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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19장 30절 (큰 구원) 231024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19장 30절 (큰 구원) 231024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19장 41절부터 보면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렇게 되어있지요.

두 번째 시간은 첫째 시간보다 더 어렵습니다. 왜냐 하면은 성사될 수 없는 일을 성사시키시기 때문에. 성사시키신다. 그 이유가 뭐냐 하면은 이유는 간단해요. 작은 크기에서 오는 세상관, 작은 세계에서 오는 작은 세상관 이것을 큰 세계에서 오는 큰 세계관으로 이걸 부수는 겁니다. 작업을 주님이 하셔요. 그러니까 작은 크기에 있는 작은 세계에 있는 여기 있는 존재는 주님이 하시는 큰 세계에 속한 큰 세계관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못하지요. 어린 아이가 어른들 이야기를 이해 못하듯이 왜? 범주가 프레임이 차이가 나요.

같은 말을 할 때에 이렇게 작은 범주 안에서 이런 요소, 12개의 요소 이야기하고 큰 범주의 7646개의 그러한 요소 사이의 대화가 같이 일치될 수 있습니까? 왜 없느냐 하면은 이 사이에 뭐가 성립되느냐 하면은 이게 바로 변수라는 겁니다. 변수. 주고받는 변수. 변수의 다양성이 그만큼 폭발적으로 큰 거에요. 변수라 하는 것은 연관성을 이야기합니다. 원인과 결과의 폭이 다양하다는 뜻이에요. 이 일은 이것 때문에 생긴 일. 어린애들은 맨날 그것만 생각해요. 이 일은 이것만 하면 된다. 딱지치기한다든지 게임을 한다든지 이렇게 되잖아요. 이 좁은 프레임, 좁은 그 액자 안에서 그렇게 돼요.

그런데 엄청난 큰 다양한 변수 속에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Why Me? 왜 하필이면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납니까를 물을 수밖에 없어요.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결과적으로 뭘 주느냐 하면은 다 부수겠다는 겁니다. 다 부셔버리겠다 이 세상. 부수겠다는 이 결론, 이 결론은 주님만이 아는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할 때 다 부수겠다는 거에요. 그런데 주님 왜 제 것을 건드리십니까 이렇게 나와요. 왜 내걸 건드려. 내 것을 건드립니까. 내 것은 작은 크기의 작은 세계에 속하거든요. 큰 세계에 속한 게 아니에요.

큰 세계에 속한 것은 이거는 어떤 세계냐? 작은 크기에 있는 작은 인간이 성사될 수 없는 일이죠. 성사될 수 없는 일.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거에요. 대장금 드라마에 보면 대사 나와요. 여자 꼬마애하고 임금님하고 대화할 때 어린애가 고기를 씹었거든요. 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데 임금이 물었어요. 고기 씹으니까 무슨 맛이 나냐? 물으니까 고기 씹으니까 홍시 맛이 납니다 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임금이 어떻게 고기를 씹는데 홍시 맛이 나냐? 홍시 맛이 나기 때문에 홍시 맛이 난다고 하는데 그게 뭐가 문제입니까? 라고 한 거에요. 임금은 애가 느끼는 것을 못 느끼고 있어요. 그것은 임금이 홍시를 안 먹어봐서 그래요. 고기만 먹어서 그런가.

남을 위한다고요? 이건 있을 수도 없는 거에요. 인간은 남을 이해 못합니다. 인간은 남을 이해 못합니다. 남을 이해 못한다는 말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도움을 줄 수 없는 게 맞는 말이에요. 따라서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웃을 사랑할 수 없어요. 눈에 보이는 이웃도 사랑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요한일서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계명은 큰 그림에서 원인을 탁 쳐가지고 그게 어떤 결과로서 나한테 도달될 때 그때 우리는 주께서 하셨습니다가 되는 거에요. 주께서 하셨습니다.

우리가 궁금한 게 있어요. 뭐가 궁금하느냐 하면은 세상을 때려부수는 결과를 나으셨는데 우리는 이해 안 되더라도 그러면 세상을 왜 부수셔야 되느냐 하는 그 문제, 그거는 알고 있어야 돼요. 세상은 왜 박살나야 되는가. 이 문장만 여러분들 이해하신다면 장담컨대 여러분 세상 전부를 다 아신 게 될 거에요. 이 문장을 보시면 이 세상이 왜 박살나야 되는지 이유를 우리는 동의하게 될 겁니다. 내 살과 내 피가 없으면 영생 없다 했지? 내 살과 내 피가 없으면 영생 없다고 내가 분명히 이야기했어 안했어? 이렇게 되는 거에요. 이게 큰 그림에 나오는 하나의 촉발이죠. 촉발.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걸 가지고 새 언약이라고 하는 거에요. 새 언약. 대전강의에서 제가 새 언약할 때 언급했잖아요. 새 언약의 특징은 인간은 끼지 못한다는 것. 주님께서 내 살과 내 피를 마시라고 해도 마실 위인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 12제자에게 예수님께서 살과 피를 떼어줄 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떡을 먹었습니까? 안 먹었습니까? 포도주를 나눠줄 때 예수님은 나눠줬습니까? 예수님 본인도 마셨어요? 어떻게 돼요? 만찬이잖아요. 유월절 만찬에 예수님은 안 먹고 딱 버텼어요? 같이 드셨지요. 그건 뭐냐 하면은 제자들 제쳐놓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언약입니다.

예수님이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신다고 해서 언약의 완성이 아니고 예수님은 미리 성사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성사되기 이전에 거기에 대한 징후들을 징조들을 뿌리고 오신 거에요. 그중에 하나가 내 살과 떡을 떼고 포도주를 나누는 거에요. 또 그 중에 하나가 이걸 표적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행한 첫째 표적이에요. 이적은 아니에요. 인간들이 기대하고 고대하는 이적은 절대 안줘요.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아무도 이해 못할 이적, 그걸 표적이라고 합니다. 오병이어, 뭡니까? 표적이에요. 너희가 표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다. 그렇다면 표적의 의미는 깨닫지 못한다에 비중을 두고 일으킨 일이 표적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표적을 확장을 해봅시다. 표적 중에 아주 평범한 표적이 뭐냐? 내가 여기 태어나서 산다는 거에요. 살고 그 다음에 결국 내가 썩어서 늙어 죽는다는 것. 어느 것 하나 표적 아닌 게 없어요. 그런데 내가 태어나서 늙어 죽는 것은 주님의 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성령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에요 이게. 뭘 예수는 믿어요. 벌써 주님이 닫았는데. 주께서 부지런히 일을 벌렸는데 왜 우리가 짜증을 냅니까. 이상하죠. 지금 이게 내 일입니까? 나 좋아라고 하는 일이에요? 여러분 사는 것이 여러분 좋다고 삽니까? 어서 오세요~~밥 먹고 살라고 하는 일이에요. “그냥 뭐 둘러보고 갈게요.” 짜증이 확 올라오죠. 안 살 거면서 와가지고 두 시간동안 옷 다 만지고 더럽혀놓고 사는 것처럼 하고 안 사. 뭐야. 딴 데 가볼까? 이러고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오늘 재수 되게 없네. 왜 짜증을 냅니까? 이상해.

이게 왜 짜증을 내느냐 하면은 작은 세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작은 세계. 작은 세계는 투박하게 원인과 결과를 내가 포착을 해내요. 내가 앞으로 잘하면 좋은 결과 있겠지. 내가 행동 바꾸면 새 사람 되겠지. 예수 믿으면 구원 받겠지. 예수 믿어서 아무도 구원 못 받습니다. 왜? 자기 일이기 때문에 그래요. 성경공부하면 천국 가겠지. 못 갑니다. 말씀이 들어온다는 것은 내 세계가 깨지는 것을 말합니다. 내 세계가 깨지는 것은 징조에요. 전조에요 전조. 징후. 앞으로 모든 세상이 다 깨어지는 그러한 파장. 지진 오기 전에 새들이 떼로 날아다닌다 징후다 이렇게 미신이 있겠지만. 하나의 세상이 이건 이상하다 드디어 무너진다 징조 중에 하나로 우리는 이 땅에 천구백몇 년도에 주민등록이 나오는데요. 이 땅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겁니다.

관련성, 주님과의 원인 결과 관련성. 다른 말로 하면 새 언약과의 관련성.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의 피와 살과 관련된 채 우리가 엮어져있지요. 우리는 주님이 작곡한 그 곡의 하나의 음표죠. 같을 수가 없어요. 어디는 #붙고 어디는 b붙고 같을 수가 없는데 모여야 노래가 되니까. 그래야 하나의 대곡이 되니까요. 어떤 때는 쉼표가 있어요. 쉼표라도 괜찮아요. 어떤 사람은 느긋하게 온음표야. 이건 세월아 네월아 아무 생각 없이 그런데 어떤 사람은 16분 음표. 하루 종일 바빠요. 하루 종일. 파탁파탁 뛰어다녀요. 하루 종일 스케줄이 빡빡해. 스케줄이 빡빡해가지고 있어. 박자도 달라요. 박자도 다르고 음표 차이도 다르고 모두 개성들이 다 달라요. 개성마다 전부 다 착각들을 하고 있어요. 나 이래서 구원받는데 너 구원받았냐? 상호 지금 구원 배틀하고 있어요. 구원 배틀. 다 망하는데. 다 무너지는데요. 무너져봤자 돌이고 안 무너져도 돌이잖아요.

19장 40절 41절 이 이야기가 44절 한번 볼까요.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알지 못했지요. 아까 그걸 뭐라고 표현했습니까? 인간으로 하여금 도저히 성사되지 않는 일을 주께서는 성사시키는 거에요. 처음에 제가 무슨 말 했던가요? 하나님의 전체적인 핵심은 뭡니까? 내 살과 내 피를 안 마시면 영생 없다 했어 안했어! 했지요. 내 살이야 니 살이 아니고. 내 피야 니 피가 아니고. 예수님이 제공해줘야 돼요.

성경 보면서 그거 발견 못했습니까? 맨날 묻기를 제가 뭘 하면 됩니까? 왜 니가 거기서 나와. 니가 영탁이야. 거기서 니가 왜 나와. 가만 있어 그냥. 너는 음표야. 온음표. 16분 음표. 32분 음표는 파닥거려요. 매일 바빠. 한쪽은 매일 바쁘고 한쪽은 느긋해. 느긋하게 살고. 이거는 뭐 살피고 연구하고 고민하고 걱정하고. 자신 걱정하지 이제는 이스라엘 전쟁 걱정 다해요. 드디어 메시아가 오는가 싶어서. 또 푸틴 쓰러졌데. 우크라이나 전쟁 멈추면 기름값 내릴까 걱정하지. 경제부 장관 대통령까지 다 해. 내년 대선까지 걱정 다 하고있어. 내년 대선까지. TV조선 봐가면서. 작은 세계에요. 작은 세계. 무너질 작은 세계에요.

무너뜨릴만한 세계 속에 우리는 그 자체로서 자기 존재를 우수한 존재로 바꾸기 위해서 나름 뭘 찾느냐? 원인과 결과를 찾아서 최적화된 성과를 얻을려고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하면 되고 헌금은 어떻게 하면 되고. 하나님 말씀 어떻게 공부하면 내가 행복해질까요. 여러분 행복한 비결 알려드려요? 이거는 그냥 팁이에요. 말씀과 관련 없는데. 어떤 사람이 나보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행복이란 나보다 불행한 사람만 찾아다니면 돼요. 마약 했어요? 안 했지요. 그러면 이선균보다 행복한 거에요. 3억 5천 삥 뜯겼어요? 아니지요. 세상에 그런 행복한 사람 있습니까.

인간은 기어이 자기를 기어이 행복한 존재로 증명할라고 해요. 증명하고 그렇게 노린 결과를 합리적 추론으로 얻을려고 합니다. 그게 안 될 때 자살해요. 내가 나를 증명 못할 때 절망을 느끼고 자살해요.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 왜 없는 거야. 그동안 버틴 것이 나보다 불행한 사람 있어서 버텼는데 그 불행한 사람이 잘된다는 소식 듣는 순간 나는 뭐야 그럼 나는 뭐야. 나는 회복할 기미가 왜 안 보이는 거야. 그거는 자살에 가깝지요. 전조, 징후 그 다음에 증상. 이건 정신분석학에서 특히 많이 다뤄요. 정신과에서 다루는 게 아니라 정신분석학에서 많이 다루는 거에요. 정신분석학에서 많이 다뤄요. 전조, 징후, 증상.

이건 뭐냐 하면은 분열 증세. 분열됐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의 치료가 뭐냐 하면은 치료는 간단해요. 분열된 그것을 긍정하라 입니다. 분열된 그것을 합체하면 합체할수록 점점 더 난관에 빠져요. 전에 했잖아요. 우울증의 치료는 뭐라고 했습니까? 안 고치는 것. 안 고치면 되는데 고칠려고 하니까 우울증이 점점 심화되는 거에요. 그런데 성경의 해답은 뭡니까? 성경의 해답은 기다려봐. 이 징후, 증상, 전조가 나타난 그 원인을 그것을 내가 성사시킬게. 그게 뭐냐 하면은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않는 자에게서 박살내는 것. 그게 바로 원인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최후의 언약, 마지막 언약, 새 언약, 약속의 언약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약속이기 때문에.

그러면 누구를 성도라고 합니까? 자신의 현 처지를 무엇의 전조로 보면 돼요? 보이지 않는데 나타났으니까 이건 뭡니까? 전조, 징후, 증상이죠. 주일날 설교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대전 강의 때도 했는데 이걸 뭐라고 했습니까? 비유, 은유가 되는 거에요. 은유는 무의미한 게 아니에요. 은유는 대리하는 겁니다. 주님이 우리를 대신했잖아요. 이제 우리가 주님을 대신하는 거에요. 동전의 앞이 뒤를 대신했다면 이제는 뒤가 숨어있는 앞을 대리하면 되는 겁니다. 말씀이 육신이 됐다고 했잖아요. 그럼 육신이 뭐 하면 됩니까? 말씀이 되면 되는 거에요. 말씀이. 주님의 새 언약이 뭐냐 하면은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가 아니고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뭐가 없다? 생명이 없다 라고 되어있어요.

없다와 없다를 연결시켰다고요. 없다와 없다를. 그걸 간단히 줄이면 뭐냐? 너는 없음에 속한다는 거에요. 없음에. 없음에 속한 나를 내가 말씀을 줌으로써 말씀이 도달되면 없음이 있음이 되는 게 아니고 없음인데 그 없음이 없음보다 더 못한 숨어있는 없는 존재의 징조, 징후, 증상, 비유로 내가 너를 다뤄줄게. 너를 사용해줄게 그거에요. 그게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잖아요. 나는 십자가에 같이 죽고, 그럼 거기서 끝나야 되는데 그렇지 않지요. 내 안에 누가 살아있다? 그리스도가 살아있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성경 읽어 본 사람에게 되묻고 싶어요. “니가 살았다는 말이야? 죽었다는 말이야? 둘 중에 한 개만 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어이~어이~~살았어? 죽었어? 죽었어? 살았어?” “죽었어.” “그럼 죽었으면 죽은 거지.” “그런데 죽은 내 속에서 누가 살았어.”

삼손이 힘 쎈 사자를 더 힘이 쎄서 때렸잖아요. 그럼 끝나야 되는데 사자는 죽었다 끝나잖아요. 삼손이 뭘 발견했는가? 죽음에서 뭐가 나왔다? 강한데서 단 것이 나왔다. 이게 무슨 말이에요. 그걸 네 자로 수수께끼라고 하는 거에요. 수수께끼. 그러니까 주님께서 성도를 이 세상에 뭐로 보냈다? 수수께끼를 보낸 거에요. 그러면 우리 당사자는 앞으로 할 일이 뭡니까? 좁은 세계관, 좁은 세상관 그 위 크기의 범위가 넓은 데에서는 내가 모르고 있는 그 넓은 데서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를 알면 되겠지요. 우수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달라진 건 없어요. 성령께서 알게 해주시는 거에요. 그보다 우수한 게 아니고 더 많은 것.

그럼 더 알게 하면 나한테 이익되는 건 뭐냐? 이익되는 게 뭐가 이익이냐 하면은 내가 고민했던 것이 고민할 건덕지가 없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 가지고 내가 고민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하면 또 여러분 분명히 이렇게 이야기할 거에요. 큰 세계에 안 데려가주면 어떡하는데. 이 말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제가 한번 써볼게요. 주님, 나를 지금보다 더 넓은 세계에 안 데려가주면 저는 어떡해? 나 어떡해? 이 말이 엄청난 모순을 갖고 있어요. 한번 따져볼까요?

주님 나를 지금보다 더 넓은 세계죠. 더 넓은 세계. 더 넓은 세계라고 했지요. 이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요? 이 사람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지금 제 말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까?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말은 지금은 내 세계가 이게 다가 아니다,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본인이 지금 감수하고 있지요. 그게 겸손이잖아요. 다른 사람이 와가지고 야! 너 진리 다 알았다면서?! 아니야. 더 넓은 세계가 있어. 이 말은 무슨 뜻이에요? 그럼 그 넓은 세계에서 지금 니가 아는 건 뭐야? 죄지 뭐 죄. 뭐가 죄인데?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전에는 내가 잘난 체했는데 이거는 내가 잘난 체할 그런 동기가 안 된다는 것, 내가 지금 변수를 제한된 변수로 따져가지고 나 잘했다 못했다 따졌는데 그 따질 처지도 아니고 입장도 아니고 내가 그전에 알았던 것 가지고 내가 잘했다 못했다를 평가할 내가 스스로 나를 판단할 그런 자격이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거에요. 그것만으로 대단해요. 그것만으로 대단하잖아요.

만약에 이게 없으면요 남들이 나를 보고 뭐라고 욕을 하면 내가 굉장히 기분이 나쁜 거에요.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이만큼 살아왔는데 네가 뭔데 욕하느냐? 불끈 성질이 나더라도 저 사람을 주께서 보내셨다. 더 넓은 세계에서. 나로 하여금 성질나게 했다는 사실을 넓은 세계에 포함시키세요. 새로운 사건들과 맞닥뜨리는 모든 일상이 내가 노력해서 넓은 세상에 갈 수 있는 게 아니고 기도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가만 있어도 주께서 넓은 세계를 넓혀준다. 내가 넓혀주는 거에요. 그게 아까 했어요. 내가 이룰 수 없는 세계를 나한테 소개. 내가 이룰 수 없는 세계가 반드시 들어가야 돼요. 왜냐하면 내 노력으로 넓은 세계 들어가면 절대로 안 되기 때문에. 그건 벽이기 때문에. 내 쪽에서 벽을 뚫을 수 없어요.

그러나 이미 내 살과 내 피를 관계되어 있는 사람은 하나의 전체가 한 곡이기 때문에 노래이기 때문에 주께서 소개시켜 주는 거에요. 야 너는 기타의 몇 번 줄이었어? 5번 줄이었습니다. 그럼 생전 가도 4번 줄 구경도 못했겠네. 구경도 못했습니다. 그럼 4번 줄 소개해줄게. 4번 줄. 3번 줄. 죽기 전에 살아가면서 계속, 말로 하는 것보다 기타로. 1번 줄. 재미 하나도 없어요. (스트록) 아름답잖아요. 혼자 있어서 재미없는데 같이 하니까 어떻습니까? 아름다워요. 지금 6줄 쳤잖아요. 하나로부터 6개의 세계로 확장됩니다. 더 넓은 세계에요. 내게 없는 것을 타인이 갖고 있었던 겁니다. F로 한번 해볼까요? G7으로 한번 해볼까요? 이 세 개의 조만 있어도 노래 하나 나옵니다.

찬양한다는 것은 우리만 하는 게 아닙니다. 전체를 다 아는 자도 피조물도 찬양해요. 이사야가 만났던 바로 6개의 날개를 가진 천사. 스랍들. 그 천사들 하늘나라에서 뭐하고 있습니까? 쉬지도 않고 찬양하지요. 우리는 궁금해요. 찬양 한두 번 하면 지루하고 재미없을 건데. 저 천사는 지루하지도 않나? 재미 하나도 없이 왜 찬양만 하느냐? 우리 같으면 지루할 거 같은데. 왜 찬양이 지루하지 않을까요? 왜 찬양이 지루하지 않습니까? 천국에 가면 피조물은 모르고 창조주 되시는 분, 주님, 성령, 하나님이죠. 창조하신 분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어요. 그 변수들이 불꽃놀이를 시작하게 되면 영원토록 해도 다 메마름이 없는 갈증 나지 않는 새로움이 계속 나오는 겁니다. 그걸 요한복음에서 목마르지 않는 샘이다. 목마르지 않는 샘. 끊임없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결핍이 없는 모자람이 없는 그게 계속 나오지요.

이 세상에서 우리는 그런 것을 이렇게 넓은 세계를 볼 때마다 그걸 잠시 느낍니다. 잠시 느끼는데 그게 얼마 가지를 않아요. 성질 급한 사람은 5분, 좀 성질 느긋한 사람 온음표 사람은 은혜 1시간 가지요. 왜 그러느냐 하면은 지금보다 더 큰 세계를 보게 되면 이 사이에서 새로움을 느낍니다. 새로움을 느끼는데 새로움을 느끼는 순간 뭐가 뒤따라와요? 여기서 내 자아성이 뒤따라와가지고 이것마저 이미 내가 안다 안다 내가 알아버린 세계가 돼요. 재미가 없어요. 그러면 주께서 또 새로움을 또 이렇게 줍니다. 새로움을 줄 때 플러스 추가해서 주는 게 아니에요. 자, 한번 봅시다. 새로움은 어디서 나오는가? 인간이 지킬 수 있는 데서는 새로움이 안 나와요. 인간이 예상한 새로움이 안 나옵니다. 없음보다 더 없음.

아까 왕이 나귀 탄다 이야기했지요. 그걸 기존 교회에서는 어떻게 해석합니까? 예수님을 본 받아서 우리가 겸손하게 살자 이렇게 나오잖아요. 왕도 겸손한데 우리도 겸손하자 이렇게 나오잖아요. 그러나 겸손해버리면 이 겸손이라는 것이 벌써 어느새 자아가 돼요. 나 부르지 마 나 겸손한 나로 불러줘 이렇게 된다고요. 그건 뭡니까? 이미 교만이 되어버린 거에요. 교만 되니까 본인도 알아요 교만한 거. 그럼 겸손이 또 필요한 거에요. 내가 필요한 겸손은 이미 겸손이 아닙니다. 예상한 거에요. 내가 노력하면 성사할 수 있을 거 같은 겸손이에요. 그게 뭐냐 하면은 바로 수도원에 가는 겁니다. 기도하고 노동하고 늘 묵상하고 그걸로 평생을 보내겠다고 작심하는 것.

자,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천주교에서 많이 하는데 예수원이라는 곳에 그런 게 있어요. 만약에 1986년도에 마음의 결심해서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갔어요 수도원에. 들어갔으면 지금 2023년도잖아요. 그럼 2023년도에 처음에 수도원에 들어갔던 그 결심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까? 사람은 늘 변하거든요. 변하는데 자기가 자기를 속여요. 안 변했다고 속입니다. 위선자. 수도원 들어가서 위선자 돼요. 위선자. 만약에 제가 수도원 해가지고 수도원 원장이 되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묵상하고 이 세상에 모든 더러운 것과 세속과 끊어버리고 유행가 안 부르고 다 끊고 오직 찬양만 하기로 작심하고 들어갔습니다.

그러면 들어간 지 6개월 내지 1년도 안 되서 나오는 생각이 뭐냐 하면은 이겁니다. 수도세 전기세 걱정이에요. 이게 시공간에 제한된 인간입니다. 주의 복음 전한다고 목사 됐잖아요. 그러면 그 다음에 몇 년도 안 되서 생기는 걱정이 뭐냐 하면은 돈 걱정이에요. 돈 걱정입니다. 그럴 때 돈 걱정을 안 하면 되지 않겠는가? 어디 수도원 아닌 데가 없고 교회 아닌 데가 없지요. 왜? 각자 자기가 소속, 존재하고 있는 거처가 있잖아요. 그 거처는 시공간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돈 걱정 안 하는 수가 없어요. 그러면 그렇게 할 때 어떻게 하면 되느냐?

오늘 말씀이 얼마나 친절한 말씀인지. 걱정하지 마 내가 다 부숴줄게. 더 큰 세계의 더 큰 범주에 의하면 내 살과 내 피 빼놓고 다 무너지게 해줄게. 이건 처음부터 너한테 이야기했다. 그런데 처음에 1986년도에 그때 네가 알았다고 고개 끄덕였다. 분명히 끄덕였죠. 분명히. 그래서 나는 변하지 않으리라 스스로 맹세했잖아요. 성경에 맹세하지 말라는 데 다 이유가 있어요. 스스로 맹세해도 결국은 맹세한 게 그게 위선자가 되어 버리는데요. 왜 쓸데없이 맹세했어요.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쉽게. 왜 말씀을 지키느냐고 나무라시는 거에요. “말씀을 왜 지켜!” “지키라 했잖아요. 지키라 해서 지킵니다.” “그래서 되냐?! 안되잖아.” 왜? 내가 변하니까. 말씀은 변하지 않는데 내가 안 달라질 경우가 없었어요.

그런데 인간은 얼마나 고집이 쎈 지 안 달라졌다고 거짓말하니 거짓말에다가 거짓말을 제곱을 하는 거에요. 제곱만 해도 천만 다행이다. 세 제곱, 네 제곱 계속 나중에 가면을 썼는데 어느 쪽이 진짜인지 몰라. 가면 벗기면 가면, 가면 벗기면 가면 나오고. 가면의 중첩이 자아에요. 이게 기억입니다. 어쩌란 말입니까. 내 살이다 내 살. 내 살인데 왜 네 살을 고집했고 내 피인데 너의 피에 아직도 그렇게 집착을 하느냐 이 말입니다. 네가 하는 일이 아니고 네가 작곡가가 아니란 말이죠. 작곡가가 아니에요. 네가 작곡가가 아니에요. 네가 작사가도 아니에요. 전체 구원이에요. 전체 구원. 우리는 거기의 음표이고. 징후에요.

따라서 이 말씀에 대해서 제자들은 깜짝 놀랬습니다. 예수님이 우시니까. 하도 답답해서 우시니까. 제자들이 놀랬지요. 그런데 나중에 성령을 받고 난 뒤에 박수, 주님 잘했어요. 저 박살내어준 것 참 잘했어요. 그때는 나의 좁은 세계에 빠져있었습니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죠. 나중에 성령 받고 난 뒤에 이 말씀을 보니까. 여기에 43절에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라고 되어있지요. 이거 우리가 성사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하지요. 못하는데 주께서는 말씀을 던져놓고 그 말씀을 주께서 성사시키는 그것이 우리보다 큰 세계에요. 범주가 넓은 세계에요.

따라서 우리 보고 뭐 하라는 게 아닙니다. 네가 말씀 지키면 이러한 어려운 점 봐줄게 이런 거 없어요. 그냥 이미 스케줄은 나와 있어요. 우리가 수정하고 고칠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밀어붙이는 거에요. 예수님의 살과 예수님의 피 빼놓고는 나머지는 다 날라가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답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이 몇 군데 있느냐 물으니까 딱 두 군데 있어요. 서울 대학이냐 그 외의 대학이냐. 얼마나 믿음이 좋은지 모르겠어요. 왜 우리는 그런 믿음이 없습니까. 이 세상에 인간은 딱 두 종류 있지요. 예수님의 살과 피와 관련된 사람과 관련 없는 사람. 딱 두 종류밖에 없습니다.

자, 45절부터 보겠습니다. 44절까지 요약하면 이미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결정해 놓았다는 사실을 흔쾌히 부담 없이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들이세요. 이 말씀대로 다 부수어집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이보다 더 치열해요. 하늘의 별도 다 떨어져요. 누가복음에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임해요. 아주 신났어요. 고맙게 여기고 이 세상 다 무너지는 것을 요한계시록 보면 더 난리도 아니죠. 지진과. 정말 일 참 잘하십니다. 무너지는 이유는 알지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합니까 라는 말 하지 마세요. 그거 대처하는 단체가 신천지에요. 신천지는 자기 구원이 전부거든요. 14만 4천. 욕할 수가 없지요. 욕할 수가 없어요. 신천지나 구천지나 똑같은 천지인데. 자기 천지니까. 전부 다 작은 세계. 나 중심의 작은 세계라고요.

내가 이미 주께서는 벽을 쳐서 안 받아주는걸 확정된 나 라는 사실을 정말 우리가 성령 아니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걸 안타깝게 여기는 게 아니고 그동안 왜 몰랐을까를 감탄해야 돼요. 세상이 내 중심이 아닌 것을. 이제는 박하사탕 깨먹듯이 롯데껌 씹듯이 입안에 화하게 받아들여야 돼요. 병신같이 내 중심으로 살다니 병신이 따로 없어. 내가 천하의 병신이야. 그렇게 속고도 아직까지 몰라. 세상이 내 중심된다고? 미쳤지 미쳤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남들 다 그러니까 그런 줄 알았지. 기도하면 응답받고 그렇게 되는 줄 알았지요. 애초부터 성경은 그게 아닌데요. 벽인데요. 만리장성을 쌓아가지고 카퍼필드 와도 소용없어요. 빠져나갈 수가 없어요. 죽어라 인간아 십자가로 찍어가지고. 사도 바울처럼 “이미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 이것이 빈말이 아닙니다. 그대로 우리에게 큰 세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자, 45절 봅시다.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이것도 뭐냐 하면은 표적입니다. 표적 아닌 게 없어요. 왜냐하면 아무도 이해 못하기 때문에.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제자들도 이해 못했어요. 제자들도 이 성전 쫓아내는걸 언제 알았느냐 하면은 예수님이 죽고 난 뒤에 부활하고 난 뒤에 알았다 하거든요. 그러면 우리가 그 말씀을 접근할 때 부활하고 난 뒤에 안 쪽으로 접근하지 말고 예수님 당시에 부활되기 전에 제자들의 심정을 우리가 헤아릴 줄 알아야 돼요. 지금 그들은 자기 청춘을 다 바쳤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미 일가친척 다 버리고 재산 다 버리고 이제는 올인 했어요. 도박에서 보면 칩을 다 냈어요. 에라 모르겠다. 다 한방에 보냈어요. 이거 아니면 나는 끝났다. 12제자가 다 그렇게 했습니다. 주님께서 책임지겠지.

주께서는 나를 책임지는 게 아니고 내게 없음보다 더 있던 나를 책임지죠. 내게 있는 나를 있음으로 구원하는 게 아니고 있는 나를 취소시키고 내가 성사될 수 없는 나를 숨겨 있는 나를 예수 안에 있는 창세전에 예정된 나를 야곱이 아니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죠. 아브람이 아니고 아브라함을 구원하는 거에요. 주께서는 이런 건 몰랐지?! 네가 없어지는 그것과 바꿔치기 하면서 등장하게 되어있어요. 나는 뭐냐 하면은 기존의 세상의 육적인 세상적인 나는 소유함으로서 존재하는 내 정체성, 소유가 없으면 정체성이 없어요. 뭔가 돈이라도 명예라도 뭔가 역사라도 과거라도 있어야 이게 ‘나’가 되는 거에요. 그 역사를 지워버리거든요. 그걸 무의미하게 만들면서 헛된 것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같이 동반해서 튀어나오게 되어있어요. 새로운 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비치게 만듭니다.

그러니 성전이 파괴될 때 그때 그 심정을 제자들이 하나의 징후니까 내 징후와 제자들 징후도 하나의 변수로 서로 다른 줄이거든요. 제자들이 1번 줄이라면 나는 6번 줄이다 이 말이죠. 같은 지판에 있잖아요. 팅~ 치면 저건 높은 팅 치면 낮은 도네. 역시 같은 거니까 성경은 그것 때문에 있는 거에요. 그들은 깨닫지 못하더라. 딱 내 이야기에요.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죽였더라. 딱 우리 이야기에요. 바리새인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다 같은 아담에 속했기 때문에 아담의 다 내 이야기에요. 다만 우리한테는 과거지사가 되지요. 신나는 과거지사.

그래서 성전에 갔을 때 제자들이 아무리해도 못 알아봐요. 표적이기 때문에. 주께서는 인간이 성사될 수 없는 것만 해놓고 성경을 보니까 성사될 수밖에 없는 일만 하셨다는 것을 발견하는 겁니다. 왜? 내가 더는 개입할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죠. 추가적으로 내 할 일을 내 행함을 일체 거부하는 일체 내쫓는 그 일만 하는 거에요. 없이 의롭다 함을 얻는 자의 복이라고 했어요. 드디어 나옵니다. 행복에서 뭐로 변했어요? 복이 되었지요. ‘행’자 빼버려요. 행복 찾지 마세요. 주께서 허락한 것은 복이지 행복이 아닙니다. 행복은 나의 행복이란 뜻이 있어요. 복이라 하는 것은 새로운 나를 주께서 거저 주신 거에요. 주님께 복속되라고 주신 복이에요. 주와 하나가 되는 관계를 맺는 게 복이고 이거는 단독적인 내 것 행복, 네 행복 말고 내 행복이에요. 주께서 일한 것도 없이 의인이 되는 복을 주셨다.

자, 이렇게 보니까 성경 전체가 뭡니까? 한결같지요. 두 말 안하지요. 내 살과 내 피,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십자가만 자랑하라. 내 살과 내 피, 복도 다 어디서 온 거에요? 주님에게서 온 거에요. 그런데 근거가 뭐냐? 내 살과 내 피 먹지 않으면 내가 영생 없다고 분명히 이야기했잖아. 이 말은 내 살과 내 피가 없는 사람은 복 반대말이 뭡니까? 얼마나 출세해도 얼마나 행복해도 그거는 저주가 되는 겁니다. 저주가 되지요. 너 누구야? 주님의 흔적이야. 이러면 될 거가지고. 주님의 징후야. 보이지 않는 분의 나타남, 보이지 않는 분의 대리자야. 이렇게 하면 될 거가지고 너 누구야? 내가 25년 동안 교회 다녔거든. 왜 거기서 그게 나와요. 십일조를 얼마 했고. 그게 왜 나옵니까. 아프가니스탄 선교했고 그게 왜 나와요.

다 좋아 헌금한 거 좋아 기억 속에 나온다 합시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25년 동안 십일조 했는데 비로소 죄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선교했는데 선교가 죄였고 목사된 게 죄고 내가 강의하고 돌아다니는 게 이게 죄다. 설교한 게 죄고 복음 전한 게 죄였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거에요. 내가 살아있는 게 죄다. 왜 살게 했는가? 주께서 아담의 죄 때문에 살게 해주신 거에요. 그걸 이제 제자들이 표징이 된 겁니다. 이제 와서 제자들이 이야기하지요. 성령 받고난 뒤에 잘했어요 우리 주님 짝짝짝짝. 잘했어요. 아 그 말이 그 말이구나. 무너지고 몇 일 뒤에? 3일 만에. 아 이게 사물체 건축물이 아니구나 이게. 보이는 것은 표적이고 진짜는 그 안에 인물을 이야기하는구나. 홀로 이루어진 인물. 예수님이죠.

그 다음에 너희는 기도하는 집, 장소가 기도원이 아니고 예수님 안이 기도하는 곳이에요. 그다음에 47절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방도를 찾기 못했다는 말은 안 죽였다는 말이 아니고 요한복음에 나와요. 때가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에. 벽에 공격을 가할 때가 성경의 순서가 있어요. 큰 스케줄에 의하면 때가 돼야 이 변수가 도달, 도착하게 되어있어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때가 되야 은혜가 오던지 성령을 받던지 하는 거에요. 때가 되야. 말씀을 깨닫든지. 내가 죄인인 것을 아는 것도 때가 돼야 되는 거에요. 때가 되었습니까? 그럼 때 되기 전에 우리는 마냥 기다리는가? 그냥 기타에 지판에 그냥 음표로써 조용히 있으면 성령께서 댕~ 누르시고 딱 눌러서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전체의 일부에 속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댕~ 하고 울려버리면 다른 선을 댕~ 하고 울리는 선이 같이 저쪽에서 하는 복음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이게 서슴없이 징후와 징후가 서로 만나는 희한한 현상이 나옵니다. 너 어떻게 알았어? 당신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때 나오는 노래가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이렇게 나오죠. 그래서 항상 진리는 미리 아는 게 아니고 뒤돌아봐서 진리라는 것을 파악하게 되어있습니다. 지나고 난 뒤에 뒤돌아봐서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확정되었고 결정되어 있는데 우리는 무엇이 결정되었는지 무엇이 확정되었는지 아직 남은 생애가 있고 구원될 천국이 있기에 다는 모릅니다만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십자가에서 나오는 이 능력이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친히 주께서 이끄신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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