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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19장 46절 (또 다른 안목) 231107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19장 46절 (또 다른 안목) 231107b-이근호 목사

그 놀이동산에 워터파크 있듯이 휩쓸리는 겁니다. 예수님 한 분이 들어갔어요. 예수님 한 분이 들어가셨는데 누가 들어가라고 했습니까? 안 그러면 자진해서 저주 받았습니까? 자진해서 저주 받았지요. 예수님의 단독결정이죠. 그럼 예수님이 하시는 심판을 말릴 위인이 있어요? 없어요? 없지요. 얼마나 신납니까. 주께서 받으신 그 저주가 심판받는 인간이 있죠. 인간. 그런데 심판 받고 나오면서 뭐가 되느냐 하면은 심판주가 되어버린 거에요. 심판주가 되어버리면 뭐가 성취가 되느냐 하면은 그 누구도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는 것이 성취가 되어버린 거에요.

그럴 때 창세기 3장 23절에 생명나무에서 인간을 추방하는 이유가 생명나무 때문에 그런 거에요. 선악과를 아는 자는 절대로 생명나무를 먹을 수 없다는 생명나무 취지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생명나무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을 저주해버리는 겁니다. 인간은 안 따먹으면 될 걸 가지고 괜히 따먹어가지고 생명나무와 선악과의 차이성, 그 차이성을 확실히 하는데 말려들어가지고 확실하게 저주를 받지요. 피조물이 알 필요없는 걸 가지고. 마귀는 진작 알아가지고 진작 짤리고요.

악마가 왜 생명나무 따먹으라는 말을 왜 안했을까요? 그것은 본인이 해당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알기 때문에 그래요. 왜냐하면 악마는 하늘나라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 이미 본인은 알아요. 이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예수가 우리를 멸하러 오셨지요.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짤린 거에요. 자기 짤리면서 하나님 복수한다는 식으로 하나님이 만든 인간을 인간 방패로 해가지고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식으로 같이 망하자 해가지고 인간을 자기 부하로 삼았지요. 왜냐하면 인간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든 인간을 하나님이 설마 폭격을 할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진짜 인간 따로 있다 해가지고 진짜 하나님의 형상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모든 인간을 주께서는 아낌없이 심판해버리지요. 그러니까 하마스 가자지구에 하마스에 인질로 잡혔잖아요. 그 인질이 자발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이야기해요. 우리 잡힌 거 신경쓰지마 우린 이미 죽었으니까 마음껏 폭격하라 이렇게 이야기해요. 우리 살려주세요 하면 안돼요. 인간은 살려달라 할 자격도 없어요. 모든 인간은 없이 하소서 했으니까. 주님께서 감추어놨기 때문에 어떤 인간도 주님에 대해서 아는 바 없어요. 제자들도 스승으로 알았지 심판주로 알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절대로 주님에게 그런 일이 생기면 안됩니다 하고 자기 의견을 성격상 거침없이 이야기했지요.

자, 성전에는 뭐가 있나? 지성소가 있다. 지성소는 어떤 공간이다? 어떤 인간도 들어오면 죽는다. 죽는다. 이 휘장 찢어지면 큰일 나는 거에요. 바깥으로 쏟아지면 큰일 나는 거에요. 그러면 왜 주님 죽으셨을 때 휘장이 찢어졌는가? 그게 바로 뭐냐 하면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46절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다시 말해서 성전은 누구 집이다? 내 집이다. 내 집. 거기 아버지가 계시지요.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가 계신 거에요.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신 거에요. 왜? 자기 집이니까. 자기만의 집이니까.

자기만의 집인데 청소가 필요했던 거에요. 왜냐하면 그 당시 인간들은 뭐냐? 천국의 돌파, 출입구로서 유일하게 믿은 것은 뭐냐? 성전에서 제사 기능이 계속 되게 되면 우리는 아무리 죄를 지어도 용서받고 구원받는다. 이게 열왕기상에 나옵니다. 성전 있으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게 되면 모든 죄를 사하겠다 하나님이 약속한 바가 있기 때문에 성전을 믿는 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느냐 하면은 우리는 여전히 아브라함 자손이며 이 세상에 많은 민족이 있어도 우리만이 유일한 택한 민족이라는 의식에 하자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추호도 하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철저하게 성전을 성전답게 율법대로 지킬려고 애를 썼습니다.

단 지성소에는 못 들어가고. 왜? 들어가면 안 되니까. 그런데 주님 자신이 지성소가 된다는 사실을 생각도 못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언젠가 진리가 올 때까지 유보한 거에요. 언젠가 메시아 오게 되면 메시아 기름부은 자 오게 되면 그때는 평화가 온다. 그렇게 생각했던 겁니다. 어떻게 오는데? 성전을 완성할 것이다 또는 성전을 정결케 할 것이다 생각한 거에요. 히브리서 10장을 보겠는데요. 10장 20절 보기 전에 17절 18절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라고 분명히 되어있어요.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심으로 단번에 거룩함을 얻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잖아요. 그러고 난 뒤에 19절 2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님의 육체라고 되어있지요. 그러면 이 말은 뭐냐 하면은 예수님께서 찢어놓은 휘장 그 자체가 주님께서 내가 찢어놓았다. 자 들어와 들어와 이게 아니고 육신 예수님 자체가 우리 안에 들어와버린 셈이에요.

그건 아까 제가 처음 강의 때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가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여기에 도달한다고요. 새벽특송 이야기했지요. 도달하는 거에요. 스스로 말씀을 이루는 그것이 우리에게 도달되는 거에요. 그 도달되는 것을 히브리서 10장 16절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한다”는 거에요. 친히. 주님이 친히 어디까지 들어온다? 우리 마음속까지 들어오는 거에요. 우리 마음속까지. 그분은 스승도 아니요 그분은 심판주요 그리고 그분은 화목제물 구원자가 되심을 어디서? 우리가 가는 게 아니고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거에요. 이것만 생각하면 어렵지 않아요. 쉽습니다.

우리가 여기 있을 때에 우리가 혼자 있는 게 아니고 여기 대자연과 함께 있다고 했지요. 대자연. 아까 동영상할 때 로마서 12장할 때 했습니다. 주변의 환경은 뭐로 되어있어요? 시간 플러스 공간이죠. 시간+공간. 인간은 이렇게 되어있어요. 여기서 뭐가 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의 있음이 확인되는 거에요. 그러면 건물로 된 성전이 있다는 것이 성전 있음으로 이해했거든요. 왜 사람들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성전이 있고 지성소 있고 성전 있는 것을 있다고 봤느냐? 성전이 거기 공간에 점령하고 있고 시간 따라서 유지함을 보고 있다는 거에요. 아니요. 좀 더 깊이 들어가요. 있다고 보이는 것은 그걸 보고 있는 내가 같은 시공간 안에 같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내가 있기 때문에.

그러면 내가 없애는 방법은 뭐냐? 성령이 우리한테 와버리면 성령은 십자가 이후에 성령 오게 되어있어요. 그러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죽은 존재죠. 죽은 자잖아요. 아까 질문 다시 해봅시다. 왜 예수님은 무덤에서 나왔습니까? 예수님을 무덤에 누가 보냈어요? 인간들이 보냈지요. 그러면 예수님의 무덤은 뭐냐? 인간들의 모든 의견이 거기 집대성된 거에요. 인간세계가 무덤이에요. 인간세계가. 마귀의 세계고 무덤이에요. 우리는 자신만만했습니다. 어떤 인간도 못 벗어난다. 그런데 예수님 마귀 권세 이기고 무덤에서 나와버렸어요. 나온 입장에서 누가 죽었습니까? 죽었다가 살아난 입장에서 볼 때 살아난 예수님 입장에서 볼 때 누가 죽은 자가 돼요? 이 세상 모든 인간이 죽은 자가 되지요. 있어도 없는 존재가 되는 거에요.

있어도 없는 존재가 자기가 있다고 우기니까 뭐가 보이느냐 하면은 우리 앞에 성전 있잖아 가 되는 겁니다. 성전 있잖아. 성전이 존재하잖아. 마치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성전 존재하잖아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러면 그들은 이게 성전이 모형인줄 몰라요. 성전이 모형이면 누가 모형이겠어요? 내가 모형인거에요. 내가 환상인거에요. 내가. 누군가 만들어낸 환상이에요. 누군가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 낸 인형 같은 존재, 러시아 인형 같은 존재가 나라는 사실을 누가 나 스스로 그걸 인정하겠습니까. 아무도 인정 못하지요.

본인을 실체로 보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답변을 못하는 거에요. 사람이 왜 죽었다가 부활되지요? 제자들 답변은 “아이 그럴 일 없습니다.” 이게 답변입니까? 답변은 뭡니까? “주님 제가 죽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답변하면 얼마나 쉬워요. 이 쉬운 답을 시험 나오면 아무도 못 맞춰요. 아무도 못 알아맞춰. 주님이 “내가 왜 죽었다가 부활하지?” “제가, 우리들이 죽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이 답변을 못하느냐 말이죠. “그러면 네가 죽어있는걸 모르고 네가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단 말이지?” “예 저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살았다고 생각하니까 너 할 거 뭐냐?” 뭐를 믿으면 구원 받겠느냐 구원받겠다는 그 탐욕과 욕망이 생기는 거에요. 왜? 지금 멀쩡하게 살아있으니까. 억지로 죽일 수 없지 않습니까. 살아있는 것. 어떻게든 더 살아봐야지요. 요양병원가고 그 다음에 천국에 도달해야 될 거 아닙니까.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노래 불러주고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좀 알아야 돼요. 인간의 시공간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철저하게 우리가 여기에 대자연에 농락당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노래에 이런 것이 있어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10월달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에 나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베드로후서 3장과 위배됩니다. 베드로후서 3장은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되 그런 유사한 문장 나오잖아요. 그거 아니에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그 다음에 나에게 뭘 준다고요? 나에게 꿈을 준다는 거에요. 왜? 살아있는 내가 내년에는 잘 될 거야. 희망과 꿈을 제공하지요. 왜? 살아있으니까. 내가 어딜 봐서 거울 보세요 내가 살아있지 죽어있습니까? 내가 죽어있다는 것을 확인할 길이 없어요.

그리고 내가 실제로 있지 내가 여기 허상으로 있다는 그 생각은 추호도 못합니다. 이게 뭐냐 하면은 복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에요. 그걸 주장하면서 바깥에 있다고 하면 안돼요. 성도는 오히려 예수님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미 성전 안에 있지요. 성전에 들어왔지요. 그러면 심판 욕조에 와서 저주를 이제는 끝까지 밀어붙이는 그 안목과 동일한 안목으로 누구를 본다? 나 자신을 보고 타인을 볼 수 있는 안목이 발생된 거에요. 전에는 내 쪽에서 천국 바라보다가 이미 천국 안에 있으면서 십자가 안에 있으면서 그때 나를 다시 보는 거에요. 몸부림치는 나를 다시 보게 되면 우리는 진짜 계시의 말씀대로 에서도 알고 야곱도 알고 둘 다를 아는 거에요. 야곱도 알고 이스라엘도 알고 둘 다를 알고 있는 거에요.

하나님 앞에 살고자하는 하나님과 화목케하는 그 시도가 이게 다 쓰잘데기 없다는 것을 이미 화목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하면서 아 내가 헛짓했구나 발견하는 안목을 갖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성도는 어떻게 사는가?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꾸면서 살게 되지요. 왜? 헛꿈인줄 알기 때문에. 이게 새 사람 됐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고 본격화돼요. 본격화돼요. 왜? 주님은 저주 주시고 지옥도 만드시고 천국을 만드셨기 때문에 지옥이 뭔가를 아는 자에게만 짝을 이루어서 천국도 알기 때문에 그래요.

또는 세상 살다보면 눈물도 많이 흘려요. 남자는 보통 세 번 운다 하지요. 남자는 세 번 울어야 된다. 첫 번째 우는 것은 첫 번째 사기당할 때 울고 두 번째 우는 것은 사기 당한 인간이 또 사기당하면 울고 세 번째 우는 것은 사기 당하고 사기 당하고 또 사기 당하면 세 번 울지요. 나라 잃고 부모 잃고 뭐 그럴 때 우는 게 아니고. 국가를 잃을 때 우는 게 아니고. 그러나 인간은 울어요.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잃을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 웁니다. 나를 잃어버릴 때. 거기에 대한 노래가 있어요. 오늘 두 번째 등장하는 노래. 가사를 한번 볼 테니까 진리 아닙니다.

‘사랑한다 말 한마디 못하지만 그대를 사랑하오 그대 위해 기도하진 못하지만 그대를 사랑하오’ 벌써 가사가 이상하지요.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하면 되는데 사랑한다 말 한마디 못하지만 그대를 사랑하오. 사랑하면 기도하면 되는데 기도는 안 해요. 그대 위해 기도하진 못하지만 그대를 사랑하오. 그 이유가 뭐냐? 그 다음에 나와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그대를 사랑하오. 안 돌아오는데 왜 사랑하지요? 그대를 사랑했던 그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럼 이 사람 그냥 사랑하면 되지 왜 우느냐. 그 다음 구절에 나와요. ‘사랑이란 얼마나 참아야 하는지’

자, 이 대중가요 없었으면 복음 이야기 못할 뻔했다. 자, 여러분 묻습니다. 복음이란 1번 참는 것이다. 2번 주님의 희생이다. 몇 번입니까? 이거는 다 압니다. 내가 참으면 구원받습니까? 참으면 구원받습니까? 주님의 희생으로 구원받습니까? 주님의 희생이죠. 내가 참는 것은 자기에 대한 집착이고 오기에요. 끝까지 자기 포기 못하는 겁니다. 참다 참다 못 참으면 나중에 자살하잖아요. 자살이라는 극단까지 안 나가더라도 비슷한 게 있어요.

뭐냐 하면은 ‘나의 사랑 그대여 내 마음 아나요 가슴속을 파고드는 그리움이 눈물 되어 흘러도’ 여기 눈물 나오네요. 가슴속에 파고드는 그리움이. I MISSING YOU. 가슴속에 파고드는 그리움이 나한테는 뭐로 응어리져서 나온다? 아침에 겨울에 찬 수증기가 아침 되면 뭘로 맺히지요? 이슬 맺히지요. 우리 마음에 이슬은 내 마음에 그리움이었답니다. 그리움. 밤새 그리움이 어느새 안경 썼으면 안경 너머로 물이 쭉 나오지요. 번져 나와요 눈물이 저절로. ‘가슴속을 파고드는 그리움이 눈물 되어 흘러도 내 모습 그대에게 잊혀져도 그대를 사랑하오.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대를 사랑하오’ 유심초 노래, 가사에 이런 복음이 담겨 있답니다.

자, 그러면 묻습니다 여러분 누구를 그리워합니까? 다른 말로 여러분 누구를 사랑합니까? 나 자신이죠. 내 뜻대로 안되니까 눈물을 보이는 거에요. 내 뜻대로 안되니까. 자식이 내 말대로 안 되니까 우는 거에요. 아파서. 하마스 난민들 슬퍼서 운다? 안 울어요. 그러나 내 자식이 아프면 울어요. 왜 그렇습니까? 그들하고 내가 별 관계가 없기 때문에. 나는 나를 놓지를 못하고 깨부수지도 못하고 나를 견고히 해야 돼요. 나를 사투를 벌리면서 나를 지키는 것이 나의 임무도 책무라고 여기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이걸 보고 우리는 이런 나를 보고 그렇게 기뻐하는 것은 어떤 경우냐 하면은 이미 성령을 받은 자만 기뻐하죠. 저게 나였어. 저 고집스러운 나였어. 내가 나를 사랑해서 내가 나를 잊지 못해서 기도한다고 교회 찾았는데 주께서는 그 기도 집을 내 집이야 하고 청소를 해버리는 거에요.

자, 추방입니까? 영접입니까? 나를 추방해주신 분에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한테 떼어질 수 없는 것. 나는 나의 지독한 내 사랑을 내 힘으로 못 떼는데 이미 떼시고 주께서 그것을 지적하지요. 내가 와서 떼어냈다고. 대장 내시경을 했는데 나중에 검사 나왔어요. 검사하신 의사 선생님이 우리 부부한테 상당히 복음적인 이야기를 했어요. 본인은 그걸 못 느꼈겠지만 용종이 씨 뿌리듯이 있다는 거에요. 씨 뿌리듯이. 갑자기 마태복음 13장 씨 뿌리는 비유. 7개를 뗐다는데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닙니다. 그냥 용종입니다. 조선시대 같으면 그냥 넘어갈 일인데 문제가 이 저주 받은 세상이 되가지고 문제거리도 아닌데 이게 용종을 뗐다고 왜 대장까지 들여다보냐 이 말이죠.

그래서 대장내시경 한다니까 우리 교회 믿음 좋은 어떤 집사님이 아내 보고 한 소리를 했어요. 아니 성도라면 그런 검사를 왜 합니까?! 감사하면 되지. 죽어도 감사하면 되지 왜 합니까. 제 아내가 화가 나가지고 그때 무슨 말을 할지 몰랐대요. 나보고 이야기하지. 내가 현장에 있었으면 죽을라고 했습니다!! 됐습니까!! 뭘 하라 하지말라가 성립이 안돼요. 하라 하지마라가 성립이. 그러다 죽겠지 뭐. 그러다 죽겠지. 나 담배 피우다가 담배 끊었습니다. 잘했지요? 뭘 잘했어요. 담배 끊다 죽겠지요. 술 끊었습니다. 술 끊고 죽겠지요. 뭘 끊었다고 해서 전혀 상관없어요. 오히려 질문 대상이 되지요. 왜 끊었냐? 담배 피우는 거 왜 끊었어? 끊을 이유가 없어. 뭐지 이거. 정답은 주께서 끊게 하셨습니다. 너는? 죽어도 안 끊을려고 했는데.

이게 바로 아까 한 분이 욕조에 들어가신 분은 단 한 분이라서 어떤 누구도 그 분이 하신 일을 말릴 수가 없다는 것. 내가 뭘 하고 안 하고가 그 분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7장 4절 한번 보겠습니다. 오늘 여러분 참 좋은 거 배웠어요. 너 왜 그런 짓하느냐? 죽을라고 했다 왜! 7장 4절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그 다음에 무슨 말? 거짓말을 믿지 말라. 이게 왜 거짓말입니까? 여호와의 전이 있는데 왜 거짓말입니까? 그러니까 예수님이 자기를 모독한다는 거에요. 살아있으면서 열심 내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일거에 모독한 죄로 예수님은 죽으신 거에요. 그런데 그 죽음이 살아있는 거에요.

자, 이제부터 진짜 어려운 게 남아있어서 제가 뜸들이고 있는 중입니다. 어려운거 남았기 때문에 한번 정리하고 들어갑시다.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한 것은 모든 인간의 인간관계는 허망한 것이다. 인간관계. 아까 너희들 아이들이 땅에 내리친다 했거든요. 완전히 땅에 꼴아박는다 했지요. 자, 그럼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입니다. 인간의 관계망이 포위된 적군 앞에서는 어떠한 자애나 자비도 없지요. 그런데 누가 이렇게 했습니까. 우리 주님이 그렇게 했지요. 어떤 주님? 친히 성전에 들어가신 주님이 그렇게 한 거에요. 청소하는 이유는 이게 아버지하고 나하고 해결할 문제가 있기 때문에.

너희들 방식은 성전에서 제사하는 방식이라면 그거는 모형에 불과한 거에요. 문제는 그들이 드린 양이나 염소가 더 이상 재물이, 치워라 안 받습니다. 주께서 받지를 않아요. 그들 제사장 안 받습니다. 그럼 제사장 있다? 없다? 없다. 제물 있다 없다? 없어요. 그들은 성전은 성전이 아니고 다 멸망해야 될 것밖에 없지요. 없다의 3종 세트. 없어요. 그럼 구원, 그들 방식대로 생각한 천국 가는 방식은 있다 없다? 없지요. 그럼 막혀있는 거에요. 주님에 의해서 막혀 있다는 말은 막힐만해서 막혔다는 거에요. 막히기만 했습니까?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주어지는데요.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그 막힌 것을 성령을 통해서 직접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언약이 우리 안에 들어와버려요.

우리 안에 들어와버리면 뭐가 되어버리느냐 하면은 무덤 속에 죽었다로 우리 안에 들어있고 죽음에서 부활한 것도 성공, 구원 성공이죠. 성공도 우리 안에 들어와버린 거에요. 들어와버리니까 우리 안에 성도는 뭐냐? 무엇이 실패였고 무엇이 성공인가를 예수님 안목에서 같이 공감하는 그것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와 우리가 평화, 화목이 되는 겁니다. 이게 평화의 조건이고 평화의 계약이에요. 여러분 여기까지 아시겠지요? 그래서 다시 한번 적어보면 인위적 관계는 전부 다 뭐냐 하면은 오류다. 인간적인 관계는 오류에요. 그러면 이 오류가 어디서 생기느냐. 내가 있다, 내가 여기 있다 하니까 성전이 거기 있네. 그럼 내가 있는데 성전은 율법대로 성전 있으니까 그 성전을 존중해주면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아 내가 나중에 천국에도 있겠네 이렇게 되는 거에요. 이게 바로 종교잖아요 종교. 종교지요.

현재 내가 있는 이것을 교회를 통해서 천국 간다. 내가 여기 있듯이 천국 가도 나 있을 것이다. 이거 장례식장에서 목사들이 얼마나 많이 이야기했던 거에요. 지금은 여러분들이 힘들지만 나중에 맨션아파트가 준비되어있다. 그런 이야기들 많이 했잖아요.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찬송 부르면서 있단 말이죠. 진짜 그 찬송 부르면 눈물 나요. 내가 그리워지니까. 1절만 들어봅시다. 이 노래 듣고 눈물 안 흘리면 진짜 비정한 사람이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훈계로써 인도하며 도와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 때까지 계심 바라네’ 2절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간 데마다 보호하며 양식 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 때까지 계심 바라네’

자, 이래도 죄 지을 거에요? 인간은 아무리 복음 알아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 왜 아프냐? 그 사람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 전체가 나였기 때문에 내가 찢어지는 거에요. 내가 모르는 사람이면 이렇게 눈물이 안 나요. 그 사람이 있어야 내가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강제로 찢어지는 거에요. 이것을 그 당시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 죽는다고 우는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만 인간적으로 안됐지요. 그러니까 아이고 잘 죽었다 해서 가표를 던진 거에요. 잘 죽었다. 우신 분은 누구밖에 없느냐 하면은 예수님 본인이 울었지요. 사랑하는 예루살렘이 전혀 못 알아봤으니까. 그런데 제가 2절까지 들은 이유가 사실 있어요. 뭐냐 하면은 1절까지는 약간 덜 슬펐어요. 왜? 여자만 부르기 때문에. 2절 가사에 남자 부를 때는 그 근엄한 남자가 부를 때는 울음이 확 올라오는 거에요. 가락도 얼마나 애절한지요. 그게 바로 어려운 점입니다.

모든 있음이거든요. 있음. 있음을 창세기 3장에 보면 뭐냐 하면은 남성 있음이에요. 남성 있음. 이 세상의 모든 여성도 남성에 복속이 되기 때문에 있다는 것은 남성이 있는 거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갔을 때는 예수님은 남성이 아니고 누구의 아들로 들어가요. 여자의 후손으로 들어가요. 남성은 있음. 남성의 반대는 여성. 여성은 뭐? 없음이 돼요. 없음. 현재 있는 성전은 가짜에요. 가짜인데 주님이 여자의 후손으로서 성전에 들어감으로서 비로소 성전은 이제는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고 그분이 들어갔던 단독이죠. 그분이 죽은데서 부활함으로 말미암아 부활의 세계가 되는 거에요.

그것이 뭐냐? 기존의 모든 인간은 들어갈 자격이 안 되는데 예수님만이 남성 없이 태어난 여자의 후손입니다. 여자가 마리아라는 뜻이 아니에요. 없음의 후손이에요. 이 땅의 혈육과 무관한 분의 등장이에요. 정말 신기한 것은 부활도 신기하지만 남성 없이 태어난 것도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단순히 우리가 신기하다고 끝날 것이 아니고 그것은 왜 그렇게 남성으로 태어나는가? 모든 남성에서 태어난 모든 것을 저주하기 위해서. 부정하기 위해서 태어난거에요. 여성은 남성에게 복속됐다는 것이 마태복음 1장 족보에 나옵니다. 교회 참석한 사람들이 보는 게 마태복음이잖아요. 마태복음 1장 한번 보세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재미 하나도 없어요. 그것도 말도 안돼요. 남자가 남자를 낳았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지요. 남자가 남자를 낳아요. 이거는 생물적인 족보가 아니지요. 다른 족보지요.

그런데 거기서 특이현상이 일어나요. 뭐냐 하면은 여성이 끼어들지 않는데 여성이 끼어드는 대목이 나와요. 그거는 남성족보가 끼어든 여성족보에 메시아적 역할 때문에 족보가 다른 족보로 기차선로가 바뀐 거에요. 지옥의 선로가 천국으로 바뀔 때 여자가 나타나요. 라합으로 말미암아 룻으로 말미암아 나중에 마리아로 말미암아 네 번 들어가요. 들어갈 때마다 방향이 조금씩 조금씩 틀어지는 겁니다. 천국으로. 그러면 천국은 어딘데? 세상 밖에? 아니요. 세상 안에 만든 천국이에요. 세상 안에 천국을 만들었어요. 하늘에 성전 있기 전에 세상 안에 성전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가 곧 성전이에요. 성전은 십자가 있는 곳이 성전이에요.

예수님 본인이 이 세상이고 본인이 제물이고 본인이 지성소입니다. 그래서 뭐냐? 더 어렵게 말해서 예수님 자신이 새로운 시공간, 어떤 공간? 없는 공간. 없는 공간, 이 모든 있음의 세계에서 사실은 환상인데 있음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있음이 망상이기 때문에 없음으로만 여기서 천국을 소개하는 겁니다. 이걸 주님께서 감추었다고 하는 거에요. 숨겨놓았다고 하는 겁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창세전에 있는 하나님의 비밀이 이제는 공개되었다고 이야기하지요. 그 말이 얼마나 어려워요. 비밀은 아는데 공개해놓았다는데 어디? 공개해놨다는데 어디 공개했는데? 공개했다는데 없어요. 따지겠지요. 공개했으면 보여야 되지 않습니까.

주께서 거기에 준비된 멘트가 있습니다. 본다고 하니 소경이다. 네가 지금 본다고 하는 게 네가 소경이다. 네 오류를 생각 안 한다. 모든 관계는 뭐다? 오류다. 아빠 엄마 관계 가족 관계. 부부 관계 다 오류에요. 오은영 박사는 이걸 몰라요. 정신과 의사는. 자꾸 해결할려고 하는데 그건 화목도 아니고 평화도 아니고 치료도 아니에요. 치료는 뭐냐? 내가 있는 게 아니고 내 안에 주님이 있고 나는 없는 채로 주님과 함께 있다는 게 이게 치료된 겁니다. 교회 교인 수 헤아리지 마세요. 없는 귀신 세서 뭐할 건데. 귀신 하나, 귀신 둘. 여기 귀신 12명 왔습니까. 귀신 숫자 헤아리는 게 아닙니다. 두 세 사람이 나와 함께 있으면 그게 교회에요. 복음과 함께 있으면. 돈이 안 되서 문제지. 남성은 다 나가. 남성은 다 나가. 이겁니다.

진짜 말씀이 있는 교회에서는 남성은 나가. 남성은 다 나가라고? 그럼 나도 나가야 되겠네. 아 참 나는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지 그럼 앉아야 되겠네. 남성 여성 둘 다가 있는 거에요.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 그래서 제가 지난 낮설교에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반석 이야기했지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반석 위에 지은 집. 자,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모래가 뭐라고 했습니까? 나의 기억이죠. 그래서 행함으로 구원받고자 하는 것은 행함이 내 기억 때문에 나온 거에요. 전에 여러 번 했지만 이 기억에 대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설명 간단하게 돼요.

과거, 현재, 점점 미래가 되겠지요. 보통 인간은 이렇잖아요. 기억은 뭐냐 하면은 이쪽 과거가 스텝, 계단, 층, 과거1. 이쪽 과거는 이 밑에 과거2. 이 밑에는 과거3가 있는 거에요. 따라서 이게 평소에 말짱할 때는 항상 과거1이 나와요. 자주 만나는 사람은 이제 딱 보면 알아요. 그런데 가끔 온 사람은 과거2,3는 가만 있어보자 이렇게 돼요. 그러면 이쪽에서 과거2가 내가 왔잖아. 아~ 이렇게 되는 거에요. 잠복되어 있는 층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꿈속에는 이건 눈치코치도 없이 과거4, 과거5가 막 튀어나와요. 꿈속에서. 이 꿈에 나타나죠. 나이가 지금 70넘었는데 꿈에 자기 얼굴이 28살이에요. 이게 말이 돼요? 특히 남자들, 군대 갔다 온 남자는 나이 50, 60이 되도 계속 나와. 거기서 벌 받고 있어. 빨리 제대해야 되는데. 꿈속에서 빨리 제대해야 되는데.

압축되어있는데 꿈은 압축이라는 말은 그만큼 강화되어있다. 딴딴해져있다. 뭐 중심으로 딴딴해져있느냐 하면은 나의 자유성, 나의 자유성이 침해받을 때 인간은 가장 독하게 기억되게 마련이에요. 나의 나 됨을 침해받을 때. 공격받을 때 오래 기억돼요. 뭐 쿨하게 한잔하고 잊자.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잊을 수가 없어요. 그게 기억에 많이 박혀있어요. 더 박히면 스트레스 받는 겁니다. 이처럼 인간의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위에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사실 인간의 속에 있는 이런 기억들이 층층으로 있단 말이죠. 이런 기억들이. 그래서 어떤 것은 이것이 의식되죠. 억지로 하면 의식되지요. 프로이트는 이걸 전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의식은 안 되는데 이상하게 충동으로 나오는걸 가지고 프로이트는 이걸 무의식이라고 해요.

그래서 어떤 결론을 내리느냐 하면은 나의 말과 나의 행동은 의식을 빙자한 무의식의 명령이다. 나는 과거가 나를 지시하는 거에요. 그러면 내 과거 때 내가 그런 행동한 것은 내가 결정했습니까? 그 과거 이전에 있었던 과거가 결정하는 거에요? 이전에 있던 그 과거의 이 시점에서 또 과거층이 또 무의식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 전에 과거 또 있겠지요. 결국은 인간은 뭐냐 하면은 나는 항상 붕 떠있는 상태고 처음부터 있었던 환경이라는 삶의 타인의 의해서 영향을 받지요. 그러면 그 타인은 엄마 아빠죠. 엄마 아빠가 나한테 이야기해줄 때에 한번 이야기해봅시다. 의식적으로 했겠습니까? 엄마 아빠의 무의식으로 이야기했겠어요?

방금 이야기했잖아요. 엄마 아빠의 무의식적으로 했겠지요. 그 엄마 아빠의 무의식은 엄마가 유치원 다닐 때 무의식이 엄마한테 작용해서 그 작용이 딸인 나에게 아들인 나에게 작용했다 이 말이죠. 그럼 엄마 아빠의 무의식은 누가 작용했습니까? 할아버지겠지요. 모든 인간은 아담으로부터 한 통 속이죠. 아담은 누구한테 지시받습니까? 마귀지요. 그러니까 인간은 마귀한테 지시받지요. 어떤 행동을 하든.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내 속에 괴물이 나를 통해서 말한다. 라캉이라는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럼 그렇게 이야기했으면 해결점이 있어야 되는데 해결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 다만 이 사실만 알면 정신병에서는 벗어나겠지. 그럼 정신병은 뭐냐? 자신을 모르고 착각을 하는 거에요. 왜 내가 행동하고 내가 결정하는데 왜 세상은 내 뜻대로 안 되는가. 아! 스트레스 받는다. 거기에 대한 치료는 뭐냐? 너는 너가 아니었다. 그게 치료방법이에요.

일단 치료방법은 뭡니까? 하고 싶은 말 다하세요. 이야기 다 하고. 정신과 선생은 그냥 듣기만 하면서 듣기만 하고 그냥 듣기만 하면 돈 값 못한다 싶어서 정신 안정제 줘가지고 보내면서 그렇게 치료시키는 거에요. 쉽게 말해서 당신 못 고치거든 나한테 이야기하지 말고 따지지 말고 느그 아버지한테 이야기해라. 너 친구. 너 아버지한테 따져라. 아버지 왜 그러셨습니까. 나한테 따지지 말고 돌아가신 네 할아버지한테 따져라. 이게 세상에서 말한 정답입니다. 이게 뭐냐? 인간은 아담의 다면체. 아담의 다면체.

아담이 크게 잘못한 것은 자기가 흙인데도 불구하고 있다고 주장한 거에요. 그 성질을 그대로 우리가 받았어요. 마귀에 의해서. 그냥 흙이 되어가는데 그냥 마냥 있다고 여기는 거에요. 나이 들어도 20대 그대로 있다고 하는 거에요. 몸은 거절을 못하는데 온천지 다 아프고 하지요. 나이 들면 눈꺼풀 어떻게 되요? 내려앉지요. 눈이 막 찌르고 난리도 아니지요. 모든 게. 쌍꺼풀 수술해서 올리고 해도 보톡스 해도 보톡스도 나중에 물처럼 녹아내려서 이거는 흉측하게 되지요. 진짜 좀 고치고 싶다. 누구 짓이다? 아담의 짓입니다. 아담의 짓이에요. 이런 것을 한꺼번에 아시는 분이 누구냐? 우리 주님이 아시기 때문에 해결해줄게. 대신 죽고 같이 살자. 이게 주님의 해결책입니다.

주께서 찾아오셔서 누가복음 이 말씀을 가지고 찾아옵니다. 내가 너와 같이 한 팀을 이루어서 너는 죄인 역할, 나는 죄를 용서하는 역할, 너 때문에 죽은 희생물. 참지 말고 희생물로 살아라. 성경에서 참고 기다리라는 말씀도 나와요. 그건 뭐냐 하면은 기뻐하라는 것을 반드시 깔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참으니까 이런 뜻이 아니고 참으라는 말은 뭐냐? 더 기쁜 소식이 속에 있는데 그거 그 시시한 거 못 참을게 뭐가 있느냐. 그것을 그냥 참는다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귀신같은 인간들, 인간관계들 다 오다가다 만난 귀신들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인간관계 부부관계 자식관계 그거 믿지 마세요. 살아있는 것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냥 허상으로 출몰될 뿐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하신 일 단독으로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거들고 끼어들 일이 아닌데 주제넘게 우리가 이거 달라하지 않게 해주시고 이것 주셨습니다 저것 주셨습니다 할 수 있는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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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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