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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5분뚝딱철학, 김필영)자유게시판-

[아예 떠먹여주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5분뚝딱철학, 김필영

* 칸트에 익숙해진 2년 세월 !!

임마누엘 칸트(1724~1804)의 '순수이성비판'은 철학책 가운데서도 가장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데, 제가 철학을 처음 공부할 할 때, 멋도 모르고 이 책을 혼자 읽어보겠다고 하면서 도전한 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말 그대로 하얀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씨였는데, 한 문장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죠. 그래도 열심히 하면 될 줄 알고 2년 동안 반복해서 읽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어느 순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해한 것을 정리해보려고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때 나는 깨달았는데, 내가 칸트에 대해서 이해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이죠. 내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이해한 것이 아니고, 칸트의 문체와 용어에 그냥 익숙해져버렸던 겁니다.

그렇게 칸트에 익숙해진 것을 이해했다고 착각을 했었다는 말이죠. 그렇게 2년을 허비한 이후에 깨달았는데, 순수이성비판을 혼자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그 이후에 칸트 전공자의 지도를 받으면서 다시 몇 년 동안 다시 읽었는데, 그제야 칸트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가 있었다는 겁니다.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로 흘러 들어가고 이후의 모든 철학은 칸트로부터 흘러나온다" 라는 말이 있는데, 칸트를 모르면 서양철학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몇 백년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이 칸트철학에 매로가 되어서 기를 쓰면서 읽었다는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을 필요는 없는데, 물론 읽지 않는 것보다는 읽는 것이 좋겠지만, 전공자도 아닌 우리가 몇 년씩 걸려서 읽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것은 시간낭비인데, 오늘 이것은 칸트를 알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몇 년씩 투자할 이유는 없는 분들을 위한 영상이라는 겁니다.

* 이제 칸트에 대해서 !!

오늘은 그런 분들을 위해서 칸트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도록 하겠는데, 칸트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분들도 이번 설명을 들으면,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의 철학에 매료가 되었는지, 왜 그토록 많은 철학자들이 머리를 쥐어짜면서 칸트를 읽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실 수 있다는 겁니다.

먼저 몇 가지 질문을 하자면, "신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시간의 시작은 있는가? 없는가? 인간에게 영혼은 있는가? 영혼 따위는 없는가? 자연에서의 모든 법칙은 인과법칙을 따르는가? 아니면 자유롭게 일어나는가?" 라는 겁니다.

* 임마, 헛소리하지마 !!

이런 문제에 대해서 비트겐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임마, 헛소리하지마" 라고 말이죠. 그런 질문은 헛소리이고 난센스라는 겁니다. 칸트도 비슷하게 말했는데, 물론 매우 점잖하게 "인간의 이성은 이런 문제에 대답할 수 없다" 라고 했다는 말이죠. 표현은 조금 달라도 둘 다 같은 말을 하고 있는데, 인간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순수이성비판의 의미인데, 순수이성비판에서 비판이라는 말은, "이성의 능력에 한계를 긋겠다" 라는 의미라는 겁니다. 즉 "인간의 능력으로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 시간의 시작이 있는지 없는지, 인간에게 자유가 있지 없는지,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들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인간의 이성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대답을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월권행위라는 것인데, 그러니 그런 월권을 하지 말라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하지 말라고 해도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비밀의 커튼 뒤를 자꾸만 들춰보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철학자들은 이런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여왔는데, 하지만 이런 논쟁에서 단 한번이라도 그 누구라도 이겨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이러한 문제가 단 한번이라도 해결된 적이 없었다는 것인데, 단 한번도 말이죠.

그래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인간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피할 수도 없는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났다" 라고 말이죠. 여러분이 이런 영상을 보는 이유도 이런 운명을 타고났기 때문인데,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래서 철학을 공부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칸트는 단언하는데, 인간의 이성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공해줄 수가 없다고 말이죠. 그렇게 인간이 이런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을 알 수가 없다고 하면, 그러면 도대체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는 겁니다. 칸트는 그것을 수학, 기하학, 물리학이라고 보았다는 말이죠.

그런데 데이비드 흄(1711년~1776)이라는 사람 좋게 생긴 철학자가 나타나서, "수학, 기하학, 물리학은 학문이 아니다" 라고 주장을 했다는 겁니다. 칸트는 깜짝 놀랐는데, 왜냐하면 흄의 주장에 흠을 잡을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말이죠. 칸트는 흄의 책을 읽고 자기가 독단의 삶에서 깨어났다고 했는데, 도대체 흄이 뭐라고 했기 칸트가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깨어난 것일까요?

* 선험적 명제와 후험적 명제 !!

이제부터 흄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이 흄은 모든 명제를 선험적 명제와 후험적 명제로 나누었는데, 먼저 선험적 명제는 "3+2=5"와 같은 것을 말한다는 겁니다. 이 명제는 참인데, 그런데 이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손가락으로 하나 하나 세어볼 필요는 없다는 말이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참이라는 것을 안다는 겁니다.

또한 "두 점간에 최단거리는 직선이다" 라고 하면 그 명제도 역시 참인데, 이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 두 점간의 거리를 측정해볼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가 경험해보지 않아도 참이라고 하는 것을 아는 명제를 '선험적 명제' 라고 하는데, 즉 경험 이전에 참이라는 것을 아는 명제라는 겁니다.

그러면 "창 밖에 비가 온다" 라는 명제는 어떠한가요? 이 명제는 참인가요? 거짓인가요? 그것을 알려고 하면 우리는 창문을 열고 바깥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죠. 경험을 해봐야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런 명제를 '후험적 명제' 라고 하는데, 경험을 해야 할 수 있는 명제라는 겁니다.

그러니 선험적 명제는 항상 참이라는 것인데, "3+2=5" 라는 것은 거짓일 수 없다는 말이죠. 그리고 "두 점간에 최단거리는 직선이다" 라는 것도 역시 거짓일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선험적 명제는 필연적으로 참인 명제라는 것이죠.

하지만 후험적 명제는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는데, 그래서 창문을 열어보면 비가 오고 있을 수도 있고, 오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창 밖에 비가 온다" 라는 것과 같은 후험적 명제는 우연히 참인 명제라는 말이죠. 이처럼 모든 명제는 선험적 명제와 후험적 명제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겁니다.

* 분석적 명제와 종합적 명제 !!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분석적 명제와 종합적 명제로 구분할 수도 있는데, 분석적 명제란 주어 속에 술어의 의미가 이미 들어있는 명제를 의미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총각은 남자다' 라는 것과 같은데,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를 의미한다는 말이죠. 따라서 총각이라는 주어 속에는 남자라는 뜻이 이미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이런 명제를 분석적 명제라고 한다는 것이죠.

이런 분석적 명제는 아무런 지식을 담고 있지 않는데, 그냥 주어를 풀어서 술어로 기술한 것이니 말이죠. 그러면 "철수는 총각이다" 라는 명제는 어떠한가요? 이 명제는 분석적 명제가 아닌데, 왜냐하면 철수를 아무리 분석해도 결혼하지 않은 남자라는 의미를 얻을 수 없다는 겁니다. "철수는 총각이다" 라는 명제는 "철수는 결혼하지 않았다" 라는 지식을 담고 있는 명제인데, 이것을 종합적 명제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흄은 이렇게 말하는데, "수학적 명제와 기하학적 명제는 선험적 명제이면서 분석적 명제이다" 라고 말이죠. 수학적 명제와 기하학적 명제는 선험적 명제이기에 필연적으로 참이지만, 하지만 분석적 명제이기 때문에 아무런 지식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예컨대 "3+2=5" 라는 수학적 명제는 필연적으로 참이지만, 아무런 지식도 담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3+2"를 분석해보면 정의상 5가 되니 말이죠. 또한 "두 점간에 최단거리는 직선이다" 라는 기하학적 명제도 필연적으로 참이지만, 지식을 담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두 점간에 최단거리는 직선이라고 우리가 정의를 했기 때문에 말이죠. 즉 수하학적 명제나 기하학적 명제는 아무런 지식이 없는, 정의상 참인 명제라는 겁니다.

* 흄 - 수학, 기하학, 물리학은 진짜 학문이 아니다 !!

그리고 흄은 물리학적 명제는 후험적 명제이면서 종합적 명제라고 했는데, 그렇게 물리학적 명제이기 때문에 지식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후험적 명제이기 때문에 우연히 참인 명제라는 겁니다. 예컨대 "물체를 땅에 놓으면 중력가속도 떨어진다" 라고 하는 물리학적 명제는 지식은 담고 있지만, 그것은 우연히 참인 명제라는 말이죠.

그런데 잠깐만, "물체가 떨어진다" 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참인 명제가 아닌가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이 흄은 뼛속까지도 경험론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데, "우리가 물체를 허공에 놓았을 땅에 떨어지는 것을 수천 만 번을 보았다고 해도, 우리는 필연적으로 물체가 떨어진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이죠.

필연적인 것은 경험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따라서 물리학적 명제가 필연적으로 참인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흄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는데, "수학적 명제와 기하학적 명제는 아무런 정보도 없는 명제다. 그리고 물리학적 명제는 우연히 참인 명제일 뿐이다. 따라서 수학, 기하학, 물리학은 진짜 학문이 아니다" 라고 말이죠.

칸트는 이런 흄의 글을 읽고 깜짝 놀랐는데, "수학, 기하학, 물리학은 진짜 학문이 아니다" 라고 하니 말이죠. 칸트는 이런 흄의 주장에 동의할 수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칸트가 보았을 때, 수학, 기하학, 물리학은 진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었다는 겁니다.

흄은 수학과 기하학은 선험적이면서 분석적이고, 물리학은 후험적이면서 종합적이라고 했는데, 하지만 칸트는 "수학, 기하학, 물리학은 선험적이면서 종합적 명제다" 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즉 필연적으로 참이면서 지식을 확장하는 학문이라는 말이죠.

* 순수이성비판 - 선험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러면 수학, 기하학, 물리학이 어떻게 선험적이면서 종합적일 수 있느냐는 것인데, 칸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순수이성비판' 이라는 무시무시한 책을 쓰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지는데, "선험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라고 말이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칸트는 관점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겁니다.

지금부터 그것을 설명해보자는 것인데, 보통 카메라로 찍으면 이렇게 보이고 열화상 카메라로 찍으면 이렇게 보인다는 겁니다. 그리고 3차원 홀로그램 카메라로 찍으면 이렇게 보이고, 엑스선 카메라로 찍으면 이렇게 보인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중에서 "어느 카메라가 가장 좋은 카메라인가?" 라는 것인데,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일상 생활에서는 보통 카메라가 좋고, 의사에게는 엑스선 카메라가 필요하다는 말이죠. 또한 때에 따라서는 열화상 카메라나 홀로그램 카메라가 유용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중에서 과연 어느 카메라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느냐는 것인데, 여기에도 역시 정답은 없다는 겁니다.

그 어떤 카메라도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인데, 심지어 어떤 카메라가 더 잘 재현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모든 카메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사물을 재현할 뿐이라는 것이죠. 그러니 여기에는 그 어떤 우열도 있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인식을 하는 방법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인간은 사물을 보거나 듣는 방식으로 인식을 한다는 겁니다. 박쥐는 초음파로 사물을 인식하고, 뱀은 열화상 카메라처럼 인식을 하고 말이죠. 개와 고양이는 색맹인데, 흑백으로 인식을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오징어와 문어는 음파를 통해서 인식을 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어떤 동물이 과연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을 할까요? 이 질문에도 역시나 정답은 없는데, 그 어떤 동물도 사물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겁니다. 심지어 어떤 동물이 더 잘 인식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말이죠. 모든 동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물을 인식할 뿐인데, 여기에 우열은 없다는 겁니다.

* 이 사과는 정말 둥글고 빨갛고 매끄러운가?

여기 눈 앞에 사물이 하나 있는데, 자기 눈에는 둥글고 빨갛고 매끄럽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여기에 이렇게 있는 것일까요? 아닌데, 이것은 자기 두뇌가 시각정보를 받아서 그렇게 해석한 이미지일 뿐이라는 말이죠. 우리가 보고 있는 사물은 원래부터 이런 모습이 아니고, 우리의 두뇌가 분석한 이미지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 사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인간은 인간의 방법으로만 사물을 인식할 뿐인데, 자기가 이 사물을 경험해서, 둥글고 빨갛고 매끄럽다고 인식한 것이 아니고, 자기의 인식구조가 이 사물을 둥글고 빨갛고 매끄럽다고 하는 이미지로 구성을 했다는 겁니다.

이처럼 무엇인가를 인식한다는 것은, 대상으로부터 주어진 인식자료를 자기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머릿속에 이미 내재가 되어있는 인식하는 방식이 감각자료를 능동적으로 구성해서 대상을 인식한다는 겁니다. 즉 인식의 방향이 바뀐다는 말이죠. 그러니 자기가 없으면 사물은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자기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둥글고 빨갛고 매끄럽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죠.

*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

그래서 칸트는 사물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대상(對象)' 이라고 했는데, 즉 "내 앞에 마주서있는 상태" 라는 겁니다. 프톨레마이오스(약 100년~170년)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공전한다" 라는 천동설을 주장했는데, 하지만 코페르니쿠스(1473~1543년)는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공전한다" 라는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겁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뒤집어버렸다는 말이죠.

이처럼 칸트는 인식의 방향을 그만 뒤집어버렸는데, 대상으로부터 감각자료가 들어와서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인식이 대상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본다는 말이죠. 그래서 칸트의 이런 인식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 다시, 선험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칸트의 문제의식은 "선험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것인데, 즉 "수학, 기하학, 물리학이 어떻게 필연적으로 참인 지식인지를 확정할 수 있는가?" 라는 겁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죠.

왜 그런지 설명을 해보죠. 과연 참이란 무엇일까요? 참이란, 자기가 사물을 보고 그 사물의 모습을 그대로 자기가 인식하는 겁니다. 즉 대상이 자기의 인식과 일치하면 참이고, 반면에 일치하지 않는다면 거짓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면 자기의 인식은 항상 참인데,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말이죠.

왜냐하면 이것은 객관적인 사물이 아니고 자기와 마주서있는 대상이고, 그 대상은 자기가 구성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자기가 구성한 것을 자기가 인식을 했으니, 자기와 대상이 일치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아무렇게나 구성하는 것이 아니고, 수학적 기하학적 물리학적 방식으로 대상을 구성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수학적 기하학적 물리학적 명제는 선험적이며 필연적으로 참이라는 말이죠. 즉 우리는 수학적 기하학적 물리학적 방식으로 대상을 구성하기 때문에, 대상세계는 당연히 수학적 기하학적 물리학적 법칙을 따르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수학적 기하학적 물리학적 명제는 선험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참인 명제가 된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하면, 수학적 기하학적 물리학적 명제가 필연적으로 참인 명제이고 선험적 명제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러면 이런 것들이 어떻게 지식을 확장시키는 명제가 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것은 이런 것들을 우리가 구성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냥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구성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무엇인가 감각자료가 우리에게 들어왔고, 그 감각자료를 가지고서 우리가 구성한 명제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지식이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수학적 기하학적 물리학적 명제는 선험적 종합명제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겁니다.

* 내가 어떻게 사물을 이런 식으로 인식하는가?

그러니 이제 우리의 관심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닌데, 이제 우리의 관심은 '나' 라는 겁니다. 즉 "내가 어떻게 사물을 이런 식으로 인식하는가?" 라는 것인데,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알려고 하면 자기가 자기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나는 나를 볼 수 없다" 라는 겁니다.

그것은 마치 카메라가 그 내부구조를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것과도 같은데, 카메라는 카메라 바깥에 있는 사물을 찍는 것이지, 카메라 자신의 내부를 찍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카메라는 자신의 내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카메라가 찍은 사진을 분석해보면 된다는 것이죠.

* 초월철학 !!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대상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알려고 하면, 자기가 구성한 대상들을 분석해보면 된다는 겁니다. 사진을 분석하듯이 말이죠. 그러니 수학적 기하학적 물리학적 명제들을 분석해보면, 자기가 대상을 구성하는 방식을 알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직관적으로 설명을 해보죠. 자기가 어떤 대상을 보고 사과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하면, 자기는 이 사과가 바깥에 있다고 믿게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 사과는 자기 두뇌에 떠오른 이미지에 불과한데, 이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나를 들여다볼 수 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칸트의 관심은 이제 사과가 아니고, "내가 어떻게 사과를 구성하는가?" 라는 문제인데, 칸트의 이런 철학을 '초월철학'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런 초월철학은 일종의 '메타인지' 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관심이 사과가 아니고, 그것을 사과라고 생각하는 '나'이기 때문이라는 말이죠. 달리 말하면, 초월철학은 일종의 '뇌 과학(브레인 사이언스)' 라고 할 수 있는데, 뇌 과학은 뇌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연구한다는 겁니다.

마찬가지인데, 그런데 칸트 시대에는 이런 뇌 과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상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뇌가 어떤 식으로 인식하는지, 그것을 연구한다는 겁니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의 인식은 3단계의 프로세스를 거치는데, 그게 바로 "감성 → 구상력 → 지성" 이라는 말이죠.

* 인식의 프로세서(1), '감성' !!

먼저 첫 번째 프로세스인 '감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감성은 감수성이나 감정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개념이라는 겁니다. 이 감성은 감각자료를 받아들이는 능력이라는 말이죠. 즉 무엇인가를 보고 무엇인가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각자료를 그냥 날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데, 우리는 시간이라는 형식, 그리고 공간이라는 형식으로 정리하면서 감각자료를 받아들인다는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자료는 시간과 공간 속에 놓여있다는 겁니다.

* 시간과 공간은, 감각자료를 정리하는 형식 !!

이렇게 자기 앞에 있는 이 사과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데, 즉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 감각자료를 정리하는 형식이기 때문인데, 그래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도저히 없앨 수가 없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렇게 그림이 하나 있는데, 사과, 책, 자동차, 곰 인형이 그려져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보이는 것들을 하나하나씩 제거를 해보자는 말이죠. 먼저 사과를 제거하고, 책을 제거하고, 자동차를 제거하고, 곰 인형을 제거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액자까지 제거해보자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이 남을까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지요? 그런데 남은 게 있다는 말이죠. 그것은 바로 공간인데, 그러면 공간 자체도 제거를 해볼까요? 이것은 제거가 안 되는데, 공간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도 제거가 안 된다는 겁니다.

이번에는 음악을 들어봅시다. 제가 음악을 틀어드리겠는데, 잘 들어보세요. 드럼 소리, 베이스 소리, 기타 소리가 나는데, 여기서 먼저 드럼 소리를 제거해봅시다. 그 다음에는 베이스 소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타 소리도 제거를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이 남을까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지요? 그런데 남은 것이 있다는 말이죠.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시간인데, 그러면 이 시간도 제거를 해볼까요? 하지만 이 시간은 제거가 안 되는데, 이 시간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도 전혀 제거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제거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시간과 공간에 자기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인식체계 안에 내재가 되어있다는 겁니다. 시간과 공간은 자기가 감각자료를 받아들일 때, 그 감각자료를 정리하는 형식이라는 말이죠. 이것이 칸트의 시간과 공간이론이라는 겁니다.

* 인식의 프로세서(2), '구상력' !!

이번에 인식의 두 번째 프로세스인 '구상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면, 우리는 하나의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감각자료를 통째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겁니다. 이미지의 부분 부분을 순차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가 본 것은 이런 순차적 이미지들의 파편이지만, 우리는 이런 전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구상력이 있기 때문인데, 구상력은 아까 자기가 보았던 감각자료를 떠올리는 능력을 말한다는 겁니다. 구상력이 있기 때문에, 아까 보았던 감각자료와 지금의 감각자료를 동시에 떠올릴 수 있다는 말이죠.

방금 구상력을 이미지 조각을 종합하는 능력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나 이것은 구상력의 한 가지 기능일 뿐이라는 겁니다. 구상력은 여러 가지 감각자료를 동시에 모으는 능력을 말하는데, 그런 구상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과를 먹으면서 "이것은 빨갛고, 동그랗고, 시큼하다" 라는 인식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죠.

* 인식의 프로세서(3), '지성' !!

이번에 인식의 마지막 프로세스인 '지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봅시다. 감성에서 잡다한 감각자료가 시간과 공간의 형식으로 정리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리된 감각자료가 구상력에 의해서 종합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렇게 사과가 주렁주렁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빨간색으로부터 배경에 있는 색깔들을 분리하면, 그러면 이렇게 사과만 남는 표상을 얻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지성은 "모든 사과는 빨갛다" 라는 개념을 붙인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개념들을 결합시키는데, 그것을 '판단' 이라고 한다는 것이죠. 그러면 판단을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고, 여기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겁니다. 그 규칙을 '범주' 라고 하는데, 칸트는 이것을 12범주로 나누었다는 말이죠.

이 12범주에는, 수적으로는 단일성, 다수성, 전체성이 있고, 성질로는 긍정성, 부정성, 제한성이 있고, 관계로는 실제와 속성, 원인과 결과, 상호작용(동시성), 양상으로는 가능성과 불가능성, 현실성과 비현실성, 필연성과 우연성, 그렇게 판단을 한다는 겁니다.

이 사과가 모여있는 이미지에서는 전체성, 긍정성, 실체와 속성, 현실성의 범주를 적용한다는 것이죠. 그러면 "모든 사과는 빨갛다" 라는 판단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감각자료들를 보고 "모든 사과는 빨갛다" 라는 판단을 한다는 말이죠.

서양 철학사에서 근대인식론을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으로 설명을 하는데, 합리론은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로 이어지고, 경험론은 로크, 버클리, 흄으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합리론자들은 지식의 원천을 인간의 이성이라고 하고, 경험론자들은 지식의 원천을 인간의 경험이라고 한다는 것이죠.

* 밀가루 반죽이 붕어빵 틀 !!

그런데 칸트의 인식론은 합리론과 경험론, 이 둘을 다 받아들이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런지 설명해보면, 칸트의 인식론을 붕어빵을 만드는 과정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말이죠. 밀가루 반죽이 붕어빵 모양의 틀 속에 들어가면, 그 틀과 똑같은 모양의 붕어빵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감각자료가 인식의 틀 속에 들어가면, 그 인식의 틀 속에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12범주가 있는데, 그 인식의 틀과 똑같은 형식의 지식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이때 밀가루 반죽과 감각자료는 경험론자들이 말하는 경험이고, 붕어빵 틀과 인식의 틀은 합리론자들이 말하는 이성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을 다 받아들이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합리론과 경험론은 칸트에 의해서 통합이 되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성과 경험, 둘 중에서 하나만 없어도 온전한 지식이 될 수 없다는 말이죠.

* 내용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없는 직관은 멩목적이다 !!

그래서 칸트는 "내용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없는 직관은 멩목적이다" 라고 했는데, 여기서 내용은 경험이고, 사고는 이성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내용이 없는 사고라는 것은, 밀가루 반죽도 없이 붕어빵 틀만 구웠다는 말이죠. 그렇게 구우면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데, 그래서 공허하다는 것인데, 즉 공갈빵이라는 겁니다. 아무런 경험도 없이 이성으로만 판단을 하면 공갈빵이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개념이 없는 직관에서 개념은 이성을 말하고, 직관은 경험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은 밀가루 반죽을 붕어빵 틀 속에 넣지를 않고 그냥 마구 구운 것인데, 그러면 떡처럼 되고 마는데, 그래서 맹목적이라는 겁니다. 이성이 없이 경험으로만 판단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죠.

* 비둘기는 공기의 저항이 없으면 날 수 조차도 없다 !!

그래서 칸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데, "비둘기가 공기의 저항이 없으면 더욱 잘 날 것만 같지만, 사실은 공기가 없으면 비둘기는 날 수 조차도 없다" 라고 말이죠. 이것은 굉장히 재미있는 표현인데, 여기서 공기는 경험을 의미하고, 그래서 공기의 저항이 없다는 것은 경험이 없다는 의미라는 겁니다.

그리고 난다는 것은 지식을 얻는다는 것인데, 즉 경험이 없이 생각의 힘만으로 화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지만, 경험이 없으면 지식을 얻을 수 없다는 겁니다. 즉 인간은 밀가루 반죽을 가지고 상상의 틀 속에서 붕어빵을 더욱 잘 만들 수 있다고 여기지만, 그러나 밀가루 반죽이 없으면 아무런 붕어빵도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겨냥한 것이고 하니, 앞에서 인간은 신이 있는지 없는지,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 시간의 시작이 있는지 없는지, 인간에게 자유가 있지 없는지,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을 알고 싶어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이 비밀의 커튼 뒤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가지고 철학자들이 논쟁을 벌였다는 겁니다.

하지만 칸트는 이런 것이야말로 경험이 없는 지식, 즉 밀가루가 없는 반죽인 공갈빵이라고 보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는 단 한번도 해결된 적이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이런 공갈빵에 매달리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지식은 선험적 명제이자 종합적 명제인 수학과 기하학과 물리학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 다시 정리하면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감각자료가 자기에게 들어왔다고 하면, 그러면 이 감각자료는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는 겁니다. 그것은 자기 바깥의 사물에서 왔는데,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 자기는 알 수가 없다는 말이죠. 자기가 알 수 있는 것은, 여기서 들어온 이 감각자료를 구성한 대상이라는 겁니다. 즉 자기가 구성한 현상세계일 뿐이라는 것이죠. 그것 자체는 자기가 알 수 없는데, 그래서 그 알 수 없는 것을 '물(物)자체'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여기에는 두 개의 세계가 있는데, 그게 물 자체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라는 말이죠. 그러면 물 자체의 세계는 존재하는 것일까요? 물론 무엇인가가 존재하니 자기에게 어떤 감각자료를 주는 것인데, 그런데 그것은 좀 이상하다는 겁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런데 그 시간과 공간은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이라고 했고, 따라서 물 자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죠.

* 칸트는 초월적 관념론자이자, 경험적 실재론자 !!

그러면 물 자체가 정말로 존재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그럴 수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 머릿속에서 구성한 것일 뿐이니까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칸트는 초월적 관념론자라고 할 수 있는데, 하지만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여기 이 현상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있는데, 이렇게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은 우리에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죠.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런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칸트는 경험적 실재론자라고 보아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결론적으로, 칸트는 초월적으로는 관념론자이지만, 경험적으로는 실재론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플라톤은 세계를 둘로 쪼개었는데, 이데아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로 말이죠. 이데아의 세계는 진짜세계이고 현실의 세계는 가짜세계라는 겁니다. 이것이 플라톤의 이원론인데, 그런데 칸트는 이것을 변형시켜서 이 세계를 '물자체'와 '현상계'로 나누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물자체가 진짜고 현상계가 가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칸트는 그리 만만한 사람이 아닌데, 인간은 물자체를 알 수 없을뿐더러, 현상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현상계를 가짜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인간에게 있어서 현상계야말로 실재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진짜 세계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칸트는 경험적 실재론자라고 한다는 것이죠.

* 쇼펜하우어, 니체, 프로이트 !!

쇼펜하우어(1788~1860년)는 이렇게 세계를 물자체와 현상계로 구분한 칸트의 이원론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물자체를 의지로 해석하고, 그리고 현상계를 표상으로 바꾸어 버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의 주된 저서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라는 말이죠.

이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자들이 바로 니체(1884~1900년)이고 프로이트(1856~1939년)인데, 여기서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의지를 받아들였고, 그리고 프로이트는 쇼펜하우어의 의지를 욕망으로 대체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들의 철학은 그 이후에 푸코(1926~1984년), 들뢰즈(1925~1995년), 데리다(1930~2004년)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 피히테, 셸링, 헤겔, 마르크스 !!

물론 칸트의 이원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철학자들도 있는데, 피히테(1762~1814년)의 경우에는 칸트의 철학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는 겁니다. 왜 세계를 물자체와 현상계로 구분해버렸느냐는 것이죠. 그래서 피히테는 이 전제를 자아 속에 집어넣는 '주관적 관념론'을 제시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셸링(1775~1854년)이 이것을 보니 어이가 없는데, 왜냐하면 이 세계가 모두 인간의 자기 자아 속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니 말이죠. 이것은 말도 안 되는데, 그래서 이것을 뒤집어서 모든 것을 자연 속에 넣어버리는데, 그것을 '객관적 관념론'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헤겔(1770~1831년)도 이 세계를 물자체와 현상계로 구분한 칸트의 이원론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피히테와 셸링의 해법에 만족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죠. 그래서 헤겔은 피히테의 변증법과 셰링의 절대자 개념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절대적 관념론을 완성시키는데, 그것이 바로 '절대정신(Absoluter Geist)' 이라는 겁니다.

* 정리하면 !!

이것을 정리해보면, 칸트가 이 세상을 물자체와 현상계로 나누었는데, 그런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을 해결하기 위해서 피히테는 주관적 관념론을 내놓았고, 이것에 대한 반발로 셸링의 객관적 관념론이 나왔고, 헤겔은 피히테로부터 변증법을, 그리고 셸링으로부터는 절대정신을 받아들여 절대적 관념론을 완성시켰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르크스(1818~1883년)가 다시 헤겔을 뒤집어버리는데, "관념은 무슨 얼어죽을 관념인가? 모든 것은 다 물질이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로크, 버클리, 흄으로 이어지는 경험론, 그리고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로 이어지는 합리론이 칸트에 의해서 종합이 된다는 겁니다. 칸트의 이원론은 한 쪽으로는 피히테, 셸링, 헤겔의 관념론으로 이어지고, 다시 마르크스가 이것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였으며, 다른 한 쪽으로는 이 칸트의 이원론이 쇼펜하우어로 이어지고, 이것을 니체와 프로이트가 이어받았으며, 다시 이것을 푸코, 들뢰즈, 데리다가 계승을 했다는 말이죠.

그러고 보니 "칸트 이전의 철학은 모두 칸트에게로 흘러 들어가고, 칸트 이후의 철학은 모두 칸트로부터 흘러나왔다" 라고 하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칸트는 정말로 서양철학의 저수지였다는 것이죠. 그게 서양철학에서의 칸트라는 겁니다.

* 플라톤의 영혼삼분설 !!

플라톤은 인간의 정신활동이 3개의 영역이 있다고 했는데, 먼저 머리로 대표되는 이성과 지성의 영역, 두 번째로 심장으로 대표되는 의지와 도덕의 영역, 그리고 세 번째로 위장으로 대표되는 욕구와 욕망의 영역이 있다고 말이죠. 그래서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3개의 영역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그것을 '트라이파이타이트 소울(Tripartite Soul, 영혼삼분설)'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인간의 정신활동의 결과물이 문화인데, 그 문화를 크게 3가지로 나누면, 학문과 종교와 예술이라는 것이죠. 이성과 지성의 결과물이 학문이고, 의지와 도덕의 결과물이 종교이며, 욕구와 욕망의 결과물이 예술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의 정신활동을 결국 '진선미(眞善美)' 라는 겁니다.

* 진선미(眞善美) !!

각각의 영역에서의 판단기준은 다른데, 진(眞)의 영역에서는 참과 거짓을 판단하고, 선(善)의 영역에서는 선과 악을 판단하고, 미(美)의 영역에서는 좋음과 나쁨을 판단한다는 겁니다. 칸트의 3대 저서도 이렇게 분류가 되는데, 진의 영역을 다루는 책이 순수이성비판이고, 선의 영역을 다루는 책이 실천이성비판이며, 미의 영역을 다루는 책이 판단력비판이라는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 참과 거짓, 그리고 선과 악의 문제는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 어떤 것이 참이고 거짓인지를 따질 때와, 그리고 선과 악의 문제를 따질 때의 방식이 다르다는 것인데, 그리고 그 대답도 다르다는 말이죠. 마찬가지로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말하는 방식과 실천이성비판에서 말하는 방식이 다른데, 그리고 그에 따른 결론도 다르다는 겁니다.

여기서 문제는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사이에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인데, 그래서 칸트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판단력비판을 썼다는 말이죠. 미학이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칸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3가지 책을 모두 읽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어느 세월에 읽겠느냐는 말이죠. 감사합니다 !!

2023,9,5 오후 4시 정리함 - 녹취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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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분뚝딱 철학의 김필영 씨는 전기공학을 전공했고, 2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철학이 좋아서 철학박사학위까지 취득한 분입니다. 그 어떤 분보다 철학을 쉽게, 그리고 확실한 틀을 제공해줍니다. 그래서 이분의 강의를 먼저 들은 후에 다른 분들의 강의를 들으면 훨씬 이해가 잘 됩니다. 유투브의 '5분뚝딱 철학'에서 대부분의 강의를 들을 수 있고, 또한 '5분뚝딱 철학1,2'가 책으로 나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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