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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서울강의20231019a 요한일서 2장 15절(세상이란)-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일서

서울강의20231019a 요한일서 2장 15절(세상이란)-이 근호 목사

나는 나에게 손을 뗐음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이끌어주심이 성립하는 그것은 바로 환경 때문에 그런 겁니다. 환경. 우리가 속해있는 환경. 그 환경이 오늘 해야 될 요한일서에서는 ‘세상’이라고 되어 있는 겁니다.

요한일서 한번 봅시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 이렇게 되어 있죠. 거기 ‘세상’이 나오죠.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이걸 한번 총정리 할 필요가 있습니다. 뭔가 정리하게 되면 세상이 달리 보이니까 깔끔하게 보이니까 좋아요. 제가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과 아들(아드님)이 계시죠. 여기에 성령님이 또 함께 계시고요. 언제?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럴 때 여기서 그냥 세상이 나오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과 아들, 이 두 분 사이에 계약 또는 언약이 있었어요. 창세 전 언약. 이 언약을 품고 만들어진 것이 바로 천지에요. 이 세상, 하늘과 땅입니다. 하늘과 땅이 만들어진 거예요.

그러면 언약이 뭐보다 먼저냐 하면 하늘이나 땅, 바다 이것보다도 하나님의 언약이 먼저에요. 언약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해와 달과 별이 있다. 여기 인간이 있다. 그러면 인간은 어디까지 아느냐 하면 ‘어? 해가 있네. 달이 있네. 별이 있네.’ 여기까지는 알아요. 여기까지는 아는데 여기까지 알아봤자 결국 이것은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는 이 정도 아는 인간이다. 해와 달과 별, 동물, 식물이 있다, 이 정도 아는 인간’으로 내가 되돌아온다고요.

그럼 여기서 뭐가 빠졌습니까? 뭐가 빠졌죠? 언약이 빠진 거예요. 언약이. 언약이 빠졌으니까 이 인간은 인간이 아니에요. 이건 흙이 되는 겁니다. 그럼 공식 하나 나온다면, [흙+언약=인간] 이렇게 되겠죠. 흙에다 언약이 있어야 인간이다. 그런데 자연은 사람 말 안 듣거든요.

그러니까 흙+언약인데 언약은 하나님께서 줘야 들어오는 거예요. 언약은 줘야 들어온다고요. 그래서 공식을 더 정확하게 하면 흙+미지의 것이 들어왔을 때 인간이 되는 거예요. [흙+(?)=인간] 이 미지에 들어온 사람 중 한 사람을 대라면, 흙+노아언약이 들어왔더니만 인간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이 언약이 들어왔기 때문에 노아는 심판에 이르지 않죠. 왜냐하면 노아 안에 언약요소가 있기 때문에 노아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언약이 없는 사람은 완전히 물에 다 빠져죽었죠. 물에 다 빠져죽은 거예요.

전혀 어려운 게 없습니다. 창세기 3장도 마찬가지에요. 창세기 3장은 약간 좀 난해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 남자는 흙이 되죠. 남자는 흙인데 남자+여자가 한 가족을 이루잖아요. 그런데 여자는 약속에 의하면 여자의 후손이니까, 여자의 후손에 의해서 언약이 주어지니까 여자는 흙이 아니고, 남자는 흙인데 여자는 생명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흙+생명이 부부가 되는 겁니다. [흙+생명=부부] 생명이 흙과 결합해서 드디어 부부가 되는데 여기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부부라는 말 대신에 여기에 언약의 자식과 비-언약의 자식, 이게 나옵니다.

흙(남자)+생명(여자 이름 하와는 생명이에요), 흙에 생명을 더했는데 이제 언약의 자식이 나오게 되면 자식이 나왔으니까 흙과 생명은 제거가 됩니다. 늙어 죽어야 돼요. 취소가 되는 겁니다. 취소가 되면서 거기서 언약이 드디어 나오는 데에 성공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용해서 계속 언약, 언약, 언약,… 언약의 노선을 유포하고 퍼트리는 데에 주님께서는 실수가 없이 계속 성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이 공식이 뭔가 마음에 안 들 수가 있어요. 흙+생명=언약의 자식, 이렇게 나오면 마음에 들겠는데 여기서 뭐가 나옵니까? 비-언약의 자식이 나오는 이게 마음에 안 들 겁니다. 왜 비-언약의 자식이 여기 나와야 되느냐 하면, 그래야 흙과 결합한 이 생명은 항상 생명이 될 수 없고 저주받아야 될 요소를 함께 부여함으로써 ‘생명을 포함하는 쪽이나 흙 쪽이나 둘 다 온전한 완성체는 계속 아니다’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여자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온다고 해서 여자가 구원받은 사람입니까? 아니잖아요. 그냥 여자의 후손 메시아가 오기 위해서 동원된 사람이죠. 그래서 그 자체로서는 온전함도 아니고 완전함도 아니고 그냥 소모용이 되는 겁니다. 역사 속에서 언약의 자식과 비-언약의 자식이 나오니까.

그런데 이 공식에서 계속 나가봅니다. 이 공식에서 보면 비-언약의 자식, 이들의 세계를 ‘세상’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세상. 언약의 자식은 순수하게 세상이 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여기는 하늘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하늘의 요소를 품고 있기 때문에 온전하게 세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비-언약은 온전한 세상이에요. 상당히 부정적이죠. 세상이라는 자체가 굉장히 부정적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아담+하와가 결혼해서 한쪽은 아벨 나왔죠. 한쪽은 가인 나왔죠.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죽이도록 하고 가인은 살리도록 하죠. 가인이 아벨을 죽였는데, 죽은 자는 그냥 죽고 죽인 자는 이 세상을 이루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인의 후손이 창세기 4장에 보면 세상을 본격화하면서 점포 차렸죠. 점포 차리면서 그들의 특징인 언약 없이 꾸려나가는 세상이 가인의 후손으로서 이제 개시가 됩니다. 언약 없이 꾸려나가죠.

그런데 언약 없이 꾸려나가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부정했다, 라고 하는 증거가 뭐냐 하면 언약 자식의 계열에서 노아가 나오죠.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잖아요. 언약을 받았잖아요. 그러면 ‘언약을 받았다’는 말은, 둘 중 하나입니다, 물어볼게요. 1번-지식 받았다, 2번-현실을 받았다, 몇 번입니까? 어느 쪽입니까? 지식 아니고 새로운 현실을 받은 거예요. 새로운 현실.

우리가 이것을 자꾸 놓쳐버리면 안돼요. 언약 공부해서 지식으로 끝나버리면 아닙니다. 이건 새로운 현실을 받은 거예요. 노아 때 뭐 물로서 작살났죠. 노아 식구 빼놓고 다 죽었습니다. 물 덮여서. 제가 이런 이야기하면, 노아 때는 참 신났겠는데… 노아만 신났죠. 사실 노아도 신난 게 아니에요. 무서웠죠. 그럼 요즘은? 요즘은 왜 이렇게 신나는 이벤트를 하나님께서 준비 안 하셨는가? 신앙생활하기 힘든데 뭔가 멋있는 거, 획기적인 것을 보여주면 좋겠는데 왜 안하셨는가, 하겠죠.

요즘도 보여줬습니다. 어떻게 보여주느냐 하면 시간차로 보여줘요, 시간차로. 이 세상과 실제 현실을 어떻게 하는가? 이 세상은 뭡니까? 가인의 후손 쪽이에요. 부정적인 거예요. 이 세상 쪽으로 미래가 밀려와요. 이게 어려워요, 미래가.

세상 쪽으로 미래가 밀려오는 이유가, 이 세상은 인간의 지식이기 때문에 역사이기 때문에 미래 쪽으로 나아가려고 해요. 희망, 포부, 기대, 계획하는 것 이런 거 가지고 자꾸 내 쪽에서 다음 달엔 잘할게, 한 달 뒤 계획은…, 10년 뒤에 이런 구상을 하고 있다, 미래 쪽으로 뭔가 자기가 계속 일을 벌여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언약은 미래에서 밀려오는 거예요. 미래에서 밀려오게 되면, 미래에서 밀려오는 쪽이 세상 속으로 들어 와버리면, 여기서 세상 속에 언약 백성이 생깁니다. 이걸 저는, 샤니 케이크 위에 건포도 혹은 노인 얼굴 피부에 버짐. 그건 약간 흉측하다만. 미래 자체가 밀려온 거예요. 미래소년 코난.

미래 자체가 밀려오니까 좋은 점은 뭐냐? 현실에서 통하는 어떠한 규칙과 제도와 법과 헌법이라든지 이런 사회적 상식에 대해서 전혀 구애받을 필요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이 세상을 꾸려 나가는 데에 필요한 제도들이거든요.

우회전할 때는 잠시 멈췄다 가라, 이런 거. 운전할 때. 그거 누구 위함입니까? 하늘나라 위함입니까? 거기에 대해 전혀 구애받을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멈추지 않고 그냥 갔는데 마침 경찰이 봤다. 벌점 20점에다가 벌금 15만원 냈다 합시다. 전혀 구애받을 필요 없어요. 왜? 내 돈이 아니고 주의 돈이기 때문에. 그런데 판사 앞에서 그 소리했다고 판사가 화가 나서, “너는 10년 언도. 너 같은 사고방식은 도저히 용납 안 된다. 너는 미친 인간이니까 10년 동안 사회 격리하자.” 해서 10년 언도받고 교도소 갔습니다. 전혀 구애받을 필요가 없어요. 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도 너는 개과천선 못하고 정신 못 차렸지, 해서 사형을 시켰다. 죽어도 상관없어요. 구애받을 필요 없습니다.

어떤 어린 오빠에게 자기보다 어린 여동생 둘을 엄마가 부탁합니다. “내가 어디 갔다 올 테니까 동생들 잘 돌봐라.” 그래서 그 오빠가 어린 여동생 둘을 잘 돌보고 있는데 그걸 창문가에서 누가 엿듣고 있어요. 창문가에서 엿듣는 누군가를 보고 “거기 누구십니까?” 문 열어주니까 그 사람이, 아, 이야기를 너무 재미있게 한다고. “당신은 누구십니까?” “난 피터팬. 내 옆에 있는 사람은 팅커벨.” 그랬거든요.

그래서 “왜 왔습니까?”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는데 그 이야기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안 되느냐고 이야기했어요, 동화책에서. “당신 나라가 어떤 나라인데요?” “우리는 아무리 세월 흘러도 어른이 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꿈의 세계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어른이 될 필요가 없는 세계. 어린아이만 있는 세계. 그러니까 그 오빠가 “어떻게 갑니까? 날지를 못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갑니까?”라고 이야기하죠.

지금 미래의 세계는 이 세상하고 전혀 달라요. 왜냐하면 언약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럼 미래가 우리한테 밀려와서 우리가 언약의 사람으로 산다면 이야기가 통하겠습니까, 안 통하겠습니까? 전혀 이야기가 통하지 않죠. 그게 성경에 보면 신약에 세 군데, 구약에 한 군데 나오는데 구약 이사야 6장에 보면 “네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6:9). 마태복음 13장에도 나와 있고(13:14), 사도행전에도 마지막에 나와 있고(28:26), 요한복음 12장에도 나와 있어요(12:39-40).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면서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못 알아듣고 하신 일을 못 알아보잖아요. 그러니까 그 말씀이 딱딱 그 자리에 투입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희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한다.”라고 하는 겁니다.

이걸 정리하게 되면, 이 세상에 어떤 특이한 존재가 출몰하는데 그들의 특징은, 미래에서 밀고 들어온 거예요. 제가 여기서 미래라고 한 말은, 노아 홍수 언약에 의해서 이 세상은 멸망당하게 되어 있어요, 멸망 그 이후에 원리원칙이 미리 멸망당할 세상 속으로 미리 들어온 거예요. 믿거나 말거나요. 여러분도 깨닫지 못하면 곤란한데.

이건 어떻게 아느냐 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흙에 속한 모든 인간은 미래를 향하여 계획을 잡아요. 미래를 향하여. 미래를 향하여 계획을 잡으면 언약이라는 게 필요 없어요. 언약에 대해서 알죠. 지식으로.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언약이 지식이 아니고 뭐라고 했습니까? 이게 현실성을 띄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현실성.

“언약 압니다. 언약 이런 겁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언약이고 뭐 어떻고 저떻고…” 그럼 하나님은 말합니다. “그런 거 설명하지 말고 네가 지금 존재한다는 자체가 언약 그 자체인 것을 네가 받아들이느냐?” 할 때 인간들은 “그거는 못 받아들이죠. 나도 지금 살기 바쁜데 그것까지…. 내가 피터팬도 아니고요. 그건 곤란하죠.” 이렇게 이야기할 거잖아요.

그럴 때 주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말씀으로, 네가 안 되는 것을 내가 되게끔 한다.” 그게 요한일서에요. 한번 볼까요, 요한일서. 요한일서 2장 13절,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지식이 아니죠.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이게 지식입니까, 이겼다는 게?

“제가 언제 악한 자를 이겼습니까?” 하면, “네 존재 자체가 악한 자를 이긴 거다.” “저는 그것을 못 받아들이겠습니다.” “내가 이 말씀으로, 요한일서 2장 13절 말씀으로 네가 받아들이도록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 왜? 나의 언약은 현실화되어야 되기 때문에. 나의 언약은.

흙에서 태어난 인간은 내가 여기 흙에서 인간으로 있다는 이걸 유일한 현실로 붙들고 있어요. 이게 현실이에요. 이 붙들고 있는 현실에서 내 힘으로 내일까지 밥 먹고 살아야 돼요. 또 한달 뒤에도 계속해서 규모 있게 계획을 짜고 열심히 일해서 계속 살아나가야 된다고요.

에 보면 괴산에 있는 어떤 60대 후반의 아저씨, 아줌마가 몸 다 망가지면서 열심히 통닭 튀기며 충북 괴산에서 살아가요. 그 사람들에게 내가 가서 언약에 대해 이야기하면 알아듣습니까? “어디서 왔습니까?” “복음 전하러 왔어요.” 그럼 그 사람들이 나한테 뭐라고 하겠어요? “당신이 보다시피 우리가 지금 복음 들을 형편인지 한번 보세요. 지금 시간 쪼개서 일해도 장날에 손님 못 치러냅니다. 이렇게 힘든데 내가 한가롭게 복음 들을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그건 낭만적이고 사치스러운 여가 활동 할 때나 하는 것이지, 저희는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때, 그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현실이 아니고 지식입니다. 지식으로 되겠죠.

그다음에 14절 봅시다.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이렇게 되어 있죠, 14절까지.

그렇다면 이 말씀을 이렇게 해봅시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내가 여기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이에요. [내가 여기 있다=내가 여기 없다]. 이번 수련회 교재를 썼는데 교재에서 제가 ‘의미’와 ‘뜻’을 구분했어요.

‘의미’는 포괄적이고 다른 데서 주는 것이고, ‘뜻’은 활용하는 거예요. 이 세상을 사는 데에 적절히 유통되는, 남과 소통하기 위해서 하는 그걸 뜻이라고 이야기했고, meaning 의미라 하는 것은 이 뜻을 제공하는 다른 보이지 않는 출처를 의미라고 이렇게 구분했습니다. 뜻은 실용성, 의미는 그 실용성 있는 뜻을 줄 수 있는 출처. 출처인데 보이지 않는 출처에요.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실은 진짜 현실성 있는 나는 따로 있고,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내가 여기 없다는 것이다. 또는 내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이게 뭐냐 하면 ‘언약적 사고’에요. 언약적 사고. [예수님께서 내가 이 땅에 왔다는 것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난다는 뜻이다.] 똑같은 거예요.

아이들아 또는 청년들아, 그다음에 아비들아. 방금 우리가 봤잖아요. 요한일서 2장 봤죠. 이들이 이 세상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세상에 없어요. 없고,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했잖아요. 하나님 아버지를 안 사람이 이 세상에 출몰이 되면 그들이 뭐가 되느냐 하면, 없었는데 새로 생긴 아이가 되면서 언약은 현실을 구비하게 되는 겁니다. 현실을.

‘목사님, 말을 왜 그렇게 복잡하게 합니까?’ 라고 하신다면 이게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있어버리면 복음이 어떤 성경이 들어와도 이게 현실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지식으로 들어와요. 현재 내가 있으니까. 있는데다가 성경 지식까지 추가하게 되면 내 있는 게 보충이 되고 보완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한테 유리하고 나한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미 언약에 의해서 심판대상이에요. 왜? 비-언약이니까.

자, 다시 봅시다. 세상은 뭐가 세상입니까? 언약이 없는 자들이 구성하는 것이 세상이에요. 언약이 없는 자들. 언약이 없다는 말은 이 세상 심판 이후의 미래가 아직 안 들어왔다는 뜻이에요. 노아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노아가 있다는 것은 우리 보기에 노아가 그 당시 세상에 함께 있는 걸로 보이잖아요. 그런데 유독 노아에게만 무엇이 주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들어 와버렸죠, 하나님의 언약이. 하나님의 언약이 들어왔으니까 노아는 언약을 지식으로 알았습니까, 어떻게 알았습니까? 당연히 지식으로 알죠.

노아도 인간이니까 지식으로 아는데 들어온 언약이 노아로 하여금 지식으로 머물지 않고 방주를 만들라 하거든요.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벌이시려고 하는가? 방주 만들어! 만들었죠. 노아 자기가 방주 만들려고 했습니까? 아니죠. 하나님께서 방주 만들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노아는 그냥 따랐을 뿐이에요. 노아가 방주 만들면 뭐합니까? 비도 한 방울 안 오는데. 그건 뭐 웃기는 이야기죠.

그런데 방주 만들고 있으니까 그다음에 방주가 뭐 쓸모가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냥 보트 만든 게 아니잖아요. 그냥 보트 만들었으면 비가 조금 오다 말았을 거예요. 방주의 방주 값을 하는 그러한 다음 조치, 언약의 다음 조치가 주어집니다. 그것은 전면적인 심판이죠. 물로 심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노아가 탄 방주가 뜬다, 뜬다, 뜬다 하더니 떠버린 거예요. 떠버리니까 심판 속에서 노아의 현실은 뭐냐? 심판이 있고 그 가운데 노아의 방주는 두둥실 떠있는 상황이죠.

이걸 물 없고 홍수 없는 상태에서 언약만 있는 상태에서 필름을 과거로 잠시 돌려보자 이 말이죠. 돌려봐 버리면 노아 당시의 사람들은 노아를 볼 때 유별나게 볼까요, 안 볼까요? 안 보죠. 안봅니다. “저 사람은 뭐 하나님께 언약을 입었대.” “아이고, 계시 하나 뭐 받은 모양이다. 받으니 뭐 하노. 현실 변동과 아무 상관없는데.” 하고 그냥 그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잘 살겠죠. 노아도 물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없는 요소가 노아에게 특별히 있었고 이 세상에 없는 요소가 노아로 하여금 기존의 땅 위의 노아가 아닌 진실 된 노아, 방주 속의 노아로 하나님께서는 물 심판을 통해서 확연하게 드러나게 만들었어요. 참, 언약 무섭죠. 언약 무서워요.

제가 하나 질문할게요. 질문한다고 해놓고 답변은 내가 다 해버리는데 이 질문은 진짜 여러분이 답변해보세요. 두 개의 머리를 갖고 태어난 몸통이 하나인 아이가 있습니다. 한 사람일까요, 두 사람일까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죠? 두 개의 머리를 갖고 몸통은 하나로 붙어있는 샴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사람일까요, 두 사람일까요? 옛날에 소크라테스 시대 때 물었던 거예요. 그냥 한 사람이다, 두 사람이다 쉽게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해줘야 돼요. 그 이유가 중요하죠.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뜨거운 물을 부어서 두 사람이 울거든 한 사람이고 한 사람만 울면 두 사람이다. 성도가 이 세상에 함께 있으면서 이 세상 말고 다른 세상에 포함되어 있는지, 안 그러면 한 세상인지 어떻게 알아요? 현실에서 뜨거운 불이 주어지면 알겠죠.

그러니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이 있어요. 뭐냐 하면 성경을 아주 우습게 본다는 거예요. 성경을. 이 자체가 현실 설계도이고 이대로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 증명해놨고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가 언약 없이 흙으로 속해있는 이 세상이 너무 습관화되고 거기에 너무 친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경의 현실성을 거부하게 되어 있습니다. 거부하는 거예요.

그래놓고 15절 한번 봅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할 말이 많아요. 이건 두 시간해도 모자라요. 그런데 한번 해봅시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다시 말씀드립니다. 12절, 13절, 14절, 특히 14절 같은 경우에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겼다”고 되어 있잖아요. 이겼다고 되어 있는데 이 이야기를 지금 누구보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이 세상 속에 같이 섞여 사는 하나님의 성도보고 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이 이야기 내용이 인간들이 받아들일 내용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있기 때문에 너희는 흉악한 자를 이겼다는 말이 이 세상 속에서 논리적으로 증명될 말입니까, 이게? 미치지 않고서는 이걸 받아들이겠어요? 우리가 이거 안다고 해서 쌀이 나옵니까, 돈이 나옵니까?

“엄마, 엄마. 하나님 말씀이 나한테 거했어. 나 흉악한 자를 이겼어.” 하고 어떤 자식이 엄마한테 이야기한다면, “가서 숙제나 해라! 어디서 쓸데없는 걸 지식으로 배워가지고는….” 회사에서 상사한테 결재 받으면서 “저 부장님” “왜?” “말씀이 내 속에서 흉악한 자를 이겼습니다.”하면 결재판가지고 내려치면서, “너 회사 앞으로 안 다니려고 그런 소리하지? 회사에서 무슨 이상한 소리하고 있네.” 물론 그렇게 할 사람도 없지만.

아까 미래 이야기했는데, 미래소년 코난 이야기했는데요. 피터팬도 마찬가지고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죠. 인생이라 하는 것은 ‘잠깐 왔다가 가는 게 인생’이라고 하죠. 흔히 사람들 그런 이야기하죠. 잠깐 왔다 간다. 어디로 가는데? 어디로 가면 안돼요. 이미 와 있어야 돼요. 왜냐하면 말씀이 이 세상 바깥에서 기다리는 게 아니고 말씀이 이 세상에 이미 도달했다면 이 세상 안에 있는 말씀의 세계로 옮겨야지, 이 세상 끝나고 다른 데로 왔다 가는 게 인생이라면 어딘데요, 거기가? 가는 게 인생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디로 가는지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게 어딘데?

불신자 가정에서 그런 거 많아요. 애가 자기 어릴 때 엄마 죽으면 “엄마, 엄마 하늘나라 잘 있어. 내가 갈게. 나도 엄마 보고 싶으니까 갈게.” 이러거든요. 어디로 가는데, 둘 다? 둘 다 어디 가는데요? 왜 그렇게 책임성 없는 소리를 막 하는지. 이 세상 바깥에 다른 세계가 있는 게 아니에요. 그건 일반 종교이고.

믿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이 세상 속에 이미 미래의 세계, 세상이 끝나고 난 뒤에 생길 그 세계가 이 세상 속에 이미 와있습니다. 아니 그것도 현실적으로 와 있어요. 지식으로 와있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와있다고요.

성경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21절, 좀 길지만 19절부터 보겠습니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자, 헛것이라 했는데 왜 헛것인지 알아야 돼요. 왜 헛것이냐?

20절,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누구 것이고?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누구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그리스도의 것으로 우리가 이미 이 세상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죽어서 어디 가는데요? 우리 하고 있잖아요, 지금. 하고 있다 이 말이죠. 제가 이런 이야기하면 “목사님, 제가 이 세상 생활하고 있는데 하루하루 사는 게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고 힘겹고 어렵고 코피 팍 터지고, 굳이 왜 이렇게 살아야 됩니까?” 그렇게 막 이야기하고 싶죠.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하고 일주일에 세 번씩 음식쓰레기 내놔야 되고. 왜 이렇게 쫓기듯이 후달리듯이… 몸은 점점 더 망가지고 왜 이렇게 굳이 살아야 됩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런 삶이 기적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나?” 다시 말해서 이렇게 지저분하고 어렵고 힘들고 온 몸이 안 아픈 데 없이 사는, 살아도 망가지는 이 몸이 이게 천국 백성이라는 생각으로 도약하는 이것이 기적 아니고 뭡니까? 아픈 몸이 건강하게 되고 가난한데 갑자기 부자 되어서 천국 백성으로 나아가는 게 그게 기적일까요? 그거는 이 세상 사람들이 미래를 계획할 때 이미 포함시킨 내용들이에요. 나는 1년 내에 뭐 사고, 10년 뒤에 빌딩 사고. 앞으로 20년 뒤에는 보험 넣었던 거 보험금 타먹고, 이런 거 있잖아요. 그거는 기적 아니에요!

그러면 성도는? 성도는 보험료 내고 보험금 타먹는 그걸 기적으로 보는 겁니다. 동일한 현상인데 한쪽은 흔해빠진 인간들 다 하는 거고, 성도는 이게 흔해빠진 인간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성도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현상을 유발시킨 그런 기적적인 결과로 좀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까? 무리에요, 그게?

노아도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똑같이 했어요. 노아도. 노아가 유별나게 살았으면 대번 사람들이 눈치 챘어요. 저거 뭐 있다, 뭐 있다, 저거 뭐 있다. 저거 언약 받아서 하나님의 기적이 늘 따라다닌다. 뭔가 있을 거다. 아니에요! 똑같이 살았어요, 똑같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옆에서 3년 동안 얼마나 관찰했겠습니까? 관찰해도 돋보기로 세밀하게 관찰했을 거예요. 진짜 메시아 맞는지. 믿습니다, 해놓고는 계속 관찰하는 거예요. 나는 하늘나라에 갑니다, 라고 하면서도 계속 관찰하는 거예요. 그런데 너무나 실망스럽게도 주님께서 평범한 인간 정도가 아니고 더 후진 인간으로….

이주일이 이야기했잖아요. 뭔가 보여준다고요. 맨날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하고 비너스 노래 맞춰서 춤추며 나와가지고는 뭘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결국 이주일이 뭔가 보여줬습니까? 술 먹고 간암 걸려 죽은 그거 보여줬잖아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뭘 보여줬습니까? 뭘 보여줬는데요?

언약을 보여줬어요. 언약을. 언약을 보여준 거예요. 언약을 보여줬는데, 이 세상 사람들은 보기는 봤는데 깨닫지를 못한 언약을 보여준 거예요. 보기는 보았는데 깨닫지를 못한 언약. 지금 인간들은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요한일서를 봐도 여기 15절에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해도, ‘아, 경건하게 살라는 모양이다.’ 말도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네요. 여러분, 경건하게 살면요. 이 세상 사람들이 알아요. 경건하게 살면 이 세상 사람들이 안다고요. 그 특이점을 발견한다고요. 몰라야 돼요.

‘여기 있는 나는 없고 나는 언약 안에, 언약 안을 쉬운 말로 하면 예수 안이죠, 예수 안에 나는 있다’ 이 말을 하는데 굳이 우리가 돈 잘 벌고 건강하고 키가 갑자기 190cm로 자라나고 강남순처럼 갑자기 힘이 완력이 세지고 이래야 이게 설득력 있는 거예요? 아니죠.

[여기 있는 나는 없고, 나는 언약 안, 예수 안에 있다]는 이것. 그 열두 제자가 성령 받고 난 뒤에 무슨 힘을, 완력을 발휘했습니까? 오히려 삼손은 반대였습니다. 삼손의 완력은 세상 여자한테 걸려가지고 그 머리카락 완전히 다 날아갔잖아요.

세상 여자 들릴라가 이런 질문했는데 한번 들어보세요. “당신은 힘이 센데 그 힘은 어디 있느냐?”고 질문했어요(삿 16:6). 진짜 세상적이에요. 힘이 어디에 있느냐? 네 몸의 어느 부분에서 힘이 나오냐고 묻는 거예요. 이 질문 자체가 얼마나 비-언약적입니까.

인간은, 이 세상은요. 언약이 없어요. 언약이 없어서 언약 대신에 내가 할 수 있는 가능성만 계속 찾고 있어요, 가능성만. 지금보다 더 나을 수 있는 가능성만 계속 찾고 있다고요. 그래서 뭐하는데? 현재에서 미래로,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거예요.

그러나 언약은 준비된 거예요. 주님께서 이 세상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준비된 거라고요. 준비된 건데 자기 백성에게만 알음알음 그것을 주께서 그것을 알려주고 집어넣어준 거예요. 너만 알아라, 해서 집어넣어준 거예요. 성령을 통해서. 제자들도 마찬가지에요. “우리 가운데 하늘나라에서 누가 높습니까?” 얼마나 세속적이고 세상적입니까?

주님께서 그 앞에 누굴 세웠어요? 어린 아이를 세웠죠. 어린 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늘나라에 못 간다. 그럼 어린 아이를 데려와 보자. 데려와서 요모조모 한번 뜯어보자 이 말이죠. 도대체 어린 아이에게서 하늘나라 대목이 어디 나오는지. 안 나오죠. 왜? 어린 아이를 살펴보다가 벌써 1년 지나가지고 어린 아이가 어른 되어버렸는데요. 벌써 1년 지나면 어른 됐어요. 10년 지나면 어른 되는데요. 그럼 어느 대목에서, 주께서 도대체 어느 대목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어린 아이의 머리카락? 어린 아이의 엉덩이, 발바닥에서 어디 천국 가는 요소가 들어있어요?

이렇게 제가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이 이해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중심은 성도의 자리]에요. 세상엔 중심이 있어요. 미국이 아닙니다. 러시아가 아니에요. 세상의 중심은 성도의 자리입니다. 성령 받은 성도의 자리에요. 이게 사도행전에 쭉 나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을 하다가 죽었죠. 반 하다가 죽었잖아요. 그럼 아나니아, 삽비라가 헌금하다가 죽으면서 새롭게 밝혀진 것은 뭐냐 하면 인간이 죽고 사는 그 지점이 바로 어디냐? 베드로가 이야기했어요. 네가 나를 속임이 아니고 성령을 속였다는 거예요.(행 5:3)

이미 성령이 이 세상을 관장하는 중심으로 이미 활동하고 있어요. 그 성령을 받은 자가 성도에요. 왜냐하면 성령은 새 언약이니까. 새 언약이 왔고 새 언약의 결과가 성도거든요. 성령이고 성령 받은 자,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움직인다는 것은 중심이 지금 활동을 개시했다는 거예요. 조짐이 있다는 거예요, 결국. 성도가 활동한다는 것은. 그럼 성도의 활동을 누가 방해하고 있어요? 성도 본인이 방해하죠. 왜? 세상을 사랑하니까. 그런데 사실은 성도가 방해하는 것이 아니고 누가 방해하느냐 하면 마귀가 방해합니다.

이게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나와 있어요. 예수님 출생지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죠. 동방 박사들. 동방 박사가 예수님 찾아서 올 때, 하나님께서 별을 베들레헴에 바로 보낼 수 있거든요. 어디를 들릅니까? 예루살렘에서 별이 갑자기 사라졌어요. 그러니 묻고 갈 수밖에 없잖아요.

왜 하나님이 그 일을 하느냐 하면, 세상에 있는 두 개의 주도권이 만나는 그 지점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거예요. 한쪽은 하나님의 계시 받고 베들레헴에 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예수님 따라가고자 하는 예수님 중심이 되고요. 예수님이 중심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예수님을 공격하고 싶은 다른 악마 세력의 중심이 나타날 때 예수님 중심의 의미가 생기는 겁니다.

의미. 뜻 말고 의미. 인간 사회 소통에 필요한 뜻 말고. ‘이거 얼마에요? 이거 양파에요?’ 이런 뜻 말고 다른 의미. 숨어있는 악마가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캐내는 자극제가 되는 그런 의미 있는 성령의 활동, 그것이 밤하늘의 불꽃놀이처럼 팍팍 터지고 있는 겁니다, 이 세상에. 푸딩에 박혀있는 건포도처럼.

따라서 예수님 쪽에서 봐서는 세상이 없다는 사실이, 언약에 의해서 말씀에 입각해서 맞다는 말을 하기 위해 세상을 없애버리죠. 세상을 없애버리려고 하는 겁니다. 왜? 세상은 없으니까. 있는데? 없어질 거야. 없어질 거야.

그럼 뭐만 남기는데? 처음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언약만 있잖아요. 그 언약만 남기고 세상을 없애버릴 거예요. 재편합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재편해요. 세상이라 하는 것은 인간들이 임의로 만들었기 때문에 없애버리고, 불로 태우고 지옥과 천국으로 완전히 확립하고자 성령께서는 활동을 합니다.

따라서 세상에 있는 나는 없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만 있어요. 그런데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로마서 7장에서, “오호라 나는” 어떤 사람이다? “곤고한 사람이다”를 반드시 거쳐야 돼요. 왜냐하면 나는 현실을 만들어내질 못하기 때문에. 말씀과 하나님의 언약이 우리를 현실로 만들어내지, 내가 나대면 안돼요.

그래서 첫째 시간을 마치면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거에요. 나대지 마세요. 설치지 마세요. 여러분이 설친다고 주께서 더 좋아하고 일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일 망칩니다.

지금 우리가 어느 대목을 접근해가려고 하느냐 하면, 요한일서 2장 15절에 지금 접근해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그것은 세상이 없기 때문이다. 또는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결국은 언약의 세계만 남기 때문이다] 이런 뜻이에요.

경건생활 하라는 그런 뜻 아닙니다. 세상은 없어지는 거예요.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고 그렇게 출세하려고 하는 이 세상 자체가 점점 희미해지고 날라가버려요. 그런데 그런 세상 앞에서 경쟁하고 비교하면서 좌절하고, 난 저거보다 못해. 나는 망했어, 망했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없어지는 건데. 없어지는 허깨비하고 상대하고 자기 자신을 비교할 하등의 이유는 없습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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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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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