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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230707b 울산강의-역대기상(22강) 21장 26절 : 전체의 전체자유게시판-

20230707b 울산강의-역대기상(22강) 21장 26절 : 전체의 전체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숫자를 헤아린다는 이 말은 여기에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사탄의 입장에서 대적할 상대가 누구냐? 이스라엘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다윗이고 요압이고 사탄이 하는 일을 이스라엘 어느 누구도 다윗도 말릴 수 없고 이스라엘도 말릴 수 없어요. 요압이 이렇게 다윗을 말렸지만 여기 4절에 보면,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요압이 따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다윗이 뭐가 잘못됐다, 다윗은 이것이 잘못됐다, 저것이 잘못됐다. 다윗을 그렇게 지적하면 안 돼요. 왜 그러냐 하면 인간에게 인간의 타인은 죽음이기 때문에. 나는 나를 내가 여기 있기 위해서 먼저 있는 게 있는데 그게 타인이에요. 먼저 있고 그 뒤에 내가 생겼는데 그 먼저 있는 타인이 뭐냐 하면 인간의 죽음입니다. 인간은 살아봤자 죽어요. 그러면서도 인간은 내가 왜 죽는지를 몰라요.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다윗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겁니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망해요. 어차피 죽으니까 죽음이 망하지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걸 알아야 돼요. 죽음은 우리의 일상이다. 우리의 일상이 죽음에서 나와요. 우리는 죽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죽음과 무엇과 관련돼 있느냐 하면 사탄과 관련돼 있어요. 여러분 잘 아는 창세기 3장에 인간에게 아담에게 죽으리라고 분명히 언급을 했는데 그게 실제로 아담이 죽게 되었거든요. 창세기 3장에 가면 아담이 뭐로 변합니까? 흙이 되지요. 이게 죽음이에요. 아담이 흙이 된다는 말은 살아 있는 아담이 뭐로 변해간다? 흙으로 변해간다는 말이 되고 같은 뜻으로 아담의 본질이 흙으로 전환되었다는 겁니다.

같은 말로 아담의 자아가 우세한 게 아니고 아담 속에 있는 흙이 아담을 지배하고 있는 거예요, 흙이.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네가 흙으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가라.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 본다 이 말이에요. 하나님의 안목은 그래요. “너, 흙이야.” 인간은 흙 안 되려고 어지간히 이마에 땀 흘리고 애를 씁니다. 소용없어. 왜? 일상이 죽어가는 일상인데 죽음 자체가 일상인데 그 노력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그래서 창세기 3장 15절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빼버려요. 빼버리고 여자의 후손과 그다음에 뱀의 후손의 구조로 만들어버려요. 인간사를. 인간 빼고 뱀과 여자의 후손 예수님하고. 장차 메시아와 뱀하고 달랑 대표자 두 사람이 엮이고 그게 실체화되기 위해서 흘러가는 것이 인간역사, 인간세상이에요.

이런 이야기에 허무하다, 허탈하다 그렇게 느끼시면 안 돼요. 속이 시원하다. 괜히 고민했어, 괜히 고민했어, 내가. 괜히 걱정했어. 모든 걸 다 묵살해주시는데 그것도 모르고 내 행동 하나에 발발 떨고 있었던 거예요. 행여나 죽을까 싶어서. 이미 죽었는데 뭘 새삼스럽게 살 궁리를 합니까? 있을 수 없어요.

이제 오늘 역대상 21장에서 언급해야 될 것은 죽기는 죽었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혜가 주어집니다. 어떤 특혜? 죽는 이유가 사는 방식으로 그들이 죽는 이유 곧 하나하나가 너희들을 내가 이스라엘을 건지시는 방식을 집어넣어서 주께서 일하시는 그러한 흔적으로서 이스라엘을 다루신다는 점이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는 이유도 모르지 내가 너희에게는 제대로 죽는 이유를 알려줌으로서 그 죽는 이유가 너희를 사는 이유로 내가 전화시켜주겠다는 겁니다. 우리를 죽이시는 방식이 우리를 살리시는 일의 곧 그 일이 돼요. 우리를 죽이는 것이 우리를 살리는 일이 돼요. 그러니까 우리가 죽어간다는 것은 이거는 즐거운 일이고 반가운 일이고 행운입니다.

여러분 일상이 보통 일상이 아니에요. 죽어가는 일상이 사는 일상이 되는 거예요. 그것을 이미 다윗을 통해서 다윗언약적으로 이미 구축했고 그 방식 그대로 오늘날 우리에게 십자가를 통해서 적용시키는 겁니다. 자, 그럼 여기서 죽이는 방식, 사는 방식이 동일하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죽이시는가, 같은 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살리시는가 보면 되지요.

아까 첫째 시간에 했던 내용을 문장을 다시 적어서 다짐해봅시다. 인간의 의미는 어디서 나온다? 죽음에서 나온다. 그러면 새로운 인간의 의미는 새로운 죽음에서 인간의 의미가 나오는 거예요. 어떤 분이 죽은 그것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능력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이 우리가 사는 능력이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 일상 속에 잘 죽으세요. 그냥 죽으시면 되는 겁니다. 왜? 성도한테는 그게 사는 길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소원이 그거였잖아요. 빨리 죽어서 빨리 살고 싶은 거예요. 내가 빨리 죽으면 내가 이 몸이 떠나면 그때는 내가 하나님과 예수님과 만나기 때문에 그게 내가 사는 길이라고 본 겁니다. 죽이는 방식을 아시면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이신다 이 말이에요. 죽이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가 있는데 그 방식이 첫 번째가 뭐냐 하면 전선의 공포, 두 번째가 광장의 공포, 세 번째가 소멸의 공포, 두려움이라 하는데.

첫 번째 전선의 공포는 뭐냐? 줄 세우기. 한 가닥의 전선이 있잖아요. 전선에 새들이 보입니까? 새들이 보이지요. 이 전선 없으면 새는 떨어집니다. 이게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에요. 세상이 줄을 세우면 그 줄 앞에 전부 다 합니다. 서서 그 줄을 붙들고 살려고 애를 쓰는 거예요. 그 줄이 나의 생명 줄이라 여기면서.

수능도 마찬가지고 모든 게 이 세상은 모든 게 뭐냐? 줄 세우기에요. 헤쳐모여 줄 세우기입니다. 이 줄에 들어가면 살고, 줄에서 낙오되면 나는 죽는다. 그런 의식으로 가득 차있어요. 이 줄 세우기가 되니까 이게 바로 숫자 셈하기가 성립돼요. 흔히 말하기를 석차 매기기, 서열 매기기, 순서 매기기, 등차 매기기, 계급으로 정리정돈하기.

여러분들이 이 세상 둘러보세요. 줄 세우기 아닌 게 어디 있는지. 전부 다 줄 세우기입니다. 너거 아버지 뭐하시노부터 시작해서 너 지금 직장 어디 근무하느냐? 여자들은 인물로 쫙 줄 세우죠. 저 못 생긴 것도 시집갔나, 놀리고. 이쁜 것 순위로 하지요. 우리나라에서 인간을 제일 정확하게 평가하는 데가 결혼정보회사에요.

결혼정보회사의 특징은 등록할 때는 배제대상들이 있어요. 남자 중에서 배제대상 첫 순위가 뭐냐? 탈모한 남자, 일체 등록 안 받아줍니다. 그건 여자 쪽에서 머리 빠진 남자 안 좋아하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도 전부 다 줄 세우기고, 어떤 결혼정보회사 같은 경우는 연봉 오천 밑으론 돈 줘도 아예 등록도 안 받아줍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센 게 돈 아무리 많고 아무리 집안 좋아도 탈모한 남자, 대머리 이거는 여자한테는 용서가 없습니다. 그게 그 시대가 줄을 세운 거예요.

그래서 그 줄에서 삐끗 미끄러지면 인생 끝나는 거예요. 다시 허겁지겁해서 어떻게 거기에 그 줄을 붙들어야 되는 거예요. 줄을 붙드는 데 또 얼마나 줄을 붙들 때 내가 먼저 저 사람보다 붙들고 발로 차기 위해서 등장하는 사람, 그걸 세 자로 사기꾼이라 하는 거예요. 좋은 자리 있잖아요. 줄 서는 데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 자기 뒤에 다른 사람들을 발로 차서 자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전선의 공포에서 문제점은 뭐냐? 나의 타인은 나, 세 가지 공포가 다 똑같은 원리에 적용돼요.

나의 타인은 나, 다시 말해서 나의 타인은 나란 뭐냐 하면 나의 이상형이 나의 타인입니다. 아버지 앞에 , 엄마 앞에 내가 자랑스러운 우리 집안의 남자고 여자인 것을 과시하는 것, 부모란 타인으로부터 그동안 양육 받고 교육받은 것의 그 구성물이 뭐냐? 아버지, 어머니가 원하는 그러한 아들 상 되는 것, 그게 자기의 이상형이에요. 그러니까 여기는 그걸 하는 데 있어서 모든 인간은 줄 세워야 돼요. 줄 서기가 되어야 그다음에 뭐가 가능하냐? 숫자가 헤아리는 게 계산이 돼요. 하나, 둘, 셋, 넷…… 숫자가.

첫 번째는 여러분들이 평소에 이렇게 돼 있어 어렵지 않아요. 두 번째가 어려워요. 광장의 공포라 하는 것은 광장 있잖아요. 전선은 선이잖아요. 광장이란 것은 선이 아니고 평면이에요. 평면에 김정은 앞에 군사퍼레이드 하는 것처럼 숫자로 채워지는 거예요. 많은 숫자로 채워지겠지요, 광장에. 김정은이 제단에서 보고 있잖아요. 숫자 계산해서 보고 있잖아요.

이게 뭐냐 하면 다윗은 생각하기를 이 많은 숫자의 광장, 나만의 내 소유의 광장을 가짐으로서 자기는 더 이상 헤아림의 대상에서 탈피할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거예요. 어떤 선에 매달려서 죽기 살기로 내 생계가 마련됐다는 거기서부터 인간은 공포로부터 벗어나려고 그렇게 애를 쓴다면 광장은 뭐냐 하면 내 소유의 면적을 가져서 거기서 내가 그 숫자에 포함되지 않고 나는 따로 나와서 그것을 통일성 있게 바라보는 그런 내 소유의 면적을 갖는 거예요. 면적 알지요, 면적. 가느다란 줄 말고 좁디좁은 줄 말고 면적을 갖는 거예요. 그러니까 재벌 사람들 집의 특징이 뭐냐? 저택이죠. 마당 넓은 집. 영화에도 부잣집 마당 넓지요.

제가 약간은 충격적인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남아연방 아프리카 제일 남쪽에 있는 남아연방의 15%의 백인이 나라의 80%를 다 차지하고 있는 나라에요. 그 도시의 사진 나오는데 고속도로가 있고요 여기는 널찍이 면적을 갖고 있어요. 정원에다 수영장에다 백인들의 저택이 있어요. 반면에 이쪽에는 전부 다 점이에요. 좁디좁은 주택을 갖고 있는 흑인들의 집단촌이 쫙 나와 있습니다. 고속도로를 가운데 두고 극단적인 대조를 보이는 사진을 제가 본 적이 있습니다. 이거는 다닥다닥 붙어있어요. 여기는 널찍널찍해요. 여기서 자기 소유의 면적을 보는데 이거는 뭘 하느냐 하면 바로 이걸 일자, 일자라 하면 너무 어렵다. 어려운 건 내가 싫어. 단일자.

단일자라는 것은 내려다보고 있는 최고의 자리에 자기 자리가 위치하고 있는 거예요. 그럼 다윗이 숫자를 셌다는 말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국가의 면적에 대해서 내가 헤아릴 수 있는 따로 떨어져있는 자리에 내가 놓였다는 것, 이것조차도 어디서 나왔다? 공포심에서 나왔어요. 자, 이 공포심은 어디서 나온다 했습니까? 자신의 죽음이 타인이 안 되고 내가 버젓하게 대단한 존재가 되었다는 그것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타인, 남이 된다 이 말이죠.

이 타인이란 말이 여러분들이 타인과 나를 연결시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워요. 그런데 생각보다 어려운데 따지고 보면 쉬운 거예요. 왜냐하면 오늘날 내가 있기 전에 많은 타인들에 둘러싸여서 우리는 교육받았고 양육 받았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는 내 생각이 들어있는 게 아니고 나한테 기대를 갖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둘러싸여있어요.

제가 몇 년 전에 서울의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간 적이 있어요. 조문객이 몇 명이냐? 나까지 합쳐서 세 명이었습니다. 누가 돌아가셨는데 제 아내까지 합해서 네 명이었어요. 한 분은 돌아가신 분의 아들이 오셨고 그다음에 거기에 문상 간 사람은 우리 둘에다 한 명 딱, 하루 종일 있어도 그 네 명이 전부였습니다. 그만큼 뭐가 없다는 거예요? 그 사람을 알아주는 타인이 없지요.

여러분들이 만약에 자녀들 결혼식 하는데 하객이 두 명 왔다. 어떻습니까? 갑자기 뭐가 깨져요? 광장의 공포가 확 밀려오지요. 나 인생 이래 살았냐? 평생 살아서 나한테 관심 있는 사람이 이토록 적었단 말인가, 이렇게 되지요. 그런데 요새는 환갑잔치 안 하지만 옛날에 환갑잔치할 때는 온 동네사람 다 와서 애들 여섯 명 낳아서 전부 다 넙죽 절하고 해보세요. 마을사람들이 뭐라 합니까? 칠복이 놈이 복 받았다고 이야기하지요.

장례식장에 복도에 화환이 꽉 차있는 그런 집안도 있고, 화환은 하나도 없고 2박3일 동안 세 사람, 네 사람 있어보세요. 그 주변에 있는 사람이 구경하러 옵니다. 도대체 저 집안 우에서 사람이 이래 적나. 걱정 막 해줘요. 인간은 나라는 것은 남이 만들어요. 내가 만드는 게 아니고. 다윗이 나 되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를 왕 되게 했다는 거예요.

자, 다시 첫 번째 강의로 돌아가 봅시다. 사탄이 악마가 가장 악마다운 방식이 뭐냐? 다윗으로 하여금 자기 백성 몇 명인지 숫자를 헤아리게 했다는 거예요. 다윗이 숫자 헤아리고 싶네, 우리 인구 얼마인지 알고 싶네, 했다면 이것은 사탄으로 하여금 자기의 의를 완전히 드러낸 거예요.

결국은 사탄은 뭐냐 하면 마귀가 시키는 대로 숫자를 헤아리고 임금이 되어서 자기 이스라엘 나라 이만큼 많다고 숫자에 흐뭇해하는 이 일을 했다면 다윗이 노리고 있는 바는 달성이 된 거예요. 사탄이 노리는 것은, 네가 당당하고 엄연히 살아 있다 이것이 네가 존재하는 의미라는 거예요.

뭐 마귀가 찾아온다 해서 시커멓고 뿔 달린 게 아니고 우리의 일상 곳곳에 악마가 격동해서 우리에게 늘 각인시키고 설득하고 독려하는 것은 뭐냐 하면 네가 지금 살아 있는 것 너무나 잘된 일이고 네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아, 라고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면 사탄은 자기 업무가 달성된 거예요, 그게.

요압이 누굴 지금 비난했습니까? 다윗을 비난했지요. 요압이 다윗을 비난할 때 어떤 심보가 작용하느냐 하면 임금인 주제에 너무 잘난 체하지 마소, 그게 들어있어요. 임금이면 임금다워야지. 자기가 아는 성경지식, 신앙지식에 의하면 하나님 건데 네가 뭔데 왕질 한다고 저 많은 숫자의 많은 백성을 봐. 다 나를 왕으로 섬기잖아. 나 이 정도야. 그것은 임금님 잘못입니다, 라고 한 거죠.

요압은 뭐가 빠져있습니까? 요압은 뭘 생각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요압의 잘못은 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을 믿으니 임금은 이런 짓을 하면 안 되다는 거죠. 그런데 요압이 하나님을 압니까, 모릅니까? 요압의 타인은 뭐예요? 요압을 자기 되게 했다는 타인을 요압은 누구라고 지금 주장하고 있는 거예요? 방금 나왔잖아요. 요압이 뭘 믿는다? 요압의 자기 타인은 하나님이라 믿지요.

그런데 현재 다윗은 하나님 안 믿어요? 믿잖아요. 지금 하나님은 하나님 자체를 뭐한다? 수정하려고 하는 거예요. 제가 첫째 시간에 이야기했잖아요. 하나님의 일은 날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찾아와서 하는 일은 날마다 우리를 수정하는 거예요. 어떻게 수정합니까? 내가 믿는 하나님이 결국은 뭡니까? 나를 잘되게 하는 하나님으로 그런 식으로 믿을 수밖에 없는 그런 한계를 지닌 것이 바로 인간이에요.

그 인간을 지금 하나님이 어디로 집어넣으려고 합니까? 하나님의 죽음의 의미, 모든 의미가 나오는 하나님의 죽음에 자기 백성을 거기다가 합류시키려고 하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의 뜻이에요. 그런데 마귀는 뭘 부추기지요? “너 지금 임금으로서 참 큰 일했다. 박수 쳐줄게. 대단하다 대단해. 너 인생 살 만큼 보람 있어. 너 성공한 거야. 출세한 거야. 잘된 거야.”

그러니까 요압이 있다가 “왕이 잘된 것을 너무 잘난 척하지 마소. 하나님 계신데 잘난 척하면 됩니까?” 하나님을 거론한 요압이나 다윗이나 기본적으로 그 하나님이 그 하나님 아니에요. 하나님은 날마다 스스로 우리에게 수정시켜 나가는 하나님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서 지금 다윗이 인구조사 하는데 여러분들한테 정식으로 묻는 거예요. 답변해보세요.

다윗이 인구조사 하려하는데 요압이 간청해서 인구조사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지금보다 열배나 백배나 더 해줄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 듣고 다윗이 인구조사를 안 했으면 무엇이 안 바꿔질 뻔했습니까? 7월 6일에서 7월 7일 가야 되는데 도로 어디서 제자리걸음하고 있어요? 7월 6일에서 계속 제자리걸음하는 거예요. “나 하나님 안다, 하나님 믿는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아야지. 그래서 영광 돌려야지. 하나님 앞에 죄 지으면 안 돼.” 계속 그 자리에 머무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의 타인은 내가 나 되게 한 것은 누구다? 하나님이다. 맞습니까, 아니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타인입니까, 어느 쪽입니까? 십자가 죽음에 가야지요. 그런데 그 십자가 죽음은 여러분 예수님만 죽으신 죽음이 아니에요. 내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죽음이에요.

그러니까 우리의 타인은 나를 나 되게 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고, 그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합류가 되니까 나는 이미 예수님 죽었을 때 이미 죽은 자라는 인식을 목표로 해서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너 죽었으니까 네 행동에 대해서 일체 입 다물고 묻지 않을게.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내가 일체. 왜? 이미 죽었으니까.

십자가를 알려주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살아 계셔서 나를 지켜주고 보호하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십니까, 어느 쪽이에요? 십자가 하나님이죠. 요압이 얼마나 뒤에서 했겠습니까. “임금님 인구조사하지 말랬잖아. 안 해야 됐잖아.” 그런데 해서 몇 명 죽었느냐 하면 사흘 동안 죽은 자가 14절에 칠만 명.

여기 5절에 보면 숫자 나왔어요.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만한 자가 일백 십만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만한 자가 사십 칠만이라” 이 백성의 숫자는 다윗의 왕 됨을 높여주는 광장에 모인 사람의 숫자로 보면 되지요. 임금이 아닌 자는 광장이 될 수 없어요. 광장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냥 자기 줄에 매달린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임금이나 다윗이나 줄에 매달린 사람이나 모두 바들바들 죽기 싫어서 떠는 데에는 똑같아요. 여기서 숫자가 얼마냐 하면,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만한 자가 일백 십만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만한 자가 사십 칠만이라 요압이 왕의 명령을 밉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이렇게 됐지요.

여기 21장 1절 봅시다.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한다 했지요. 사탄의 목적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거예요. 사탄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것은 누굴 대적하느냐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대적해서 이스라엘을 계수해서 하나님 손으로 이스라엘을 몇 명 죽였느냐 하면 칠만 명 죽게 했다면 이거는 하나님의 승리에요, 사탄의 승리입니까? 하나의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여주에서 양평까지 고속도로 뚫는데 거기 김건희 일당의 토지가 있었다. 민주당에서 김건희 가족의 땅 값 올리려고 고속도로 냈지, 라고 하니까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그러면 내가 찢어버릴게, 할 때 누가 승리한 거예요? 국민의 힘이 승리한 거예요, 민주당이 승리한 거예요? 민주당이 승리한 거죠. 그렇지요. 애들 장난도 아니고. 양평에 우리가 땅이 없으니 우린 편하게 이야기합니다만 여러분 집사님 집에 땅이 만 평 있다면 보통 큰 문제가 아니잖아요. 소유 아닙니까.

인간세계에서 졌다, 이겼다를 뭐로 판정돼요?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 죽으면 진 거고, 살아 있으면 승리한 거고. 땅 있는데 땅 값 올라가면 승리한 거고 땅 값 내려가게 되면 진 게 되지요. 이게 누구한테 배웠느냐 하면 사탄이 우리의 타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래요. 악마가 그동안 우리를 교육시켜서 그래요. 하나님은 악마를 사탄을 이용한다는 생각을 해보세요.

사탄이 이스라엘을 대적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함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사탄 너 죽었어, 이게 아니고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스라엘 너 죽었어, 이래 되는 거예요. 참 우리가 우리 평소의 생각들이 너무나 잘못됐기 때문에 이게 하나도 어려운 것도 아닌데 자꾸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문제 있느냐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칠만 명 죽여 버리면 이거는 인간 생각에서 누구 좋은 일 시켰느냐 하면 이거는 사탄 좋은 일시키는 거예요. 하나님에 부응했던 이스라엘이 교회라면 교회가 부흥했는데 하나님이 쳐서 완전히 교인수 반 토막 나게 만들었다. 하나님 좋은 일이라 생각하겠어요, 마귀 좋은 일이라 생각하겠습니까? 마귀 좋은 일로 생각하겠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 집안에 불났다. 누가 아파 죽었다. 멀쩡한 아들이 죽었다. 그러면 이거는 사탄이 기뻐할 일이지 하나님이 기뻐할 일이 아니라고 누구나 생각하잖아요. 그 생각이 잘못됐다는.

하나님이 보세요. 사탄이 그 짓했다는 걸 하나님 뻔히 알면서도 “사탄아 내가 너 이스라엘 칠 줄 알았지. 안 쳐. 열배나 더 만들어버려.” 우리가 생각하기를 이렇게 돼야 하나님이 사탄에게 넘어가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한 게 되잖아요. 우리의 상식에 의하면. 그런데 그게 아니고 사탄에 속아서 인구조사 한 걸 뻔히 알면서도 하나님께서는 그걸 칠만 명을 죽인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이번 기회에 이스라엘 속에다가 오르난 타작마당의 의미를 거기다가 집어넣기 위해서 한 겁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했다는 것은 죽은 사람 조사한 게 아니에요. 산 사람을 조사한 거예요. 요압도 시키는 대로 안 하고 레위인과 베냐민을 빼잖아요. 이것 왜 뺍니까? 요압은 다윗을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요압이고다윗이고 둘 다 이스라엘 전체 다가 사탄이 격동하는 것에 대해서 그걸 버텨낼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화를 낸다는 것을 누가 알아요? 사탄이 알고 뻔히 알면서도 인구조사를 시켜서 하나님 손으로 이스라엘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이 창세기 2장, 3장에 나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했잖아요. 뱀이 와서 아담을 유혹할 때 하나님이 말렸습니까, 황급하게 선악과 못 따먹게 했습니까, 안 그러면 따먹게 했습니까? 따먹게 했지요. 왜요? 왜 하나님께선 자기 백성이 따먹으면 죽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왜 따먹도록 하나님께서 아무 대책도 없이 그냥 따먹도록 왜 허용하신 겁니까?

이게 그 비밀을 둘째 시간에 약속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체에 포함되지 않는 전체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인간들이 생각하는 전체, 인간들이 이해하고 관찰하고 있는 전체에 포함되지 않는 전체, 이걸 굳이 표현한다면 ‘비-전체’ 비-전체는 결코 부분이 아닙니다. 비-전체가 인간들이 생각하는 전체에다 비-전체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사탄으로 하여금 허락하게 만든 거예요.

이스라엘 내부에 인간들이 모르는 이스라엘이 모르는 다윗이 모르는 요압이 모르는 하나님만이 아는 전체가 있어요. 그 전체를 알아야 다윗의 존재 의미가 생겨요. 근데 인간들은 하나님이 지켜줬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크게 했다. 이거는 인간들이 다윗이 헤아렸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인구조사를 한 거예요.

그런데 요압은 거기서 뭘 뺐습니까? 베냐민 지파, 레위 지파 뺐지요. 그러니까 요압은 무슨 생각을 했느냐 하면 다윗이 전체 지파를 헤아리라고 명령했지만 레위와 베냐민 빼고 보고를 한 거예요. 그러면 요압에게는 뭡니까? 요압에게는 전체에 포함되지 않는 전체가 있는 게 아니고 전체에 포함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거예요. 참 말하면서도 어렵다.

지금 인간들 생각은 요압이나 다윗이나 인간이 전체가 생각하는 게 전체에요. 그뿐이에요. 인간들은 그 한계를 못 벗어난다고요. 제가 아까 칸막이 네 개해서 말씀드렸지요. 그 모든 것이 인간이 그걸 전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시신 잘 있는지 가보는 것, 이게 인간이 생각하는 전체에요.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가 도저히 생각하지 못한 것은 뭐냐? 내가 죽은 자란 생각은 못한 거예요.

죽음이 인간 살아 있다고 우기는 악마가 다스리는 세계에 죽음은 인간은 숫자 취급을 안 하잖아요. 그런데 이 죽음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속에 집어넣은 겁니다. 집어넣고 이 죽음에서 새로 시작한 이스라엘이 진짜 이스라엘이 돼요. 아이고, 이걸 누가 알겠노.

우리는 죽는 게 일상이에요. 우린 죽어서 좋아요. 살아서 좋은 게 아니고 죽어서 좋아요.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죽음은 변동이 없습니다. 확정 사실이에요. 이런 것을 이런 이야기를 어디서 알 수 있느냐 하면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음만 죽음이 아니고 그 십자가에서 나의 죽음이 이미 달성했다는 것, 다 이루었다 할 때 주님만 다 이룬 게 아니고 나도 다 이루었어요. 단 조건은 내가 죽은 자라는 조건 하에 이룬 겁니다.

그 칠만 명 죽였을 때에 칠만 명 죽었다는 말은 이게 무슨 죽음이냐 하면 누구 때문에 칠만 명 죽었지요? 다윗의 인구조사 때문에 했지요. 잘 들으세요, 논리를. 다윗이 인구조사를 왜 했지요? 내 밑에 이스라엘 전체가 몇 명이냐 인구조사하면서 했던 것이 인구 셈 셌잖아요. 그러면 칠만 명 죽었다는 말은 이거는 나머지 전체가 이미 다 애초부터 하나님 보기에 죽은 존재란 뜻이에요.

생각을 반대로 해야 돼요. 칠만 명밖에 안 죽였어요. 다윗부터 다 죽여도 괜찮아요. 다윗은 그 숫자 헤아림에서 자기를 뺀 겁니다. 자기 자신을 뺐는지 안 뺐는지 모르지만 자기는 헤아리는 자니까 자기를 빼고 생각한 거예요. 왜냐? 어차피 보고는 숫자 몇 명인지 보고 받으려면 어차피 자기는 살아 있어야 되니까. 지까지 죽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살리는 방향으로 세 가지의 벌칙을 줍니다. 첫 번째 봅시다. 10절에 보면, “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마음대로니까 다윗의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겠지요.

“혹 삼년 기근일지, 혹 네가 석 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길 일일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일지 하셨나니”(12절) 너 셋 중에 어느 것 할래? 이게 다윗이 이스라엘 대표입니다. 다윗의 어떤 결정에 따라서 이스라엘의 운명이 결정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윗 따로 있고 이스라엘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다윗 포함해서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님의 전체 입장에서 새롭게 해석해버린 거예요.

제일 긴 것, 삼 년 기간 동안 이스라엘이 괴롭힘을 당한다. 그다음에 네가 석 달 동안 대적에서 피하여 쫓긴다. 그다음에 사흘 동안 이 땅에 전염병 퍼져서 사람들이 죽는다. 삼 년, 석 달, 그다음에 사흘. 다윗을 일은 일찍 마무리 짓고 싶겠지요. 왜? 자기 나라니까 자기 잘못한 걸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서 제일 짧은 시간을 했겠지요.

그러면서 다윗은 아직 어려운 게 남아있어요. 빨리 하겠습니다. 뭐냐 하면 이렇게 셋 중에 하나 칠만 명 죽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죄 지은 것에 대해서 다윗의 징벌을 다 된 거예요? 어떻습니까? 이야기가 이걸로 끝입니까? 아니지요. 지금 이야기가 만약에 벌 받았다. 그러면 칠만 명 빼고 나머지 또 살잖아요. 그렇게 되면 아까 똑같이 돼요. 7월 6일 돼요.

뭐냐 하면 자기가 아는 전체에 그대로 아는 삶이 계속 가는 거예요. 추가적인 새로운 수정조항이 없어요. 성도는 날마다 수정조항이 주어진다는 것은 십자가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해서 수정조항이 매일같이 주어져야 성도입니다. 성도가 뭐라고 해야 성도입니까? 다 잊어버렸습니까. 성도란 내가 말할 게 없는 것. 말할 수도 없는데 어떤 산다는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 차이를 증거하는 게 성도거든요.

내가 말 못하는 것 뭐냐? 내가 아는 것은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전체에 포함되지 않는 전체는 이거는 주께서 사건으로, 사건으로 물어다주기 때문에 지금 내가 아는 전체는 내일 되면 또 전체가 아니에요. 또 다른 전체가 새롭게 등장하는데 그 다른 전체는 항상 십자가에 다 이루심의 새로운 요건과 조항들이 추가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날이 갈수록 무슨 은혜와 무슨 기쁨은 무슨 사실만 더욱 뚜렷하게 돼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다 이루었다는 그 사건의 진정한 의미가 이렇게 깊고 넓고 높고 긴지 날마다 그걸 매일 내가 죽는 일상을 통해서 알아가는 거예요.

지금 여기에 세 가지 벌칙 가운데 하나를 해서 벌칙을 마감했습니다. 마감했으면 이제 이스라엘 죽이는 것도 끝났고 아까 말씀처럼 다윗과 청산할 것은 다 청산한 걸로 여기는데 그게 아니고 여기 뭐가 되느냐? 여부스 사람 오르난 타작마당 여기서 뭘 하지요? 뒤에 20절 쭉 나와요. 번제를 드리지요. 왜 번제를 드려야 되지요? 벌칙 다 치렀는데.

인간들이 아는 전체 파트에선 벌칙을 다 이뤘는데 지금 무슨 파트가 남았느냐 하면 앞으로 계속 이스라엘이 구원되기 위해서는 인간들은 모르는 미진한 남아있는 인간들이 모르는 그 전체의 전체, 그 전체의 전체를 완전히 커버할 수 있는 어떤 짓을 해도 구원이 되는 그러한 한꺼번에 다 이루었다의 제사는 하나님이 친히 오르난 타작마당에서 베풀어주신 거예요. 화목제를 드렸어요, 26절에.

그런데 거기에 누가 나타나는가? 하나님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서 응답했습니다. 불 내린다는 말은 이스라엘을 대표한 제물이 죄 값으로 죽잖아요. 불 내린다는 말은 너희 다 타죽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다 타죽었다가 내가 타죽어 마땅하다가 마땅하다는 내용을 담아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자가 성도에요.

나는 죽었다를 감싸는, 여러분 보쌈, 쌈밥 쌈을 싸듯이 주님의 십자가로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껍질 같은 남자, 여자 인간의 형상, 인간의 모습, 육체로 감쌀 때 이게 바로 차이 나는 것이고, 이게 바로 성도의 모습이 되는 거예요. 그게 다윗언약이 갖고 있는 내용입니다. 벌칙 칠만 명 죽은 걸로 이제 청산했습니다, 하지 마세요.

그거는 인간이 아는 전체, “내가 과거에 죄 많이 졌거든. 그런데 어제부로 다 벌 받았어.” 아니지요. “그래서 나 이제 온전해.” 지금 온전한 건 의미 없어요. 우리가 죽고 난 뒤에도 온전하려면 앞으로 내가 모르는 것까지 미리 주께서 앞서서 값을 다 치러야지요. 그게 바로 뭐냐? 그게 바로 십자가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탄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채 하나님 이름을 불렀습니다. 주께서 자기의 사랑, 자기의 희생을 드러내기 위해서 우리들을 채택해서 십자가의 증인으로 세운다는 이 계획이 얼마나 오묘하고 얼마나 철저하고 완벽한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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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8,422건 중 2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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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