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평해주십시요.(펀글)
유대인들이 성경을 보는식으로 성경을 풀이하면 꼭 이렇게 논리가 전개됩니다.물론 그들은 예수님라는 항목에'메시야'라는 단어를 집어넣겠지만.어쨌든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창조와 인간의 범죄와 메시야의 구원과 새 하늘 새 땅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위함입니다. 따라서 '회복'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 '예수님의 주되심을증거'라는 취지가 들어가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주부가 라면을 끓이면서 생라면도꺼내놓고 파도 꺼내놓고 날계란도 꺼내놓고, 냄비도 꺼내옿았습니다.그리고 날 계란을 '탁' 깨서 냄비 속에 놓으니,냄비 속의 계란이 하는 말이, "라면이라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 날계란에서 한 때는깨진 계란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라면 속에 익힌 계란이 되었구나. 따라서 나는 라면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린다. 이 펄펄 끊는 라면 안에서 마음껏 문화사명을 발휘해서 계란의 맛을 이 라면 전체에 스며들도록 지시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열심히 노력해야지. 이것이 계란이 주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계란의 본분이며 성화야"라고생각할 것입니다.그러나 계란의 사명은 라면 속에서의 자신의 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이 라면을 조리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그 '어떤 주부'이고 예수님이십니다.왜 많고 많은 계란 가운데 나만 뽑혔는가?왜 지옥가야 될 계란도 꼭 있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라면 속의 계란 의식'으로는 풀리지 않습니다.전체적으로 평해서 '구원론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면 안된다는 겁니다.거기에는 '자기 부인이 성립하지 못합니다.그러면 어떻게 성경을 봐야하는가? 예수님의 '주되심'의 관점에서 성경을 봐야 합니다.그렇게 되면 창세기 1장부터 시작 되는 전체 성경 하나 하나에서 예수님의 활동성이 묻어나올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 인간이 역사과 성경을 해석하는 것과 예수님 중심으로 해석하는 사이에엄청난 자존심의 타툼이 늘 드러난다는 바로 이 점을 말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회개하는 용도가 되는 겁니다. "내 구원 중심으로 성경을 본 것을 용서하소서. 주님"이라고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