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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20장 9절 (인간은 비유다) 231205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20장 9절 (인간은 비유다) 231205a-이근호 목사

오늘은 누가복음 20장 9절 보겠습니다.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거기까지 봅시다. 여기에 방금 여러분들이 딱 듣기만 들어도 그 내막이 뭐지 확 들어오지요. 산뜻하게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이게 문제가 되는 게 왜 그러느냐 하면은 포도원 주인 입장에서 우리가 있어버리면 이 내용이 굉장히 깔끔하게 산뜻하게 들어옵니다. 우리가 주인과 같은 편이라고 여기면. 그런데 우리가 농부와 농부의 관련된 한 사람이라고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그렇게 봐야 돼요. 무턱대고 좋은 편에 서려고 하지 말고 성자의 편에 서지 말고 진리 편에 서지 말고, 진리라는 것은 장애가 뚫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진리에요.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주님은 진리지만 주님만 진리에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주님만 진리거든요. 그럼 우리는 진리가 아니란 말이죠. 그럼 성경을 볼 때 진리가 아닌 쪽에 우리가 서 있다고 생각하시면 성경은 거의 다 풀립니다. 우리가 진리가 아닌 쪽에. 그럼 여기서 포도원을 다른 사람을 주리라 라고 되어 있는데 그럼 우리는 본문 해석을 할 때에 어디서부터 출발하느냐 하면은 우리가 만약에 농부라면 농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야 돼요. 농부가 포도원에서 농부가 열심히 일하면서 원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그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이거에요. 정착이에요. ‘정착’. 우리 일상을 감추고 일상을 고려하지 않고 거기서 추가적으로 성경 봐서 추가적인 구원의 진리 천국의 진리를 확보하려고 하면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내가 의도하는 것과 천국 이게 불합치 됩니다. 일치되지 않아요. 합치되지 않습니다.

잠깐 히브리서 4장 2절 한번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러니까 히브리서 4장에서 하는 이야기가 광야 때 이야기에요. 광야 때 그들이 홍해 바다를 건너왔는데 애굽에서 나왔는데 다 못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라고 되어있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인데요 약속을 주신 분의 믿음이 있어요. 이 믿음과 약속을 받겠다는 자의 믿음이 틀어진 거예요.

주님께서 주시고자하는 그것에 대해서 받고자하는 사람은 엉뚱한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이게 불일치 일어나서 화합치 않은 겁니다. 약속을 주신 분의 믿음과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약속의 땅에 갑니다. 천국 갑니다. 그런데 주시는 분의 뜻하고 자기가 챙기려는 자기 뜻하고 이게 불일치가 일어나게 되면 비록 약속이 있어 안식에 있다할지라도 거기에 못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히브리서 4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에서 왜 구약이 이스라엘이 먼저 있어야 할 이유가 뭐냐 하면은 불일치된 경우를 사례로 보여주는 거예요. 하나님이 함께 있음으로 들어갔다 그거는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있음으로서 그동안 몰랐던 하나님 생각 인간 생각 이게 틀어져있다는 것이 비로소 노출된다는 겁니다. 그게 구약의 의미에요. 말씀을 주신 의미고.

이런 이야기 들으니까 아휴 큰일났어 큰일났어 나 이거 큰일난거야. 불일치되면 어떡해. 말씀은 들었는데 불일치되면 어떡해 어떡해. 하니까 못 들어가는 거예요. 믿음이 화합치 않을 경우에 믿음이 화합되려면 고집을 부릴게 아니고 어느 믿음을 포기하면 돼요? 내 쪽에 문제 있다 생각하잖아요. 내 쪽에 문제 있잖아요. 그 문제 있는 내 쪽을 문제 있다고 알고 깔끔하게 나의 의도를 포기하면 되잖아요. 참 쉽죠 잉. 굉장히 쉬운 거예요 이게. 오늘 본문 농부가 진멸 당했잖아요. 그러면 후딱 농부가 어떤 마음으로 있었는가를 농부의 마음을 알면 돼요. 농부의 마음을. 농부의 마음을 아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포도원 농부가 그냥 농사만 짓는 겁니까? 안 그러면 자기의 노동의 대가와 자기 마음속에 있었던 은근히 자기가 원했던 소망과 이게 달성된다는 기대가 없이 노동했겠어요? 있지요.

농부가 왜 자꾸 포도원에 열심히 일합니까. 언젠가 이 포도원이 누구 것이 된다? 내 것이 된다는 거예요. 왜 내 것이 돼야 돼요? 내 것이 될 때 자기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뭡니까? 이익은 뭐에요? 정착이죠. 정착. 내 땅이 생겨요. 나뿐만 아니고 내 자자손손 대대손손 더 이상 이사 다니지 않고 삶의 생활의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안전빵으로 안정되게 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그러한 열망도 없이 노동했겠습니까. 우리는 일 해봤자 포도원은 주인의 것이니까 그냥 일한 대가만 받아야지 라고 한다면 절대로 이걸 주님께서 비유로 이야기하지 않아요. 노동자가 노동해서 대가만 받겠습니다 시급 받겠습니다 하면 이 이야기 자체가 안 나와요.

이건 뭐 노동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기가 살아가지고 야 이거 포도원 우리 단합해서 우리 것 만들자 지금 이렇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고 주님께서 이야기하시고 이런 경우가 곧 바로 이 세상이라는 거예요. 이 세상. 이 세상은 주의 은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도 은근히 노리는 게 있어요. 주여 그동안 감사 많이 했으니까 이제는 내 이름으로 등기 바꿉시다. 인간 본인도 몰라요. 내가 노리고 있다는 것을 본인도 몰라요. 주님은 아시니까 이 비유를 우리에게 들이대신 겁니다. 그러면 인간은 왜 정착하고자 하는가. 세상에 정착하면 안 되지 라고 화낼게 아닙니다. 화낼게 아니고 여러분들이 이 노래를 들으시면 야 이게 참 화낼게 아니고 모든 인간이 다 그렇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아시게 될 겁니다. 이거는 가사만 봐서 느낌이 안와요. 가락과 함께 느껴야 돼요.

하늘에 흐르는 구름이 내 맘이라면
두둥실 날아서 다녀나 오리라만은
내 고향 물 맑고 산 높은 곳 끝없이 넓은 들에
뛰놀던 어린 시절 돌아가고 싶어라
풀잎을 베개 삼아 밤 새워 별을 헤며
내 꿈을 키우던 곳 언제나 다시 갈까
지금쯤 내 생각에 등잔불 밝히운 채
홀로 앉아 계실 어머님 보고 싶어라
산나물 무쳐놓고 오롯이 둘러앉아
재밌게 살자시던 어머니 보고파라

어떻습니까? 예수를 50년 100년 믿어도 우리 마음속에는 뭡니까? 이 망향이라는 노래 홍민 나이 70먹었는데 1970년대 노래거든요. 김세환이랑 같이 활동한 사람이에요. 홍민. 목소리 좋지요. 여기 나오는 가사의 모든 이 심정이 인간의 마음속에 깔려있어요. 이게 깔려있다고요. 이게 깔려있으니까 아무리 성경을 공부하고 누가복음을 공부하고 뭘 한다 할지라도 내 속에서 고향, 어느 게 내 순수하고 솔직한 마음입니까? 예수 믿을래요? 고향에서 산나물 무쳐먹고 그때 그 시절 안정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것, 이게 죄냐? 이렇게 묻고 싶죠. 이게 그토록 죄냐? 그거 나한테 묻지 말고 오늘 본문 누가복음 예수님한테 물으란 말이죠.

농부들이 왜 노동을 합니까? 정착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정착하기 위해서. 이 나쁜 농부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런 소리하지 마세요. 모든 인간이 예수님의 상속자, 예수님을 죽이는데 가담되고 있어요. 왜? 홍민부터 시작해서 영원히 내가 정서적으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마지막 어릴 때 꿈속 같은 그것이 지금 이 순간과 미래의 내 삶에 정착된 내 모습이고 싶은 거예요. 어릴 때 그 좋았던 그 시절이. 이것도 모르고 그냥 농부들 진멸하고 뭐 보복하니까 그래 그들은 당해도 싸지. 뭘 당해도 싸요. 사람 사는 게 자기 안정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 사는 게 인간의 본심인데요. 이거 보세요. “풀잎을 베개 삼아 밤 새워 별을 헤며” 이게 뭐냐 하면은 고향의 뒷산에 가가지고 누워가지고 하늘 보는 거예요 이게. 고향 보면 주님이 막 떠올라요? 주님이 떠오릅니까? 아니면 산나물 무쳐놓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라요? 인간은 예수를 믿고 교회 간다 하지만 자기 본성을 어떻게 이깁니까. 못 이기죠.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은 그만큼 깊은 뜻이 있는 거예요.

자, 그렇다면 이 농부들이 포도원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서 농부가 아니에요. 농부들이죠. 농부들이란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런 뜻이에요. 인간은 인간과 만나기를 소원합니다. 왜? 인간에게 인간관계뿐이니까.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관계뿐이에요. 다른 관계는 별로입니다. 제가 문제를 하나 낼 테니까 맞춰보세요. 다음 중 어떤 상황이 가장 암담하고 참담한 상황인가. 1번, 사람이 아예 없는 경우. 2번, 주변에 말을 걸 사람이 없는 경우. 3번, 나보고 나가라고 하는 경우. 이 셋 중에 어떤 경우가 가장 기가 막힐 경우입니까? 2번 내가 말 걸 사람이 없어. 전부 다 딴 짓하고 있고 안녕하세요 해도 인사 안 받아 줘요 그런 경우. 3번 노골적으로 나보고 욕하고 나가라고 하는 그런 경우. 둘 다 만만치 않지요. 그러나 이것도 배부른 소리에요. 제일 참담한 것은 주변에 고양이하고 개밖에 없고 집구석 들어가면 고양이 개 밖에 없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 TV 소리만 나오고 아무도 만날 사람이 없는 경우. 이게 어떤 경우입니까? 암담하고 참담한 경우지요.

이게 왜 암담하고 참담한 경우입니까? 사람은 누굴 찾는가? 주님 찾는가? 아니에요. 누구 찾습니까? 같은 인간을 찾습니다. 농부들이 한 마음이 되는 것은 우리 끼리에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이게 그들의 타고난 천성이고 본성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본성이에요. 그리고 같이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이나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우리나라의 조선인들이 이민 가서 고생한 거 보세요. 그렇게 힘들더라도 견딜 수 있는 것은 같은 조선 사람이 같이 고생을 같이 한다는 거예요. 군대생활 힘들어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같이 머리 깎고 같이 고생을 같이 한다는 거예요. 혼자 하라면 못합니다. 군에 가서 같이 빡빡 기고 보초 서고 잠 못 자고 한 사람들은 몸 살찌고 요래 저래 빠져 군대 안간 애들은 3년 뒤에 말라있고 왜 그런 겁니까? 군대에서 야윈 사람 못 봤어요. 왜 그런 거예요?

고생을 같이 했잖아요. 동지애가 흐릅니다. 동지애. 동지애가 뭐냐 하면은 사람은 뭐가 있어야 산다? 주변에 말할 수 있고 말 걸 수 있고 대화하는 상대가 있어야 사람 사는 게 돼요. 그래서 이 농부들이 뭐가 잘못됐습니까 그래?! 같이 힘든 포도원 농사 지으면서 같이 일해가지고 우리 헤어지지 말고 같이 일하자 이게 인간의 본성 아닙니까.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이거든요. 그걸 모르고 여기 20장 16절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하니까 야 농부들 나쁘다. 뭐가 나빠요 우리 사는 게 그건데요. 사는 게 사람 만나서 주고받는 게 그게 사람 사는 재미 아닙니까. 그 재미 말고 뭐 할 건데요 기도원에서 혼자 기도하면서 살 거예요? 그런 것은 산장의 여인. 혼자 살면 사는 겁니까 그게. 자진해서 유폐하는 거예요 자기를.

모든 인간은 자살 중입니다. 자살하고 있어요 지금. 모든 인간은. 이게 시기가 빨리 온다 늦게 온다 그것뿐이지. 모든 인간은 군중 속에서 고독이에요. 군중 속에서. 많은 사람이 있고 식구들이 애가 5명이고 부부가 함께 화기애애하고 같이 놀러가고 우리 어디 놀러갈까. 가봤자 고독을 실어날라요. 둘 다 고독을 실어나르는 거예요. 고독을 해소하는 방법은 뭐냐? 같은 인간 붙들고 자기 사연, 자기 살아온 것, 자기 억울한 것, 자기 고생한 것, 듣던 말던 터놓고 그냥 내 이야기 들어줘 하면 그나마 숨통 트이잖아요. 숨통이. 아 사는 것은 사람하고 끼리끼리 사는 게 사람 사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주님하고 사는 것은 사는 것도 아니에요 그거는. 보이지도 않는데 무슨 이야기 들어주지도 않을 건데. 눈에 보이는 사람이 내 이야기 들어주는 거예요. 사람이. 교회 커뮤니티입니다. 사람 관계에요 교회라는 게.

그러니까 이 농부 이야기가 쉬운 이야기가 아니고 정확하게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아무생각 없이 사는 게 뭐냐? 나는 마음 맞는 대화되는 사람하고 만나서 살고 싶어라 하는 감추어놓은 자기 본심이 있는 거예요. 자기 본심이. 자식 너 키웠으니까 독립해라 하고 그렇게 닦달하다가 자식이 집에 오면 또 반가워요. 그래서 가져온 가사가 님 그림자입니다. 혹시 모르는 사람 있을까 해서 틉니다. 이 노래 모르면 간첩 아닙니까. 저만치 앞서가는 님 뒤로
그림자 길게 드린 밤
님의 그림자 밟으려하니
서러움이 가슴에 이네
님은 나의 마음 헤일까

자, 보세요. 여기 님 그림자에서 나는 가고 또 누가 있냐 하면은 저만치 앞서 가는 님이 있지요. 이게 바로 인간이 세상사는 거예요. 혼자 못 살아요. 누군가가 있고 누군가를 지향해야 돼요. 그 사람이 앞서가잖아요. 두 사람이 등장하지요. 지금 밤중이라서 달그림자 있잖아요. 그 님 그림자를 밟고 가는 거에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님은 나의 마음 헤일까. 당신은 내 마음 압니까? 이게 뭐냐 하면은 인간사회는 사람사회는 다른 사람이 내 마음 알아주는 여부에 따라서 행복이 결정되는 거예요 사람은. 님 그림자에요. 여러분 이거 모르면 간첩이죠. 얼마나 많이 들었겠습니다만은 이게 인간관계고 여기서 인간은 못 벗어난다가 아니라 아예 벗어날 마음도 없어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서 되는 거에요.

그러면 주님은 어디 계시죠? 끼어듭니까? 못 끼어듭니까? 오늘 말씀에 보면 인간과 인간들의 형성된 인간관계에서 주님은 끼어들 자가 없다. 그런데 누가 끼어들었습니까? 끼어들 자가 없는데 주인이 자기 아들을 끼어들었어요. 아들이 끼어드니까 농부들이 어떻습니까? 아무리 아들이라도 낯선 사람이에요. 같이 포도원에서 일한 사람 아니에요. 끼어드니까 같이 합세해서 이 상속자만 죽이면 그 다음에 이 포도원은 미래의 우리의 정착지가 되죠. 그러니까 이 본문을 이해할 때 자꾸 예수님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누구 입장해서 생각합니까? 진멸당할 농부가 어떤 마음으로 그들은 살아가는가? 왜? 농부의 마음이 오늘날 일상 인간들의 마음을 대표해주기 때문에. 딱 이렇게 이야기하면 결국은 어떤 인간도 예수 믿는 사람은 이 땅에 없다가 되죠. 그게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어떤 인간도 이미 인간과 인간관계가 너무 돈독하기 때문에 거기에 끼어들 예수는 없어요.

교회라는 것도 인간과 인간들 친하고 재미나게 살기위해서 교회 만든 거예요. 예수님과 하나님이 끼어들 자리는 끼어들면 합세해서 추방시켜버려요. 교회에서는 교회 이야기해야지 교회에서 복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건 예의에 어긋나요. 특히 부교역자들 다 짤립니다. 주일학교 이번 주 몇 명 나왔냐 그거 묻지요. 주일학교 그런 같은 인간이 몇 명 나왔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러면 철이 되게 없는 부교역자가 “이번 주는 주님이 다녀가신 것 같아요.” “너 이리와 짐 싸 나가. 나가 이씨.” 내가 묻는 것은 이번 주 숫자 세니까 몇 명 왔어요 교인들? 이거 묻지 주님이 다녀갔습니다. 그런 소리하면 여전도사님 짤려요. 어디서 교회 와서 왜 주님 이야기 왜 해. 교회 와서. 미친 거 아니야 정말. 이 세상은 인간관계로 돈독합니다. 이거는 어떤 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말씀을 왜 하느냐?

이제부터 어려운 거예요. 20장 9절에 나옵니다. ‘비유’. 모든 인간은 비유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이 세상에 신비는 없어요. 그냥 비유에요 비유. 다 아는 이야기에요. 당신 내 이야기 잘 들으면 우리 좋은 친구하자. 이게 굉장히 어려운 말입니까? 이게 어려운 말 아니지요. 이게 뭐 신비로운 말입니까? 아니지요. 알아듣는 이야기죠. 알아듣는 이야기는 이 인간사회에서는 비유라는 게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있음 그 자체로 전부에요. 내가 여기 있고 네가 있고 나 꼬집으면 아프고 너 거기 있다는 걸 내가 눈으로 보면 그게 진짜고 가짜로 있는 게 아니고 진짜로 있고 이게 전부에요. 비유라는 게 없어요. 이 땅에서는 내 몸 있고 네 몸 있고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게 그게 전부에요 그게. 비유라는 게 없어요 이 땅에서는.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게 비유밖에 안됩니다. 허구에요 허구.

비유라는 말은 인간 자체는 뭐가 된다? 허구다. 돈독한 인간관계가 허구에요. 왜 허구냐? 마태복음 16장 4절을 읽어보세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시니라” 라고 되어있지요. 그 이야기하기 전에 노래 3개 준비했는데 김광석의 거리에서는 왜 안합니까 하는데 님 그림자가 또렷하게 등장하는 두 사람의 관계죠. 두 사람. 그 사람 아쉬워서 달그림자 밟으면서 가는 것. 달그림자 밟으면 앞서가는 사람이 아야 누가 밟았네 하면서 멈춥니까? 그렇지 않죠. 하지만 밟고 싶어요. 당신하고 이 관계 청산하기 아쉬워서 밟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뭐냐? 님은 나의 마음 헤아릴까. 그리고 뒤에 휘황한 달빛아래 님 뒤로 긴 그림자 밟을 날 없네. 먼저 가버렸어요 이제는. 그분의 그림자조차 밟을 기회도 없어서 아쉬워서 노래가 님 그림자에요.

결국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사람관계는 사람이 그리워서 미치는 관계가 사람관계고 현실세계입니다. 주님 보고 싶어서 미친 사람 없어요. 사람 보고 싶은 거예요. 내 믿음 좋은 거 알아주는 사람. 그걸 원하는 거예요. 주님이 다 안다. 그런 주님의 위로 싫어요. 눈에 보이는 사람이 날 알아줘야 돼요. 형제님 자매님 해싸면서 사람이 알아줘야 돼 사람이. 그거 아니면 교회 나가지도 않아요. 그러면 김광석 거리에서는 왜 하느냐. 이 관계를 더욱 더 세밀하게 한 것이 거리에서라는 이 노래에요. 더 설명할게 없어요. 그걸 아주 더 세밀하게 들어간 거예요 김광석이. 거리에 가로등불 하나 하면서 폼 잡아가면서 검붉은 노을 해가면서.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지요. 이게 뭐냐? 외롭다 이 말이에요. 외로운 거예요. 그냥 외로운 거예요.

그 다음 가사가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무얼 찾고 있는지. 가다가 쇼윈도에 자기 모습 보이거든요. 자기 처지가 서글프기 짝이 없는 거예요. 내가 나한테 묻는 거예요. 야야 너 요새 무슨 생각하고 살아. 아이고 불쌍한 나야 하는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은 사람이 그리운 거예요. 사람이. 터놓고 이야기하고 마음 놓고 이야기하고 편하게 이야기하고 서로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이 그리운 거예요. 주님이 그립지 않아요. 아무리 교회 50년 다녀도 마찬가지에요. 주님이 그립지 않아요. 성경 말씀이 그리운 게 아니에요. 성경공부하게 되면 혹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지 않을까 뭐 이런걸 응답으로 여기고 생각한다니까.

자, 마태복음 16장 4장에서 이 세대를 뭐라고 하느냐? “악하고” 그 다음에 뭐라고 합니까? 단어가 이상하죠. “악하고 음란한 세대”죠. 자, 성경에서 음란이고 하는 것은 구약에서 우상을 이야기하는데 음란이 뭐냐? 음란은 예수님을 가운데 두지 않는 관계망을 음란이라고 해요. 예수님을 가운데 두지 않는 관계망. 사람과 사람의 관계망이 음란한 거예요. 음란한 것. 보통 음란하면 이 세상에서 음란하면 구역질나는 거죠. 인간이야 동물이야 토하고 싶다 하잖아요. 하나님이 토하고 싶은 것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가 토하고 싶은 거예요. 구토하고 싶은 겁니다. 농부와 농부 사이에 의논하는 게 구토하고 싶은 거예요. 진멸하고 싶은 거예요. 오늘 본문 누가복음 20장 16절의 말씀처럼.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 모든 것에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예수님을 교차로로 여겨서 그냥 네가 나한테 오지 말고 예수님을 경유해서 나한테 오고 나는 당신한테 가지 말고 예수님을 경유해서 당신한테 가라 이 말이죠.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고 부부관계도 마찬가지고. 예수님이 맺어준 관계거든요. 예수님이 옛날에 맺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예수님이 현장에서 둘 다 숨 쉬게 만들었고 그 둘이 만나게 해준 것이 중간에 예수님이이에요. 그러면 예수님이 왜 만나게 해주는가? 예수님이 하는 일이 이 세상의 현실이고 우리는 뭐냐? 우리는 그 교차점. 그걸 가지고 우리는 비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장기판의 서양 체스 있지요. 체스 판의 말 같은 인형 말 같은 존재에요. 예수님의 세상을 형성하기 위해서 주께서는 말로 사용한 거예요.

그런 이 현실을 두고서 하늘에 흐르는 구름이 내 마음이라면 물 맑고 산 높은 곳 끝없이 넓은 들에 뛰놀던 어린 시절 돌아가고 싶어라. 자, 어린 시절 돌아가고 싶어라. 이거 무슨 생각이에요? 뭐가 빠진 거예요? 무슨 중심이 빠진 거예요? 예수님 중심이 빠져버렸죠. 예수님 중심.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목사님, 뭐 교회 가서나 주님 생각하지 일상생활에 사는 거 바쁜데 뭐 언제 예수님 생각할 수 있습니까 라고 변명할 수 있어요. 그렇다면 누가복음 20장 16절은 어떻게 되는데요. 그 농부들 진멸하고, 농부들을 진멸한다는데 다 죽여버린다는데. 주님이 죽여버리는 이 심정을 그런 식으로 헤아릴 수 있겠어요? 제가 아까 히브리서4장 이야기했지요. 히브리서 4장 약속의 때가 남아있을지라도 못 들어간 이유가 뭐라고 했습니까? 약속을 주신 분의 마음과 약속을 받는 마음이 화합하지 않기 때문에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기서 농부들 진멸하겠다는 것이 주의 뜻인데 우리는 변명조로 그 진멸까지 왜 하십니까. 사람이 사람 만나는 게 상식이고 그거 당연한 거 아니에요 이렇게 하니까 문제는 이게 하나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화합치 않은 거예요 이게. 성경공부는 하는데 마음은 하나가 안 되는 거예요 이게. 성경 공부하는데 마음이 하나가 안돼요. 마음은 딴 데 가있어요. 고향에 있는 어머니 산나물 무친 게 먹고 싶어요. 한번 돌아보세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가면서 여러분들의 소망이 뭡니까? 누굴 만나고 싶은 거예요? 주님 만나고 싶은 거예요? 내 마음 말 통하는 그런 마음 통하는 사람 만나고 싶은 거예요? 어느 쪽입니까?

사람이 혼자 살지 결혼을 왜 합니까? 당신에게 반했어요 사랑합니다 그런 되도 않는 소리 다하는데 결국 딱 까놓고 결혼 왜 합니까? 저 사람하고 살면 서로 말 통할까 싶어서. 오래 가잖아요. 백만 한 번 백만 두 번 건전지. 밧데리 오래 가듯이 오래 갈 사람인가 싶어서 결혼하고 결혼 못하는 것은 오래 갈 사람 못 찾아서 그래요. ‘나는 솔로’ 나와서 장난치는 그 사람밖에 없지요. 일시적인 사랑. 그렇지 않으면 돈 보고 하던지. 돈 많은 사람이 미쳤다고 나한테. 없잖아요. 결혼 전에 성경을 못 봤어요? 봤지요. 복음을 몰랐습니까? 몰랐지요. 복음은 들었지만 관심사가 복음에 있는 게 아니고 내 행복에 관심 있어요. 내 행복. 하나님의 덕 보자는 거예요. 하나님의 덕 봐가지고 내가 원하는 대로 충족되면서 하나님까지 믿어가지고 죽어서는 천국까지 보험 들어놓으려는 그런 얍삽한 그 생각을 한 거예요.

자, 그러면 그 다음이 문제에요. 모든 인간이 농부의 수준을 못 벗어납니다. 전부 다 농부 수준밖에 안되지요. 그렇다면 주께서는 이 말씀을 듣는 제자들을 이 오늘 농부 이야기를 통해서 구원코자 하는데 구원의 방법이 뭐겠습니까? 이 농부 이야기가 복음이거든요. 이 농부 이야기가 복음이라면 이 복음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어떤 식으로 적용이 되느냐. 아까 제가 힌트를 드렸어요. 뭐냐 하면은 ‘나’라는 실체를 뭐로 바꾸는 거예요? 비유. 내가 어떤 관계를 보여주는 형성하는 하나의 비유 같은 존재, 비유니까 단독적으로 내 의미를 찾아서는 안 되는 것. 나의 행복? 나의 인생 즐거움 그거는 잘못된 거예요. 비유에 해당이 안돼요. 비유는 전체 그림속의 일부여야 돼요. 전체 그림 속에.

우리가 예수님의 세계에 하나의 비유로서 가담하면 되는 겁니다. 가담을 할 때 어떻게 하느냐? 이게 오늘 강의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에 도달했는데요 그것은 뭐냐 하면은 시간의 분할. 인간은 거울을 보면 아까 가사에 나오지요. 거리에서 보면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은 무얼 찾고 있는지. 거리에 가니까 쇼윈도에 확 비칠게 아닙니까. 자기 사는 게 서글프기 짝이 없는 거예요. 내가 나보고 빈정대는 거예요. ‘야 인간아 너 지금 뭐하고 사니’ 하고 빈정댄단 말이죠. 자, 이럴 때 거울에 비친 내 모습보고 이렇게 자기를 빈정댈 때 이 관심사가 누구한테 있어요? 나한테 관심 있지요. 그럼 이 말은 뭐냐 하면은 나에게 관심사 없으면 나는 이 땅에 살 이유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우리는 매순간 누구한테 관심이 집중되어있습니까? 나한테 집중되어 있는 거예요. 비유입니까 실제입니까? 실제되는 거예요. 실제거든요.

여러분 구원이 없지요. 주님과 상관이 없어요 이거는. 맨날 자기 생각만 하는데 무슨 주님 나라에 가요. 자기 생각만 하는데. 믿음이 화합치 않는데요. 주의 믿음과 내 믿음이 일치, 합치되지 않는데 무슨 구원을 받아요. 그러면 주님께서 이 포도원 비유를 가지고 우리에게 어떤 작용을 하지요. 어떤 작용을 하느냐 하면은 실체를 뭐로 바꾼다? 비유로 바꾸면 되지요. 바꾸는 방법은 시간이 나를 분할시키면 돼요. 분할시킨다. 시간이 나를 분할시키는 거예요. 돔배기라고 경상도에서는 아는데 돔배기 무슨 뜻인 줄 알아요? 돔배기. 제사할 때 상어 고기를 돔배기라고 해요. 살점만 해서 제사상에 올리는 게 있어요. 그러면 물고기 모양을 돔배기 쳐버리면 네모 돼요. 시간이 뭐냐 하면은 칼이 되가지고 실제인 나를 분할, 돔배기처럼 잘라버려요. 자를 때 뭐로 자르느냐? 시간의 종말이 와서 심판이 와서 미리 나를 둘로 쪼갭니다. 둘로 쪼개는 게 뭐냐 하면은 시간의 종말이 시간은 아직 안 끝났는데 종말이 왔느냐. 시간이 벌서 끝났어요. 상속자의 등장입니다. 상속자의 등장.

이게 누가복음 20장 13절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이렇게 되어있지요. 인간은 자기가 누구인지 몰라요.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 보고도 여전히 자기는 자기만 챙기려고 하는 게 인간입니다. 이건 뭐 타고났어요. 가르쳐준 것도 아니에요. 어릴 때 엄마 찾는 게 그게 가르쳐서 된 겁니까? 본능이죠. 모든 짐승도 새끼가 다 어미 찾잖아요. 그런 우리를 나는 비유야 이렇게 이야기할 사람 없단 말이죠. 상속자가 등장했다는 말은 주님께서 대규모 교체 작업을 하는 거예요. 교체 작업을. 이 포도원은 누구에게만 준다? 아들에게만 줄 나라에요.

골로새서 1장 13절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사랑의 아들의 나라죠. 자, 주님께서는 하나님 자기 아들을 인간들이 인간관계만 집착하는 이 세계에 보냈습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떤 나라에요? 아들의 나라죠. 아들의 나라가 인간들에게 어떤 대우받았습니까? 추방되었습니까? 환영받았습니까? 추방되었지요. 그러면 인간들이 가는 천국은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왜? 추방된 자만이 천국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인간이 가고자 하는 나라는 천국이 아니지요. 정작 천국의 주인공은 추방했다는 거죠. 따라서 인간은 천국에 못가지요. 갈수가 없어요. 왜? 추방된 분의 나라만이 천국, 아들의 나라, 하늘나라는 아들의 나라거든요. 그 아들은 인간하고 좋은 관계가 아니에요. 인간들이 이구동성으로 쫓아낸 그분 나라에요. 인간나라는 가고 싶지도 않고 갈 생각도 없고 가지도 못하는 나라가 천국이에요.

이게 상속자의 나라입니다.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그렇게 짜고 한 거예요. 창세전부터. 이 모든 인간들 재끼고 누구에게만 상속자 준다? 아들에게만 팍팍 밀어주는 겁니다. 밀어주는데 인간들은 이 아들을 학대하고 죽였지요. 그럼 죽였다는 말은 인간들이 추구하는 것은 아들의 나라가 아니었다는 것이 본색이 드러나고 무슨 나라냐? 인간의 나라는 뭘 추구합니까? 인간의 나라에요. 인간은 인간의 나라를 원합니다. 아 대한민국을 원해요. 인간의 나라는 인간들을 원합니다. 인간의 나라에서 제일 작은 단위가 뭐게요? 가정. 인간의 나라에서 제일 작은 단위가 가정이에요. 그래서 인간은 행복은 뭐냐? 가정이 다복해야 행복하다고 주장하는 게 뭐냐 하면은 인간의 집착과 추구가 거기 다 모여있어요. 그 가정을 위해서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 과감히 목숨 바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이것도 타고난 거예요.

말로는 맨날 나 너 낳은 거 후회한다. 나가 죽어 나가 죽어 호적에서 뺀다 맨날 하지만 그게 집착이고 나는 산나물 무쳐 놓고 오롯이 둘러 앉아 재밌게 살자시던 어머니 보고파라. 여기서 누가 발을 뺍니까? 발 뺄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요. 못 뺍니다. 교회 와서 찬송가 부르고 집에 와서 이런 노래 부르면서 눈물 흘리고 베개 막 축축 젖고 내가 남자인데 왜 울지 하면서 보면 어머님 보고 싶어라. 그리고 혼자서 서울에 자취하면서 보면요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 보면 내가 뭐하는 짓이지 내가 왜 이 동네에 있지 이런 거. 빨리 정착해야 될 텐데. 정착하다가 아가씨 하나 만나면 왜 저만치 가버리는 거예요. 또 달은 왜 그리 밝은지. 사람 일상사는 게 이 노래 세곡에 다 담겼잖아. 이게 빼고 뭐 있어요. 없잖아요. 무슨 복음이에요. 무슨 성경공부입니까 이게. 무슨 예수님을 찾아요. 구라를 쳐요 구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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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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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