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강의(448강/449강) 기억, 만남 231024강의히브리서

448강-YouTube강의(기억 히브리서 8:12)20231024-이 근호 목사

제448강, ‘기억’. 기억의 장치가 인간 두뇌 안에 있죠. 해마라고 해서 기억장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만 기억장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도 기억장치가 있어요.

하나님의 기억장치가 뭐냐? 제사라는 겁니다. 그게 히브리서 10장 3절에 보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제사를 할 때 사람들의 정성을 받는 게 아니에요. 죽어야 될 걸 받아요. 인간은 정성을 바침으로서 내 죽는 것을 유보해달라는 식으로 뇌물을 바치죠. 하나님께 뇌물을 바치는 겁니다. ‘바칠 것 바쳤으니까 저 더 다치게 하면 안돼요. 저 아프게 하면 안돼요. 하나님이 달라는 거 드렸으니까 제 인생 힘들게 하면 안돼요.’라는 식으로 딜(deal)을 한다 하죠, 거래하는 식으로 바치는 게 있어요. 그게 바로 바알한테 우상 숭배할 때 그렇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그렇게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자기가 안 다치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약속의 땅에 이미 들어왔거든요. 다시 이 땅에서 나가기가 싫은 겁니다. 지키고 싶은 겁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땅 없이 집 없이 돌아다닌다는 것은 아주 끔찍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그 땅이 원래 하나님 땅인데 사람들은 그걸 자기 땅으로 생각한 거예요, 이스라엘이. 자기 땅으로 생각해서 이걸 지키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압박을 가합니다. 압박을 가하는 그 동기가 있어요. 약속의 땅에 와보니까 주변 나라가 더 잘 살아요. 그래서 조사를 해본 겁니다. 하나님 믿는 우리보다 저쪽이 왜 더 잘 사냐?

보니까 신이 달라요. 신이 어떻게 다르냐 하면, 약속의 땅에 원래 있던 신들을 섬긴 겁니다. 그때 사람들은 ‘아, 땅마다 주인이 있는데 주인이 그 땅의 신인데 우리는 애굽에서 알던 외래 신으로 들어왔다. 그렇다면 외래 신과 원래 토착민의 신하고 안 맞을 수가 있다.’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주변 나라에 대해서 매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잘 들으셔야 돼요.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제공한 것은 부자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균등하게 되는 걸 말합니다.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나 그리고 가진 자라 할지라도 얼추 비슷하게 사는 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모든 땅 주인이 여호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땅이 없어요.

그런데 주변은 자기 소유가 있어요. 자기 재산이 있다고요. 재산이 있으니까 재산은 남의 재산과 자기 재산을 늘 견주어보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주변에 있는 재산 관리해준다고 해서 고아나 과부의 재산을 자기가 넘봐서 자기 재산으로 전환시키지 아니하면 자기 재산이 늘어나지 않게 되어 있어요. 인간의 노동력은 한계가 있고, 일해서 돈 버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닌 이상 기본 농경시대에서는 고만고만해요. 농사기술이 뛰어나고 그런 거 뭐 없습니다. 농기구가 발달하고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먹을 만하고 살만하거든 됐다는 게 여호와의 입장이고, 토착민들이 믿는 바알 신은 그게 아니었어요. 상대방 것을 빼앗지 아니하면 내가 부자 안 된다. 부자가 안 되니까 자기한테 결핍을 느끼는 거예요. 야망의 결핍, 욕심의 부족함을 늘 느끼는 겁니다.

참을 수 없죠.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벌여서 노예를 가지고 노예가 대신 노동하고 자기는 또 전쟁기계를 구입해서 또 더 넓은 영토를 추구했던 것이 주변 나라들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영토 확장 전쟁에 나섰던 거예요. 거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약속의 땅을 딱 보니까 여호와 믿는 것보다 다른 바알을 믿는 것이 훨씬 더 잘 산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걸 어디서 확인하느냐 하면 무기가 월등해요. 여호와 믿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강조하는 것은 율법 지키라 했습니다. 그러나 주변 나라에서는 군대도 많고요, 군사 무기도 철기 문화에요. 청동기하고 철기하고 시합하면 청동기는 다 구부러지죠, 무기가. 재질이 다르니까.

그러니까 항상 위협을 느끼는 겁니다. 쳐들어오면 늘 당할 것 같아. 무기 체제라든지 모든 것이 너무나 하찮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제사장은 그냥 제사하는 것 믿고 선지자 믿고 그냥 여호와 믿으라. 믿으면 뭐 대책 나옵니까? 실제적인 힘이 있어야지, 힘은 없는데 그냥 믿으래.

그래서 차라리 그들은 힘을 채택하는데 방법은 뭐냐? 바알 신을 섬기는 거예요. 바알 신은 인간이 조정하기에 따라서 응답이 재깍재깍 이루어지는 신입니다. 얼마나 정성을 들이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주어지는 신. 바치면 복 받는 거죠. 누가? 바친 내가 복 받아요.

바알이 좋아한다? 바알은 안 좋아해요. 여호와 믿는 이스라엘은 여호와 좋기 위해서 백성이 된 거예요. 내가 좋기 위해서 결성된 게 아니에요. 그러나 바알이나 다른 신들은 신을 선택하고 결정한 내가 잘난 존재가 되기 위해서 신을 믿는 겁니다. 본성상 어느 신이 친근할까요? 우리의 본성상. 바알이죠. 그래서 이스라엘은 양다리 걸친 겁니다. 겉으로는 여호와, 속에는 바알 요소를 다 집어넣은 거예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레위 사람들에게 굉장히 실망을 했는데, 레위 사람들도 문제가 있어요. 그들이 드리는 제사 있잖아요. 이 제사가 이스라엘이 그렇게 망할 줄 알고 드리는 제사였던 겁니다. 제사는 살라고 주는 게 아니고 죽여서 주거든요. 왜 죽여서 주라고 했을까요? 우리가 우리의 죄성으로 나기 전부터 우리는 죽어 마땅한 존재인 것을 미리 제사 속에 담기게 한 겁니다.

그걸 바로 율법이라 하는 거예요. 율법은 우리가 느끼고 체험하지 못했지만 우리의 본성을 직접 겨냥해요. 따라서 율법과 가까이 하게 되면 한 꺼풀 두 꺼풀씩 우리의 본성이 드디어 들춰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제사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절,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나게 하는 거예요. 생각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사는 하나님의 기억법이에요.

그러니까 이 제사가 반복된다는 말은 제사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거든요. 죽어나가고 죽어나가고…, 양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양, 소, 염소, 계속 죽어나간다는 것은 우리의 죄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뜻입니다. 각혈하는 사람이 멈춥니까? 기침하는 사람이 안 멈추죠. 죄 씻었다고 죄가 안 나옵니까? 끊임없이 쉬지도 않고 죄가 나와요.

그러면 이 제사가 스톱이 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에 의하면 제사가 스톱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너에게 죄가 안 나오는 조치를 했다는 뜻이거든요. 스톱이 되니까. 그게 우리에게서 죄가 안 나오는 게 아니에요. 히브리서 8장 12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 드려서 구원받는 거 아닙니다. 제사 자체를 통해 하나님의 것이 이스라엘과 접촉이 되면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드러내는 데에 이스라엘을 철저하게 이용한 거예요. 아무리 해도 죄밖에 안 나오는 것들을 통해서, 내가 왜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제사법이라는 것을 제공했는지 제사법의 그 취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죄짓는, 한없이 죄짓는, 아주 더 깊이 죄짓는 이스라엘을 이용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죄를 진열하고 토해내는 역할만 했을 뿐이지, 그거 했다고 구원받는 건 아니에요.

그럼 구원은 어디 있나? 율법, 제사법 자체 내에서 구원이 이루어져야 돼요. 제사법의 구원. 이스라엘의 구원이 아니고 제사법 자체의 구원, 그 안에 마지막 제사를 끝낼 분이 오십니다. 제사를 끝냈다 하는 것은, 네 죄에 대해서 내가 죄값을 묻지 않겠다는 그 시점이 와요. 그 결정적 시점이. 예수님이 제사장 되시고 제물 되셔서 다시는 너희 죄를 위해서 바칠 제사를 없애버렸다는 거예요.

히브리서 10장 26절,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다시 속죄할만한 제사는 없다는 거예요. 이 말은 예수님이 속죄한 완성한 제사법을 위해서 구약에는 이스라엘, 신약에는 성도를 이용하신 거예요.

신약에 와서 더 깊은, 구약보다 더 깊은 죄를 끄집어내시면서 십자가의 보혈의 피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그걸 들추어내는 일에 참여케 하신 자들이 오늘날 성도입니다. 그들의 특징은 죄는 지었는데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는 그러한 하나님의 완성이 작동하는 대상이 성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온 거예요.

이하림gblayer('gblayer4', 'summerwood', '이하림', 'summerwood96@naver.com', '', '1', './program');(IP:219.♡.37.139)

23-10-29 02:54

449강-YouTube강의(만남 창세기 42:23)20231024-이 근호 목사

제449강, ‘만남’. 448강 ‘기억’이라는 동영상에서 하나님이 기억하는 바가 따로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억하는 기계라는 사실을 말씀드렸고 이번에 449강의 제목은 ‘만남’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의미 없어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만나기 전에도 인간이었고 만난 후에도 인간이고. 만나기 전에도 흙이고 만난 후에도 흙이고. 전혀 하늘의 요소가 나올 리도 없고 나올 수도 없는 게 인간의 만남이에요. 그러니 인간의 만남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더 큰 중요한 진지한 만남이 따로 있습니다. 인간의 만남은 카페에서 만나죠. 진지한 만남은 하나님의 언약에서 만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에 “아내들이여”, “남편들아” 할 때 반드시 주 안에서 만나야 돼요. 주 안에서.

언약 안에서 만남이 될 경우에 재미나는 것은요, 창세기 42장 23절에 이런 말씀 있습니다. “피차간에 통변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그 말을 알아들은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이게 왜 재미나는 것이냐 하면, 형들은 요셉을 종으로 팔았습니다. 심지어 내 동생을 어느 지역에 팔아넘긴 지도 그들은 관심 없었어요. 그냥 자기 가정에서 요셉을 부재의 상태로 만들면 자신의 존재가 숨을 쉬기 때문에 그걸로 자기들은 오케이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제발 안 만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살았어요. 다시 보지 말자. 나 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 너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어느 설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가인이 사람 죽이는 게 취미가 아니에요.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의 제사를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 동생의 제사를 받았을 때 여러분들은 가인이 얼마나 마음적으로 힘들었는가를 생각해보세요. 그걸 이해해 주세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것도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은 제사 드리면 공평하게 받아야 되는데… 안 받으려면 둘 다 안 받으면 돼요. 그럼 깔끔해요. 속상할 일 없습니다. 하나님이 편애를 한 거예요. 편애가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예요. 우리가 알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편애하시는 하나님이에요.

우리가 알던 야곱 아닙니다. 야곱은 그 많은 애들 중에서 요셉을 편애했어요. 일방적으로 사랑했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데려가요. 아브라함에게는 이삭. 이삭에게는 자기가 좋아하는 타입, 성향이 아닌… 좋아하는 에서는 자기 손으로 저주해버리죠. 그때 그 아버지의 심정을 또 헤아려야 돼요.

두 아들이 있는데, 둘이 있다는 것은 비교대상이 된다는 뜻이거든요, 하나만 있으면 사랑인지 미움인지 몰라요, 둘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쪽을 편애할 수밖에 없어요. 어느 부모도 마찬가지에요. 애 둘이 있으면 하나를 더 좋아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삭으로 하여금 에서를 더 좋아하게 만들었어요. 이유가 첫째로 먼저 태어났고요. 맏이는 아무래도 정성이 더 들어가요. 그런데 뭐 몇 분 사이 아니니까. 두 번째는 아버지의 타입이에요. 사냥 좋아하고. 야곱은 조용해서 샌님 같아서 늘 싫어요.

다시 말해서 이삭은 에서를 자기 분신처럼 느끼고 분신처럼 느끼면 포기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나중에 자기가 눈이 어두워서 축복 줄 때도, 짜고 치고 하는 고스톱 이었죠. 이거 불공정 거래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고기 사냥하면 복 줄게. 차라리 그냥 줘. 그냥 노골적으로 줘도 되는데 구실로, 내가 좋아하는 고기 사냥해오면 복 줄게. 그 틈새를 야곱이 노릴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사실은 하나님이 노렸죠.

아버지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죽였잖아요. 그 심정을 따라가는 거예요. 언약 속에 있는 언약 계열의 사람이에요. 이삭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야곱이 아니고 에서였습니다.

야곱에게 두 아내가 생겼죠. 한 아내는 덤으로 1+1로 얻은 거예요. 인물도 안 좋아요. 꼴 보기 싫어요. 그러나 야곱은 자기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14년 동안 악덕업주한테 걸려가지고 임금체불까지 당하면서도 오로지 only 사랑하는 자를 얻기 위해서 자기 노동으로 세월까지 청춘까지 다 불사르면서 여자를 얻었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뜻을 어깃장 나게 만들어버려요. 야곱은 레아 자식 관심 없어요.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나온 자식을 사랑하고 싶은 거예요. 생겨야죠. 오죽했으면 레아가 이런 잔소리했을까요. 하나님이 안 주시는데 네가 왜 자꾸 앙탈부리느냐. 닦달하느냐. 억지 아니냐.

그런데 하나님께서 드디어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종이 아니고 진짜 라헬에게서 아이가 나오게 하는데 결국은 애하고 사랑하는 아내하고 바꿔치기합니다. 아내는 죽고 아들은 태어나죠. 그때 라헬도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 이런 이야기합니다. 우리 팔자 왜 이래. 자식이 엄마도 없이 태어난 거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그래서 아이 이름을 슬픔의 자식이라 이름 지었어요. ‘베노니’라고. (창 35:18)

그런데 야곱이 알아요. 이게 하나님 방법이란 걸. 아버지가 자식을, 그것도 미워하는 자식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식을 죽이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란 걸 알아요. 언약이 있는 사람들은 전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빼앗아가고 하나님이 좋아하는 것을 대체해서 집어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그래서 오른손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로 이름을 지었어요. 베냐민.

그 전에 요셉이 생겼었죠.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낳을 때 라헬이 죽었죠. 결국 사랑하는 자의 맏이는 요셉밖에 없죠. 그러니까 열한 아들 다 필요 없어요. 그딴 거 필요 없어요. 오직 한 아들이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세상에서 그 아들이 다른 형제들에 의해서 배다른 형제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게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인 것과 똑같은 거죠. 요셉이 죽고 난 뒤에 나중에 베냐민 남았잖아요. 베냐민도 요셉 짝이 나도록 만들어요.

오늘 본문은 재밌는 게 뭐냐 하면 이미 요셉은 부재(不在)한 존재, 존재하지 않는 자에요. 형들도 몰라요. 요셉이 국무총리 된 줄 몰라요. 그건 상상이 안되는 이야기에요.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요셉이 국무총리 되는 것은 죽었다가 부활한 것과 똑같은 일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이게 바로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의 만남입니다. 우리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하고 언약 안에서 만나는 주님하고 달라도 너무 달라요. 내가 아는 하나님은 나를 예쁘게 보는 하나님이에요. 그러나 언약의 하나님은, 네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을 우리가 맞이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과 우리 사이에 대화가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안되죠. 통역이 필요하죠. 그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이미 존재하지 않거나 잊어버린 바 된 요셉과 그 요셉을 버린 형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다는 것은, 말이 통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쪽 요셉은 다 알아듣죠. 그런데 다른 쪽 요셉 형들은 상상도 못하는 겁니다. 이 만남, 이 만남이 두꺼운 성경책 전부에요. 이게 통역입니다. 성령이 통역해주지 않으면 한 대목도 못 알아봐요.

달달 외워도 그건 국어시간입니다. 국어시간은 의미 없어요. 작문 시간, 문법 시간 소용없습니다. 기호학, 언어학 다 소용없어요. 성령이 아니면, 다시 말해서 나를 지적하는, 근원적으로 나는 만남의 대상이 아닌 것을 통보해주는 지적이 없으면 이 성경은 헛 성경이에요. 킹 제임스 그거 사기에요.

성령께서 말씀을 통역하시는데 어떻게 통역하시는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로 데려가서 경유해서 나온 해석으로 통역을 해주십니다. 아까 448강처럼. 너는 죄 맞다. 이것도 죄, 저것도 죄 맞다. 하지만 내가 그 죄에 대해 십자가 피를 보고 기억치 아니하리라. 이게 바로 통역의 핵심입니다. 이 만남은, 성령 안에서, 언약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 주님 안에서, 똑같은 이야기입니다, 오직 하나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기 위해서 만나는 겁니다. 그 만남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1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9,892 자유게시판 16강-스가랴 6장 1-8절(네 천사의 기능) 231101 - 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3-11-01
19,891 자유게시판 75강-예레미야 13장 1~7절(선지자의 몸통)231029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3-10-29
19,890 자유게시판 10강-디도서 2장 11-12절(하나님의 폭력성)231029-이 근호 목사 디도서 최고관리자 23-10-29
19,889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감사하는 문둥병자 / 231029 - 최고관리자 23-10-29
19,888 묻고답하기 자신을 주심 디도서 최고관리자 23-10-29
19,887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231027b 창세기3장 15절(하나님에 대한 원한)-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23-10-29
19,886 자유게시판 광주강의20231027a 창세기3장 15절(하나님에 대한 원한)-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23-10-29
19,885 자유게시판 15강-스가랴 5장 5-11절(두 여인) 231025 - 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3-10-26
19,884 자유게시판 대전-십자가를 아십니까(22강) 히10:29(순교) 20231023b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3-10-25
19,883 자유게시판 대전-신명기(16강) 신5:27(반석의 상처) 20231023a 신명기 최고관리자 23-10-25
19,882 자유게시판 449강-YouTube강의(만남 창세기 42:23)20231024-이 근호 목사 창세기 최고관리자 23-10-25
19,881 자유게시판 448강-YouTube강의(기억 히브리서 8:12)20231024-이 근호 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3-10-25
열람 ➜ 강의 유튜브강의(448강/449강) 기억, 만남 231024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23-10-24
19,879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19장 5절 (베일) 231010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3-10-24
19,878 자유게시판 강남-누가복음 19장 5절 (베일) 231010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최고관리자 23-10-24
19,877 자유게시판 74강-예레미야 12장 14~17절(뒤바뀐 질문)231015이근호 목사 예레미야 최고관리자 23-10-22
19,876 자유게시판 9강-디도서 2장 9-10절(하나님의 자신감)231022-이 근호 목사 디도서 최고관리자 23-10-22
19,875 자유게시판 주일학교 설교 / 악한 종 / 231022 - 최고관리자 23-10-22
19,874 묻고답하기 세상 정욕 - 최고관리자 23-10-22
19,873 자유게시판 서울강의20231019b 요한일서 2장 15절(세상이란)-이 근호 목사 요한일서 최고관리자 23-10-21
19,872 자유게시판 서울강의20231019a 요한일서 2장 15절(세상이란)-이 근호 목사 요한일서 최고관리자 23-10-21
19,871 자유게시판 14강-스가랴 5장 1-4절(헛맹세) 231018 - 이 근호 목사 스가랴 최고관리자 23-10-20
19,870 자유게시판 수요설교(20231018)요약 스가랴 5:1-4(헛맹세) 스가랴 최고관리자 23-10-19
19,869 묻고답하기 [환타지의 침투]-송민선 성도님의 글 - 최고관리자 23-10-16
19,868 자유게시판 환상의 침노 - 최고관리자 23-10-16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