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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남-누가복음 16장 13절 (구조와 증상) 230418a-이근호 목사자유게시판누가복음

강남-누가복음 16장 13절 (구조와 증상) 230418a-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16장 9절에서 10절까지 한번 보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그렇게 되어있지요. 여기에 보면 불의한 것과 반대가 되는 참된 것이 나옵니다. ‘참된 것’. 그리고 끝에 보면 하나님 나오고 그 다음에 반대가 재물 나오죠. ‘재물’. 그리고 앞에 보면 8절에 보면 이 세대 나오고 반대가 ‘영원한 처소’가 나와요. 그 다음에 지극히 작은 것이 나오고 그 반대가 뭐냐 하면은 큰 것이 나오죠. ‘큰 것’. 그리고 그 다음에 뭐냐 하면은 하인이 나오고 주인이 나오고 또 마지막에 나의 것이 나오고 12절에 남의 것이 나와요.

전부 다 대립되고 대조되고 반대가 되는 요소들이죠. 이 반대가 되는 요소를 이중에 어떤 하나가 그걸 마구 통과하고 있는 거에요. 끝까지. 통과하고 있습니다. 통과하고 있는데 그 통과하는 그 시작점이 뭐냐 하면은 바로 지난 시간에 봤던 불의한 청지기가 돈을 횡령하는 거에요. 이 돈, 재물이 이런 반대되는 것을 통해서 파친코 같애. 톡톡톡 튕기면서 딱 내려오는 거요. 사다리 타기하는 것처럼. 그 핵심 되는 것.

모든 반대되는 대립이 되는 그 사이를 뭐 하나가 계속 살아있으면서 계속 끝까지 뭔가 꿰뚫고 지나가는 그 요소가 뭐냐. 그게 바로 재물입니다. 그래서 재물은 뭐냐 하면은 매개에요. 또는 매개체. 어떤 드라마 같은 경우에 말썽꾸러기 하나 등장해서 말썽꾸러기와 주인과의 관계가 드라마의 축을 이루지요. 이야기의 축을. 선과 악이 분명해야 되니까요. 선악과 따먹은 인간은 자기가 선을 지향하고 악을 배제한다는 그런 기본적인 선악지식이기 때문에 드라마를 통해서 자기가 영웅이 되고자할 때만 그 드라마에 몰입합니다.

악한 자를 빌런이라고 하지요. 악한 자. 속으로 죽여라 죽여라 이렇게 하는 겁니다.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 그 체계를 짤 때는 여러 가지 다른 요소가 막 들어갈 수 있을 거에요. 뭐냐 하면은 인물이 좋다 인물이 나쁘다 키가 크가 작다. 그것도 대립이잖아요. 좋은 집안이다 나쁜 집안이다 대립이 되는데 그 전체를 꿰뚫고 다 통과할 수 있는 그 요소가 예수님께서는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최종적으로 재물이야 말로 매개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이야기했고 이 최종적으로 도달한 재물과 하나님과의 대립관계를 하나님을 어디다 집어넣느냐 하면은 주인으로 집어넣는 거에요. 주인으로. 재물이 매개다 이 말이죠. 하나님과 재물 딱 결론이 났기 때문에 쉽게 말해서 너 하나님 섬길래? 재물 섬길래? 를 묻는 겁니다. 13절부터 거꾸로 들어가는 거에요.

너 하나님 믿을래? 재물 믿을래? 하게 되면 ‘나 하나님 믿을래’ 하잖아요. 하나님 믿을래.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인간에게는 성립이 안 된다는 거에요. 이미 마지막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긴다 재물을 섬긴다라고 나왔기 때문에 이미 이 재물을 섬길래? 라고 묻는 그 자체가 인간들이 재물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그 하나님과 라이벌이 되는 재물의 위력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떤 인간도 재물에 위세에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음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러면 그것이 뭐가 되느냐 하면은 불의한 것이 되는 거에요. 불의한 것. 재물에 쫓기는 재물에 후달리는 인생. 재물에 후달리는 인생을 모델로 딱 내세워버립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은 없고 공백이 되고 재물에 대해서 인간들은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주된 인간의 관심사가 되어 버린 세상이 이것이 대비자가 누구냐? 불의한 청지기가 되는 거에요. 계속 후달리고 있으니까요. 쫓기고 있으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불의한 청지기를 모델로 내세웠다는 말은 어느 누구도 불의한 청지기처럼 살지 않습니다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을 이 불의한 청지기가 대변해주고 있는 겁니다. 네가 하나님 믿을래? 안 믿을래? 하나님께 충성할거야? 안 충성할거야?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고 재물에 충성할거야 말거야 라고 그걸 바꿔버린 거에요.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구조에요. 구조의 반대말이 뭐냐? 증상입니다. 인간은 이미 구조화되어있다는 거에요.

구조화되어있으니까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 하나만 끄집어내도 인간의 구조를 총괄적으로 다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는 거에요. 우리 주님께서는. 불의한 청지기가 표현하고 있는 그의 노력, “거기서 나는 빼주세요” 할 인간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나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까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말고 네 돈에 대한 태도가 이 시대의 구조에서는 돈에 대해서 충성하면 그게 뭐냐 하면은 충성된 자로 인정받아요. 훌륭한 자로.

그런데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이야기를 재물을 다루는 이 자를 처음부터 참되고 충성되고 정직한 경리, 정직한 직원을 모델로 삼은 게 아니고 불의한 그 직원, 경리를 모델로 삼았다는 말은 인간은 이 불의함에서 벗어날 위인은 아무도 없다는 거에요. 불의한 구조 안에서 돈이 총체적으로 매개가 되어있는 돈으로 구조를 만들고 체계를 쌓는 이 세상 안에서 인간들 내가 다시 묘사하겠다. 다른 말로 하면 그 증상들을 내가 끄집어내겠다.

11절에 봅시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여기 불의와 참된 것을 대비시켜놨지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은 난 돈 일체 안 밝히고 돈과 상관없는 참된 것을 나는 추구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재물이 총체화된 구조화된 세계에서 있을 수 없다는 거에요. 이 세상에서 재물을 어떻게 귀하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이 세상은 참된 인간으로 평 받는다는 겁니다. 평가 받는다는 거에요.

12절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남의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남의 것에 뭘 집어넣어야 하느냐 하면 남의 돈, 남의 재물 보면 돼요. 남과 나의 대립구조는 재물이라는 매개체를 집어넣어서 설명해야 합당하는 것이 이 세상의 재물 위주의 인간세계의 구조입니다. 구조. 13절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하인 나오고 반대편에 주인 나오지요. 주인이 하인을 볼 때에 다른 거 안봐요. 내 돈 잘 지키고 있냐? 이걸 봐요. 돈을 매개로 집어넣어요. 중간 매개로. 돈을 매개로 집어넣어서 내 돈 잘 관리하고 있지? 예. 그럼 네가 돈 주인인 나를 잘 섬기는 게 돼요. 잘 섬기는 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인이 돈 주는 주인을 섬기지 않고 주인이 맘에 안 든다고 다른 주인을 섬겨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돈 준 주인은 기분 나쁘겠지요. 그것은 뭐냐 하면은 돈은 내가 주는데 왜 다른 주인 섬기느냐. 너희들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주께서 애초부터 불의한 청지기, 이거는 누가 봐도 나쁜 청지기를 끄집어내는 이유가 그 나쁜 청지기 같은 그런 인식과 사고방식으로 구성된 것이 바로 이 인간사회라는 겁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인간사회를 대변해주고 있는 거에요.

이야기를 하거나 행동을 할 때 돈을 집어넣지 않고 이야기나 행동을 하는 자체가 이 세상에는 의미가 없는 거에요. 친구 사귀라? 아니지 아니지. 돈 가지고 친구 사귀라가 되지요. 그런데 그 돈 앞에 뭘 집어넣습니까? 불의한 재물. 불의한 재물로 친구 사귀는 그러한 경우만 이 세상에 일어나고 깨끗한 돈으로 친구 사귀는 그러한 경우는 이 세상 구조 안에서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주님이 꽈도 비비비 꼬는 거에요. 전부 다.

10절에 “지극히 작은 돈에 충성된 자는 큰 돈에도 충성되지 않겠느냐” 이 세상에서는 충성되다 그리고 게으르다는 평은 내 돈 어떻게 했느냐고 묻는 그런 구조 그 짜임새 그 체계 안에서만 인간세계는 돌아가고 있습니다. 표정들 보니까 꼭 그런가? 이런 표정들인데. 이 한마디가 뭐냐 하면은 구조에요 구조. 구조는 반드시 뭘 끄집어내느냐 하면은 그 구조의 증상들이 나옵니다. 왜 구조와 증상을 분리하느냐? 이 증상의 원판이 구조로 들어가야 이게 설명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은 지금 구조를 지었어요. 인간 구조를.

그런데 왜 제가 구조를 말하느냐 하면은 인간들은 자기 재물과 더불어서 자기 밥 먹고 사는데 여기에 몰두하기 때문에 뭐를 놓치느냐 하면은 이게 증상인줄 모르고 구조를 모르는 거에요. 구조를. 자, 구조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이런 뜻이에요. 못 빠져나온다. 다른 말로 하면 너희들은 갇혀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너희들은 쫓기고 있다. 마치 뭐와 같이? 불의한 청지기처럼. 계속 쫓기고 있는 거에요.

컴퓨터에 게임 나오잖아요. 게임. 폴짝폴짝 뛰는 게임. 마리오. 마리오 게임을 보세요. 마리오가 아무리 뛰고 탈출하고 해도 그 구조 안에 갇혀있잖아요. 빠져나오지를 못하지요. 불의한 청지기가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봤자 그 안에 구조 안에 갇혀있어요. 빠져나오지를 못해요. 다급해요. 쫓기고 있어요. 후달리고 있다고요. 불의한 청지기가 누굴 만나요? 불의한 청지기가 지금 하나님 만납니까? 아니지요. 뭐를 사귀라? 불의한 재물로 뭐를 사귀라? 친구. 사람 만나는 거에요. 사람. 사람 만나는 거에요. 사람이 사람 만난다는 것은 그거는 허겁지겁 자기 살 궁리 챙기는 거에요. 매일 같이.

그런데 그게 그런 자신의 모습이 어떤 구조 안에 빠져 나올 수 없는 구조 안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는 거에요. 그 구조 안에 갇혀있다는 생각 못하니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한다는 겁니다.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처신한다. 이게 불의한 청지기의 모습으로 드러냈잖아요. 주님은 뭐냐 하면은 너는 너를 바꿀 수 없다. 왜? 구조에 갇혀있으니까. 백날 누구 만나고 백날 누구하고 좋은 관계 해봤자 컴퓨터 게임 안에서 뱅뱅 돌고 있는 거에요. 안에서. 사람하고 상대하는 것 그 외에는 그 누구하고도 상대하지 못한 채 갇혀있는 거에요.

자, 그렇다면 주님께서 왜 이런 이야기를 왜 하시는가. 16절에 보면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율법 나와요. 주님께서는 재물을 매개로 해서 재물을 어떻게 다루느냐 대한 구조 안에 모든 인간이 거기 갇혀있는데 그렇게 재물 안에 갇혀있다는 구조가 있다는 것을 누가 그걸 지적하느냐? 그 지적을 누가 그렇게 했느냐? 어떻게 하면 그게 바깥에 나가서 지적할 수 있느냐? 그것은 바로 율법과 선지자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은 율법 안에서는 오로지 오직 불의함 밖에 없다. 시작을 불의함으로 시작하는 거에요. 율법 안에서는 오직 불의함 밖에 없어요.

아무리 인간이 바뀌어 봐도 그게 구조 안에 갇혀있기 때문에 바뀌어 봐야 이쪽 불의에서 저쪽불의로 가는 것, 큰 불의 작의 불의함 그것뿐이지 어떤 불의함에서 빠져나올 어떤 것도 없도록 외부에서 누가 가둬놓느냐? 율법이 그렇게 가둬놓은 거에요. 율법이. 인간이 불의한 것은 본인이 마음씨가 나빠서가 아니라 이 구조 자체가 나쁜 증상이고 징후에요.

자, 콧물이 난다 할 때 다음 중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1번 콧물을 먹는다. 2번 코를 잘라낸다. 몇 번입니까? 이게 1번도 아니고 2번도 아닌 이유가 코는 증상이기 때문에 증상. 사람이 불의한 것은 증상이에요. 마음씨가 나빠서 나쁜 짓하는 게 아니고 증상이라니까요. 어떤 증상? 율법이 율법 되기 위해서 그 안에는 모조리 불의해야 돼요. 그것이 율법과 선지자를 주신 이유입니다. 이 증상인줄 모르고 이 불의한 청지기는 자기 살 궁리 챙기는 거에요. 자기 살 궁리. 불의한 재물로 친구 삼아서 자기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살 궁리 찾는 거에요. 끝까지 불의하죠.

예를 들면 인간은 자기 구조를 모르고 본인 하는 것 증상인 것을 모르고 자꾸 구조도 생각 못하는 그런 한 예가 코미디 프로에 보면 이런 게 있어요. 어떤 남편이 출장 간다는 남편이 갑자기 출장 시기를 앞당겨서 허겁지겁 막 자기 집 안방에 들어왔어요. 와가지고 “거봐 거봐 하여튼 내가 집에만 없으면 이런다니까. 내가 집에 없을 때 행거에 옷을 바르게 걸어놔야지 안 그러면 옷 입을 때 구겨진단 말이야. 내가 뭐라고 했어. 내가 없을 때 옷 잘 챙기라고 했지.” 이렇게 했어요. 코미디입니다. 코빅이라는 그 프로.

그때 아내는 뭐하고 있느냐. 아내는 다른 남자와 자고 있어요. 다른 남자하고 같이 누워있다가 놀라는 거에요. 그런데 남편은 거기에 신경 전혀 안써요. 자기 행거에 옷만. “아저씨 비켜요. 왜 아저씨가 여기 있어.” 지금 내 옷 삐뚤은 것만 신경 쓰고.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앞으로 잘해 나 갈테니까. 아저씨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나가버리는 거에요.

율법이 구조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런데 인간은 아 바람피워서 되겠냐 이러고 있다고 지금. 그 구조 자체가 주께서 뭐를 보는지를 모르고 자기가 이 땅에 사는 것은 하나의 증상인데 감기증상 같은 거에요. 구조가 그러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거에요. 이 땅에서. 제가 아까 처음 시작할 때 뭐라고 했습니까? 모든 것에 뭐가 다 통한다고요? 매개체 뭐라고 했습니까? 재물이라고 했지요. 재물.

재물이 매개가 되가지고 끝까지 마지막에는 무엇과 무엇을 대비시킵니까? 하나님과 재물. 그 하나님과 재물 해놓고 그 다음에 나오는 게 율법 선지자 이야기가 나와요. ‘율법과 선지자’. 하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주었는데 그것은 뭐냐 하면은 모든 것을 율법이라는 구조 안에 모든 인간세계를 담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겁니다.

로마서 8장 7절을 한번 봅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라고 되어있지요. 이게 율법이잖아요. 율법이죠. 율법의 기능을 말하지요. 여기서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뭐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없어져야죠. 왜? 안된다는데.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어요. 뭐 이정도 돼야 기쁜 소식 아닙니까? 이 정도 돼야 기쁜 소식이죠. 이 정도 돼야.

그러면 율법을 지키겠다는 것은 뭡니까? 율법의 구조를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거에요. 무시하고 인간이 갖고 있는 선악체계 있잖아요. 착함. 이런 것을 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구조를 만드는 거에요. 구조를. 그리고 그 구조 만드는데 일조한 자가 누구냐 하면은 바리새인들입니다. 오늘 16장 14절 바리새인들. 바리새인들이 주로 하는 일이 율법으로 체계 만드는 거에요. 율법체계. 구조를 만드는 거에요. 구조.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었다 했죠. 그 당시 유대사회는 구조가 있어요. 그 구조의 제일 위층에 펜트하우스, 아파트 제일 높은 층이죠. 높은 층에 누가 살고 있어요? 바리새인들이 살고 있어요. 아래 내려다보고 사는 거에요. 그들은. 그들은 말합니다. 이것이 율법이고 선지자라고 그들은 주장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주께서 16장에 제일 먼저 나온 것은 불의한 청지기 딱 던지죠. ‘불의한 청지기’. 계속 불의해요.

그리고 불의한 청지기로 말미암아 성립된 것이 뭐냐 하면은 불의한 청지기하고 같이 달라붙어서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뭐지요? 재물. 그 재물은 무슨 재물입니까? 불의한 인간이 다루는 그 재물은 어떤 재물이겠어요? 불의한 재물. 참 쉽죠. 되게 쉬운 거에요. 인간 자체가 불의하니까. 그 인간 자체에서 나오는 재물도 불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야기가 어디까지 이어지는가?

16장 19절까지 이어집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벌써 낌새가 이 부자에 대해서 좋은 평 안주겠다는 뜻이죠. 지금 주님께서 물으시는 것은 그거에요. 부자가 인간성이 나쁘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돈이 많다는 거에요. 던지고 보니까 어려운 문제인데. ‘돈이 많다’가 이게 증상입니다. 무엇의 증상? ‘인간은 불의하다’를 보여주는 증상이에요.

인간은 구조 안에 갇혀있고요. 그 인간이 터트리고 표현하는 내뿜어내는 모든 것들은 현재에 있는 불의한 구조를 그대로 반영해주는 증상들입니다. 제가 증상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이유는 감기 걸리면 ‘콧물아 좀 흘러라’ 이런다고 콧물 나오는 게 아니에요. 콧물이 내 지시와 명령을 따르지를 않습니다.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콧물이 주르륵 열이 나고 기침 나는 거에요. 감기증상이 그래요. 그때 우리는 뭐라고 합니까? 감기 들렸다고 하지요.

내가 감기를 선택했습니까? 아니지요. 감기가 와서 쳐들어와서 나로 하여금 이런 증상을 드러내잖아요. 주님께서는 율법 지키라가 아니라 율법이 쳐들어오게 되면 이러한 증상들이 인간세계에 안 일어날래야 안 일어날 수가 없이 이게 나온다는 겁니다. 율법은 인간이 그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방식으로 율법의 진가를 드러내게 되어 있어요. 율법의 진가를.

그 예가 어디 나오느냐 하면은 18절에 나옵니다. 이거 하게 되면 분명해질 거에요. “무릇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림당한 여자에게 장가 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이렇게 되어있지요.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19장을 한번 봐야 됩니다. 여기 재미난 현상이 일어납니다. 19장 4절부터 하겠는데요. 미리 이야기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구조와 증상을 좀 따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보시면 돼요. 주님께서 인간의 모든 활동을 증상이라고 했지요. ‘증상’. 증상에서 뭘 따로 분리해내느냐 하면은 율법을 딱 분리해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주님께서. 너희들이 이런 이런 행동하는 자체가 거기서 그런 불의한 행동 속에서 뭐를 끄집어내겠다? 율법과 선지자를 뽑아내는 방식으로 주께서는 그렇게 활동하겠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믿으라가 아니라 그냥 가만 있어. 십자가에 내가 너희들 때문에 희생했다는 사실을 너희들의 불의한 행동 속에서 따로 뽑아낼게.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뽑아내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십자가 믿으라가 아닙니다. 가만있어. 내가 십자가로 뽑아낼게. 너는 그냥 불의한 증상만 보여란 말이죠. 그 증상 속에서 십자가 알갱이를 뽑아낼 테니까.

뽑아낸다니까 생각나는 게 있는데요. 정신분석학 책 중에서 정신병 걸린 사례들을 쭉 나열하고요 그 사례 하나하나에서 정신 분석 이론이 어떻게 딱딱 들어맞아서 치료가 되느냐 그런 책이 있어요. 임상 사례를 곁들인 정신분석학 책이에요. 프랑스 사람이 쓴 책인데 그 사례 중에 아주 흥미로운 정신병이 하나 있어요.

어떤 정신병 들린 여자 분이 병원에 입원해있는데 간호사가 이런 이야기했습니다. 환자가 “간호사님 저 오늘 무슨 약 먹으면 돼요?” 이렇게 하니까 간호사가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의사 선생님에게 물었어요. “의사선생님 이 환자에게 주사를 놔야합니까 알약을 줘야합니까?” 이렇게 하니까 그 의사가 “캡슐로 해서 먹이면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간호사 의사 둘 사이의 이야기잖아요. 그 소리 듣고 그 환자가 칼 들고 와가지고 의사 죽일려고 했어요. 의사가 상처를 입었어요.

나중에 안정되고 난 뒤에 물었어요. 왜 칼 들고 날 죽이려고 했습니까? 정신병 여자 환자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나를 캡슐 안에 집어넣어서 그 집어넣은 캡슐을 다른 사람에게 먹이려고 너희 둘이 작당을 했지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그 이야기 듣고 아까 말한 거 다시 들어보세요. “캡슐 안에 넣어서 먹이시면 됩니다” 할 때 캡슐 안에 들어가는 것이 본인 자신이라고 생각한 거에요.

이게 뭐냐 하면은 의료진은 그 사람에게 뭐를 뽑아낼려고 하는데 환자는 자기가 주인공이라는 거에요. 우습지요? 오늘날 인간들입니다. 전부 다. 주인공이 나라고 여기는 거에요. 그러니까 모든 인간들 정신병자들이에요. 주님은 우리 배제하고 일하잖아요. 그 배제하는 게 어디 나옵니까? 아까 로마서 8장 7절. 배제도 이런 배제 없지요. 육신은 누구 보고 이야기합니까? 정신병자 같은 우리. 육신의 생각은 율법을 지킬 수도 없고 지킬 능력도 없다.

다시 말해서 육신이 스스로 자기를 치료해서 구원받을 일은 없다는 것을 인간들이 설치고 있는 그 속에서 율법의 정신을 뽑아내려고 하는 거에요. 그 율법의 완성이 뭡니까? 십자가에요. 인간은 불의한 재물로 구성된 게 인간구조다. 그러면 율법의 구조는 뭡니까? 물으면 바로 그게 인간들이 자기가 돈 좋아하는 것을 감추면서 바리새인이 최고로 밝히는 사람 아닙니까 그 당시에. 예수님도 그랬잖아요. 바리새인보다 의가 더 낫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고. 바리새인들이 제일 위층에 있으니까.

하나님 하나님 하면서도 그들은 뭐를 못 이겨요? 재물이 총괄적인 매개가 되는 이 인간구조를 불의한 재물로 짜여진 인간증세에서 바리새인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벗어날 수가 없는 거에요. 내가 나를 바꾸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바뀌어지는 거에요. 바뀌어지는 것. 구조 때문에 우리는 못 바꾸지요. 그러면 새로운 구조가 오면 바뀝니까? 안 바뀝니까? 구조가 바뀌면 불의한 구조가 아니고 의의 구조 오게 되면 우리는 손 쓸 수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우리는 뭐 됩니까? 빠른 속도로 빛의 속도로 우리는 의인 되어버리죠.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뭐.

그게 로마서 5장에 나옵니다. 5장 17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왕 노릇 구조입니다. 죄가 왕 노릇하는 구조잖아요.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라고 되어있어요.

구조와 구조의 관계죠. 개인과 개인의 관계 아니죠. 개인의 성실 문제가 아니지요. 개인의 착함 문제가 아니지요. 20절 봅시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어떻게 한다? “더욱 더 더하게 하려 함이라” 이게 로마서 5장 20절에 나온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6장에서 이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에요. 예수님 이야기는 복잡하지만 복잡할 수밖에 없지요.

그때는 이미 율법구조, 인간들이 나름대로의 바리새인 주도하에 율법구조 체계 있으니까 복잡하게 가져갈 수밖에 없는 거에요. 불의한 청지기. 너희들 다 횡령했으니까 다 불의하지. 그 불의한 청지기가 너희들보다 더 지혜롭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처소에 자리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겠어요? 안 사귀겠어요? 바리새인들이. 안 사귀죠. 자기는 의로움이 있는데. 계속 주님께서는 윽박지르는 거에요.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불의한 청지기 보고 오늘날 교인들이나 오늘날 설교자들이 난감한 거에요.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말씀은 명령조고 명령은 지시에 따르라는 그런 식이거든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것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안사귀면 더 큰 것도 안준다 이러니까 불의한 재물 충성해야 돼 말아야 돼. 난감하지요. 작은 불의한 것에 충성치 않으면 큰 것도 안준다 하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나쁜 짓해서 천당가야한다 이런 논리인데.

“싫어요 싫어요. 천국 안가는 한이 있더라도 나쁜 짓하기 싫어요.” 이러고 있는 거에요. 주께서는 “놀고 있네. 지 주제파악도 못하면서. 그 이야기 아니야. 너 구조에 갇혔어” 라는 그 이야기란 말이죠. “너는 구조에 갇힌 거야 구조에” 아까 로마서 계속 봅시다. 20절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뭐가 넘친다?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죄를 죄 되게 뽑아주는 하나하나가 그게 은혜잖아요. ‘아 내가 이래서 죄 지은 구조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었구나. 이게 십자가구나.’ 십자가라는 것은 뭐냐 하면은 십자가로 뽑아줄 때 비로소 십자가에 눈이 뜨여져요. 십자가만 믿으면 되지. ‘주님 다음에 뭐 믿을까요? 십자가 제가 믿겠습니다.’ 이러면 눈 안 떠져요. 더욱더 죄인 되게 할 때. 율법이 있는 세계에서는 죄가 더욱더욱 더 증가하기 마련이에요. 왜? 불의한 재물이 매개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 하나님 해도 돈을 더 섬긴다는 것이 이미 이 세상에는 우리의 기본 증상이 되어있어요. 증상이라는 것은 내가 손댈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말이죠. 하나님보다 돈을 더 좋아하는 생리는 이거는 나이 들면 나이 들수록 계속 나오게 되어있어요. 나이 90 가까이 됐다고 나 돈 싫어 이런 인간은 없습니다. 더 밝히죠.

5장 21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영생 그렇게 안주겠다고 고집 부리시는 그 하나님. 창세기 24장에서는 아예 천사까지. 천사는 개거든요. “물어! 물어!” 천사를 풀어버려요. 풀어가지고 아예 영생 꿈도 꾸지 말라고 그렇게 호언장담하고 결심을 굳게 변동사항 없이 굳게 섰던 그 주님이 여기 보면 “영생에 이르게 함이라”

안 준다 해놓고 왜 “영생에 이르게 함이라” 이건 왜 마음이 회까닥 바뀌었어요. 주님은 마음 바뀐 적이 없어요. 구조가 바뀐 거에요. 구조가. 구조가 바뀐 거에요. 개인을 상대하지 않고 구조에 그냥 갇혀버린 거에요. 우리는 죄의 구조에 갇혔다면 우리는 의의 구조에 갇힌 거에요. 그게 유명한 찬송가는 아니지만 찬송가 비슷한 노래 있어요. 사랑의 밧줄로 꽁꽁 묶어라 묶어라. 나를 풀 수 없도록. 사랑의 밧데리. 사랑의 밧데리 채워줘요.

그게 요한복음 5장에 나옵니다. 베데스다 못. 자비의 못이라는. 베데스다 못가에 다 모였어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한사람 선착순 1등을 무조건 베푼다는 그 전설의 호수. 거기에 38년 된 병자가 오늘도 잊지 않고 지독한 사람. 공짜 되게 좋아하지요. 베데스다 못 특징은 뭐냐 하면은 일체 네가 뭐가 잘못되어서 저주처럼 병을 얻었느냐를 일체 묻지 않는 곳이에요.

자비의 출처는 우리의 죄를 끄집어내되 우리의 죄를 생산해서 끄집어낸다는 거에요. 죄 없다 하는 인간도 죄 짓게 만들어서 끄집어내는 것이 십자가의 시작입니다. 긍휼과 자비의 시작이에요. 구조 이야기했으니까 제가 준비한 그림 하나 그리겠습니다. 이 세상은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가? 이 그림 하나로 정리할 수 있어요. Sa,Sb,Sc,Sd 해놓고 대문자 S 인간은 너, 나, 그, 그녀 어떤 제 삼자 it 고만고만한 인간들 있지만 인간들은 이 인간들의 공통점을 가지고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은 고상하고 거룩하고 순결하고 대단한 어떤 인간인데 위대한 인간을 기다리고 있어요. 큰 바위 얼굴이죠. 큰 바위. 나, 너 인데 나, 너를 모든 것을 통합한 진짜 위대한 당신. 이것을 인간들은 초점을 모아서 고대하고 있습니다. 큰 대타자, 큰 당신, 큰 타자와 나 사이에 연결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인간들 세계에서. 연결점이 있지요.

언젠가는 우리나라 위대한 대통령 태어난다. 언젠가는 위대한 지도자가 와서 우리나라 잘됐으면 좋겠다. 자식이 5명인데 그 중 하나는 대단한 자식이어서 무너진 우리 집안 자존심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다 고대하고 기대하는 게 있잖아요. 나 말고 나보다 더 대단한 존재. 대표적인 것이 한석봉이죠. 한석봉 엄마죠. 불을 꺼라. 그게 제가 보기엔 아무리 봐도 공평치 않아요. 불을 꺼라 했으면 너도 글씨 쓰고 나도 글씨 쓰자 했어야 하는데 불 꺼라 나는 떡을 썰고 너는 글을 써라. 엄마는 35년 동안 재래시장에서 계속 떡만 썰었는데 이거는 눈감고 해도 도사지요. 불공평한 게임을 벌리는 거에요.

엄마처럼 되지 말고 너는 엄마를 능가하는 대단한 사람 돼야 돼. 이게 뭡니까? 이게 인간구조에요. 이 세상에서 사람을 이렇게 보는 거에요. 언젠간 지구를 구원할 의인이 올 것이다. 건담v라든지 독수리 5형제든지 크로스 하든지 어벤저스 나타나든지 있단 말이죠. 그런데 성경은 뭐냐 하면은 이것을 A 율법 죄에 갇힌 거에요.

죄에 갇혔다는 것을 모르고 인간은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어디에? 같은 인간들의 동료들의 지혜와 용기에 그들의 성공에 박수칠 준비를 하면서 새로운 신약 개발 박수칩니다. 새로운 물리학 원칙 박수칠 준비되어있어요. 우리의 희망이니까. 그러나 이 자체가 뭐냐? 불의한 세계에요.

10분 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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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6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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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