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갈라디아서)(1~9강)-재정리
2023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갈라디아서) 제1강, 악마포착
강의, 이근호 목사 정리, 한윤범
먼저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저희들을 이렇게 말씀 속으로, 주님 앞으로 불러주신 줄로 아오니, 그런 취지와 뜻을 우리가 충분히 느끼고 발견하는 귀한 시간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마귀를 찾자 !!
첫째 시간의 주제는 마귀인데, 그 마귀를 찾아보자는 말이죠. 그러면 "이 마귀를 어떤 식으로 포착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전제가 있는데, 첫째가 "인간은 사라지는 육신을 지니고 있다" 라는 겁니다. 우리 육신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인데, 아무리 팔십을 살고 구십을 살고, 백세를 살아도 결국은 사라져 없어진다는 말이죠.
오늘 첫째 제목은 '마귀포착' 인데, 이 마귀를 어떻게 포착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 전제, 그 시작이 "우리 육신은 사라진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이 육신이 왜 사라지느냐는 말이죠.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배제를 당했다" 라고 하는데, 그래서 사라진다는 겁니다.
* 사라지는 육신 !!
인간의 육신은 흙이 되어서 사라지고 있는데, 이것을 우리가 부정할 수가 있습니까?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이렇게 "육신이 사라진다" 라는 것을 통해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포착할 수 있느냐 하면, 그 사라지는 육신을 통해서 마귀를 포착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하면, 우리 인간의 육신이 사라지는 이유가 하나님으로부터 배제를 당했기 때문인데, 즉 하나님께서 "너, 나가" 라고 했다는 말이죠. 그러면 우리 인간 쪽에선 하나님 쪽을 향해서, 끈질기게 "나중에 좀 봅시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기어이 하나님과의 합류를 시도하는데, 배제를 당했으니까 말이죠.
그러니 왜 인간이 신을 찾는고 하니, 그것은 자기 육신이 점점 사라지니까, 육신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자기가 사라지면 더 이상 자기가 자기를 신뢰할 수 없게 되는데, 그렇지요? 그렇게 자기 자신이 그만 늙어가니까, 결국은 없어지니까 도저히 믿을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죠.
* 엄마, 아이스크림을 더 사줘 !!
예를 들어서,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그런데 점점 닳아서 없어진다는 겁니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의 길이가 점점 더 짧아질 때, 그러면 그 아이는 누구를 바라보게 됩니까? "엄마, 더 사줘" 라고 나오는데, 아이스크림이 있을 때는 엄마를 찾지 않다가 없어지면 찾게 된다는 말이죠.
이렇게 '나' 라는 것이 점점 더 사라지게 되면, 그 사라지는 자기를 찾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자기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죠. 그럴 때 "나를 만들었다" 라는 어떤 분을 상정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 이라는 겁니다. 자기를 만들었다고 하는 그 어떤 분, 즉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말이죠. 그래서 "나중에 천국에서 봅시다" 라는 식으로 나온다는 겁니다.
* 사라지는 '육신' VS 온전하고 멋진 '나' !!
그렇게 사라져가면서 여기에서 뭐냐 하면, 사라지는 '육신'과 또 하나의 온전하고 멋진 '나' 사이에서 그만 균열이 발생하게 된다는 말이죠. 이렇게 균열이 발생한다는 것은 "동일하지 않다" 라는 것인데, 즉 똑같지가 않다는 겁니다. 그렇게 한 쪽은 없어지고, 그리고 다른 한 쪽은 그 없어진 만큼 더욱 더 절실해진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렇게 사져져 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사라져도 상관없을 정도로 충분히 보상되는 대안을 하나님이 마련해주셨으면 참 고맙겠습니다" 라고 하는, 그런 절박함이 생기게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돈도 좀 있고 배울 만큼 배웠다고 하는 '나' 라는 것이, 그 사라지는 속도를 줄여주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하면 온전하고도 멋있는 '나', 그것을 누가 만든다는 겁니까? "그것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좀 보장해주세요"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여기에서 이 두 개의 '나', 즉 사라지는 육신을 통해서 온전한 육신으로 건너가고자 한다는 겁니다.
* 매개역할로서의 '정신' !!
그러면 인간의 육신은 뭐냐 하면, 이것은 고기인데, 즉 단백질 덩어리라는 말이죠. 물론 고깃덩어리가 이런 생각을 할 리는 없고, 그렇지요? 그러면 이 사라지는 '육신'에서 온전하고도 멋진 '나'로, 그렇게 옮겨줄 수 있는 다리역할, 혹은 매개역할, 그렇게 연결해주는 중간역할을 이 '정신' 이라는 것이 하게 된다는 겁니다.
현재 자기의 육신은 보이는데, 그리고 천국에서 온전하게도 멋지게 생명나무의 풀장에서 놀고 있는 '나' 자신, 그것도 역시나 멋지게 보인다는 것이죠. 그런데 정신은 보이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보이는 '육신'과 보이는 천국에서의 멋진 '나' 사이에, 그 보이는 것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정신을 집어넣는다는 말이죠.
그러면 정신을 넣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 한탄스럽고 낙담되는, 즉 늙어가는 실제현실을 넘어가려고 한다는 말이죠. 희망이라는 말을 하면서, 지금의 이 현실에서 온전해진 '나' 사이를 건너갈 수 있는, 그래서 그 양쪽을 다 엮어줄 수 있는 '정신' 이라는 것에 인간은 집중을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정신 파트가 두 개로 나눠지는데, 현재의 '육신'(1번)에서 천국에서의 멋진 '나'(2번)로 건너가려고 하니까 말이죠. 양쪽을 다 연결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1과 2를 연결하려고 하면, 1에 붙어있는 정신, 2에 붙어있는 정신, 그렇게 두 개가 모두 다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1과 2에 각각 붙어있는 이 정신, 양쪽에 다 붙어있는 정신인데, 그런데 이 멋진 '나'는 지금의 현실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것은 죽고 난 뒤에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정신도 첫째는 보이는 것을 설명하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게 되는데, 그렇게 두 개가 걸쳐있다는 겁니다.
* 정신과 언어 !!
지금 첫 번째 강의 제목이 '마귀포착' 인데, 그 시작을 사라지는 육신으로부터 했다는 말이죠. 그러면 보이는 것을 설명하는 것,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설명하는 것, 그것이 정신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정신 자체가 보이는 것으로 나타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는, 그렇게 둘 다 포함할 수 있는 방식이 우리 인간에게는 있다는 말이죠.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이죠.
원숭이에도 없고 개미에게도 없는데, 그런데 인간에게는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바로 '말' 이라는 것인데, 즉 언어로 표현을 한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언어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두 개가 담겨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게 어떻게 담겨있는고 하니, 그것을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죠.
* 보이는 '육신', 보이지 않는 '나' !!
그것을 '말하는 내용의 주인공', 그리고 '말하는 행위의 주인공' 이리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행위의 주인공은 누구인고 하면, 자기가 말을 하기 때문에 이것을 '나'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 '나'의 특징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죠. 즉 보이는 것은 '육신'이고, 말하는 '나'는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렇게 '나'는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실제로 있다는 것을 무엇을 통해서 알 수 있는고 하면, 그것은 바로 "말하고 있다" 라는 것을 통해서, 즉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정신이 말을 하는데, 그 안에는 말하는 주인공인 '나' 라는 것이 당연히 포함되어있다" 라고, 그렇게 설명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나' 라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인데, 이 '나'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아', 혹은 '주체' 라고 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러면 여기에는 말하는 내용의 주인공은 어떻게 되는고 하면, "내가 말을 하면 내용이 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 그래, 내가 그 이야기를 했잖아 !!
벌써 어렵나요? 그런 분이 없겠지만, 혹시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분을 위해서 제가 다시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ㅋㅋ). 사람이 누구에게 말을 할 때는, 그 사람은 '나'를 보는 것이 아니고, 어떤 사라지는 육신이 입을 벌리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죠.
그렇게 입을 벌리면, 그러면 그 사람이 무슨 뜻으로 이야기하는지를 귀로 듣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육신이 이야기한다" 라고 하는 게 아니고, "그때 내가 이야기를 했잖아" 라고,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나'를 툭 내세운다는 말이죠.
* A : 그때 내가 이야기를 했잖아
* B : 그때 네가 이야기한 것, 3시까지 카페에서 만나자는 그 이야기 말이지.
* A : 그래, 내가 그 이야기를 했잖아.
* B : 그렇지. 너는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을 '너' 라고 인정해줄게.
* A : 아니, 내가 보이지 않아? 여기에 있잖아.
* B : 육신은 보이지만, '너' 라는 것은 보이지 않아.
* A : 아니, 내가 여기에 이렇게 있는데?
* B : 네가 그렇게 우기니까 인정해줄게.
물론 이렇게 복잡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겠지만(ㅋㅋ), 굳이 따지면 그렇다는 겁니다. 여기서 이게 주인공이니까, 그것을 '주체' 라고 하는데, 이 말하는 주인공의 특징은 뭐냐 하면, 이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보이지 않는데, 그런데 "말을 했다" 라고 했을 때의 그 육신은 눈에 보인다는 겁니다.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왜 자꾸만 나누는가?
그렇게 말하는 내용을,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눈다는 말이죠. 계속해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누고 나누는데, 그러면 왜 자꾸만 이렇게 나누느냐는 겁니다. 그것은 제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지 싶은데 말이죠.
거울에 비친 육신은 사라지는데, 그런데 "그래, 사라져 버려라" 라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겁니까? 사람들은 사라지는 그 육신을 대체해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육신을 확보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하는 내용을 남들에게 이야기를 하다가 또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할 때, 그 말하는 내용이 둘로 나누어진다는 겁니다.
* 기호형식과 기호의미 !!
여기에서 보이는 것을 '기호형식' 이라고 하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기호의미', 혹은 '기호내용'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이 기호내용은 보이지가 않는데, 그런데 그 보이는 것인 기호형식을 따라가면, 그 기호의미는 따라가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가방' 이라고 하면, 그것은 형식이라는 말이죠. 그 의미는 "사람이 들고 다니는 것이다" 라는 것인데, 그렇지요? 그런데 '가방' 이라고 하면 미국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bag' 이라고 해야지 비로소 알아듣는다는 말이죠. 기호형식과 기호의미, 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이렇게 나눈다는 것이죠.
* 앗, 고깃덩어리를 낳았네 !!
지금까지 잘 따라오셨는데, 계속해서 따라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보이는 것은 기호형식이고, 그러면 그 다음에 기호형식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붙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보이는 기호형식은 누가 정했는가?" 라는 것인데, 이것은 기성질서에 의한 이 기성사회에서 정했다는 말이죠.
그러면 사람이 태어난 곳에서 시작해서 태어날 때 어린아이의 기성사회, 그의 삶의 공간은 어디지요? 그것은 가정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 '가정' 이라고 하는 것, 즉 두 사람이 서로 만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을 때, 그런데 그것을 "앗, 고깃덩어리를 낳았네" 라고 하지는 않는데, "예쁜 아이가 태어났구나"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 따로 또 같이 !!
이렇게 부모는 낳은 자식을 고깃덩어리로 생각하지를 않는데, 그런데 태어난 당사자는 자기를 고깃덩어리로 생각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태어난 아이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구분 자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나' 라는 것도 역시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때가 뭐냐 하면,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물론 외부에서 볼 때 엄마와 그 아이가 비록 몸은 떨어졌지만 같이 붙어 다닌다는 겁니다. 몸은 떨어졌지만, 분명히 엄마의 배속에서는 나왔지만, 그런데 당분간 아이는 항상 엄마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죠.
아이가 이렇게 있고 엄마가 여기에 있다면, 제삼자가 볼 때는 두 고깃덩어리인데, 즉 두 육신은 떨어져있지만, 그런데 아이는 어머니와 떨어져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6개월에서 1년 6개월이 지나게 되면, 엄마를 가로막는 이 중간에 무엇이 끼어 드느냐 하면, 그때는 이 아이가 거울을 보게 된다는 말이죠.
그 이전까지는, 아이는 태어났어도 엄마와 떨어져있지 않고 붙어있다는 겁니다. 같이 붙어있으니까, 이것을 점선으로 표시하면, 아이에게는 스스로 "있고, 없고" 라는 것이 없는데, 엄마가 있으면 자기는 있는 것이고, 엄마가 시장에 가고 없으면 자기는 없다는 말이죠. 아주 어릴 때의 일이니까 여러분은 기억이 나지 않을 텐데(ㅋㅋ), 아무튼 인간은 그렇게 시작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을 보게 되는데, 그 거울에 비친 자기를 보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비친 것을 보았을 때, 엄마가 비치지 않고 자기 육신이 비칠 때, "저게 바로 나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나' 라는 것이 발생하게 되고, 그러면 엄마는 더 이상 '나'가 아닌 '너'가 된다는 말이죠. 즉 '나'를 발견하는 순간 엄마는 타인이 된다는 것이죠.
그렇게 타인으로 분류가 되면서, 그때부터 아이는 점선이 아니고 실선이 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나' 라는 것인데, 그러면 이제 타인이 누구라는 겁니까? 그게 엄마인데, 그래서 아이는 엄마에게 자기의 신체적인 욕구에 대해서 요구를 하게 된다는 말이죠. 젖을 달라하고 하든지 사탕을 달라고 하든지, 그런 요구를 하게 된다는 겁니다.
* 엄마, 사탕 주세요 !!
그러면 그 요구에 대해서 엄마가 부응하는데, 그래서 "사탕을 먹어라. 이게 사탕이야" 하고 이야기를 해준다는 말이죠. 그러면 아이는 '사탕' 이라는 기호형식에 드디어 감각이 오게 된다는 겁니다. 아이가 아무리 사탕공장의 사장집 아이라도, 이 '사탕' 이라는 기호는 자기가 만든 게 아니라는 말이죠.
엄마가 아이에게 사탕을 주면서 "이게 사탕이다" 라고 말했을 때, 아이는 그것을 먹으니까 달콤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의 욕구가 충족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엄마를 보면, "사탕을 주세요" 라고 하는데, 즉 아이의 입에서 어른들이 썼던 기호형식이 드디어 나오게 된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언어에 대한 종속이라는 말이죠.
* 갈라디아서와 언어종속 !!
제가 지금 가정에 있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이 사회의 언어체계가 어떻게 구성이 되어있는지, 그것만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번 수련회에서 우리가 할 것이 갈라디아서인데, 이 갈라디아서는 언어로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갈라디아서라는 언어는 어디에서 나왔느냐는 것이죠.
그리고 어디에서 나왔는지도 중요하지만, 도대체 이 '갈라디아서' 라고 하는 복음의 내용을 담고 있는 언어는 무엇을 발췌하고 무엇을 포착하기 위해서, 이 갈라디아서가 복음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제시되었느냐는 겁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는 말이죠.
* 이미 왜곡된 성경, 왜?
그리고 그 복음이란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가 받아들이는 성경 자체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실 때의 취지가, 그게 '나' 라는 것이 이미 구성되어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말씀이 '나'에게 왔을 때에 트위스트, 즉 왜곡되고 오인되는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누가 배후에서 본래 성령께서 주신 성경말씀을 "나는 있다" 라고 하는 그 '나' 라는 존재를 앞장세워서 왜곡을 하도록 만들었는지, 그것을 밝혀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냥 "은혜를 받았다" 라고 하면 곤란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 착각일 가능성이 백퍼센트라는 말이죠.
제가 강의 처음부터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은 인간 속에 사라져 가는 육신이 뭔가 아쉬움이 있다는 겁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온전한 육신으로 살고 싶어하는 욕망이 이미 전제되어있기 때문에 말이죠. 이미 그런 욕망이 있는 이상, 그 어떤 성경말씀도, 물론 그냥 책이나 방송도 마찬가지인데, 그 어떤 말이라도 전부 다 자기 안에서 왜곡되도록 되어있다는 말이죠.
* 인간아, 그만 먹어 !!
엄마가 이야기하는 '사탕' 이라는 말 속에는 "인간아, 그만 먹어라" 라는 의미가 담겨있는데, 그런데 아이는 엄마가 쓰는 단어, 그 기호형식의 본래 의도는 전혀 모르고, "참 맛있다" 라는 일방적인 자기 주장을 가지고 사탕을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또한 그래야 마땅한데,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다" 라고 할 수 있기에 말이죠.
이미 '나'와 '남' 사이엔 합체가 되지 않는데, 합체는 자기가 없을 때 된다는 겁니다. 자기가 있을 때는 합체가 아니라 따로 오는데, 서로 이용할 뿐이라는 것이죠. "아이가 시끄러워서 안 되겠네. 사탕이나 하나 주자" 라고 해서, 아이가 조용해지면 "그럼, 그렇지" 라고 하면서, 자기 일을 한다는 겁니다.
"그만 울어라" 라고, 커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만, 갓난아이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못한다는 말이죠. "이것 먹고, 그만 칭얼거려" 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물론 똑똑한 아이들은 "방금 엄마는 사탕을 주면서 무슨 이야기했는데?" 라고 하는데, 그러면 엄마는 "몰라도 돼" 라고 한다는 말이죠(ㅋㅋ).
아무튼 이 기호형식과 기호의미에서 '나' 라는 것은 타자에게, 여기에서 타자란 남을 의미하는데, 일단 엄마라는 겁니다. 즉 엄마에게 자기가 필요한 욕구를 요구하게 된다는 말이죠. 이렇게 요구하는 것, 즉 여기서 아이가 사탕을 요구하면 엄마는 사탕을 주는데, 그러면 "사탕 주세요 - 사탕 먹어" 라고, 그렇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죠.
그런데 아이가 하는 말이 "엄마, 그 사탕말고 다른 사탕을 줘. 이것말고 전에 먹던 사탕을 줘" 라고 하니까, 엄마가 "그러니까 말을 똑바로 하란 말이야. 사탕도 종류가 한 두 가지가 아니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왜 사탕이라는 언어가 그렇게 많이 분화가 되었어?" 라고 한다는 말이죠. 아닌가요? (ㅋㅋ)
* 욕망의 확장 !!
왜 사탕이 한 종류가 아니고 여러 종류냐는 것인데, 그러면 엄마는 "네가 학교에 가지 않아서 아직 교육이 덜 되어서 그런 거야"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것은 어른도 마찬가지인데, 가부장적인 남편이 "여보, 티비 좀 틀어봐" 라고 하니, 친절하게 이것저것 틀어준다는 겁니다. 그러자 남편이 "아니 무슨 티비 프로그램이 그렇게 많아?" 라고 하는데, 그런 것과도 같다는 말이죠.
그때부터 아이는 욕망이 확장되기 시작하는데, 즉 "내가 전에 사탕을 먹고 만족한 게 만족의 한계가 아니었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그때의 달콤했던 그 플러스알파, 그런 미지의 사탕으로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기 눈에 보이는 주체, 그것을 아까 기호형식이라고 했는데 말이죠.
그런 기호형식과 의미가 합체되어서 나왔던 주체, 쉽게 그냥 주인공이라고 하면, 자기가 사탕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주인공, 여기서는 자기가 아는 사탕이 아닌 자기가 모르는 사탕인데, 즉 '나' 라고 하는 주인공이 업그레이드될 필요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 말이죠.
* 엄마가 몰래 먹든 사탕을 줘 !!
그렇게 되면 옛날 사탕을 주면 만족도가 확 떨어지는데, 그래서 "엄마 이것말고 엄마가 몰래 먹는 것, 나에게 주는 용도의 사탕이 아닌, 엄마가 혼자 숨어서 먹는 그 사탕을 주세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엄마는 "이것은 아이들이 먹는 게 아니고 어른들이 먹는 거야" 라고 하는데, 그러면 아이가 "어른들이 먹는 것을 먹고 싶어" 라고 한다는 말이죠.
여기에서 기존의 주체와 또 다른 더 큰 플러스알파 사이에는 무엇이 있느냐 하면, 균열이 일어나게 되는데, 즉 갈라짐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렇게 갈라짐이 성립하게 되면서, 엄마는 "그래, 엄마가 먹는 사탕, 어른들이 먹는 사탕을 줄까?" 라고 하는데, 물론 이상한 사탕은 아닌데, 엉뚱한 오해는 하지 말라는 것이죠(ㅋㅋ).
* 구구셈 대회에서 우승을 해야지 !!
그러면 엄마는 "그것을 줄께. 그러면 네가 이번에 산수를 1학년 2학기까지는 떼야지. 구구셈 대회에서 우승을 해야지" 라고 하는 요구를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는 "구구셈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엄마가 몰래 먹던 사탕을 주는 거야?" 라고 하는데, 그러면 엄마는 "그래, 줄게"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드디어 아이는 엄마에게 말려들었다는 겁니다.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는데, 아이가 있고 엄마가 있는데, 엄마와 처음으로 떨어져 있지만 처음부터 격리되지 않고 의존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의존하면서, 엄마는 "그 사탕은 엄마만 먹는 것이 아니고 아빠도 같이 먹어" 라고 하면서 아빠에게 권위를 슬쩍 넘기는데, 그러면 아이는 엄마에게만 의존하다가 아빠에게 가게 되면, 이 각도만큼 여기서 결여, 즉 빈자리가 생기게 된다는 겁니다.
* 생명나무와 연결된 선악과 !!
지금 제가 여러분께 이런 이야기를 하는 취지가 무엇인고 하니까, 지금 '악마포착' 라는 것에 있어서, 과연 악마를 어디서 포착할 수가 있느냐는 말이죠. 그 악마라는 놈이 도대체 어디에 꼭꼭 숨어있는지, 그것을 한번 알아보자는 겁니다.
낙원에서 인간은 배제가 되었는데, 즉 생명나무에서 배제가 되었다는 겁니다. 악마가 인간을 부추겨서 따먹지 말아야 될 선악과를 건드려서 그만 '딸랑딸랑' 소리가 났다는 말이죠. 악마는 이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서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미처 몰랐는데, 악마는 이것이 다른 두 개의 나무인줄로만 알았다는 겁니다. 밑으로 연결된 것임은 몰랐다는 것이죠.
한 쪽을 따먹으면 다른 한 쪽은 남아있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었어? 그러면 생명나무는 안 돼"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나무가 두 개니까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도 마저 따먹을 수 있다고 여겼지만, 하나를 따먹으니까 다른 하나는 그만 차단을 시켜버렸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 즉 마귀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을 할까요? "하나님, 진즉에 이야기를 좀 해주시지요.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생명나무도 따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 추가조항은 왜 미처 설명해주지 않았습니까?"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그 이유에 대해서 인간도, 마귀도 몰랐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따먹지 말라" 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조치이기 때문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정도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키고, 행여나 찾아올까 싶어서 불타는 화염검을 든 천사를 에덴동쪽에 파수꾼으로 세워서, 그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겁니다.
* 인간 제거, 그리고 드디어 악마포착 !!
이게 뭐냐 하면, 바로 '인간 제거' 라는 말이죠. 하나님이 친히 만든 인간을 제거해버렸다는 겁니다. 처음에 만든 인간은 '제거' 라는 것을 몰랐던 존재인데, 그런 인간이 협의도 없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조치에 의해서 제거를 당하게 되었다는 말이죠.
그러면 인간의 그 본능은 과연 무엇을 추구하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그 제거의 폭을 감춰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 우리와 좋은 사이였잖아요?" 라는 식으로 나오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그 시도의 배후에는 누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악마가 시킨 것인데, 그러면 드디어 악마가 포착이 되었다는 것이죠. 그렇지요?
지금 우리가 찾는 것은 뭐냐하면, 끊임없이 인간들의 정신세계 속에서 배제를 당하고 삭제를 당하는 현상들이 나온다는 겁니다. 인간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과정 가운데서, 계속해서 그런 것이 가득가득 방출되고 있더라는 말이죠. 끊임없이 나온다는 것이죠.
그러니 엄마에게 하던 것이, 이제는 엄마와 있는 게 아니고 아빠가 있는데, 여기서 아빠라는 의미는, 물론 엄마도 들어갈 수 있지만, 여기서 아빠의 의미는 무엇인고 하니, 아이는 엄마 혼자서 단성생식을 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무슨 아메바도 아니고 말이죠.
* 억지스러움의 발생 !!
아무튼 아빠와 엄마에 의해서 아이가 생겨났으니까, "엄마는 엄마 따로, 아빠는 아빠 따로",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그 하나가 둘 사이를 두고 둘을 통합해야 될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부담을 갖게 되는데, 아이의 입장이 그렇다는 겁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라고 하는, 맨날 이런 질문이 나올 것만 같다는 말이죠(ㅋㅋ).
분명히 서로 다른 두 존재인데, 두 존재가 아이에게는 하나의 존재로 받아내야 하는 심리적인 부담이 생기면서, 여기서 아이는 뭐냐 하면 '억지스러움'이 발생하게 된다는 겁니다. 억지 미소, 억지 귀여움, 왜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 억지스러움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그러면 아이는 양쪽 비위를 다 맞추어주어야 하는데, 양쪽에 다 헤헤거려야 한다는 말이죠.
이 억지스러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주체를 어떻게 하느냐 하면, 통합되지 않는, 억지스러우니까 통합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게 통합될 수 없는 내부의 주체를 억압하게 된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렇게 억압을 하면서도, 마치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모두 다 알아주는 것처럼 여기는 가상적 주체, 그러한 가상적인 '나'를 표상하고 표현할 필요가 있었다는 겁니다.
* 가상적 주체에 눌리는 무의식 !!
이 억압된 것이 눈에 보이는, 즉 아빠에게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는, 그런 의식적 행위에 의해서 눌려버리는 이 주체를 두고 정신분석학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것을 '무의식'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의식적 행위에 눌리는, 즉 가상적 주체에 눌려버리는 것, 이게 바로 무의식이라는 겁니다.
아이는 엄마와 헤어지기가 싫은데, 그런데 실제로 헤어졌다는 말이죠. 즉 "내 육신 따로, 엄마 육신 따로",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엄마가 가지고 있던 사탕이라든지 누리고 있는 그 모든 자유가 아이에게는 부러움이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아이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느냐 하면, 억지를 부린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엄마 것이 내 것이다" 라고 하는, '동일시' 현상이라는 말이죠.
* 마더스 니즈(Needs) !!
다시 말해서, "엄마가 가는 곳에 내가 간다. 엄마 것이 내 것이다. 엄마는 나를 영원히 사랑해. 내가 어떤 짓을 해도 엄마는 나를 사랑하게 되어있어.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니 말이야. 나도 엄마 것이니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듯이 나도 사랑할 거야" 라는 욕구, 즉 '마더스 니즈(Needs)'가 발생하게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것은 너 혼자의 상상이고 착각이야"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여기서 일부러 아빠와 엄마를 구분했는데, 물론 엄마 같은 아빠가 있고, 또 아빠 같은 엄마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굳이 누가 엄마이고 누가 아빠인지를 지칭할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요소가 이렇게 인간에게 작용한다고 보면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아이가 가정을 떠나서 학교나 교회, 더 커서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사회에 등장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엄마의 보호를 받던 자기와 같은 존재가 한 두 명이 아닌데, 모두 다 그렇다는 겁니다. "나, 보호받고 싶어. 어떤 짓을 해도 사랑을 받고 싶어. 누군가 배후에서 나를 지켜주는 자가 있는데, 그게 우리 엄마야" 라고 하는데, 이게 가정에서 형성된 '자아 동일성' 이라는 겁니다.
물론 아이가 상상한 것으로서, 자기 혼자만의 일방적 상상인데, 그게 바로 자아 동일성이라는 말이죠. 모든 육신들이, 모든 육체들이 똑같이 그렇게 행동을 한다는 겁니다. 그럴 때 여기에서 그만 문제가 생기는데, 이렇게 문제가 생기니까 사회에서는 법과 질서가 필요해진다는 말이죠.
* 시리얼리티(Seriality) !!
질서, 계열화, 서열화, 계급화, 즉 몇 등을 하는지 등수, 이것을 '시리얼리티(Seriality)' 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것이 '타인의 마을' 이라는 책과, 그리고 이번 교재에도 나온다는 겁니다. 지난번에도 했지 싶은데, 꼬물꼬물 올챙이, 즉 점점 더 관계가 멀어지면서 계열체, 계열화가 되는데, 여기에서 무엇을 하느냐 하면, 개인적인 주체를 그만 억압해버린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인간 자체가 의식적인 것이 따로 있어서, "무의식적인 것은 가만히 있어. 무의식적인 것은 나타나면 안 돼" 라고 한다는 겁니다. 반면에 의식적인 것은 "나는 당당해. 나는 자립했어" 라고 하고 말이죠. 그런데 여기서 무의식은 "나는 엄마 없이는 못 살아" 라는 나온다는 겁니다.
무의식에서는 엄마가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데,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말이죠. 어른이 되어서도 징징거리면 곤란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가 뭐라고 합니까? "이제는 설거지나 빨래는 네가 알아서 해라. 지금의 네 나이가 얼마인데, 아직도 엄마에게 양말을 빨아달라고 하나? 엄마와 아빠는 바빠. 네가 알아서 해"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무엇이 주어졌습니까?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일방적으로 자기 소원대로 요구를 다 들어주던 엄마와 아빠는 하나의 냉혹한 타인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엄마와 아빠가 요구하는 대로 들어주면서 의식은 점점 더 왜곡되고, 또한 자기가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는 무의식은 점점 더 깊어가고, 그러면 이 간격이 어떻게 됩니까? 이 간격이 점점 더 멀어지는데, 즉 분열이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분열이 되면서, 일단 여기까지는 여러분이 잘 따라오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마귀는 뭐라고 할까요? "네가 하나님 앞에서 제거되고 추방된 것을 빨리 해결해야지. 하나님은 온전하고 너는 온전하지 못한데, 그러니 온전치 못한 네가 하나님의 온전함을 따라잡아야지. 그 간격을 빨리 메워야지"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겁니다.
* 법대로 하자 !!
그러면 간격을 메우는 방법이 뭐냐 하면, 즉 분열을 좁히는 방법이 바로 "법대로 하자" 라는 것인데, 그것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죠. 그렇게 시키는 대로 하면 타인으로부터, 즉 어른들로부터 사회에 나가서 사랑을 받을 것이고, 그러면 "아하, 이게 사랑을 받은 것이구나" 라고 하면서, 그것을 확정하고 긍정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어릴 때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기를 칭찬해주고 자기를 감싸주었던, 그러한 무의식 속에 있던 엄마의 요소와 점점 더 친근해지고 가까워지는 것인데, 그래서 법대로 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법대로 하면서, 여기에서 무엇을 하느냐 하면, 그 법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요구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을 요구할까요? "저 영웅적인 형님, 내가 사모하고 싶은 나의 이상형, 내가 어릴 때부터 이상적으로 기대했던 형님!" 이라고 하면서, 이것을 '이상적 자아성'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런 이야기는 치우고, 아무튼 자기가 본받고 싶은 형님에게 무엇을 요구하느냐 하면, 여기에서 잠시 형님과의 대화를 들어보겠습니다.
* 나 : 형님을 계속 쫓아다니는 것도 피곤한데, 완전하고 최종적인 법은 무엇입니까?
* 형님 : 나도 그것을 찾는 중이다.
* 나 : 도대체 형님을 언제까지 따라다녀야 합니까?
* 형님 : 나는 네가 따라다니는 것을 신경 못써. 나도 더 큰 형님을 따라다니는 중이야.
* 나 : 그래도 좀?
* 형님 : 네가 아이야? 언제까지 칭얼대며 나를 따라다닐 거야? 네가 스스로 결정해.
* 나 : 목사님(형님), 성경의 완전한 뜻은 무엇입니까?
* 형님 : 나도 그것을 찾는 중이야.
* 나 : 그러면 완전한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 형님 : 몰라. 네가 알아서 잘 찾아봐.
* 나 : 그럼 목사님은 왜 그것을 모릅니까?
* 형님 : 나도 제거되었어. 나도 지금 같은 입장이다. 내가 신이야?
* 나 : 그러면 목사님은 진리를 찾는 것을 포기했습니까?
* 형님 : 아니, 나는 더 많이 잘 아는 사람을 찾아다닐 거야.
* 나 : 언제까지요?
* 형님 : 글쎄, 완전한 사람을 찾을 때까지겠지.
* 나 : 도대체 이게 뭡니까?
* 형님 : ? ? ?
* 인간의 기호형식이 돌고 돌아서 !!
따라서 의식적으로 자기 요구에 부응하는 것을 찾는 것은, 의식적 주체가 아니고 무의식적 주체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 세상에는 이미 기정세대에 많은 언어가 있고 문자가 있고, 아까 기호형식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 기호형식에 자기가 원하는 의미를 담아준 기호형식은 없고, 기호형식에서 다른 기호형식으로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죠.
예를 들면, "형님, 사랑은 무엇입니까? - 사랑은 그리워하는 것이다. -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가슴이 아리는 것이다. - 가슴이 아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 그게 사랑이야"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실컷 찾아다녔는데 자꾸 원래대로 되돌아가 버린다는 말이죠.
계속해서 순환을 하는데, 그런데도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뭐라고 합니까? "그런데 그 사랑이나 방금 이야기한 사랑이나, 둘 다 똑같은 사랑니지 않습니까?"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사랑이 한 바퀴 돌고 왔기 때문에 똑같은 게 아니야"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니, 사랑이란 단어 자체가 사랑이 아닌 것을 만들고 생겨나게 한다는 겁니다. 그런 차이를 나타내면서 인간의 기호형식은 계속해서 생성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사회라는 것인데, 즉 인간의 기호형식이 돌고 돌아서 만들어낸 것이 사회라는 겁니다.
여기서 10분을 쉬려니 아까운데, 그래도 10분만 쉽시다.
2023,08,10 오후 12시 30분에 재정리함 - 녹취 구
2023,08,11 오후 4시 30분에 재재정리함 - 녹취 구
2023,08,25 오후 4시 00분에 재재재정리함 - 녹취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