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444강,445강) 자살과 치료, 누구나 230919
444강-YouTube강의(자살과 치료 출애굽기 15:26)20230919-이 근호 목사
제444강, ‘자살과 치료’. 자살이라 하는 것은 스스로 죽는 것을 이야기하죠. 그런데 인간의 모든 죽음이 사실은 스스로 죽는 죽음입니다. 이유가 뭐냐 하면 생명의 길을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기 식으로 살아보려고 하기 때문에 거절하죠. 사는 길을 말해도 단호하게 cut합니다, 인간은. ‘나는 내가 납득되고 내가 느껴지는 대로 나는 한번 살아볼 거야.’ 하고 고집을 부리게 되는 겁니다.
복음이라는 것을 아무리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도 인간 자체가 자기가 따로 생명 또는 사는 길 또는 천국 또는 구원, 하나님 만나는 것에 대해 본인이 본인 시나리오를 이미 짜서 있어요. 내가 생각하기에 이렇게 이렇게 해서 나는 죽으면 천국 간다는 자기 청사진이 있습니다.
당연히 그건 누가 가르쳐준 거겠죠? 마귀가 가르쳐준 거죠. 그런데 사람들은 마귀가 자기를 가르쳐줬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고 이 세상이 다들 그러니까 나도 거기서 왕따 되면 안 되니까 대다수가 가는 길을 따르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인간세계의 대다수, 그 대다수를 배후에서 누가 관리하고 누가 통솔하고 누가 통제하는가? 이 세상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을 ‘이 세상의 신’이라고 하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 이 세상의 신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어요.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 세상 신이 있는 게 아니고 ‘이 세상에는 인간만 있다’라고 학교에서 가르칩니다.
고린도후서 4장 3절에 보면,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복음이 잘못되었다는 쪽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복음이 맞는데 분명히 맞는 이야기인데, 예수님은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난 게 분명한 사실인데, 여기에 대해서 사람들은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어요.
결혼식 하는 신부나 결혼식 하는 신랑이 자기 결혼식에서 하객들에게 ‘나는 이제 복음을 위해서 살겠습니다.’하고 외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죠. 둘 다 선교단체 출신이든지 해서 참석한 사람들이 다 아는 사람 같으면 그렇게 광고를 노골적으로 하겠지만, ‘이제부터 우리 행복하게 살 거예요!’ 뭐 이렇게 하죠. 요새는 주례도 없으니까. 어른들은 잔소리하지 마라 이거거든요. 어른들은 간섭하지 마라. ‘내 행복과 내 살길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라고 선포하는 그 날이 결혼식이 되고 말았어요.
그러니 인간이 계획하고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일에 대해서 복음은 퇴출당하고 복음은 거절당하는 세상입니다. 교회 다니고 복음 전함 받은 사람들도 이점을 잘 모르죠. 친절하게 복음 전하고 밥까지 사주고 심지어 차비까지 주면서 교회 데려왔는데 나는 교회가 취미에 안 맞다는 거예요. ‘내 취향이 아니다. 취미에 안 맞다. 교회 다니고 하나님 믿는 거 내 취미에 안 맞다.’ 하고 아주 정중하게 거절하죠.
그 사람은 거절하는 것이 내 자유의지이고 내 뜻이라고 생각하는데 4절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세상 사람들 숫자가 75억 명 되는데 그 75억을 관장하는, 어떤 더 위에 더 높은 자리에 왕이 있어요. 이 세상 왕, 신이 있고 그야말로 신이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노력을 해도 그 세상 신으로부터 탈출이 불가합니다. 안됩니다.
그러면 그 세상 신이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모든 건 다 용납해요. 그러나 복음만큼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복음의 영광은 인간이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혼미케 하는 일을 세상 신이 아주 분주하게 잘하고 있습니다. 아주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러니 인간들이 보기에는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한다 하지만 사실은 악마가 알아서 해요. 이 세상 신이 인간 마음을 알아서 합니다. 구약에서 바로 그 세계가 애굽이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자기 애굽 나라의 강대함을 믿고 바로 왕의 지시에 따라서 자체적인 국가를 이루어 최대의 국가라고 하지만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그다음에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애굽 사람에게 10가지 재앙 내린 것을 ‘질병을 내렸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질병을 내린 거예요.
그 말은 ‘애굽 사람들은 환자들이다. 전부다 병들었던 자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 병든 자, 환자들의 말을 들어가면서 노예 생활했잖아.’ 그런데 애굽 사람이 왜 그렇게 병들었고 환자인가를 구원받은 히브리인들이 생각하지를 못했습니다. ‘저들 생각이나 우리 생각이나 똑같은데 저들은 힘이 있고 우리는 힘이 없다.’ 단지 이렇게 생각했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을 벌 내리고 있고 병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질병을 주고 있고 고치지 못할 병을 안겨주었다는 생각을 히브리인들이 못한 겁니다.
그런데 여기 출애굽기 15장 26절은, 그 애굽에서 히브리인들을 가려내어서 따로 분류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광야를 통과케 했습니다. 광야에 오면서 하나님께서 전에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때 너 징벌 없었지? 히브리인들은 재앙을 안 받았지, 그렇지? 너희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너희들 내가 두고 보겠어. 너희들이 율례와 법도, 하나님이 제시한 언약을 지키는지 봐서 만약에 못 지키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그 징벌 그대로 너희에게 내려주리라. 그런데 만약 내 규례를 지키면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을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않겠다.”고 한 거예요.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인간치고 악마의 수하, 악마의 지배, 세상 신의 지배를 받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뜻이에요. 그들이 정신 차려서 똑바로 성경을 보니까 믿어진 게 아니고, 악마의 힘이 자기 백성 성도한테는 복음의 광채를 가리지 못하도록 광채가 더 유난히 빛나도록 하나님이 악마보다 더 센 힘으로 뚫어냈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복음이 믿어지게 된 거예요.
내가 공부를 많이 해서 된 게 아니에요. 기도를 많이 해서 된 게 아니고. 교회 봉사 많이 해서 천국 가는 게 아니라, 이것은 인간 손에 달린 게 아니라 예수님과 악마의 싸움에서 악마가 진 거예요. 우리 성도에 관한 한 악마가 졌습니다. 그러면 성도 안에 뭐가 있는가? ‘악마는 지고 주님은 이겼다’가 여기 안에 들어오게 된 사람, 들어선 사람에게는 복음보다 더 귀한 것은 없어요.
그럼 자살은 뭐냐? 아까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자살이라 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가 죽음의 길로 내모는 걸 자살이라 해요. 사실은 인간이 자살한 게 아니고 뒤에 세상 신, 악마가 모든 인간을 자살하는 방식으로 같이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fact입니다. 사실입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사실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세계를, 지금 성경을 통해서 주님의 영을 받고 그 세계를 매일같이 바라보고 삽니다.
이하림gblayer('gblayer4', 'summerwood', '이하림', 'summerwood96@naver.com', '', '1', './program');(IP:219.♡.37.139)
23-09-20 07:35
445강-YouTube강의(누구나 사도행전 2:21)20230919-이 근호 목사
제445강, ‘누구나’. 사도행전 2장 21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여기 ‘누구나’에요. 누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받은 자라고 한다면 자기 자신에게 어떤 의미나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돼요. 나는 아무나였다. 나는 진짜 아무나였다. 내 주장, 내 고집과 내 의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 없는 존재였다. “내 뜻은 이렇습니다.”하면 주님께서 “가져가. 가져가. 네 뜻 안 받는다.”하고 내침밖에 없을 정도로 무가치한 존재가 ‘아무나’에요.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구원받고 난 뒤에 알게 됩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어떠냐 하면, 세상은 다 망해도 자기만큼은 안 망해야 되는 양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구원받기 전에는 아무나가 아니에요.
누구나가 아니라 ‘하나님, 나는 나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나는 나에게 최종적으로 고귀하고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는 나입니다. 나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한테 가장 소중하다는 이 점에 대해서 하나님도 좀 편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후원하고 격려하고 동조해줬으면 고맙겠습니다.’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교회 나가서 하나님을 찾죠.
그 마음이 가득 담긴 것이 바로 기도라는 거예요. 기도하는 당사자가 ‘정말 내가 가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 저는 아직 못 봤어요. 제가 아마 경험이 없어 그렇겠죠. 아직은 못 봤어요. 안 해도 되는 기도를 굳이 한다는 말은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내가 소중하고 나한테 있는 것들, 내 자식, 내 가정, 내 남편, 내 아내, 내 재산, 내 명예, 체면, 내 교회, 위신, 내가 투자한 회사, 내 것이라고 유산 받은 땅, 건물, 과거에 내가 들었던 괜찮은 인상과 평판, 이걸 그대로 지키기 위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특히 연세 많은 사람은 뭐 때문에 기도합니까? 건강. 나는 건강 안 해도 골골해도 괜찮을 정도로 아무것도 아니야, 이런 마음으로 절대로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여, 저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흔해빠진 아무나 속에 일개 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이것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같은 연배인 팔십 이상 된 연배가 있다 합시다. ‘아이고, 그 노인정 할머니 지난번에 코로나 걸려 돌아가셨대.’ 그러면 그 이야기 듣고, ‘으X! 나는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이 나를 귀히 여겨서 코로나 안 걸리게 했구나.’ 무슨 바이러스가 코로나가 사람보고 걸리는 게 어디 있어요. 이거는 다 주님이 조정한 거죠. 코로나가 사람보고 찾아가지 않잖아요. 박테리아보다 더 작은 게 바이러스에요. 그런데 자기는 자기 멀쩡함에서 오는 기쁨, 쾌락 이것이 남들이 나보다 경쟁에 밀렸다, 나보다 못한다 할 때 이게 배가됩니다. 그만큼 우리는, 나는 아무나가 아니라는 것이 철두철미하게 우리 마음속에 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인간들이 구원을 원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그 사실을 바로 구약 성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 중에 보면 요엘 선지자가 있는데요. 그 요엘 선지자가 예언을 할 때, 이스라엘은 망한다는 점을 기정 사실화해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계시를 전해버립니다.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합당한 조치다. 너희들은 망할 집단이다. 망할만했다. 마땅히 망해야 될 사람집단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쪽에서는 할 말이 있죠. 그럴 것 같으면 우리에게 이스라엘은 영원하고 내 백성이고 내 아들이라는 말씀을 왜 했습니까? 이렇게 망할 것 같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왜 그렇게 성급했습니까? 너희는 내 백성이라 해놓고는, 너희는 아니라 하면 앞뒤가 맞지 않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일관성이 있어야 우리가 믿을 만하지. 헤까닥하고 바뀌어버리면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을 만한 분이 못 되는 거죠.
요엘보면 2장의 내용이 사도행전 2장 17절에 나옵니다. 요엘 2장 28절,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되어 있죠. 자, 여기에 너희 자녀는 예언한다, 예언. 너희 젊은이는 환상, 환상입니다.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꾼다. 환상, 꿈, 예언 이 모두 인위적이지 않습니다. 사람이 꾸며낼 수 없는 것들이에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성도입니까? 신자입니까? 성령 받은 사람입니까? 그걸 어떻게 확인하느냐? 내가 원하고 내가 노리고 내가 꾸며낸 적도 없는, 내가 노림수를 가지고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없는, 기대가 아닌 전혀 다른 추가적인 것이 우리 속에 작동을 한다면 성도입니다. 그 사람들이 성도에요.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풍선이 있습니다. 보통 풍선은 안에 공기 들었죠. 가볍습니다. 그래서 뭐 “풍선 모여라” 하니까 빨강풍선, 노랑풍선, 파랑풍선 모였단 말이죠. 모였는데 허겁지겁 네 번째 풍선이 막 달려오는 거예요. 모습을 보니까 풍선인데 같은 풍선인데 뭔가 출렁출렁 출렁거리면서 오는 거예요. “네 안에 뭐 들었나?” “내 안에 물 들었다.” 이렇게 되죠. 그러니까 다른 풍선이 뭐라 하겠습니까? “어? 우리한테는 없는데 왜 이질적인 것이 네 안에 들어있지?” 이러잖아요. 그 이질적인 것이 성령입니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 같은 사회 직장생활하면서 같이 입사해 일하면서, 한 사람은 그냥 풍선인데 다른 어떤 사람은 자기 안에 성령이 들었어요. 성령이 들은 채 삼성그룹에 입사한 거죠. 성령이 들은 채 엘지그룹에 입사한 거고. 성령이 들은 채 어떤 사람은 학생이 됐고.
다른 사람은 그냥 흔하고 흔한 상식적인 이야기만 주고받으면서 보편적으로 똑같은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성령 받은 당사자는 예언을 이야기하고 환상을 이야기하고 꿈을 이야기하니까 다른 친구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아이, 그 꿈 좀 깨라. 그건 환상이야. 네 주제가 뭔데 네가 예언을 해?”하고 얼마나 욕을 많이 얻어먹겠습니까? 너는 우리하고 왜 안 똑같아? 왕따 시켜버릴라. 막 이렇게 나온단 말이죠.
그럴 때 그런 욕을 얻어먹고 핍박을 받고 쑥떡쑥떡 비난받을 때 비로소 예수님의 구원이라는 것을 감지하게 돼요. 왜냐하면 예언의 내용과 환상의 내용과 꿈의 내용이 딱 하나로 모든 것이 모아지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아무 구원될 자격도 없는 자들이 누구든지 구원될 권한도 없는 그 무엇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그것이 바로 성령께서 이 시대에 보여준 예언이고 환상이고 꿈의 내용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무시다가 풍선 안에 출렁이는 물처럼 꿈에… 여러분들 그런 꿈 많이 꿨을 거예요.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데 내가 다른 챙길 거 뭐 있노?’ 기뻐하고 있는데 꿈이라. 늙은이는 꿈을 꾸죠. 젊은이한테는 그게 환상이 되고. 너희 자녀들에게는 이것이, “엄마, 꿈인데 이게 무슨 꿈이야?” “그게 바로 예언의 성취였단다.”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는 그런 희한한 이야기. 여러분 뱃속에 똥배나 차지 마시고 이질적인 것, 이질적인 것이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