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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강의20230623a 열왕기상18장 18절(압축 삭제 대체)-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열왕기상

광주강의20230623a 열왕기상18장 18절(압축 삭제 대체)-이 근호 목사

p.250 위에서 3번째 줄에【…금 신상을 엎어놓으면 역사가 되고, 다시 세워놓으면 모든 역사를 커버하는 묵시적 사건으로서의 ‘금 신상 만들기 사건’으로 자리 잡는 것처럼…】엎어놓으면 역사가 되고 세워놓으면 사건이 되고.

그러면 역사라 하는 것은 사건의 그림자, 사건의 투영체라 볼 수 있죠. 전봇대가 사건이라면 지면에 비치는 전봇대 그림자는 역사가 되는 겁니다. 이 두 가지를 다니엘이 다 알고 있는 거예요.

p.250 밑에서 2번째 줄에, 그것을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완료-미완료’ 혹은 ‘이미-아직’】 이게 말이 안 되죠. 완료됐으면 완료이고 미완료됐으면 완료가 아닌데. ‘이미’라는 것은 아직이 남아있지 않아야 되고 ‘아직’이라는 것은 이미라는 말을 쓸 수 없는데, 표현을 이런 식으로 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미-아직, 완료-미완료’ 이것을, 신학에서 이런 표현을 해서 성경내용을 모두 다 커버하려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사실은 유대인들이 벌써 이걸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말은 이런 것을 표현하고 이렇게 알고 있는 그들에 의해서 하나님이 살해당했다 이 말입니다. 알면 뭐합니까? 메시아를 못 알아봤는데.

도대체 어느 정도 알아야 메시아를 알아보는 레벨에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도대체 어느 정도로 성경지식이 풍부하고 많아야 그게 가능할까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지식의 총화, 총체, 전부 다를 동원한다고 해서 이게 알아지는 게 아닙니다.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수준 차? 아니죠. 노선 차죠. 수준이 높고 낮아서가 아니에요. 수준에 대해서는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창기는 저주받았다. 장애자들, 가난한 자들. 하나의 율법에 의하면 신명기 율법에 의하면 그들이 가난한 이유는 말씀을 못 지켰기 때문에 저주받아서 가난하다고 본 거예요.

왜 그러느냐 하면 부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았다는 뜻이고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 뜻이고 복을 받기 위해서 말씀에 충실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복은 성적순이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말씀을 많이 지킨 쪽이 복을 받아 부자 되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받아서 인생 자체가 완전히 처절하게 돼버리죠.

그래서 [예수님의 살인사건 십자가 앞에서 바르게 사는 것이 큰 유혹이요, 실은 이것이 최후의 유혹]이에요. 최후의 유혹이에요, 바르게 살겠다는 것. 노림수가 있었던 거죠. 바르게 살겠다는 뭔가 노림수가 있는 거예요. 바르게 살게 되면 내가 원하는 풍부한 풍족한 삶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나님이 하는 일에 앞뒤가 맞는다는 겁니다. 모순점이 없이.

그런데 이 유대인들이 역사와 묵시, 두 개의 반듯한 시간 안목을 가진 자가 다니엘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어요. 다니엘이 역사와 묵시 둘 다를 겸비하고 있다는 것을 유대인들이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유대인들이 지은 책으로 ‘묵시문학’이라는 게 있었어요.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와 왜 끝나야 되는가에 대해서 기록된 내용들이에요. ‘세상 끝나니까 조금만 참자’ 그게 묵시문학의 핵심이고 주제입니다. ‘조금만 참으면 우리 구원된다’ 이게 묵시문학의 특징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사람들은 ‘네가 뭔데 너희들만 구원되고 왜 다른 사람은 멸망하느냐? 기준이 뭐냐?’ 그렇게 묻게 되겠죠. 기준은 뭐냐 하면 ‘망하는 너희들이 우리를 건드렸잖아’ 이게 기준이에요. 멸망하는 쪽이 구원받는 우리를 건드렸기 때문에 멸망한다는 거예요. 그게 뭐 많이 위로가 되겠죠.

그런데 그러한 묵시문학 또는 묵시적으로 세상을 평가하면서 인간은 빠뜨린 게 있어요. 그 빠뜨린 질문을 제가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내가 왜 살아있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빠뜨리고 있어요. 살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것은 이해되겠는데 그게 질문의 첫 출발지가 돼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왜 살아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어야 돼요. ‘내가 왜 살아있지?’ 이 말은 뭐냐? [내가 안 살아도 되잖아?] 라는 질문을 사람들은 자주 자주 놓쳐버려요. ‘안 살아도 되잖아? 내가 왜 살아있어야 돼?’ 이게 같은 질문이거든요.

아까 묵시문학 이야기할 때 적들이 나를 건드려서 그들은 망한다고 되어있죠. 그럼 방금 이 두 질문, 같은 내용입니다만 ‘왜 살아있어야 돼? 안 살아도 되잖아?’ 라고 내가 나한테 질문을 던져버리면 묵시문학 자체가 우리하고는 해당사항이 없어요. 본인이 죽겠다는데 뭐… 죽겠다는데 상대방이 나를 죽이는 게 고맙죠. ‘네가 나를 건드려?’ 이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지금 ‘내가 왜 살아있어야 돼?’ 이 질문이 안 나온다는 뜻이에요.

‘왜 살아있어야 돼?’ 여기서 내가 살아있다고 이야기했는데 보통 철학에서는 살아있다는 말 안하고 ‘여기 있음이 무엇이냐?’ 이렇게 이야기해요. 저는 ‘있음이 무엇이냐?’ 이것은 ‘왜 살아있어야 돼?’ 이 질문을 가린다고 보는 거예요. 있음이 무엇이냐고 저는 질문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요. 없음이 무엇이며 있음이 무엇이냐. 있음이라 하는 것은 없음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해서 있게 되었다. 이게 철학자들 입에서 줄줄 나오잖아요.

그러면 중간에 뭐가 누락되고 빠져버렸어요? 여전히 ‘나는 안 살아도 되잖아.’라는 살지 말아야 된다는 의지가 빠져 있잖아요. 그런 질문을 궁금해한다는 자체가 그 바닥에 이거라도 알아서 나는 기어이 살고 싶어라, 딱 그걸 감추고 있는 거예요.

금 신상을 엎어놓으면 역사가 되고 세워놓으면 이게 묵시가 되는 거예요. 다니엘은 이 둘 다를 알았어요, 금 신상을 통해서. 본인이 해석했으니까요. 본인이 해석했잖아요. 그때 그 다니엘에 대한 하나님의 지칭이 인자(人子)였어요. 인자야.

다니엘보고 “인자야” 부르는 것은 주님이 다니엘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똑같은 거죠. ‘너 나지, 그렇지?’ 이런 뜻이에요. 주님이 주님의 자기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거예요.

인자야. 이름 부르고 그 이름이 해야 될 일은, 보이지 않는 묵시가 나타나려면 역사로밖에 나타날 수 없죠. 그래서 지난 설교 때 히브리서 11장 3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그렇다면 명석한 여러분들은 아실 거예요. 보인다=나타난다죠. ‘보인다’는 하나의 정지된 거고 ‘나타난다’는 것은 운동성을 포함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데 ‘보인다’와 ‘나타난다’ 둘 다를 같다고 보면 여기에 대한 결론은 뭐냐? 아니다. 보인다=나타난다=아니다. 독일말로 Nein. No. 부정이죠. 아니다. 아니다,니까 이건 환타지가 되죠. 망상, 환상. 망상이 망상을 바라보고 있는 거죠.

남편이라는 망상과 아내라는 망상, 둘이 결혼식을 하면서 “옆에 있는 남편을 한평생 사랑할 수 있습니까?”하고 망상적인 주례자가 질문을 하고 “예”라고 이야기하죠. 남자도 예, 여자도 예,라고 하죠.

[아이는 말을 하면서 자기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른다.] 아이는 말을 하면서 자기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요. 어른들이 요구하는 말을 하기 때문에 자기와 상관없어요. 어른들의 욕망이죠, 어른들이 요구하는 말을 자기가 내뱉는 겁니다. 이 아이가 자라면 뭐가 됩니까? 어른 되죠. 어른은 말을 하면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요. 인간은 낮에 전화 1시간 반 하면서 “뭐 아직 할 말은 있지만 우리 여기서 끊자.”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그래, 들어가라.”하고 끊었어요. 그동안 무슨 말했습니까? 자기가 무슨 말했는지를 몰라요.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자기가 무슨 말하는지 모른다는 말은, 앞에다 하나 붙이면 돼요. [말의 능력이 아이를 말하게 해버렸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기존 세계에 떠도는 말 또는 부모의 요구가 아이로 하여금 숙달되게 하고 부모가 기뻐하는 말이 무엇인지 단어를 익혀놨다가 부모가 요구할 때 부모가 준 말을 부모에게 되돌려주는 겁니다.

이게 아이의 말이라면 어른도 마찬가지죠.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해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남편보고 오빠라고 했을 때, 평소에 ‘오빠 오빠’하다가 명절날 시댁에 가면 시부모가 막 나무라죠. “결혼했을 때는 그렇게 하면 안돼. 여보라고 하든지 해야 돼.”라고 지적을 하죠. 그다음 명절에 갔을 때는 ‘오빠’가 빠지고 ‘여보’가 되는 거예요.

그 공동체가 원하는 것을 제시함으로써 내가 그 공동체에 소속감,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거예요. 굳이 충돌할 필요 없잖아요. 만약에 충돌하게 되면 자기 형편에 살기가 힘들단 말이죠. 왜냐하면 김장김치 안주니까. 삐쳐서.

그래서 이런 질문을 인간이 못하는 이유가 인간을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이런 겁니다. [인간은 망한다는 게 무엇인지 모른다.] 자기가 망하는 걸 희망하지 않기 때문에 망한다는 것에 대해서 뭔지 몰라요. 사람들이 ‘망했다 망했다’ 하는 것은 자기가 현상유지하려고 하는데 그게 약간 실패하거나 미진했을 때 ‘망했어 망했어’ 하잖아요. 그런데 진짜 망한 걸 몰라요. 현상유지에서 약간 후퇴한 걸 망했다 하지, 아직까지 망함의 끝을 몰라요.

솔직히 말해서 인간은 이 땅에 죽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못 받아들입니다.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뜸들이지 않고 사태를 그냥 시원하게 제가 노출하면 이렇습니다. 묵시에 대해서 그림자라고 했는데 [묵시의 주인공 앞에서 묵시로부터 나온 역사의 모든 인물들은 그냥 시체들]입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드실 때에 그들을 살아있는 시체로 만들어버렸어요. 묵시의 주인공은 언약의 주인공이에요. 그러면 묵시의 주인공에게 그 밑에 있는 이스라엘은 뭐냐? 이미 죽은 자들이에요. 죽은 자들을 묵시가 움직이게 만들어요, 언약이 주어지게 되면. 그래서 말씀 안 지키면 망했다,가 아니라 이미 망했다는 그 내용을 그들의 고백을 통해서 ‘누가 망하게 했고 그 망한 자는 누구냐?’ 양쪽 내용을 다 함유해서 보여주게 되면 그게 바로 언약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니엘보고 인자라 했어요. 인자가 있고 그 위에는 인자 같은 이가 있어요. 묵시(언약)의 주인공은 인자 같은 이가 되고 그 밑에 이미 죽은 자들은 인자가 돼요. 인자라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대표자 또는 대변자. 선지자니까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낸 것은 이 땅에서 언약대로 죽으라고 보내신 거예요. 그래서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이 말은 주님의 모든 활동의 완성은 이 땅에서 인자가 죽으시는 거예요. 요한복음 10장에도 누가 나를 죽이는 게 아니고 내가 스스로 죽는다 했어요. (요 10:18) 죽기 위해서 오신 거예요. 죽기 위해서. 그런데 그 죽음은 일반 인간들이 죽는 죽음이 아니고 언약에 의해서 죽어야 돼요. 언약에 의해서.

그러면 언약의 완성이라 하는 것은 언약의 대상자 되시는 분이 죽는 것이 언약의 완성입니다. 그래야 살과 피가 나오기 때문에. 지금까지 쭉 설명한 것처럼 인간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거예요.

지금 p.250 위에서 8번째 줄에 나오는【그렇게 되면 세 개의 층, 즉 제일 아래층에 자리 잡은 7이레라는 층은,……】쭉 나오죠. 그 내용을 설명하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될 게 굉장히 많습니다. p.250 8번째 줄에 바로 들어갈 수가 없어요.

제가 그림 하나 그리겠습니다. (*맨 위 이미지 참고) 언약의 묵시적 주인공(S)이 역사적 인물($) 하나 등장시킵니다. 이스라엘 또는 이스라엘 대변자, 선지자. 그러니까 묵시가 역사적 인물로 역사 속에 보내는 거예요. 그러면 이 사람($)은 역사 속에 시간따라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쭉 살겠죠.

그러면 그들이 제대로 어떻게 사는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감시하는 게 아니라 같이 따라갑니다, 언약적으로. 휘감아버리죠. 동행이죠. 언약의 동행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내내 동행을 하죠. 한순간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떠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이스라엘 자체가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자기 작품을 자기가 떠날 수 없습니다. 쭉 같이 가는 거예요. 이게 구약입니다.

자, 신약의 차이점은 뭐냐 하면… 구약에서는 S와 $ 이 둘이 역사라 했잖아요. 신약에서 십자가는 역사가 아니고 사건이 돼요. 사건이 되는 겁니다. 사건은 종합인 동시에 모든 것의 완료가 돼요. 완성이 되는 거예요. 사건 안에 묵시+역사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 세례 요한은 사람들 보기에는 혼자 있어요. 눈에 보이기에 혼자 있잖아요. 그런데 세례 요한 본인은 자꾸 누구를 불러요. 누굴 부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고 그렇게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그리스도]를 이렇게 같이 묶어버리면 합작. 주님의 죽으심에 같이 죽어버렸죠. 그분은 흥해야 되고 나는 잘려야 된다는 거예요.

요한 앞에 뭐가 붙습니까? ‘세례’ 요한. 합작. 연합. 세례라 하는 것은 연합하는 겁니다. 결합되어 있다. 합작하는 거예요. 예수님은 신약이고 세례 요한까지가 구약이고. 구약과 신약이 죽음을 통해서 같이 예수님 안에서 완료가 되고 완성이 되는 겁니다. 그럼 이것은 십자가니까 이게 사건이 되죠.

이 사건이 그다음 남은 역사에 퍼져버리면 그 남은 역사를 종말의 기간이라 합니다. 종말의 절차. 종말의 절차에서는 노선이 중요한 거예요. 이미 완성되었느냐, 아니면 완성됨을 향하고 있느냐. 그 인식의 차이. 이미 사건이 이렇게 종말이 돼버리면 기존의 역사라 하는 것은 더 이상 종말 속에 들어올 수가 없어요. 이미 십자가로 다 끝났기 때문에.

예를 들면 401번 버스와 급행 1번 버스가 있는데 401번 타고 갑니다. 401번 타고 가다가 그다음에 좀 빨리 가야겠다 싶어서 중간에 내려 급행 탔어요. 노선변경이죠. 노선변경이면 401번은 어떻게 됩니까? 안 갑니까, 자기대로 가겠어요? 나 내려줬다고 운행중지입니까? 아니죠. 그냥 자기대로 가는 거죠.

급행 1번을 빨간색으로 한다면 급행 1번은 하나의 사건의 반복이 되고, 401번은 역사의 이어짐이 되죠. 역사의 이어짐이 되니까 이어져봤자 이것은 의미가 없는 거예요. 역사가 이어져봤자 의미가 없어요. 의미는 어느 쪽에 이미 옮겨졌습니까? 모든 의미는 급행 1번으로, 사건 안으로 다 옮겨져 있는 거예요. 사건 안으로.

그러면 사건에 올라탔던 사람은 같이 버스가 당분간은 같은 길로 갈 거잖아요. 노선은 바뀌었지만 당분간은 바뀔 때까지 갈 거 아니겠습니까. 갈 때 이 401번 버스에 대해서는 무의미함을 아는 거예요. 저건 의미 없는 거예요. 저거는 꼴아박는 거예요. 이미 저것은 망하는 역사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신약에 와서 십자가 안에 있는 사람은 질문이 뭐냐 하면 “나는 다 끝났는데 왜 아직 살아있지? 왜 나 아직 안 망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쪽이 십자가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십자가 안에 있는 사람이에요.

부부끼리 이야기하다가 “여보, 이번 달에 수입이 350 들어왔어.” 그럴 때 “그런데 왜 우리가 아직도 살아있지? 왜 우리가 아직도 돈이 필요하지? 주님, 이거는 뭔가 잘못됐잖아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더 밥 먹고 살라는 이야기인데 왜 굳이 우리가 살아야 합니까?” 아까 그 질문, 일반 사람들은 누락하는 그 질문을 성도는 하게 되는 거예요. 왜 살아있어야 합니까?

그래서 이 순서가 어떻게 되느냐 하면, 묵시에서 역사로 갈 때 세 가지 순서에요. 압축되고 그다음에 삭제되고 그다음에 대체돼요. [압축→삭제→대체] 압축이 되고 삭제가 되고 대체되는 방법으로 다른 노선, 노선이 달라야 돼요. 노선이 다른 것을 설교시간에 제가 방향이 다르다 했죠. 방향이.

아까 질문 다시 하겠습니다. “바르게 사는 것이 가장 큰 유혹이고 최후의 유혹이다.”라고 할 때 “왜 그래요?”라고 누가 반박을 하면 여러분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바르게 사는 것이 엄청난 악마의 유혹이라 할 때, 그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이미 우리 죄로 망했잖아요. 망했는데 아직도 잘 살아야 된다는 미련을 갖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잖아요, 이유가.

그런데 사건 안에 십자가 안에 안 들어온 사람한테는 다시 말해서 예수 믿고 구원받으려고 깝쭉대는 사람한테는 뭐가 가장 큰 매력이고 미끼가 되겠습니까? ‘하나님 바르게 살면 구원해주십니까?’가 아직도 그 사람한테 유효한 거예요. 악마의 시험이 아직도 유효한 거예요. 기존 노선에 살던 내가 삭제 안 된 거예요.

압축을 해서 삭제해버리는 겁니다. 압축이라 하는 것은 모든 역사를 압축해버리면 역사의 끝이 되잖아요. 역사가 너는 다 안 살아도 나이 적어도 다 살았다 치고 역사의 끝 공간에다가 우리의 노선을 변경하는 그게 사건이에요. ‘내가 산다’가 아니라 ‘내가 사건이다’가 되는 거예요. 내가 하나의 사건이 되는 거예요.

이번 달에 350만원 들어왔다고 하면 “그거 사건이네!” 사건의 특징은 우연성, 우발성이에요. 다시 말해서 내가 요청하지 않는 사태가 일어나는 걸 사건이라 합니다. 내가 요청하지 않은 사태. 그거 사건이네. 이 지옥에서 뭘 더하란 말입니까, 주님이여. 빨리 제대나 시켜주지, 뭐 할라고 지옥에서 살게 하십니까.

다니엘의 입장에서는 그걸 이제 풀어나가야 돼요. 왜냐하면 다니엘은 묵시에 속한 인물이잖아요. 묵시적인 걸 아니까. 다른 사람은 역사만 알지만 다니엘은 묵시 속에서 인자라고 불리우면서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미리 알았죠. 그러면 다니엘 인자 안에 뭐가 압축되어 있느냐 하면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원한 자기 백성이 압축되어 있는 거예요.

압축되어 있으니까 성공적으로 이 역사 속에서 이미 삭제된 사람으로 있는 거예요. 이 역사 속에서 죽어야 죽는 게 아니고 살아있을 때부터 우리는 이미 이 역사에서 삭제된 거예요. 삭제되었다는 구절은 골로새서 3장 3절에 나옵니다. 이거 너무 찾아서 나도 식상해요. 저도 식상한데 그래도 여러분만큼 실력 없는 사람을 위해서 또 배려를 해주셔야죠.

실력 없기는 제가 실력 없습니다. 수요설교 하는데 끝나고 난 뒤에 유 집사님이, “목사님, 40주야(晝夜)가 어떻게 40주간입니까?” 하는 거예요. 우리 교회 또 다른 집사님이, “어릴 때부터 알았습니다. 40일간 동안 비 왔다고.” 그러니까 어릴 때 주일학교 때부터 알았던 40일을… 내가 그 본문을 읽었거든요. 창세기 7장을 읽으면서 왜 제 눈에 40주‘야’가 40주‘간’으로 바뀌었는지… 주야가 주간으로 바뀐 거예요. 그게 나이가 많아서 그래요. 솔로몬 성전을 7년 동안 지었고 자기 왕궁 짓는데 13년 걸렸거든요. 그런데 솔로몬 성전을 3년 만에 지었다고…. 그게 내가 외워놓을 때 3, 7로 외워놓은 거예요. 7, 13인데 7과 3으로 끝에만 기억해놓으니까 그냥 되어버린 거예요.

뭐 그렇게 해도 다 끝난 상태인데… 맨날 오류야. 맨날 오류고 맨날 틀려도 그것 때문에 죽었잖아요. 그럼 죽은 티를 좀 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아, 이래서 짓이겨 밟혀 죽어야 되는구나. 주일학교 애들도 아는 거예요. 40일간 비 왔다는 거.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죠. 그런데 그때 ‘야’자가 ‘간’자로 왜 바뀌었는지….

압축을 하면서 삭제하는데요. 압축한다는 것은 누군가 대신하려면 우리가 역사적으로 미진한 것이 오늘 있고 내일 또 내가 있으면 압축이 안돼요. 우린 압축을 해도 과거에서 현재까지만 압축이 되지, 내일 모레까지 압축이 안돼요. 살아봐야 압축을 하죠. 그러니까 한꺼번에, 모레 한달 뒤 십년 뒤 백년 뒤 안 살아도 한꺼번에 압축되는 요건이 있어줘야 돼요. 그런 조건이 있어야 된다고요.

압축됨을 잘 표현한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압축을 어떻게 시키는가? 이렇게 시키죠. 누가복음 1장에 나오죠. 누가복음 1장 69절에 보면 사가랴가 그냥 자기 말이 아니고 성령에 충만해서 하는 말이,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지금 사가랴가 성령에 충만해서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66절에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가 누굽니까? 세례 요한이죠.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하심이러라”) 세례 요한이 앞으로 어떻게 살까, 는 아무 의미 없어요. 세례 요한은 말씀에 의해서 압축되어 있어요.

압축이란 말은 쉽게 말해서 세례 요한이 앞으로 자기 의지로 활동으로 어떻게 하겠냐 그런 것을 전부다 제거한단 말이죠. 네가 어떻게 살 것이란 것은 네 행동 여하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고 그전에 이미 확정된 거예요. 파일을 압축한다는 말은 모퉁이는 적어도 거기서 새록새록 새롭게 이미 거기에 담긴 내용이 나오는 겁니다. 레코드판처럼 나오는 거예요. 레코드판이 있지만 거기서 노래가 보입니까? 안보이죠. 그런데 다이아몬드 박힌 뾰족한 촉을 놓게 되면 거기서 파장이 바뀌면서 음파가 돼서 나오잖아요. 그래서 소리가 들리잖아요. 그게 안에 압축된 거죠.

그러니까 성도는 본인의 인생 내가 어떻게 반듯하게 살고 국민학교 때 내신 성적 얼마고 어느 대학 나오고 결혼 누구랑 하고 아무 소용없어요. 주께서 뽑아낼 것은 뭐만 뽑아내느냐 하면 예언된 것만 뽑아내요. 예언된 것. 그게 누구여야 된다고요? 이스라엘이에요,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그렇게 되어야 돼요.

그 마지막 이스라엘 선지자가 누구냐? 세례 요한이잖아요. 이스라엘 세례 요한이 보여주는 것은 ‘예수님이 왜 죽어야 되느냐’도 맞는 말이지만 ‘내가 왜 예수님 때문에 죽어야 되는가’도 같은 말이에요. 그러면 여기서 성도의 묵시적 삶은 어떻게 될 수 있어요? [예수님이 왜 죽어야 하는가]죠.

‘예수님이 왜 살아나야 하는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왜 죽어야 하는가’에요. 예수님 혼자 살아나버리면 구원이고 뭐고 없어요. 천국 없어요. 우리 아무도 천국 백성 안 됩니다. 예수님 혼자 잘나서 혼자 죽고 혼자 부활해버리면 천국에 덩그러니 혼자만 가요. 그렇잖아요. 예수님 부활하셨다. 좋겠네. 그걸로 끝나는 거예요.

우리가 합류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고 예수님의 죽으심에 합류가 되어야 돼요. 그러면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삶은 반복적인 삶은, 이제 사건이니까 반복이 돼요, 삶은 뭐만 나오겠어요?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오겠죠.

그래서 죄가 나오지 않는 자는 성도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성도는 죄짓는 게 목적이에요. 본인이 의도해서 짓는 게 아니고 주께서 그렇게 압축파일을 푸는 거예요. 너희들이 이런 죄가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과 짝을 이뤄서 그 죄를 위해서 이렇게 죽었다.

죽었다는 점에서 둘 다 같은 합작이 되어있는 거예요. 합작을 뭐라 했습니까? 세례. 세례된 상태에서 새로운 이스라엘 속에서 인자되시는 분이 죽으신 이유를 그 주변에 있는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연관해서 계속 사건적으로 반복해서 증거되게 뽑아 나오게 하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바로 우리 과거의 모든 역사적인 것은 삭제되고 그다음에 완벽한 완전한 이스라엘로 대체가 되는 겁니다. 대체가. 바뀌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방금 이 말에 의해서 여러 가지의 실생활을 묘사할 수 있는 원칙들이 여기서 마구마구 무한대로 많이 쏟아져 나와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이걸 여러분들이 인정하신다면 [매순간 우리는 최후를 맞이한다]. 그렇죠? 비슷한 말로 [지금의 나의 자리는 최후의 장소다]. 나의 최후의 장소가 되겠습니다. 이걸 더 응용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응용이 될 수 있어요.

또 응용이 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쭈쭈바 신세다]. 여름에 쭈쭈바 튜브로 되어있는 얼음과자 먹을 때 반 먹고 버립니까? 아니죠. 쪽쪽 다 뽑아내죠. 쪽쪽바. 그러니까 쭈쭈바가 쪽쪽바에요. 쪽쪽 다 뽑아내는 거예요. 내가 한 평생 살아왔던 모든, 애쓰고 노력하고 건사했다고 여겼던 것, 내 실적, 업적이라고 여겼던 것을 바깥의 힘이 바깥의 하나님의 완성의 힘이 십자가의 효과가 내 안에 있는 것을 완전히 쪽쪽 다 뽑아내는 거예요.

이 논리를 더 진전시켜버리면 성도는 내가 내 안에 담을 것을 하나님께서 용납한 적이 없다. 내 안에 나만의 것, 나만의 가치 있는 것, 나만이 자랑질할 수 있는 것, 나만의 의미 있는 것을 누가 용납 안한다고요? 주께서 그것을 용납하지 않죠. 주께서 주신 것이 내게 담길 걸 주신 것이 아니고 내가 담지 말고 뽑아낼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겁니다.

강남강의에선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고 우리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구약에 시편 보면 굉장히 많이 나와요,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니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를 지키는 분이시다. 왜 그러냐 하면 강남강의에서 간단히 언급했어요. 자기 것이 들어있으니까 자기 것 지키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내 것 되라고 주신 적이 없어요. 주께서 주셔놓고 그걸 뽑아내는 거예요. 주님의 언약 완성을 집어 넣어놓고 쭈쭈바 먹듯이 뽑아내는 겁니다.

그거 뽑아낼 때 기어이 그건 내 겁니다, 하고 달라붙은 거 있잖아요. 그렇게 달라붙는 그 성격과 그 성질, 그게 알라딘 램프 안에 들어있는 괴물이에요. 제가 어릴 때 알라딘 이야기 듣고 신기한 게 있었습니다. 그 덩치 큰 괴물이 작은 호리병 램프 안에 어떻게 공간적으로 들어가 있느냐. 그게 말이 되냐. 이제는 이해하죠. 우리 안에 마귀 들었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하는데 영적으로 이해가 되는 거거든요.

우리 안에는 마귀가 우리로 하여금 역사적 인물로 미래에 대해서 희망과 소망을 갖도록 만든, 그리고 네가 바르게 살아야 구원받는다 하는 이 모든 악마적인 것이 너 자신이 호리병처럼 돼서 램프처럼 돼서 거기서 네가 그런 게 아니고 네 안에 마귀가 괴물이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괴물을 매일같이 뽑아내는 거예요. 나와, 나와! 나온나. 이렇게 하죠. 나오라 하는 거죠.

그러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사람은 제 설교를 듣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더러 있어요. 이근호 목사 설교 들으면 자기가 피폐해진다는 거예요. 맞아요, 맞아! 피폐했다고 기뻐하는 게 아니고 피폐했다고 분노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나다움을 내세울 게 남아있지 않잖아. 그럼 나는 못살아.’하는 그게 바로 악마의 소리에요. 악마는 아직 안 기어 나왔어. 마지막에 버티고 있는 거예요.

제가 여기 알루미늄 호일을 준비했는데요. 호일이 편평하죠. 그런데 호일을 구기면 구겨지죠. 어느 게 볼품 있습니까? 펴진 게 예쁘잖아요. 빛이 나는 사람 아닙니까, 김호중 노래에 나오는. 그런데 구겨진 건 이게 뭐야, 이게. 내 인생 이거 완전히 구겨졌어요.

더 구겨라. 안에 내용물이 하나도 없어. 세리와 창기입니다. 강도에요. 안에 있는 거 어떻게 되었나? 주님이 다 가져갔어요. 어디 필요해서? 주님 자신의 십자가의 공로, 행함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데에 필요해서 우리의 죄를 가져간 거예요. 이렇게 구겨지는 겁니다. 주께서는 성도를 이렇게 만듭니다.

그런데 피폐하다고 분노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설교를 잘 들었어요. 들었는데 반짝반짝 펴진 호일이고 싶어. 나도 신자이고 나도 복음 아는 성도라고 광고, 선전하고 싶은 거예요. 세례 요한 되기 싫어요. 목 잘린 세례 요한 절대로 되기 싫어요. 사도 바울처럼 유명하고 싶고 스데반처럼 유명하고 싶어요. 그러나 실제로 누구를 구원하고 안하고는 주의 일이지, 우리는 쪼그라들 일만 남아 있어요.

아직 멀었어요, 이 정도 구겨지려면. 더 쪼그라들어야 돼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보세요. 이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들이 죄인 중에 괴수가 되잖아요. 하나님마저 죽였잖아요. 그런데 주님이 이렇게 구겨진 호일처럼 아무것도 없게 하는 겁니다. 주의 일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주의 일답게 드러나는 하나의 시작점이 되는 겁니다.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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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58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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