을 잘 주무시기 바랍니다(ㅋㅋ).

그 해답이 무엇인고 하니, "나의 자리는 내가 아닌 분의 자리를 원해서 맴도는 방식, 그것이 곧 나의 자리가 된다" 라는 것인데, 이것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사랑'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은, "그대 있음에 그대 있는 자리가 곧 내 자리다" 라는 것인데, 이것은 자기 자리를 확보하고 그대에게 가는 게 아니고, "그대 있음에 그대를 떠날 수가 없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 나보다 당신이 먼저 있는 그곳, '쉼터(Shelter)' !!

그래서 호숫가에 있으면 호숫가에 마구 따라가고, 또한 호텔 방에 있으면 호텔 방에 마구 따라가는데, 너무 심각하게 듣지는 마시고, 드라마 이야기라는 겁니다(ㅋㅋ). 즉 "나보다 당신이 먼저 있는 곳에서 비로소 나는 쉼을 얻는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것이 '쉼터(Shelter)' 라는 것인데, 그러면 그 이전에는 뭐냐 하면, "인간은 나로 인하여 절대로 쉬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인데, 즉 "해답을 내가 갖고 있으면 안 된다" 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여기서 충돌이 없는데, 충돌이란 것이 성립되지가 않는다는 말이죠.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어떤 분은 "목사님, 저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요" 라고 하는데, 그런데 이렇게 "나는 사랑한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은, "이미 사랑한 사람이 확정되어있기 때문에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라는, 그런 뜻이라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것을 달리 말하면, "내가 사랑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하지만 그것은 아까 말씀해드린 것처럼 틈이 있기 때문에, 즉 인간은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사랑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 주기율표 !!

그렇다면 여기서 여러분이 강의의 흐름을 쉽게 이해하도록 일단은 두 개로 나눠보겠습니다. 자기가 자기 의미를 알기 위해서, 자기보다 더 많이 알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알고, 그 죽음 이후 세계까지 안다는 신에게 찾아가면서, 그런 인간이 중간에 만나는 게 있다는 겁니다. 그 만나는 것이 뭐냐 하면, 자연을 만난다는 말이죠. 그러면 인간은 이 자연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언어를 활용할까요?

"H He Li Be B C N O F Ne Na Mg Al Si P S Cl Ar K Ca" 라고 하는 '주기율표' 라는 게 있는데, 제일 바깥에 전자가 한 개 있는 것, 그리고 두 개 있는 것, 이것이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라는 겁니다. 이게 무엇을 겨냥하는 언어냐 하면, 자연의 흐름, 즉 질서를 잡아서 하나씩 쪼개고 극복해나가면서, 그렇게 자기가 누구인지 아는데 보탬이 되고자 언어를 사용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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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기율표(週期律表, Periodic table) 또는 주기표(週期表)는 원소를 구분하기 쉽게 성질에 따라 배열한 표로, 러시아의 드미트리 멘델레예프가 처음 제안했다. 1915년 헨리 모즐리는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를 개량시켜서 원자번호순으로 배열했는데, 이는 현대의 원소 주기율표와 유사하다.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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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Li)의 경우를 보게 되면, 이 암석이 시멘트와 비슷한 색깔인데, 이 리튬은 전자가 마지막에 하나밖에 없어서 반응을 잘한다는 말이죠. 이쪽은 알칼리성 금속이라서 굉장히 가벼운데, 나트륨(Na)도 물에 뜨고 칼로 자를 수도 있는 무른 금속이라는 겁니다. 리튬은 리튬전지가 유명하고 나트륨과 같은 것은 우리 인체 세포의 축색돌기에 나트륨 이온이 들어가서 전기현상을 일으킨다는 말이죠.

그리고 마그네슘(Mg)은 자연의 엽록소에 들어있어서 엽록소 활동에 기본적이고, 칼륨(K)은 인(P)과 황(S)과 더불어 3대 비료요소가 되고, 이 칼륨은 폐 안에 들어가서 폐의 기공을 열어준다든지, 또는 뼈 안의 성분으로써 존재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인데, 저는 이 전체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중성' 이라고 말이죠. 인간은 신을 찾아가든지 자연을 연구하든지 간에, 인간이 쓰는 모든 언어는 자기를 "선이냐? 악이냐?" 라는 것을 규정하지 않는 중성적인 위치에 둔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과학은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과학에는 과학의 영적 싸움이 과연 성립될까요? 과학에서는 성립되지가 않는데, 중성이니까 말이죠. 그래서 "악하다, 선하다" 라는 것이 과학에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인간들은 주장하는데,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여기서 마가복음 13장 24절에서 27절을 보겠습니다.

(막 13: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막 13: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막 13: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막 13:27)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중성적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들 !!

그런데 여러분, 여기 이 말씀이 과연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성립이 됩니까? 중성적인 인간의 언어로서 이것이 과연 증명이 될까요? 아니 해가 왜 어두워지고, 달이 왜 빛을 내지 않고, 그리고 하늘의 별이 왜 떨어지지요? 그것이 과연 과학으로 설명이 됩니까?

여기에는 '영적 전쟁' 이라는 전제가 먼저 설명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이 배제된 전쟁, 그게 바로 영적 전쟁이라는 말이죠.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즉 메시야와 악마와의 싸움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님 쪽에서 우리에게 들어온 것인데, 결코 우리가 먼저 다가갈 수는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 여러분을 또 잠재우기 위해서(ㅋㅋ), 이렇게 인간의 중성적 언어를 고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선과 악이란 것은, 내가 이런 헬륨(He)이라든지 수소(H)라든지, 내가 바르게 쓰면 선이고 나쁘게 쓰면 악이다" 라는 겁니다. 즉 "그 판단에 있어서 나는 중성적인 존재다" 라고, 인간들은 지금 그것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말이죠.

* 산화수소, H2O, 물 !!

여러분 산화수소가 무엇입니까? 산화수소란 말을 사용함으로써 뭔가 노리는 세계관이 있다는 겁니다. 산화수소, 네 글자인데, 한 글자로 표현하면 무엇이 됩니까? '물' 이라는 말이죠. 수소가 산화된 것인데, 그냥 물이라고 하면 되는데, 그런데 굳이 'H2O'로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러한 과학 자체 내에 확장될 세계관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그런 세계관을 왜 붙들고 왜 고집할까요? 그것은 이런 언어를 확산시킴으로써, 다른 누군가가 자기를 죄인이라고 규정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나는 그냥 순순하게 너무나 중립적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나보고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지를 마라" 라는 겁니다.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어디 죄인인가요? 축구를 못하고, 야구를 못한다고 해서 죄인인가요?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 천국의 침투 !!

이런 과학에 대한 해답은 누가복음 16장 16절에 나오는데, 이것을 풀면 그 어려운 에베소서가 왕창 다 풀린다는 겁니다. 물론 제가 종로학원의 유명 강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풀어보겠는데, 이것을 알게 되면 "아하, 그렇구나. 바로 그것이었네" 라고 하지 싶은데 말이죠. 제가 여러분이 너무 기대를 많이 걸도록 했나요? (ㅋㅋ)

(눅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여기에 보면 '침입하느니라' 라고 되어있는데, 침입, 즉 침투라는 겁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도 같은 뜻인데, 거기에 보면 뭐라고 합니까?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라고 한다는 말이죠.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이란 것을, 고정적으로 "여기 있다. 믿어라" 라고 하면 왜 안 되느냐 하면, 천국이 올 때는 우리가 결코 중성적인 존재인 것을 천국 자체에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영적 전쟁이 되려고 하면, 선한 쪽도 있어야 하지만 악한 쪽도 반드시 맞은편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전쟁이라는 것이 성립하게 된다는 말이죠.

* 영적전쟁은 중성적 존재를 허용하지 않아 !!

여자의 후손은 무조건 선이고, 뱀의 후손은 무조건 악인데, 이 선과 악 사이는 인간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즉 인간이 개입되기 이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그 전쟁의 가운데서 "저는 중성인데요. 저는 아무 나쁜 것도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라는 겁니다. "너는 그냥 떡이나 먹어라" 라는 것인데, 우리는 그 전쟁 여파로 나온 결과만 취하면 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천국이 침투하게 되면, 인간들이 형성한 천국이 그만 침노를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인간들의 세상이 공격을 받으면, 그것을 구약 때는 율법과 선지자들이 공격했다는 말이죠. 그런데 신약 때는 누가 하는고 하니, 성도가 인간세계를, 즉 성도가 인간들의 천국관을 완전히 파괴시켜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면 성도가 어디 있느냐 하면, 성도는 없다는 말이죠. 성도가 되려고, "나는 성도가 될래" 라고 한다고 해서 성도가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성도는 어떻게 해서 되는고 하니, 인간들이 쓰지 못하는 언어 속에서 비로소 발생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게 성도라는 겁니다.

*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라 !!

그래서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라" 라는 것인데, 즉 새로운 언어의 창조라는 말이죠. 인간들이 언어를 도입해도, 그것이 두 가지 의미를 다 품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도달되지를 못한다. 그런데 그 의미는 인간세계를 파괴시키는 언어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동일한 천국, 영생, 율법, 인간, 악마, 선, 악, 교회, 그리고 에베소서에 나오는 창세 전, 특히 예정, 이러한 수많은 용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용어들이 반드시 어떻다는 겁니까? 여기에는 두 개의 기능이 모두 다 포함이 되어있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이 '예정' 이라는 용어, 이것을 인간은 어떻게 사용했으며, 그리고 하나님은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마중을 나와서 요격해서 박살내었을까요? 여기에는 그 두 가지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는데, 그러니 우리 인간은 자기 쪽에서 그것을 얻을 생각일랑은, 그것을 납득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를 해야한다는 겁니다.

* '파괴'와 '창조'를 포함한 언어 !!

그러면 아까 본 마가복음 13장에 나오는, 즉 "그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라고 하는, 이것을 어떻게 풀어내는 것이 창세 전의 언어, 즉 창조된 언어를 활용한 사례가 될 수 있을까요?

성경에 그게 나오는데, 해가 떨어지고 별이 떨어지는 것이 바로 단 하루에 이뤄진다는 말이죠. 인자가 오는 것이 단 하루에 온다는 겁니다. "단 하루에 온다" 라는 것은, "모든 인간의 긴긴 시간이 단 하루 안에 응축이 된다" 라고 하는, 그런 의미이라는 것이죠.

* 단 하루(One day) !!

이것을 달리 이야기하면, "단 하루에 일어난 일이 그동안 확장되었고 펼쳐졌다" 라는 것인데, 시간의 응축이라는 겁니다. 제가 설교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속도가 빨라지면 모든 무게라든지 질량이 축소가 된다" 라고 말이죠. 얼마 전에 했던 기억이 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한 날에 자기가 준비한 모든 것을 다 승부를 내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하루, 그냥 'One day' 라는 말이죠. 그 하루가 언제인고 하니, 그것이 사도행전 1장에 나온다는 겁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들 나름대로 종합하면서 단출한 질문을 던지는데, "이스라엘을 회복할 날이 언제입니까?" 라고 말이죠.

거기에 대해서 주님의 답변은 오늘 강의한 것과 똑같은데, "너는 몰라도 돼" 라는 겁니다. 즉 "너는 그 일에 끼어들 당사자가 아니야"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너는 네가 이미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성경 해석의 해당자가 아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죠.

(행 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행 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 한 날, 한 지점, 곧 예수님의 죽음 !!

이 '단 하루'에 대해서 사도바울의 편지에서는 이렇게 정의하는데, 성령이 나오는 곳, 즉 '자리'를 말한다는 겁니다. 성령이 나오는 자리니까, 이것은 시간이 아니고 공간이 된다는 말이죠. 공간과 더불어 무엇이 나오는고 하니, 공간이 생기면서 덩달아서 시간이 나온다는 말이죠. 벌여놓은 시간을 하나의 공간으로 잡아 당겨버리면, 시간도 빨려오고 공간도 빨려와서, 한 날, 한 지점으로 모든 것이, 그렇게 진리가 통하게 된다는 겁니다.

사도바울의 편지에서 단 하루, 이 장소를 무슨 장소로 보느냐 하면, 그게 바로 '예수님의 죽음' 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아까 우리가 논했던 언어를 여기에 응용을 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에게 응용한 것을 제가 여러분에게 질문해보겠는데, 즉 "인간에게 죽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라는 겁니다.

* 인간에게 죽음이란 없다 !!

물론 여러분이 대답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ㅋㅋ), 인간에게는 죽음이란 없다는 말이죠. 자기 죽음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죽는데, 그렇게 인간은 모두 다 죽기 때문에, 죽음은 인간의 자기 일이 아니라는 말이죠.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죽음을 모른다는 겁니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자기가 살아있는 한 인식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은 없다는 말이죠. 이 세상에서의 죽음은 단 하나의 죽음 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곧 십자가인데, 이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여러분의 인생이 제대로 정리가 된다는 것이죠.

"GO, GO! 가자!" 라고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됩니까? 자기 죽음으로 가면 안 된다는 겁니다. 수목장을 할 겁니까? 화장을 할 겁니까?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죠. 그러면 어디로 가느냐 하면, 예수님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거기에 바로 무엇이 기다리는고 하니, 시공간을 넘어서, 시공간에 저촉 받지 않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시공간이 열리게 된다는 말이죠.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 라는 베드로후서의 이야기도 그 근거가 뭐냐 하면, 예수님의 죽음 안에 있는 창세 전의 언어 활용을 인간이 쓰고 있는 언어와 겹쳐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는 겁니다. 그게 침투하는 말씀인데, 우리에게 쳐들어오는 말씀이라는 것이죠.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 마귀의 종, 곧 정신병 !!

이것을 여러분이 모르게 되면,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내 쪽에서 무엇을 하면 됩니까?" 라는 질문을 죽을 때까지 하게 된다는 겁니다. 끊임없이 말이죠. 그러면 마귀의 종이 안 되려고 해도 안 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마귀의 종인데, 저는 이번 시간에 그것을 '정신병' 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말이죠.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정신병자인데, 다루지 말아야 할 대상을 자기가 다루려고 시작한 것에서부터 이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겁니다. 그런 한 예를 아까 말씀해드렸는데, 아주 유명한 탤런트가 다른 역할은 잘하는데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다른 역할은 의식세계에 속하지만, 자기 역할은 자기의 담당이 아니라, 자기 무의식 세계의 일이기 때문에, 자기가 무의식을 다룰 수는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무의식이 자기를 다룬다는 말이죠. 자기가 어떻게 무의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것은 충동이 자기를 다루는 것인데, 자기가 충동을 다룬다면 그것은 충동이 아니라는 말이죠. 기껏해야 본능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충동' 이라는 말은, "내가 없던 자리가 나를 장악하고 있다" 라는 것인데, 즉 "내가 없던 자리", 그것이 "나다, 아니다" 라는 경계선이 없던 자리에서 자기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사십을 살았던 오십을 살았던 간에, 평생토록 정신병을 더욱 더 공고히 하면서 살았다는 말이죠. 정신병을 의식 차원에서 생각해서 "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라는 것을 자꾸 상정을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신병이 아니고, 그것은 자기가 실수한 것이란 말이죠.

이 '정신병' 이라는 것은, "나의 허망함, 또는 나의 허무함을 내가 아는 언어를 총동원하더라도 도저히 메울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인데, 한 쪽을 메우니까 다른 한 쪽에서 마구 터져 나온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정신병 증세는 어린아이 때부터 있어왔다는 말이죠.

* 솜이불과 피라미드 !!

여러분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겨울이 되면 추우니 두툼한 솜이불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안에서 몸집이 작으니까 손가락으로 쑤시면 이글루와 같은 공간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 세계가 만들어지는데, 이불 안에 말이죠.

그 안에 누워보면, 이불 속임에 불구하고 별자리도 보이고 한다는 겁니다. 거기에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게 여지없이 허물어지는 것은 뭐냐 하면, 엄마가 와서 그만 이불을 확 제쳐버린다는 겁니다. "뭐하노? 저녁을 먹으라는 소리도 못 들었어?" 라고 하면서 말이죠(ㅋㅋ).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만의 소박한 세계가 그만 다 깨져버린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게 어릴 때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지요? 이집트의 피라미드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말이죠. 피라미드가 왕의 무덤인데, 여기 숨통을 하나 냈는데, 그 방향이 어디냐 하면, 그게 북극성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영원히 고정된 별인 북극성, 그 영원한 고정성을 향하여 연결이 되도록 피라미드를 만들어놓고, 바로 그 피라미드에서 이집트의 모든 왕들은 죽음 자체에서 벗어나기를 소원했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 피라미드가 바로 우리의 어린 시절의 솜이불이라는 겁니다.

* 다시 하면 !!

다시 이야기를 해보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다가설 때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게 뭐라고 했습니까? 그것이 자기를 둘러싼 뭐라고 했습니까? 그것이 바로 자연인데,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의 과학이라는 말이죠. 즉 자연 질서를 만난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자연 질서를 만나도 거부감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은 곧 "내가 착하냐 나쁘냐는 것을 내가 결정하도록 나한테 맡긴, 즉 나는 여전히 중성적인 존재인 것을 자연이 거기서 호응하고 있다" 라고, 그렇게 자기가 그 증거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한 마디로 말해서 "자연이 무슨 죄가 있어?" 라는 것인데, 달리 말하면 "내가 무슨 죄가 있어?" 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자연에서 계속해서 더욱 더 완벽하게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의식적인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어떤 마찰이나 충돌이 일어날 필요가 없다는 의미라는 것이죠.

* 매개 VS 주체 !!

그런데 이 '중성' 이란 것은, 영적 싸움이 없다는 겁니다. 이런 영적 싸움이 없으면 무엇이 안 되느냐 하면, 이게 매개자가 아니라는 말이죠. '매개자' 라는 어려운 말이 나왔는데, 매개자란 무엇인고 하니, 예를 들어서, 빌라 두 채가 있고 그 두 채 사이에 연결이 되어있다면 이것이 바로 매개가 된다는 겁니다. 앞집에 누가 살고 뒷집에 누가 살고, 그렇게 앞집과 뒷집이 연결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떠한고 하면, 윗집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쪽에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고, 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고 한다는 겁니다. "코로나는 왜 생겼을까? 그것이 바이러스 때문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죠.

그러니 인간은 매개가 아니고 자기가 주체가 된다는 겁니다. 매개가 아니라는 말이죠. 매개의 반대는 주체고, 이 주체의 반대는 매개라는 겁니다. 매개란 은혜성과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미 그 끝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시작도 알아야 하고 말이죠.

주님이 여기 에베소서 1장에서 매개로 제시한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라는 것인데, 그러니까 예수님이 매개자가 되고 중보자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즉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 자신이 매개 대상이 되면서, 그 중간에 매개자로서 성립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주로부터 시작해서 주로 말미암아 주께로 돌아가는 노정, 그 경로가 설치된다는 겁니다. 그런 경로가 설치되어서 순환을 하고 있는데, 그런데 여기에 그만 인간이 끼어드니까 어떻게 됩니까? 정상일 수가 없는데, 그래서 그것이 바로 정신병이고, 우리 인간은 모두가 정신병자라는 말이죠.

* 아픈 너는 빠져있어. 내가 알려줄게 !!

그래서 여기서 도려낸 것, 그것이 인간이 빠진 상태라는 겁니다. 즉 창세 '전' 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주님이 우리 인간을 보고 "너는 아픈 사람이니까 빠져있어. 내가 창세 전에 다 이루면 너에게 통보를 해주겠다" 라는 것인데, 즉 "내가 알려줄게. 성령을 통해서 너에게 알려줄게" 라고 하는, 이것이 바로 주님의 계획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의 계획은 10분을 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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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