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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6강-스가랴 6장 1-8절(네 천사의 기능) 231101 -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스가랴

16강-스가랴 6장 1-8절(네 천사의 기능) 231101 - 이 근호 목사

하나님 말씀은 스가랴 6장 1절에서 8절까지입니다.
“내가 또 눈을 들어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왔는데 그 산은 놋산이더라, 첫째 병거는 홍마들이, 둘째 병거는 흑마들이, 세째 병거는 백마들이, 네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흑마는 북편 땅으로 나가매 백마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편 땅으로 나가고,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 아멘.

여기에 말들이 나옵니다. 첫째는 홍마, 붉은 말. 둘째는 흑마, 셋째는 백마, 넷째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 어룽지고 건장한 말이니까 이것은 여기에 나중에 보면 두말인데 이걸 한 말로 처리하고 취급합니다. 그래서 네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네 말이 나오는데, 물었죠,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라고 할 때 알지요. 스가랴도 이게 천사라는 것을 압니다. 알지만 “어떤 무엇 때문에 어떤 기능 때문에 무슨 일하기 위해서 이 땅에 출현했고 등장했습니까?”라는 그런 취지죠.

거기에 대해서 천사가 대답하되 “이는 하늘에 바람이다” 이렇게 했어요. 바람. 바람이니깐 바람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두 산에서 나온다” 되어있어요. 1절에 보면 “내가 눈을 들어 본 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왔는데 그 산은 놋산이더라.” 두 산인데 그 두 산을 이것도 연합해서 하나의 산으로 규정을 놋산이라고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바람이 나온다는거에요. 바람은 원래 나왔던 자리로부터 방향성을가지고 이 땅을 두루 다니다가 도로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그러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게 전도서 보면 1장 6절에 보면 바람에 대해서 이렇게 하고 있어요. 바람은 남에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불던 바람이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는거에요. 그럼 바람이니까 바람은 인위적으로 말리거나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부탁을 하거나 그러한 대상이 아니에요.

바람의 특징은 임의로 부는거에요. 이걸 제가 어떤 설교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고하는데 하나님이 불어 제끼는 그 바람을 인간이 뭐 말릴 수가 없습니다. 천사가 활동하는 것이 마치 바람 같아서 인간의 손에 놀아나지 않는 일방적인 기능을 하고요. 특히 이 바람에 대해서 인간의 의견이 거기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이걸 쉽게 말해서 융통성이 없다 하는데, 바람은 그냥 바람이 불어오게하는 그 지시대로 움직이는겁니다.

그러면 이 바람은 어디서 나오는가? 두산 사이에서 나왔는데 이 두 산은 어느 산이냐 하면 스가랴 14장 4절에 보면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이렇게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여기는 두 산은 하나는 예루살렘, 또 하나는 감람산 두 산 사이에서 바람이 붑니다.

근데 그 바람이 부는 그 곳에 스가랴 14장에 보면 메시아가 거기에 등장해서 거기에 홀로 서 계실 두 산 사이에 두 다리 딛고 거기 세워지는거에요. 예수님은 한 분이지만 한 분의 기능을 두 개로 나누어서 하는겁니다. 두 기능이 여기서 나오는데 예수님의 기능이 뭐냐면 구원하는것과 심판. 근데 순서는 심판부터 먼저하고요, 심판하시고 그다음에 심판을 하시면서 그다음에 심판 다 끝나고난 뒤에 구원하시거든요. 주의 이름 외에는 다른 이름으로 구원 못 받기 위해서 심판해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하실 때 거기서 나오는 바람, 천사, 네 천사의 기능을 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나누느냐 하면 천사 기능 중에 하나가 구원하는게 있는데 그거는 심판이 선행되고 난 뒤에 구원하는 기능이에요. 그렇게 볼 때 여기에 6장 1절 보게 되면 여기 이제 심판의 기능을 우선한다는 것으로 “그 산은 놋산이라”, 놋. 놋이라는 것은 아주 단호함을 이야기해요. 요지부동, 단단함을 두고 얘기하는겁니다.

이것은 다니엘 2장 39절에 보면 왕의 후에 왕보다 못한 놋 같은 나라가 등장하는데 이렇게 해서 여기에 단단한 나라 앞에 나라를 쳐부술 정도로 단단한 나라. 금보다는 놋이 강하고 놋보다는 그 뒤에 네 번째 나라가 강해요. 철. 분명히 첫 번째가 강하지만 영광스럽기는 첫 번째가 영광스럽지만 영광스러운 그 바벨론을 쳐부수는 것은 메데바사, 헬라마케도니아, 로마 점점 더 덜 천박하지만 앞에 것을 쳐부수기 때문에 철 같은 그런 나라들이 이제 나오는겁니다.

그만큼 완고한 나라들이 온다 이 말이에요. 그런 나라 오더라도 주께서 그런 나라 완고하고 고집 세고 교만한 나라를 일부러 깔아둔 이유가 다니엘 2장 34절에 보면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강력하고 강력, 더 강력한 더 강력한 나라들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의 바람이 불어버리면 그 강력한 인간 나라마저 더 강력한 태산, 주의 나라가 임한다는 이야기를 여기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게 다니엘의 일이거든요. 다니엘이니까. 다니엘은 구약이죠. 구약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시간적 순서가 전과 지금과 후로 이렇게 나누는 거에요. 역사 위에 민족들이 누워있다고 보면 돼요. 근데 신약에 오면 이게 딱 서 있어요. 수직적으로 서 있죠. 다시 스가랴 6장에서 보게되면 여기 6장에 나오는데 첫 번째 병거는 홍마가 나오거든요. 홍마 나오는데 홍마가 나오기는 나오는데 기능은 여기서 뒤로 배후에 빠집니다. 감추어져 있어요.

둘째가 흑마가 기능이 나와요. 흑마의 기능은 뭐냐하면 6절에 보면 북쪽 땅에 가는 거에요. 이스라엘 북쪽 땅은 뭐냐? 바벨론이에요. 이스라엘 성소를 불태우고 이스라엘을 잡아갔던 그 북편. 이게 이스라엘을 손대고 공격했으니까 색깔이 어두워요. 어두운 겁니다. 근데 그 어둡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이에요. 어둠에 대해 호되게 심판하는데 뭐로 심판을 시키느냐? 흑마를 보고 심판하라고 누가 시키는가?

그 뒤에 백마가 바벨론보다 더 힘이 세고 결국은 승리자가 될 백마가 흑마 따라가는 그 바벨론에 뒤따라가게 되어있어요. 바벨론은 어두운 세계다 이 말이죠. 어둡다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그 뒤따라가는 흰말이 그렇게 규정 할 것이다. 그다음에 어룽진말은 어디로 가느냐? 남쪽으로 가요. 남쪽엔 애굽이 있어요. 애굽은 이스라엘이 처음 나왔던 곳입니다. 그리고 북쪽 바벨론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와해되어서 소실된 곳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수평적으로 지역적으로 평면상 지도상 이스라엘 두고서 시작은 애굽에서 시작했고 소멸은 바벨론 소멸되는겁니다.

시간의 시작과 끝을 이스라엘 중심으로 설명해 나가는거에요. 그래서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바람은 뭐냐? 처음 나왔던거로 도로 회수해서 되돌아가는거죠. 세상에 수평적이고 평면적인 모든 민족들을 심판에서 없애버리는 기능을 무사히 완료하고 그래서 천사는 자기의 처음에 불었던 그 바람, 예수님이 계시던 주로 계실 그곳으로 되돌아갑니다. 그곳이 뭐냐하면 성전이에요. 하늘의 성전입니다. 성전에서 나와서 그들을 다 소멸하고 성전으로 돌아가는거에요.

그러면 그 산에 그 심판하는 산을 놋산이라 했거든요. 이 놋이라는 것은 출애굽기 38장에 보면 제단이 놋으로 만들어졌어요. 놋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그 제단은 거기다 무시무시한 맹렬한 불이 타는 곳이 제단이에요. 그걸 놋으로 만들었어요. 맹렬한 불로서 심판해버리고 거기에 있는 제물은 홀라당 다 태워버리는겁니다. 죄라는 것은 죄다 다 태워버리는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놋 산이 등장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체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에요.

만드는데 지상의 성전은 더 이상 안 만들어요. 지상을 심판하는 그 기능이 담긴 하늘의 성전을 만드시는 겁니다. 하늘의 제단인 놋 제단을 만들기 위해서 그 놋 제단을 위한 심판기능이 천사들을 통해서 했고 그 천사들은 바람같이 하늘에서 이 지상으로 자기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와르륵 쏟아져 바람같이 모든 민족위에 다 흩어지는겁니다. 특히 이 건장한 말은 7절에 보면 두루 다닌다 했어요. 두루 다닌다 하는 것은 놋 산에서 나오는 그 심판기능에서 피할 민족이나 피할 지역이 이 수평적 지리적 평면적인 지구상에는 아무데도 없다는 거에요.

모든 것들이 다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뭐냐? 홍마가 하는 기능이 없어요. 홍마가. 이 홍마의 기능이 분명히 말을 언급해놓고 네 종류의 말을 언급해놓고 홍마는 여기서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것은 숨겨져 있는거에요. 심판기능 뒤에 숨겨져 있는 피 흘림. 주님의 피 흘리심을 보여주는거에요. 주의 피 흘리심을 색깔로 이야기하면 붉은거고 주께 피 흘리시는 그 기능을 말로 표현한다면 붉은색 말이 되는겁니다.

신나게 이 세상을 심판하고 난 뒤에 그게 하나의 결과라면 신약에 와서 홍마의 기능이 선두에 서게 되어있습니다. 홍마의 기능이. 그때는 홍마가 아니고 백마가 되는겁니다. 이게 요한계시록 6장에보면 여기에 네 말이 또 등장해요. 요한계시록에서는 흰말 붉은말 검은말 청황색말 이렇게 나옵니다. 스가랴에서는 홍말 흑말 백말 어룽진 말 이렇게 되어있어요. 순서가 요한계시록은 흰말이 먼저 등장하고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 나옵니다. 이미 승리했다,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 다 승리했다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승리했으니깐 흰말이죠. 예수님은 승자가 되었다는 기능을 색깔로 표현하면 흰색이에요.

그러나 스가랴는 구약이기 때문에 희생의 홍 말을 앞장세우되 홍 말의 하는 기능에 대해서는 심판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거에요. 심판하는가운데 구원에서는 입을 다물고있는거에요. 그래서 스가랴에서는 홍말 흑말 백말 어룽진말 이렇게 되는겁니다. 그러면 이 심판의 기능을 하는데 말이 왜 세필이 필요하냐, 그것은 요한계시록 8장 7절부터 쭉 보게 되면 좀 길더라도 참으시기 바랍니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세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네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이 삼분의 일이라는 것은 각자 천사의 기능이 각자각자가 삼분의 일씩 담당해서 종합하면 [삼분의일 + 삼분의일 + 삼분의일] 하면 전체가 되는거에요. 그러면 왜 그렇게 하느냐. 여기 스가랴에서는 이게 평면적이거든요. 평면적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해서 이스라엘 약속의 땅이 있으니까. 쫓겨났지만 약속의 땅이 있으니까. 여기서 이스라엘 남쪽에 이스라엘 남쪽엔 애굽 처음에 이스라엘이 나왔던, 그리고 이스라엘을 소멸시켰던 북쪽 바벨론 이렇게 해서 세상을 삼등분 할 수 있는거에요.

구약에서는 평면적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는 평면적이 수직적이 되어버려요. 수직적. 그래서 수직적으로 주께서 삼분의 일씩 담당하는 천사가 작살을 내던 그 기능이 이게 누워있던 기능을 세워버리면 이게 수직적이 되면서 이 세상에 대해서 위에서 삼중으로 되어있는 껍데기를 잘라보내는거에요. 껍데기를 잘라보내는겁니다. 그래서 전부 다 날려보내요. 그러고보면 남는게 뭐냐. 티눈같이 남는게 있어요. 그게 뭐냐? 바로 십자가 사건. 땅에 있는 십자가 사건. 그리고 위에 있는 완공된 성전에 있는 어린양의 죽음. 이것과 연관되어 있다는거에요.

이 세상이. 수직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를 뭐라고 하냐면 시간이 흐르는 평면으로 보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 가기 때문에 “십자가 사건? 그거 옛날 이야기다.” 이게 구약적 발상이에요. 신약은 뭐냐 하면 이미 우리는 죽었고 우리 생명은 하늘에 있는지라. 하늘에 있는 생명이 이 땅에 죽음, 이 땅에 우리가 죽음을 야기한다는 것과 관통돼 직결되어 있다는거에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빌립보서 3장 20절 말씀. 아직도 성경을 보면서 구약적 안목으로 해서 ‘이 땅에 살다가 죽으면 천당 간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신약에는 그런게 없어요. 그거는 구약에나 있는거에요.

신약에서는 이미 이 땅은 살아도 우리는 죽은 자고 우리가 이 땅에 죽은 자이지만 사실은 살아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거에요. 그러면 이 구약에 이러한 삼분의 일에 구분되어야 되는 이 심판의 기능은 이게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하나님이 이 땅을 구약 때 방문하는 방법이 뭐냐? 이스라엘과 동행해서 구약을 방문하는 거에요. 그거를 약속이 있는 유일한 민족, 언약이 있는 유일한 민족으로 방문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히브리인들, 애굽에 사는 히브리인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라 했어요. 데리고 나올 때 그때 애굽 바로 왕이 마음이 강퍅해 졌거든요. 강퍅할 때 그때 열 재앙을 내린걸로 되어있습니다. 열 가지 재앙을. 열 가지 재앙인데 사실은 아홉 가지 재앙으로 봐도 괜찮아요. 이 열 가지 재앙이 뭐냐? 처음에 나일강물이 피가 되는 것, 두 번째 개구리 밥상 위에 올라오는 것, 세 번째 이, 모기라 할 수 있는 이가 들끓는 것. 네 번째가 파리 윙 날라가는 파리. 다섯 번째가 악질, 그 다음에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마지막에 열 번째가 장자의 죽음. 이렇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1, 2, 3, 4의 재앙은 나일강에 피 되는 것, 개구리, 이, 파리는 일시적인 생활에 불편을 주는 재앙이 되고요. 그다음에 직접 신체에 가축이나 인간의 시체를 공격하는 것은 악질과 독종 두 가지이고요. 나머지는 창조 질서 자체에 대한 파괴를 시키는 그러한 재앙이 우박 메뚜기 흑암입니다. 그러면 이걸 열 가지 재앙을 역시 삼등분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열 번째 재앙 장자의 죽음에 대해서는 왜 언급을 안 하느냐? 장자의 죽음은 이거는 뭐냐 하면 장자의 죽음은 어떻게 이해되느냐 하면 1, 2, 3, 4 그러니까 나일강이 피 되고 개구리가 밥상 위에 올라가는 것은 애굽의 술객들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애굽의 술객들이 못 하는게 뭐냐 하면 바로 이, 모기가 들끓는 것은 술객들이 못했어요. 이, 파리까지 일시적 생활에 불편을 주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면 네 번째 파리. 파리재앙까지는 히브리인들도 재앙을 당하고 애굽인들도 재앙을 당했어요. 그런데 다섯 번째 악질은 출애굽기 9장 6절에 나오는데, 이 악질은 애굽 사람들은 악질이 다 오는데 히브리인들이 사는 동네에는 악질이 오지 않았다고 차별화 되는겁니다. 이스라엘과 애굽 사이에 차별화 되는거에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착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는 재앙을 유보, 유예 시켜놨어요. 나중으로 돌려놨어요.

왜 유보 시키는가?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 뭐냐 하면 장자의 죽음이지만 사실은 이게 뭐냐? 어린양의 죽음이에요. 애굽과 이스라엘 사이에 왜 하나님께선 히브리에게 재앙을 안주느냐 하면 거기에 어린양의 죽음이 끼어들기 때문에 그러는 거에요. 장자의 죽음이 이스라엘에게 오지않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죄가 없다가 아니라 대신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되는거에요. 그 대신 이스라엘의 장자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재앙이 유보되었다고 했는데 그러면 왜 유보되었다고 하느냐, 출애굽기에 이제 그들이 히브리인들끼리 나와요.

이스라엘 되 가지고 홍해 건너와서. 그럴 때 출애굽기 15장 2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다. 치료가 뭐냐 하면요, 애굽 사람들처럼 나 중심으로 살다가 치료가 뭐냐 하면 나하고 말씀하고 바꾸는걸 ‘치료’라고해요.

약속과 나를 완전히 맞바꾸게 하는게 치료입니다. 그동안 애굽사람들은 나 위해서 살았잖아요. 히브리인들은 자기 위해 살았어요. 그런데 재앙을 줄 때 둘 다 자기 위해서 사는 것에 대해서 특별히 히브리인들은 재앙이 안 오도록 다섯 번째 재앙부터 오지 않도록 조치를 한 거에요. 왜? 치료가 뭔가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알려주기 위해서. 지금 이 스가랴를 보게 되면 스가랴에서 천사들이 활동을 합니다. 그 천사가 하는 활동이 뭐냐? 이스라엘을 완전히 다 해체되었어요. 완전히 다 깨졌어요. 뿔뿔이 다 흩어졌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스라엘 해체되었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그러면 성취되지 못 한거냐?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해체하는 그 자체가 말씀 안에 완성으로 보는거에요. 왜냐하면 천사가 모시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뿐이에요. 예수님이 말씀의 완성이니까. 마태복음 4장에 예수님이 마귀한테 시험받을 때 시험받고 제일 끝장면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기록되었으되 너희 주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절에,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 드니라.”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 드니라. 천사는 바람이고 바람을 보내신 것은 예수님이고 그 천사의 기능은 융통성이 하나도 없어요. 했고 다 기능하게 되면 어디로 가느냐? 다시 예수님 쪽으로 다시 소환되고 예수님 앞에서 섬기게 되어있어요. 천사들이. 이사야 6장에 보면 날개 6개 가지고 찬양하게 되어있습니다. 이제 그 일을 거기에 누가 합세하느냐? 성도들이 합세할 거에요. 근데 그전에 그러면 왜 인간들을 심판하느냐?

심판들은 이렇게 이스라엘이 와해 됨으로써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율법으로 바꾸는데 실패 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특히 이스라엘에게 놋 제단이 있었잖아요. 그 놋 제단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말씀 놋 제단, 그 성전 자체를 하나님께서 구원하기 위함인거에요. 놋 제단. 그 심판. 그런데 열왕기상 1장 50절 53절에 보면 그 다윗 죽고 난 뒤에 왕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대해서 아도니야 하고 솔로몬하고 경쟁하게 됩니다.

할 때 이미 다윗의 약속에 의해서 솔로몬에게 가게 되어있어요. 왜냐하면 왜 솔로몬이 다윗 다음에 후계자 되어야 되느냐 하면 솔로몬은 다윗의 죄에서 나온 자에요. 다윗의 죄와 그 죄를 사해줬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를 용서한 용서의 결과물이 솔로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셔서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서 다윗으로 하여금 지은죄를 용서한 거에요.

그 결과로 나온게 솔로몬이며 다윗의 유지, 하나님과 다윗의 만남의 취지를 이어가는 것이 솔로몬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아도니야가 제단 뿔을 받아요. 50절에, “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으니” 제단 뿔을 왜 잡느냐 하면 이게 보통은 인간들이 말씀을 대할 때 이 말씀의 효력을 본인이 이제 미리 짐작하고 말씀 붙들면 자기가 구원받는다고 생각한 거에요. 그 짓을 아도니야가 한 거에요. 제단 뿔 잡았으니까 여기서는 제단은 용서하는데니까 괜찮겠지했지요. 솔로몬이 53절에 끌어내여 죽여버려요. 사정없이 죽여버리는 거에요. 이게 제단의 기능이에요. 제단 뿔의 기능입니다. 놋 뿔의 기능이에요.

인간이라고 다 인간 아닙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그 사이에 애굽과 이스라엘 사이에 어린양이 끼어들 듯이 주님의 어린 양의 작품이 되지 아니하면 그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요. 오늘날 사람들이 제일 큰 문제가 뭐냐? 본인을 사람으로 여기는게 가장 큰 문제에요.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에 이 사람이, 내가 나중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쉬지도 않고 자기가 누구인가를 찾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지난 월요일날 제가 허 병원에서 대장 내시경을 했습니다. 대장 내시경 이제 환자복 갈아입고 여기에 혈관을 늘이는 링거 같은 그걸 주사기로 꼽으면서 내시경하는 그곳에 갔지요. 간호사가 시키는대로 다리 오므리고 구부리고 뭐 시키는대로 다 했어요. 하면서 간호사가 서있고 나는 침대에 구부리고 있으니까 간호사 얼굴이 누군지 몰라요. 근데 간호사 복장은 둘이 보였습니다. 아, 두명이 이야기하는데 무슨 이야기하느냐 하면 이 의료에 관한 이 시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거에요. 아직 의사 선생님은 등장하지 않았아요. 딱 보고 있는데 한 간호사가 내 혈관을 확장하는 그 주사에다가 진정제, 마취를 딱 주사했어요.

그래서 제가 계속하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마지막 순간에 본 것은 타인의 모습이었습니다. 타인의 모습이었어요. 인간의 죽음은 이래요. 자기 모습을, 끝까지 자기가 누구인지 몰라요. 남들만 보면서 살아가요 남들만. 물론 거기서 예수그리스도 못봤어요. 의사 선생님도 못 봤고요. (잘 안들려서 생략) 그런데 인간은 이처럼 끝까지 자기가 모르는채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숨을 거두어요. 죽어요. 살아오면서 인간들이 하는 일은 내가 누구냐를 계속 남들한테 물어보는겁니다. 타인이 나의 자화상이에요. 자화상. 타인의 모습을 자기 모습인냥 자꾸 찾고 있습니다.

어떤 노래보면 이런 노래가 있어요. 나는 나를 아끼고 싶다 이 말이죠. 그런데 어떤 사랑하는 애인이 떠나간거에요. 나는 나를 아끼는데 근데 그 애인이 나한테는 천사 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그 떠나간 천사 같은 애인을 찾기 위해서 어디 가서 이 천사를 찾느냐 하고 찾아 헤매는데 도대체 찾을 수가 없어요. 근데 그쪽에 여자가 애인이 하는 말이 쉽게 찾을 수가 있다는거에요. 니 마음속에 있는데 조용하게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는 겁니다. “전에는 천사를 찾아서 방황하는 나의 예전의 옛 모습을 자꾸 찾아보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어 혼자된 기분은 그냥 착각이었다는것을.” 이제 느끼는거에요.

아, 내가 사랑을 제대로 시작하면 내가 외로웠고 그 외로움의 시작은 사랑의 끝인 것을. 나는 너 있을 때 언제라도 넌 내가 원하는걸 다 줄 것 같았고 그때 나한테 고맙게 했다하는 것을 나는 당연한 걸로 여겼다는거에요. 이제는 느낀다는 거에요. 사랑의 시작은 외로움의 끝이다는 사실을. 가사 들은 사람 이게 무슨 노랜 줄 아시겠죠. 룰라가 불렀던 날개 잃은 천사에요. 사바사바. 아 그럴 거야. 나를 아낄려고, 이걸 빨리하면 “아그럴거야나를아낄려고”부터 시작되는 노래에요. 인간이 천사를 찾아가는거에요.

그러나 그것은 성경에서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인간을 배척해 보려요. 천사가 찾는 것은 이삭입니다.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창세기 18장에 나와요. 창세기 18장에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자식이 없애버립니다. 자식이 없어요. 아브라함에게 사람 같은 사람이 없어요. 하나님은 약속을 하니까 아브라함은 약속을 억지로 인간적으로 이룬다고 좋아하고 하갈하고 관계해서 이스마엘을 낳았거든요. 그거 하늘나라에서 인정 안 해줍니다.

왜냐하면 그거는 바로 내가 원하는 타인의 모습이거든요. “나한테 자식 있다.” 이거 안 받아줍니다. 자식은 그 나한테 난 자식은 내가 인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자식을 낳아야 돼요. 나는 애초부터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에요. 약속의 아들 빼놓고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서 심판하는 겁니다. 성전 자체가 심판기능을 갖고 들어가잖아요. 제단부터 먼저 만나니까. 18장 2절에,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여기서 세 명의 천사가 등장합니다.

세 명의 천사가 등장하는데 이 천사가 네가 내년에 아들 낳는다 하니까 그때 사라가 피식 웃었지요. 불가능한거니까요. 여기에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약속이 인간에게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인간은 끝까지 내가 어느 정도며 내가 어느 정도 가치가 있으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내가 하는 그 기능으로 나는 ‘이것이 나다’라고 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간은 죽을 때 까지 못버리고 있는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죽어야 되는거에요.

그게 하나님의 그게 이스마엘 요소가 이삭을 방해하고 감추기 때문에 그래요. 주께서는 숨어있는 이삭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거기에 있는 이스마엘 같은 우리 자체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시기 위해서 심판해버리는 겁니다. 너 말고 나.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찾는 거에요. 약속을 갖고 태어난 것은 이삭이지 이스마엘이 아니에요. 이스마엘은 그 안에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뜻이 담겨 있어요. 그건 제거 대상입니다.

약속과 바꿔치기하는 것. 하나님께서 신약에 와서 하나님께서 귀신을 만나요. 귀신을 만날 때 누가복음 8장 30절에 예수께서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니깐 “귀신이 가로되 군대” 다수, 다수, 많은 수라고 했어요. 이것은 인간은 나라는 것은 없어요. 그저 그렇고 그런 다수의 다수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 이름은 군대입니다. 여럿이에요. 유일한 이름이 아니에요. 그렇고 그런 다수의 이름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그 다수의 이름을 요소를 취득해서 그 조합들, 그 파편들을 모아서 평생을 자기한테 짜깁기해서 모자이크 처리해서 짜깁기해서 얼룩덜룩한 그래서 어룽진 거에요. 얼룩덜룩한 것. 온 땅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베려놓은 옷을 입었는지 전부 얼룩덜룩해요. 통일성이 전부 다 혼합, 하이브리드 같애, 전부 다 혼합된 어느게 내껀지 니껀지 구분도 안되는 수입품들을 가지고 자기를 치장을 하고 있는거에요.

아롱진 말과 온 땅을 살펴야 될 건장한 말이 한 팀을 이루어서 한 조를 이루어서 세상은 어떤 확정된 정체성이 없는 걸로 확정 짓고 심판해버립니다. 이런 가짜. 내가 만든 인간 아니에요. 진짜 하나님 만든 인간은 군대가 아니고 딱 한 분이에요. 이삭. 하나님의 약속이 예언 된 사람. 이삭. 그리고 그 이삭의 이름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삭, 약속이에요.

예수님의 이름. 우리가 뭘 해도. 우리가 뭘 해도 어떤 인간이든 남자가 되든 여자가 되든 뭐 어떤 직업을 갖던 간에 전부 다 예수님의 소유에요. 예수님의 것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내가 누구냐? “예수님 겁니다”라는 천사와 같이 “예수님께서 주신겁니다”라고 하면 돼요. “예수님의 몸의 지체입니다” 이러면 된다 이 말이죠. 다른건 필요 없어요. 그러니깐 하나님의 약속과 우리 몸을 바꿔야죠. 맞바꾸기를 해야죠. 그게 치료입니다. 치료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심판을 할 때 나의 모든 것, 이스마엘로 인하여 이삭이 가려졌다 이 말이죠.

이스마엘을 뜯어 내는거에요. 뜯어낼 때 내가 알았던 모든 것을 무효화 시키는 거에요. 내가 알고 했는 것 내가 경험한 것 모든 것을 무효화 시키면 그때부터 공포와 불안도 같이 뜯겨져 나가버리는거에요. “너 누구야?” “주님의 사람이잖아요.” 이거하고. “너 누구야?” “잡다함입니다.” 다르죠. 이것저것 이것저것 했습니다. 이것저것 했습니다. 이게 천사가 사정없이 폭격을 하는 이유가 마치 병원 밑에 하마스 사령부 설치해 놓은게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 시대는 잡다함이고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도와주기 때문에 자애와 사랑과 인자함이 넘쳐요. 사정없이 주님께서 그걸 폭탄으로 다 자애와 사랑과 우정을 다 박살내버리는거에요. “보자, 이삭 한번보자.” 이스마엘을 박살냄으로써 이삭이 거기에 가리워진 이삭을 보는거에요. 그 이삭은 바로 약속에 의해서 우리 택한 백성의 육신을 위해서 대신 희생되어야 될 모리아 산에 희생되어야 될 그 기능. 주님의 기능을 보여주는 이삭. 그 이삭부터 새로 시작하는겁니다.

이거는 인간의 가능성이 아닙니다. 주님만이 타인의 내가 누군지를 제대로 지적할 수 있는 유일한 타인은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천사를 찾아간다고요? 사바사바? 엉덩이 두드려가면서? 아니죠. 천사가 찾아오죠. 찾아와서 박살내는 겁니다. 내가 이 잡다한 타인의 것, 수입품들, 여러 가지 남들 모방하는 것, 세상 흉내 내기. “저게 내 모습인가? 아, 저게 내 모습인거같은데? 아니야 저게 내 모습인데.” 나를 구성하기 위해서 내가 하나의 절대자로서 만들기 위해서 이것저것 끌어모으는 아롱진 것, 황갈색 잡다한 것 주께서는 이것을 다 폭파해 버립니다.

재앙을 통해서 기근과 흉작과 전염병과 페스트, 코로나. 우리가 의지했던 돈과 건강과 체면과 위신, 사정없이 천사를 보내서 다 뜯어가지고 속이 시원하게 뜯어가주면 우리 속에 달랑 남아있는 것은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에 내 소유에서 주의 소유로 바뀐 하나님의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 그 여호와의 백성 그 뿐입니다. 그게 바로 천국에 갈 기능을 천국에서 이룰 성전을 우리는 아직도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의 말씀의 대상이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이스마엘 같은 나를 건지는게 아니라, 우리 속에 들어오신 말씀 자체를 건지시고 주님을 건지시고 다 이루었음을 건져내시는 그 작업에 참여하게 해주신 이 기능을 하나님 앞에 도리어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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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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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