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05b 울산강의-역대기상(20강) 17장 12절 : 동전판
20230505b 울산강의-역대기상(20강) 17장 12절 : 동전판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강렬한 타인으로 나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 그 강렬한 존재가 율법으로 이미 세상을 결정났어요. 율법 밖에 다른 현실은 없으니까. 율법에 의하면 땅에 피 흘리는 것은 주님께서 용납을 안 합니다. 제거대상이에요. 그게 어디 나오느냐? 율법에 나와요. 레위기 17장 4절에 보면, “(무릇 이스라엘 집의 누구든지 소나 어린 양이나) 염소를 진 안에서 잡든지 진 밖에서 잡든지 먼저 회막문으로 끌어다가 여호와의 장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아니하는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라 그가 피를 흘렸은즉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하나님의 백성은 없습니다. 왜 없느냐 하면 인간은, 인간에게 하나님은 없어요. 인간은 처음도 자기뿐이고 끝도 자기뿐이에요. 우리 자신을 제대로 좀 압시다. 우리는 처음도 나를 위해서, 에요. 끝도 나를 위해서, 에요. I am looking (전치사) a person. 영어선생 앞에서 미안합니다만 영어에서 for라는 것이 흔히 ‘위하여’라는 말이 있다 하잖아요. 맞아요. 그 말 말고 ‘교환’이란 의미가 있어요.
내게 유리한 것 주셨으니까 당신을 위해서 Thank you for라 하지요. looking for 그다음에 또 하나 ‘방향’인데 교환과 같은 뜻으로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시니 당신한테 제 성의를 표합니다. for라고 이야기해요. 또 뭐가 있느냐 하면 ‘~동안’이란 그런 뜻도 있어요. Thank you for your help. 당신의 도움에 나한테 도움을 준 것에 대하여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for 들어가지요.
인간은 인간에게 있어서 출발점이 자기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려고 한 게 언제냐 하면 하나님이 나한테 잘해줄 때, 그때 하나님을 믿을 용의가 있다는 거예요. 물론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만들어놓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암몬, 모압 나라. 암몬은 이스라엘, 지중해 있고 여기 갈릴리 바다 있고, 사해 있는데 모압, 암몬이거든요. 지금은 요르단이란 나라에요. 위에는 시리아고. 붙어있어요.
암몬 나라에서 몰렉이란 신을 섬기고 모압 나라에서 그모스라는 우상을 섬기는데 이 몰렉, 그모스의 특징이 뭐냐 하면 인신공양이에요. 죽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게 아닙니다. 산 사람을 바치는 거예요. 왜? Thank you for 감사하기 때문에. 신에게 감사하고 또 내가 이렇게 성의를 표했으니까 신 쪽에서도 내 소원을 들어주라고 내가 성의껏 희생과 정성을 다 보여주는 것, 이게 하나님이에요. 이게 우상이잖아, 하지 마세요. 모든 인간은 인간이 끄집어내는 신은 다 우상입니다. 자기한테 손해 보기 위해서 신을 믿는 게 아니고 이익을 보기 위해서 신을 믿어요.
그렇다면 for라는 건 방향이니까 출발점은 나에게서 나오거든요. 그러면 보세요. ‘나’가 여기 있고 ‘신’이 여기 있다면 내가 신에게 나아갈 때 여기 무엇이 만들어지느냐 하면 여기서 어떤 법칙이나 법이나 규칙을 만들어요. 규칙, 법칙 누가 만듭니까? 내가 만들지요, 내가. 내가 왜 만듭니까? 내가 행할 수 있거든요. possibility, 내가 행함이 가능하거든요. 내가 가능한 행함을 나는 규칙으로 만들어놓게 되면 그 규칙에선 내가 해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뭐냐? 의인이 되고 착한 사람이 되고 착한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나한테 복을 주겠어요, 안 주겠어요? 주겠지요. 그게 뭐라고요? 그게 신이 아니고 뭐라 했습니까? 우상이죠.
이스라엘 주변에 모든 나라가 이스라엘 율법에 의하면 뭘 믿는 나라입니까? 하나님 여호와를 믿어요, 우상을 믿어요? 우상을 믿지요. 그러니 여호와 하나님, 우상 다 떼면 남는 게 뭐냐? 신을 믿고 있는 민족이 신을 믿는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스라엘은 죽자고 누구한테 기도하겠어요? 여호와한테 기도하겠지요. 그러면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도대로 승리케 합니까, 승리케 안 합니까? 질문 곤란하지요. 승리 안 했다 하기도 뭐하고, 승리했기도 하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승리케 합니다. 하고 이스라엘을 버립니다. 이스라엘로 승리케 하고 이스라엘을 버려요. 특히 이스라엘 왕이 누구에요? 다윗이죠. 전쟁에 승리한 영웅이 누굽니까? 다윗입니다. 그 다윗을 하나님께서 버립니다. 너는 하나님과 함께 할 성전 짓지 마. 왜? 전쟁한다고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아까 첫째 시간에 봤지만 레위기 17장에서 땅에는 절대로 피를 흘려서는 안 돼요. 그러면 고기 잡지 말란 말인가. 염소고기 먹지 말고 소고기 먹지 말란 말인가? 잡을 때는 반드시 뭘 경유해야 되느냐 하면 성소, 제단이 있는 곳을 경유해야 돼요. 그게 레위기 17장 14절 말씀이에요. 뭘 잡거들랑 푸줏간에서 뭘 잡더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제단을 경유해서 잡아야 돼요. 그 이유가 뭐냐? 이스라엘은 촘촘히 율법으로 바둑선이 그어진 나라거든요. 더 알기 쉽게 이 한 마디만 하면 여러분 확 올 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표로 인간나라와 전쟁하고 있어요. 확 오지요.
하나님이 전쟁할 때 내세운 법칙이 뭐냐? 율법이에요. 그 율법으로 전쟁을 합니다. 그래서 이 율법을 지키지 못한 인간들은 사그리 point 점이 돼야 돼요. 다 죽어야 돼요. 더 이상 인간이란 말을 붙이면 안 돼요. 나 인간이다, 란 말을 하면 안 돼요. 나름대로의 개성 있고 나도 꿈과 희망이 있고 나름대로의 포부와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 소리하면 안 돼요. 그냥 물체야. 너는 흙덩어리야. 사람 아닙니다. 그냥 쇠붙이와 똑같은 거예요. 그냥 바둑돌처럼 돌멩이에 불과한 거예요.
이스라엘이 지가 거할 땅 없다고 다른 이방민족의 땅을 뺏을 때에 그때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불렀어요. 여호와를 불러서 그들은 몰랐습니다. 여호와를 부르는 이것이 이방나라가 우상을 부를 때 그 심정과 똑같은 심정이란 사실을 그들은 상상도 못했어요. 우리는 여호와 부르니까 괜찮은 거고, 저들은 몰렉이나 그모스 우상 섬기니까 나쁜 거고 이렇게 착각한 거예요. 큰 착각이었던 겁니다. 둘 다 본인들 살기 위해서 불러놓고 자기들 여호와의 뜻을 맞췄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그다음에 사무엘 선지자 오니까 사무엘 선지가가 기도해서 전쟁에 이겼거든요. 사무엘상에 나오지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뭘 오해하느냐 하면 이것은 우리나라 이스라엘을 사랑해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의 기도를 응답하사 우리에게 승리를 줬다고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러니까 사고방식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어떤 입장이냐는 전혀 생각 못하고 자기만 행복하면 그만인 거예요. 자기의 꿈만 달성하면 그만이에요. 그래서 그걸 여호와 믿는 참된 신앙이라고 우기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무엘 죽고 난 뒤에 그들은 뭐가 생겼습니까? 빈터에요. 이 머리 상처 나서 머리카락 빠져버리면 뭡니까? 숲속의 빈터가 되지요. 중간에 빠져버리면. 이게 뭐냐? 기계충이라 하지요. 드라마에 나오는 영구 없다. 젊은 사람들 아나? 옛날 드라마. 빈터가 생긴 거예요. 왜? 사무엘이 늙어가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또 다시 자기를 대신해서 전쟁 승리하게 해줄 그러한 효과 있는 선지자 찾다보니까 사무엘 자식들에게 주목했어요. 교회 세습하겠다는 거예요. 한데 보니까 영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러니까 그다음에 사무엘상 8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뭐라고 사무엘에게 윽박지르느냐 하면, 당신의 하나님에게 부탁해서 우리에게 뭘 달라? 왕을 달라 했어요. 짝짝짝~ 드디어 이스라엘이 바로 이방민족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훅하고 폭로된 순간입니다. 그 순간이.
어떤 인간도 하나님을 아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 폭로되고 탄로 나는 순간이에요. 원래 인간이 이래요. 남 욕할 것, 이스라엘 욕할 것 없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원래 이래요, 인간은. 아쉬울 때 찾는 게 신이에요. 그게 우상이고 신이고.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걸 채워달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들이 왕을 찾는 것은 바로 내가 왕 됨을 거부하는 것이다.” 내가 왕 됨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보시면 돼요. 이스라엘 자체가 하나님과의 전쟁에 돌입해서 하나님을 내쫓았다고 보시면 되는 겁니다. 그 내쫓은 자리에 들어온 왕이 누구냐 하면 사울 왕이고요. 그 사울 왕을 대신해서 들어왔던 왕이 누구냐 하면 다윗 왕이에요.
모든 인간들은 자기가 행할 수 있는 법칙만 죽자고 쥐고 있는 거예요. 내가 생각한 착한 일에 내가 충실했으니까 설마 나를 지옥 보내겠나, 이것만 생각해요. “내가 성심성의껏 하나님을 섬겼으니까 설마 지옥 보내겠나.” 그런 사람에게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뭡니까, 율법이 뭡니까? 몰라요.
티비에서 오늘 낮에 영화를 봤어요. 흑백영화를 봤어요. 1960년대 영화인데 구봉서가 주인공이고 문희가 여자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에요. 영화제목은 어린이날 특집이라고 옛날 한국영화 틀어줬는데 1969년도에요. 시골에 있는 애가 서울에 수학여행 와서 모든 게 신기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 내용이 나와요. 시골에 있는 아이들이 서울에 와서 높은 빌딩건물, 차 많이 다니는 것, 어느 것 하나 신기하지 않은 게 없는 너무너무 신기해서 기거에 완전히 푹 빠져있는 영화입니다. 거기에 아이들 좋아해요.
자, 제가 묻습니다. 이 시골 아이들이 자기를 비웁니까, 아니면 자기를 채우고 있어요? 어느 쪽입니까? 서울에 와서 너무 서울이 살기 좋다고 기뻐하는 아이들이 기쁨과 행복감이 자기를 비우는 거예요, 자기를 채우는 겁니까? 자기를 채우는 거예요. 모든 인간은 그렇게 살아갑니다. 모든 인간은. 21세기 모든 인간은 자기를 비워내기 위함이 아니고 더더더더,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 더 돈 많은 것, 더 행복한 것,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출세하는 것, 계속 채우는 데 급급하고 있어요. 자기를 비워내질 않습니다.
자기야망을 채우는 데 모자라니까 교회 와서 기도하는 거예요. 성의껏 열심히 할 테니까. 율법이 뭐냐? 율법이 뭔지 몰라요. 율법은 우리를 제거하는 거예요. 율법은 우리를 저주하는 거예요. 심판하는 겁니다. 어떻게 심판하는가? 창세기 3장에 보면 여러분 아시다시피 생명나무 멀쩡하지요. 선악과나무는 훼손 되서 선악과 따먹은 인간들은 쫓겨나갔지요. 창세기 3장에서.
생명나무와 인간들 사이에 뭐가 있지요? 뭔가 생명나무를 둘둘 돌면서 지키는 게 있지요. 뭡니까? 심판의 불이죠. 율법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을 불로 태우는 게 율법의 기능입니다. 뭘 지키기 위해서? 생명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선악과 따먹은 이 세상을 완전히 선악과부터 해서 이 세상을 불로 태워요. 그래서 천국에는 선악과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천국에는 생명나무만 있어요. 선악과는 없어요. 주께서 훼손된 것은 불로 심판해서 없습니다. 이게 율법이에요. 율법 외에 다른 현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방금 이렇게 이야기한 것을 신약에선 이렇게 이야기해요. 신약성경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인간이란 없습니다. 인간은 없고 뭐만 있느냐 하면 성령 받은 자와 악령 받은 자, 악센트가 강조점이 성령에 있고 악령에 있어요. 신약에는 성령과 악령의 싸움입니다. 인간은 빠져요. 성령이 승리해서 속한 사람은 성령 받은 자고, 악령이 승리한 자는 그대로 있는 자는 악령에 속한 자에요. 신약에서는 인간의 기능은 없어요. 없습니다.
첫째 시간에 이야기한 걸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해서 하나님의 자기의 속성을 다윗에게 주는 거예요. 주게 되면 다윗은 한국에서 롤러코스트 타고 싶어서 환장한 아이처럼 하나님께선 다윗과 함께 시간을 만들어가는 거예요. 다윗의 자손이 등장하는 그 순간 드디어 천국이 만들어지는 그 순간이에요. 롤러코스트를 타기 위해서 걸어 다닐 때까지 이태리에 롤러코스트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애가 이태리에 당도할 그때에 롤러코스트가 이태리에 생기는 거예요.
이것을 가지고 다윗언약이라 하는 거예요. 이것을 다윗이 발견한 거예요. 알게 된 거예요. 이게 다윗을 통해서 만들어내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다윗도 다윗을 빈자리 만드는 거예요. 자, 빈자리 만드는 방법, 적을게요. 하나님은 자신의 자리를 빈자리로 만들어 거기에 백성들을 만들어서 집어넣는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리를 따로 빈자리로 만들어요. 뭐로? for ~향하여, ~위하여, 어떤 방향성을 줘요. 그 방향성이 하나님에게는 방향성이 하나밖에 없어요. 그게 뭐냐 하면 오른손이에요. 하나님의 전쟁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빈자리를 만드는 거예요. 하나님 스스로 전쟁을 통해서 빈자리를 만들고 그 빈자리에 전쟁의 전리품들을 여기다 집어넣는 겁니다.
그 이야기가 어디 나오느냐 하면 출애굽기 17장에 나옵니다. 9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이렇게 돼 있지요.
자, 묻습니다. 이 전쟁은 누구의 전쟁입니까? ①산 밑에 싸우는 여호수아의 전쟁, ②산 위에 지팡이 들고 있는 모세의 전쟁, ③지팡이의 전쟁, 몇 번입니까? 모세가 위에서 명령하니까 야 2연대 빨리 빠져야지, 모세가 위에서 명령합니까, 어떻게 해요? 안 하지요. “아하 내가 지팡이 하려니까 힘들다. 쉬었다 하자.” 이럽니까? 모세가 쉬지를 못해요. 왜? 주변에 아론과 훌이 모세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뭐가 중요합니까? 지팡이가 내려가면 안 되니까 지팡이를 올리지요. 그러면 지팡이와 모세 사이에 강조점이 어디 있어요? 지팡이입니까, 모셉니까? 지팡이지요. 그럼 모세 자리는 뭐냐? 모세가 빠져있는 자리가 지팡이의 자리가 되는 거예요. 그게 빈자리에요. 주께서 성도를 빈자리 만드는 이유가 거기 있어요. 우리를 하나의 모세로 만드는 거예요. 왜? 하나님의 자기 속성을 집어넣어야 우리가 하나님과 동일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선 다윗에게 “성전 짓지 마. 성전은 네 후손이 짓는 거야.” 그러면 성전 담당자가 누굽니까? 이것 참 질문도 어렵다. 하나님께서 다윗보고 “성전 짓지 마, 너는 못 지어. 너는 이 땅에 피를 많이 흘렸어. 그럼 성전은 네 후손이 짓는 거야.” 오늘 본문에 나오지요. 성전 담당자가 누구냐? ①다윗, ②솔로몬, ③다윗의 자손, 몇 번입니까? ③번이죠. 로마서 1장에 나오잖아요.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잖아요. 왜냐하면 이 다윗의 자손에 뭐가 빠지느냐 하면 다윗이 빠지고 그다음에 솔로몬이 빠집니다.
왜냐하면 한국에 있던 롤러코스트 좋아하는 애가 몽고 지나다가보니까 몽고에 큰 롤러코스트 있어요. 그래 이것 타고 이태리 롤러코스 포기해야지, 이럽니까? 아니지요. 솔로몬이 돌로 멋진 성전 만들지요. 그게 성전의 최종 모양새입니까? 아니지요. 솔로몬이 그 성전 지었다고 해서 인간이 구원받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솔로몬 성전은 왜 짓는가? 비워지라고, 깨어지라고, 물새라고. 나는 왜 죽는가? 내가 죽어야 내 고집과 꿈이 날아갈 것 아니겠습니까. 나를 죽이는 그 현장이 바로 천국이에요. 내가 죽어가는 내가 비워지는 현장, 내가 사라지는 현장이.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어라 이 말이에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뭐하고? 부인하고. 다른 말로 하면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없애고, 자기를 부정하고 나를 따라오너라. 그것이 다윗에게도 적용되고 솔로몬에게도 적용되고 저와 여러분에게 다 적용되는 말이죠. 이게 감격이에요. 이게 감격과 고마움과 감사였다 이 말입니다.
자기를 비우는 이것은 비단 다윗뿐만 아닙니다. 이게 창세기 17장에 나오는 또는 15장에 나오는 할례 있잖아요. 그 할례 할 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찾아오는, 복잡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간단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뭐든지 제단을 경유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저주하겠다는 거예요. 아까 배웠지요. 저주는 어떤 경우에 생긴다? 저주는 하나님과 무엇과의 전쟁, 하나님은 누굴 상대로 전쟁합니까? 인간을 상대로 전쟁할 때 하나님이 제시한 율법에 준하지 아니하면 그 인간은 뭐 받게 돼 있어요? 저주받게 돼 있어요. 사그리 죽어요.
그런데 이 일을 누가 했느냐 하면 이스라엘이 이방민족과 전쟁할 때 이방민족은 이스라엘한테 사그리 죽었어, 다 죽었어요. 이스라엘과 푸틴의 러시아와 전쟁하면 러시아 군대 어떻게 됩니까? 사그리 죽어요. 죽을 때 이스라엘이 이렇게 오해한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 편이어서 하나님이 우릴 도와줘서 적들을 이겼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편 아니었어요. 자기 언약 편이었고 자기 율법 편이에요. 왜? 세상은 율법 외에는 다른 현실이 없기 때문에.
그 율법이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아브라함의 할례언약에서 나왔잖아요. 아브라함언약에서 나왔다 이 말입니다. 할례언약이 나왔단 말은 아브라함언약에서 모세언약이 나온 거예요. 한국에 있던 학생이 롤러코스트 타기 위해서 서울에서 출발하잖아요. 출발하면서 처음에 만난 게 아브라함언약 만나고 중간에 모세언약 만나고 그다음에 오늘 본문에 다윗언약 만나고, 마지막에는 무슨 언약? 마지막에는 무슨 언약입니까? 마지막 새 언약 만나는 거예요.
그런데 아까 하나님 뭐든지 제단을 경유하라 했지요. 이 제단에 뭐가 있느냐 하면 율법을 완성시키는 피가 있어요. 레위기 17장에 이 피를 가지고 뭐냐? 생명이라 했어요. 제단에서 생명이 기다리고 있는데 기다리고 있는 생명의 모습이 뭐냐? point에요. 하나의 죽는 모습이에요. 누가? 제단에서 희생제물이 죽는 모습이에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죽는 모습이에요. 피 흘린 모습이거든요.
누가 읽어볼까요? 레위기 17장 11절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율법의 완성인 생명 나오면 율법 완성된 겁니다. 율법 지키라 해서 생명 아니잖아요. 율법의 마지막 도달점이 생명입니다. 생명나무에 도달점이 돼야 율법이란 말이죠.
생명나무 있는데 여기 두루 도는 불이 있지요. 여기는 인간 있지요. 하나님이 자기 속성을 어떻게 한다? 처음에 속성을 주고, 되돌아오는 방식으로 이 생명나무를 주어먹게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주실 때 이 코스가 이 노선이 뭐냐? 율법 노선이라니까요. 롤러코스트 찾아가는 노선이에요. 생명을 얻게 한 노선이 율법이란 말이죠. 그럼 율법에게 생명이 있다는 말은 왔다 가면서 거룩한 희생제물 되신 분이 뭘 흘리느냐 하면 피를 흘리는 거예요.
그 피를 흘리는 장소가 뭐냐 하면 성전이 되는 겁니다. 솔로몬이 건물 짓는다는 성전이 아니에요. 성전은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이 스스로 비워진 그 빈자리, 하나님의 빈자리에서 완성하기 위해 오신 분이 피를 흘려줘야 피 흘린 자리가 뭐다? 그게 성전이 되는 거예요. 그 피가 있으면 뭐가 있다? 생명이 있는 거예요.
그 피를 그 십자가 피를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게 되면 우리 안에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이뤄낸 것이 아니고 열심 낸 게 아니고 하나님이 스스로 완성시킨 요소가 우리 안에 들어오면 그 피가 우리를 잡아당겨서 천국에 이르게 하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구원이라 하는 거예요. 들어보니 되게 쉽지요.
그 과정 속에서 율법에 의해서 피기 때문에 반드시 그 피를 율법에 포위되어서 율법에 둘러싸여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거예요. 찾아오니까 그 율법을 마주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가 행한 모든 것은 율법에 합치 되지 않는 것들만 계속 우리에게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제거대상이 되는 거죠. 율법에 의해서 제거대상이 되고 저주받아야 되죠. 그래서 신약에서는 뭐냐? 성령과 악령의 싸움에 인간은 끼어들 수가 없습니다. 그냥 가만있어. 내가 성령 주면 천국이고, 성령 안 오면 없으면 그냥 율법에 의해서 저주받지요.
그러면 천국이란 것은 성령이 오게 되면 율법대로 못 사는 우리를 주께서는 제거하고 지워버리죠. 빈자리를 만드는 거예요. 내 자리가 빈자리로 만든다 이 말이에요. 눈부신 태양빛에 정면으로 바라보면 여태 내가 본 것들이 다 뭐가 됩니까? 다 허상이 되는 거예요. 다 꿈이 되는 거예요. 꿈은 해석되지 않는 걸 꿈이라 합니다. 꿈이 해석되면 뭐가 되겠어요? 현실이 되는 거죠. 바로 그 해석자가 누구냐? 다윗이에요. 하나님은 다윗을 보내서 꿈같은 이 세상에 정답을 이야기해주는 거예요. 누굴 통해서? 다윗을 통해서.
그럼 이제 다윗을 생각해봅시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입니다. 이스라엘 왕 맞지요. 두 번째,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왕 자리가 빼앗깁니다. 세 번째, 다윗은 뭐가 되느냐? 왕 자리 빼앗겼으니까 빈자리가 됩니다. 네 번째, 그 빈자리에 율법의 완성자가 왕으로 오셔서 이스라엘을 완성시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감 잡았지요. 다윗은 이스라엘 왕입니다. 그 당시 백성들 보기에 이스라엘 왕이에요.
자, 배운 것 복습해봅시다. 다윗은 이스라엘 왕이죠. 백성들은 다윗을 왕으로 생각합니까? 무엇에 승리했기 때문에? 전쟁에 승리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전쟁에 승리한 다윗을 뭘 했다합니까? 피를 이 땅에 많이 흘렸다고 돼 있지요. 이 땅을 더럽힌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왕 자리를, 그러니까 백성들은 다윗 왕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고자 이렇게 해서 전쟁 승리했다고 착각했는데 인간 눈에 보이는 다윗 자리를 없애버린 거예요. 없애버리니까 다윗을 통해서는 천국을 갈 수 없는 거예요. 구원될 수 없는 거예요. 전쟁은 승리했는데 나라는 있는데 하나님께 갈 수가 없는 겁니다.
세 번째, 바로 그 점, 다윗 자신이 내가 왕이 아닙니다, 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다는 사실을 본인이 접수해요. 내가 성도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성도가 되는 겁니다. 나 같은 게 뭔 천국을 가, 하는 순간 천국의 백성이 되는 거예요. 왜? 주님께서 말씀으로 내가 행한 어떤 것도 나는 율법에 합당하지 않고 주의 말씀에 부합되는 게 없음을 까발려주셨으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단 거예요. 죄인을 부르러 온 거예요.
그래서 여기 히브리서 봅시다. 아까 첫째 시간에 멋도 모르고 54분까지 했기 때문에 두 번째 시간은 약간 짧게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1절 누가 크게 읽어보세요.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보세요. 제사장들이 계속해서 제사 드려도 온전한 용서가 된다, 안 된다? 안 되는 거예요. 시키는 대로 양 잡고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사장들이 늙어죽어요. 그들이 또 연약하고 흠이 많아요. 그 이야기거든요.
왜 그런 이야기합니까? 몽골이나 헝가리나 롤러코스트 스톱하면 안 된다 이 말이죠. 이태리까지 가야 되잖아요. 중간에 뭘 배우느냐?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내가 얼마나 모자라고 내가 얼마나 엉터리고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나는 내 이익만 챙기는 인간이란 것을 계속해서 그걸 주께서 복음으로 율법으로 까발려주는 거예요. “나 아닙니다. 주님, 제 행함으론 아니에요.”라는 말을 계속 해내는 거예요. 그렇게 사용하시는 거예요. 왜? 내가 아니라 나는 사라져도 내 자리는 남아야 되니까. 내 자리가 나로 하여금 나를 죄인으로 만들어내는 거예요.
내 자리가 무슨 자리입니까? 율법의 완성 자리죠. 제사장들이 부족하고 못났더라도 제사장들은 뭐냐? 율법으로 제사장 됐잖아요. 제사장도 마찬가지지만 다윗의 후손들도 계속 왕이에요. 왕인데 왕 되도 잘리고 왕 되도 나라 망하고 왕인데도 불구하고 좀 된다 싶으니까 또 엉뚱한 짓하고. 그게 유다의 왕들, 열왕기, 역대기에 보세요. 왕들이 좀 섬기고 한다 해서 되나 싶은데 나중에 뭡니까? 끝에는 우상을 섬기고 어떻게 나오죠.
솔로몬이 아까 모압과 그모스 우상이라 했지요. 솔로몬 말년에 얼마나 우상 섬긴다고 우상제단들을 많이 만들어놨는지.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라를 둘로 쪼개졌잖아요. 솔로몬은 성전 만든 사람입니다. 솔로몬은 메시아가 아니에요. 우리와 똑같아요. 제대로 율법대로 못 삽니다. 이거는 솔로몬뿐만 아니고 모든 인간이 다 그래요. 뭐 성경을 공부한다고 해서 그것이 온전한 사람 아닙니다. 성경을 알면 알수록 내가 온전할 수 없음을 아는 거죠.
성경을 안다는 것은 강렬한 태양빛을 눈부신 태양빛을 받는 순간 내가 살든 죽든 이거는 나와 무관한 일이란 사실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죠. 내가 죽든 살든 그것과 나와 상관없다는 것, 내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나와 상관없다는 것, 내가 실수를 하든 멋지게 성공하던 그게 주님과 무슨 상관이에요. 나는 제거대상인데 없어지는 기쁨이 있어야 돼, 없어지는 기쁨.
수학여행 온 시골 아이들이 서울에서 본 것, 보면 볼수록 그 아이들이 무슨 꿈을 꾸겠습니까? “선생님, 저도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 가서 출세할래요.” 자기 야망과 야심과 욕망만 키울 뿐이란 말이죠. 왜? 한 번 봤거든. 서울이란 동네를 봤거든요. 제가 그런 예를 들었는데 시골에서 조그마한 예배당에서 제일 주목받는 사람이 누구냐? 오르간 치는 시골의 아가씨에요. 왜? 오르간 치기 때문에 앞에 앉았잖아요. 그래서 그 동네 모든 총각들이 교회 나오면 오르간 치는 아가씨가 이뻐서 전부 다 예배드리는지 아가씨 보는지 다 쳐다보고 있다고.
송창식이란 사람이 불렀던 노래에 이런 게 있어요. 있지요. 들어본 적 있어요? 온 동네 총각들이 담배 가게 아가씨가 예뻐서 그걸 쳐다봤다는 거예요. 송창식이 가사 지을 때는 원래 담배 가게가 아니고 와이셔츠 가게였답니다. 그건 중요한 문제 아니니까요. 온 동네 총각들이 담배 가게 아가씨를 쳐다봤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상상해봤어요. 그 동네에 담배 가게가 한군데 아니고 열군데 있다면 열군데 전부 다 예쁘다면 그 총각들의 시선은 분산될 거예요. 지금 뭐냐 하면 담배 가게가 한군데 밖에 없기 때문에 그 아가씨만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골에 있던 총각들이 나중에 서울에 취직하러 인천이나 구로공단이나 서울 갔다. 그래서 대기업이나 기업에 들어가서 안정됐다. 그래서 강남에서 좀 놀았다. 그러고 난 뒤에 십 년 뒤에 다시 명절에 고향 교회에 예배 참석할 때 오르간 치는 아가씨 좋아하겠어요? 역시 물이 다르구나, 물이 달라. 왜 그래요? 서울 가서 자기를 비웠어요, 더 채웠어요? 더 채웠지요.
인간이 하나님 믿는 것은 하나님을 라이벌로 여겨서 그래요. 내가 하나님처럼 더 대단하고 더 완벽하고 더 온전한 사람 되고자 하는 라이벌로 여겨서 하나님 믿는 거예요. 좋으신 하나님, 착하신 하나님, 이 말은 뭔 뜻입니까? 나도 언젠가는 당신처럼 될 거야, 하는 그래서 하나님 믿지 않고 스스로 설 수 있는 라이벌로 여기는 겁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성령 아니면 악령. 오백 원짜리 동전 판 아니면 백 원짜리 동전 판. 모든 인간은 입 다물라. 입 다물고 내가 홀로 다 이뤄놓고, 주께서 홀로 율법을 이루시고 그다음에 그 빈자리를 채우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이 벌여놓은 그 빈자리,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빈자리를 만들어놓고 이 빈자리를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출애굽기 15장 6절,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주의 오른손, 하나님의 for에요. 하나님의 방향성이에요. 하나님은 한쪽만 바라봐요. 오른쪽만 보는데 아들이 있는 쪽이 오른쪽이에요. 왜냐하면 아들이 권능을 행사하니까, 오른쪽. 아버지와 아들의 오른쪽, 예수님이 이 율법을 이뤄서 예수님이 권능으로써 모든 인간을 상대로 전쟁을 다 성취하셔서 뭐가 되시느냐? 왕이 되셔요.
누가 왕이 된다했어요? 예수님이 왕이 됐어요. 꽉 채워진 왕이에요. 이 땅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생명의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다음에 생명 누구한테 주느냐, 안 주느냐는 누구 손에 달렸습니까? 바로 예수님 손에 달렸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기가 왕이 되시고 주가 되실 때 도움 줬던 그 성령, 성령을 주게 되면 이거는 예수님 갖고 있는 영이나 성령이 도달한 그 인간의 영이나 똑같은 속성의 것을 받게 됩니다.
율법 완성을 주님만 이뤘다는 걸 받게 될 경우에 나는 율법을 완성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킨 적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자가 그게 누구라고요? 그게 바로 완전한 이스라엘이 되는 거예요. 이 모든 말씀을 다 이룬 것이 그 사람의 빈자리에 꽉 차 있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겁니다.
나의 의와 하나님의 의와의 이 전쟁, 지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전쟁에 휘말렸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전쟁은 뭐냐? 자기의 자존심 건 전쟁이에요. 내가 얼마나 출세하는지 봐라. 내가 얼마나 성공하고 아버지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드리는 훌륭한 자식이 되겠다는 되지도 않은 전쟁, 허풍과 허세뿐인 전쟁, 그 전쟁과 하나님이 나를 그 허세와 허풍을 날마다 제거시켜주고 내 꿈대로 뜻대로 안 되게 해주는 데서 오는 감격, 그 고마움, 물 막 새고 비 막 새고.
모든 것이 다 날아가도 좋소. 상관없다는 그것. 그것을 끝으로 말씀드립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내가 너희에게 성령을 주노니 너희는 땅 끝까지, 그다음에 뭐라고 돼 있어요? 땅 끝까지 누구의 증인? 나의 증인 아니지요. 나 잘남의 증인 아니지요. 누구의 증인? 예수의 증인이 되리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더는 우리 자신의 잘남을 나타내는 증인되지 말고 나를 못난 존재로 만들어주신 그 주님의 증인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