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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18장 5절 (아픈자가 성도) 2300718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18장 5절 (아픈자가 성도) 2300718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18장 1절부터 8절까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이게 비유거든요. 이 비유의 주인공이 불의한 재판관이에요. 그게 놀라운 겁니다. 불의한 자가 세상을 설명하는 주인공이 된단 말입니다. 불의한 자가. 한번 적어볼게요. 불의한 자들의 세계. 불의한 자들의 세계이기 때문에 이 세계, 이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불의한 자가 등장해야 됩니다. 불의한 자가 등장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런 뜻이에요.

이 세상 설명할 길이 없으면 다시 말해서 불의한 자가 등장하지 아니하면 예수님을 소개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착한 사람 예수 믿고 나쁜 사람 예수 안 믿는 그런 게 아니고, 예수님이라는 것은 착한 사람과 결부되는 게 아니고 불의한 자로 결부되어야 예수님의 진면목이 드러난다는 뜻이에요. 이 불의한 자의 세계라고 규정을 하고 이 삶이 이 비유의 주인공입니다.

여기 뭐라고 되어있느냐 하면은 “너희는 저희의 말을 들으라” 우리는 보통 상식적으로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 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뭐 이렇게 되잖아요. 그러나 세상을 살면서 성도, 예수님의 제자들이 들어야 될 자는 불의한 자들의 말을 들어야 돼요. 불의한 자들. 6절에 나오잖아요.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불의한 재판관. 불의한 재판관이 이 세상을 설명하는 유일한 포인트가 되고 주인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가 어려운 것은 아무도 자기가 불의한 자 편에 속하는 것을 사람들은 인정을 안 하기 때문에 이 비유가 어려운거에요. 우리가 불의하면 되는데 불의하면 이 비유가 설명이 되는데 나는 안 불의하다 이렇게 되니까 비유가 먹혀들지를 않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일단 불의합시다. 우리는 다 불의한 거에요. 의롭지 않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해야 할 것은 불의가 뭐냐? 불의란 의롭지 않는 것이다. 불의한 사람은 조건이 있어요. 뭐냐 하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라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에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나오니까 사람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해가지고 이 비유 한 가운데 들어올 생각을 안 해요.

이거는 우리 이야기 아니네. 불의한 자들 이야기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나는 걱정할 필요 없지. 내 이야기하고는 상관없네. 이렇게 되니까 예수님이 비유한 취지가 모호해져버리는 겁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나님 두렵다는 말, 무섭다는 말은 많이 하는데 하나님이 두렵지 않습니다.

불의한 재판관, 법을 다루는 사람. 이 재판관은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하면은 자기 안에 법이 있기 때문에 두렵지 않은 거에요. 하나님 대신 법을 믿는 겁니다. 두렵지 않은 거죠. 이야기가 점점 어려워져요. 미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겁니다. 미궁에. 자, 이 미궁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길을 이렇게 우리가 불의한 사람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다시 말해서 우리가 불의하지 않다고 여기는 내가 불의한 사람 속에 합류하는 멋진 방법은, 뭐 멋져야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은 꼭 필요한 방법은 이겁니다.

사람들은 매사에 하나님이 안 계신 증거를 찾습니다. 이 점에서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이 안 계신 증거가 더 구미에 당기는 거에요. 이게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이왕 어려운거 여러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나님 계신 것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겁니까? 하나님 안 계신 것을 증거를 찾는 것이 하나님 안 믿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그러니까 하나님이 안 계시잖아 그 증거 찾는 사람. 그러니까 하나님이 계시잖아 증거 찾는 사람. 둘 다 같은 류에요? 아니면 다른 류입니까? 둘 다 전혀 하나님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둘 다. 이 세상은 성경 전체를 봐도 성경 자체도 이야기해요. 이 세상은 불의한 재판관의 말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어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외부에 계세요.

지금 불의한 재판관이 하나님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잖아요. 이 말은 하나님은 인간세계 바깥에 계시는 것은 인정하되 이 쪽 인간세계에서는 굳이 하나님이 설칠 이유가 없는 거에요. 왜 그렇게 불의한 재판관이 호언장담하느냐 하면은 이 불의한 재판관 태도가 굉장히 호언장담이에요. 자신만만한 거에요.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없다. 하늘나라 말고 이 세상에 하나님이 없다에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호언장담하는 이유가 어딜 봐도 멀리 계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왔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어떤 인간도 불의한 재판관을 못 이깁니다. 이길 수가 없어요. 모든 사람이 동의해요. 하나님이 여기 왔다는 증거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늘나라에 계시겠지요. 그러나 여기 없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있지요. 그러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지요. 인간세계는 인간세계의 법이 있으니까요. 재판관 법이잖아요.

법대로 하게 되면 굳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찾아올 이유가 하나도 없다라고 생각한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의 속마음이고 거기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모든 인간이 다 동의할 수밖에 없는 그런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자기 주변의 일상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같이 확인중입니다. 이걸 확인을 해야 내가 하나님을 안 두려워해도 마땅히 살아야할 이유가 성립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햄버거 집에 맥도날드 햄버거 먹는데 엄마가 아이 데리고 간식 사준다고 햄버거 먹습니다. 치킨 햄버거 사가지고 와서 먹으면서 엄마하고 아이하고 벌벌벌벌 떱니까? 햄버거 먹으면서 엄마하고 아이하고 벌벌벌벌 떱니까? 주여, 주여 이러면서 햄버거 먹어요? 그리고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 먹으면서 엄마가 돈 내면서 벌벌벌 떨면서 햄버거 값 지불합니까? 주인이 “당신은 돈 내는데 왜 벌벌벌 떱니까?” “하나님이 두려워서요.” 뭐 이런 거 합니까? 그러면 햄버거 주인이 하나님은 저 하늘에 계시고 이 동네는 이 동네인데 떨 필요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하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걸 가지고 뭐라고 표현하느냐 하면은 불의하다. 불의한 재판관. 온통 불의한 사람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존재를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인간치고 불의하지 않는 자가 없어요. 인간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가 없습니다. 사람치고. 개는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벌벌벌 떨면서 살아가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이 세상에. 일상 속에서. 바로 그 이야기에요. 누가복음 18장 이야기가 그 이야기입니다.

어떤 도시에 재판관이 있는데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연결되어있는 같은 결과가 뭐냐? 사람을 무시한다. 왜? 자기가 최고니까요. 자기가 법을 알잖아요. 법의 집행관이잖아요. 그럼 사람을 볼 때 뭐로 봅니까? 저게 범죄자냐 아니냐 그런 식으로 본다는 것은 법을 가지고 사람들 족쇄를 채운다는 것은 법 족쇄에 감겨버린 인간을 법집행자가 무서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요.

경찰관이 사람 무서워합니까? 경찰관한테 뭐라고 하면 가만있어 보자 당신 형법에 의해서 뭐 없나? 찾으면 사람이 경찰관을 피하지 경찰관이 사람을 피합니까? 그런 건 없어요. 법 집행관이거든요. 옛날에 고등학교 때 보면 여러분 나이 때 다 있지요. 선도. 선도가 학생을 무서워하던가요? 교문 앞에 있는 선도. 선도 완장 차고 옆에 학생과장 옆에 있지요. 학생과장 마동석 같이 생긴 사람 있고 선도가 아침 일찍 나와가지고 하는 일이 뭐에요? 학교 애들 전부 다 보잖아요. 그때 막 무서워합니까? 선도가? 아니지요. 누가 무서워합니까? 애들이 막 무서워하지요. 교복, 머리, 모자 단정히 하고 여학생들은 치마 내리고. 가방 반듯하게 하고 다 들어가잖아요. 충성! 이러면서 다 들어가잖아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 구조의 방식이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 구조를 이상적인 위상 위치로 보고 사람들은 그걸 목표로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세계. 그게 현재 자본주의 세계에서 그걸 돈이 해결하는 거죠. 돈 있는데 무서워하는 그런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돈 있는 사람은 많은 돈을 기부를 해요. 수해 났다하면 기부를 하잖아요. 기부하면서 벌벌 떱니까? 사람이 기부를 하고 헌금을 하고 기부금을 주는 것은 그만큼 자기가 그 준만큼 자기에게서 무서움이 자기 바깥으로 배설된다고 보면 돼요. 기부한 사람은 무서움이 없어요. 이 세상 자체가 선악체계이기 때문에 선을 행한 자가 무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악을 행한 자는 보디가드 많아도 벌벌벌 떨어요. 그런데 많이 베푼 사람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부하는 것, 그리고 헌금 많이 하는 이런 사람들은 하나의 그 사람에게 희열을 가져다주는 일종의 쾌락을 가져다주는 강력한 무기가 되요. 남을 도와주는 것은 최고의 취미생활입니다. 최고의 취미생활. 지금 돈이 없어서 그런 취미 생활을 못하지 돈만 있어보세요. 막 퍼주고 해보세요. 세상 사람들이 존경해마지 않습니다. 우러러보지요.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누가 나를 밟지 않는다. 누가 나를 밟지 않아요. 다 고개 숙이고 밟지 않는 그 위치. 위치가 높아버리면 그것이 최고의 우리에게 희열과 쾌락을 부여합니다. 그래서 돈 있는 사람만이 착해요. 돈이 없는 사람은 돈도 없을 뿐더러 악하기 짝이 없어요. 선할려면 돈을 벌어서 돈 갖고 있다는 자체가 선입니다.

지금 초반부터 비유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다시 한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초반에 예수께서 비유로 이야기하는 거에요. 이 세상 사람들에 있어서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여기 안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식으로 생활하고 있지 하나님을 계신 것을 증거하는 식으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계신 것을 아무리 찾아도 그 증거를 찾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걸 아주 간추려 이야기하면 인간은 늘 주변에서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를 늘 이렇게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실험의 실험을 거듭해봤자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이 맞습니다. 맞아요. 하나님 계시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 어디 계시느냐? 하늘에 계시겠지요. 하늘에 계신데 하나님이 굳이 이 땅에 올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론화되어 있고 이게 삶의 상식입니다. 진짜 어떤 사람이 맥도날드 햄버거 집에 가가지고 안녕하세요. 예수님 오랜만인데요 이러면 다 미쳤다고 해요. 예수님이 맥도날드 왜 여기 와있어요 하늘에 계시지요. 인간은 인간들 세계에요.

그래서 18장에 나온 비유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을 통한 그리스도의 세계. 이걸 비유로 이야기한 거에요. 누가복음 18장.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 안 계시니까 만나는 것은 누구만 만나죠? 사람만 만나죠. 사람과 사람을 만나서 그리스도가 여기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에 대한 비유, 이것이 누가복음 18장의 비유입니다.

자, 그러면 인간 대 인간, 하나님은 빠져있고요. 다들 하나님을 안 믿으니까요. 하나님 여기 인간세계에 같이 있다는 것은 이것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니까. 하나님 천사하고 살아야지 인간하고 살 이유가 없 그런 정당성이 없어요. 인간은 인간세계에 맡겨주되 뭘 집어넣습니까? 법으로 잘 처리하라고 법 주고 주님은 떠났다고 생각하면 돼요. 주님이 인간세계를 인간 손에 맡겼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법이 있는데 굳이 하나님 계신지 안 계신지 그걸 찾을 이유가 없지요.

그래서 뭔가 툭툭 튀어나오는 말은 뭡니까? 하나님한테 물어보자 이런 소리 안 나오죠. 뭐라고 합니까? 법대로 하자. 법대로 하자. 우리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하자 그런 소리 안 해요. 법대로 보험처리 해라 이러잖아요. 여러분 보험처리 할래요 하나님한테 물어볼래요? 묻는 내가 돌 맞을 짓이다 묻는 내가 나쁘다.

여기서 제가 일단 내린 결론은 뭐냐? 이 세상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그걸 불의하다고 했지요. 따라서 이 세상에서는 불의하지 않은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걸 전제로 하고 이 비유를 하신 거에요. 모든 인간이 불의한 거에요. 모든 인간이. 모든 인간이 불의하기 때문에 누가복음 18장 비유에 대해서 모든 인간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지요. 다 불의하니까. 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이해하느냐 하면은 불의한 재판관의 하는 심정을 평소에도 늘 이해하고 있어요. 퇴근 시간 6시인데 7시에 와가지고 판사 집에 와가지고 이거 억울한데 좀 판결해달라고 하면 “내일 봅시다.” 그럼 누가 잘못된 거에요? 퇴근시간 끝났잖아요. 퇴근시간. 공무원이 토요일날 골프 쳐도 괜찮아요. 공무원이 쉬는 날 골프 치면 나쁩니까? 홍준표 왈. 수해하고 내가 골프치는 거하고 무슨 관계있다고.

그래서 18장에 대해서 인간들은 비유를 해석할 틈을 완전히 차단시켜놨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에 어떤 인간도 파고들어갈 수가 없어요. 철벽입니다. 불의한 자이기 때문에 법대로 하는 자가 두 개의 만남이 납득이 되는 거에요. 퇴근시간 끝나가지고 자기 하는데 그걸 문 열어주고 할려고 하는 것은 그것은 억지죠. 억지고객이죠. 그건 너무 과도하게 판사를 혹사시키면 안되지요.

그래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떤 삶의 기준 가지고서는 예수님이 하는 이 비유에 대해서 동의하기보다는 동의가 안 되는 거에요. 그걸 누가 아느냐? 예수님이 아십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다시 해 봅시다. 여기서 주인공은 누구다? 재판관이 주인공 6절에 나오지요. 너희는 누구 말을 들으라? 불의한 재판관의 말을 뭐하라? 들으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나의 말을 들으라가 아닙니다. 불의한 말을 한번 들어봐라. 듣고 그 불의한 자가 과연 네 실력으로 네 신앙으로 불의한지를 한번 찾아내봐라. 찾아낼 수 있는가. 찾아낼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이 세상에 사는 인간들이 보통 큰 위기에 직면해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 저 하늘에 계신다는 거 믿는다고 해서 구원되는 게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말고요 이 땅에 들어오신 땅에 올 필요도 없는데 땅에 오신 그 이유를 모르는 자는 성도 아니고 구원된 자 아니에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법으로 단단하게 안정되어 있고 거기 재판관으로 있는 사람 그러한 체제에서 하나님이 그 세계에 하나님께서 함께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뭐라고 증명하는가? 하나님 쪽에서 어떻게 증명하는가? 균열입니다. ‘균열’. 다른 말로 하면 ‘상처’.

상처의 특징은 뭐냐? 아프다. 상처는 절단나는 게 아니에요. 끊어지는 게 아니고 갈라지는 겁니다. 원래 하나였는데 면도칼로 그게 벌어진 거에요. 균열은 있던 것이 이게 벌어진 겁니다. 원래 안 벌어지면 안 아픈데 벌어지니까 아프지요. 이 균열, 아픔 여기서 뭐가 나오느냐? 하소연이 나옵니다. 하소연. 아프다는 겁니다. 아프다는 거에요. 이게 이제 비명인데요. 비명. 아야~ 하는 비명인데 비명은 무엇보다 우세하느냐 하면은 논리적인 말과 문장보다 앞서 나옵니다.

아야! 우와! 윽! 이거는 인간이 논리로 정의해서 나오는 말이 아니에요. 그냥 아파서 툭 나와요. 그 아픔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원래 하시고자 하는 이 땅에 들어오시는 길이 돼요. 여기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의 특징은 안 아파요. 아프지를 않아요. 출근시간에 출근했다가 퇴근시간에 퇴근하면 그만이니까 아프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아파하는 상처받은 과부 하나가 등장해가지고 과부와 상처와 아픔이 퇴근한 판사까지 지금 전달된 거에요. 이걸 가지고 5절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번거롭다고 이야기합니다. 번거롭다. 귀찮게 한다 이 말이죠. 번거롭다는 거에요. 이 번거로움. 율법에 보면 어려운 과부가 왔을 때 도와주라고 되어 있잖아요. 신명기 10장 18절, 19절에 보면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과부가 나와요. 시편에도 과부가 많이 나와요. 율법에 의하면 과부나 고아나 나그네 된 사람은 여유 있는 사람이 도와주라고 되어있어요. 그게 율법정신이에요. 이게 신약의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나한테 한 것이다”라고 되어있어요.

그런데 오늘 18장에 비유에 보면 이 재판관이 하나님을 무시해요. 사람도 무시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과부의 청을 들어줘요. 그러면 이게 뭡니까? 4절에 보면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렇게 되어있지요. 그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이유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내가 죄인이구나 내가 하나님 보내신 과부 맞다. 저를 도와줘야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런 차원에서 도와준 게 아니고 번거롭게 하니까 귀찮게 하니까 뭐를 차단하고 싶은 거에요? 상처가 계속 전달되는 것을 차단하고 싶은 거에요.

그 차단하는 것을 그러한 대처 방법을 뭐라고 하느냐. 그걸 불의하다고 하는 거에요. 불의하다. 예수님 십자가가 내 인생에 파고드는 것을 내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 그걸 차단한 그것을 가지고 불의하다고 한 거에요. 나는 내 인생 지키고 싶어요. 내가 안 지키면 아무도 지킬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지금까지 이 세상을 살면서 수만 차례 실험 데이터를 한 결과에요.

행여나 기도하면 도와줄까? 행여나? 뭐로 끝납니까? 역시나. 철야하면 낫겠지. 역시나. 금식하면 낫겠지. 역시 안 도와줘요. 십일조 하면 창고에 50배? 십일조해서 쫄딱 망했어요. 얼마나 교회 다니면서 테스트를 해봤겠어요? 뭐를 테스트한다고요? 하나님이 과연 살아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테스트해보니 뭡니까? 갈수록 굳히는 것이 뭐에요? 갈수록 굳히는 것이 하나님 없다에요. 또 하나님 없다하면 교회 다니면 집사, 장로 안 되시니까 입 다물고. 하나님 없다 대신 당회장 목사하고 잘 사귀고 뭐 이렇게 사람 대 사람으로 하면 돼요.

그런데 이걸 가지고 오늘 비유 불의한 재판관의 태도에요. 내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람도 무시하지만 네가 귀찮게 하는 것 때문에 인간적으로 내가 특별히 한번 봐줄게. 그것이 무슨 태도라고요? 불의한 자의 태도에요. 불의한 자의 태도. 이 점을 다시 한번 봅시다. 지금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굳이 이 땅에 올 필요 없다. 하늘나라 계신 하나님이 굳이 이 땅에 왜 와야 하는가를 설명하는 비유입니다. 이 세상은 자기가 불의한 걸 몰라요. 하나님을 믿어요. 메시아 옴을 믿습니다. 하지만 그거는 형식이고 껍데기고 진실로서는 나 빼놓고는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아요. 나 빼놓고.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지금 이런 말이 목사님 일방적으로 사람을 한꺼번에 일괄적으로 매도하는 것이 아니지요. 경솔한 결론 아닙니까 할 수도 있는데 경솔한 결론인지 아닌지 이거 실험을 해보면 돼요. 뭐냐 하면은 행운의 편지. 만약에 여러분들에게 행운의 편지가 왔다고 봅시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편지는 똑같은 내용 7통 써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으면 당신은 저주를 받습니다. 행운의 편지하고 똑같은 것이 교회에 주어집니다. 십일조 안하면, 목사 욕하면, 목사 뒷담화하면, 주의 종을 뒷담화하면 세 공통점이 뭡니까? 행운의 편지 안 쓰면, 십일조 안하면, 목사 뒷담화하면 뭘 받는다? 저주 받는다.

어떤 분이 이랬어요. 어릴 때 행운의 편지를 받았답니다. 교회 다니는 어린 학생인데. 자기는 하나님 믿는다고 자부했어요. 그런데 행운의 편지가 날라왔습니다. 어떻게 처리했느냐 하면은 행운의 편지를 하나님 제단에 바친 거에요. 하나님, 이 행운의 편지 안 쓰면 저주 온다는데 이 저주를 좀 처리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거에요. 하나님 믿는 겁니까? 아니면 행운의 편지를 믿는 거에요? 분명히 해야 돼요. 어느 쪽을 믿는 겁니까? 웃기지요?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어른 되가지고 부흥사가 와가지고 십일조 안 해서 망한 사례를 한 열댓 가지 부흥회 내내 감사헌금 안하고 십일조 안하고 교회 교육관 짓는데 협조 안하면 저주 받는 그 사례를 한 오십 가지를 쭉 나열한다 칩시다. 집안 망하는 거 아이 교통사고난 거부터 해서 했다 칩시다. 그럴 때 여러분들은 안 들었으면 몰라도 이미 들었잖아요. 이미 들었을 때 그걸 어떻게 처리합니까? 딜 하죠.

십일조는 믿음 좀 좋을 때 하고 주님 일단은 백분의 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원래 십일조 하면 10만원 내야 되는데 만원부터 내겠습니다. 네가 진보가 있구나! 해가지고 이 만원 올리는 걸로 퉁 칩시다.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거에요. 그거나 행운의 편지를 하나님 제단에 바치면서 그것도 불로 태워서 그걸 바쳐서 하나님 처리해달라고 하는 그거나 그것도 십일조도 안내고 목사 섬길 그 돈도 없으면 대신 뭘로 퉁 치나 하면은 아들 있는데 아들 신학교 보내겠다는 식으로 또 거기에다가 자기 나름대로의 또 성의를 표시해요.

왜 이러십니까 정말. 왜 이래요? 왜 그런 태도가 나옵니까? 전혀 하나님이 두렵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왜? 하나님보다 더 두려운 자가 있어. 누구? 나에요. 내가 두렵기 때문에 그 짓해서라도 귀신아 물러가라! 하나님이 귀신이에요. 저주야 물러가라. 진짜 굿이라도 하고 싶은 거에요. 불의한 세계에 똑같은 한통속이에요 전부 다.

그러니 누가복음 18장이 해석이 전혀 될 수가 없지요. 예수님께서 비유 속에 과부를 집어넣어요. 현재 누가복음 18장에서 과부 홀로 움직입니다. 움직인다. 마치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일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밖에 없어요. 다른 사람 움직임은 움직임으로 간주하지를 않아요. 여러분 장례식에 관 속에 누운 사람이 말 합니까? 안합니까? 말 못하지요. 보람상조에서 입 막아버렸는데. 염한다고 입을 막았는데 말 안 나오지요. 말 안되지요.

누가복음 18장에서 이 불의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말하는 사람은 누구밖에 없느냐 하면은 과부밖에 없어요. 그게 누가복음 18장 1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여기 기도가 나오지요. 기도란 것은 유일하게 하나님과 말하는 대화하는 사이에요. 대화하는 사이.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다 죽었기 때문에 죽은 자는 장례식에 관 속에 있는 자는 말을 못합니다. 어떤 인간도 예수님과 대화하는 인간이 없어요. 왜? 주님은 주님이 두렵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대화하는 사람하고 대화하고 사람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하지. 만약에 만약인데요 우리가 주님한테 기도하는 경우가 있다고 칩시다. 만약입니다. 그럴 리 없지만. 대화한다면 우리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것은 불의하다는 조건을 걸고 기도가 돼야 돼요. 나는 어떤 말 할 자격이 못됩니다.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누가복음 18장 13절에 나옵니다. 누가 한번 읽어 보세요.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나는 죄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불의한 세상에 불의한 자와 한통속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있을 때에는 몰랐는데 주님이 이 세상에 과부의 상처를 통해서 주님도 같이 상처 받은 분으로서 이 땅에 왔음을 어떤 사람이 감지한다면 그 상처 받은 과부의 모습을 한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는 내가 죄인입니다 라는 고백을 할 수밖에 없어요.

나는 한 맺히지 않기 위해서 나 억울한 일 당하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요령부리면서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내가 나 잃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나님 잃는 것은 전혀 네버 네버 never 절대로 우리는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 잃는 것이 하나님 잃는 것보다 더 아프고 상처 받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뒷전입니다. 확실하게 뒷전이에요.

그래놓고 찝찝하잖아요. 찝찝하니까 뭘 찾고 싶으냐?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찾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수시로 교회 나와서도 수시로 간증집회하면서 남들 하나님 만나는 간증집회 유투브 1년에 100개씩 들어가면서 저기에 가표 던진다. 동의한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 만난 거에요? 아니지요. 아무리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계신 걸 흔적을 찾고자 해도 그것보다도 수천 배 더 확실한 증거는 하나님 일 안하고 내가 일해서 내가 밥 먹고 산다는 그 증거가 더 확실해요. 그게 1:1000으로 비교도 안 됩니다.

물론 가끔은 예상치도 못하게 도와줘서 신난다 주여 감사합니다 눈물 흘리면서 했지만 돌아서면 다 잊어버려요. 감기 있는데 하나님 시험해본다고요. 감기 판콜 에이 먹으면 나아요. 낫지만 적어도 내가 목사가 될 사람이고 신학자고 내가 집사, 장로가 될 사람 같으면 남이 없는 주특기같은 거 챙겨야 되겠다 싶어서 기도, 신유은사 있잖아요. 남들 있다하니까 나도 갖고 싶어서 한번 기도한다고요. 해보면 어! 기도하고 난 뒤에 사흘 지나니까 감기가 나았어요. 그래가지고 석 달 뒤에 또 감기 걸렸습니다. 또 기도하겠습니까? 약국에 가서 약 먹겠습니까? 어느 쪽 하겠습니까?

그때 처음에 은사 챙긴다고 나도 신유은사 있다고 자기가 자기 머리에 손 올려가지고 병 낫다 하기는 하는데 이게 약국에 약 먹는 게 간편해. 그리고 약 먹는 것도 주의 은혜라 하면 그렇게 정리정돈하면 깔끔하잖아요. 주의 은혜로 약국이 가까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 될 문제지. 지가 머리에 손 올려가지고 주여 보시옵소서. 나는 약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 의지합니다 해가지고 히스기야 끄집어내고 구약에 그런 구절 있거든요. 엘리야 시대에 나왔어요. 우리 동네에 선지자가 없어서 너희들이 이방나라의 의사를 찾아갔느냐 해가지고 벌 받아가지고 그때 50명 죽고 많이 죽었어요. 엘리야한테.

그걸 해가지고 그때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나는 약 찾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이게 하나님 두려워하는 거에요? 자기 아플까봐 두려워하는 거에요? 분명히 해야 돼요. 성경에서 인간은 이미 불의해요. 불의한데 뭘 덜 불의할까봐 겁을 냅니까. 자기 꾀에 빠진 인간들이죠. 이미 죄인 중에 괴수인데 뭘 더 나락으로 떨어질게 있다고 지금보다 더 망하면 안돼. 다 망했는데 뭘. 참내. 이미 망했는데 뭘 더 망해요. 망했는데. 뭐 내려갈 것도 없어요. 이미 망해버렸는데. 바닥쳤는데요.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사람들의 신앙생활은 겉으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살아계심의 증거 찾기지만 속으로는 역시 내 말이 옳다. 역시 하나님 없는 거 맞아. 이걸 내가 옳음을 내가 불의하지 않고 내가 정당함을 증거하고 싶은 거에요. 왜냐하면 그동안 하나님 몇 번 찾았다고요. 하나님 안 찾지요. 전부 다 내가 하는 식대로 살았지요. 만약에 하나님 나타나가지고 너 옛날에 네가 오년 전에 네가 왜 약을 썼어! 이렇게 나오면 이미 지난 것을 다시 한번 원칙을 어기고 말이죠. 그때 몇 명 맞아야해. 그때 그런 일을 하다니. 하나님 나타나서 추궁하면 그동안 내가 하나님 안 찾고 하나님 방법 찾는 게 어디 한 두 가지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 찾아서 잘 섬기겠습니다라는 말은 과거에 하나님 안 찾고 세상적으로 했던 것 눈 한번 감아주소! 지금이라도 늦지 않고 내가 하나님 찾잖아요. 이런 게 어딨습니까. 남들 그런 사람 없습니다. 저니까 하나님 찾습니다. 이걸로 해서 과거에 세상적으로 살았던 것 눈 감아 못 본 척 넘어가주소. 이러한 딜, 이러한 거래심보가 작동해서 그래요.

왜 그러한 거래심보가 작동하느냐? 내가 망가지는 게 두렵기 때문에 저주가 오는 것을 대비해서 나름대로의 착함으로 마중 나오는 거에요. 착함으로. 그것은 곧 주님과 대화하는 게 아니고 날마다 내가 나와 대화하는 거에요. 열심히 하자 응! 정신차리자! 응! 반듯하게 살아. 나쁜 짓해서 벌 받지 말고! 응?!! 착하면 복 오게 되어있어. 내가 나하고 의논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거는 바로 주님 보시기에 불의한 재판관과 똑같은 겁니다.

그런데 아까 불의한 재판관이 어떻게 과부를 도와줬습니까? 번거롭게 했죠. 번거롭게 했다는 말은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를 찾아갔습니까? 아니면 줄기차게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 갔습니까? 어느 쪽입니까?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을 줄기차게 끈질기게 찾아갔지요. 주께서 끈질기게 자기 백성을 찾아오는 겁니다. 십자가 진다고 나 아팠다. 너 그때 뭐하고 있었어? 나 아팠어. 너 죄 대신 책임진다고 나 아팠단 말이야. 끈질기게 찾아옵니다.

찾아오면 찾아올수록 주님 이번 달 십일조로 퉁 치면 되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내쫓는 순간 우리는 내가 원판이 오리지널 원판이 불의하다는 사실이 들추어집니다. 세상에 이런 복이 어디 있어요. 내 힘으로 내가 이 세상에서 죄인임을 깨달을 수가 없어요. 원한 가진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 같은 나에게 끈질기게 찾아올 때 너는 너 삶의 처리를 네가 판단했잖아. 네가 너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이 뭔지 내가 알고 있어. 뭐냐? 어떤 판단을 해야 내가 안 망가지는가. 그게 판단 기준이에요.

왜? 내가 무너지는 것을 내가 제일 무서워하기 때문에. 나 무너지면 하나님에게 무슨 소용 있나. 한번 적어볼게요. 이게 얼마나 이게 중요한 말인지. 내가 무너지면 하나님이 무슨 소용 있나. 하나님은 1순위 나는 0순위. 0순위가 이겨요? 1순위가 이겨요? 0순위가 이기죠. 그래서 8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주님의 성령이 임하는 자는 혼자 도 닦는 사람이 아니고요 매일 만나는 사람이 불의한 자만 만나요. 꼭 여기 등장하는 과부 같아요. 가게 차려놨는데 오는 손님이 전부 다 불의한 재판관들만 와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고 자기를 높이는 사람만 고객으로 찾아옵니다. 고객 알지요. 돈 내는 사람을 고객이라고 합니다. 고객으로.

전부 다 오는 사람마다 그 주인에게 요청하는 게 있어요. 뭘 요청하느냐? 주인님,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더라도 월등하게 돈 잘 벌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주인님이 나한테 서비스를 해달라는 겁니다. 마트에서 베이커리에서 빵을 팔던지 커피숍에서 커피를 팔던지 거기 담기는 내용은 뭐냐? 나 잘난 맛에 살도록 내가 돈을 지불할 테니까 그만한 서비스를 해주면 내가 단골 해줄게. 이러한 인간 대 인간들의 만남, 이것이 우리가 놓여있는 이 불의한 세상 망하는 세상 주님 오는 것도 관심도 없는 세상 믿음을 찾아볼 수 있느냐 하고 탄식하는 그 세상입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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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2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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