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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230713a말3장11절(율법 돔)-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

안양20230713a말3장11절(율법 돔)-이 근호 목사

오늘 말라기3장11절 해봅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 십일조를 온전히 했을 경우에 너희 이스라엘에게 제공되는 여러 가지 혜택들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메뚜기를 금하게 해서 너희 토지 소산을 먹지 않도록 해줄게, 라는 거예요. 그리고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떨어지지 않게 해줄게. 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의 십일조 율법 완성과 이스라엘의 생계문제가 결부되어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생계 문제와 율법이 이렇게 결부되어있으면 거기서 율법이 개입되지 않고 그냥 생계문제가 되어버리면 인간들은 자기의 목숨에 연연해요. 그런데 율법이 딱 끼어져버리면 이건 목숨이 아니고 생명과 관련되어있습니다.

생명이라 하는 것은 인간들이 맛도 보지 못한 나무. 에덴동산의 고이 보호받게 되고 나중에 요한계시록22장에서 진짜 온 천지에 가로수처럼 피어있는 나무, 생명나무입니다. 그 생명나무 과일, 그 과일을 따먹는다. 따먹을 수 있다. 라고 한다는 것은 우리 인간들에게 주께서 무엇을 회상시키느냐 하면, ‘내가 너희들에게 따먹지 말라는 것을 따먹었잖아.’라는 것을 자꾸 기억나게 해요.

따먹지 말라는 것을 따먹었기 때문에 정작 따먹어야 될 것을 나는 못 따먹게 막겠다. 라는 겁니다. 이게 어떤 내용이냐 하면, ‘인간 쪽에는 어떤 해답도 없다.’ 인간 쪽에서는 어떤 해답도 없어요. 왜냐하면 해답을 가질 자격이 없기 때문에. 망하면 망하는 대로 그냥 망해야 돼요. 우리는 이걸 편하게 인정합시다. 편하게. 편하게 인정 안하면 아무리 교회 다니고 말씀 들어도 소용없어요. 편하게 인정해야 돼요.

이걸 편하게 인정한다는 말은 내 운명은 주님 처분에 달렸다. 이걸 고맙게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세요. 주님의 처분에 달렸다. 이 말은 같은 말인데요. 내 운명은 내 처분에 달리지 않았다. 나의 미래, 나의 장래, 모든 내 인생 꾸려나가는 것. 내 가족 밥 먹고 사는 것 이건 내 손에 달리지 않았다는 것을 억지가 아니고, 분노하는 게 아니고, 그냥 편하게 생각을 해야 돼요. 주님의 처분에 달린 거예요.

내 운명에 대해서 내가 손을 떼고, 내 운명에 대해서 내가 아무것도 할 게 없게 만드시는 그 배후의 주의 일하심의 의미는 뭐냐, 그 취지가 뭐냐, 그거 알면 되겠지요. 이 말을 달리 하게 되면, ①번 죽어가는 자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②번 이미 죽은 자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이 차이점을 우리가, 내 운명을 주님의 처분에 맡긴 사람들은 이 차이점을 아시면 돼요. 죽어가는 나, 그런 인간 없습니다. 이미 죽은 자에요.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것은 병원에서 하는 거예요. 죽어 가는 자를 살리려 해도 간호사도 파업해버리면 그것도 지장이 있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이미 죽은 자를 살린다는 것은 죽은 자가 요구해서 된 게 아니에요. 죽은 자를 대표하는 분의 요구 때문에 되는 거예요. 죽은 자를 대표하는 것. 그러니까 뭐를 발견하느냐, 나를 발견하지 마시고 나를 대신한 분이 따로 계시다는 것을 발견해야 돼요. 그걸 에이전트라고 합니다. 에이전트. 에이전트니까 성전하면 뭐가 돼요? 메시아되지요. 나를 대체해준 사람. 그걸 요한복음14장에서는 보혜사. 우리 말로 하면 변호사. 남들이 여러분보고 뭐라고 하거든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그거 나한테 이야기하지 말고, 우리 변호사한테 이야기해.” 우리 주님한테 이야기해. 그런 뜻이에요. 내 변호사한테 이야기 해.

예수님 말고 다른 변호사는 없어요. 이제 예수님의 영으로 오는 것을 성령이지요. 그래서 성령을 가지고 보혜사라 하지 않고, 다른 보혜사. 내가 변호사인데 다른 변호사 내 이름으로 올 것이다. 내 이름으로. 성령이 이름이 아니고, 내 이름으로. 성령께서 주의 이름으로. 성령의 이름이 아니고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거예요. 그것을 발견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어떻게 되느냐 하면 내 문제, 내 운명은 어떻게 처분에 맡겼다. 내 운명은 나의 처분에 달리지 않았다. “그럼 왜 내가 나한테 굳이 할 게 없게 만듭니까?”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거든요. 내 인생인데. 내 목숨인데. 내 생계문제인데 왜 내가 손 떼라. 그럼 손 떼버리면 내가 손 떼면 나 어떡하라고? 더 근원적인 문제는 “이런 나를 왜 태어나게 했습니까?” 이런 문제 있지요. 왜 태어나게 했습니까. 라는 문제.

방금 제가 우리의 변호사가 있다고 했지요. 정답을 말씀드릴게요. 변호사를 위해서 우리가 있는 거예요. 나를 변호해 주기 위해서 변호사가 있는 게 아니고, 누군가를 변호해야 될 예수님이 변호할 자가 누군가를 위하여 예수님 자신이 누구의 변호사 되기 위해서 보혜사 되기 위해서 필요해서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겁니다.

그 말은 우리가 굳이 하나님께 떼쓰거나 이야기할 게 없다는 말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라기에서 십일조에 대해서 소홀히 할 때에 지금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너희들이 내 것을 도둑질했다고 그렇게 되어있지요. 십일조 할 때. 내 것을 도둑질했다. 이 말라기를 바로 선지자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누구나 백이면 백 그렇게 생각해요. “앞으로 십일조 꼬박 할테니까 내 거 뺏어가지 마세요.” 이리 나올 수 있다 말이죠. “내 창고에 채워주세요.” 이리 나오거든요. 그게 잘못된 거예요.

우리는 몽땅 다 빼앗겨야 돼요. 그래야 예수님이 변호사다운 면모가 나오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십일조하지 말아야 되고, 아이고, 갑자기 기쁜 소식이 훅 들어오네. 우리는 십일조 하지 말아야 되고, 그래가지고 온갖 저주는 저주대로 다 받아야 되고, 십일조하지 말아야 되고, 기쁜 소식이 확 들어오는데. 그래서 온갖 저주를 다 받아야 되고 그게 그만 바람이 푹 다 빠져버렸지요. “너 이제 죽었어! 이제.” “니 십일조 안해서 저주 받아야 돼!” “할게요. 할게요.” 하면 “하지 마! 하지 마! 니는 안 해야 돼!”

안해야 된다는 말은, “니는 십일조 안한 자로 되어가지고 저주 받아야 돼! 그래야 변호사 취지가 살아.” 도대체 인간에게 나올 수 있는 발상들이 아닙니다. 이게. 그러면 그동안 사람들이 이렇게 하지요. 그럼 우리 이스라엘이 십일조 안했다고 닦달내는 것은 그전에 율법에서는 이렇게 닦달안냈거든요. 십일조 안냈다고 너그들 가는 길에 저주한다. 그런 구체적인 내용이 별로 없어요. 율법만 있을 뿐이지요. 그냥 포괄적으로 되어있지요. 율법대로 안 살면 니 이 땅에서 저주받는다. 그렇게 했지, 딱 꼬집어서 십일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잖아요. 그렇지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우리는 우리 입장에서, “그러면 진작에 십일조 열심히 하라고 진작에 좀 하지. 왜 뭐하고 난 뒤에 왜 십일조 안했어? 왜 이런 이야기합니까?” 라고 이야기하면, “원래 니는 그런 코스로 가야 된다.”는 거예요. 십일조 안해서 니가 벌 받고 망하는 쪽으로 가야 된다는 거예요. 이유가 뭐냐, 이제 11절에 나옵니다. 그동안 내가 너희들 십일조 여부로 관계없이 내가 너희를 위해서 메뚜기를 금하고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고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떨어지지 않게 해왔다는 겁니다. 무엇과 상관없이? 너희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그렇게 해왔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서 너희들의 생존과 생계를 보장했다는 겁니다. 너희들의 행위를 묻지 않고 따지지 않고, 그냥 은혜로 주신 거예요. 그런데 이제 은혜가 너희들의 잘못된 행위에 불구하고 은혜라 하는 것은 값 없이 주는 거거든요. 값없이 줬는데 그 값을 슬슬 이제 따질 때가 왔다는 겁니다. 언제? 이스라엘이 망할 시점에 기해서.

여러분이 집에 있는데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매달 이백오십만원씩 꼬박 준다고 칩시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자꾸 입금이 되는 거예요.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자꾸 입금이 되는 거예요. 이름도 무기명. 또는 이름도 죄인 해가지고 익명해가지고 온다 말이지요. 한 번 오고 두 번 오고 하니까 어떻게 우리가 해석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보호하시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변호사를 보호하는데 뭐라고 오해하느냐 하면 ‘하나님은 나를 보호한다.’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다렸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이스라엘 백성을 안 버릴 거야. 십일조가지고 그렇게 뒤끝 있게 잔소리 할 분이 아니지. 왜? 십일조 안했다고 우리는 포도 안 떨어지고, 십일조 안했다고 우리는 메뚜기가 그렇게 난리 칠 때도 있지만, 늘 노상 그러지는 안았으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이라고 그냥 봐주는 모양이다.’ 이리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 본전 찾는 거예요. 너희를 봐준 게 아니고 너희들은 변호할 가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동안 너희에게 값없이 은혜를 줬다는 거예요. 변호할 가치도 없는 것. 크게 한 번 쓰겠습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음으로서 용서해요.’ 이건 또 뭘 엉뚱한 희한한 이야기냐, 인간은 하나님도 모르면서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주길 바래요. “니가 하나님을 알아?” “아이구, 모르지만 그냥 내 하는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모르면 좀 입 좀 다물고 있어.” 주기도문에 나오지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 주기도문에 나오는 이야기잖아요. 그게 예수님 이야기에요.

베드로가 뭐냐 하면, 내가 일곱 번 용서해 주면 됩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자체는 용서에 대해서 베드로를 비롯해서 어느 인간도 용서를 몰라요. 용서 받는 것만 좋아하지 용서가 왜 용서해야 되는지를 몰라요. 그걸 제가 지금 말라기가지고 설명하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살았잖아요. 살 가치도 없는데 살았잖아요. 그런데 그들이 계속 살다보니까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주께서 우리를 지켜주고 용서함으로서 우리가 살 가치가 있는 어떤 존재라고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슬슬 끝장 볼 때 됐구먼. 하고 슬슬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마지막에 십일조가지고 정수를 쳐버리는 거예요. 십일조가지고.

무슨 말이냐 하면, 십일조를 내지 않는 자는 이 약속의 땅에서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메뚜기한테 갈라먹어야 되고, 아무리 포도농사를 지어도 이건 십일조 안하는 자는 다 떨어져야 마땅하다. 이게 하나님의 율법이 작렬하는 약속의 땅의 본모습이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걸 어떻게 하느냐 하면 너희가 만약에 십일조를 한다면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못 먹게 하고,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를 떨어지지 않게 한다. 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건 뭐냐 하면, 인간 보호 아니고, 율법 보호에요. 십일조 보호에요. 어제 수요일도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남녀가 결혼한 게 아니고 율법을 보호하기 위해서 결혼했다 말이죠. 특히 로마서7장1절에 보면 너희가 율법을 알잖아.부터 시작해요. 너희가 율법을 아니까 내가 말한다. 라고 시작해요. 율법 모르는 이방인한테는 해당사항도 없지요.

용서하지 않음으로서, 용서한다 이 말은 뭐냐, 용서한다, 용서한다, 하니까 자꾸 인간들이 용서 받을래. 그 용서 저한테 주세요. 이리 나오더라 말이지요. 그러니까 인간은 용서도 모르면서 용서라는 저희들끼리 통하는 용서를 용서인줄 알고 용서를 받으려고 하는 거예요. 우리 죄인이에요. 우리 죄 많~~아요. 인간은 이리 나오지요. 죄 많은 저를 위해서 불쌍히 여겨서 용서해 달라는 거예요.

주께서 묻습니다. “니 죄가 뭔데?” “아이구, 죄도 모를까요. 주님께 소홀히 하고, 나만 사랑하고...” “니는 죄를 몰라.” 니가 죄를 모르기 때문에 뭐도 몰라요? 인간은. 죄를 모르기 때문에 용서도 몰라요. 그럼 그동안 교회는 왜 다녔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다녔지요. 그럼 나는 누굽니까? 니는 니도 몰라. 자기 모르지. 하나님 모르지. 예수님 모르지. 용서 모르지. 십자가 모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래도 내가 키운 자식은 안다고요. 자식도 니는 몰라. 자식 마음을 니가 알아? 자식은 니 마음 알아? 모르지. 갑자기 입이 또 근질근질하다. 모르리~ 모르리~ 남진이 부른 노래 있어요. 인간은 모르게 사는 것. 그게 인간이 태어난 이유입니다. 개코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기 위해서 태어나게 하시고 살게 하신 거예요. 결국 우리가 이만큼 산 것은 모르고 산 거예요. 모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요. 나도 모르고 천국도 모르고 지옥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요.

주의 뜻은 뭐냐, 몰라도 된다는 겁니다. 개코도 모르는 니가 알아서 그거 어디에 써먹으려고? 아는 거 어디에 써먹으려고? 니 자랑하려고? 안되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못 지키고 십일조를 안한 것은 모르기 때문에. 율법을 모르기 때문에 십일조가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본인이 누군지를 모르고, 하나님이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안 한 거예요.

그러니까 십일조를 안한 것은 인간이 십일조를 할 줄 아는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당연한 처사에요. 그럼 십일조 안하면 망하잖아요. 망하도록 되어있다니까요. 인간은. 인간은 망하고 그 망한 이유가 모르니까. 당연히 망해야지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이득은 뭐냐, 메시아고, 변호사지요. 아시는 분은 우리 주님밖에 없다는 것을 돋보이게 하는 거죠. 딴 거 뭐 있어요?

죽어가는 것을 어떻게 살릴 거냐, 가 아니고 이미 죽은 자를 어떻게 살릴 거냐, 하는 것은 이미 죽은 자의 몫에서 떠났습니다. 손에서 떠났어요. 요걸 그대로 적용시켜 봅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를 사하여 주시는 분이시다. 용서하시는 분이에요. 그런데 인간이 용서를 구하기 때문에 용서가 막혀버린 거예요. 방해받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원하는 용서를 안 해줌으로서 제대로 막히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로 된 용서가 주어지도록 주께서 조치하셨습니다.

그럼 용서가 주어지게 되면 용서는 무엇과 만날 때 개념이 사느냐 하면, 용서는 무엇과 만나느냐, 죄와 만나야겠지요. 용서가 주어졌으니까 그 때부터 비로소 아는 게 뭐냐 하면 죄라는 것을 성도는 알게 되는 겁니다. 용서의 바탕, 용서의 근거, 그 취지를 모독하는 것이 바로 뭐였다? 죄였다.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모독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했느냐 하면, 인간이 생명나무를 안 따먹었잖아요. 그럼 생명나무를 안 따먹으면요, 생명나무와 모르는 관계에요. 모르게 되면 선악과만 따먹어서는 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은. 반도 모르는 거예요. 선악과는 알고, 생명나무는 모르고. 선악과는 아니까 반은 알고. 반 아닙니다. 전혀 몰라요. 그 연계성을 모르면 전혀 모르는 게 돼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으로서는 남는 장사지요. 왜? 아무것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사람도 모르고, 모르는데 숨쉬고 지금 살고 있잖아요. 이거 뭐 횡재지요. 그래서 고린도전서15장에 10절에 보면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용서를 해도 주님이 주신 용서고, 죄를 알게 한 것도 주께서 하게 하신 거고, 회개하는 것도 주께서 하게 했어요.

주를 기뻐하는 자에게 찾아오신 것도 주님의 뜻이었고, 그런 주의 뜻을 맞닥뜨릴 때마다 내가 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해서 늘 감사와 고마움으로 반응을 드러냅니다. 성령이라는 변호사가 하는 일이 바로 그거에요. 우리를 건드려서 주님께 공로인 것을 날마다 눈떠서 확인하게 만드는 일. 그것을 성령께서 그렇게 하시는 겁니다.

성령께서 오시게 되면 특징이 뭐냐 하면,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내 인생과 내 운명을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참, 미치도록 노력하고 있구나. 이게 바로 죄였구나. 라는 사실이에요. 알게 해줘요. 우리가 백살산다고 하늘의 별 따는 거 아닙니다. 우리 인생 사는 거 자체가 아무 의미 없어요. 주님과 주님이 우리의 변호사 되신다는 의미와 연계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습니다.

어떤 항공의 노동자가 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노동자가 얼마전에 일하다가 죽었어요. 어떻게 죽었느냐 하면 비행기 엔진에 빨려들어가서 죽었어요. 비행기 엔진에. 그리고 그 노동자가 있던 자리에는 노동자가 없지요. 쑥 빨려 사라졌으니까. 엔진 속에 가루가 됐으니까. 노동자가 지가 알아서 지가 걸어서 비행기 엔진 속에 들어갔어요? 십자가에 들어가라 하니까 우리가 알아서 십자가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못 들어갑니다. 십자가는 가만히 서있는 게 아니에요. 보잉747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어요. 그 힘이 얼마나 세냐 하면 악마의 힘보다 더 셉니다. 우리의 선과 악을 아는 우리의 양심의 힘보다 더 센 힘으로 빨아 당겨버립니다. 쭉 빨아당기지요.

그래서 그 노동자가 죽고 난 뒤에 그 다음날 그 노동자 숙소에, 그 다음부터는 신문에 난 게 아니고 제가 상상한 거예요. 그 숙소에 개인 사물함이 있겠지요. 옷 갈아입고 하는 거 있잖아요. 사람은 없는데 사물함은 그대로 있지요. 그게 흔적이에요. 흔적. 그 사람이 어제까지 근무했던 흔적. 그 사람의 옷가지. 그 사람의 휴대폰이라든지 개인용품. 그 하나 하나 흔적. 그게 뭐냐 하면 그 사람의 역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노동자의 엄마가 와가지고 벗어놓은 옷보고 얼마나 통곡하겠습니까. 사람 없는데 옷만 붙들고 어이구, 야, 야, 빨리 돈 벌어가지고 내일 모레 결혼한다 해놓고 이게 왠 벼락이냐. 하고 붙들고 있겠지요. 이게 흔적입니다.

지금 우리 자신이 예수님께서 내 모든 것을 뺏어간 흔적으로서 우리의 육신이 있어요. 우리의 육신이. 이 육신가지고 하나의 남은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알맹이는 쏙 다 가져간 거예요. 흔적이라 했는데 흔적이라는 말이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힘드십니까? 까?하고 물은 거예요. 그럼 이걸 바꿀께요. 구멍으로.

어떤 식으로 예를 들 수 있느냐 하면, 발에 티눈있지요. 발에 티눈이 있는데 큰 티눈이 약국에 가서 바르면 툭 빠져요. 티눈 빠지고 그 빠진 분화구같은. 티눈이 쏙 빠져버려요. 그러면 그 남아있잖아요. 도토리 알맹이 빠지고 도토리 알맹이를 바치고 있는 그 받침대. 그게 눈에 보이는 육신이에요. 우리의 육신. 소위 사람들 보기에 동창생만나고 친국 만나고 하는 그거. 그게 구멍과 구멍의 만남이에요. 사라짐.

그런데 이 도토리를 봅시다. 티눈 빠지고, 도토리 알맹이 빠지고 도토리가 이렇게 점선으로 있는데, 이 자아가요, 세월이 가면 시간이 좀 지나면 이 점선이 뭐로 바뀌느냐 하면, 이게 실선으로 바뀌어요. 내가 역사가 얼마인데. 바꿔요. 실선이 바뀌면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에요. 실선이 두께가 더 단단한 두께로 두께를 점령시켜요. 더 딱딱하게. 완전하게. 이걸 이렇게 표현하면 됩니다.

에세에 에스라는 그 화가가 그린 바벨탑이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바벨탑의 내용이 뭐냐 하면, 위에 바벨탑은 공사중에 있어요. 그런데 그 밑둥치는 붕괴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아는, 하나님의 말씀 또는 율법, 하나님의 법이라 해요. 법을 지키려고 강화해요. 더욱 완벽하게 완전하게 지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율법이 뭐하느냐 하면, 자아의 밑둥치를 파먹고 있어요. 갉아먹고 있다고요. 갉아먹는다고요.

여러분, 헷대 압니까. 헷대. 한 단성으로 되어있는 나무막대기 같은데. 헷대. 닭이 헷대에 앉아서 울기도 하는데 그 때 쥐들이 닭을 잡아먹을 때 촌에 닭을 키우는데 쥐들이 와서 닭을 어떻게 죽이느냐 하면, 닭에 발이 몇 개입니까? 두 개지요. 한 발을 간질러요. 쥐가 와서. 막 간질이면 닭이 기분이 굉장히 좋아요. 기분이 좋아가지고 아휴, 너무 기분 좋아, 할 때 한 쪽 발을 갉아먹고 죽여버립니다.

한쪽의 쾌락이 증강하게 되면 자기 죽는 것도 몰라요. 마약 같아. 인간은 마약을 먹어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은 마약을 찾고 있어요. 애 성적 오르는 것도 마약이고, 지 부자되는 것도 마약이고, 주식 값 오르는 것도 마약이고, 출세하는 것도 마약이고, 내가 급감에 내 미흡함에 나의 허전함을 메꿀 수 있는 그것을 쉬지 않고 계속 찾아나서요. 인간은. 끊임없이 찾아나서요.

누가 그렇게 하는가, 마귀가 그렇게 해요. 해놓고 그 할 때 동원되는게 뭐냐 하면 선악체계입니다. 선악체계. 하나님께서는 선악체계를 포기한 적이 없어요. 끝까지 물고 늘어집니다. 선악체계, 악을 멀리하고 선을 찾게 되면 이 자아의 실선이 더 뚜렷하게 안전빵있는 정말 단단한 인생, 인생 성공에 대해서 흔들림이 없는 진동하지 않는 그러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인생으로 출세할 것을 성공할 것을 계속 선악체계를 가지고 가동시켜요.

악을 줄이고 선을 향하면 복 받아가지고 잘될 것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한 번 글을 한 번 써볼게요. 이것도 중요한 건데. 여러분들이 이 그림을 생각하시고요. 교인들이 예수님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지옥가는 이유는 예수님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바리새인을 무시한 거예요. 바리새인을.

바리새인은 어떤 해답을 제시해서 종교지도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에요. 그 당시에. 그리고 그 해답이 뭐냐 하면 인간이 갖고 있는 인간에게 친화적인 것. 누구도 부정 못하는 것. 악을 나쁜 짓을 하면 하늘이 노해서 벌받아서 불행해지고 착한 일을 하게 되면 하늘의 행운이 추가되어서 니가 원하는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이건 어린애들부터해서 어른들까지 여기에 대해서 아니요, 라고 할 사람이 없어요. 이게 선악체계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시하지 않아요. 어디 감히 하나님을 무시하겠습니까. 그런데 교인들이 뭘 무시하느냐 하면, 바리새인들 무시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적이 그 당시에 누구였습니까? 바리새인을 누가 죽였습니까? 바리새인이 죽였잖아요. 그 바리새인을 빼버리니까 남는 건 뭡니까? 예수님 좀 좋아하고, 존경하지. 아이고, 뭐, 그렇게 별나게 했냐.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되지 말고 예수님을 사랑하자. 그렇게 하자. 예. 이리 나온 거예요.

바리새인이 어떤 생각을 했는가를 바리새인은 딴 사람인줄 알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거예요. 바리새인은 모든 인간들의 모든 체계의 꽃봉우리에요. 활짝 핀 꽃이에요. 인간의 모든 지혜와 윤리와 도덕과 예술이 만개한 것이 바리새인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걸 알았으니까 이제 반대로 나갑시다. 바리새인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바리새인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바리새인에서 발 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예수님을 안 죽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바리새인은 자기를 점선으로 봅니까? 실선으로 봅니까? 실선이지요. 실선. 장마가 돼서 잠이 막 오고. 그래서 내가 여기서 또 예를 드리겠습니다. 잠깨는 데는 어려운 이야기 안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침에 운동을 합니다. 비가 안 왔어요. 날씨가 좋은데 비가 안 옵니다. 비가 안 오는데 운동을 하다가 집이 요리 있는데, 집이 500m두고 길을 걷는데 여기 아스팔트에요. 빗방울의 흔적이 보입니다. 빗방울의 흔적이.

자, 그러면 이게 뭐냐 하면, 이 말은 뭐냐, 내가 오기 전에 여기 뭐가 내렸다? 내가 오기 전에 비가 내린 거예요. 내가 오기 전에. 뭘 보고 압니까? 흔적 보고 알지요. 흔적 보고 아는 거예요. 이 말은 비올 때 이 운동하는 사람한테 물어봤습니까? 안 물어봤습니까? “야, 야, 니 앞에 일주일 앞에 내가 비 내릴 테니까 니가 허락하나?” 물어봤어요? 안 물어봤어요? 전혀 안 물어봤지요.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비가 내린 거예요. 운동하는 사람 나 같다만. 비가 내린 거예요. 이게 뭐냐 십자가 사건이에요. 십자가 사건을 우리한테 물어봤어요? 안 물어봤어요? 안 물어봤지요. 그러나 십자가 사건의 흔적은 있지요.

뭐냐하면 돌아가신 예수님은 눈에 안 보이셔서 부활했지만, 남아있는 것은 뭐냐 하면 이들이 누구냐, 바리새인의 후예들이 남아있다. 바리새인의 후예들이. 주님께서 우리하고 만나기 전에 이 지점에 오기 전에 이미 인류를 대표하는 유대민족 그들의 지도자들 이미 만났어요. 왜냐하면 그들에게 율법 있고, 그들에게 언약이 있었기 때문에 먼저 만났다 말이지요.

만나서 언약의 내용을 인간들 대표자를 만나가지고 확실하게 분명히 했습니다. 나는 바리새인적인 사고방식과 동일한 사고방식을 하고 있는 너희 인간들에게 나는 맞아죽는 하나님으로 나는 이 땅에 왔다. 바리새인과 동일한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그러니 교인들의 문제가 예수님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뭐라고 했습니까? 바리새인들을 무시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오늘날 성도는 우리는? 바리새인하고 한패잖아요. 한패지내요. 그럼 바리새인하고 차이점이 뭐냐, 여기 오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어? 비가 왔네.” 내가 오기 전에 여기 비가 왔네. 이리 되지요. 아, 정말 중요한 겁니다. “여기 비 왔네.”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 사건이 이미 터져버렸네.” 이리 되지요. 내가 오기 전에. 그럼 나랑 상관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나는 상관없지요. 나는 그 시대에 안 태어났으니까. 더 응용할까요. “어? 선악과는 내가 오기 전에 이미 누가 따먹었네.” 누가 이런 고백한다고요? 성도가 이런 고백을 하는 거예요. 성도가. 성도이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갈라디아서6장에 나오는 나는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 이 말이에요.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부활한 예수님을 만났지 십자가 진 예수님 안 만났어요. 십자가 질 때는 강도 두 사람하고 다른 사람은 도망가 버리고 현장에 군인들하고 몇 명 없었어요. 그 현장에 가 본적 없어요. 사도바울이.

그러나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자기는 예수님의 흔적이 있다고 했지요. 사건은 흔적을 남기는 거예요. 내게 속한 소자, 그게 마태복음18장 그런 취지가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 거 정리하고 진도 나가봅시다. 제가 무슨 이야기했느냐 하면 말라기에서 십일조 안했다고 닦달낼 때에 하게 하면, 사람들은 앞으로 잘할게요. 앞으로 십일조 꼭 낼게요. 그런 취지가 아니다 말이죠.

십일조가지고 닦달내겠다는 말은 너희 역사는 끝났어! 라는 뜻이에요. 너희들이 실선의 역사가 뭐로 된다? 점선의 역사가 되는 거예요. 나 너희들 침으로 뽑아낼거야. 아예 뽑아낼거라는 뜻이에요. 아예. 이게 말라기 끝부분에 나와요. 아예 뽑아낸다.

그러면 우리는 왜 만들어놨느냐, 우리 인생을 왜 살게 하느냐, 장차 오실 분이 행한 일을 이제 앞당기는 일이 미리 흔적이 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겁니다. 율법에 의해서 어떤 인간도 율법으로 합당하게 율법을 성취할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모범이 아니지만, 사례로 이스라엘을 뽑아서 그들을 기어이 망하게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여기 운동하기 이 지점까지 오기까지 일어났었어요. 벌써. 이게 성경이잖아요. 이스라엘 역사 망했고, 바리새인 찔렀고, 주님은 창에 찔려 받았고, 난리가 아니었어요. 와서 “여기 십자가 사건 터졌네.” 라고 그걸 알아보게 한다는 것. 그게 바로 우리 구원하려 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을 주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성령께서 그렇게 예수님을 변호하기 위해서 우리를 이렇게 그 자리 그 현장에다가 채택한 거예요. “니가 니한테만 알려줄게.” 이런 식으로.

뽑아세운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가 결국 어디로 가느냐 하면 결국 우리로 하여금 예수의 증인 되는 거예요. 어제 수요일도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그 로마서7장4절에서 남편이 죽으면 나는 다른 남자하고 사귈 수 있고 만날 수 있다. 라는 것이 율법의 뜻이 아니고 율법의 뜻은 뭐냐 하면 남편 죽을 때 단독으로 있는 너도 같이 죽은 거예요. 남편이 죽었다. 이 말은 남편이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은 사람 편이 아니고, 율법 편인 거예요.

그 율법 편에 서 있는 그 율법에 있다는 그 취지를 인간이 계속해서 부흥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단독에 있을 때는. 그럼 어떻게 하느냐,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가 돼요. 그리스도의 몸이 되면 율법을 이룰 수 있는 거예요. 그리스도의 몸. 내 몸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몸. 그러면 내 몸에서 어디로 건너가야 돼요? 그리스도의 몸으로 건너가야 되는데 이건 우리가 할 수 없고 주께서 이걸 할 수 있도록 우리의 몸을 죽이신 거예요. 왜? 우리를 구원하려고? 아니. 예수님의 자신의 행한 것을 스스로 변호하기 위해서.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것이 율법을 이루기 위한 주가 된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를 다른 변호사 성령을 보내서 알게 하신 거예요. 이 비오는 지점에. 오늘 아침에 일어난 사건이었어요. 비오는 지점에 여러 사람들이 갔을 거잖아요. 하지만, 비가 안 왔어요. 안 왔는데 요 지점에는 비가 왔다 말이죠. 그럼 내가 여기 오기 전에 벌써 일은 마무리 된 거예요. 일은. 다 이루어진 거예요. 우리는 그 결과만 확인할 뿐입니다. 동시에 내가 그 결과물이기도 하고. 결과를 확인한다는 조건하에 내가 주님의 십자가에 결과물이 되는 거예요.

13절 봅시다.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제 여러분 강의 이해하십니까. 자기에 대해서 알아요? 몰라요? 몰라요. 앞으로 십일조 잘하겠습니다. 말도 안한다니까요. 인간들이 뭘 잘못을 알아야 고치지 않습니까? 이리 나오는 거예요. 이게 뭡니까? 이게 선악체계에요. 생명나무, 선악체계 둘 다 알아야 둘 다 아는게 되지, 생명나무 모르는데 선악만 안다고 선악을 안다고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 질문이 나오도록 유도한 거죠. 제가 뭐가 잘못 됐습니까? 14절,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서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라는 말을 그들이 했다는 거예요. “우리가 뭐가 잘못됐습니까?” 할 때 하나님께서 “니가 이런 소리 했잖아.” 라고 그들이 하는 소리를 주께서 14절, 15절 해놓은 겁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을 믿은 거예요? 아니면 하나님을 이용한 겁니까? 평소에.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잘 사귀어서 어떻게 해보겠다고 애쓴거죠. 하나님께 애를 쓴 거죠.

그럼 오늘 강의에 의하면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모르고 있는 게 뭐가 모르고 있는 겁니까? 자기보다 앞서 있었던, 자기가 몰랐던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그들은 지금 모르고 있는 거예요. 하나의 사건. 그 사건이 나중에 어디에 나오느냐 하면 드디어 4장에 보면 나옵니다. 4장1절에 모든 것을 멸망시키는 사건이 나와요.

그래서 이 말라기의 전체 내용은 전체 내용을 볼 때에 이스라엘이 이미 그 당시에 이스라엘 나라 없습니다. 없고 하나의 말씀공동체라고 그게 남아있었어요. 이 말은 나라는 없는데 끝까지 그들은 율법이 있으니까 이 율법에 기대를 걸어보자 하는 집단이 있었던 거예요. 나라는 이미 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이 그들의 소원대로 그들의 소망대로 율법이 그들의 소원대로 이루어집니까? 아니지요. 깔끔하게 그 어떤 경우라도 율법가지고 어떻게 해보겠다. 또는 율법에서 우리가 잘해보겠다는 모든 시도를 깔끔하게 전부 다 끝내 주십니다.

끝내주신다면 그러면 이 구약성경은 모든 게 파탄나지 않았느냐, 그렇게 생각하실텐데 여기4장 미리 한 번 보겠습니다. 4장5절 미리 한 번 봅시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그 다음에 무슨 날입니까? 크고 두려운 날.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누굴 보낸다? 선지자.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니까 한 번 보세요. 말라기하면서 십일조 하라는 말이야. 나를 시험해봐라. 십일조하면 창고에 넉넉하게 해줄것이라고 이렇게 이야기할 때 하나님께서 십일조하는 백성을 약속했습니까? 엘리야가 온다는 것을 약속했어요? 엘리야가 온다는 것을 약속한 거예요.

십일조에 대해서는 지난번 할 때 멜기세덱과 관련시켜서 제가 설명했지요. 십일조는 맏물과 관련되어있다고 제가 언급했었습니다. 맏물. 어느 설교인가 맏물은 희생, 목부분이 희생이 날아가는 거예요. 어린양과 목숨이 교체되는 자만이 맏물이 되지. 유월절에 맏이만 다루기 때문에.

그래서 이 말라기 율법의 특징은 하나님의 예언가지고 율법이 인간을 끝까지 인간의 마지막 남아있는 남은자마저도 깨끗하게 소제해가지고 없애버리는 그 정당성을 율법안에 들어있다. 그 언급을 하면서 거기에서 그들이 멸망했을 때 하늘의 준비된 엘리야를 보낸다.

그러면 지난 수요일날 했던 스룹바벨과 똑같은 취지지요. 멸망하고 난 뒤에 그 다음 멸망의 정당성, 멸망이 확실히 했을 때 누구의 가치 영광이 두드러집니까? 엘리야. 엘리야를 기다리는 심정이 어떤 심정이냐, 우리는 망했어! 라는 마음을 가지고 엘리야를 기다려야 하는 겁니다. 그런 것입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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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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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