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31201b 울산강의-역대기상(26강) 28장 6절 : 성전의 불연속성자유게시판-

20231201b 울산강의-역대기상(26강) 28장 6절 : 성전의 불연속성
(강의:이근호 목사)

둘째 시간하겠습니다.

아까 가나안 여인, 수로보니게 여인 맞습니다. 자기를 스스로 개라고 한 수로보니게 여인이에요. 이렇게 우리 자신은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 뜻과 너무 달라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을 하느냐 하면은 나로 인하여 나를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나를 구원해요. 나로 인하여. 구원의 방해자가 주님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 옛 사람이 새 사람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환경으로 우리를 몰고 가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알아요. 나는 내가 버티고 이 땅에서 계속 살아남기 위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조차도 주님의 경험에 동참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나중에 성령을 받고 난 뒤에 그걸 발견하게 돼요. 내가 살기 위해서 악바리처럼 설치는 그것이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기 위한 방식으로 허락하신 거예요. 네가 너를 위해서 열심히 사는 방식으로 네가 쫄딱 망해봐라, 네 자신에 대해서. 돈은 안 망했는데 영생은 없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경험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버리는 게 아니고 다윗으로 하여금 장차오실 구원자가 내 인생 설계에 이미 들어왔다고 했을 때 나의 인생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다윗으로 경험케 하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자기가 하는 모든 것이 바로 죄가 된다는 겁니다. 율법을 따졌던 본인이 바로 내가 율법의 위반자란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을 주지요. 시편 51편에 나옵니다.

“하나님이여, 이 성신이 찾아오는 기쁨을 나에게서 사라지지 말게 하옵소서.” 율법으로 버티는 내가 그게 바로 주님께서 대들었던 모습인 것을 성신이 올 때 비로소 나는 애초부터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친의 죄 중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죠.

그전에 다윗에게는 뭐가 있느냐 하면 자기의 목표점이 있었어요. 다윗의 목표점은 이스라엘을 건사하고 정착시키고 이방나라로부터 지켜내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켜내기 위해서는 본인이 전쟁이 승리해야 되고 승리한 나는 하나님이 나라는 인간과 내 자리를 굳건히 지켜준다는 생각을 안 생길 수가 없었어요. 반드시 생겼어요. 나를 지켜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선 유지한다는 그래서 나는 왕 자리에 있다는 생각이 이게 어떤 문제 있다고 전혀 몰랐습니다. 그 자리를 자기가 버텨있는 거예요, 왕으로서.

그런데 그 목표, 그 기대가 바뀌어요. 어떻게 바뀌느냐? 다윗의 목표와 기대가 다윗의 죄로 말미암아 무의미하게 돼요. ‘아아, 날 위해서 산다는 게 하나님 앞에 안 통하는구나. 이게 의미 없는 거구나.’ 그런데 여기서 멈추는 게 아니에요. 여기선 멈추면 다윗은 구원 못 받지요. 이 무의미를 통해서 뭐가 들어오느냐 하면 밖에 있었던 언약궤가 어디로 들어오느냐? 무의미한 아무 쓸모없는 내 안에 들어와요. 하나님의 언약궤가 내 안에 들어와요.

그동안 다윗은 목표, 기대 때문에 땅에서 뭘 흘렸습니까? 피를 흘렸잖아요. 그런데 밖에 있는 언약궤 피는 뭐냐 하면 인간의 피가 묻히면 안 돼요. 여기는 희생제물의 피가 묻혀야 돼요. 내 피 말고 내 피와 땀과 노력으로 버티려는 인생 속에 내 노력과 내 피가 아닌 하나님의 피가 들어오는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밖에 있는 언약궤가 내 안에 들어와요. 그러면 지킬 법이 남아있습니까? 더 이상 내가 지킬 법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성막 같은 경우에 이렇게 돼 있거든요. 여기 25미터, 50미터 잡고 대충 그래요. 이건 동쪽이고, 서쪽이고, 남쪽이고, 북쪽이고. 여기에 텐트 쳐있고 천막 제일 안쪽에 언약궤가 있잖아요. 이 앞뜰에 뭐가 있느냐 하면 제단이 있어요. 이 자체적으로 회로가 흐릅니다. 바깥에서 희생양이 들어와요. 속죄제든 서원제든 양이 들어와요.

이 양이 바로 언약궤 있는 하나님 이름이 계신 곳에 들어오질 못해요. 여기서 변형이 일어나야 됩니다. 어디를 방문해야 되느냐 하면 제단을 찾아가야 돼요. 제단에 가면 양이 홀라당 여기서 뭘 만나는가? 불을 만납니다. 그 불은 춥다고 손 쬐는 보온용 불이 아니에요. 아예 자체를 다 태워버려요. 그럼 양 자체가 태워지고 나면 드디어 양 실체가 연기가 되어 날아가요. 남는 게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다 태웠다는 확실한 사태를 증명해 줄 그게 양의 핍니다.

진주에 가면 진주문화관이 있어요. 진주 남강에 몸 던진 유명한 기생 있지요. 논개. (이동기, 1982) 노래 가사에 보면 ‘몸 바쳐서 몸 바쳐서’ 있지요. 같이 껴안고 같이 죽었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 일본장수 이름은 기억 못해도 논개는 기억해요. 그 논개가 술 따라주고 돈 받고 집에 갔으면 논개는 유명무실하지요.

어린양이 여기서 피와 함께 산화되고 없어지고 피는 남겨요. 그 남겨진 피, 이 피가 어디로 가느냐 하면 하나님, 주의 이름이 있는 언약궤까지 가요. 7월 10일 날. 그때는 양보다 소, 레벨이 높은 제물이 들어가요. 염소나 소가 들어가요. 소를 잡고 소의 피가 언약궤에 피 뿌림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회로가 돼요.

인간이 하나님께 바치는 것, 인간이 하나님과 만날 수 없는데 여기서 인간이 드린 양을 하나님이 받는다는 말은, 인간의 것을 하나님은 안 받아요. 안 받는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것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것을 받도록 하나님 자체가 인간세계 속에 인위적인 행함 속에 들어왔기 때문에 하나님께 접수가 돼요.

접수가 된다는 말은 완전히 죽어서 피가 남긴 그 인간 속으로 하나님이 들어오셨다 이 말 아닙니까. 그러면 그분은 누구죠? 다른 인간은 안 되고 오직 누구밖에 없습니까? 예수님밖에 없지요. 그러니 예수님을 일찍 경험하는 거예요. 이게 무슨 경험, 방금 뭐라 했습니까? 예수님의 경험이죠. 예수님의 경험을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니까 왕이 예수님의 경험을 하는 거예요. 왕이 예수님의 경험을 했고, 왕이 경험한 것을 또 누가 경험하게 된다? 그 당시 다윗이 왕이 되었던 백성들이 함께 경험하는 것으로 주께서 인도하시는 거예요.

아까 분명히 인간은 자기밖에 몰라요. 자기밖에 모르지만 하나님의, 방금 이야기한 이 회로를 ‘다윗언약’이라 해요. 다윗언약의 회로가 가동이 돼버리면 다윗도 바뀌고 다윗과 같이 있는 백성들도 다윗언약의 회로에 감김으로서 같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역대상이라든지 사무엘하도 나오지만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하지요. 인구 조사할 때 백성들이 많이 죽어나가지요.

하지만 백성들이 다시 죽어나갈 심판이 멈춰지고 사는 것은 아나우라 타작마당에서 다윗이 뭐가 됩니까? 제사장 되어 하니까 그게 멈춰지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서 백성들은 무슨 경험을 합니까? 나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살겠다는 그 경험밖에 없던 백성들이 다윗을 통해서 이스라엘 왕 다윗이 경험했던 그 경험을 통해서 어떤 경험이 회로가 들어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께 바쳐지는 그 회로가 주님의 경험으로 내 안에 들어오게 되면 그 사람은 새로운 사람, 새로운 피조물 되는 거예요.

불로 시작해서 피로 들어가는 거예요. 불, 피. 심판에서 시작해서 심판에서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의미 있는 것은 바로 어린양의 피 밖에 없지요. 이게 성경적으로만 팩트가 아니고 이 현실세계에서 유일한 팩트에요. 유일한 사실입니다. 이건 종교가 아니에요. 예수님이 죽었다, 다시 살았다.

이건 종교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들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거예요. 기독교는 종교를 가지면 안 돼요. 복음이란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전후, 이 세상의 창조부터 마지막까지 그 중심이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현실감각이 있어줘야 돼요. 이건 내가 믿고 말고 할 그 문제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왜 일을 복잡하게 하시는가? 처음부터 하늘나라를 인간이 갈 수도 없고 만들 수도 없어요. 하늘나라는 땅에서 일부러 인간에게 찾아오신 주의 이름이 땅에서 일을 일으켜야 하늘나라의 구성조건에 맞아집니다. 이제부터 좀 난해하게 하겠습니다. 지금 한 것은 어려운 것도 아니에요. 어렵게 한다 해도 여러분들은 꿈쩍도 안 해요. 해봐야 들으면 다 아는 이야기인데 뭐.

골로새서 1장 13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보세요. 성경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과감합니까? 누구의 자존심을 봐주고 이런 것 없어요. 아주 과감하고 과단해요. 성경은 인간의 눈치코치 보지 않고 그대로 너희들은 흑암의 권세에 살고 있다, 끝. 나는 지금 윤석열 대통령 권세? 아니야. 흑암의 권세야. 그냥 흑암의 권세에요. 시커먼 권세에요.

흑암의 권세에서 어딥니까, 무슨 나라? ‘아들의 나라’지요. 그러니까 다윗의 아들이 성전을 짓는 거예요. 다윗의 아들인데 다윗의 아들이 안 되고 누구 아들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삼겠다는 아까 본문 있지요. 역대상 28장 6절 본문, 하나님의 아들 돼야 돼요. 그럼 아들인데 아버지가 더는 아버지가 아니고 잘려버린 거예요. 이것은 다윗에 의해서 다윗이 제거되는 겁니다. 내가 나로 인하여 제거되듯이.

우리는 나에 대해서 내가 제거될 이유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은 내 경험이에요. 내가 한 경험이잖아요. 주님의 경험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내 경험한 나는 잘리고, 잘리면서 새로운 내 속에는 무엇이 들어가느냐? 주께서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주님의 경험이 성령을 통해서 들어오면 우리는 거기서 새 사람 되는 겁니다.

‘아하, 내가 어느 유치원 나왔고, 어느 고등학교, 초등학교 나온 것이 주께서 그렇게 인도하셨구나’란 사실을 발견하는 겁니다. 전에는 내가 악바리처럼 공부했다가 되는데 이제는 주께서 그렇게 공부하게 하셨다로 바뀌지요. 왜? 나의 연속성을 잘라내기 위해서. 아담 출신을 잘라내고 주님 출신으로 새로운 회로가 들어오기 위해서 주께서 어느 시점에서 성령이 와버리면 뒤돌아본 모든 과거가 주의 솜씨가 되고 그걸 전체를 무슨 나라? 사랑이 되는 거예요.

한 순간만 사랑이 아니라 출생 전부터 사랑이었고 그 사랑이 나타나서 지금껏 사랑 아닌 적이 없고 앞으로도 아닌 적이 없을 거예요. 여러분이 두 개의 자아를 생각하는 이상은 이건 잘린 거고, 이거는 새로운 것이라는 두 개의 자아상 둘 다를 갖고 있어야 돼요.

성령이 오지 아니하면 성령님은 율법의 마침이 되고 난 뒤에 그다음에 오는 게 성령이에요. 무슨 뜻이냐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율법을 다 이뤄버린 거예요. 율법 이뤄야지, 하면 ‘손 떼. 내가 이룰 거야’ 하고 율법 빼앗아가서 본인을 율법 다 이뤄버린 거예요. 이로서 율법이 우리한테 끝이 돼요. 마감이 되고 말았어요. 그래서 우리는 율법, 말씀 지켜서 의롭게 될 수 있는 여지가 아예 없는 거예요.

그러면 뭐냐? 율법을 가진 분의 의가 우리 안에 언약궤로 들어와 버려요. 물론 피를 동반해서 들어와요. 그 피라 하는 것은 그냥 일어난 사건이 아니고 사람에게 버림받은 것까지지요. ‘사람에게 버림받았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새로운 나는 옛날 나한테 버림받은 거예요. ‘교회 그냥 다니면 되지 뭐. 굳이 신앙 생활해야 되나. 자칫하면 광신도가 될 가능성이 있고, 집안에서 남들 욕할 건데.’ 하다가 성령 받아버리니까 광신도 안 됐으면 어쩔 뻔 했어요.

그때는 종교 하나 갖는다고 했는데 종교 자체가 나를 지옥으로 보냈구나. 교회가 나를 지옥으로 보냈구나. 교회 다녀야 될 이유가 교회에서 구원받으라고 교회 다닌 거예요. 교회에서 탈출하라고. 왜? 교회가 우리 옛 사람의 모습이거든요. 지 잘남을 자기의 의로움을 뽐낼 수 있는 공간이 교회 아닙니까.

아들의 나라로 오기 때문에 아들의 나라거든요. 이거는 일단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천국은 내 나라는 아니에요. 아드님의 나라지요. 그러면 왜 아드님의 나라가 돼야 되는가? 다윗언약을 따라서 주님이 오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한 번 설명합니다. 첫째 시간 한 것 요약하면, 다윗언약이 다윗이 아니고 다윗의 아들의 언약이 되는 거예요. 다윗의 아들의 언약이 솔로몬 중심으로 되면서 기존의 이스라엘 있잖아요.

이스라엘은 솔로몬 때부터 둘로 쪼개집니다. 나라가 열 지파와 두 지파로 쪼개졌다는 말은 이거는 이스라엘 나라가 아니라는 거예요. 중심부가 깨져버렸어요. 나라가 아니에요. 이스라엘 아니에요. 솔로몬 이후에 다윗언약을 위해서 다윗이 경험한 것, ‘나 구원받은 자 아니에요. 나 구원받은 자 아니기 때문에 구원받았어요’라는 이 경험을 이스라엘 경험화, 이스라엘 전체로 역사적으로 퍼지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아닌 시기로 접어듭니다.

남아있는 것은 다윗언약 뿐이고 기존에 있던 약속의 땅 건사하고 지키려는 것은 모조리 다 불로 태워져서 이방나라로 다 흩어져버리죠. 여러분 이스라엘 역사, 구약 이렇게 보면 간단해요. 그 땅에 거하고자 하는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는 백성 아니라는 거예요. ‘땅에 거할래, 언약에 거할래?’라고 묻는 거예요. 땅에 거할래, 약속에 거할래?

그 작용은 예수님 당시 유대교에도 꼭 마찬가지에요. 누가복음 11장 26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24절부터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사람들은 유대인들은 뭐냐 하면 율법을 지켜서 내가 깨끗하게 되면 더 이상 귀신이 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어요. 이게 청교도 하는 거예요. 개혁주의신학, 청교도가 그런 거예요. 도 닦듯이 말씀을 지키면 내가 깨끗하게 되면 더러운 귀신이, ‘네가 말씀을 지키는구나. 같이 못 있겠다. 내가 나가줄게. 말씀 지키는 너하고 더러운 내가 어떻게 같이 있겠어. 나가줄게.’ 나갔다 칩시다. 갈 데가 없어요. 갈 데가 없으니까 어떻게 합니까? 일곱 친구 데려와서 전보다 더 악하다 했어요.

이 말씀이 뭔 뜻입니까? 율법으로 말씀으로 아무리 씻어내고, 씻어내고, 닦아내고, 닦아내도 그거는 아무짝도 소용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자리를 뭐로 채워야 돼요? 성령이 와서 채워야 되죠. 주님이 와서 채워야 돼요. 수고스럽지만 이능우 집사님, 한 부씩 나눠드리세요. 요 근래 제가 안 하던 짓을 해요. 강의시간에 음악을 틀어주고 그런 짓을 하는데…….

사람이 도 닦는다고 해서 깨끗하게 안 되는 이유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인간은 무서운 제단 불에 다 태워져야 돼요. 깨끗하고 자시고 할 것이 아예 없어져야 돼요. 그것도 불의 심판 속에 없어져야 돼요. 그걸 어린양이 인간 대표로 해서 보여주는 회로가 언약궤 내의 회로에요. 성막 안의 회로에요. 그게 성전에 그대로 유지되고요. 심판을 인간이 지켜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 귀신이 허락도 없이 지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해요. 내 안에 일곱 귀신이 마구 들어와요. 도를 닦으면 닦을수록 귀신이 점점 더 증가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음악을 하나 들려드릴게요. 또 안 하던 짓한다고 욕해주시면 감사하고요.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짧게만 하겠어요. 한 2분 동안. 너무 오래하면 잠잘 때 귀신 나오는 것 아닌가 모르겠어요.

어떻습니까? 여기 가사가 라틴어로 나와 있는데.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자비를 따라서’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의 성가라는 거예요. 일체 반주 없지요. 악기 반주 안 들어가지요. 요새는 여자도 들어가지만 남성 4부 합창으로 하지요. 왜 이런 노래를 통해서 주께 영광 돌렸다고 하는 거예요? 지금껏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여러분들은 이걸 아셔야 돼요.

이게 왜 귀신 노래냐? 이것 때문에 그래요. ‘정착’ 내 안에 정착하는 거예요. 연속성, 점점 더 고귀해가는 나의 연속성에 정착하려는 거예요. 이게 유대교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그 짓을 한 거예요. 청교도가 그 짓한 거예요. 기존 교회가 그 짓한 거예요. 전부 다. 불연속성이 없고 연속성으로 계속 이어져가려 하는 거예요. 전보다 나아진 성화된 내 모습이, 음악도 보세요. 한 번 더 틀어야 되나? 지금 일곱 귀신 들어간 겁니다. 귀신 일곱이 더 되는 것 같아. 한 사십 귀신 되는 같은. 그만해야 되겠다. 귀신 나오겠다.

인간의 예술 가운데서 가장 고상하고 가장 성스러운 것을 다 추려서 가장 근사하게 하나님이 가장 기뻐할 거라고 여기는 거예요. 시와 신령한 노래로 찬미하라는 에베소서의 말씀을 그대로 하는데 문제는 성령께서는 연속성입니까, 불연속성입니까? 불연속성이죠, 불연속성이죠. 다윗이 이스라엘을 피 흘려가면서 싸우겠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한 거예요. 인위적으로 기대하고 목표를 가지고 예상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성령은 나의 존재는 제거될 대상자로 이 땅에 출생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성령이에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제거됐기 때문에. 예수님이 어린양이잖아요. 내게 누적된 모든 경험은 나를 지켜줄 경험이에요. 아까 부자 청년은 돈이 자기 자존심인 줄 생각도 못했어요. 자기는 율법이 자기 자존심이라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지켰으니까. 그런데 본인이 귀신과 더불어 살았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했어요.

자, 물어봅시다. 율법의 마침이 되지요. 그러면 예수님은 뭐냐? 율법의 완성이 돼요. 율법은 자기소임 다하고 은퇴하면 끝나는 거예요. 완성은 어디로 이어져야 돼요? 예수님이 완성이에요. 율법과 그 완성 사이의 연속성은 예수님만 해요. 다른 인간은 저와 여러분들은 못해냅니다.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 속에 언약궤로 들어와 있어야 돼요. ‘나는 안 되었습니다. 나는 못했습니다. 나는 무의미했습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살고자하는 회로 외에는 다른 회로는 아는 게 없었습니다.’ 이런 것.

인간의 모든 인위적인 종착은, 죄인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의인 되겠다는 심보에요. 이 심보 자체가 문제에요. 현재 한국의 모든 신학체계는 뭡니까? 이거잖아요. 죄인이 뭐된다? 의인 된다. 뭘 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피를 믿으면 의인 된다. 출발을 죄인인 내가 의인 되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죄인 되겠다는 게 본인은 뭐로 봅니까? 의인 되겠다는 가능성으로 보니까 내가 죄인이라는 것이 뭐로 보여요? 내가 졸지에 뭐가 돼요? 의인 되는 거예요.

아까 프린트 가사 봅시다.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를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시편 51편을 보고 가사 지었다는데 이것을 부르고 이걸 믿는 순간 본인은 뭐예요? 천주교의 약점은 그거에요. 이걸 안다는 것은, 우리가 아주 죄인인 적은 없고 주의 말씀을 알아먹는 그런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천주교의 신학입니다.

여러분들이 천주교가 어떤 종교인지 알아야 돼요. 개신교도 마찬가지지만. 인간의 종교가 어떤 종교냐? 아무리 범죄 해도 내가 죄인인 것을 아는 의인은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음을 못 놓는 것이 천주교에요. 그게 연옥이고요. 아예 처음부터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내 모든 죄는 내가 알고 있으니까 이 정도하면 의인 아니냐? 하는 것이 불교고요.

자승 스님? 자성이나 해라. 자살 해놓고 뭐 공양했다고? 여러분 왜 자살했겠습니까? 돈 때문에 자살했지 뭐. 부자 청년 봤지요. 인간은 돈을 못 떠나요. 돈이 없으면 내가 없는데, 돈이 있어야 내가 있는데요. 내가 아는 모든 경험은 돈 버는 경험이 마지막 바닥의 경험이에요. 지금 이 자리에 돈 번다고 참석 안 했어요.

주님의 방법은 나로 인하여 내가 제거되게 해요. 그러한 돈 밖에 모르고 나 밖에 모르는 인간을 주께서 버리지 않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들어오느냐? 죄인이 의인 되는 게 아니고 유일하신 의인이 어디서 나타난다? 죄인 속에 들어오는 거예요. 죄인 속에 가까이 하면 할수록 우리가 없던 죄가 점점 늘어나면서 왜 우리는 이 죄를 내 선에서 해결 못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점점 더 알게 해요.

주님이 의인이거든요. 언약궤잖아요. 주님은 피를 앞장세워서 오지요. ‘용서했다, 용서했다, 용서했다’로 와요. 여기 가사에 뭡니까?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부탁 안 해도 돼요. ‘당신의 크신 자비를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주소서’ 그 부탁 안 해도 돼요. 이거는 구약이에요. 신약은 그게 아닙니다. 신약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너의 죄를 더욱더 알리리라’ 몰랐던 죄를 더욱더 알게 만들어요. 죄를 지워주는 게 아니고 죄를 더 실체화시키죠.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죠.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죄인 중에 괴수로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병든 자라야 의사가 의사답지 건강한 자에게 무슨 의사겠는가? 나는 의사로 왔다. 마스크 쓰시고 환자인 척하세요. 몰랐던 자기의 죄를 찾아내는 그 취미가 아주 쏠쏠한 취미입니다. 골프 치면서 죄 알고, 크루즈여행 다니면서 죄 알고, 여수에 놀러가면서 죄 알고,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오늘도 죄를 아는 여행……. 도대체 이 사실을 이 복음의 기쁨을 누가 알겠습니까? 여기 골로새서 1장에 보면 아까 아들의 나라라 했지요.

그러니까 그레고리오의 성가를 부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제 말은 그럼 이것 하지 말고 트롯으로 바꿀까요? 바꿔도 마찬가지에요.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걸 잠 안 올 때 듣게 되면 잠 올 수가 있어요. 좋은데 이게 바로 죄라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면 되는 거예요. 죄 아닌 게 어디 있어요, 다 죄인데. 문제는 이래서 이건 죄가 아니라고 우기기 때문에 문제인 거예요. 헌금 하게 되면 헌금 하세요. 헌금 하는 것도 죄가 돼요. ‘헌금 하는 것은 성령이 시키는 거니까 선한 일이다’ 이렇게 계산하면 안 된다 이 말이죠.

아들의 나라에서 무슨 언약이라 했습니까? 다윗언약에서 아들이 나와요. 다른 언약은 아들이 안 나옵니다. 모세언약은 율법이 나오지 아들이 안 나와요. 아들이 나온다는 말은, 이건 어려운데요, 그냥 받아두세요. 너무 어려워서. 뭐냐 하면 여자, 남자, 개 모든 것은 뭐가 되느냐 하면 ‘비유’가 돼요.

그러니까 내가 여자다, 남자다, 나는 이스라엘이다 해도 전부 다 아들 하나를 묘사하기 위한 연관된 비유에요. 비유의 특성은 뭐냐? 단독적으로 아무 의미 없어요. 무의미해요. 그러나 아까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개로서, 또는 여자로서, 남자로서 연결이 되면 비로소 여기에 회로에 전깃불이 들어옵니다.

여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남잔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고, 죄인인데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돼요. 강돈데 ‘오늘 밤에 낙원에 있으리라’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우리의 단독적으론 의미가 없고, 성령에 의해서 회로가 연결되니까 주님에 의해서 주입된 새로운 고백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 자체가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하나의 우연적인 비유에 지나지 않아요. 우연적이란 말을 하는 이유가, 저 집은 왜 팔자가 부잣집인가? 이건 남의 팔자를 부러워하지 말라고요. 그쪽도 부자도 비유에요. 더 안타깝지만 가난한 것도 비유에요. 다시 말해서 우리가 맡은 역할이 가난한 역할로 한 구십오 세 살라고 한 거예요.

더 섭섭한 이야기지만 저 사람은 건강한 것이 그 사람이 맡은 비유에요. 어떤 사람은 날 때부터 골골해서 DNA에 잘못 돼서 날 때부터 하루라도 안 아픈 적이 없는 것. 안 됐다? ‘안 됐다’ 아닙니다. 그건 그 역할이에요. 어릴 때부터 아토피 벌겋게, 맡은 역할이 그건데요.

중요한 것은 역할에 차등이 없고 거기서 자기가 죄인 됨을 발견하고 피에 대한 복음, 다윗언약의 복음, 아들의 나라, 아버지의 나라가 아니라 아들의 나라에요. 천국은 이 땅에서 아들이 만들어내는 거예요. 천국은 구성돼야 되는 겁니다. 이 땅에서 구성돼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다윗언약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게 되면 이 다윗언약이 UFO처럼 비행기처럼 땅에서 떠나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게 뭐냐? 승천이고, 부활 승천해서 올라간 거예요. 주의 이름이 올라간 거예요. 그러면 이 땅에는? 없지요. 주님의 이름이 하늘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시민권은 주 안에 있다. 같은 말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같은 말이 주 안에 있다, 성령 안에 있다 같은 말이에요.

수요일에 [질투 안에서]란 설교했는데 시간 관계상 설명 못한 게 있어서 빠진 부분을 제가 약간 더 보충해드리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7절에 보면,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12x12)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이 대목.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 이게 뭐냐? 방금 이야기한 인간은 뭐라? 비유지요, 비유입니다. 실제로, 어려운 말이지만 그냥 들으세요. 하늘나라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천사들만 존재하게 돼요.

그래서 ’선악을 아는데 우리와 함께‘ 할 때 ’우리‘라는 게 하나님과 천사도 포함되는 거예요. 하나님과 천사만 존재해요. 있음이 돼요. 나머지는 하늘나라에 없다가 돼요. 측량을 누가 합니까? 천사가 측량한다는 말은 하늘나라의 계산법에 누굴 넣어준다는 말이죠? 이 지상에 있는 성도를 넣어주는 거예요. 성도를 사람인데 왜 넣어줍니까? 사람은 하늘나라에 존재할 수 없는데. 하늘나라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어요.

존재할 수 없는데 왜 사람이 측량하느냐? 이게 비유로 들어가기 때문에, 비유 역할을 하늘에서 하기 때문에 인간이 거기서 들어가는 거예요. 단 조건이 있어요. 뭐냐? 내 이름은 날아가 버리고 무슨 이름으로? 주님이 존재하기 때문에 유일한 존재 주님의 이름으로 각각 역할을 맡는 겁니다. 열두 지파가, 언약의 사람이. 참 이것 설명하려면 복잡한데 그냥 수요일 날 했기 때문에 간단하게 하면 이렇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만드는데 사람의 이름이 이 안에 있는 게 아니고 뭐로 있습니까? 열두 지파가 열두 개의 문으로 돼 있다고요. 뭐냐 하면 주께서 문지기로 허락했다는 거예요. 역할을 맡겨줬다는 거예요. 그러면 인간이 이 안에 들어오기를 탐을 낼 수 있는 자격이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했잖아요. 이게 뭔 뜻입니까? 아예 천국 가는 것을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주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가시고 다시 들어오시는 그 통로 역할을 해주셨으니까 나는 개 같은 인간이라도 좋습니다. 주인에게 예속되었으니까. 그래서 성도는 천국을 위해서 밤낮으로 천사와 같이, 천사도 밤낮으로 뭐합니까? 부끄럽다고 지 몸 가리면서 날개로 찬양을 하듯이, 아까 찬양 더 들려줄까요? 주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는 거예요.

천국 가면 심심해서, 탁구장 있나? 그런 것 탁구장 없어요. ‘심심해서 어찌 사느냐, 권태로워서’ 이런 사람이 있는데…. 맞아요. 사람은 자기 할 일이 없으면 권태로워요. 자기에게 의미 되지 않는 일은 하기 싫어요. 그래서 뭐가 있느냐 하면 바로 요한계시록 2장, 3장이 있는 겁니다. 여기 일곱 교회 나오지요. 일곱 교회의 특징이 뭐냐? 다 하나님에 의해서 잘렸다는 거예요.

일곱 교회의 모습을 보세요. 하나님 믿고 시작했는데 결국 그 안에 교회 내에 인간의 활동은 뭐로 꽉 채워져요? 자기 의미로 꽉 채워지지요. 전부 다 자를 교회에요. 교회를 잘라냄으로써 어린양의 교회를 드러내는 게 4장, 5장, 6장, 7장, 8장. 2장부터 3장까지 지상교회 날아가고, 4~6장 종려나무 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등장하지요. 차이점이 뭐냐는 거예요.

일곱 교회 자체가 지명이 있지요. 일곱 교회, 에베소 교회에게 말하고 나오잖아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이게 뭡니까? 지상에 지명이 있지요. 정착된 교회지요. 정착된 교회 잘라낸다 이 말이죠. 정착된 교회이기에 지적할 게 생겨버린 거예요.

그런데 4장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성도들은 어디 가 있어요? 지상에 있어요, 하늘나라에 있어요? 5장, 어디 있습니까? 이미 하늘나라에 가 있지요. 어떻게 가 있습니까? 죽어서 가 있는 거예요. 인간은 이 땅에 있을 땐 존재가 아니에요. 성도가 죽을 때 뭐가 됩니까? 비로소 자기 자리, 자기 존재를 확답 받게 됩니다. 내 자리와 내 존재를 확답 받게 돼요.

이 땅에서는 뭐기 때문에? 비유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살아버리면 진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고 이 땅에서는 우리의 옛 육신이 육신 값을 한다고 그냥 이것저것 죄 짓지요. 그러나 죽게 되면 죄 질 거리가 없기 때문에 온전히 주님의 존재와 합세가 돼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인생은 방향성이 있는데 성도가 뭘 해도 사는 쪽이고, 불신자 인생은 뭘 해도 죽는 쪽이에요. 불신자는 살려고, 살려고 애를 쓰는 그것이 자기를 더욱더 죽게 만들고, 성도는 죽으려고, 죽으려고 하는 그것이 더욱더 생명에 가까이 가게 만들지요. 그래서 어떤 분에게 제가 문자를 보냈습니다만

‘예배 참석을 언제까지 하면 됩니까?’ 예배 참석 마지막 참석이라 여기고, 이건 예배 참석뿐만 아니고 여러분 하는 일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마지막이라 하는 것은, 주의 일이 주님의 생각이 덮칠 때 드디어 가는구나, 하는 그 기쁨으로 하게 되는 주께서 마지막 떠났다는 사실을 품고 하루하루를 사시면 그게 바로 주의 일이 되는 거예요. 몇 년 참석하고 몇 번 참석하고 그런 것 기억하지 말고 항상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그런데 이것이 마음의 결심으로 되는가? 그런 결심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주께서는 자동적으로 결심이 아니고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자다보면 벌써 우리가 의식이 없어지잖아요. 그러면 이미 죽은 거예요. 죽었는데 아침 되면, ‘아아 잘 잤다. 여기가 어디지? 집이구나’ 그러면 또 새로운 날을 목숨을 허락하심을 밤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목숨 주고 천사가 떠났어요. 또 하루치 살라고.

그럼 우리는 오늘도 어디 가서 무슨 죄를 발견할꼬? 그런 즐거움을 가지고 주께서 부르시면 후딱 가면 되니까.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쓸데없이 남과 콩나물 갖고 싸우지 말고, 옆집과 말다툼하지 말고. 마지막인데 뭐. ‘너야 지옥이나 가라.’ 세상 정치, 경제, 문화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냥 하루치 하시면 됩니다. 내일 염려는 주께 맡기고요. 오늘 그 나라와 그 의를 바라보시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다윗의 변화가 우리한데도 일어나게 하옵소서. 자기가 자기와 결별되고 분리되게 하신 것에 감사하는 다윗, 저희들 십자가를 통해서 주께서 우리를 받지 않고 주의 피가 묻은 새로운 사람만 받는다는 사실이, 이것이 종교가 아니라 엄연한 분명한 사실 그대로인 것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8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9,967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0장 9절 (인간은 비유다) 231205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3-12-19
19,966 자유게시판 82강-예레미야 15장 1~7절(최종 믿음)231217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3-12-17
19,965 자유게시판 17강-디도서 3장 12-15절(사랑의 방식)231217-이 근호 목사 디도서 최고관리자 23-12-17
19,964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세 개의 십자가 / 231217 - 최고관리자 23-12-17
19,963 묻고답하기 갇힌 자 빌레몬서 최고관리자 23-12-17
19,962 자유게시판 22강-스가랴 8장 14-17절(초인간) 231213 - 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3-12-15
19,961 강의 외지인 사도행전 7:38 231213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23-12-14
19,960 자유게시판 수요설교요약(20231213) 스가랴 8:14-17(초인간) 스가랴 최고관리자 23-12-14
19,959 자유게시판 20231211b 부산강의 : [시편]64(48:11)-틈 속의 시온 시편 최고관리자 23-12-13
19,958 자유게시판 20231211a 부산강의 : [시편]64(48:11)-틈 속의 시온 시편 최고관리자 23-12-13
19,957 자유게시판 81강-예레미야 14장 13~18절(참된 선지자)231210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3-12-10
19,956 자유게시판 16강-디도서 3장 10-11절(이단을 밝히는 절차)231210-이 근호 목사 디도서 최고관리자 23-12-10
19,955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살과 피 / 231210 - 최고관리자 23-12-10
19,954 묻고답하기 사랑하는 자들아 - 최고관리자 23-12-10
19,953 자유게시판 12월 부산 성경공부 안내 시편 최고관리자 23-12-09
19,952 자유게시판 21강-스가랴 8장 9-13절(돌출된 복) 231206 - 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3-12-08
19,951 자유게시판 수련회 교안 추가 - 최고관리자 23-12-08
19,950 자유게시판 455강-YouTube강의(잠의 신기함 고린도전서 15:20)20231205-이 근호 목사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23-12-06
19,949 자유게시판 454강-YouTube강의(불쌍히 여김 로마서 11:32)20231205-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23-12-06
19,948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0장 4절 (뒤집는 권세) 231121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3-12-05
19,947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20장 4절 (뒤집는 권세) 231121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3-12-05
19,946 자유게시판 수련회 재광고 - 최고관리자 23-12-05
열람 ➜ 자유게시판 20231201b 울산강의-역대기상(26강) 28장 6절 : 성전의 불연속성 - 최고관리자 23-12-04
19,944 자유게시판 20231201a 울산강의-역대기상(26강) 28장 6절 : 성전의 불연속성 역대상 최고관리자 23-12-04
19,943 자유게시판 80강-예레미야 14장 10~12절(창세전에 합류)231203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3-12-03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