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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40202a 울산강의-역대기상(27강) 29장 15절 : 불 속의 성전자유게시판-

20240202a 울산강의-역대기상(27강) 29장 15절 : 불 속의 성전
(강의:이근호 목사)

역대상 29장, 역대상 마지막 시간이 되겠습니다.

다윗 왕이 솔로몬에게 물려주려고 한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성전이었습니다. 왜 자식한테 성전을 굳이 물려주는가? 성전은 어떤 인간도 천국에 가지 못 한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는 하나님 쪽에서의 만드신 확실한 뜻입니다. 지상에서 천국을 가로막아버리는 그러한 장치가 성전입니다.

성전 할 때 이것 하나만 생각하면 돼요. 성전은 불이 있는 곳. 창세기 3장 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생명나무 가는 길에 그냥 막은 게 아니고 뭐로 막았느냐 하면 두루 도는 불로써 막아버려요. 두로 도는 화염검 불붙는 천사를 통해서 성전 가는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구체화되고 막혔다, 가지 못 한다가 다윗 시대에는 뭐로 나타나느냐 하면 성전으로 나타납니다. 성전이 있다는 것은 인간은 천국을 가지 못 한다. 갈 수가 없는 곳이라는 걸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러면 다윗 이전에 모세는 뭘 했는가? 하나님은 가지 못한다는 것을 뭐로 모세를 통해서 보여주는가? 가지 못 한다는 것은 불이 있어 가지 못 한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집에 가게를 안 한다든지 해서 별 안 바쁘면 올 수 있지 않겠는가? 안 바쁘기 때문에 못 가는 것이 아니고, 안 바빠도 못 가고 바빠도 못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모세는 뭐냐 하면 율법으로 천국을 갈 수 없다는 것을 막아놨어요. 신명기 4장 11절에 보면,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화염이 충천하고” 불붙는 산, 하나님께서 모세와 만났는데 모세만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가 불이 붙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세는 불을 뚫고 들어간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는 모세가 보통 사람이 아니지요. 하나님이 불러주니까 그렇게 된 거고.

그리고 신명기 5장 24절에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영광과 위엄을 우리에게 보이시매 불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을 우리가 들었고” 불 가운데 나오는 음성이에요. 불이 붙는 가운데 음성이 주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신명기 4장 24절에 보면,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라 했습니다.

여호와가 소멸하는 불이다. ‘불을 통과하지 않으면 여호와를 만날 수 없다. 불을 통과하지 않으면 천국 못 간다.’ 그런 뜻입니다. 어느 인간이 불을 통과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인간은 아무도 천국에 가지 못 합니다. 그것을 다윗 시대에 분명히 보여주는 게 성전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면 성전 이전에 성전은 율법에서 나온 건데 이 율법에서 성전의 기능을 했던 것을 ‘성소’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거는 레위기 10장에 보면 성소의 특징이 잘 나와 있습니다. 레위기 10장 19절에, 오늘 성경 엄청나게 찾을 거예요. 많이 찾습니다.

레위기 10장 1절에 보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어디서 죽느냐 하면 성소에서 죽어요. 성소에서 맞아죽는다든지 심방마비로 죽은 게 아니에요. 성소에서 죽일 때 확실하게 죽이는 방식이 있었습니다. 향로에서 불이 나와서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누가요? 제사장이. 자기 직장인데 직장에서 불을 다루는 자가 불에 의해서 죽습니다. 죽고 난 뒤에 레위기 10장에서 아론의 아들 네 명 중에서 두 명이 죽었어요.

레위기 10장 16절에,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속죄제 드릴 염소는 제사장이 일단 고기는 먹고 불살라야 되는데 그냥 불살랐어요. 그래서 모세가 왜 율법대로 하지 않느냐고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크게 노할 때에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모세 조카입니다. 형님 아들이거든요. 그때 형인 아론이 여기에 대해서 성경해석에 대해서 반박을 하게 됩니다.

반박하는 게 뭐냐 하면 모세 쪽 주장은 이거에요. 18절에, “그 피를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하였으니 그 제육은 너희가 나의 명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할 것이니라” 할 때에 19절에, 아론에 모세에게 반박하기를 “오늘 그들이 그 속죄제와 번제를 여호와께 드렸어도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거늘 오늘 내가 속죄 제육을 먹었더면 여호와께서 어찌 선히 여기셨으리요” 모세가 그 말 듣고 좋게 여겼다고 돼 있어요.

이게 18절, 19절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요. 뭐라고 지시했고 지시한 것에 대해서 뭐라고 반박했는데 이 이야기 듣고 ‘그래 그 말이 맞네’라고 했느냐? 그 취지가 뭔지를 잘 알아보기 힘들지요. 이게 왜 그러냐 하면 이거는 뭐냐 하면 모세가 이야기합니다. 법대로 하자. 속죄제 염소는 고기부터 먹고 나중에 나머지는 불태워야지 고기도 안 먹고 불태우면 되겠느냐, 라고 했을 때에 아론이 반박하기를 지금 우리 일하는 직장이 장소가 성소다. 고기 먹고 잡으나 안 먹고 잡으나 여기에서 우리 아들 둘, 나답과 아비후가 죽지 않았느냐? 죽었다 이 말이죠.

그럼 모세 해석할 때 제대로 하자는 게 뭐냐 하면 성소 이곳이 바로, 첫 번째 나오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성소 이곳이 불로서 사람을 죽이는 곳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 속에 정중앙에 배치를 해놨어요. 하나님은 불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이 이스라엘이 인정할 때만 이스라엘이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왜? 성소가 가운데 있고 바깥은 성소 덕분에 성소에서 나오는 살려주는 그것에 의해서 그들은 살아 있기 때문에 그랬어요.

따라서 율법의 정신은 고기를 먹고 불태우나 고기 안 먹고 불태우나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은 그것 아니라도 향로 불을 제단에서 들여오지 않은 다른 불을 사용했다고 죽여 버린다면 고기를 먹고 난 뒤에 잡았느냐, 안 잡았느냐 보다도 다른 변수가 생겨버리면 죽기는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이게 뭔 뜻인지 아시겠지요?

나는 평생에 살인한 적이 없다, 라고 하는 사람 있을 거예요. 또는 ‘나는 지금까지 간음한 적 없다’ 이런 사람 있단 이 말이죠. 그러나 그 사람은 뭘 빼먹느냐 하면 간음을 안 하나 살인을 안 하나 간에 우린 이 땅에 뭐 하러 태어났다 이 말입니까? 불로써 죽임을 당하기 위해서 태어났는데 그것 하나 위반 덜 했다고, 그건 지켰다가 그 불로 사람 죽이는데 무슨 소용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게 율법의 해석이에요. 이래도 불에 죽고 저래도 불에 죽게 하겠다는 것이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취지에요.

하나님께서 이런 취지를 가지고 모세 율법으로 왔기 때문에 오늘 역대상 29장에서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남기는 유산이 뭐냐? ‘성전’이에요. 왜냐? 성전은 불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성전이 불이 있는 곳이라는 말을 여러분들이 생소하게 들으면 안 돼요. 그걸 약간 여러분한테 익숙하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불로 통과한 짐승의 피가 묻은 것, 이러면 좀 상세하게 되지요.

인간은 자기 죽음을 양이나 염소한테 전가시키고 그때부터 양과 염소는 자기 죄를 전가시킨 인간을 대신해서 하나님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는데 그 마주치는 결과는 뭐였습니까? 제단에서 홀라당 불에 타죽는 거예요. 그겁니다. 그 일을 하는 것이 모세 때는 성소였고, 그걸 매일같이 고정적으로 본격화하는 것은 뭐가 된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성전이라 하는 것은, 인간은 어떻게 해도 천국에 못 간다. 이걸 확실히 해주는 것이 바로 성전이 되는 겁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왜 그것을 자식에게 물려주는가? 다윗은 자식이 열 명 있었어요. 다윗이 생각하기에 유일한 자식은 이겁니다. 다윗의 후계자를 보통 누구라 하죠? 다윗의 후계자는 솔로몬이죠. 여기 우리가 역대상 29장하면서 “다윗 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라고 아예 지정을 해줬습니다. 아들에게 이 나라를 물려준다.

다윗의 후계자는 솔로몬인데 다윗이 생각하는 진짜 자식은 뭐냐? 다윗의 죽음,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지요. 아버지의 죽음이 담겨있는 자식이 솔로몬입니다. 다윗에게 유일한 자식이라고 한다면 솔로몬인데 열왕기상에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왕 될 때 아도니아란 사람이 있어요. 솔로몬은 네 번째고 아도니아는 세 번째 아들이에요. 큰 아들, 둘째 아들은 죽었고 세 번째 아들이 육신적인 서열상 자기가 후계자라 해서 자기가 왕 되려고 다 꾸몄지요.

그런데 솔로몬이 아도니아를 죽입니다. 아도니아가 왜 후계자가 될 수 없는가? 아도니아는 아버지의 죽었다는 사실을 담을 수 없는 자식이기 때문에 죽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다윗은 언제 죽었는가? 다윗은 본인이 죽었다는 거예요. 본인이 죽었다가 두 번째 본인이 돼야 돼요. 다윗₁이 죽어야 다윗₂가 돼요. 그러면 첫 번째 다윗은 이스라엘 왕이었고, 첫 번째 다윗은 율법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것이 다윗이 생각했던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시편 51편에 보면, 밧세바를 범하고 난 뒤에 밧세바 남편을 죽이고 난 뒤에 나단 선지자가 와서 지적하게 됩니다. 그때 나온 시가 뭐냐 하면 내가 모친의 죄 중에서 태어났음이라. 다윗에게 누가 있다? 모친이 있다. 모친의 죄를 누가 인수받았다는 거예요? 다윗이. 인간의 죄는 하나님 앞에, 아까 했지요. 인간이 천국에 못 가는 이유는, 인간이 에덴동산에게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불로써 못 가게 만들었잖아요.

그러니까 모친의 죄 중에서 태어났다는 말은 다윗은 모친의 죄의 자식이 되는 거예요. 모친의 죄의 자식은 뭐냐 하면, 이건 다윗의 죽음을 의미하는 겁니다. 왜? 죄 값은 사망인데 죽잖아요. 다윗은 자기가 나단 선지자가 왔을 때 비로소 내가 육신은 살아 있지만 실은 내가 이미 죽은 자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가 죽은 자란 사실을 누굴 통해서 아느냐? 자기가 죽인 우리야 장군을 통해서 알게 된 거예요.

그래서 나의 죽음은, 본래 내 모습을 알려주는 것은 나는 죽을 자라고 기정사실화시키는 어떤 자의 죽음만이 우리의 진짜 본질을 알게 하는 거예요. 본인이 죽었고 두 번째로 태어난다는 것은 본인의 죽음을 담고 있을 때 그게 두 번째 죽음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이 말이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신약에 오면 이 말이 어려운 게 아니라 쉽습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예수님께서 내가 죽는 것은 너의 죄로 인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죽음 안에 뭐가 들어있단 말입니까? 예수님의 죽음 안에 천국 백성이, 인간은 천국 못 가요. 불로 갈 수 없는 인간이 어떤 조건 하에 죽느냐 하면 누가 인간이 죽었다는 사실과 그 죽었다는 것을 완전히 종결시킬 수 있는 다른 죽음을 통해서 인간은 인간₁, 다윗₁은 통과 못하지만 그 다윗₁의 죽음을 품고 죽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 안에서 두 번째 다윗은 살 수가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죽었지요. 아브라함이 죽었으면 그냥 죽으면 되는데 아브라함이 요한복음 8장 56절에 ‘내가 예수님 오기를 기다렸다가 보고 기뻐했다’ 이 말이죠(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그러면 죽어야 될 것은 아브라함₁이고, 그리스도, 나의 죽음을 기정사실화시키는 또 다른 분, 또 다른 분이 누구겠어요? 예수님이죠. 그 또 다른 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 부활 속에 자기는 새로운 아브라함₂로서 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우리가 천국에 가지 못 한다는 것이 이게 여러분, 슬픈 소식이에요, 기쁜 소식이에요? 문항이 두 개밖에 안 되는데? 우리가 천국 못 간다는 게 슬픈 소식이에요, 기쁜 소식이에요? 기쁜 소식이죠. 더 이상 내 운명과 내 팔자에 대해서 내가 신경을 그만 써도 되는 거예요. 심지어 자살해도 구원받는다니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게 자살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번개탄 안 피워도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죽은 인간이 살려하니까 이 자체가 우악스럽고 억지스러운 행동 아닙니까.

자살을 착각이거든요. 내가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착각이에요. 이미 죽었는데 또 뭘 죽어요. 태어날 때부터 죽었는데 뭘 또 죽어요. 그러니까 착각인 거예요. 착각의 비극적인 결말이 자살이잖아요. 우리는 지연된 자살이고. 매일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이미 죽었는데 가게 하겠다고 하고, 이미 죽었는데 뭘 하겠다 하고.

예수님 입장에서 생각해봅시다. 다시 설명하면 다윗의 후계자는 뭐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품은 자만 솔로몬이다. 왜냐하면 우리야를 다윗이 죽였지요. 우리야의 아내가 누굽니까? 밧세바지요. 이 밧세바에서 난 아들이 누구냐 하면 솔로몬이에요. 솔로몬이 밧세바를 통해서 났다는 것은 우린 이렇게 물을 수 있어요. ‘솔로몬, 너희 아버지가 누구냐?’ 물론 육신의 아버지는 다윗이지요.

그런데 다윗으로 하여금 너를 낳게 한 그 아버지는 누구냐? 두 번째 다윗이 되는 것은 누구의 죽음 때문입니까? 우리야 장군 때문에 죽은 거예요. 시편에 보면. 주께서 꺾으신 뼈로 나로 즐겁게 하옵소서(시51:8) 자기가 꺾어놓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주께서 꺾었다는 거예요. 자기가 우리야 장군을 죽여 놓고 주께서 꺾으신 뼈라고 하는 거예요.

왜? 다윗이 이미 죽은 자, 이미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행동을 어떻게 살인을 하던 안 하던 이미 죽어 마땅한 자로 들통 내게 하신 것은 우리야 장군이 맞닥뜨렸고 우리야 장군이 그때 시키는 대로 놀았으면 되는데 휴가 와서 시키는 대로 곱게 안 해서 자기 아내와 합궁을 했으면 아무 일이 없는데 휴가 줘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친구와 술 먹고 하다가 결국은 죽었잖아요.

다윗 입장에서는 ‘네가 뭔데 내 시키는 대로 안 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요. 근데 반대로 다윗이 죽어 마땅한 거예요. 다윗이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불쏘시개 역할, 그냥 소모되는 역할로 우리야 장군이 들어간 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에서는 족보를 솔로몬의 아버지를 누구라 하느냐 하면, 솔로몬의 어머니를 밧세바라 하고 밧세바의 남편을 누구라 하면 다윗이라 하지 않고 ‘우리야에게서’ 우리야로 보고 있지요. 솔로몬을 억울하게 죽은 우리야의 자식으로 보는 거예요.

그러면 물어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아버지가 누굽니까? 육신의 아버지 말고 죄를 넘겨준 아버지 말고 우리를 태어나게 한 아버지는 누굽니까? 아바 하나님, 하나님이 육신으로 죽은 우리를 두 번째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 거예요. 지금 다윗을 통해서 그 절차를 하나님께서 보여주는 겁니다.

이것 안다 치고 계속 진도 나가겠습니다. 다윗의 후계자는 솔로몬입니다. 그럼 솔로몬에게 아버지가 되어서 자기 후계자 솔로몬을 위해서 선물을 주는데 그 선물은 뭐냐 하면 성전이다. 왜 성전을 주느냐? 성전은 현재 육신으로 태어난 인간은 어디를 못 간다?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는 몸을 누구나 갖고 태어났다. 천국에 갈 수 없는 게 기정사실이 된 거예요. 어떻게 해볼까란 생각조차 해선 안 되는.

왜? 천국 못 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육신을 주었기 때문에. 그것은 그 당시는 성전을 통해서 못 간다는 걸 분명히 하는 거예요. 성전은 뭐가 있습니까? 불이 있다. 상시적인 불. 상시적인 불이 피워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거기 가면 죽어요.

역대상 29장에 “다윗 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홀로 하나님의 택하신바 되었으나 오히려 어리고 연약하고 이 역사는 크도다”(1절)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보세요. 솔로몬에게 성전을 물려주지만 사실은 솔로몬 안에, 솔로몬은 다윗의 자식이잖아요. 솔로몬이란 자식 안에 뭐가 반복되느냐 하면 죽은 아버지가 반복되어야 한다. 더 상세히 이야기해서 아버지를 죽이게 한 사건의 반복이 되면 그것이 뭐냐 하면 다윗의 자식이 되는 거예요.

다윗의 자식, 다윗의 자식, 다윗의 자식 해서 마지막에 뭐가 나오겠습니까? 다윗의 후손이 나오겠지요. 다윗의 후손이 누구지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는 거예요. 그래서 에스겔 35장인가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 사람을 예수님을 다윗이라고 이야기해요. 37장 24절, 내 종 다윗이 그들의 뭐가 된다? 왕이 된다. 희한하죠.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된다.” 다윗 이미 죽었는데, 죽어 버렸는데? 다윗의 후손이 왕이 된다, 말이 이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거든요.

예수님 오실 때 뭐라고 했습니까?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지요. 다윗의 자손인데 여기 왜 다윗으로 돼 있지요? 그 자손 안에 뭐가 살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다윗이 그대로 살아있었던 거예요. 그것을 저는 다윗의 사건이라 하는데 성경에선 다윗의 사건이라 하지 않고 다윗의 언약이라고 해요. 더 풀이하면 다윗의 언약사건, 다윗에게 일어났던 그 일, 다윗은 이미 죽은 자였는데 꺾으신, 다윗 대신 죽은 어떤 분의 죽음이 와서 죽어 마땅한 다윗이 살아버렸어요. 생명을 얻게 된 거예요.

그 죽은 다윗을 살리는 그 장치, 천국에 못 간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품어 있는 사람은 천국에 간다가 돼요. 우리 안에 십자가 사건 터지면 나는 못 가는데 십자가 사건이 담고 있는 나는 이미 하늘에 앉히시니, 이미 천국에 도착을 도달해버린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불을 통과하면 우린 어떻게 됩니까? 죽지요. 그 죽음을 미리 앞당겨버린 거예요. 사건 안에서. 내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게 아니고 나를 죽게 한 사건 안에 천국이 담겨 있었던 겁니다. 그게 언약이기 때문에 약속이기 때문에. 그것을 반복하는 게 뭐다? 이게 성전이라는 거예요.

에덴동산에 사건 터졌어요. 에덴동산에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 인간들이 이 세상에 추방되었잖아요. 추방될 때 그냥 추방되었습니까? 이 땅에 기다리는 게 있지요. 저주가 기다려요.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은 이 땅으로 온 게 아니고 저주의 땅으로 온 겁니다. 인간의 저주의 땅으로 갔다 이 말이에요. 인간은 저주의 땅으로 추방되었으니까 저주받은 인간이 에덴동산은 들어갈 수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에덴동산에는 뭐가 아직까지 훼손되지 않았느냐 하면, 뭐가 있느냐 하면 생명나무는 멀쩡해요. 선악과는 따먹었지만 생명나무는 멀쩡하잖아요.

그러면 생명나무가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생명나무가 작동하는 방법은 선악을 아는 자는 이 에덴동산에 살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생명나무가 가동을 하는 중이란 뜻이에요, 그게. 생명나무가 그냥 있다가 아니라 생명나무는 생명나무를 따먹을 수 없는 자는 이 에덴동산에서 추방한다는 그 일을 계속하면서 생명나무는 존재하는 거예요.

인간이 저주받아야 생명나무가 의미가 사는 거예요. 지옥 갈 자는 지옥 가줘야 천국이 의미가 살아요. 뭐 지옥 갔다. 안 됐다. 이러지 마세요. 생명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지옥 갈 자는 지옥 가야 돼요. 마귀와 추종자는 지옥 가야 된다고요. 그러면 생명나무가 자기 고유의 활동을 하면 그렇게 되는 거예요.

몸부림치는 남편이 일주일 동안 출장 갔다. 그럼 아내는 침대에서 편안히 잘 잤겠지요. 그런데 일주일 후에 그 집에 남편이 왔다는 티가 어디서 납니까? 밤에 아내가 침대 밖으로 튕겨 나왔을 때 ‘아하 이 집에 남편 왔네. 드디어 몸부림치는 사람 왔어.’ 몸집 작은 아내는 침대 밖으로 떨어져나가야 진짜 이집에 남편 온 게 티가 나잖아요.

생명나무는 지옥으로 보내는 일을 해줘야 이게 천국다워요. 천국에서는 생명나무 일을 계속하는 겁니다. 추방을 하는 거예요. 저주받을 자를 저주받을 자 맞는다는 것을 생명나무가 불을 뚫고 이쪽으로 내려오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 모세는 뭐라 했어요? 그게 율법이에요. 율법은 어디서 나온다고요? 불에서 나오지요. 뒤에서 불을 통과해서 이쪽으로 오는 거예요. 특별히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성소를 통해서 오고, 다윗 때는 뭐로 온다? 성전. 다윗은 성전 만들기를 준비했으니까 만드는 걸 통해서 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성전에 의해서 저주받은 자가 있다는 말은 그러면 성전의 기능, 그리고 취지가 완성이 되게 되면 이 성전은 성전의 어떤 기능 때문에 지옥이 발생되는지 알려주는 것이 다 드러날 때 비로소 성전 기능은 완료가 되는 거예요. 생명나무가 저주를 유발했다는 거예요. 생명나무에서 활동이 저주를 유발했다. 바로 그 취지를 담아버리면 그 사건이 담아 있으면 그 사람은 생명나무가 있는 천국에서 살게 되는 겁니다. 계속 활동해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이게 뭐냐 하면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 나오시는 그곳으로 돌아간다. 성도는 예수님이 나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게 돼 있어요. 인간은 천국에 못 간다. 그러면 성도는 어디 갑니까? 성도는 이미 천국에 와 있지요. 인간은 천국 못 가지만 성도는 이미 천국에 와버린 겁니다. 그러면 인간과 성도 사이에는 이게 인간의 힘으로 성도 될 수 있어요, 없어요? 안 되지요.

이런 거예요. 불가능한 것 속에서 어떻게 가능이 나오느냐 하는 이야기를 성경이 하고 있어요. 불가능은 전제입니다. 인간은 불가능한데 다른 나라에는 성전이 없잖아요. 인간은 불가능한데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을 받느냐 이 말 아닙니까? 불가능한데 어떻게 천국을 가느냐? 여기에 뭐가 돼야 돼요?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려면 외부적인 것의 투입될 때 들어가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 속에 외부적인 것이 있어요? 뭡니까? 돌아가신 십자가 사건이죠. 십자가 사건, 성령, 하나님의 은혜, 선물, 복음 다 외부적인 거예요. 이 땅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것이 여러분 속에 들어갈 때 외부적인 것의 투입으로 말미암아 불가능한 것이 뭡니까? 가능하게 된 겁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소질 이거와 아무 상관이 없어요.

물어봅시다. 불가능한 것이, 오늘 히터가 고장 나서 은근히 내심 기대했지요. 오늘은 안 졸겠지 기대했는데 이게 불가능한 일이네요. 불가능한 것이 외부에서 투입됐다는 이 말은, ‘외부적인 것’을 다른 말로 하면 ‘본래적인 것’ 인간은 처음에 만든 본래적인 것을 상실했어요. 잊어버렸어요. 하나님께서 본래적인 것을 외부적인 것으로 우리 속에 집어넣는 거예요. 우린 본래적인 것을 잊어버렸으니까. 인간은 자기 능력으로는 본래적인 것을 찾아갈 수 없어요.

그러면 이제부터 본래적인 것이 무엇이냐, 본래적인 것이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는가? 다윗의 자식한테는 본래적인 것을 물려줘요. 여러분도 여러분 자식한테 본래적인 것을 물려주세요. ‘니 목적이 뭐냐’ 그런 것 주지 말고, ‘네가 원하는 뭐냐’ 보지 말고. 네가 죽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본래적인 거예요. ‘네가 아무리 애써도 이미 죽은 자야. 너는 천국 못 가’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투입되는 것이 본래적인 거예요.

본래적인 것이 뭐냐? 에덴동산입니다. 에덴동산은 산이에요. 이게 에스겔 28장 16절에 나옵니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이게 산인데 하나님의 산이에요. 산이란 말은 에덴동산에서 물이 흘러나오지 다른 데서 물이 흘러나와서 에덴동산에 모이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가 있어요.

창세기 2장에 보면 에덴동산에 강이 네 개 있어요. 비손 강이 나오고 기혼 강, 힛데겔이란 강이 나오고 유브라데라는 강이 나와요(10~14절). 비손이란 뜻은 뭐냐 하면 ‘거품’이다. 기혼은 ‘터져 나옴’ 분출되는 것, 힛데겔은 ‘급류’, ‘풍족함’의 유브라데. 유브라데는 풍족함, 결실이란 뜻이에요.

이게 뭐냐 하면 산인데 터져 나왔으니까 급류니까 산에서 뭐가 내려온다? 물이 사방으로 급작스럽게 흘러내려간다는 뜻이에요. 에덴동산이 어디 있느냐? 지금은 홍수 이후기 때문에 현재 지리적으로 찾을 수 없어요. 홍수로 육지가 엉망 되었으니까 찾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현재 노아 홍수 이후에 저주를 받은 땅이기 때문에 여기서 에덴동산을 찾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이 인간이 출생한 본래적 동산이거든요. 본래적 동산이 이게 산이고,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어요. 에덴의 동쪽. 본래적인 것은 첫 번째 뭐라 했습니까? 이게 산이다. 우뚝 솟은 산이라 물이 급류로 분출하듯 흘러가요. 물이 모이는 곳이 아니고 물이 흘러가는 곳이에요. 본래적인 것이니까. 두 번째는 출입구가 하나밖에 없다. 본래적인 겁니다.

그러면 모세가 시내 산에서 율법은 어떻게 됩니까? 율법은 위에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그냥 주어지는 거예요. 율법이 주어지기 때문에 율법을 인간이 지켜서 타고 율법이 있는 곳으로 올라갈 수 있어요, 없어요?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거는 성전 산, 모리아 산도 마찬가지에요. 이것도 산이에요. 성전이 있던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올라갈 수 없는데 출입구가 몇 군데냐? 출입구가 한군데에요. 에스겔 40장부터 42장까지 성전 측량하는 것 있지요. 성전 측량을 보면 성전의 구조가 뭐냐 하면 출입구가 동쪽이에요. 성소의 입구도 동쪽, 솔로몬 성전의 입구도 동쪽, 에스겔에 나오는 최후의 성전 입구도 동쪽. 동쪽에서 누가 와요. 누가 오느냐? 여호와가 와요, 동쪽으로.

동쪽에서 여호와가 오기 때문에 이거는 위에서 갖다 붓는 식으로 분출하는 식으로 주는 겁니다. 오순절 날 성령이 그냥 일방적으로 퍼부어주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만찬할 때 내 떡 내 잔을 마시라고 그냥 주는 거예요. 외부적인 것이, 본래적인 것이 그냥 주는 겁니다.

주시는 취지가 네 쪽에서 못 올라오는데 이미 너는 죽은 자기 때문에 죽은 자의 어떤 시도나 어떤 노력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죽은 자에게 본래의 것이 은혜로 주어지게 되면 그 본래의 것을 따라서 오신 그 출입구를 따라서 같이 어딜 갈 수 있느냐? 그 본래 낙원으로 갈 수가 있어요.

오늘 아침에 전화가 왔는데 어떤 분이 이런 전화를 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목사님, 낙원과 천국이 다르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낙원이란 뭐냐 하면 아브라함의 언약에 준해서 천국 갈 사람이 대기하는 곳이 낙원이에요. 예를 들면 십자가 달릴 때 강도보고 예수님께서 ‘네가 오늘밤에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했지요. 아직 천국은 아니에요. 부활의 첫 열매는 예수님이기 때문에 그래요.

엘리야, 모세와 예수님이 변화산에 나타났을 때 모세와 엘리야 가는 곳이 바로 낙원입니다. 그리고 거지 나사로 비유에서도 거지가 어디 갑니까? 천국 갔습니까, 낙원 갔습니까? 아브라함의 품, 낙원에 가 있었다고요. 그 낙원에 간 자가 천국 가려면 어떤 사건이 있어야 되느냐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사건이 일어나야 낙원에 있는 자가 천국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그 전화한 분이 뭘 생각했느냐 하면 요한복음 14장에서 베드로보고 너는 가지 못 한다. 처소가 마련되면 나 있는 곳에 오게 한다 할 때 그 처소란 곳이 비로소 천국이란 것을 자기가 처음 알았다는 거예요. 믿는 자가 가는 곳은 낙원이지 처소가 아니에요. 처소는 예수님 십자가 죽고 난 뒤에 부활하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을 때 앉아있는 그곳에 같이 합류하는 게 처소가 돼요.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거.

왜 주님께선 그런 복잡한 절차를 왜 그렇게 구상을 하셔야 되느냐 이 말입니까? 그거는 끝까지 인간은 본래의 분이 오시지 아니하면 본래의 분과 동행하지 않으면 본래의 장소,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래요. 기껏해야 낙원에 가지만 그거는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은 예수님의 의로 인하여 가는 곳이에요. 예수님의 의는 십자가 죽고 부활해야 주어지는 거거든요.

그러면 우리는 천국 가면 죄 용서받는 자가 아니고 의인이 되는 거예요. 거룩한 자가 되는 겁니다. 단순히 나쁜 것 용서받은 정도가 아니고 본격적으로 의로운 자가 돼요. 누구로부터 인정받아요? 아버지로부터 인정받는다고요.

따라서 솔로몬이, 역대상 29장, 솔로몬이 외부적인 것을 역대상 29장 4절에 보면,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전 벽에 입히며 금, 은그릇을 만들며 공장(장인)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그리고 여기 7절에 보면, “하나님의 전 역사를 위하여 금 오천 달란트와 금 다릭 일만과 은 일만 달란트와 놋 일만 팔천 달란트와 철 십만 달란트를 드리고” 이렇게 돼 있어요. 어마어마합니다.

금 삼천 달란트, 요새는 백이 톤 정도 돼요. 은 칠천 달란트, 이천사십이 톤. 이거는 다윗의 개인소유입니다. 역대상 22장에 나오는데. 그건 개인소유고 그다음에 백성들이 낸 금은 오천 달란트인데 백칠십 톤, 일만 다릭(페르시아 금전으로 백삼십 그램)이 백이십구 톤 돼요. 은 만 달란트가 삼백삼십팔 톤 됩니다. 이건 백성들이 감당해야 돼요.

그러니까 다윗도 개인적으로 내고 백성들도 개인적으로 내고. 물론 백성들이 많이 내지만 다윗도 못지않게 많이 내요. 그렇게 해서 금, 은, 철, 놋으로 완전히 그리고 기타의 보석으로 화려하게 꾸민 것이 바로 뭐란 말입니까? 그게 바로 성전이에요. 이거는 뭐냐 하면 이 땅에서 하늘나라가 어느 정도 인간의 것으로 묘사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대단한 곳이냐를 성전을 짓고 이걸 누구한테 넘긴다? 자기는 죽고 난 뒤에 누구한데? 아들 솔로몬에게 넘기는 겁니다. 거기에 담긴 의미가 뭐냐? 10분 쉬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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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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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