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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31009b 부산강의 : [시편]62(46:10)-자기 환멸자유게시판시편

20231009b 부산강의 : [시편]62(46:10)-자기 환멸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작하겠습니다.

시편 46편 7절 봅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그다음에 나오는 단어가 뭐냐? ‘야곱’이죠. 철저하게 인간과 인간을 구분합니다. 7절에 야곱의 하나님, 다른 하나님 아닙니다. 야곱,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하나님이에요. 아니 하나님이 이스라엘만 챙기지 딴 건 챙기지 않습니다. 이게 창세전부터 예정돼 있어서 그래요. 개나 소나 전부 다 구원하라 하면 안 돼요.

언약이 통하지 않고 복음이 통하지 않으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놓은 자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도하는 것도 굉장히 편해요. 한 구찌 하려고 하는 그건 보험회사에서나 하는 거고요. 그런 게 없어요. 언약으로만 해서 언약에 대해서 반응을 살펴서 언약에 대해서 거부하면 그거는 내 백성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내일 회개하고 어떻게, 그건 내일 문제고요.

그럼 언약이 뭐냐? 10절에 나오지요. ‘가만히 있는 것’ 이게 출애굽할 때 원리였거든요. 모세가 홍해 앞에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가만히 있어. 거기서 나온 유명한 노래 있지요. ‘가만히 있어 다 내가 해줄게~ 내 안에 둥지를 틀어봐’ 우리 남진 장군님께서 하신 노래, 상당히 복음적 노래 같아. (찬송가 778장^^) 가만히 있다는 것은, 나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모든 인간은 자기가 관련된 문제에요. 몸뚱이 내가 있고 이 몸은 일어나는 어떤 일도 다 내 몸과 관련돼 있어요.

어제 우리교회 예배 전에 이야기하는데 어떤 권사님 이야기했어요. ‘나는 정치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그런 이야기해요. 제가 울산강의 때 했잖아요. 아스팔트 누가 깔았습니까? 아스팔트 안 깔면 타이어 다 나갑니다. 차타면 알듯이. 의료보험 누가 만들었어요? 국가가 해준 거잖아요. 분리수거 누가 하는데요? 국가가 해주는 거예요.

사람들이 아무 정치 상관없다? 그래서 권사님한테 이야기했지요. 만약에 우크라이나 국민이라면, 이스라엘 국민이라면 아무 상관없을까요? 여자들 납치해서 인질 만든데, 하마스가. 평온하니까 아무 상관없는 거예요. 평온하니까 자기 것만 생각하면 돼. 그런데 반송까지 인민군이 쳐들어와 보세요? 난리도 아니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전쟁은 뭐냐 하면, 모든 인간은 모든 것이 나로 되돌아가요. 이 몸이 있으니까요. 몸의 속성이 그러니까. 그리고 복을 받기 위해서 자기 의를 증강시켜요. 자기 의를 추가시킨다고요. 제가 어느 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한 게 생각이 나는데요. 하나님과 뭐하려 하느냐 하면 거래해요, 거래.

어떻게 거래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시키는 것 다 해줄 테니까 나 구원 안 해주기만 해봐라.’ 이 식이에요. ‘이케요, 저케요’ 하면서 다 해주는 거예요. ‘하나님 시키는 대로 십자가 믿어줄게. 피? 믿습니다. 언약 믿고 다 합니다. 이래도 날 구원 안 하기만 해봐.’ 이런 식이에요. 결국 그 목적이 주의 이름은 온데간데없고 자기 이름을 위한 주의 이름이 돼버렸어요. 최종적인 그게 나 구원이에요. 중간에 들어가는 게 십자가 들어가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왜 망한 줄 알아요? 그래서 망했어요. 그게 그런 짓을 한 선배가 있어요. 이스라엘이 선배였어요. 그래서 망한 거예요. 이스라엘 위한 하나님으로 구약의 모든 예언서를 그 식으로 해석을 한 겁니다. 모든 성경해석을 나를 위해서 성경 있다는 식으로 해석을 해버린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 좋지요. 찬양, 다 좋아요. 예배, 경배, 심지어 순교 다 해요. 하지만 결국은 마지막 그 누굴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래서 주님께서는, ‘언약 앞에 언약의 상대자는 네가 아니다. 너는 입 다물고 가만있어.’ 현재 일어나는 모든 상대자는 네가 아니고 네 속에 있는 주의 이름이에요. 성령 안 받은 사람은 이해 못합니다. 너 말고 네 속에 있는 것, 네 속에 있는 주의 이름이에요. 이게 옛날 다윗언약은 왕이지요. 그 왕이 직접 들어온 걸 새 언약이라 합니다.

주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는 방법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대해서 환멸과 기대를 멈추는 방법을 사용해요. 그게 뭐냐 하면 주님이 언약을 집어넣을 때 피와 살이 찢어지지 않으면 언약이 안 들어와요.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언약 안 들어오거든요. 피와 살이 들어오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태도 자체가 거부하는 태도를 가져줘야 그 둘 사이에 예수님 쪽에서 피 흘리고 살 찢기는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강제조치지요.

우리는 우리밖에 모르는데 우리 자신에게 주님의 십자가 오게 되면 어린아이든 어른이든 전부 다 그것을 거부하게 돼 있지요. 좋은 예수님은 거부하지 않아요. 나를 천하의 마귀로 만드는 그 복음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든 고개를 설레설레 젓지요. 진짜 예수에 대해서는 환멸을 느끼게 만듭니다. 그게 1단계에요.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난 뒤에 그 뒤에는 뭐냐? 내 자신에 대해서 환멸을 느끼게 만들어요.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발견해서 다시는 나를 위한다는 것이 이 세상 이 우주가 대자연의 어느 것도 나를 위해 일어난 일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지요. 내 밥 먹고 살기 위해서 이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겁니다. 반대로 나를 철저하게 짓밟고 죽이는 일을 하는 거죠.

그러면 이 ‘가만있어’를 성경 구약에서 이걸 무슨 전쟁이냐 하면 불이시는 전쟁입니다. 아까 했지요. 인간세계는 힘의 우열로 전쟁한다 했지요.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만히 있어, 내가 너한테 와서 부딪히게 만들어서 그쪽이 깨어지게 만드는 전재이에요. 대표적인 게 무슨 전쟁이냐 하면 바로 기생 라합 전쟁.

기생 라합이 생각하는 여호와 하나님은 붙이시는 전쟁,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존재 자체가 이미 승자 쪽이라는 것을 인정한 거예요,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 나라가 전쟁에서 승리한 게 아니고 이스라엘 존재 자체가 이미 하나님이 승리한 결과물이란 사실, 결과적인 민족이란 걸 깨닫고 주께서는 결과적인 걸 갖고 몰고 다니는 거예요. 여호와 하나님이. 그걸 발견한 거예요.

그러니까 기생 라합이 그걸 알고 대든다든지 자기 쪽에서 할 건 없지요. 다만 그 찬스에 대해서 감사했지요. 이미 승자가 된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이 왔잖아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겁니다. ‘내 당신 편에 설게’ 끝난 거죠. 배신자죠. 다시 말해서 그동안 나를 키워왔고 밥 먹여 살린 나를 나 있게 했던 내 조국을 내가 기꺼이 배신합니다. 왜? 우리 여리고성 민족 중심의 인식이 아니고 여호와의 인식으로 봤을 때는 우리는 멸망당해야 마땅하다는 겁니다.

구약 성경 전체가, 구약 성경 초반에 중요한 사건 네 개가 나오거든요. 그 네 개를 나열해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에덴동산에서 추방한 것, 그다음에 가인의 살인사건, 그다음에 노아의 홍수심판, 네 번째는 뭘까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를 아셔야 네 번째 의미가 나오는 겁니다.

낙원추방으로 인하여 여기서 뭐가 있느냐 하면 힘든 노동과 보너스 출산의 고통. 힘든 노동은 누구 담당입니까? 남자 담당. 출산의 고통은 여자 담당. 여자와 남자가 이렇게 따로 분리된 채 각자 자기 역할이 주어집니다. 하나가 될 수 없어요.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했노라고 다가오면 여자는 출산의 고통이 심화돼요. 이거는 남자가 도와줄 수 없어요. 여자는 말합니다. ‘너 때문에 내가 더 힘들다. 다가오지 마. 넌 그 자리에 있어. 네 할 거나 해.’

니 할 게 뭡니까? 돈 벌기. ‘너 할 거나 하고 얘 과외 시키고, 피아노과외, 영어과외 시키는 돈만 대.’ ‘얘 키우는 게 뭐 힘들어. 같이 밥 먹고 누워 자고 살만 찌고.’ ‘그럼 너 바꿔해 볼래? 네가 얘 키워볼래?’ 그럼 남자들은 출산휴가 반납할게. 남자도 출산휴가 있잖아요. 반납하고 싶어요. 너무 힘들어서. 아이 키우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취미가 있어야.

두 번째가 살인사건인데 살인충동의 지배. 가인이 살인 취미가 있는 사람아 아니에요. 가인은 악이 가인에게 덮치고 덮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고 그걸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는 가인 내부에서 선악적으로 바르게 살아야 된다는 의지보다 더 강한 의지가 안에 새롭게 발생된 거예요. 이 바르게 살아야 되고 도덕적으로 살아야 된다는 충동도 거부할 수 없는 충동도 이겨내지 못하는 더 센 게 들어온 사건, 그 사건으로 인류역사는 살인충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게 창세기 4장의 중요한 거죠.

노아의 홍수는 뭐냐 하면 일관성 있는 전멸. 하나님께서 일관성 있는 전멸, 이유 있는 전멸 다 죽여 버려요. 노아까지, 노아식구까지 다 죽여 버려요. 노아식구가 자기 땅에서 살았습니까? 남들은 물에 잠겼는데 지는 자기 땅에서 구경했습니까, 어떻습니까? 자기가 살던 동네도 어디에 잠겼어요? 물에 잠겼지요. 물은 뭐냐 하면 심판의 매개에요. 물로써 심판한 거예요.

그럼 어떻습니까? 노아도 심지어 하나님과 동행했던 당대의 의인이고 은혜 입은 그들도 결국은 노아의 모든 것도 싹쓸이 심판의 대상이 돼버린 겁니다. 노아가 방주 탔을 때 신났다 싶지요. 사방을 둘러보세요. 뭐밖에 없어요? 물밖에 없어요. ‘저 바다에 누워~’ 노래 부를 그게 안 됩니다. 전부 다 바다에요. 자기가 희망이란 게 없어요. 이거는 차라리 죽는 게 낫지요. 산 채로 죽음을 구경하고 있는 거예요. 심판을 구경하고 있는 겁니다. 일관성 있는 심판.

그래서 복음을 안 받아들이는 사람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 뭐냐? 일관성 있는 전체 멸망을 인정 안 해요. 전에는 물이었잖아요. 지금은 뭐로? 불로. 하나님께선 다 죽이고 시작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복음도 인정 안 해요. 복음도 왜곡된 복음을 찾아다녀요. 내가 죽어야 된다는 걸 절대로 인정 안 해요.

심지어 마귀가 자기를 매일 하루하루 늙어 죽어가게 만드는 데도 기어이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디 나오느냐? 왜 내가 자꾸 죽기 싫어하느냐? 이미 추방되었기 때문에 그래요. 추방, 살인, 그다음에 전멸 이것이 창세기에 중요한 테마로서 흘러들어오고 있어요.

네 번째가 뭐냐? 바벨탑이에요. 바벨탑의 뜻은 뭐냐 하면 인간이 노골적으로 신이 되고자 하는 거예요. 구체화, 노골적이 되는 거예요. 이 노골화란 뜻이 뭐냐? 앞으로 정치사회를 구성하는 핵심개념, 이념이 돼요. 왜냐하면 국가가 사회 되려면 누가 모여야 돼요? 사람들이 모여야 되죠. 모일 때 다 바벨탑에서 잘린 자들이 모여요. 하나님께서 흩어지게 한 자들이 모였다고요.

모일 때 생각을 하나로 뭉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느냐? 대체로 같은 말을 쓰는 자들이 한 곳에 모여 있어요. 이게 바로 악마성이에요. 내가 신이 되고자 하는. 그래서 모든 인간은 말을 서로 소통한다는 것은 네가 갖고 있는 악마성과 내가 갖고 있는 악마성을 서로 유통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유통하는 것 잘 알지요. 이 사회가 유통의 사회에요. 이마트. 이마트 뭐예요? 유통이잖아요. 물건 파는 데잖아요. 거기서 물건 사잖아요. 시장에서 안 사고 대형마트에서 사잖아요. 마트 운영하는 사람이 뭘 원하는지 보는 거죠. 여기서 사람들이 유통을 잘하기 위해서 언어를 만드는 거예요. 신조어를 만들고, 광고를 띄우고. 그게 바로 현재 물질문명사회. 그걸 고발하는 노래가 바로 그 가사 내용이 여러분이 잘 안 봤겠지만 제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나의 오랜 어두움이 왔네
왜냐하면 잠자는 동안 몰래 들어온
환영이 내 의식 속에 씨앗을 뿌려놓았네
나의 뇌리에 그 환영이
침묵의 소리 안에 아직도 머물러 있네.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이렇게 시작되는 거예요.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Because a vision softly creeping, 낮게 조용하게 기어온다 말이죠.

끝없는 꿈속에서 좁은 자갈길 나는 홀로 걸었네
가로등 불빛 아래서 추위와 습기에 옷깃을 세웠지
밤하늘에 가로지르는 네온사인 불빛에 눈이 부시던 그때
그리고 벌거벗은 불빛 속에서
만 명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심이 없는 소리를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사람들은 부르지도 않는 노래를 만들고 있었지
그리고 아무도 이 침묵의 소리를 깨려고 하지 않았네
그때 침묵의 소리는 말합니다.

침묵의 소리를 깨우려고 한 사람이 없단 말이죠. 왜? 세상 물질문명에 정신 팔려서. 그때 하는 게 ‘바보들아’ 바보들아, 하는 영문이 이렇습니다. 'Fools' said I, You do not know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내가 말한다. 지금 침묵의 소리와 대화하는 이 예언자가 말하는 거예요.

바보들아, 침묵의 소리는 암세포처럼
자라나는 거라고 내가 말해주었지.
한 수 알려주려고 내 말 들어보라고
도와줄 수 있는 내 팔 잡으라고
그러나 내 말은 소리 없는 빗물처럼 떨어지고
침묵의 우물 속에서 메아리쳤다

사람들은 그들이 만든 물질문명, 여기선 네온이에요, 네온. 네온사인의 네온 있잖아요. 영어로 neon.

네온사인에 절을 하고 기도했지

물질문명이라 했는데 여기는 신이에요. 신에게 절을 하고 기도했다.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네온, 물질문명에.

그리고 경고등이 켜졌지, 신조어로 말이야
그 경고등은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예언자의 말씀이 지하철의 벽과
허름한 아파트의 복도에 쓰여져 있다
침묵의 소리가 속삭이고 있다고

여러분들이 집에 가서 보세요. 이 내용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이러한 하나님의 일관성, 아까 창세기의 바벨탑까지 이야기했지요. 여기서부터 이제 중요한 것 들어갑니다. 지금도 중요했지만 뭐냐 하면 전쟁이잖아요. 여기 시편 46편 다시 보면 9절, 저가 땅 끝까지 뭘 쉬게 한다 했습니까?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전쟁을 멈추는 거예요. 가만히 있어라. 이 전쟁 내가 한다는 거죠. 붙이시는 전쟁이니까.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11절) 그다음에 어떤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라 돼 있는데 다시 한 번 강의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전쟁, 누구하고 하느냐? 하나님께서 전쟁을 지금 누구와 한다는 겁니까? 야곱은 가만있어야 돼요. 야곱이 아는 전쟁이 아니고 야곱의 하나님이 아는 전쟁이에요. 전쟁 적이 누구냐 말이죠. 신약부터 먼저 봅시다.

아까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지요. 무슨 사건? 살인사건. 그다음에 전멸되는 것, 그다음에 드디어 노골적인 악마성이 온 땅에 그들 악마성만이 퍼져있는 것, 퍼지지요. 그러면 신약에 와서 이 모든 내용이 어디 함축이 되고 모아지느냐 하면 주님의 십자가에 모아집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주의 이름으로 오셨거든요.

그럼 주님의 전쟁 무기는 뭡니까? 활도 칼도 아니고 뭐다? 십자가에요. 십자가의 능력이 되는 거예요. 물론 모든 사람에게 어리석은 거죠. 어떻게 십자가의 능력으로 이 모든 전쟁을 마감하느냐. 아까 바벨탑까지 이야기했지요. 지금 십자가 이야기했지요. 중간에 뭐가 있었습니까? 중간에는 뭐냐 하면 이스라엘의 멸망이죠. 자, 이스라엘이 왜 멸망하느냐 말이죠.

분명히 앞에서 이스라엘이 만들어지고 이스라엘이 함께 약속의 땅까지 들어가 놓고 쫓겨났잖아요. 쫓겨나기 위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간 거예요. 너희들이 생각하는 이스라엘과 약속의 땅에 살만한 이스라엘과 이게 차이가 났다는 거예요. 이게 합치되지 않았다. 같지 않았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율법을 모세로부터 받고 율법을 지킨다고 했잖아요.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말씀을 보고 말씀 지킨다고 애를 썼잖아요. 그게 십자가 정신과 일치된다, 안 된다? 안 됐지요. 그 원인에 대해서 인간의 몸에 문제 있다 했잖아요. 그죠? 그렇다면 중간에 이스라엘이 왜 멸망하는가? 왜 멸망하느냐 하면 앞에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올 때까지 적을 누굴 세웠느냐? 이스라엘 외의 적을 한 거예요. 이방나라 적들이 있지요.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사무엘상 17장을 보겠습니다. 17장 45절, 누가 크게 읽어볼까요.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지금 다윗언약 이전이에요. 소년 다윗입니다.

그럼 다윗언약의 솔로몬 때가 절정, 이스라엘이 최고의 이스라엘답게 인정받는 나라였어요. 솔로몬이 기도할 때 하나님께 칭찬받았잖아요. 네가 수명 느는 것과 재산 같은 것, 원수 죽는 것 기도하지 않고 말씀대로 백성들 다스리게만 해 달라, 그게 바로 내게 합한 내가 하늘나라 다룰 때 말씀으로 다룬다는 걸 솔로몬이 보여준 거예요.

그러면 이거는 중간과정이요. 아직 이스라엘까지 낭패가 오진 않았어요. 여기서 뭐냐 하면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친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그 이후에 솔로몬 이후에 나라가 둘로 쪼개졌어요. 그러면 누가 누굴 모욕한 거예요? 이스라엘이 누굴 모욕한 거예요?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한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전쟁의 내부성이에요. 전쟁이 내부성으로 확전돼요. 바깥 전쟁에서 어느 전쟁으로 이어진다? 이스라엘 전쟁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그게 신약에 오게 되면 옛날 이스라엘을 제대로 회복하겠다고 유대교 나라가 만들어졌잖아요. 그런데 십자가 누구한테 죽었습니까? 우리는 다시는 조상의 과오, 오류를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짐에 다짐을 했던 그들에 의해서 메시아가 죽었잖아요. 하나님이 죽었잖아요.

그러면 전쟁의 내부성이 이스라엘 자체를 부셔버렸지요. 이스라엘 자체를 흩어지게 했지요. 그렇다면 신약에 와선 뭐냐? 전쟁이 각자각자 개인의 마음을 와해시키는 거예요.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심지어 열두 제자의 마음속에 그게 와해되고, 십자가를 사도 바울을 그렇게 이해하는 거예요.

로마서 7장에 사도 바울이 이해하는 십자가는 뭐냐? ‘나는 내 안의 악마를 보았다.’ 악마를 바깥에서 본 게 아니고 내 돈 사기 처먹은 사람이 악마가 아니라 내 안에서 악마를 본 거예요. 발견한 겁니다. 죄가 나의 선한 의지를 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를 죄의 노예로 만들었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편안한 거예요. 노예기 때문에 편안한 거예요. 전쟁이 아니기 때문에 편안한 거예요.

여러분도 복음을 전해보고 저도 복음을 전해보고 여러 가지 하지만 듣는 반응, 태도, 결과가 어떤지를 내가 크게 쓰겠습니다. 복음 실컷 전했다 합시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냐?’ 한 두 시간 동안 점심 사줘가면서 복음 전한 게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냐. 이게 뭐냐 하면 ‘나는 나대로 마음의 평화와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그런 것 신경 안 써도 내 나름대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거예요.

이 말은 뭡니까? 전쟁 중이 아니다. 나는 내 안에 투쟁이 없고 전쟁 중이 아니다. 갈등도 없다는 거예요.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여전히 나의 의는 유지되고 있다. 함부로 날 평하지 말라, 함부로 날 비판하지 말라. 내가 내 나름대로는 잘 살고 있다는 거예요. 이런 소리 듣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미 예상하고 있어야 돼요. 이것만 예상하면 안 돼요. 이게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이게 뭐가 잘못됐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묻는 겁니다. 이 이야기가 뭐가 잘못됐습니까? 네 자. 앞에 ‘전’ 뒤에 ‘전’ 하여튼 누구한테 이렇게 퀴즈 내는 것 제일 미워. 지 혼자 아는 이야기를 남을 기죽이려고. 그래서 문제 내놓고 방금 후회했습니다. 정답 빨리 이야기해야 돼. ‘전면전멸’ 지금 이걸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노아 물 심판 인정 안 하고, 지구가 불탄다는 걸 인정 안 하고 내 몸만 편하면 된다는 거예요. ‘복음 없어도 우리 교회 부흥되면 끝나는 거 아니에요? 우리 교회 헌금 잘 나오고 숫자 늘어나면 되잖아요.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 너 지금 교회 평안하고 교회 분위기 좋은데 십자가로 초치냐?’ 이래 나오는 거예요.

이미 여러분들 이것 실감했을 거예요. 어디서? 추석 때. 추석 때 경험했잖아요. 자기를 씹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이재명 씹고, 윤석열 씹지 누가 자기를 씹어요?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야? ‘알아. 십자가 뭔지 다 알아. 내 많이 먹었다 고만 해라.’ 많이 먹었다. 다 알아요. 아는데 지금은 그렇게 절박하지 않다는, 지금은 내 패턴대로 사는 게 편하다는 거예요. 내 나름대로 평화와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거 우짜면 좋아요?

자, 우리는 여기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적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하나하나 체크해보야 돼요. 체크해서 평소에 나오는 어떤 태도, 말 같은 것이 예수님의 적으로 적이 유통되는 예수님에 대항하는 반발하는 자들의 대화 중에서 나오는 정신세계가 이런 거구나, 라는 것을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이 세상에서 각자 자기 패턴대로 나만 편하면 되지요. 전쟁 나면 어떻게 하나? 전쟁 나면 이민 가면 되지요. 한국에 인민군 왔다? 부산에서 일본 가기 좋아요. 시모노세키 관부연락선 타고 그냥 가면 돼요. 내빼면 돼요. 뭐가 걱정이에요. 문제는 돈이야. 돈 없으면 오도 가도 못하지만 돈 있는 사람은 다 벙커 만들든지 안 그러면 미국에 아는 사람 있어서 초청해서 도망가든지 하면 되지요. 미국에 전쟁 나면 남미로 가든지 브라질, 안 그러면 뉴질랜드 가면 되지 뭐. 뉴질랜드 가면 어떻게 되느냐? 늙어 죽겠지 뭐.

힌트를 드리겠어요, 힌트. 예수님의 적은 누구였습니까? 유대교였어요. 유대교가 믿는 게 [탈무드]였어요. 그러면 예수님을 거부하는 정신은 무슨 정신이다? 탈무드 정신이에요. 탈무드 정신이 뭐냐 하면 첫째, 극히 현실주의.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하도 많이 쫓겨나서 무엇이 필요한가? 쫓겨날 때를 대비해서 가장 중요한 게 있으면 된다. 그게 돈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탈무드 속에는 돈을 버는 요령들이 가득 차 있어요. 돈을 버는 요령이 뭐냐? ‘이것은 남이 하기 싫은 정신적으로 지저분한 일을 하라.’ 이거였습니다. 육체적으로 말고 정신적으로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해라. 그리고 한 자리에 머물지 마라. 그래서 유대인들이 주로 항구도시에 많이 집결돼 있어요. 미국의 뉴욕에는 백만 명의 유대인이 있습니다. 런던, 파리. 파리는 항구도시는 아니지만 그런 데 많이 있었어요.

항구도시의 특징이 뭐냐 하면 돈이 모여 있는 곳이에요. 돈이 모이고 이거는 빨리 빨리 떠나야 되게 때문에 농경생활하면 안 돼요. 농사짓고 이러면 안 돼요. 뭘 했느냐? 장사해야 돈이 생기지 농사해선 돈이 안 생기는 거예요. 이걸 쫓겨다녀봐서 아는 거예요. 돈을 벌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하기 싫은 것, 그러니까 천한 직업, 틈새시장을 노리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탈무드 속에는, 탈무드가 언제부터 시작되느냐 하면 바벨론에 포로 잡혀갔잖아요. 이스라엘 추방됐지요. 이건 제 생각인데요. 이번 겨울수련회에는 첫째 시간, 둘째 시간에 어디를 하느냐 하면 말라기 끝나잖아요. 신약 오지요. 그 틈새에 비어있는 역사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거기에 대해서 설명해드리고 에베소서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거예요. 왜 그걸 생각하느냐 하면 역사란 누워있는 바벨탑이기 때문에. 시간이 누워있는 바벨탑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현재 유대나라를 있게 만든 그 역사 속에 살아 있는 하나님이란 인식으로 구약성경을 그렇게 이해하는 겁니다. 구약성경을 역사를 이해하되 현재 유대나라는 정당하게 생길 수밖에 없고 이건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식으로 과거의 자기 역사를 해석하는 거예요. 그거 들어보면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거나 오늘날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거나 똑같네.

지금 내가 여기 존재한다, 라고 하는 것은 그냥 존재하는 게 아니고 아는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먼저 염두에 두고 지난 고등학교, 중학교, 내가 20대, 30대를 전부 다 그런 식으로 해석을 해버리는 거예요. 해석은 지나오고 난 뒤에 지금을 긍정하기 위해서 해석을 하는 거예요, 인간은. 자기 현재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옳다는 것을 하기 위해서.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옳다는 거예요. 모든 해석이 다 그래요. 그걸 유대인들이 보여준 겁니다.

그래서 유대나라는 어떤 경우라도 옳아요. 옳기 때문에 로마가 유대를 공격한다? 그러면 벌은 누가 받아요? 로마가 받지요. 왜? 자기는 옳기 때문에. 이런 해석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 그들은 예수님이 뭐가 된다? 적일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방금 한 유대나라의 의식하고 오늘날 우리 의식하고 뭐 차이 납니까? 차이 안 나지요.

그래서 다시 이야기합니다만 하나님의 적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 내부의 적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남들 나쁘다가 아니라 네가 나쁘다는 겁니다. 이건 좀 약간 어렵지만 참아야 돼요. 내가 있으면 여기 육신이 있다 했지요. 아까 자아가 있지요. 자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뭘 찾느냐 하면 나는 누구다, 해선 자아를 몰라요. 비교되는 타자, 남과 비교하면서 자아의 가치, 의미를 정하는 겁니다.

부산강의에서 여러 번 했는데 다시 이야기해서 배우자 중에서 한 사람이 죽으면 보통 남자가 먼저 죽으니까 남편이 죽었다, 아내는 산 게 아니에요. 왜? 자기 잘남을 증명해줄 사람이 죽어버렸으니까 없어졌으니까. 그래서 애통하는 자는 죽은 자가 아니고 죽은 자를 보낸 남은 자가 애통해요.

그런데 이것도 잘못이에요. 죽을 때 애통하는 것은 크게 자기 인생에서 오해하고 있는 거예요. 죽을 때 한 순간에 죽는 게 아닙니다. 살아온 내내 누적이 돼 죽잖아요. 그러면 죽을 때 애통한다는 것은 살아 있을 때는 애통 안 하고 있었다는 자기 오류를 지금 고백한 게 돼요. 살아 있음이 애통한 죽음을 순간을 맞이했다면 살아 있는 살아 있음을 애통해야지요. 왜 그건 애통 안 합니까? 왜 죽을 때 애통하느냐 말이죠. 그거 반칙이잖아요. 논리적으로.

그래서 인간은 자아가 가치 있고 의미 있기 위해서는 남보다 낫다는, ~낫다, ~더 가치 있다, ~더 옳다 할 수 있는 비교대상을 끌어당겨 와야 내가 규정이 된다고, 내가 규정이 되는 거예요. 정치라 하는 것은 야당이 없으면 정치가 안 돼요. ‘저쪽보다 우리가 낫잖아.’ 이게 돼야 정치가 돼요. ‘어느 쪽에 표 찍을래?’ 공산당에 무슨 표가 필요해요. 당이 하나밖에 없는데. 그래서 공산당은 외세를 이야기하죠. 적이 자기한테 바깥에 미제제국주의를 언급하는 거예요. 그래야 안에 결속이 되니까.

모든 인간은 왜 모였다 하면 추석 때 명절 때 모이면 남 말하느냐? 남 말해야 상대적으로 자기가 정당화되고 가치 있고 의미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 씹을 타인이 없으면 주로 씹히는 것이 연예인들이에요. ‘최진실 딸 그거 문제 있더라.’ 니 딸이나 잘 키우세요. 유대인들은 이방민족이 있음으로 상대적으로 결속이 돼요. 우리는 우월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고 율법이 있다. 전부 다 뭐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과거의 율법해석을 다른 나라와 비교한 차이성으로 구약을 율법을 해석한 거예요.

여러분들이 유대인들 나쁘다 하지 마세요. 기존 교회 목사들 어떻게 설교하는지 보세요. 그 교회 참석한 사람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서 뭘 합니까? 우리는 신천지 아니라는 거예요. 신천지나 니나 똑같아. 우리는 여호와증인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보수정통이라는 거예요. 유대교는 안 그랬어요? 유대교는 진짜 열한 지파 다 잘려도 유다 지파만 하나님께서 남기기로 작정했다는 거예요. 작정했지? 메시아 죽이라 작정했지요.

인간은 모든 말 속에 타인에 대한 견제가 담겨있는 말만 하게 돼요. 왜냐하면 나는 모르니까 저보다 낫다, 저보다 옳다, 저보다 나는 더 행복하다, 이런 걸로 반대테제로 자기를 규정하려고 하는 게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어떻게 오시느냐 하면 ‘내가 네 반대돼 줄게’ 그렇게 오셨지요. 왜냐하면 불로 나중에 전멸시키는 일이 남아있기 때문에, 불로 다 태워버리는 일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 일을 위해서 모든 인간으로부터 원수로 자청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성도는 그 사실을 성령을 통해서 이제는 알게 된 거죠. 내가 하나님의 원수였구나. 로마서 5장에 나오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원순데 예수님의 나로 인해서 생긴 희생, 화목제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뭐가 되었다? 의로 확산되어 들어왔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의를 가진 게 아니고, 가져버리면 가진 내가 또 우월이 돼요. ‘가진 게 너 없지? 나 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주의 의가 내 인생 속에 주님의 희생이 확산, 퍼져 들어온 거예요. 스펀지 물 빨아들이듯이 내 일상 속에서 십자가와 관련된 모든 상황들이 퍼져 들어온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티비 보는 것도 죄고, 모든 죄 아닌 게 없고, 밤에 꿈꾼 것도 다 죄가 된다는 사실이 감사와 고마움이 되는 겁니다. 이걸 제가 어느 강의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내가 생각한 나와 주님이 생각한 나, 두 개의 나가 있어서 내가 생각한 나를 지워주는 데서 범사에 감사가 나온다고 이야기했어요. 두 개의 자아가 있는데 내가 고집하는 나를 주께서 제거해주는 데서 오는 고마움, 그러니까 범사에 감사하지요. 그래야 뭐가 남아요? 주의 의로 확산된 내가 주의 안에 마련돼 있는 내가 가려지지 않고 드러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유대교 탈무드에 나오는 내용을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리면서 어떻게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과 생각이 똑같은지 실감하시기 바랍니다. ‘부자 되는 방법은 내일 할 일을 오늘 먼저 해치우고, 오늘 먹어야 될 일을 내일 먹으면 된다.’ 뭐냐 하면 ‘밥 먹고 합시다’ 하지 말고 먼저 일을 해치워버리면 밥은 나중에 먹어도 된다는 거예요. 그만큼 유대인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는 거예요.

그다음에 ‘돈은 빌려주지 않더라도 책은 빌려주어라’ 왜? 지식이 돈 되기 때문에. ‘부자에게는 자식은 없고 상속인만 있다.’ 자식이라도 믿지 말라. 자식이 다 노리는 게 있다. 그건 내 돈이다. ‘가난한 자에게는 적이 없지만 부자는 친구가 없다.’ 이게 뭐냐 하면 한국교회가 다들 잘 살 그다음부터는 친구가 없어요. 혼자 살아요. 혼자 사는 게 제일 편해요.

그다음에 ‘바닥에 엎드려있으면 넘어질 일이 없다.’ 항상 사람 앞에서 넘어진 자로 살아라. 결국 그것이 돈이 된다. ‘한쪽 다리를 잃으면 다른 쪽 다리가 있음을 감사하고, 두 다리 다 잃으면 목이 남아있는 걸 감사하라.’ 목 없으면 감사도 날아가기 때문에.

이건 뭐냐 하면 결국은 아까 처음에 했듯이 유대교의 사상은 자기에 대한 절박함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에 대한 절박함을 가진 자가 예수님을 죽였다는 말은, 주님은 어떤 절박함이었습니까? 나로 인하여 모든 말씀이 완성되는 절박함이 있었지요. 두 절박함의 만남과 충돌이 십자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지요. ‘나는 나에게 절박하구나.’ 그런데 그게 바로 ‘내가 몰랐던 죄구나’ 이것이 성령께서 오시면 알게 됩니다. 왜? 성령은 의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우리를 책망하는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사냥 앞쪽으론 가지 말고 말 뒤쪽으론 가지 말라.’ 왜? ‘사냥 앞으로 가면 뿔에 받히고 뒤로 가면 발꿈치에 차인다.’ ‘너무 끝에 서지 말고 너무 앞에 서지 말라.’ 사회는 중간에 서면 최고다. 그래야 안 다친다. ‘손님과 생선은 사흘 뒤면 악취가 난다.’ 이거는 남의 집에 오래 있지 말고, 손님 오래 있거든 나가라 해라. 냄새난다.

그다음에 중요한 건 뭐냐? ‘남들이 웃고 있을 때 울지 말고, 울고 있을 때 웃지 말라.’ 이게 뭐냐 하면 유대인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비결이 나옵니다. 표정관리. 그래서 유대인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 나와요. ‘표정은 나의 가장 가까운 밀고자다.’ ‘승자는 눈길을 밟고 가지만 패자는 눈 녹기만 기다린다. 세상을 겁내지 말고 돌진하라. 그게 너의 길이 된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생존과 생계에 대한 절박함,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나타남으로서 죄 중에 가장 교묘하고, 인간의 아이디어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얍삽한 죄의 절정으로서 하나님은 유대교 속에 오신 거예요. 왜?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 잡혀갔잖아요. 포로 잡혀가면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실은 믿을 놈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 내가 설치지 않으면 이 땅에서 못 산다.

그래서 사두개인에게는 뭐냐? 부활이 없어요. 오직 현실주의자. 그 현실주의자가 예수님을 죽였다면 우리 내부에 아무리 교회 다니고 복음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끝까지 현실주의자로 살아가고 있지 않는지 우리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그걸 들춰내시는 주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가만있으라 하지만 가만있을 수 없는 내가 나에게 지시를 내려야 마음 편한 어느덧 우리가 하나님의 대적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음을 이제야 눈을 뜨고 발견할 수 있게 해주신 주께 감사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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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23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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