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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20장 4절 (뒤집는 권세) 231121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20장 4절 (뒤집는 권세) 231121b-이근호 목사

이미 우리는 금지와 비밀에서 이미 죽은 자로 간주해요. 그래서 살아있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가 아니라 죽어있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요. 질문이 이렇게 되는 거에요. 왜 그러느냐 하면은 세상 권세는 자꾸 나를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어요. 그러나 세례 요한 교훈 봤지요. 아브라함 봤지요. 이삭 봤지요. 야곱 봤지요. 야곱이 죽지 아니하면 이스라엘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얍복강이에요. 야곱을 죽여요. 브니엘에서. 죽이고 이름을 바꾸어서 기존의 이름 말고 다른 이름, 이스라엘 이름으로 새롭게 살게 하는 거에요. 그게 뭐냐 하면은 야곱 구원 안 해주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거에요. 야곱이 죽어야 이스라엘을 구원해요.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살아나요. 그게 언약의 효과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왜 못 믿는가? 본인이 살아있다고 여기니까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살아있는 이상 내가 어떻게 바르게 살면 됩니까 전부 다 이런 식이에요. 그런데 세례 요한은 뭐냐? 모든 것이 종결, 한자로 하면 끝이죠. ‘끝’. 끝이 되게 되면 기쁜 소식이 돼요. 모든 것이 무효가 되는 겁니다. 무효가 되는데 여러분들이 이게 인간이 열심히 살면 슬픈 소식이에요. 워드에 글 다 쳤는데 뭐 잘못 건드려가지고 다 날라갔을 때 이건 정말 슬픈 이야기죠. 정말 슬픈 일이죠. 이걸 좀 더 확대시켜 봅시다. 인간은 왜 이 땅에서 슬픔을 느낍니까? 방금 해답 나왔죠. 왜 슬픕니까? 본인이 살아있는 내가 더 살려고 하니까 모든 게 슬픔이고 슬퍼지니까 헤매는 거에요. 이 땅에서. 이 세상 자체를 이미지의 세계거든요. 이미지의 세계에서 안에서 배회해요. 계속 떠돌고 있어요.

그래서 자연의 권세 같은 경우에는 뭐냐 하면은 햇살이 비치잖아요. 그러면 내가 죽거든 양지 바른 곳에 묻어 달라 이게 자연의 권세에 순응하는 거에요. 양지 바른 곳은 태양광 단지 밖에 없어요. 다른 데는 양지 안 발라요. 그래서 우리가 아까 종교의 반대는 뭐라고 했습니까? 세속이 아니고 복음이죠. 그럼 종교와 세속은 같은 겁니다. 이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제가 뭐 하나 가져왔어요. 가사를 한번 보세요. 이 가사가 너무나 오늘날 20대 30대 초반의 심정을 이 가사처럼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이 없다고 봐요.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자꾸 종교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는데 무슨 종교하면 구원 받습니까 하는 그런 생각은 이제 지우세요.

종교와 세속이 동일합니다. 세상에서 기독교를 만든 거에요. 그러니까 종교, 어느 교회 다닌다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내가 누구냐를 봐야 돼요. 내가. 내 잠재 속에 이 가사가 다 들어 있어요. 봅시다. 언덕 위에 나의 고향은 노인처럼 잠자고 있다. 여러분들 20대 초반으로 다 돌려드리겠습니다. 언덕 위에 나의 고향은 노인처럼 잠자고 있다. 노인이 뭐냐? 따분하고 허무하고 버림받은 게 내가 그렇게 만들었구나. 그래서 젊은 사람의 특징은 뭐냐? 나의 고향 난 너를 떠나고 있어. 나는 너를 떠나고 있어. 어떻게든 되겠지. 내 인생 어찌될지 누가 알겠어. 이게 젊은 사람들이에요. 그냥 지겨워서 떠나는 거에요. 따분하고 허무하고 떠나는 거에요 그냥.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이 세상의 권세를 따라서 상징적 권세죠. 계속 그리워하면서 소망을 가지면서 떠돌아다니는 거에요.

나는 뭐든지 할 수 있겠지만 그 다음의 가사가 멋있지요. 나 뭐든지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내일되면 아무것도 못할지도 몰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떻게든 되겠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되겠지. 내 친구들은 다 가버렸어. 우리 젊을 때 그렇잖아요. 친구야 우정하고 해도 타임캡슐에 집어넣고 그런 건 엽기적 그녀한테 배우라고 하세요. 다 가버렸어요. 없어요. 엽기적인 그녀 알아요? 친구들은 가버렸어. 그리고 사람들은 다 나를 따라 떠날거야. 고향을 떠날거야. 아주 애석한 일이지. 왜? 추억이 있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들과 함께 있을 때가 좋았거든. 친구들과 함께 철없이 놀 때가 좋았어요. 하지만 모든 게 지나간 일이야. 모든 게 가버렸어. 어떻게 잘 되겠지. 내 인생 어찌 될지 누가 알겠어. 나는 항상 내 곁에 기타를 들고 다닐거야. 그래서 내가 혹시 밤에 외롭게 울게 되면 슬픈 컨츄리송을 연주할거야. 벌써 슬픔, 외로움 나오지요. 그리움 나올 거에요.

나의 첫사랑의 원천이었던 당신에게 키스할겁니다. 당신에게 약속합니다. 어떻게, 언제? 모르겠어요. 하지만 난 반드시 당신에게 돌아올 겁니다. 이건 사기입니다. 인간은 본인을 몰라요. 그냥 허세부리는 겁니다. 고향에는 안 돌아가도 누구한테는 돌아간다? 지 애인한테는 꼭 돌아가겠다는 거에요. 싸나이니까. 싸나이 같은 소리하고 있네. 사회에 싸나이가 통합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내 인생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어. 나는 항상 내 곁에 기타를 들고 다닐거야. 그래서 내가 혹시 밤에 외롭게 울게 되면 슬픈 컨츄리송을 연주할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내 인생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어. 나 뭐든지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내일 되면 아무것도 못할지도 몰라. 무슨 일이 일어나도 어떻게든 되겠지. 내 인생 어떻게든 되겠지. 내 인생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어.

자, 보세요. 이게 종교입니까. 이게 복음 아니지요. 그러나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이 젊은 날에서 벗어난 적이 있어요? 벗어난 사람 있습니까? 왜 시골에서 왜 서울 오는데요. 시골이 어떻다? 따분하고 허무하고 버림받은 거에요. 집안이 잘 살아도 이래요. 집안이 잘 살아도 사는 것도 귀찮아. 따분해요. 지중해 무슨 마을이고? 산토리니 거기 가보세요. 물가 비싸지요. 로마 어떻고 아가씨들 30대 20대 아가씨들 배낭여행 가는데 전부 다 한 때에요. 그냥 따분해서 허무해서 오는 거에요. 이게 우리 인생입니다. 이걸 감추고 교회 가서 기도한다? 이런 마음 가지고 기도하는데요. 이게 세상 권세 아닙니까. 해답도 없고. 이 노래 가사를 봤으니까 여기에 가락을 좀 실어야지요. 어떤 가락일까요? 이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들어요. 교회 다니는 청년의 내면이에요. 내면. 하나님 도와주세요. 따분해서 못 살겠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주님 은혜주시면. 나이 60, 70되도 아직도 이러고 있어. 이미 죽었는데. 우리나라 장인 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어요. 나하고 동갑이에요. 여기까지만 들을게요.

자, 문제는 이거에요. 이런 잠재력이 있잖아요. 이걸 어떻게 처리할거에요. 아무리 기도하고 교회 옮기고 해도 이게 내 그리움 내 소망 하나님이 나 원하는 인생 만들어주겠지. 이게 전부인데 여기서 어떻게 벗어납니까. 벗어날 수가 없잖아요. 그게 마태복음 3장에 나옵니다. 어떻게 하느냐. 인간은 못해요. 인간은 세상이 내 작품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배회하고 헤맬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주님은 어떻게 하는가? 여기에 마태복음 3장 13절부터 17절까지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에게로 아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세례 요한 실패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실패해야 돼요. 세례 요한이 실패한 이유는 소리이기 때문에. 주체가 아니고 그냥 외치는 그림자이기 때문에.

그 이유부터 살펴볼게요. 그 이유가 어려운데 이게 뭐냐 하면은 이게 쉽게 말하면 복음을 설명하는 가운데서 제일 어려운 게 뒤집기에요. 미래와 과거를 뒤집어버리는 겁니다. 이건 도대체 인간의 시간 의식을 갖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이 뒤집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제가 쉽게 한 것이 죽은 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 이야기에요.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고 죽은 자이기 때문에 비로소 하는 일이 있다는 거에요. 죽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죽었기 때문에. 인간은 죽으면 일 못한다는 것이 인간의 상식이에요. 이 세상의 상식인데 사도 바울 같은 경우에 죽었기 때문에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거에요. 십자가에 나는 죽고 내 안에 누가 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거에요.

뒤집기 하면서 뫼비우스 띠. 지난여름에 했죠. 뫼비우스 띠. 종이 이렇게 뒤집지요 갈라디아서 강의할 때. 종이 뒤집어버리면 이면과 내면이 구분이 안 되는 거에요. 이면과 내면이. 그러니까 겉에도 중심은 주님이고 안에도 중심은 주님이고 어디도 주님 밖 벗어나지 않는 그러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천국의 어린 아이가 세례 요한보다 더 높임을 받는 거에요. 세례 요한은 어디까지나 구약 인물이기 때문에 그 어디까지나 모형이고 그림자에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는 신약에 어린 아이 같은 성령 받은 사람에 해당됩니다.

일단은 그렇게 아시고 어떻게 하는가. 마태복음 3장 한번 봅시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뭐라고 합니까? 말렸지요. 요한도 감 잡았어요. 내가 당신한테 세례 받아야 할 터인데. 내가.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세례 요한 입장에서는 이거는 성립이 안 된다. 왜냐하면 오실 주님이 나한테 세례를 줘야지 왜 이걸 뒤집기를 하느냐. 왜 뒤집기를 하느냐. 주님의 일의 시작은요 성령의 시작은 예수님이 안 죽으면 일이 시작이 안돼요. 예수님이 죽어야 성령이 나와요. 뒤집기가 될려면 예수님이 죽으셔야 돼요. 예수님의 죽은 영만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겁니다.

제가 이번에 주일날 이런 설교했지요. 인간에게는 사고가 없다고요. 진짜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만 죽음이고 다른 죽음은 아니에요. 인간은 못 죽어요. 그래서 문제가 되는 거에요. 자살해도 안 죽어요. 인간은 죽음을 모르기 때문에 뭐도 모르는가? 산다는 게 뭔지 몰라요. 죽음도 모르기 때문에 생명도 모르고 예수님 죽는 이유도 모르고. 모든 언어의 개념은 다른 권세에서 주님의 권세 내부에서 작동해요. 이것은 모든 의미는 주님으로부터 새롭게 십자가로부터 뿜어져 나와야 되지 인간이 통용되는 의미에다가 예수님의 복음을 접목시키는 것은 전부 다 실패로 끝납니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미움을 받은 거에요. 인간은 뭐밖에 없다고 했습니까? 인간은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뭡니까? 항상 자기의 그리움을 자기가 빼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 세상 권세 안에서의 인간의 그냥 가장 기본적인 심리가 뭐냐? 상대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데서 오는 자기의 무능력을 스스로 한탄하면서 그것이 상대에게 안 들키기 위해서 오바하는 식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내 능력이 미흡하다는 것을 내가 간파를 해가지고 내가 간파하기 때문에 상대방은 간파하면 안 되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무시하기 때문에 그걸 감추는 식으로 오바액션하는 게 인생입니다. 그걸 히스테리라고 합니다. 모든 인간은 히스테리에요. 히스테리. 히스테리의 행동이 뭐냐 하면은 오지 마! 이거에요. 오지 마! 십일조 드릴테니까 오지 마세요 하나님. 나 기도하고 새벽기도 나갈테니까 오지 마세요!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너무 밀어붙이지 마세요. 이게 히스테리에요.

주님께서는 누가 뭐래? 자기가 스스로 주 앞에 복종한다고 스스로 나와 놓고 복종하는 태도가 뭐냐? 너무 심하게 저를 닦달하지 마세요 라고 나오는 거에요. 자기가 나와 놓고 지가 지한테 벌 다 내리고 맴매하고요. 웃기지도 않아요. 웃기지도 않아. 그건 뭐냐? 자기가 자기에 대한 그리움, 자기의 꿈을 도저히 포기를 못해서 그래요. 자기 자신이 인정될 수 있는 상대를 고르는 것을 가지고 세상에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것을 가지고 사랑이라고 하는 겁니다. 사랑. 사랑이라는 것은 내 존재를 존중해주고 인정해줄 사람을 찾는 게 사랑 행위에요. 나 어때요? 16기 영숙 어때요? 상철이 어때요. 계속해서 나 어떻게 생각해요? 질문 자체가 나부터 나와서 내 칸을 비워놓을테니까 네가 내 마음에 드는 해답을 채워주게 되면 나도 너한테 섭섭지 않게 해줄게 이게 사랑입니다.

나는 손흥민을 사랑한다. 무슨 뜻입니까? 이 시간에 중국한테 한 두 골 정도 넣어야 손흥민을 사랑할 수 있어요. 그게 영웅이잖아요. 영웅이 영웅값을 해야 영웅이지요. 어릴 때 누가 영웅이냐? 아버지가 영웅이에요. 언제부터 아버지가 실망스런 존재가 되지요. 실망스런 존재가 되면서 아버지의 굴레는 못 벗어나요. 그게 우리의 정신병된 거에요. 아버지가 그때 조금만 나한테 잘해줬으면. 뭡니까? 아버지가 잘해주기를 원하는 거에요 아니면 본인이 아버지 앞에서 저 어때요 인정받는 그 인정 굴레를 못 벗어난 게 문제입니까? 때려죽어도 아버지의 시선에서 못 벗어난 거에요. 심지어 죽은 아버지 무덤가서도 소주 한 병 들고 가가지고 아버지 탓하고 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찡찡댈래. 언제까지.

그게 이 세상의 이런 이야기 성경하고 관계없는 이야기 왜 합니까. 아니에요. 아니에요. 성경은 이게 권세에요. 주님은 그 권세에 죽었습니다. 우리 권세가 도대체 어떤 질서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가 명확히 알아야 돼요. 이게. 그거 알기 위해서 또 하나 가사 가져왔어요. 할 수 없어요. 이거는 알아야 돼요. 우리 자신을 알아야 돼요. 사랑은 뭡니까? 내가 인정하는거 말고. 그거는 당연한 거고 나 아닌 전혀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줄 때 그 사람의 존재가 나로 하여금 사는 이유를 제공해요. 존재의 의미를 준다고요. 김종환처럼. 기다려봐 내가 갈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내가 갈테니까. 그게 존재의 이유 아닙니까. 내 존재를 위해서 배우자를 찾는 거에요. 그게 사랑이에요. 자기가 좋아할만큼 했는데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여자 오면 안 가! 너 주제파악도 안돼? 이래가지고 내보낸다고 또.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위세와 수준에 맞는 맞으면서 나를 일방적으로 존중해주는 거에요. 일방적으로 존중하는 거 누구한테 배웠습니까? 어릴 때 엄마 아빠한테 배운 거에요. 그걸 잊지를 못해. 너는 왜 엄마보다 요리를 못해? 이러고 있다고요.

사랑이라는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넘쳐 눈 녹은 봄날 푸르른 잎새 위에 옛사랑 그대 모습 영원 속에 있네. 무슨 노래일까요?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 그래서 해결책이 뭐냐?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둬. 오늘 같은 밤 이문세 노래 사랑이 지나가면 가사 한번 보세요. 노래가 너무 좋은 노래에요. 그런데 이문세 노래는 한국말로 되어있잖아요. 이문세의 노래가 일상의 우리 속에 잠복되어있는 속 진짜 깊은 마음을 그대로 바깥에 내놨기 때문에 이게 유행이 된 거에요. 존재의 이유가 그렇게 유행이 된 이유가 우리 남자의 마음을 그대로 다 묘사하고 있는 겁니다. 그걸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 교회 나와서 뭐한다고요. 기도해봐야 무슨 소용 있어. 그 마음인데.

자, 죽어있는 것은 아무것도 못한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세례 요한아 허락해라.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세례 요한이 무슨 뜻인지 몰라요. 이 모든 의가. 왜 예수님이 나한테 세례 받는 것이 모든 의의 스타트가 되는지를. 이게 왜 시작이 되는지를. 이게 너무 어려운 이야기인거에요. 그러면 세례 요한은 뭘 몰랐는가. 뒤집기를 몰랐고 더 나아가서 회전을 몰라요. 회전.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에게로.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을 아비로 돌리죠, 그럼 조치를 어디부터 조치해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낸다는 것은 엘리야 안 보냈을 경우에는 자녀 마음 따로 있고 아버지 마음 따로 있고 이게 완전 벌어져있고 끊어져있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면 엘리야 보낼 상황이 어떤 상황이냐면 ‘끊어진 상태’에요. 끊어진 상태를 바리새인과 제사장들 몰라요. 제자들도 몰랐어요. 그럼 끊어진 상태를 누가 보여줘야 돼요? 세례 요한이 보여줘야 됩니까? 누가 보여줘야 됩니까? 세례 요한은 실패했으니까 누가 보여 웁니까? 예수님 자신이 끊어진 상태가 뭔가를 보여주는 이 사건을 갖다가 무슨 사건이라 하냐면 이게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못 온다’입니다. 끊어진 상태에 대해서 나온 것이 빌립보서 2장 8절에 나옵니다. 2장 7절부터 보면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형제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는 말은 사람들에게 섞일 분이 아닌데 섞였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인간들은 섞일 분인지 아닌 분인지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제자들도 몰랐다. 아무도 몰랐어요. 심지어 베드로도 몰랐지요. 섞여놓고 섞일 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십자가 사건을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두 가지 종류가 있죠. 십자가 없는 예수와 십자가 없는 예수님을 믿을 거냐, 십자가 달린 예수님을 믿을 거냐의 관계에요. 십자가만 드러내고 예수님이 사라진 그 예수님 믿을 거냐 아니면 예수님이 나중에 십자가 졌다 하는 그 예수 인물을 믿을 거냐 하는 겁니다. 끊어진 상태에서는 끊어짐을 믿어야 돼요. 끊어짐을. 그래야 내가 아는 예수는 나의 이 세상에 영웅시된 예수님도 같이 끊어낼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내가 제 마음대로 구원 못 하는 걸 우리 주님은 화끈하게 해주시는구나. 우리의 진짜 신앙의 영웅이다’ 이렇게 되면 그건 다른 예수에요. 그건 예수가 아닙니다. 그건 엘리야의 죽은 예수님이에요. 십자가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예수님이 아니에요. 그냥 영웅적인 예수님, 우리가 못 진 죄를 대신 지어가버리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면 예수님 십자가 죽고 난 뒤에 부활이 있잖아요. 그러면 부활이 우선시가 되고 십자가 날아가버린 거에요.

십자가 앞에서 모든 게 무효화돼야 되는데 세상의 기독교는 개혁주의 교회는 부활이 됨으로써 십자가 무효화시켜버렸어요. 그러나 사도 바울의 편지에 보면 부활을 자랑하라 되어있지않아요. 뭘 자랑하라? 십자가를 자랑하라. 왜? 너희들은 끝났으니까, 너희들은 죽은 자니까. 간득간득 살아있으면서 살아있는 채로 뭘 믿을까, 오 예수를 믿어야지. 이래서 구원 받는 사람은 천국에 넣어주지 않겠다는 거에요. 완전히 죽어야 돼요. 완전히. 예수고 뭐고, 완전히 죽어야 예수님의 영이 우리를 살려내죠. 마치 예수님께 일어난 상황과 똑같이 상황이 일어나줘야 돼요. 그냥 죽은 체 하면서 한쪽 눈 감고 한쪽 눈 떠가지고 예수님 오시나 이래가지고 기다렸다가 예수님 재림하시나 날짜 계산해가지고 3차 전쟁 일어나고 아마겟돈 전쟁 일어나고 지금 이래가지고 될 문제가 아니지요. “어이 원수 이게 안 죽고 아직..” 계속 죽지 않고 재림 날짜 계산하고 있어요.

빌립보서 6절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7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제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뭡니까? ‘뛰어난 이름’, 요 이름이 뭐냐면 ‘독보적 이름’. 다른 이름에 섞이는 이름이 아니고 다른 이름을 짓밟는 이름. 다른 이름들을 부정한 이름. 독보적 이름이 주의 이름이고, 주의 이름 맞은 편에 누가 있느냐. 내 이름이 있는 게 아니고 아담의 이름이 있죠. 로마서 5장에서. 첫 번째 아담과 마지막 아담의 대비. 딱 대비시켜요.

첫 번째 아담은 죄를 지은 게 아니고 죄가 아담을 계속 이어받죠. 죄가 아담을 생성한 거에요. 그런데 두 번째 예수님은 우리가 믿으면 구원받는 게 아니고 예수님께 의가 나와서 우리로 우리로 하여금 의의 생산물이 되게, 의가 우리의 부모가 되게 만들어요. 착한 일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고 우리가 태어난 그 자체가 의 안에서 태어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의인되게 하는 거에요. 그걸 ‘예수 안에서 의’라고 하는 겁니다. 이게 복음이에요. 그 복음은 누가 알아듣는가. 철저하게 짤린, 죄에 의해서 내가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자에게만 이것이 바로 눈에 보이게 되어있습니다. 이걸,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무효화시키면 안돼요. 이게 살아있어야 의가 같이 살아있어요. 그래야 언약이 살아있습니다. 구원받는데 환장하면 안 됩니다. 구원받는데 내 구원 갖는 건 성경 자체에 없어요. 그런 건 없어요. 언약이 구원이죠. 예수님의 하신 일의 구원이에요. 성령님의 구원이고 삼위일체의 구원이지 내 구원 아니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시작이 뭐냐 죽기까지.. 죽으심이 시작이죠. 자 여기서 질문 들어갑니다. 이 때 십자가 죽을 때에. 쉬운 문제니까 말씀해보세요. 죽을 때에 누가 이 십자가에 같이 죽은 자가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옆에 강도들도 아니고, 사도 바울도 아니고 아무도 십자가에 죽은 적이 없어요.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십자가에 죽었다는 말은 그거는 조건이 있어요. 성령이 왔을 때. 예수님의 죽으심에 성령이 합류시킬 때 비로소 눈이 뜨이면서 인식되는 겁니다. 내가 예수님을 팔아먹은 것이 주께서 거기에 의되게 했다는 놀라운 고백이 나옵니다. 내가 지은 죄를, 이게 뒤집기를 하기 때문에 뒤에 나오는 의가 앞에 나오는 모조리 전부 다를 전부 다 의로 다 바꿔놓는 거에요. 사십 년 딴 화투장 바꾸듯이 화투장 다 뒤집어버려요. 의 의 의 의.. 의로 바꿔버려요.

그걸 요한계시록에서는 피가 묻으매. 네 어디서 왔어? 어떻게 왔지? 예 어린 양의 피로 왔습니다. 그 이야기에요. 어린 양의 피가 내 나쁜 짓한 것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모든 것을 소급해서 다 해당해버려요. 이게 왜냐면 나중 것이 앞에 것을 완전히 회전시켜서 뒤집기를 해버리는 거에요. 아비의 마음이 자녀의 모든 것을 덮어버리니까 비로소 자녀는 아버지께 올 수가 있는 겁니다. 이게 엘리야의 기능이에요. 지금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뒤집기 합니다. 세례 요한이 말합니다. “제가 예수님한테 세례 받아야 됩니다.” 차원이 그렇습니다. 자, 세례 요한으로부터 그 고백이 나오도록 유도했어요. 예수님과 세례 요한 사이에 어떤 누구도 끼어들 수가 없어요. 왜? 마지막 예언자기 때문에.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이고 예수님의 소리이기 때문에. 세례 요한 말고 다른 소리 있다 없다? 없는 거에요. 그러면 세례 요한은 구약의 대표자에요. 예수님은 그걸 바톤 인수받은 거에요. 엘리야에게 인수받은 거에요.

그러면 둘 사이의 관계가 전체 구원 받은 관계의 대표가 되어버려요. 전체가. 그럼 우리는 그냥 멍하니 그 둘 사이에 있었던 그 성사되는 일에 우리는 배제된 거죠. 왜? 우리가 끼어들 수 없으니까. 여러분들이 성경에 나오는 말을 따라하지 마세요. 소용없습니다. 이건 따라한다고 해서 우리가 끼어들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주님의 단독 행위이기 때문에. 항상 그 단독 행위를 강조하시기 바랍니다. 단독 행위를 강조 안 하게 되면요 예수 믿는다는 이름으로 내가 나를 책망해요. 이거는 사탄이 악마가 제일 좋아하는 거에요. “요거 못됐어. 떼찌!! 내가 그런 잘못을 두 번 다시 하지 마라 했지?” 이런 거. 그거는 떼찌 정도가 아니고 몽둥이로 좀 많이 맞아야 돼요. 주님의 피를 모독하고 있는 거에요 지금. 벌써 반성한 게 몇 번이야? 고해성사 벌써 6번째 왔어 너, 앞으로 몇 번째 올 거야? 그 짓 하지마세요. 고해성사하지마세요.

이렇게 하세요. 이것이 죄라는 것을 알게 하신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전에는 그게 죄 아닌 줄 알았는데 화투장을 들어보니 그것도 죄에요. 왜? 이미 의가 되었기 때문에 죄라고 마음 놓고 자유롭게 나는 죄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에요. 왜? 이미 의인이기 때문에. 자, 여기서는 단독자를 강조했습니다. 그럼 앞으로 주께서 기준이 뭐냐 우리에게 어떻게 뒤집기를 계속 할 것인가 그 뒤집기가 누가복음 4장에 나옵니다. 4장 18절. 이사야 61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4장 17절에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렇게 되어있죠.

이사야 61장에는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거 설명하기도 참, 성신과 성령의 차이도 굉장히 복잡하지만 이런 것들을 알기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벌써 설명했어요, 제가. 성신과 성령의 차이는 신이 임한 사람은 제대로 해라. 제대로 해라. 성령은 뒤집기. 너 못한다? 너 엘리야 아니야, 너 중보자 아니야. 왜 중보자가 하는 일을 네가 하려고 해 네가? 네가 너를 책망해서 왜 인간 만들려고 해? 새 사람 되려고 해? 하지마 하지마. 그거는 성신 있을 때나 하는 거에요. 여러분 하나 물어봅시다. 사울 왕이 성신 받았습니까 안 받았습니까? 받았지요. 사울 왕이 다윗 창을 던질 때 성신 받았어요? 악신 받았습니까? 악신 받았지요.

새로운 언약 체제가 등장하게 되면 기존의 언약 체제에서부터 성신은 후딱 살아나요. 볼 일 다 봤다. 이게 구약에서는 새로운 언약의 주인공이 등장하면 기존의 언약 체계는 이게 무효가 됩니다. 왜냐 하면 구약의 언약도 뒤집기를 위한 준비 단계로서 미래가 과거를 재설정을 하기 때문에. 미래가.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와서 뭡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그러면 세례 요한에게는 미래가 있습니가 없습니까? 지금. 오페라의 유령.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지금 이 순간 주께서 완료하는 거에요. 너와 나와 같이 만나서 대표자 만나서 하나님의 의를 몽땅 다 이루자. 우리 Start!! 죄인이 아니면서도 죄인 되는 거부터 시작하는 거에요. 니는 죄인이면서도 의인 자리에 가서 나에게 세례를 주는 거에요. 왜?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의인되었을 때에 네가 세례 준 것처럼 내가 내 원하는 백성에게 성령을 내가 부어줌으로써 이로써 하나님의 의를 다 이루는 거에요.

이거는 주님의 단독 행위입니다. 우리는 끼어들 자리가 아니에요. 우리가 명함 내밀 일이 아닙니다. 그것을 한 자로 하면 뭐라 하냐면, ‘끝’이에요. 나의 그리움도 끝입니다. 여러분 매일 그리워할 거 남아있어도 여러분이 죄 짓는 거만 그리워하세요. 뒤집기하세요. “이것도 죄였어?” 죄 찾는 그리움. 빈대 찾는 그리움 말고. 빈대 찾듯이 자기 죄를 찾아보는 거에요. 그게 그렇게 기쁘고 감사해져요. 왜냐 하면 내가 죄인인 것을 알면 내가 체면 받쳐서 못할 것도 다 할 수 있게 때문에. 죄인인 주제에. 죄인인데 뭔들 하는 말 있잖아요. 죄인이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요. 자기 신세 타령 안 하고. 기타들고 슬픈 컨츄리 노래 부르는 게 아닙니다. 기쁜 노래 부를 수 있어요.

여기 이제 계속 나가보겠습니다. 성신은 뭐냐 하면은 임시방편용이에요. 그냥 수단으로 사용하는 거에요. 언약을 위해서.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면 언약이 완성이 되어버립니다. 완전히 굳어버린 데서 오는 신이 바로 성령이에요. 그래서 그걸 가지고 고린도후서 1장에서는 성령을 보증금 줬다. 보증금을 준 거에요. 아파트 계약해봤습니까? 보증금을 주면 이미 그거는 등기 이전해도 괜찮아요. 보증금을 줬으니까. 담보로 주신 분이 주님이에요. 주님이 담보로 성령 줬는데 그 담보를 빼고 어디서 경매 들어오고 이런 거 없어요. 담보 들어왔으면 끝난 거에요. 담보 들어왔으면.

그러면 한 번 성령 받고 난 뒤에 타락하면 어떡하냐 그게 지금 약 올리는 거에요. 성령 받은 자는 네가 아무리 타락하고 싶어도 타락할 수가 없다를 그렇게 강조하는 겁니다. 왜냐 그 담보가 예수님 십자가 피 흘린 거기 때문에 그 피를 위해서 성령 받고 난 뒤에는 다시 망하는 인간이 내가 용서 안 한다. 내가 그냥 방치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너희의 죄를 씻을 새로운 제사가 필요치 않고 라는 말이 그거에요. 히브리서 10장에 나오는 말. 지금 방금 제가 내뱉은 이야기가 무슨 뜻입니까? ‘제가 할 게 있습니까?’ 없다는 이야기에요. 왜? 이 끝은 주께서 이 끝을 함으로써 인간도 끝이 났어요. 내가 행할 수 있는 것도 끝이 났어요.

그러면 인간은 놀까요? 놀진 않지요. 이게 끝이 끝이 되기 위해서 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가? 왜 나아갈 수 없지요? 죄인이니까 못 나간 거에요. 그러면 평생 남은 육신 가지고 뭐 합니까? ‘아 이것도 죄냐?’를 계속 들추어내는 기능이 의의 기능이에요. 죄가 많은 곳에 뭐가 넘친다 했어요?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 overflow에요. 뭐냐 하면은 죄를 숫자로 3을 졌다 하면 주께서 용서로 3을 주시는 게 아니고 죄는 요만큼 3을 지었는데 은혜가 333333333.. 갖다 붓는 거에요. 왜? 우리의 죄를 위해서는 주께서 지출하는 것이 너무 많아요. 주님의 지출. 자, 주님의 지출의 내막이 뭡니까? 자신의 생명이죠. 우주보다 더 귀한 것을 지불, 지출했는데 그까짓 죄 그거 은혜로 덮어씌우는 거에요.

내 자녀가 떡볶이 돈 안 내고 오니까 아버지가 왔어요. 주인한테 얘가 돈도 안 내고 떡볶이 먹었어요. 떡볶이 얼맙니까? 3000원. 어이 비서 3억 줘. 죄가 많은 곳에 주께서 치뤘던 지불, 지출금도 엄청나게 같이 동반해서 등장하는 겁니다. 이제 성령 안 받은 사람이 백발백중 튀어나오는 질문이 있어요. ‘이제 죄 지어도 되겠네?’라는. 그때를 기다렸습니다. 지금까지 지은 죄도 모자라서 죄를 더 지을라고? 착한 일 한 것도 죄인데, 착한 일 한 것도 죄잖아요. 근데 나쁜 일이 죄일까요? 착한 일이 죄일까요? 어느 일이 더 쎈 죄입니까? 착한 일이 더 쎈 죄에요. 나쁜 짓은 지가 나쁜 짓한 거 알잖아요. 착한 짓은 지가 왜곡해서 해석한 거에요. 주께 영광을 돌렸다고. 이거는 맞아도 많이 맞아야 돼요.

뒤집기를 하는데 이렇게 뒤집기를 합니다. 18절에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자유” 이렇게 되죠? 한번 보세요. 대립되는 개념을 사용해요. 대립되는 개념. 반대되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 말이죠. 그러면 성도는 본인의 구원이 아니고 예수님의 구원을 증거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했죠. 그렇다면 성도는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포로 돼야 되고, 눈 멀어야 되고 그 다음에 가난해야 돼요. 집에 한 20억 있어도 3조 있는 사람보다 가난하잖아요. 그렇죠? 가난해야 돼요. 가난을 어떤 걸 가난이라고 하냐면, 가난이란 ‘아무리 가져도 가난임을 아는 자’가 가난이에요. 차가 한 5대 6대 있어도 아무리 가져도 그게 가난으로 이해하는 자가 가난한 자에요.

그걸 가지고 마태복음 5장3절에서 뭐냐, 심령이 가난한 자에요. 심령이 가난한 자. 가난한 자의 특징은 뭐냐, 자랑할 게 없어요. 십자가 외에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겉을 보시는 게 아니고 뭘 본다? 중심을 보는데 그 중심이 뭐냐? 끊어진 데서 주께서 집어넣은 새로운 십자가가 나오는 것. 고린도전서 2장 4절에 “나는 너희들이 예수님이 죽은 그 십자가 외에는 일체 알지 않기를 원하노라” 사도 바울이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 이야기를 왜 했냐면, 고린도전서 1장에서 ‘나는 십자가 안 졌다’ 이 말이에요. 나는 십자가 안 졌어 이거 십자가 아니야, 내 살 아니야, 내 피 아니야. 이거는 십자가 아니야. 십자가는 따로 있어. 그러니까 십자가를 가리면 안되잖아. 가리지 않는 방법은 뭐냐? 십자가 앞에서 나는 죄인이고 가난한 자라는 것을 인정하면 돼요. 그리고 눈 먼 자. 눈 먼 자라 하는 것은 언제 눈 먼 자인 걸 아느냐면 눈 떴을 때 눈 먼 자란 걸 알아요. 내가 하는 것이 참 정말 잘난 척 했구나. 내가 뭐 뭣도 모르고 까불었구나.

그러니까 오늘 되면 어제가 눈 먼 자고 내일 되면 오늘도 눈 먼 자에요. 계속 눈 먼 자가 되어야 계속해서 십자가만 감사가 되게 되어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은 interchange니까 예수님의 죽으심이 계속 우리 인생에 돌고 도는 물레방아 계속 돌고 있으니까요. 우리도 같이 돌고 있어요.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온 몸을 흐르고 있으니까 우리는 세상에 나와서 지을 것은 죄밖에 없어요. 남 도와주는 죄, 기도하는 죄, 헌신하는 죄. 모든 게 죄밖에 없어요. 그리고 특히 죄 중에 젤 큰 죄가 내가 악착같이 살려고 하는 죄. 이왕 사는 거 남한테 칭찬받고 사는 죄, 사랑받고 살고 싶은 죄, 안 외로울려 하는 죄, 이 죄가 죄인 이유가 우리에게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이게 죄니까 멈추자. 그런 경우는 인간에 없어요. 죄이기 때문에 죄로 나와야 돼요. 죽을 때까지. 내 죽고 난 뒤에 양지 밭에 묻어 달라 그거 뭡니까? 죕니다. 양지 밭에 묻든지 바닥에 던지든지 그건 죽고 난 뒤에 어떤 조치가 있든지 우리가 왜 신경 씁니까?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내가 나한테 신경 쓰는 것이 죄며, 그 죄는 우리가 육신이 있는 한 멈추지를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끝까지. 그게 멈추지 않아야 그것마저 의가 되시는 복음의 오직 십자가 복음만 높아지는 거에요. 그 다음에 19절에 보면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심이라” 하고 책을 덮어버렸어요. 그럼 뭡니까? 책을 덮었다는 말은 주님이 앞으로 하실 스케줄이 이미 공개가 되었잖아요. 공개가 되었으니까 이 세상 권세는 이 주의 하는 일에 협조가 되어야 되죠. 어떻게 협조할까요? 죽여 버리라. 이렇게 협조하는 거에요. 오늘날 우리의 육신과 똑같지요. 주께서 다 용서했기 때문에 이제는 내 맘대로 살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협조하는 거에요. 이제는 내 맘대로 살아야지 하는 식으로 협조하는 거에요. ‘내 맘대로 하면 안되지 거룩하게 살아야지’ 라고 하는 순간, 그게 더 나빠. 그게 더 나쁜 거에요. 그게 더 십자가 모독하는 거에요.

예를 들어서 디모데후서 6장 8절에 이런 말씀 나옵니다. “입는 거 먹는 걸로 족한 줄 알라” 했죠. 이 말씀이 이미 주어졌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갖고 있습니까? 입는 거 먹는 걸로 족한 줄을 알고 싶어 노력하잖아요. 이거는 맞아도 많이 맞아야 돼요. 이거는. 왜냐면 절대로 인간을 될 수 없거든요. 될 수 없는데 이제는 나는 신자니까 나를 통해서 의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되니까. 분명히 성령의 열맨데 왜 본인이 열매를 맺어요. 이 말씀을 가지고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지키려고 하니까 주님 보기에는 속 터지는 거에요. 왜냐하면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 뭐냐 하면 십자가 영광이 아니고 예수 십자가 믿고 먹는 거 입는 거 족하게 여기는 나를 우상시 하는 게 마귀의 농락에 놀아나는 거에요 이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됩니까? 입는 거 먹는 거 족한 줄로 알라 이 말씀을 지키고 싶어요. 지키고 싶은데 이거 못 지킵니다 하고 우리는 고백해야 되겠지요. 그 다음에 있어요 뭐냐 하면 입는 거 먹는 거 족한 줄로 알라 하는 걸 못 지킨다고 고백했다고 고백한 게 자기의 의가 되어버렸어요. 이것도 못 됐어.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그냥 내버려 그냥 살어요 그냥. 그냥 살면 모조리 다 주께서 죄 되게 만들어줄테니까 십자가 공로만 돌리면 되는 거에요. 슬슬 흥분할 때 됐으니까 끝날 때 되었죠? 기도 한번 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끝이 되면 모두가 무효화된다는 것이 우리가 왜 진작 몰랐습니까? 끝을 끝내기 위해서 십자가에 다 이루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가 죄인으로 마음껏 활용하고 말씀을 통해서 더욱 더 죄인 되게 하는 이것이 이거보다 더 큰 감사와 기쁨이 없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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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2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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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