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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강의20231222b 시편8편 2절(젖먹이의 출현)-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시편

광주강의20231222b 시편8편 2절(젖먹이의 출현)-이 근호 목사

소자, 작은아이, 젖먹이의 특징은 스스로 자기가 자기 될 마음이 전혀 없어요. 내가 나 될 마음이 없어요. 이미 깨어져버렸기 때문에. 십자가 앞에서, 만들어진 내가 와장창 다 깨졌으니까. 그러면 어떤 것이 들어오느냐 하면 주님께서 전쟁할 때 필요한 군인으로 군사로서 조립되는, 그렇게 생산되는 자기가 되길 원하겠죠.

그럼 이미 어른에서 도로 뭐가 돼요? 어른에서 주님 십자가가 들어가 버리면… 십자가는 복입니다.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에. 아까 기억나죠? 율법 안에 하나님의 전쟁이 들어있다. 기름 부은 자가 하는 전쟁. 기름 부은 자에게 입 맞추지 아니하면 지옥행. 그냥 지옥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 내가 원하는 인간형이 아니기 때문에 그냥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정당성입니다.

인간을 젖먹이로 바꿔요. 젖먹이로. 어른→젖먹이. 바꾸는 작업을 해주시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아까 그 두 번째 경우 있잖아요. 두 번째 경우가 발생되지 않아요. 모든 인간은 첫 번째가 다에요. 정신병이든 뭐든 첫 번째가 다에요. 자기 전쟁 거기에 완전히 미쳐있어요. 그러나 두 번째는 주님이 개입해서 발생된 새로운 변화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어떻게 젖먹이가 될 수 있는가? 인간으로서는 안 되죠.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요한복음 3장.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네가 하늘나라 못 간다.” 할 때, 니고데모가 하는 말이 “제가 어른인데 성인인데 어떻게 다시 태어나서 젖먹이부터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는 그걸 ‘사랑’이라 하는데 주님과의 관계를 사랑이라 해요. 사랑. 사람이 이 세상에서 타인을 이용합니다. 타인을 이용하되 사랑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그것은 ‘자기를 잃을까봐’에요. 자기를 잃을까봐. 보세요. 이 얼마나 독합니까. 아휴, 지독한 마귀에요. 자기를 잃을까 싶어서. 다시 말하면, 상대가 나를 가스 라이팅 할까 싶어서.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는 빌미로 날 이용할까 싶어서. 아까 그걸 차단하는 것을 뭐라 했습니까, 네 자로? 방어기제.

이미 인간의 사랑의 대상은 정해졌습니다. 인간은 누구를 사랑합니까? 자기 자신을 사랑하죠. 그것을 이미 기성 어른들한테서 다 봤어요. 그래서 애들도 때로는 이렇게 하잖아요. “나 엄마한테 실망했어. 아빠한테 실망했어.” 이런 이야기하죠.

난 곧이곧대로 들어서 아빠, 엄마가 날 위하는 줄 알았는데 애가 커서 드디어 무슨 눈치를 챘느냐 하면 아빠는 아빠만 최종 챙기고 엄마는 엄마만 최종 챙긴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그걸 통해서 나도 그렇게 버텨야 내가 내 전쟁에서 패배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이 교회 나온다면 교회 왜 나올까요? 예수님 이용하기 위해서 하나님 덕 보기 위해서 나오는 겁니다.

자, 그러면 타인을 이용하되 사랑하지 않을 경우에는 타인에 대한 공포가 있어요. 갈수록 혼밥, 살면 살수록 혼자서 살길 원해요. 결혼 안합니다. 혼자 살길 원하는데 무슨 결혼을 해요. 내 종이 된다고 할 경우 같으면 종이 될 경우엔 내가 봐줘서 한번 살아볼까 하는 거죠.

그래서 현대 사람들은 결혼하면서 이미 헤어질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고 결혼해요. 결국 이렇게 되면 결혼은 결혼을 위함이 아니고 상대를 이용하기 위해서 결혼해주겠는데 헤어질 때 그다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결혼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교회 나와서 복음을 공부합니다. 복음을 왜 공부합니까? 자기가 안 깨어지기 위해서. 아, 정말… 마태복음 7장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내가 주를 위해서 복음 전파하고 주를 위해서 선지자 노릇했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누구세요? 넌 날 이용했잖아. 너는 네가 안 깨어지기 위해서 복음 공부했잖아. ‘십자가 믿습니다.’ 했잖아. 네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디서 내 앞에서 구라 떨고 있어? 내가 모를 줄 알아?” 다 알아버리죠. (7:22-23)

그럼 하나님의 방법은 뭐냐? 하나님의 방법은 이 죄인, 자기밖에 모르는 이 죄인을 주께서는 이용하십니다. 죄인 안에서 주님 자신을 임신케 해요. 임신케 하고 잉태케 합니다. 죄인 안에다 주님 자신을 잉태케 해서 주님 자신에 의해서 이 죄인이라는 껍질 안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젖먹이와 소자를 생산하는 인큐베이터로 죄인을 사용하시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게 마태복음 전체에 걸쳐서 나와요. 마태복음 전체에 걸쳐서. 마태복음은 어떤 흐름으로 되어 있느냐 하면 “나는 이방인을 위하여 온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나온 말씀이죠. 나는 이방인은 위하여 온 게 아니다, 라고 분명히 해놓고 나는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찾기 위해서 왔다는 거예요. (10:5-6)

그러면 잃어버린 이스라엘이 그 찾으시는 예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느냐 하면 어린아이, 소자의 모습으로 등장해야 돼요. 소자의 모습으로. 이참에 우리 마태복음을 쭉 한번 볼까요? 이번 시간에 마태복음 다 떼버리죠. 이왕 시작한 거 다 뗍시다. 빨리 빨리 쭉쭉 넘어갑니다. 시간을 아껴야 되기 때문에.

6장 31절에 아까 했듯이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누가 구하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했잖아요. 이방인 제칩니다.

6장 7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여기서, 나는 이방인들을 아예 제거해버린다. 그럼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뭐냐?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소자, 하나님의 아들 만들기 작업에 주님께서는 나선 거예요. 그것을 마태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 확인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아들 만들기 작업에 대해서 정작 인간들은 모르는데 마귀는 알고 있어요. 마태복음 8장 29절, “이에 저희(귀신)가 소리 질러 가로되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조건이 있어요. 세례 받을 때 하늘에서 성령이 오는 거예요. 성령이 오게 되면 이 작업이 벌써 개시가 된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이 된 거예요. 하나님의 소자가 되는 겁니다.

마태복음 10장 6절은 아까 말씀드렸고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왔다. 마태복음 11장 25절,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재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계속 지금 아버지의 뜻이라 해서 예수님 자신을 뭐로 봅니까? 이 땅에 특이하게 등장한 타자, 타인으로 보는 거예요. 너희들이 알고 있는 그런 남이 아니라 너희들이 생각도 못한 남으로서 예수님이 오신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분이 직접 이 땅에 우리의 타인으로 등장해서 어떤 일을 한 거예요. 일을 하는데 어른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 소자한테는 드러내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마태복음 12장 18절에서 21절, 이건 좀 어려워요. 설명이 필요합니다.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누구한테 알게 합니까? “이방에 알게 하리라” 이방 제칩니다.

19절,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다음에 21절 보면 “이방인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20절,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계속 성령 받은 자를 앞장세워서 심판이니까 전쟁을 계속 밀어붙인다 이 말이죠. 언제까지? 이방인들이 낯선 전쟁을 파악할 때까지. 그래서 이방인에 대한 심판이 정당화될 때까지.

그러면 나중에 이방에 알려질 때까지 심판을 하는데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결국 거부하잖아요.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이 거부되었다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 빈자리에는 누가 채워질까요? 심판하는 분이 바로 이스라엘 하나님이고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아는 이방인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거예요.

그것도 마태복음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1절에 보면,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예수님이 잃어버린 자기 이스라엘을 위해서 왔는데 정작 이스라엘은 예수님 앞에서 회개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 그 현상은 어떤 현상이냐? 이스라엘을 위한 메시아였지만 정작 회개는 누가 했습니까? 니느웨가 회개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역전되어서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의 본 자손이라는 자들에게 “너희 왜 회개 안 해? 너희들이 너희 하나님을 왜 몰라?”라는 식으로 지적하는 경우를 발생시킨다는 말이에요.

12장 42절,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이스라엘의 본 자손을 찾으러 왔지만 이상하게 본 자손은 계속 자기 메시아를 거부하고, 거부하면서 같이 드러나는 것이 전혀 모르는 이방인이 회개하는 이방인으로 너희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이런 기이한 현상이 동반해서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누가 소자냐?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나의 자의식을 완전히 버리고 누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사람입니까? 아까 A, B라는 두 사람이 있었지만 그 사이에 누가 끼었다 했어요? 주님이 끼어버리면 주님과의 만남을 먼저 선행한 자가 자기의식이라는 것이 이게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버리는 게 아니고, 이게 중요해요, 버리는 게 아니고 나 위주로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게 아니고 날마다 십자가 앞에 소환당하는 거예요.

내가 누구를 만나잖아요. 또 여러분들이 어떤 누구를 만나잖아요. 만날 때에 ‘나는 이런 짓거리를 이런 기대를 가지고 지금 만나고 있습니다. 이게 주님을 대적하는 것이고 복음에 위반되는 것이고 이것은 내가 죽어도 할 말 없는 것입니다.’ 하는 사실을 그 사람 앞에서 그걸 털어놓는 것이 그게 바로 전도고 선교다 이 말입니다.

버리는 게 아니고. 자기 과거를 잃어버리는 게 아니고 자기 과거를 소환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과거를 못 버리는 것이 그렇게 지옥 같았는데 십자가를 알고부터는 과거를 소환하는 것이 그렇게 가볍고 즐거운 거예요. “나 이런 인간밖에 안됩니다.” 하는 것을 즐겨, 아주 기쁘게 그걸 고백하는 거예요. 타인 앞에서. “나 인간 안 달라졌어요.” 이걸 막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거예요.

“난 당신 만나면 꼴 보기 싫거든. 그런데 당신을 만나야 될 이유가, 꼴 보기 싫어하는 그 자세가 얼마나 내가 교만하고 나만 챙기는 죄인인 것을 또다시 당신을 통해 들통 나라고 우리 둘은 복음으로 만났습니다.” 그 현장성에 주님이 현존해 함께 있는 거예요. 이 전쟁이에요, 이 전쟁.

마태복음 잠깐 중단하고 교재 계속 하겠습니다. p.23 한번 봅시다. 밑에서 4번째 줄에,【성경은 이렇게 패역한 인간의 속성을 원수로 간주하고 있다. (골1:21, 롬 5:10)】골로새서 1장 21절,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 대목이 나와요. 원수에요. 악한 행실이요.

여러분들 공부됐는지 내가 확인해볼게요. 전에 우리들이 생각하는 ‘내가 악한 행실로 주님의 원수가 되었다’ 할 때 우리가 캐낸 악한 행실은 어디서 나온 악한 행실입니까? 내가 그렇게 생각한 악한 행실은 어디서 나온 거예요?

어릴 때부터 부모가 ‘너 그런 사람 되면 안 돼. 그건 나쁜 사람이야.’ 했던 그 지식의 집대성이 악한 행실이에요. 그건 (성경에서 말한) 악한 행실 아니에요, 지금. 그건 기성세대가 나한테 도덕적으로 요구했던 악한 행실이라고요. 기성세대가.

I'd love you to want me 이 노래가사에 보면

You told yourself years ago
몇 해 전, 당신 자신이 당신에게 이야기한 것
You'd never let your feeling show
절대로 내 감정을 결코 드러내지 않으려고 내가 시도했었다

라는 겁니다. 이거 빠뜨리기 어렵지만 시간관계상 빠뜨렸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내가 못 빠뜨리겠어요. 너무 중요한 거예요. 인간의 심보, 과거에 대한 집착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You told yourself years ago You'd (would, 뭘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죠) never let your feeling show’

무슨 뜻이냐 하면 ‘너는 너의 감정을 나에게 드러내지 않기로 네 스스로 다짐했잖아’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방어기제거든요. 내 감정을 솔직하게 당신 앞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주인공 된 사람이 이제는 오랜 시간 흐르고 난 뒤에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와요.

Now it took time for me to know
이제야 난 알았다
what you tried so not to show
당신이 안 보여주려고 애쓴 것을

‘당신이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쓴 것이 무엇이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이 같으면 좀 털어놓자 이 말이거든요. 복음을 알고 난 뒤에는 십자가 앞이라는 그 계기가 바로 이 사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밀당했다는 사실, 밀당이 아니죠, 일방적으로 당기고 밀 수도 있어요, 이런 것들이 소환되는 계기로서 주께서 나를 향하여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내가 내 과거와 나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행동과 태도와 생각과 사고방식과 모든 손짓 하나하나를 하면서 내 것이 남에게 안 들키고 내 것은 끝까지 지키겠다는 그 집념 외에는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뭐냐? I see the want in your blue eyes. 당신의 눈빛은 늘 우울하다는 거예요. 우울하고 허전함을 볼 수 있어요. 상세한 것은 Lobo의 노래 들어보세요.

I'd love you to want me, Lobo

When I saw you standing there
I about fell out my chair
And when you moved your mouth to speak
I felt the blood go to my feet
당신이 거기에 서 있는 걸 보았을 때,
난 의자에서 넘어질 뻔 했어요
당신이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할 때,
난 피가 발로 거꾸로 흐르는 걸 느꼈지요

Now it took time for me to know
what you tried so not to show
Something in my soul just cries
I see the want in your blue eyes
당신이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쓴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내 가슴속 무언가가 애닯아 서글퍼 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난 당신의 우울한 눈빛에서 허전함을 볼 수 있어요

Baby, I'd love you to want me
The way that I want you
the way that it should be
그대여, 난 당신이 날 원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당신을 원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Baby, you'd love me to want you
The way that I want to
If you'd only let it be
그대여, 당신이 내가 당신을 원하도록 바라면 좋겠어요
내가 원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당신이 그렇게 허락만 해준다면

You told yourself years ago
You'd never let your feeling show
The obligation that you made
For the title that they gave
몇 해 전, 당신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기를 당신 스스로 다짐했었지요
흔히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규약에 당신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만든 스스로의 의무감이었어요

*Baby, I'd love you to want me
The way that I want you
the way that it should be
그대여, 난 당신이 날 원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당신을 원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Baby, you'd love me to want you
The way that I want to
If you'd only let it be
그대여, 당신이 내가 당신을 원하도록 바라면 좋겠어요
내가 원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당신이 그렇게 허락만 해준다면

Now it took time for me to know
what you tried so not to show
Something in my soul just cries
I see the want in your blue eyes
당신이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쓴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내 가슴속 무언가가 애닯아 서글퍼 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난 당신의 우울한 눈빛에서 허전함을 볼 수 있어요

*
**반복

하나님의 원수가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잊어버리는 게 아니고 매일같이 소환되는 거예요, 십자가 앞에서. 소환될 때마다 우리는 고맙죠. 감사하죠. ‘나는 내게 미쳤구나. 내 인생에 미쳤구나.’ 하는 사실. 이 전쟁이죠.

그럼 우리는 뭡니까? 내가 이제 와서 내 것을 따로 만들 필요 없죠. 그걸 가지고 젖먹이. 그걸 가지고 어린아이같이 산다는 거예요. 어린아이같이. 내숭떨고 있기는… 뭐 이런 식이죠. 뭘 해도 자기 사수하는 것밖에 안되는데 뭐 더 내숭을 떨어, 이런 거죠.

자, 마태복음 17장 계속 봅시다. 26절,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성전세를 요구하니까 베드로가 난감한 거예요. 성전세를 내야 됩니까? 내라. 내는데 아들들, 그러니까 예수님 뿐만 아니고 따르는 너희들도 예수님의 소자인 너희들도 성전세를 내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성전세를 받아야 마땅하다.

받아야 마땅함을, 이 세상을 향하여서는 성전세를 내기는 내되 자연현상이 아닌 초자연현상에 의해서 내줌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요구하는 레벨, 환경과 너희들이 요구한대로 주는 환경이 서로 차이가 나는 거예요.

아까 ‘차이’라 했죠. 차이 반대말이 진보라 했어요. 진보가 아니고 차이나는 거예요. 이중성. 시간이 중첩되어 있는 거예요. 수요일에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시간이 중첩되어 있다고요. 차이나는 거예요. 차이 남으로써 이 세상 말고 주께서 새롭게 만드는 소자가 따로 있음을 언급하는 겁니다.

마태복음 18장 6절 봅시다. 이거는 진짜 이야기할 게 많아요. 진짜 결정적인 거네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이건 설명 좀 많이 해야 돼요.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여기서 여러분들이 이걸 발견하셔야 돼요. 아까 질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해야 됩니다. 질문이 뭐였냐 하면 [내 행위로 세상이 달라질까요?] 그런데 99.99%는 아니라고 하고 사기꾼, 정치꾼들은 된다고 헛된 야망을 인간에게 심겨주죠. 나만 믿고 따르면 새 사람 됩니다. 푸틴 이런 사람들 대표적인 사람 아닙니까. 안중근 의사 이런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이 세상은 인간의 전쟁으로 달라지지 않아요! 주님의 전쟁으로 달라지는 겁니다. ‘내 행위로 세상이 달라질까요?’ 여기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제시하느냐 하면 [내 소자 건드리면 세상이 달라진다. 지옥으로.] 전쟁 이렇게 하는 거예요. 주님이 생산한 젖먹이, 어린아이 딱 내세워서 내 소자 건드리면 이 세상은 예상한 대로 지옥으로 변한다.

그럼 세상은 지옥으로 변하는 것이 기정사실이죠. 왜? 소자를 안 건드릴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인간은 예수님이 개입되지 않으면 누구를 만납니까? 나와 타인을 만나는데 둘 다 고만고만한 데에서 어릴 때부터 똑같은 기성세대의 세뇌를 받고 살아온 사람들이에요. 자기 옳다, 자기 옳다 주장하지만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게 나와요. 8절,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기 지옥이 언급되어 있어요. 지옥이.

18장 9절에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되어 있죠. 이 범죄가 뭐냐 하면 10절,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그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바로 범죄에 해당되고 지옥불에 해당되는 거예요.

어린아이 하나 건드렸다고 지옥에 간다는 말은 그 당시 어린아이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주님이 잃어버린 이스라엘 양 대신에 잃어버린 백성 대신에 새롭게 성령을 통해 생산한 이 젖먹이, 진짜 성도죠, 성도를 건드리면 그것은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게 되는 이유가 될 것이라는 거예요. 이유가 될 것이다.

이방인 제치고 이스라엘→ 이스라엘 제치고 없었던 소자→ 하나님의 아들 생산. 이게 마태복음의 흐름입니다. 18장 14절에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건드릴 걸 건드려야지. 내가 만든 생산자를 왜 건드리냐 이 말이죠.

마태복음 20장 20절에 보면 제자들 속에서 주님이 만드는 하나님의 아들을 생각해야 될 텐데 “그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세베대의 아들, 치맛바람을 일으키려고… 자기 아들이 최고에요. 그 아들들은 그 아들이 아니에요.

주님은 주님의 아들, 자신처럼 성령 받은 그런 사람, 성령 받은 사람, 복음의 현존, 주님의 현존성 속에서 세상을 만나고 타인을 만나는 그 젖먹이 아들, 주님의 영적인 거룩한 기름 부음의 전쟁에 동원되기 위해 새롭게 생산된 아들, 주님이 친히 그 사람 속에 들어가서 임신되고 성령으로 잉태되어가지고 그 아들 속에서 소자를 빼내는 방식으로 없는 천국 백성을 생산해내는 생산 방식을 사용하는 거예요. 주께서.

세베대의 아들이니까 예수님의 제자잖아요. 예수님의 제자들 속에서 나중에 이들이 어떻게 됩니까? 성령 받으니까 이들이 뭐가 돼요? 하나님의 아들 되는 거예요.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의 어들이 아니라 새로운 주님의 아들이 되는 거예요, 성령을 통해서. 그럼 이것은 진보가 아니고 차이. 차이를 보여주는 겁니다.

23절을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두 아들을 인수인계해요. 인수인계란 말을 이제 아시겠죠. 전에는 내 것이었는데 손 터치하고 내 아들로 주께서 강제 입양을 시켜버리는 거예요. 양자로. 네 아들 아니다. 이제 내 아들이다.

양자를 삼아서 하늘나라 앉혀주는데 조건이 있어요. 23절, 내가 마시는 잔을 그들이 필히 마시게 될 것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이미 성인이 된 자를 다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이 시간을 역전시키는 것인데 이게 얼마나 아플까요. 제가 강남강의에서 인간은 항상 혼자 산다 했죠. 혼자 사는데 혼자 사는 인간이 하나님 백성 된다? 이것은 있을 수 없죠. 있을 수 없는데 일어나는 현상을 뭐라고 했습니까? 팝송 하나 하면서 말씀드렸잖아요.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당신 곁에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는 ‘사랑’이에요.

사랑은 미친 거라 했죠. 사랑은 미친 거예요. 그게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 나오는 거예요. 주의 사랑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아가서에 나오잖아요. 얼마나 사랑이 센지, 내가 지옥가도 끄떡없다. 왜? 사랑이 지옥까지 따라오니까. 지옥불이 무섭다 무섭다 하지만 지옥불보다 더 센 게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뭡니까? 아가 8장에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옥보다 더 셉니다. 어디 거기서 자기 착함을 자랑합니까? 자기가 개과천선한 것을 어디서 말합니까? 개과천선한다고 지옥에서 빼내줍니까? 아니에요. 사랑이에요. 주님의 공로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예수님 복음 장착해서 스스로 설 생각하지 마세요.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어린아이에서 젖먹이로 가는 거예요. 누구는 나이가 거꾸로 먹는다는 영화도 있죠. 란 영화가 있죠. 갈수록 어린아이와 같이 돼요. 젖먹이같이 돼요. 뭐 삼층천 아무나 넣어주는 줄 알아요? 삼층천 아무나 안 넣어줍니다.

그다음에 마태복음 21장 28절, 두 아들 이야기합니다.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벌써 수상하죠. 두 아들이 있는데 맏이가 등장하죠. 그다음에 둘째 있죠. 자, 둘째부터 먼저 봅시다. 둘째는 아버지가 일하러 가라할 때 “나 안 가겠습니다.” 이렇게 했어요. 이게 아들다워요, 아들답지 않아요? 아들답지 않죠. 자기 독립의지, 자의식이 강하죠.

그러니까 주님의 순서 바꿈에 첫째 아들보다 둘째 아들이 더 확실한 거예요. 둘째 아들은 안 간다고 했거든요. 안 간다고 했으니까 이 아들이 개과천선할 기회는 없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둘째 아들이 안 가겠다 했는데 갔던 거예요. 바로 이 절차, 이 절차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천국 백성 모집에 나서는 거예요. 나 안 가겠습니다.

이게 ‘역전(逆轉)’이죠. 야곱하고 에서가 있는데 누가 아버지의 복을 독차지했습니까? 둘째인 야곱이 첫째 자리를 다 독차지했죠. 이게 역전이죠. 역전에 대해서 자기 기득권, 자기 연속성, 내가 잘나서 계속 잘나고 잘나고 잘나서 잘남의 연속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역전됨을 가지고 한결 같이 이렇게 외칩니다. “그것은 반칙이요!”

오늘 강의 제목은 ‘반칙’. 반칙 선언. 하나님이 반칙 쓰는 걸 모르면 그건 하나님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반칙 안 쓰려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고상하니까. 스스로 자립하는 데 있어서 고상하니까. 우리는 기성 환경, 이 세상에서 너무 교육을 잘 받았어요. 거짓말은 나쁜 것이고 반칙하는 것은 나쁜 놈이고 틀려먹었다 하는 것이 벌써 우리에게 스며들었어요.

그래서 천국 갈 때도 반칙 없이 가고 나쁜 짓 안 하고 천국 가고 싶어 하죠. 그게 가장 추잡하고 더러운 짓이에요. 자기 의. 여러분한테는 해당되는 사람 아무도 없죠. 여러분은 뭐 알아서 반칙하니까. 반칙을 감사해야 되고 주의 반칙에 우리는 늘 놀라야 돼요. 그리고 그 반칙 앞에 우리는 타고난 나밖에 모르는 이것이 날마다 소환되어야 돼요. 제목을 ‘소환’으로 바꿀까. 그건 좀 이따 생각합시다.

그다음 봅시다. 마태복음 21장 38절, 얼마 전 강남강의에서 한 내용과 비슷한 내용이죠. 포도원이 있는데 상속자가 오니까 농부들이 상속자를 죽여 버리면 이 포도원은 우리 차지가 된다고 이야기했죠.

결국 모든 사람은 44절이에요.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할 때 이 돌이 뭡니까? 하나님의 상속된, 인간 속에서 버려졌던 그 자가 우리 모든 인류의 아킬레스건이 된 거예요. 치명적인 약점을 독점하고 있는 사건이 되는 겁니다.

요셉을 팔아먹었던 요셉 형들의 결정적 아킬레스건은 뭡니까? 요셉이 다시 등장할 때에요. 이건 뭐 귀신도 아니고, 우리가 아까 버렸는데 그게 다시 돌아왔어요. 그리고 재림 날 할 말이 없죠. 주께서 재림한 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계1:7)

다시 한 번 제가 상기시켜드립니다. 예수님의 행위가 세상을 완전히 달라지게 하고 그 행위의 결실이 뭐냐? 분명히 어른인데 십자가 앞에서 응애 응애 젖먹이에 불과함을 기뻐하는 자들의 출현. 등장이에요. 제목 바뀌었다. ‘젖먹이의 출현’. 젖먹이가 등장하는 거예요. 젖먹이가.

마태복음 22장을 보겠습니다. 아들 혼인 잔치죠. 이건 여러분들이 해설할 수 있어요. 아들 혼인 잔치에 왜 안 갑니까? 자기에게 독자적인 자기 나름의 자기 일이 있기 때문에. 나도 내 일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 장가가는데 자기 장가가기 때문에 남의 혼인 잔치에 못 가는 것은 핑계가 아니고 너무나 합리적인 정당한 이유가 되겠죠.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아들 혼인 잔치 안 왔다고 어떻게 했어요, 그 임금님이? 다 죽여 버렸죠. 여러분들 이게 이해됩니까? 그러니 이 말은 뭐냐? 그 임금은, 지금까지 열심히 내 인생을 따로 단단하게 구축했다는 것을 완전히 개무시 해버리는 거예요. “누가 너보고 그런 짓 하래?” 이런 식이에요.

네가 어떻게 열심히 해도 세상은 이미 끝났어. 안 달라져. 네 행동으로 세상이 안 바뀐다고요. 네 착함과 선함과 의로움 때문에 너희 세계도 안 바뀌고 너희 행동도 안 바뀌어. 다만 멸망할 것이 멸망할 뿐이지, 바뀌어서 멸망하는 거 아니에요. 처음부터 우리는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지옥 가는 길 고이 가소서, 하고 그냥 보내버리는 거예요, 주님께서.

달라지는 것은, 차이는 예수님 때문에 생긴 거예요. 예수님 때문에.

마태복음 23장 7절에서 10절.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땅에 있는 자를 지도자라 하지 말라, 하는 그 이야기에요. 땅에 있는 것을 아버지, 지도자, 선생님이라 하는 것은 누가 정한 거예요? 인간들끼리 정한 거죠. 이런 것은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마태복음 23장 37절. 아, 참 결정적이다, 정말. 이 말씀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뭐했다?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럼 천국은 비게 됩니까? 아니 아니. 너희들을 버리면 버릴수록 생기는 그 빈자리를 이방인들로 채우는 거예요. 이방인들의 특징이 뭡니까? 자기는 하나님하고 상관없죠. 원래 여호와와 상관없는 거예요.

다시 말해서, 내가 연속성을 추구하고 ‘내가 이렇게 되어야지’가 전혀 주님에게 도달하지 않는 자를 주께서는 성령을 보내어서 그 사람 속에 예수님 자신의 영, 성령을 잉태시켜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소자되게 만드는 거예요. 소자되게 만든다는 말은 주께서 말씀하신 “이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하는 그 어린아이를 친히 생산해내는 작업을 그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성령 받은 자는 그걸 알죠. 그렇게 해서 아는 거예요.

마태복음에서 마지막으로 27장 54절, 여기 이방인이 등장합니다. 상당히 중요한 고백을 하는 이방인이 등장합니다. 십자가 달릴 때 모습이에요. 그럴 때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그다음 뭡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 때 하신 말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 3:17, 막 1:11, 눅 3:22)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관계, 그게 시편 2편에 나오는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아들에게 입 맞추려면 아들에 의해서 새롭게 생긴 그 젖먹이가, 우리의 썩어빠진 이 나밖에 모르는 이 안에서 잉태되고 임신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는 뭐라고 하느냐? “내가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하는 것을 아주 기쁘게 고백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 앞에 그렇게 한다는 말은, 주께서 또 같이 만나게 해준 사람이 있을 거예요. 신자든 불신자든 관계없어요. 어쨌든 누구든 만나게 해주면 내가 옛날 예수님 없을 때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만나왔고 뭐를 얻고자 노렸던가가 주님 앞에 새롭게 계속 날마다 소환되죠.

만약에 상대가 복음 아는 사람이면 둘 다 같이 그것을 소환해서 하하 호호 기쁘게 그것을 고백하는 거예요. Christmas party! 예수님 탄생을 기뻐하는 파티가 그 파티죠.

마태복음은 그 정도 하고요. 다시 이야기해서 마태복음은, 이방인은 아닙니다. 이방인은 제치고 이스라엘 중에서 제치고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왔는데 그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격하고 예수님을 추방시킬 때 새롭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했던 그 취지가 있는 사람들이 살아나죠.

출애굽기 4장 22절에 보면 이스라엘을 내 아들이라 했거든요.(“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 아들. 진짜 아들다운 아들이 예수님의 성령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그 근거를 십자가를 통해서 마련해주신 겁니다.

이렇게 하고 p.24 중간쯤 봅시다.【하나님께서 일하시는 현장은】이렇게 되어 있어요.【전혀 인간의 자랑거리가 부각되지 않는 환경이다.】여기 ‘환경’이라는 말을 했죠. 환경이에요. 기존에 우리가 태어나서 부모한테 교육받을 때 환경은 단일 환경이에요. 인간들과 인간들의 관계로 형성된 그 현실만이 유일한 현실이에요. 다른 현실 없어요.

그리고 그 인간들이 추구하는 일은 뭐였던가요? 아까 강의했듯이 ‘우리가 힘 모으면 환경이 바뀌고 세상도 더 좋은 쪽으로 나아질 수 있다는 그런 증거들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많이 있었다. 앞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강촌을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는 아~ 대한민국 외치면서 힘을 합쳐보자.’ 이게 바로 우리가 교육받은 거예요, 이 세상에서. 그 환경은 인간의 자랑거리와 인간의 공로와 애씀, 그런 것만 남는 거예요.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이나 남방 여왕, 시바의 여왕은 뭐라고 합니까? “너 왜 회개 안 해?” 이렇게 이야기하죠. “너는 왜 하나님이 보내신 지혜자를 배격해?” 이렇게 고발한다 이 말이죠. 그 사람들 다 이방인인데.

그래서 이것은 바로【유월절 어린 양 덕분에 그들은 애굽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그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성경은 ‘권능’이라고 한다. (출13:9)】성경은 이를 권능이라 해요, 권능. 그러니까 하나님의 전쟁에 힘이 있어요, 없어요? 힘이 있는데 어떤 힘입니까? 인간으로서 표현 못할 힘이죠.

그 표현 못하는 방법이, 젖먹이와 어린아이를 통해서 다 이루게 하시는 거예요. 승리케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목이 ‘젖먹이보다 더 강한 자 있을까’에요. 이 땅에서는 납득될 수 없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래서 계속 보게 되면【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용사가 되시는 점이 부각되려면 인간의 요소는 현저하게 소멸되어야 한다.】그리고 그 밑에 보면【그 하나님이 나타나는 경우는 인간들의 술수나 재능과는 무관한 경우이다.】

인간의 재능과 술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죠. 그러나 우리가 누구를 만날 때 즉각적으로 육신의 본능이 먼저 나오잖아요. 주님의 현장성이 있다, 호출했다 이런 건 생각 안 나고 그냥 누구를 딱 만나면 나오는 그 대화 속에 뭐가 섞여 나옵니까? 내 노력과 내 희생과 내 봉사와 술수와 재능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아이고, 애 키우는데 내가 힘들어 죽겠다. 애한테 이렇게 했더니만 애가 새 사람 되었다.’ 이런 거요. 그거 해서는 됩니까, 안 됩니까? 그걸 해야죠. 왜? 하나님의 젖먹이는 사후적이니까. 소환되고 난 뒤에 사후적으로 주어지는 거니까.

그냥 니 맘대로 사세요. 뭐 골치 아플 거 뭐 있어요? 그냥 내 맘대로 사는 거예요. 내 맘대로. 마지막에 p.25 제일 밑에 다 같이 한번 읽어봅시다.【“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18:3)】제 이야기 아닙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어른답게 되려고 노력하는 우리 안에 주께서 시도한 어린아이를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나를 이렇게 주께서 친히 만들어주시니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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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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