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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19장 46절 (또 다른 안목) 231107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19장 46절 (또 다른 안목) 231107a-이근호 목사

내가 나로 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지금 내가 구원받는 내가 될 수가 없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은 막혔기 때문에. 막혀있어요. 뭐가? 천국 가는 길이 막혀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막느냐 하면은 이런 식으로 막아요. 간단해요.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느니라. 너무 간단하죠. “누구 만나러 왔어요?” “하나님.” “나 보고 살 자 없다. 저리가. 저리가.”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어떻게 된다? 누가 선이고 악이고 할 때 일단 나를 선으로 봐요.

그럼 악 보고 “너 내게서 나가” 이렇게 되지요. 그런데 악은 그냥 안 나가요. 왜냐하면 선악이 붙어있기 때문에. 선악이 붙어있기 때문에 선만 있는 경우는 그게 선악과 아니에요. 반드시 선이 있는 곳에 악이 같이 동반해서 있을 때가 선악 구조가 유지가 되는 겁니다. 인간이 따먹은 것이 바로 그걸 따먹은 거에요. 인간은 따먹지 말아야 했어요. 선과 악이 대립개념이거든요. 비슷한 거 같으면 대충 넘어가면 되는데 선악은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고 대조하는 관계에요. 그래서 정체를 분명히 밝혀라.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묻지요. 하나님 저 선해요? 아니면 악해요? 회색 그런 거 없어요. 선하면 선하다 하고 악하면 악하다 분명히 이야기해달라.

그러나 선한 인간은 없고 악한 인간, 인간이 생각하는 악한 인간도 없어요. 왜냐 하면은 깡패들도 양심 있다고 하거든요. 검사가 너는 사람을 장난삼아 죽였기 때문에 사형이다 이렇게 하니까 교도소 있으면서 하는 말이 유족에게 사과하며 남은 생애 선처를 부탁합니다 찔찔찔 울고 있잖아요. 정유정. 나쁜 개만 없는 게 아니고 나쁜 인간도 없다고 인간들은 그렇게 알고 있어요. 고양이만 착한 게 아니에요. 인간은 아무리 누가 악하다고 해도 자기 자신에게 선한 것을 반드시 쥐고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독한 사람이라도 어떤 점에서 인간은 결국은 착하느냐 하면은 자기가 나쁘다는 것을 아는 그 점이 자기에게 마지막 남은 착함이에요.

그래서 끝까지 자기를 착한 자기를 건지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 마지막까지 쓰다 쓰다 결국 남아 있는 방법은 뭐냐 끝까지 결국 나를 건지는 방법은 자살입니다. 자살이에요. 내가 너 책임져줄게. 자살한 대표적인 사람은 누구지요? 예수님 제자 가운데 가룟 유다죠.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가 왜 자살했느냐 하면은 다른 사람 보기에는 자살할 이유가 안돼요. 그런데 다른 사람이 들으면 너무 착해서 자살했어요. 내가 스승님을 팔아먹다니. 가룟 유다한테는 예수님이 스승이지 주가 아니었어요. 스승이었어요. 가룟 유다는 뭘 몰랐는가? 주님과 스승의 차이를 몰랐습니다. 한수 배울려고 교회 온 거에요. 한수 배울려고. 나 착하기 위해서 주님한테 한수 배울려고 온 거에요. 절에 가서 부처한테 한수 배우듯이.

인간에게는 주님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주님은 확정했어요. 누가 주님이에요? 나보다 더 한 주님은 없어요. 착한 나를 착하다 해주면 같이 좋은 관계 유지할 용의가 있고 나보고 악하다고 한다면 그게 누구라도 내치고 싶은 게 인간입니다. 그게 바로 12제자 가운데서 가장 12제자를 대표하는 제자가 가룟 유다에요. 가룟 유다만 스승과 주님을 분간 못한 게 아니고 가룟 유다 하나 사단 나니까 나머지는 다 흩어졌잖아요. 가룟 유다야 그러면 안돼. 스승님, 가룟 유다는 떠났지만 우리는 지켜드리겠습니다. 이런 거 없어요. 누구 하나 터트리니까 다 도망간 거에요. 12제자 체제 자체가 다 무너진 겁니다. 마치 12지파 이스라엘이 다 무너진 것처럼.

인간은 자기에게서 자기를 쫓아내지를 못합니다. 아무리 악하고 아무리 내가 악독해도 끝까지 어미의 사랑으로 사랑해주는 것은 나한테는 나 자신밖에 없어요. 지켜줄게. 심지어 착한 나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 자살 아니더라도 나는 나를 포기할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나를 볼 자가 없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요 없어요? 여기 보면 없어요. 구약 때부터 없습니다. 나를 보고 살자가 없기 때문에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매개자를 보내지요. 모세가 대표적인데 매개자를 보낼 때 중보자라고 하는데요. 매개자 중보자 헛갈리니까 성경에 있는 용어로 통일하겠습니다. 기름부음 받은 자. 이렇게 보면 돼요.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나타나면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걸 평화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평화. 이 세상에서 평화라는 것은 누가 날 간섭 안하면 평안해요. 왜냐하면 인간은 홀로 있고 싶은 거에요. 인간은 어디에서 홀로 있고 싶으냐 하면은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홀로 있고 싶어 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인간이 제일 평화를 느낄 때가 언제냐 하면은 아름다운 대 자연 속에 자기 홀로 있을 때 그걸 감상하고 있을 때 파노라마처럼 360도 전체 아름다움에 푹 잠겨있을 때 뭐 배 좀 고파도 괜찮아요. 극상의 희열을 느낍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가을철에 한번 나가봐야 되는데. 사람들은 그걸 마음의 평정을 얻는다. 도시의 삶에 찌들렸다. 그러면 대책은 뭡니까? 대책은 제주도 한 달 살기. 요새는 제주도도 안 되지요. 복잡하니까. 지리산 자연에서 한 달 뭐 이런 거. 지리산 가고 제주도 가면 뭐가 있습니까?

거기는 사람이 없어 좋아요. 사람이 없다는 말은 나 혼자라도 아름다워지면 그것이 어릴 때 동화를 보고 살아왔던 내 어릴 때 꿈이 잠시 느껴지는 거에요. 하늘에는 조각 구름 떠있고 바깥에는 붉은 단풍이 쌓일 때 더 먹지 않더라도 배부르고 이걸로 족하다고 느끼지요. 그래 인간은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구나 이렇게 하는데 메시지 딱 뜨는 거에요. 메시지 딱 뜨면서 대출이자 갚으세요. 휴대폰을 왜 들고 갔는가. 휴대폰을. 휴대폰을 왜 들고 갔는가. 아무도 나를 터치하지 않을 때 인간은 평화를 느낍니다. 그 평화는 뭐냐 하면은 상대가 없는 평화. 제발 나 가만 나둬. 제발 건드리지 마. 이 평화. 그것을 불교에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합니다. 하늘과 땅 아래 나만 있을 때 그걸 해탈이라고 보는 거에요.

그러나 성경은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 이 말이죠. 그러면 하늘나라를 가고 싶은데 나를 하늘나라 집어넣어서 하늘나라 백성 만들고 싶은데 하나님은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으니까 들어갈 수가 없지요. 들어갈 수가 없으니까 인간은 뭐냐 하면은 결국 인간은 결국 출구가 막혀있다. 출구가 막혀있는 거에요. 막혀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은 궁극적으로 도달되는 곳이 없다. 야~ 이거 참담한 저주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걸 윤회라고 하지요. 윤회. 불교에서 구원은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걸 해탈이라고 하거든요. 계속 떠도는 거에요. 어느 속에서? 본인 안 속에서. 본인 안에 뭐가 있다고? 선악체계. 내가 선할까? 내가 악할까? 아니야. 착한 일 좀 했잖아. 그럼 선이겠지. 예수 믿고 하니까 선이겠지. 그런데 내 행동은 왜 이렇게 엉망이야. 아! 악하구나. 계속 그 안에서 윤회하고 있는 거에요. 윤회. 떠돌고 있는 거에요. 대책 없습니다. 떠돌고 있으니까.

가끔은 제주도 한 달 살기 편한데 한 달 살면 누가 마트에서 그냥 공짜로 줍니까? 안 주잖아요. 뭐 라면이라도 먹을려면 돈이 있어야할 거 아닙니까. 돈 떨어지면 다시 도시로 와서 돈벌이 해야지요. 한 달 살기 평화 다 깨졌습니다. 다 깨졌어요. 그래서 깨닫는 게 뭐냐 하면은 제주도가 평화가 아니고 지리산이 평화가 아니고 돈이 평화라는 사실을 알게 돼요. 돈. 돈이 평화에요. 초등학교 애들한테 물었어요. 너 장차 커서 뭐될래? 건물주. 딱 답이 나오잖아요. 건물주. 건물주의 특징은 있는 돈 쓰기 거든요. 있는 돈 쓰기. 가만 있어도 사실은 가만 있는 게 아닌데 정신적 노동이 많거든요. 애들은 모르니까. 가만 있어도 건물주는 가만 있어도 세 들어오니까. 세 들어온 거 가지고 백화점가서 양쪽에 선물 들고 돌아다니고 그 모습을 보는 거에요.

오로지 평화라는 것은 누구로부터 간섭받지 않고 나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것, 그게 평화지요. 그래서 요즘 그 평화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직업이 뭐냐? 유투버. 직장 때려치우고 되도 않는 조그만 지식 해가지고 ‘좋아요’ 좀 부탁해요. 그걸 왜 구걸합니까. 구독 눌러주시고. 그걸 왜 구걸해요. 자체적으로 평화, 돈이죠 돈.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 없어요. 자, 그러면 이 사태,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 그러면 아까 성경에 기름부음 받은 자가 평화라면서요. 기름부은 자가 죽거든요. 모세 죽었지요 예레미야 죽었지요. 왕 죽었지요. 제사장 죽었지요. 기름부은 자 다 죽는데요. 없어요. 있던 시절도 있지만 없던 시절이 더 많아요.

그러니까 기름부은 자가 없는 시대가 그 간격이 더욱 더 길어요. 그때 기름부은 자 모세 있으면 좋겠다. 그때 모세 말 왜 안 들었지? 이렇게 하지만 만약에 모세 때 죽은 자가 벌떡 일어나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네가 모세랑 한번 살아볼래? 네가 모세 죽일 거야 아마. 기름부은 자와 동행하기? 차라리 지리산에 가서 너 혼자 살아. 그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모르지? 율법으로 간섭하지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안되게 이끄시는데 그걸 어떻게 감당할려고. 감당 못합니다. 이 시대에 기름부은 자 있으면 좋겠다. 있어요. 누구? 성령. 성령의 기름부음 있잖아요.

그럼 성령이 여러분께 뭐하던가요? 죄와 의에 대해서 맨날 책망하지요. 기도하고 나면 그것도 기도야? 내가 분명히 했지. 너 기도할 줄 모른다고. 응답 같은 소리하고 있네. 기도도 제대로 안 하면서 응답은 어디서 비복음적이야. 맨날 책망하고 있는 거에요. 신약 때는요 살 가치도 없는 자에게 기름부음 있어서 평화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로마서 3장. 로마서 3장 잠시 한번 볼게요. 3장 23절에 보게 되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지요. 모든 인간, 모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의 그 ‘모든’ 이에요. 모든 인간은 율법의 저주 받기 위해서 율법을 줬다. 모든 사람에게. 그 ‘모든’ 입니다. 그 ‘모든 사람’은 죄를 범했으매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만나면 죽는다. 어디를 넘봐! 천국? 천국에 누구 계시잖아요. 하나님 계시잖아요. 죽어요. 못갑니다. 막혀있다니까요. 인간이 궁극적으로 갈 데가 없어요. “죄를 지었으매” 그런데 25절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하나님의 그 화목제물, 하나님의 성령 받아서 믿는다고 했는데 믿는다 의 특징이 뭐냐? 로마서 3장 25절에서 나 믿습니다 라고 확정지을 수 있는 근거는 뭐냐 하면은 나의 의가 아닌 나의 선악체계에 의해서 의가 아닌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닌 율법 외의 의가 나에게 도착했습니다. 도착했습니다. 중요하지요.

내가 천국에 도착했습니다가 아니라 천국이 내게 도착했습니다. 새벽 특송.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뭐가 왔어. 뜯어보니 하나님의 의. 이건 뭐 횡재한 거죠. 평화가 온 거에요. 평화가 온 거에요. 자, 평화란 것은 단독적으로 혼자서 도 닦는 게 평화가 아니고 상대가 있다. 상대가 없으면 평화가 안돼요. 상대가 없으면. 상대가 없으면 하나님의 의가 발현되지 않아요. 반드시 모든 사람, 내가 죄 지었음을 인정하는 것과 짝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의가 사하심의 의가 나오는 거에요. 화목제물에는 반드시 이처럼 상대가 있다는데 그 최초의 상대는 하나님과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기름부은 자의 상대지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화목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확장된 겁니다. 확장된 거에요.

이걸 누가 방해하겠어요. 인간들의 죄란 뭐냐? 죄라고 하는 것은 홀로 살고 싶어 하는 거에요. 왜? 자체 안에 뭐가 들었다? 선악이 들어 있으니까 선악 관리를 자기가 알아서 해서 이 안에서 뭘 원한다? 평화를 원한다. 내가 착하다 악하다 판정해서 그걸로 인하여 나만의 고유한 평화를 원하는 거에요. 이걸 가지고 죄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이걸 죄라고 하는 겁니다. 네가 왜 선과 악 사이에서 선한 쪽으로 하려고 하느냐. 이걸 문제 삼는 거에요. 다시 말해서 악에서 선으로 가는 것이 인간은 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악은 뭐냐 하면은 이 세상, 선은 뭐냐? 천국. 인간의 죄는 뭐냐? 구원받고자 하는 게 죄가 돼요. 구원받고자 하는 것.

카프카, 실존주의 20세기 초에 체코의 문학 단편 소설을 보게 되면 단편이 여러 있어요. 총체적으로 그 사람 사상이 뭐냐 하면은 단독자로서 심판 앞에 설 때 인간은 해답이 없다. 이게 정답이에요. 그 사람이 말하는 부조리한 세상이에요. 단독적으로 인간이 지리산에 단독적으로 혼자 살면 되는데 자기가 연구해보니까 인간은 반드시 그냥 사는 게 아니고 착한 척하면서 산다는 게 그 사람의 결론입니다. 착한 척하면서 사는 것. 문제는 나는 분명히 나한테 착해요. 착한데 과연 내가 착한 것이 다른 분, 다른 분 앞에서도 착한지를 알려면 심판, 판정을 받아봐야 돼요. 그래서 판정 받기 위해서 나보다 더 아는 제목이 비슷한데 내용이 비슷해요. 전부 다. 더 높은 위치에 세상을 보다 넓게 보는 신이죠. 그 앞에 심판을 받고자 그 앞에 내가 왔는데 재판 문이 아무리 기다려도 열리지 않는다는 거에요.

결국 아까 제가 말한 것은 인간은 궁극적으로 내가 누구냐를 확정시키는 그 분에 대해서 어떠한 해답도 받지 못하고 그냥 계속해서 그 재판 문을 두드리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거에요. 그래서 일찍 죽었어요. 폐병 걸려서 죽었는지 일찍 죽었어요. 다른 사람 같으면 대충 살지. 결혼해서 애 키우고. 그게 본인이 안 되는걸 어떡해요. 본인이 안돼요. 우리나라에 비슷한 사람 있죠. 이상. 본인이 그걸 말릴 수가 없다고요. 진리가 무엇이냐? 세상 어떠냐? 항상 감수성이 있는 20대에 그냥 일제에 이름 바꿔서 살면 될 걸 가지고 친일파로 살면 되는데 이게 안 된다는 거에요. 남들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은 이것은 사회, 기성 사회에 문제가 있어서 그래 이렇게 하잖아요.

그러나 이상, 카프카는 그게 아니에요. 그거 다 핑계라는 겁니다. 뭐 나라가 어떻고 조선이 일본의 압제받고 핑계고 근원적인 문제는 내 내부에서 내부 자체가 해답이 없고 해결이 안 된다는 거에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거에요. 질문을. 그 질문 하나하나가 예수님의 자신의 일이에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내가 죽고 난 뒤에 사흘 만에 부활한다. 이게 예수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형식이에요.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인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자들 알 리가 있습니까. 모르지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사탄아 물러가라” 한방 먹이고. 모든 것을 묻는 거에요. 질문해볼테니까 여러분 답변해보세요.

예수님이 왜 무덤 열고 왜 부활합니까? 이게 질문이에요. 우리는 주께서 무덤에서 사흘 만에 살아나는 것 알잖아요. 왜? 왜라고 질문해본 적 있습니까? 주님이 알아서 하시는데 뭐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주님이 하는 일은 우리의 실존과 무관한 일이 하나도 없어요. 여태 그걸 모르고 살았지요.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는 주께 답이 있을 것이다 주께 가까이 가자 라는 이런 사고방식이나 유대인들이 하나님이 계시니까 하늘나라 가보자 하는 사고방식과 차이가 없지요. 똑같아요. 주님의 행동 하나하나가 질문인데 우리는 그 답을 다 회피해버립니다. 모릅니다. 모릅니다. 모르면 가만 있는 게 아니에요. 모르면서 뭔가 시도하고 있어요. 가자 천국으로. 너 알아? 막혔어. 막힌 이유를 아냐 이 말이죠. 네가 천국 가는 길이 막힌 이유를 아느냐?

가룟 유다 자살할 때 가룟 유다는 노골적으로 모른다고 자살했고 다른 제자들은 에이 고기나 잡자 고기 잡으러 가버리고. 이것도 회피 아닙니까. 회피거든요. 행복해서 해피가 아니고 얼굴 돌려버린다고. 회피. 지금도 성경 보면서 전부 다 막연해요. 막연함. 남들처럼 아는 수준만 해도 괜찮지 자꾸 이러고 있다고요. 주께서 무덤에서 나온 이유는 정답 말씀드려요? 심판을 확장시키신 거에요. 심판을 본격화시킨 거에요. 댐이 있잖아요. 댐을 터트려버린 거에요. 저주의 댐을. 하나님께서 참다 참다 저주의 댐을 터트려버린 거에요. 그게 뭐냐? 예수님이 죽음 가운데서 부활해버린 것입니다.

언젠가 그런 강의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The dead is alive. 이게 두 가지의 뜻을 할 수 있어요. 죽었던 그 사람이 지금 살아있다. 이 해석도 하나 가능하고요 두 번째는 뭐냐. 죽음 그 자체가 살아있다. 이 해석도 가능해요. The dead is alive. 죽음 그 자체가 살아있다. 이게 뭐냐 하면은 저주 그 자체가 살아있다. 심판 그 자체가 살아있다. 그러면 이건 인간세계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부터 이미 저주의 대상이라는 뜻이에요. 선악과 따먹고 쫓겨날 때부터 저주의 대상인겁니다. 자, 욕조가 있지요. 욕조의 물이 가득 있습니다. 욕조에 어떤 한분이 들어갑니다. 이 욕조 이것이 심판이고 저주라면 아까 이야기했듯이 누구도 하나님 만나면 뭐된다? 죽는다. 누구도 하나님 만나면 죽는다 라는 사실을 지식이 아니라 실제화시켜서 계시, 현실 자체로 계시화될 필요성을 그러한 결정적 타이밍 시점이 온 거에요. 기름부은 자가 한 거에요. 평화를 위해서.

이게 오늘 누가복음 19장 보겠습니다. 19장 42절에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되어있지요. 42절에도 “숨겼다”고 되어있고 44절에도 “알지 못함이다” 라는 말이 나오지요. 뭐를 숨기고 뭐를 알지 못했습니까? 그들이 갑작스럽게 심판을 받는 그 날에 대해서 예루살렘이 알지 못했고 그 점에서 결국 숨긴 것이 되지요.

왜 그들은 심판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까? 본인을 심판의 대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내가 뭐?! 선악을 알고 있는 이상 나는 뭐하다? 선하다. 선악을 알고 있으니까 선한 거에요. 이거는 선이고 이거는 악한 겁니다. 나쁜 일하면 나쁘고 남 도우면 선합니다. 알고 있다는 자체가 자기를 선한 존재의 확실한 증거로 보기 때문에 심판? 자기하고 상관없다고 보는 거에요. 그리고 자기는 선을 유지하는 한 자기는 평화로울 권한, 권리가 있다고 본 거에요. 일반교회 교인들이 새벽기도회 나가는 이상은 내가 새벽기도까지 나와주는데 주께서 우리 집안 거덜낼 일은 없다. 왜? 새벽기도를 나가니까요. 새벽기도는 착함이잖아요. 어떻게 하나님이 착한 자를 쳐버릴 수 있나 선함에 모순된다고 보는 거에요. 진짜 죽을라고 환장했나.

그들은 아무리 예수라 하지만 따지고 보면 기름부은 자가 필요치 않은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들은 내 착함이 필요하지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아요. 예수님은 날 도와주기만 하면 돼요. 구원하기만 하면 돼. 나한테 필요한 사람은 나 자신이에요. 왜? 내 인생이니까. 누가 내 인생을 책임져요. 이거는 실제로 경험해보면 알잖아요. 누가 인생을 책임져요. 책임 못 집니다. 살쪘다. 누가 빼줘요? 내가 운동해야지. 그걸 고상한 말로 실존주의라고 합니다. 실존이라는 의미는 뭐냐? 살찐 사람은 지가 빼야 된다는 게 실존주의에요. 머리는 누가 대신 깎아준다고? 머리를 남이 깎아준다고 내 머리 깎이는 게 아니에요. 맞죠? 맞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그럼 천국 가기 위해서 선을 쌓는 것은 내가 해야 되지 누가 내 대신 선해서 천국 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거에요. 이게 왜 믿음이 없는가? 선악을 이미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생명나무 체계가 들어올 자리가 없는 거에요. 대신한다는 게 들어올 자리가 없는 거에요. 왜 미쳤다고 대신해 내가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왜 대신해. 나에 대한 모독이라고 보는 거죠. 내 존재에 대한 모독. 이 저주받은 욕조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심판. 주님 한 분만 여기 주님 몸으로 들어가요. 말로 들어가는 게 아니고 몸으로 직접 들어가요.

쉬운 질문인데 한번 답변해보세요. 오늘 날씨 춥지요? 추운걸 어떻게 알았지요? 누가 가르쳐 주던가요? 오늘 날씨 춥다고 누가 가르쳐 주던가요? 일기예보가? 아니에요. 일기예보 안보면 안 춥습니까? 내 몸이 나에게 알려주는 거에요. 으으 춥다. 인간은 자기의 자아가 아무리 투철하더라도 인간은 자기 몸을 못 이깁니다. 그리고 인간의 몸의 생리와 충동을 아무리 도 닦고 공부 많이 하고 지식적으로 훌륭해도 자기 몸의 충동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지식을 보는 게 아니에요. 그 몸에 있는 그 괴물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의 충동대로 나온 거죠.

요한복음 19장 15절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논리적으로 따졌어요. 나는 재판자 입장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소리를 안했어요. 다만 빌라도가 이야기한 것은 죄 없다는 이야기를 한 게 아니고 사형시킬만한 죄는 없다. 사형시킬만한. 어느 정도로? 채찍 30대 치고 그냥 돌려보낼 생각이었어요. 국가문란소란죄로. 어떤 경우라도 사형까지는 이건 할 수 없다는 거에요. 왜냐하면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 법률을 익힌 사람이에요.

인간의 법이라 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의 집대성입니다. 인간의 지혜가 모인 거에요.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어떻게 질서를 잡느냐 최고의 지혜들은 바로 법률가에요. 공부 제일 잘해요. 서울대 법대출신들. 요모조모 따져서 오류를 최소한 줄이는 쪽으로 법을 정한 겁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법을 정한 거에요. 징역 1년 살 것을 사형시키면 이건 어떤 의미냐 하면은 사적인 복수가 들어가는 거에요. 사적인 복수. 자경단입니까? 자경단 아니거든요. 그런데 인간 내부에 자경단이 있었던 거에요. 이론은 그런데 네가 나를 건드리면 죽여버린다. 자동차 전용도로 달리다가 갑자기 차 세워놓고 언제 준비했는지 야구방망이 들고 왜 그렇습니까? 야구방망이로 뭘 할려고 하는 거에요? 왜 빵빵거렸어!

자, 빵빵거린 것이 사형에 해당됩니까? 그 빵빵거림을 듣는 사람한테는 사형에 해당돼요. 왜? 이유? 없어요. 충동이에요. 내 몸이 그렇게 반응하는 거에요. 내 몸이. 내 몸이 그렇게 반응하는 거에요. 애를 키울 때 “어머님 아버님 잘 주무셨습니까? 저를 위해서 희생적으로 아침밥을 준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렇게 인사하면 안돼요? “밥줘!” 이게 뭐에요. 맡겨놨어? “밥줘!” 여러분 다 그렇게 컸지요? 부모한테 밥 달라는 권한이 본인한테 어디 있습니까. 어릴 때부터 충동이 감추지 못하고 그냥 충동이 충동적으로 나오지요. 교육을 통해서 좀 눌르는 거에요. 남도 생각해야지 너만 생각하면 되나. 그 충동이 못되는 사람이 술 먹고 와가지고 행패부리고 하는 거에요.

제가 어떤 설교를 준비하면서 예화를 준비했는데 그 예화를 써먹지를 못했는데 이겁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받는 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제가 준비한 예화는 이렇습니다. 과장이 회사에서 신경질 나는 일이 있어가지고 술 잔뜩 먹고 들어와서 아내가 집에서 앞치마 두르고 열심히 반찬을 쫙 준비해놓으니까 술 먹고 와가지고 하는 말이 식탁 왼쪽에서 오른쪽부터 치워라! 밥하고 밥그릇하고 우르르 다 떨어지죠. 인간이 주는 것 하나님께서 어떻게 합니까?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치워라! 확 밀어버리죠. 충동. 말, 율법이 어떻고 신앙이 어떻고 싹 치워버려라. 네 몸이 가는대로 나한테 행동해. 네 몸 가는대로.

왜 사람들은 말도 안 되게 비약적으로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인이 아니에요. 정확한 제삼자의 눈으로 볼 때에 질서문란죄 해가지고 여러 가지 피해 입은 거 해서 그냥 채찍으로 30대 맞고 끝낼 문제인데 굳이 사형을 하라니까 이게 납득이 안 되는 거에요. 또 친절하게 묻지요. 왜? 왜? 굳이 죽이려고 하는가 물어요.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그런데 그쪽 답변이 뭡니까? 강조, 반복을 해요. 심지어 협박도 합니다. 당신 우리 말 대로 안하면 당신 로마에 꼰질러버린다. 찔러서 당신 자리 그만 두게 할 거야. 민란이 일어나가지고. 본문 뭐라고 되어있지요? 두 번 반복했지요. “없이 하소서 없이하소서”

왜 그렇게 행동했습니까? 예수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을 모욕을 했다. 모독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모독했다 본거에요. 자기들의 천국 방식에 대해서 모독했다고 보는 겁니다. 자, 그러면 유대인들의 천국 방식은 뭐냐? 그 당시 유대인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천국 간다고 자신만만했을까요? 힌트는 사두개인에 있습니다. 뭐만 있으면? 성전의 존재지요. 성전의 존재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특별히 허락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성전이라고 본 겁니다.

그래서 비록 그들은 자기 성깔대로 살지만 자기가 부족한 게 많지만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도 자신들이 안 놓쳤다고 자신하는 것이 있어요. 내가 이런 죄만큼은 안 저질렀다고 자신만만한 게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나님이 성전을 주셨다는 하나님의 행함에 대해서는 우리가 확실히 믿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에요. 이런 믿음마저 하나님께서 부정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의 하실 일은 정해졌지요. 어디로 들어가면 돼요?

자, 인간은 천국에 막혀있다는 것을 주님 몸으로 확인하는 방법은 뭡니까? 주님 성전에 와서 깽판 놓으면 되죠. 그게 바로 그 뒤에 본문 아닙니까. 너희들 어떤 경우라도 너희들의 방식으로 하나님이 화해, 평화를 주지 않는다. 내가 장담할게. 너희들 다 포위당해서 다 죽는데 여기 자식들까지. 자식은 정말 인간들이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게 자식이잖아요. “자식들이 땅에 메어치고 돌 하나도 돌 하나위에 남기지 아니하고”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나 있지 이거는 12개의 돌도 없게 만들어버려. 어떤 것도 다시 살 희망을 제로로 만드는 그날이 올 것이다.

그런데 그 날이 어떤 날과 관련되어 있느냐 하면은 42절에 보면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으면 좋았을 뻔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숨겨놓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의 화해하는 평화를 완성하는 그 방식에 대해서는 하나님 쪽에서 예수님 쪽에서 이미 숨기고 있다는 거에요. 숨기고 있다는 말은 지금 내가 너에게 당하고 있는 모든 일이 결국은 평화를 드러내는 일과 관련성이 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내가 성전에서 하는 이 모든 행위 하나하나가 하나님과의 화목과 연계되어 있다 이 말입니다. 그 다음에 45절에서 48절까지 읽어보면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쭉 되어있지요.

자, 이것을 이제부터 설명이 돼야 됩니다. 주께서 성전에서 성전을 청소했습니다. 성전 청소했지요? 청소했잖아요. 왜냐하면 이 집이 네 집이 아니고 내 집이다. 인수인계한 거에요. 주님이 일방적으로 인수인계한 거에요. 너희들이 천국가기 위해서 정성들인 이 성전, 이 방식은 하나님께서 안 받는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 주님께서 이 성전을 자기가 인수인계해서 내가 청소함으로서 성전이 천국 가는 길이 되게 해주겠다. 청소를 한 거에요. 그럼 질문 들어갑니다. 청소한 것이 1. 추방입니까? 2. 영접입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추방하는 행위입니까? 영접하는 행위입니까? 몇 번입니까? 딱 둘 중에 하나에요. 여러분 선악과 잘 알잖아요. 어느 쪽이겠어요?

추방입니다. 추방하는 거에요. 누구든지 하나님을 본 자 다 죽는다를 현실화시키는 거에요. 앞으로 불심판 될 때까지 현실화시키는 거에요. 그러면 그들은 하나님 만나보지도 않았는데 그런 억지부리지마세요 라고 할 거잖아요. 내가 하나님인데. 너 나에게 어떤 짓을 했어? 사형에 해당된다고?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했지. 너희들이 날 추방했잖아. 너희가 날 추방했잖아. 영접기도하지 마. 추방한 자를 영접하면 추방이 정당화되잖아요. 그런 일은 없어요. 어떤 인간의 행위도 주님이 인간에게 추방당함으로서 인간 쪽에서 내세울 어떤 카드 모두 다 추방 하나님을 영접할 권한은 전혀 없이 된 겁니다. 주님께서 이걸 막아버리는 거에요.

욕조에 주님 혼자 이렇게 누웠지요. 주님이 십자가에서 뭐 받았습니까? 저주받은 거죠. 가득 차있는 저주에 누웠어요. 왜냐하면 예수의 몸은 어떤 몸입니까? 이 땅의 죄의 몸으로 오셨거든요. 죄의 몸으로 온 값을 해야지요. 아버지가 주는 모든 저주, 저주를 홀로 들어갑니다. 홀로 들어갔지요. 그럼 이 욕조를 하나의 댐으로 봅시다. 댐을 터트려버려요. 그러면 이 저주가 그것도 정당성이 있는 저주. 아 인간은 저주 받아야 합당함, 마땅함이라는 그 소식이 욕조를 통해서 남은 시간까지 쫙 온 천하에 흘러넘치겠지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추방용입니다. 나가에요. 나가. 천국 못 들어가 나가. 그게 십자가에요. 그게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취지를 받아들인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기에 십자가를 못 믿는다. 요한복음 3장 17절, 18절에 나옵니다. 그리고 그걸 그들이 왜 못 믿는가? 그들은 빛이 왔으되 어두움이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러면 백성들 없지 않느냐? 누가 백성이냐? 본인이 어떤 행동 해야 백성 되느냐? 본인이 행동한 건 없어요. 그러면 빛을 비취는 사람은 뭐냐? 그들의 모든 행위는 자기 안에 하나님께서 행하심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 수단으로서 정해진 자가 백성이에요. 하나님이 자기 행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도구로 쓰여진 자가 바로 천국 백성입니다. 요한복음 3장 20절, 21절. 도대체 성경을 보면서 뭘 상상합니까? 목사님 우리는 뭘 하면 됩니까? 그냥 죄 지으세요. 그냥 죄 지으세요. 죄가 뭔 줄 알아야 죄를 짓지요. 기다려보세요. 주께서 당신을 추방시킨 이유를 말씀으로 이야기할 겁니다. 십자가로 이야기할 거에요.

자, 예수님이 설교하고 했을 때 그들은 모독감을 느꼈어요. 그러면 질문입니다. 오늘날 성경을 통해서 복음이 나올 때 사람들은 모독감을 느낄까요? 안 느낄까요? 느끼죠. 다 같은 아담의 사람이니까. 저는 모독감을 못 느끼는데요. 그거는 말씀만 듣고 복음은 빼서 그런 거에요. 복음은 빼버렸어요. 다시 이야기합니다. 심판의 욕조에 들어간 사람 누구밖에 없다? 예수님 한 분밖에 없어요. 한분밖에. 그러면 댐 터졌다는 이야기는 어디에 나오느냐? 휘장이 찢어졌어요. 휘장이 찢어지면서 안에 지성소에 있던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가 성전을 통해서 본격화되었어요. 세상으로 다 퍼지는 거에요.

사람들이 이걸 방어로 생각해서 휘장 찢어졌다 우르르 들어가자 천국으로. 대기하고 있다가 주여! 휘장만 찢어지면 우리가 들어갈텐데 휘장만 찢어지면 들어갈텐데. 어찌 그리 꼭 반대로 이야기하는지. 반대로 이야기해요. 들어간다가 아닙니다. 못 들어간다에요. 못 들어간다. 지성소가 어떤 데인데 들어가요. 전에는 지성소가 못 들어간다는 걸 제사장은 알았지요. 그들도 벌벌 떨면서 혹시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방울 들고 들어갔어요. 그 제사장이 누구십니까? 마지막 제사장이. 예수님이 그래서 죽었잖아요 여기서. 이 욕조에서 혼자 들어가서.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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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49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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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