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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18장 17절 (어른의 시간) 230905b-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18장 17절 (어른의 시간) 230905b-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합시다. 18장 17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받든다는 말은 작아진다는 뜻이거든요. 자기 생각을 전혀 하지않을 때 받든다는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내 계획 내 의도 말고 이미 온전한 완전한 어떤 공간속에 포함이 될 때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내가 속해있는 세계를 드러내는 것. 그걸 어린 아이처럼 받든다는 거에요. 어린 아이의 천진난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천진난만의 특징이 뭐냐 하면은 얼마나 이게 자유로웠으면 구애받지 않는 모습이에요. 내가 속해있는 이 세계에 대해서 일절 책임, 의무감을 주지 않아요.

그게 아까 무슨 세계? 부활의 세계에요. 왜 우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느냐 하면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내 이름으로 사는 게 죽었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주의 이름으로 삽니다. 그게 천국이에요. 그래서 이미 나한테 이미 실망한 이상 나한테 기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아까 그걸 눈밭에 뛰노는 강아지처럼 그냥 마음 놓고 뛰노는 거에요. 마음 놓고 뛰어논다는 말은 그 조정은 누가 하느냐? 성령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뭐든지 자기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그때그때마다 하게 하시는데 들락날락.

왜냐 하면은 자칫하면 구원받는 자기가 주인공 되면 또다시 자기를 생각하거든요. 시간 요소가 개입되면 어제보다 더 나아진 나, 앞으로 더 나아질 거야. 구원받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나, 그 시간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거는 십자가의 효과를 완전히 훼방하게 돼요. 받든다는 말은 더 이상 챙길게 없다는 뜻이거든요. 내 것을 챙길 게 없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이 말씀은 뭐냐? 주께서 반드시 자기 백성에게 이렇게 어린 아이 되게 해주겠다는 것을 말씀으로 약속하신 거에요. 이 말씀을 그 당시 제자들이 이 말씀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모르지만 자기 나름대로 알았다고 보겠지요.

예수님 십자가지기 전에 제자들이 알았던 주의 말씀, 십자가지고 난 뒤에 부활한 후에 다시 십자가를 바라보는 거에요. 그러면서 제자들은 늙어죽지요. 죽고 난 뒤에 말씀을 남깁니다.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그 뒤에 사람들이 마찬가지로 그들도 똑같이 자기 위주로 하다가 성령께서 계속 스캔하니까 결국은 나 라는 것은 점점 더 점선으로 희미해지고 나 있는 자리가 바로 말씀의 자리가 되지요. 말씀의 자리. 이걸 대구강의에서는 뭐냐 하면은 일인용 침대에 두 사람이 들어온 거에요. 일인용 침대에 두 사람. 내 자리에 이 더러운 자리에 누가 들어온다는 말입니까? 주님이 들어오시고 성령이 들어오시는 거에요.

이렇게 이해하지 않으면 뒤에 나오는 사도행전의 성도들 모습들 사도 바울이 한 기적을 하나도 설명 못합니다. 사도행전 3장 16절에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낫게 했지요. 그때 앉은뱅이가 나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베드로와 요한이 극구 말리는 게 있어요. “내가 한 게 아닙니다!” “에이~ 당신이 한걸 봤어.” “내가 한 게 아닙니다.” 이 격차, 차이남. 무슨 차이 나는 거에요? 바로 말씀에 의해서 지배받는 것과 내가 말씀 지키는가의 차이점이죠. 그렇게 정리하시면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정리하면 주께서 어린 아이 되게 해주신다. 주께서. 말씀되게 해주신다. 너희들은 아니야. 너희들 어른들, 제자들은 아니야. 어린 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 못가. 나중에 제자들이 성령 오게 되면 아 어린 아이라는 것이 성령으로 새로 잉태한다는 사실. 기존의 태어난 육신가지고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요.

자, 그 다음에 18절 봅시다. 18장 18절부터 이 말씀은 마태복음 19장에도 이 유사한 말씀이 나옵니다. 나오는데 여러분들이 다 아는 거에요. 어떤 사람이 부자가 왔는데 부자청년이 왔는데 잘난 체했지요. 난 어릴 때부터 십계명 지켰습니다. 더 이상 뭐가 더 필요합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네가 부자잖아. 모든 걸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리고 나를 쫓으라. 그렇게 하니까 부자 사람이 근심하여 떠나갔더라.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이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자들이 깜짝 놀랬지요. 제자들 자기들의 견해하고 너무 다르니까. 천국이. “어떻게 합니까?” 하니까 여기 27절에 보세요.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이렇게 된 거에요.

그런데 28절에 베드로가 하는 말이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신다 이렇게 하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베드로가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사람들이 그 오해의 극한이 뭐냐? 마치 위대한 영웅, 위대한 스타, 위대한 스승을 만나고 난 뒤에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 것을 다 바치고 스승을 따라가면 우리는 스승이 있는 그 세계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베드로의 인식,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인간이 구원받지 못하는 아주 대표적인 인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어느 강의에서 했지만 인간이 구원받지 못하는 가장 극한의 모습이 뭐냐 하면은 희생입니다. 희생. 이거 안해야 되는데 자꾸 이거 하고 싶어요. 희생의 주인공은 물론 본인이죠 본인. 그렇다면 이 본문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본문과 이 본문을 달리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상식. 왜냐하면 베드로가 그 말씀 다 들었잖아요. 부자 청년이 와서 이야기를 다 봤잖아요. 다 보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린 것은 그러면 우리가 모든 것을 내 것 가진 것을 포기하고 주를 따라오겠습니다라고 하는 거. 거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된다고 했어요? 안된다고 했어요?

29절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요 그런 식으로 해서 영생 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하는 거에요. 어째서 그러한 결론에 도달했느냐. 희생해도 소용없어요. 희생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 힌트를 어디서 얻을 수 있느냐? 여기 18장 27절에 여기서 사람이 하는 것과 그 다음에 하나님 하시는 것을 완전히 예수님께서는 이걸 둘 다 분리를 시켜놨지요.

자, 그러면 분리시키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우리는 안할게요. 하나님 하시도록 맡기겠습니다라고 베드로의 내린 결론이 이 이야기듣고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 뭐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것이 틀렸다 이 말이죠. 왜 틀렸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 하시는 것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반드시 하나님을 공격해줘야 돼요. 공격받는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내 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게 뭐냐? 내 것 없어 나는 다 버렸어. 나 무소유, 나 다 버렸어. 자! 그 다음에 콜! 주님께서 하시기 바랍니다. 이게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을 이렇게 이해한 거에요. 그게 아니고 인간의 일은 하나님을 죽여야 돼요. 하나님을 죽여야 소한테 받쳐죽고 개한테 물려죽으면 안돼요. 하나님은 사람한테 물려죽어야 돼요. 사람한테. 사람한테 맞아죽으셔야 돼요. 하나님이. 그리고 인간의 일은 희생이 끝이 아니고 하나님을 때려죽이는 게 인간의 일의 끝이에요. 그게 가장 인간다워요. 그래서 사람이 하는 것과 사람이 하는 것이 안 되고 하나님이 하신다 이야기할 때 사람이 하는 것에 대해서 그 사람인 제자들과 사람들은 그게 내가 하는 일이 뭔지를 본인이 몰라요. 지금 모르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모르고 있으니까 주님께서는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말씀을 하셨지요. 지금부터 다시 한번 18장 18절부터 말씀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따로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게 아니고 사람한테 사람이 자기 하는 일에 충실해서 충실된 일에 얻어맞는 결과가 곧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 사람 없이는 하나님의 일이 안 된다는 사실이죠. 가룟 유다가 아니면 예수님이 팔릴 수 없다는 그거하고 똑같은 거에요. 이렇게 엮여져있어요.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그렇게 질문을 했지요. 내기 무엇을 하리이까 질문을 했는데 그 질문의 내용을 보니까 그 사람에게 뭐가 있느냐 하면은 법이 있어요. 법. 다른 말로 하면 율법. 그 사람한테 율법이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 율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얻어맞는 또는 버림받는 배척당한 그 것을 예수님 쪽에서 실시하는 거에요. 예수님 쪽에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유도하도록 예수님을 배척하고 버리도록 유도하는 쪽으로 주께서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에요. 이게 뭐냐 하면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생, 인간은 반드시 뭐냐? 법의식을 가지고 접근한다는 사실을 주께서 아십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이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방적으로 제 말을 해볼께요. 법이란 뭐냐? 둘 중에 어느 것이 맞는지 보세요. 법이란 나를 보호한다. 2번. 법은 나 말고 공동체를 보호한다. 어느 쪽입니까? 법은 나를 보호한다, 법은 나 말고 공동체, 공동체는 가정, 사회, 교회, 국가를 보호한다. 어느 쪽이 맞아요? 질문은 간단하지만 상당히 어려운 문제지요. 상당히 어려워요. 이 어려운 문제의 답을 알려면 인간이 홀로 있느냐? 아니면 인간은 환경 속에 같이 있느냐? 라는 거에요. 인간은 환경을 보는 거에요. 인간은 환경을 보지만 환경이 인간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해서 인간은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고 있다고요.

하나의 예를 들면 쉬워요. 우크라이나 전쟁 일어났잖아요. 자, 러시아 청년에게 러시아는 뭐냐? 조국은 뭐냐? 러시아 청년이 하는 말이 조국은 나를 지켜주고 보호하고 나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게 국가라 우리에게 해주는 혜택이라고 보는 거죠. 사람들 본능이 그렇잖아요. 나라가 나한테 뭘 해준다는 거에요. 그러면 전쟁이 일어날 때 너는 18세 이상이니까 전쟁에 나와가지고 총알받이 해라라고 나라에서 징집명령을 내립니다. 내릴 때 그 징집명령 받은 청년은 뭐를 생각하겠습니까?

도대체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국가와 달라요. 국가가 나한테 뭘 해줄 것이라 생각했지. 존.에프.케네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영화에 나오잖아요. 국가가 나한테 뭘해줄까 생각 말고 네가 국가에 뭘 해줄까 생각하라. 케네디가 한 연설, 영어로 했어요. 그 대목에 나오잖아요.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는요 위주가 누구 위주냐 하면은 나 위주에요. 그래서 러시아 청년이 요트 타고 포항까지 오잖아요. 조국을 버리고. 이거는 무슨 뜻이냐 하면은 이겁니다. 나는 어느 누구도 내가 나를 위해서 사는 것을 방해할 자가 국가가 되었던 가정이 되었든 누가 되었든 아무도 나를 이 나의 자유, 자율성 또는 자유의지 나의 자유를 훼방할 자격은 없다. 이게 철저한 겁니다. 법이란 나를 보호해야 하는 거에요. 법은 나를 보호해야한다.

이렇게 만약에 이웃집 아저씨가 흉기 들고 설치면 경찰 뭐하냐 이렇게 나오지요. 경찰이 잡아가야 내가 안전하니까요. 이겁니다. 그런데 아까 그 러시아 푸틴이 18세 이상 전부 다 군대 소집하지요. 그게 뭐냐 하면은 국가의 폭력이에요. 국가의 폭력. 너 말 안 듣지? 너는 적들한테 맞아죽을래? 안 그러면 너 우리한테 총살당할래? 총살당하기 싫으면 빨리 전쟁 나가. 젊은 사람은 진퇴양난이에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습니다.

이게 제가 국가라는 말 했지만 사실은 이걸 회사로 봐요. 회사. 마찬가지에요. 회사, 교회. 부목사 설교 시켜놨더니만 복음만 이야기한 거에요. 눈치코치도 없이. 담임 목사가 조용히 부르지도 않아. 조용히 불러요. 너 미쳤어? 너 계약할거야? 안 할거야? 왜이래. 네가 나이든 장로님의 심정을 알아? 집 두 채 바친 심정을 알아? 어디서 돈도 한 푼도 안 낸 놈이 교회가 어떻고 저떻고 너 입 다물고 있어. 안 그러면 너 계약 파기야. 은밀하게 불러가지고 그렇게 조치를 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장로들이 당회장 목사한테 압력 넣어가지고 저 부목사 길 좀 들이라고.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똥군기라고 합니다.

똥군기 쎈 곳이 어디냐 하면은 바로 절이에요. 주지스님 밑에 너 승려 될려면 내 말 들어 이런 거. 똥군기 없는 데가 어디 있어요? 모든 곳에 심지어 형제간에도 있는데 형제간에도. 이게 장례식장에도 있어요. 장례식장에도. 장례식장에도 자기가 다 부모 섬기는데 혼자 미국가가지고 와가지고 아이고 어머니 하니까 군기를 누가 잡느냐 하면은 형님이 한 게 뭡니까? 어디서 부조금 손 댈려고. 똥군기 잡는 거 아닙니까 전부다.

사람이 본인을 몰라요. 본인은 분명히 이상하게 자기밖에 모르는 자유가 있는데 그게 먹히질 않아요. 이 세상에는 이 현실 속에서는 먹혀들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본인의 자유가 찢어져요. 힘들지요. 힘들면 불러야지요. 비 오는 가로등 밑에. 힘들어요. 왜 매사가 가는 곳마다 내 마음에 안 들어. 이 세상 현실 자체가. 주님 뜻은 뭐냐? 다루어진다는 거에요. 주님께서는 뭐냐? 현실은 주님이 쥐고 있어요. 주님이 다루신 자만 영생에 들어가요. 영생. 내가 나 영생 들어갈래. 천국갈래. 못 들어갑니다. 주어진 환경에 의해서 내가 아는 나 가 아니라 전혀 예상 못한 나로 바꾸어질 때 구원받는 겁니다.

이게 뭐냐 하면은 사람 뜻대로 되지 않고 아버지의 뜻대로 된다는 그 뜻이에요 그게. 제자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모든 것을 버리겠습니다. 모든 걸 버리더라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의 모든 것을 빼앗을 것이다라는 거에요. 심지어 자녀까지 형제까지 집까지. 하늘나라 성령이 와서 뺏어야지 네가 갖다 바친다고 네가 구원받고 영생 받는 게 아니라는 거에요. 그래서 구제하지 말라고 동정하지 말라고 빼앗길 때까지.

이게 뭐냐 하면은 주님이 군기 잡는 거에요. 주님이 군기 잡는 거에요. 사람이 헌금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그 돈 드렸잖아요. 그거 빼고 나머지는 내 자율성으로 씁니다 이런 뜻이거든요. 본인이 본인을 군기 잡으면 그건 군기가 아닙니다. 빼앗기듯이 헌금해야 되요. 빼앗기듯이. 다시 말해서 헌금하고 갈 곳을 몰라 헤매야 돼요. 갈 곳을 몰라서.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하는 것도 주고받는 게 아니고 빼앗겨서 여러 배 받는 거에요. 마치 영생을 어떻게 받는다고? 주께서 빼앗고 주께서 일방적으로 영생을 우리한테 집어넣어주고 그래서 받는 게 영생이에요.

그러면 가만있으면 빼앗으러 오는가? 아닙니다. 인간이 가만있어서 주께서 빼앗는 게 아니고 인간은 빼앗기지 않을려고 하기 때문에 빼앗기는 거에요. 인간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게 어디 나오느냐? 부자청년이에요. 부자청년. 부자청년 이 얍삽한 게 뭐냐 하면은 자기가 돈이 많잖아요. 돈이 많으니까 돈 일단 자기 꺼에요. 돈은 자기 꺼였고 더 중요한 것은 돈을 모을 때 자기 힘으로 모았어요. 거기는 관원이라고 되어있는데 부자청년은 부자죠. 여기 뭐가 있느냐 하면은 법이 있었고 그 법을 본인이 지켜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 법을 지켜낸 보상을 받아서 부자 됐다는 거에요.

그럼 하나님이 한 게 뭡니까? 너 이대로 살아라 하고 법을 준 것만이 하나님이 하셨고 그 다음에 본인이 그 법을 지켜내는 것은 본인이 지켜냈고 그 결과로 자기가 부자가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고마운 마음이 있는 거에요. 그래서 법을 지키는 이 자율성이 자율적 순종으로 말미암아 이게 부자가 되었으니까 부자 더하기 무슨 빈자리? 부자는 살아있을 때 부자니까 죽고 난 뒤에는 어디 가야해요? 영생. 그럼 영생을 받는 법은 뭐냐? 자율적인 법에 대한 자율적 순종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같으면 부자가 그런 이야기했으면 예수님께서 좀 친절하게 이야기를 해주시면 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22절 굉장히 친절을 가장하지만 굉장히 과격하게 이야기했어요.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게 있지요. 지금 예수님이 완전히 약을 올리고 있어요. 한 가지 부족하니까 듣는 부자 입장에서는 뭡니까? 지금까지 한 것은 정상이고 거기에 약간 미흡한 게 남아있는데 빈 게 있는데 그거 하나 마저 채우면 된다고 한 거죠. 그런데 주님께서는 너 뒷주머니 숨긴 거 내놔봐. 숨긴 거 가져와.

이 비슷한 이야기가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바로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 나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계속 뒤에 숨기고 그럼 예수님 어느 산에서 예배드리면 하나님 기뻐하겠습니까? 이렇게 나온 거에요. 종교적인 폼을 내고 있는 거에요. 어느 쪽에 예배드리면 됩니까? 그러나 이미 그 전에 그 여자는 이미 들통이 나버린 거에요. 다시 말해서 빼앗긴 거에요. 자기의 숨겨져있는 것을 빼앗길 때 비로소 주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인 관계가 되는 겁니다.

결국 인간은 예수님의 목숨을 빼앗잖아요. 주님께서는 십자가 이전에 먼저 주님께서 인간부터 건드리는 거에요. 시비 거는 거에요. 내놔. 완전 깡패에요. 내놔. 인간의 자비심에 대해서 주님께서 끝까지 시비 걸어요. 인간의 자비심, 배려심에 대해서. 배려같은 소리하고 있네. 자비? 어디서 순진한 척하고 있어. 내가 선악과를 따먹고 신처럼 되리라 하는 그 원칙에 대해서 인간은 조금도 발을 빼본 적이 없어요. 아니 발을 못 빼요. 뺄 수가 없어요. 왜? 환경 자체가 갇혀있으니까. 예수님을 죽이게 된 환경을 의도적으로 주님 쪽에서 그걸 인간에게 몰아세웁니다. 다들 점잖아요. 점잖은 것을 완전 폭도로 만드는 작업을 주께서 나선 거에요. 사람은 안 건드리면 점잖아요. 건드리면 자기 본색 나옵니다. 그걸 유명한 사자성어로 영웅본색. 이쑤시개 물고 나오는거. 주윤발. 기어이 자기 본색을 기어이 들추어내는 거에요.

그런데 이 이야기가 지금 부자청년보고 이야기했지요. 놀래기는 누가 놀랩니까? 예수님 쪽에 있다고 여겼던 그 제자들이 너무 놀래버린 거에요. 이게 부자청년 보고 이야기한 게 아니고 우리 보고 이야기한 건가? 구분이 안 되는 겁니다. 21절 다시 봅시다. 이것을 어디서부터? 어릴 때부터죠. 시간요소. T요소. Time 요소, 시간 요소가 벌써 인간에게 포함되어있습니다. 인간은 시간 요소를 플러스 플러스해서 어디에 터치한다? 영생의 나라에 접촉하고자 하는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의 본성이죠. 계속해서 시간 시간의, 허튼 시간이 아니라 중요한 시간, 나를 위대하게 만든 시간에 터치하는 거에요.

예수님께서는 하시는 뜻은 이겁니다. 아주 과격해요. 돈이 있는 이상 훌륭한 자는 없다. 돈이 있는 이상 훌륭한 자는 없다. 이래가지고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를 거에요.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소유 없이는 주체 형성 안 된다. 자기가 소유가 없으면 주체 형성이 안 된다. 개뿔도 돈 한 푼도 없는데 무슨 내세울 게 없어요. 뭔가 돈이 있어야 롤스로이스도 타고 골프채 싣고 돌아다니지 아무것도 없는데 왜 해요. 돈 없으면 동창회 안 나옵니다. 안 나오지요. 돈 꽤나 있어 자랑질 해야 돼요. 사람은 왜 사느냐 하면은 타인한테 자랑할려고 살아요. 그래서 내가 내 자랑 할 사람 없으면 그 사람 살아도 죽은 사람입니다. 뭐 내세울게 있어야지. 사람이 말할 대상이 없으면 죽은 거에요. 말할 대상이 없으면.

그래서 배우자가 있다가 배우자가 암 진단을 받으면 정작 암 진단 받은 사람은 가만 있는데 옆에 멀쩡한 배우자가 울고불고 난리도 아닙니다. 굉장히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아 그거 아니에요. 나 너 없이는 만만한 사람이 없어. 그동안 얼마나 만만했어요. 그런데 새로 사귈라 하면 돈 들어요. 온갖 똥 폼 다 잡아야 돼요. 오늘 똥 자주 나오네. 온 아부 다 해야 되고요. 공들여야 돼요. 안 그러면 안돼요 그게. 그런데 아내나 남편은 이미 내 사람 됐어요. 무좀 걸린 발로 막차고 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죽는다. 그럼 다시 일을 새로 해야 돼요. 내 강아지를 새로 만들어야 돼요. 내 강아지를. 내가 무슨 소리 해도 다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새로 그 공예품을 새로 제조할려고 하면 이게 얼마나 힘들어요.

인간은 끝까지 자기뿐이에요. 남 생각하는 거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 이야기해봅시다. 우리 이야기. 질문해보면 알지요. 영생이 무엇입니까? 영생을 얻고자 하는데 지금 정작 영생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부자나 제자들도 마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으니까 영생 주어지겠지요. 아니! 영생을 지금 네가 안다고 여기고 지금 베드로가 그런 소리 하거든요. 영생이 뭡니까?

영생은 창세기 3장에 보면 영생은 인간의 해당사항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영생과 떨어진 존재가 영생이에요. 그런데 자꾸 영생 영생하니까 배후에 마귀가 뒷 조종하고 있는 겁니다. 영생은 없어요. 영생은 어디 있는가? 영생은 바로 예수님 말씀대로 예수님의 죽음 자리. 죽음 자리고 예수님 자살하지 않으셨죠. 인간에 의해서 맞아죽는 죽음 자리가 영생의 자리입니다.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영생이 없다. 내 살과 내 피는 예수님 스스로 짱돌로 피 흘린 거 아니잖아요. 예수님을 때려죽이는 자들이 있어야 되지요. 사람이 없으면 죄인이 없으면 영생이 발생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사람은 인간도 영생에 못 들어온다는 창세기 3장의 그 취지가 살아있는 나라가 영생의 나라에요. 사람은 들어올 수 없었다. 그 나라에요. 하나님은 창세기 3장의 취지를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끝까지 갑니다.

제가 어제 대구강의 한 거 잠시 설명해드리고자 합니다. 느부갓네살이 꿈을 꿨는데 신하들이 꿈을 몰랐지요. 그때 느부갓네살이 상당히 도발적인 행동을 합니다. 뭐냐 하면은 내 꿈을 해석하지 못하면 다 죽인다. 다 죽여버린다는 거에요. 이걸 제가 설명하면서 자기 근본을 모르는 자는 죽어도 할 말 없는 존재다라는 뜻이에요. 자기 근본을 모르는 자는. 살아도 살 가치도 없다는 거에요. 이것이 느부갓네살이 이야기했잖아요. 그런데 이것을 바로 하나님이 이 이야기를 우리보고 한다면 우리는 여기서 뭐라고 대꾸하겠습니까? 너 근본 알아? 너 영생 알아? 모르겠습니다. 그럼 죽어 마땅하네.

그래서 하나님은 십자가를 알아 란 말은 십자가 알면 다행이고 십자가 몰라도 살 수 있다가 아니라 십자가 모르면 내가 근본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다 죽여버리겠다는 거에요. 그러면 복음을 전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자, 여기서 여러분들이 생각해야 돼요. 복음을 전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여기 물병이 있지요. 어떤 사람이 물병을 들고 이 물병이 참 이쁘지요. 이 물병 맛있게 생겼지요 하면 그걸 보고 복음 전하는 사람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너 저주 받았어! 이거거든요. 물병의 물이 맛있다고 이야기했는데 저쪽에 복음 전하는 사람이 너 저주 받았어 라는 이야기를 왜 황당하게 왜 쌩뚱 맞게 왜 합니까?

뭐냐 하면은 물이 맛있다는 것은 알지만 뭐를 몰라요? 본인의 근본을 모르지요. 근본은 몰라도 되고 알아도 되는데 아니고 복음 전도자한테는 뭐냐? 근본을 모르고 십자가 모르는 자는 그거는 하나님이 속히 죽여버려야 될 사람이라는 거에요. 그 심정이 주님의 심정이고 성령의 심정이고 하나님의 심정이에요. 너는 몰라도 네 대로 살고 나도 이대로 살고 이게 아니고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나 이번에 옷 좋은 거 사 입었어 이쁘지?” “죽어버려! 인간아!” “왜??왜??왜?? 약먹었어? 왜그래?” 하면 “너는 십자가를 모르잖아.” “그거 꼭 알아야해? 너는 십자가 알고 나는 모르고 살래.” 그런 선택의 여지가 인간에게 허용된 적이 없음을 복음 전도자는 거기에 완전히 푹 젖어들어 있어요. 평소에.

그래야 복음 전도자가 세상 부귀영화 때문에 기죽지 않아요. 예수 믿어도 갈수록 점점 어렵고 생활비도 안 나오고 이거 뭐야 이게 아니고. 그렇게 남하고 비교하는 게 아니고. 느부갓네살 입장에서는 비교 대상이 없어요. 근본도 모르는 것들 여기에 대해서는 죽어 마땅하다는 그 인식이 오늘날 예수님 인식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18장 인식이에요. 아버지 나 열심히 회사 들어가서 돈 많이 벌어서 아버지 호강시켜드리겠습니다. 자식이 혹시 그런 이야기하면 죽어버려라. 대화가 될 수가 없지요. 그래 착하구나 자식 키운 보람이 있다 이렇게 돼야 되잖아요. 그런데 네가 십자가 알아? 지금은 바쁘니까 차츰 제가 알아가겠습니다.

그게 내 자식이니까 내가 용서해줄게. 내 자식은 내가 용납해줄게. 그게 바로 이 부자청년의 실수입니다. 그는 철저하게 사람의 일에서 본인이 벗어난 적이 없어요. 자기 일에서. 그리고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일에서 벗어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죽어버려라 과격한 말을 했지만 예수님은 더 심한 과격한 말이 뭐냐? 29절 30절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가 이 얼마나 과격하느냐 하면은 아무도 이것을 해낼 사람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영생을 거기에 갖다 붙였잖아요. 그러면 아무도 이 말씀을 행할 수 없는데 영생이 바로 이 말씀에 붙어있다는 것은 어떤 누구도 영생을 받을 자가 없고 영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살아도 소용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과격한 주님의 발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대목 보면 눈치 봐서 빨리 지나가요. 이 대목. 빨리 넘어가요. 이걸 새기자. 새기면 큰일 나요. 가만있어보자. 모든 걸 팔아서...우리 집에 아내는 얼마 전에 죽었지. 그럼 됐고. 지금 사람 일을 계산해요. 내가 얼마나 희생할까를 계산한다고요. 그렇게 말한 주님을 진짜 과격하게 격분해서 이 말씀하신 주님을 그 자리에서 때려줘야 때려주는 그것이 주의 일인데 때릴 생각하지 않고 주의 말씀 앞에 순종하고 맞출 생각하고 있다고요. 그러니 지옥 가지요. 그러니 지옥 가는 거에요.

우리는 돈도 없으니까 네 모든 걸 팔아라 이게 되지만 우리 같으면 너 모든 법을 팔아라. 네 양심을 팔아버려라 이렇게 나올 거에요. 우리가 감추고 고이고이 딴 것은 다 없어도 이것 때문에 이 소유 때문에 내 주체로서 내 내용물은 아직도 주체가 견고하다고 말하는 그 무엇이 있을 거에요. 그 무엇이. 사람 다 다르지만. 어쨌든 간에 그 최후의 것이 있을 거에요. 주께서는 그것을 건드리잖아요. 그걸 건드리니까 우리는 아무리 자비심과 배려심을 가져도 결국은 예수님 일은 우리는 고개 저으면서 제 할 도리를 다 했는데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교회 다니고 50년 교회 다녀놓고 장로 목사 할 거 다 해놓고 결국은 자기 갈 길로 가지요. 무슨 노래 부르면서? 마지막 편지 부르면서. 교회 다닌 것도 다 부질없는 꿈이었었어. 방금 50년 다녔다 했지요. 지금 5년 다니면서 한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6개월 다니고 교회 아무 소용없다는 사람도 한 둘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철저하게 어른이 돼야 돼요. 그리고 그걸 우리가 하는 게 아니고 성령께서 그렇게 하게 하십니다. 네가 원수야. 네가 십자가의 원수는 바로 너야! 라고 성령께서 이렇게 지적해줄 때 얼마나 그게 고맙고 그게 감사한지요. 눈밭의 어린아이 같다니까요. 할 게 없어요. 하면 살아나니까. 하면 살아나요.

꼭 해놓고 그걸 자기 소유 속에 집어넣어가지고 자기 소유를 게워낼 수가 없어요. 어른은 집어넣고 어린아이는 토하고. 정반대에요. 어린아이는 맨날 토해버려요. 자기 손가락 넣고 토하는 게 아니고 성령이 와서 토해버려요. 성령이 와서. 토해버립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다만 네가 이걸 양심이든 도덕이든 내가 뭐 목사입니다 집사입니다 뭔가 갖고있으면 그것이 너를 망친다는 사실. 그 사실이 우리를 망쳐요. 오직 성령만 있으면 돼요. 왜? 주께서 성령하고만 이야기하니까. 우리보고 이야기 안합니다.

그렇게 보시고 다시 한번 봅시다. 예수님께서 완전히 약을 올리는 거에요. 부자청년을. 네가 약간만 부족한 게 있는데 그게 뭐냐? 너의 모든 걸 다 팔아라.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느냐 하면은 예수님 말씀이 옳은 이유가 영생하고 큰 부자하고 어느 것이 가치가 있습니까? 예수님 보시기에. 영생이 있지요. 부자는 될 수 있지만 영생은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차단했기 때문에 못 얻는 거에요. 영생이 더 크지요. 예수님은 네가 이걸 동의한다면 이 영생보다 지극히 작은 것, 7500억 재산. 지극히 작은 것 150억 재산, 빌딩 열댓 채. 지극히 작은 것만 영생을 원한다면 이것은 가볍게 푼돈, 껌 값으로 버려라. 이렇게 약을 올리시는 겁니다.

그런데 부자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떠났다는 말은 나 다시는 당신하고 말 안 해 이런 뜻이거든요. 그걸 가지고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걸 저주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들어가지 못한 거죠. 영생이 없는 것을 가지고 죽음, 저주라고 하는 거에요. 가고 난 뒤에 부자는 부자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주께서 들으라고 하신 말씀이잖아요. 제자들이 그걸 듣고 가라사대 이게 마태복음이 더 실감나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죠.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러니까 예수님은 벌써 알고 계셨어요. 영생에 대한 곡해, 오해 돈은 돈대로 있고 영생은 영생대로 있고 이렇게 되어버리면 돈의 가치가 죽지를 않아요. 부자의 가치가 죽지를 않는다고요. 영생 앞에서는 천국 앞에서는 이 세상 어떤 이 우주 전체를 얻어도 이거는 쉽게 버려야 될 무가치한 것으로 드러나야 영생이 상대적으로 빛이 나요. 그런데 이 부자는 이걸 못 버렸습니다. 자기 목숨과도 같은 거니까. 자기 주체 안에 돈이 들어있으니까. 돈이 없으면 자기는 죽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이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냥 못 들어간다 하면 되는데 어렵다고 자꾸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한테 시비걸기 위해서 하는 거에요. 왜냐하면 우리는 해볼라고 하니까요. 차라리 영생에서 짤렸다 하면 되는데 뭔가 아직도 자기에 대한 자기 미련이 있고 자기 자신을 포기를 못하기 때문에. 십자가지기 전 성령오기 전까지입니다. 성령오기 전까지 안돼요. 그러니까 뭔가 해볼라고 하는 거에요. 성령 받고 난 뒤에 이 대목 보면 우리는 싱글벙글 웃지요. 십자가 못 박아죽인 이유가 있었구만. 아예 우리 보고 뭘 시키는 게 아니고 못을 박아라. 죽어라 인간아. 그 못 박을 때 그게 최고의 영생의 영광 아닙니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낙타. 이걸 또 신학에서는 이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여기서 바늘이라고 하는 것은 바늘귀가 아니고 원본은 어떻고 원어는 어떠니 두 가지 이론이 있어요. 하나는 바늘귀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 예루살렘의 작은 문이 있는데 그 문이 낙타가 들어갈 때 겨우 좁게 들어간다. 그래서 그 당시 제자들이 다 알아듣는 예루살렘의 문 있지? 바늘귀 있지? 그것처럼 어렵다. 이렇게 설명했다는 설과 두 번째는 뭐냐 바늘귀라는 것이 원래는 밧줄 동그랗게 하는 밧줄 원어와 유사한데 이게 오역을 해가지고 밧줄귀를 바늘귀라고 했다 이렇게 최근에 나온 논문에 보면 그렇게.

지금 그 말은 그 뒤에 사람은 할 수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거에요. 언어를 듣고 납득을 해서 그 납득된 것 가지고 내가 어떻게 행동으로 변화시켜서 내가 새로운 변화, 아까 실로암 부를 때 뭐라고 했습니까? 왜 실로암 부르는지 알겠어요? 내가 무슨 사람 만든다? 오늘 제목을 이걸로 하자 ‘다른 사람’. 내가 스스로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나를 내가 내 힘으로 하고 싶은 거에요. 이거는 아주 못됐어 정말 이거는. 러시아가 징집해버려야 해. 국가의 공동체의 폭력을 맛보지 못해서 그래요.

심지어 교회 다녀도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당에서 부르고요 장로가 눈치주고 옆에 고참 집사가 뭐라고 하면요 기도도 함부로 못하고 헌금도 함부로 못하고 못합니다. 구역장이 보통 권력입니까? 해가지고 당신을 위해서 자녀위해 기도해드리겠습니다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우리 기도빨 끝나면 너 자녀 저주받어. 세상에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 전부 다 폭력적 단체라고 보면 돼요. 그런데 그 공동체를 왜 원합니까? 누굴 보호하기 위해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애들 클 때는 자기 혼자 큰 줄 알지요. 나중에 커보세요. 여차하면 부모 옆에 와서 엄마 좀 도와줘. 아빠 도와줘 이렇게 하지요. 필요할 때마다 공동체 찾지요.

여기 보면 제자들이 하는 말이 제자들의 반응을 유도한 거에요.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이거 무슨 뜻입니까? 나는 예수님 당신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것은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당신을 따라다녔다는 뜻이에요. 그걸 예수님이 모를 리가 있습니까? 지금 이 제자들도 마찬가지에요. 최선을 다하여 당신한테 순종해서 따라다니면 우리가 얻고자 하는 천국 영생 얻을 수 있다는 거에요.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 보고 하는 말이 뭐에요? 제발 너희들은 나를 떠나라 이 말이죠. 목자를 치니 그 다음에 뭐다? 양이 떠나니라. 그 절차 없이는 구원 못 받습니다. 내가 떠날 사람이다. 내 것 가진 것 주께서 빼앗기듯이 주께서 내 목숨을 빼앗아갈 때 우리는 구원을 얻는 거에요. 내가 주님을 피해서 도망쳐도 주님께서 내 인생을 빼앗아가가지고 너는 벌써 죽었어. 이제는 너는 내가 다룰 거야. 다루어줄 때 그것이 움직이는 천국이에요. 움직이는 천국.

주일날 설교 때도 했지만 천국은 이와 같으니 임금님의 혼인잔치지요.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임금님 아들 있고 혼인할 때 되면 혼인해야지 라고 생각할 때 무엇을 생각 못하느냐 하면은 의도적으로 임금님이 그 백성들에게 자기 중요한 날짜를 겹치게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에요. 자기 장가가고 본인 밭 사고 본인 소 살 때 본인 아프고 병날 때 그때 혼인 잔치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최선을 다해주겠다는 거에요. 임금님이 날짜를 기가 막히게 맞춰가지고 “참석해.” 사람들은 본색을 드러냅니다. 영웅본색이죠. “못가. 바빠. 못가.” 임금님이 “잡아 죽여.”

이게 뭐냐? 처음부터 하나님은 인간들을 잡아죽일 궁리만 하시는 분이에요. 그러고 난 뒤에 천국 백성을 성령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게 어린 아이. 그 어린 아이들은 진작 죽어야 될 백성이 천국에 와버렸으니까 주께서 새삼스럽게 어린 아이에게 무슨 의무와 책임을 부여합니까. 부여 안하지요. 그걸 지금 제자들이 모르고 있는 거에요. 앞에 어린 아이 말도 모르고 이것도 모르고 있는 거에요. 이제 십자가 성령 받고 난 뒤에는 알지요. 무슨 뜻인지를.

마지막 이거 하고 마치겠습니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우리 같으면 저 같으면 구원 못 받아 인간들아! 그렇게도 못 알아들어! 이렇게 할 텐데 그게 아니고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이것은 희망을 주는 게 아니고요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고 희망을 가질 자격 자체가 인간에게는 하나님부터 시작해야 되지 너부터 시작하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라는 거에요. 네가 생각한 천국은 천국이 아니고 네가 생각한 영생은 영생이 아니다. 그래서 어디서부터 시작하느냐? 예수님 십자가 죽음부터 거기 합류할 때 비로소 뭘 알지 못했던 것이 보이지 않던 것이 성경 말씀이 한꺼번에 다 알게 되지요.

아 예수님 자신의 이야기구나. 이 말씀이 지키라는 말씀이 아니고 안 되는 인간 다 되게 해주시기 위해서 십자가 죽으시고 너도 죽고 나도 죽고 해놓고 부활의 영을 보내사 이제는 나는 너를 의인이라 하고 내 백성이라 하겠다 하는 그 소식을 이렇게 하나님께서 미리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십자가 전이거든요. 부활 전이거든요. 이 말씀 남기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 버리고 단독으로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의 말씀 이제 성령 받고 난 뒤에 이제는 들려집니다. 우리가 진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만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이 이게 기쁨과 감사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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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2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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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