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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구 5월 17일 강의 녹색세계사강의[신학]

대구 5월 17일 강의 녹색세계사

이름 : 이근호(IP:)

003 20040517

http://media.woorich.net/신학강의/2004대구/대구040517녹색세계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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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IP:220.♡.176.150)

09-04-29 18:51

교재

79. [ 녹색 세계사 ] 클라이브 폰팅 저 이진아 역 그물코(서울:200)

사람이 산다는 것이 곧 같이 망하는 코스인 것을 누가 감히 짐작이라도 했겠는가! 인간들의 살고자 하는 등살과 더불어 생태계는 역으로 인간의 목을 철저하게 죄고 있다. 원래 자연은 죽어도 같이 죽게 되어 있다. 인간만 살수 있는 그런 자연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짧게 보면 진보이다. 길게 보면 그 진보, 진보의 연속이 모두가 멸망으로 이어져 당겨진 연쇄고리였다. 이 책은 그동안의 긴긴 인류 역사를 결산해 본 책이다. 갈수록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인류의 현 처지를 더 이상 부인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왜 처음부터 수렁이었는가?

인간이 살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농업에 손 댈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 농업의 시작부터 생태계를 죽이는 행위이고 더 나아가서 인류를 죽이는 짓이다. 농업이란 인간이 원하는 작물과 동물을 기를 인공 서식지를 만들기 위해 자연 생태계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생태계 본래의 균형과 거기에 내재한 안정성은 파괴되었다.

이를테면 다양한 식물군과 영구적인 토양 보호막 대신의 집중적으로 소수의 작물이 일년 중 얼마 동안 토지를 덮게 된다. 토양은 전에 없이 바람과 비에 노출되어 자연 상태의 생태계에서보다 훨씬 심한 토양 침식이 일어나게 된다. 자연의 재순환 과정 또한 손상되어, 적절한 비옥도를 유지하려면 퇴비나 거름을 따로 주어야만 한다.

관개농업은 강우량에 의존하는 건조지 농업보다 더 인공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임으로 더욱 붕괴를 촉진했다. 척박한 토양에 많은 물을 댄다는 것은 일부 작물을 자라게 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는 토양에 나쁜 영향을 준다. 관개 시설을 통과한 물은 지하수맥이나 우물로 빠져, 이런 곳의 수위가 높아지면 토양이 물에 잠기게 된다. 물의 양이 늘어났기 때문에 토양 안에 포함되어 있는 광물질 성분도 변하게 되어 토양 속 염분의 양이 늘어난다.

더운 지대에서는 토양의 수분이 빨리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 결과적으로 토양의 염분이 계속 누적되면서 땅 위에 두꺼운 소금층을 이루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경까지 된다. 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물을 너무 많이 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관개를 하고 밭을 충분히 휴경을 해주는 것이다.

초기의 사회는 증가하는 사제, 지배자, 관리, 군인과 장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데 힘썼다. 식량 생산이 어려워지고 작물 수확량이 감소하여 사회 내에 재분배할 식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초기의 도시 국가나 제국의 기반 자체가 흔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기의 염분화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지면 다른 땅에다 곡식을 재배한다.

늘어나는 인구와 점점 잦아지는 전쟁을 감당할 군대를 부양하기 위해 더 많은 식량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새로운 토지를 갈아야 하지만 아무리 관개 시절이 발달해도 경작지로 쓸 수 있는 토지의 면적은 제한되어 있다. 도시 국가가 외부의 침략에 무너지는 시기는 토양의 염화가 전 지역에 퍼져 작물 수확이 감소되는 시기와 일치한다.

1930년대 초반 소련에서는 정부가 도시에 우선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고, 또 공업화에 필요한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수출했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굶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현대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살펴보면 유사한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다. 깊이 따져보면 기근의 원인은 인간과 식량의 관계가 농경이 출현한 시기부터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과거 수렵 채취인들에게 식량은 교역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내에서 나누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주 농경 사회가 성립되면서 토지와 식량에 관한 소유권이라는 사고방식이 생겨났다. 이런 사회들은 또한 제한된 곡물 생산에 의존했기 때문에 실패의 가능성도 높았고 만일 실패하면 그 사회의 사회 빈곤층은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1315~1317년 중세의 대기근에서 볼 수 있듯이 식량의 절대량도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근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 즉 고대 사회의 기근에 대한 기록을 보아도 식량 분배가 불평등해서 기근이 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각지의 식량 가격에 대한 정보가 상인들 사이에 교환되기 시작하면 식량 분배의 문제는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식량을 취급하는 상인들은 상품을 시장에 내지 않고 가격이 더 오를 때까지 쌓아두거나, 좀더 비싼 가격으로 팔 수 있는 지역에 가져다 팔았다. 그 결과 가격이 뛰어서 식량을 사지 못한 사람들의 불만은 상인들을 향하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사회 불안을 우려하는 정부가 중요 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식량 공급을 안정시키기 위해 시장에 개입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도 로마 시대부터 근대 초기의 유럽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는 것은 보통 공정 가격을 설정하는 정도에 그쳤다. 정부가 스스로 식량을 사들이거나, 상인들에게 식량을 시장에 공급하라고 강제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이런 정부의 개입은 오히려 상인으로 하여금 식량을 매점매석하도록 하는 역효과를 낳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 사회뿐 아니라 최근 수세기 이전까지 세계 각지의 모든 사회는 작은 집단을 이루며 자급자족했다. 상품을 교역할 시장이 없는 상태에서 세속 지도자와 종교 엘리트들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장인과 예술가를 고용하거나 후원했다. 이러한 사회는 대개 농경 사회였고 어쩌다 교역이 이루어져도 주로 지배층을 위한 사치품에 국한되어 있었다. 중세 유럽의 봉건 사회에서 초기에는 토지를 파고 사는 일이 거의 없었다. 돈보다는 군사적인 봉사의 대가로 교환하거나 임대했다.

토지 시장은 수세기에 걸쳐서 매우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 노동력 시장은 있었지만 자유 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노동 시간과 임금, 도제 기간과 생산량 등 노동력을 조정하는 일은 주로 길드가 하는 것이었으며, 고용주도 노동자도 길드를 형성하고 있었다. 상인도 있었지만 그 역할은 미미했으며, 수요 공급에 따라 가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각 물품 사이의 정해진 관계에 의해 시장이 이루어졌으므로, 이익도 가격 차이가 아니라 물품의 회전에서 발생했다.

1100년경 유럽에서는 이탈리아 북부나 플앙드르 지방 등 보다 발전된 지역에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하여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교역이 확대되었고 상인의 수가 늘어났으며, 은행이 발달했고 토지 시장도 꾸준히 증가했으며, 노동력도 사고 파는 상품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교역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었으며, 노동력 시장도 임금이 제한되고 이동의 자유가 제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통제되고 있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 행위에는 사회적인 압력이 가해졌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영국 등지에서 자유로운 토지, 노동, 자본 시장이 형성된다. 당시로서는 이것이 대단히 새로운 행동 양식이었으며, 가치 사회 조직의 혁명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이런 변화를 처음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왜 그런 변화가 필요한지 밝힌 사람은 애덤 스미스이다. 따라서 그를 근대 경제학의 시조라고들 한다.

그의 [국부론]은 영국에서 새로운 경제 조직법이 마련될 무렵인 1776년에 출판되었다. 그는 생산자든 소비자든 모든 개인은 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윤을 좇아 행동하지만, 전체 사회에 가장 유익한 결과를 산출할 수 있는 경쟁을 통해 조절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회란 지속적으로 투자가 행해져야 생산성이 더 커지며, 그에 따라 각 개인이 점점 더 부를 축적하는 등 전체적으로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 역시 18세기 유럽에 퍼져 있었던 믿음, 즉 인간 사회는 반드시 진보하게 되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물질적인 부를 낳는 것이 바로 사회가 좋아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이런 이런 주장을 한다면 여기 중요한 가치관들이 많이 빠져 있다고 반박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당시에는 이런 생각은 상당히 영향력이 컸으며 그후로도 지금까지 계속 영향을 미쳐 왔다. 애덤 스미스 뿐 아니라 리카도, 존 스투어트 밀 등도 상품 생산이 경제의 중심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경제학이라는 것이 탄생하는 된 출발점부터 이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생산의 조직, 즉 생산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토지, 노동과 자본 등)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를 연구하는데 집중했던 것이다. 스미스의 이론, 즉 수용와 공급의 균형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어, 그 가격에 의해 자율적으로 조정되는 경쟁적인 시장에 대한 이론이 실제에 있어서도 생산과 수요를 맞추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200년 동안 고전 경제학의 가설들이 서구 산업 사회를 풍미했다.

하지만 고전 경제학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었다. 이 점은 마르크스주의, 후생 경제학, 케인즈 학파와 급진적인 자유주의 경제학 등 좀더 현대적인 이론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이론은 자원의 고갈이라는 문제를 무시한 채 서로 경쟁하는 다양한 힘 사이에 어떻게 자연을 분배할 것인가 하는 부차적인 문제만을 다루었다. 치명적인 결점은 지구의 자원을 자본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나무, 야생 동물, 광물질, 물과 토양을 매매하고 개발되어야 할 상품으로 보았다. 공기와 같은 것은 무한정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아예 시장 메커니즘의 고려 대상에 넣지도 않았다. 이 이론은 지구의 자원이 희귀할 뿐만 아니라 한정되어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간과했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전혀 고려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론에 기초한 경제 체계는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자원을 가능한 한 많이 써 버리도록 권했다.

고전 경제학은 물질이나 에너지 자원이 고갈되지 않으며, 경제는 전반적으로 영원히 향상되어 갈 것으로 생각했다. 자원의 총공급량이 한정되어 있는 게 현실인데도 그것을 모르고, 어떤 물질이나 에너지 자연이든 아무리 써도 계속 공급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런 체계 안에서는 현재의 가격, 즉 경제 활동의 수준이 미래에 어떤 문제에 부딪치게 될지를 고려할 방법이 없다.

실제로 고전 경계학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행동은 당장 자신에게 이윤이 얼마나 많이 남는지를 따져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권하고 있는데, 이런 행동에 후세를 고려할 여지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연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소비한다는 것은 우리의 후손이 그것을 쓸 수 없다는 매우 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1930년대 등장한 케인즈 이론은 국가의 경제 활동 수준을 측정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제시했다. 이 이론은 정부가 경제에 있어서의 수요를 통제하여 완전 고용을 유지할 수 잇다는 것을 보여 주어 환영을 받았다. 새로운 경제 수준 측정법이란 국민총생산(GNP) 개념으로, 생산, 소비, 투지의 총량을 계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보통 어떤 사회의 경제가 얼마나 성공적인가 하는 것을 평가하는 데 GNP가 증가하는 속도를 본다. 하지만 GNP를 정의하는 방식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 GNP는 경제 활동의 모든 면을 포괄하지 못하며, 그것을 산정하는 방식도 경제 활동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보여 준다.

GNP는 한 경제 내에서 특정한 금전적인 흐름만을 측정한다. 따라서 '지하 경제'는 포함되지 않고, 물물 교환이나 자족주의 농경, 가사 노동이나 자원 봉사와 같은 비금전적인 활동도 포함되지 않는다. GNP 측정은 또한 생산하는 과정 때문에 사회가 치러야 할 대가, 즉 공해 유발, 교통 마비와 같은 문제나 주택 보급이 저하, 높은 범죄률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 항목은 가격을 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개의 경제 모델이나 가격 메커니즘에서는 '외부적인 것'의 범주로 취급해 버린다. GNP 개념은 앞으로의 계속적인 성장이라는 장기적인 관점은 고사하고, 한 시점에서 그 수준이 실제로 바람직한 것인지 혹은 지속적인 것인지조차 고려하지 않는다.

20세기초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현재 제3세계로 알려진 국가들의 경제와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다. 미국도 뒤늦게 출발하여 점점 더 그런 영향력을 발휘했다. 제3세계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자체 시장을 위해 자급 자족으로 식량을 재배해 왔으나 이때쯤에는 세계 경제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것은 유럽과 유럽인들이 경영하는 식민지, 그리고 미국이었다.

여러 지역에서 차례로 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 이런 과정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추구되었다. 제3세계 경제 개발의 실제 모습은 다른 나라를 위해서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정치적 통제, 경제적 압력, 투자, 시장의 힘 등이 혼합된 강력한 사회적 장치를 통해서 강제되고 관리되었다.

여기서 재배되는 작물은 유럽과 북아프리카에 사는 사람들의 식단의 사치를 위한 것(설탕, 커피, 차, 코코아, 바나나)이거나, 이들 국가의 공장 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것 (목화, 고무, 야자유)이었다. 아런 공장들을 가동하는 선진국에게 있어 개발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즉 다양한 공장들이 지어져서 점점 더 번창해지며 사람들의 소비 수준이 올라가는 것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종속적인 식민지 경제들은 몇 가지 상품, 어떤 경우에는 단일한 상품을 중점적으로 재배하는 형태로 재구성되었다. 다양한 농업은 점점 단일한 재배지로 바뀌었고 이는 환경, 특히 토양과 생물학적 다양성의 손상이라는 점에서 큰 피해를 주었다.

'서구'라고 불리는 세계의 한 부분(유럽, 북아메리카, 백인 식민지)이 '개발'되어 온 과정과 '제 3세계'라고 불리는 여타 부분이 '개발 도상'으로 남겨지는 과정은 별개의 현상이 아니다. 그들은 뗄래야 뗄 수 없게 얽혀있다. 유럽이 만들어 낸 세계 시장에서, 한 지역이 막대한 잉여 생산물과 천연 자연을 다른 지역으로부터 뽑아 쓸 수 있게 되었다.

서구가 독점하는 경제의 특징은 자본 집약적인 상품의 생산,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이윤 등이며, 한편 작물, 원재료, 광물 자원이 생산에 집중된 종속적인 경제는 낮은 자본의 집약도, 저임금, 저이윤을 특징으로 한다. 종속된 식민지 경제도 개발되었다고는 하나, 이것은 거의 본국의 수요 때문에 생긴 것이다. 철도와 유통망이 형성되기는 했으나, 그것은 주로 내륙과 항구를 연결하는 수출용인 경우가 많았다. 각 지방간이나 서로 다른 정치적 통치를 받던 식민지간의 연결성이 거의 없었다.

제 3세계의 정치적인 독립도 경제적인 독립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경제는 공업국이 지배하는 세계 경제에 묶여 있었고, 대개 식민 당국이 결정한 경제 구조도 바꾸기가 힘들었다. 몇몇 국가들은 이러한 덫을 피했다. 일본처럼 정치 경제적인 독립성을 유지했던 지역이나 한국과 대만처럼 유럽의 식민 지배를 모면했던 지역, 중동 지방의 산유국처럼 선진국이 요구하는 막대한 자원과 적은 인구를 가진 지역, 홍콩이나 싱가포르처럼 중계 무역을 하던 국가들이다.

독립 후에도 제3세계의 개발 모델은 공업화, 자유 시장, 국제 경쟁을 강조하는 서구의 모델에 기초한 것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렇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인도나 브라질 같은 소수의 국가만이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런 나라들에게도 분배의 불평등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제3세계 대부분의 국가들, 특히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국가들의 유일한 선택은, 소득과 수출을 늘리기 위해 상품 작물과 광물의 생산성을 늘리는 것뿐이었다. 이러한 선택의 문제점은 생산이 늘어남에 따라 가격도 낮아지고 임금도 낮아지며, 소수의 상품에 의존함에 따라 취약성도 커져 경제적으로 더욱 불안정해진다는 것이었다.

경제 개발을 위해 추진되었던 프로젝트 중에도 터무니없거나 그 지역에 오히려 악영향을 주는 것들이 많았지만, 어쨌던 잘 살아 보려고 개발 계획은 세우고 거기 필요한 자금을 선진국에서 빌린 경우에는 사정이 더욱 악화되었다. 이집트나 베네수엘라 같은 국가에서는 19세기에 벌써 국가 채무를 구실로 외세에 점령당하거나, 채무를 갚기 위해 국가 수입을 내주어야 했다.

제3세계에서 이러한 발전에 의해서 혜택을 받은 사람은 다수의 대중이 아니라 선진 공업국에 밀착되어 있는 엘리트층이다. 이러한 불균형한 발전의 결과는 선진 공업국과 제3세계 양자 모두에 크다란 영향을 끼쳤다. 세제자원에 대한 정치적인 통제력을 통해 선진 공업국은 자원의 압박 없이도 살 수 있었다.

자연은 즉시 공급되었고, 급증하는 인구와 소비의 급증을 감당하기 위한 식량이 수입되었기 때문에 물질적인 생활 수준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그러나 이런 성취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 부분 제3세계 사람들이 착취, 가난, 인간적 고통이라는 형태로 대가를 치렀기 때문이었다.

19세기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다른 작물보다도 식량을 재배하는 데 토지를 사용하게 되었고, 모피 동물이 대향 살육되면서 이러한 자연에도 압력이 가해졌다. 20세기에는 화학 물질로부터 인공 섬유를 만들어 내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전세계 인구에게 옷을 입힐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복잡한 생산 기술에는 더 많은 자원과 에너지가 소비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수요가 늘어나면서 물품이 부족해지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새로이 자연을 이용하는 현상은, 필기구와 경우에도 나타난다. 먹을 식량을 얻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농업 생산성이 낮았던 중세유럽(중국도 마찬가지이다)에서는 동물을 먹여 살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가축도 많이 키우지 못했다. 따라서 동물 가죽으로 만드는 양피지나 송아지피지도 아주 조금밖에 없었다.

필기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열등한 재질로 여겼던 나무 펄프로 만든 종이로 대체하게 되었다. 그 결과 더 많은 숲이 사라졌고 종이 생산량은 급속히 늘어났다. 이것은 유럽에서 나무가 부족해지자, 채굴하는 데 힘들고 운송과 사용이 어려워 열등한 연료로 여겼던 석탄을 때게 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에너지 수요가 계속 더 증가하자 더욱 복잡한 공정을 필요로 하는 해저석유자원까지 개발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새로운 기술의 발명과 더욱 복잡한 생산 과정, 그리고 더 많은 자원을 이용하게 된 것을 진보라고 볼 수도 있다. 인류 사회가 인간의 재능과 능력만으로 도전을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그들의 욕구에 맞추어 환경을 제어하고 수정하는 능력이 늘어난 것이라고. 그러나 생태계의 시각으로 보면, 진보란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더 복잡하고 환경적으로 해로운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20세기, 특히 후반 수십 년 간의 정치, 사회, 문화를 돌이켜보면 개발에 대한 실망감이 강해지고 환경의 보호와 보전에로 관심이 높아지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환경 문제가 국내와 국제 정치에 반영되었고, 농업, 공법 규제, 공해와 개발 기금 등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의 정책에 대한 시민 운동이 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의 흐름, '자연계'를 인간과는 별개의 세계로 보아 그것이 인간에게 개발되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지난 200년 동안 서구인들의 기본 철학에 뿌리 박혀 있는 사고 방식을 완전히 없애 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공업화나 경제 성장이 환경 개선에 우선하는 것으로 보는 경제적인 발상법 역시 바꾸어 놓지는 못하고 있다.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의 증가나 시민 운동의 성장은 실제로 큰 변화를 유도하지 못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환경 파괴를 줄이기 위한 몇 가지 대책이 국내외에서 제기되었다. 산성비와 CFC 방출을 줄이려는 국제 회의들이 그 예다.

하지만 야생 보호 대책을 별개의 영역으로 취급한다거나, 어는 정도까지는 공해를 인정해 준다거나, '과학적인' 포경은 허용한다거나, 자원을 할당하지 않고 목표량을 세운다거나, 유기 농업에는 거의 지원을 하지 않으면서 집약 농업에는 더 많은 보조금을 댄다거나 하는 일련의 대책은 그 성격상 뭔가 새롭고 달라진 태도의 첫걸음이라기보다는, 기준의 경제 체계를 보호하려는 태도로 해석된다. 일부나마 성과도 있기도 하고(대도시에서의 석탄 매연 규제 등)그나마 없던 것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볼 때 대부분의 대책은 표면상의 것에 불과하다. 계속적인 인구 증가로 인한 강력한 요인, 식량을 증산하기 위한 더 많은 토지의 필요성, 세계 공업 팽창에 따르는 수요 등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대책의 결과는 전세계적으로 볼 때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전세계가 공업화를 향해 돌진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명백하다. 농업 생산이 점점 커지고 차츰 집약적으로 되었듯이 공업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이처럼 인류는 계속해서 극복하기 힘든 과거를 미래의 세대에게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 평 가 :

살고 싶어 최선의 노력을 다 기우려도 어차피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 개인이라면 그 개인의 노력으로 이 세상을 희망적인 세계로 치장한다는 것은 어떻게 해도 사기다. 전체를 보는 안목을 가지고 이 사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

관리자(IP:220.♡.176.150)

09-04-29 18:53

녹취록

대구040517녹색세계사

04 대구강의 03 - [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 저, 이진아 역, 그물코(서울:200)

04,05,17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 십자가가 뭐길래 ??

오늘은 ‘녹색 세계사’ 라는 책에 대해서 하겠는데, 이것을 하고 나서는 코플스톤의 ‘중세철학’ 이라는 책을 하고, 그 다음에는 얼마 전에 사이트에 올린 켄 월버의 ‘아이 투 아이’ 라는 책을 하겠는데, 혹시 제가 올린 글을 보셨나요? 두 장의 분량에 맞추기 위해서 조금 빡빡하게 썼는데, 다시 교정을 보려고 하는데 얼마나 머리가 아프든지 말이다. 결코 만만한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신학과 철학의 허상’ 이란 코너를 통해서, 그래도 조금은 알아준다고 하는 여러 책들을 서평한 글을 가지고서 계속해서 공부를 해오고 있는데, 그런데 이렇게 ‘십자가’ 라는 안목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본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 과연 이 세상을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십자가로 모으는 것이 말이다.

만약에 그렇게 반발이 들어온다고 하면 여러분은 과연 어떻게 대응을 하겠느냐는 말이다. 즉 2000년 전에 저기 멀리서 예수라는 청년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일을 가지고서, 그렇게 다양한 인류 역사의 전부를 팍팍 쑤시면서 해석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과연 그렇게 이야기할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달랑 그 십자가 하나에 말이다.

◈ 인간자체가 이미 어떤 영역에 !!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그렇게 십자가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고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존재 자체가 이미 죄에서 나왔고, 그렇게 죄에서 나왔기 때문에 자기 죄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장(場), 즉 어떤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런 영역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자기가 죄인인지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즉 이미 ‘죄’ 라는 영역에 들어있기에 말이다.

인류역사 무엇인고 하니, 죄와 의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뱀의 후손이 무엇이냐고 할 때, 그것은 여자의 후손과 대결상태에 있을 때, 그것이 바로 뱀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 아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공격하는 자가 바로 뱀의 후손이고 악마의 후손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를 가지고 인간의 모든 문화를 공격할 수 있느냐고 했을 때, 물론 공격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십자가라는 것은 어떤 청년이 달랑 매달린 것만 가지고 십자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십자가 속에는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간의 영원하고 지속적인 싸움이 들어있는데, 물론 영원한 것이 아니라 뱀의 후손이 나중에는 박살나지만 말이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담겨있기 때문에, 십자가를 이 세상이 퍼트리는 것은 그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 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의의 차원에서 말이다. 그리고 골로새서나 에베소서에 보면, 예수님의 의의 통치가 분명하게 나와있기에, 십자가를 가지고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 왜 신학만으로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렇게 십자가를 가지고 이 세상문화를 공격할 수가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성도라고 해서 반드시 그런 십자가의 안목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저의 대답은 당연히 그렇게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목사님, 신학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할지 몰라도, 그러나 그 신학자체가 철학에서 나온 것이고, 그런 철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간들이 하는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신학만 가지고 해서는 안 되고, 십자가의 안목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의 안목을 가지고 신학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제가 보기에 거짓말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십자가를 알면 신학만 손대지 않는데, 즉 모든 분야에 다 손을 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십자가를 안다고 하면서 신학만 언급한다면, 그런 사람은 심히 수상한데, 자기 나태함에 대한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아니, 그렇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십자가를 가지고 이 세상의 경제, 정치, 문화, 그리고 언어학, 고고학, 물리학 등등, 그 모든 분야의 것을 다 지목할 수가 있다고 했는데, 과연 그러한지 ‘녹색 세계사’ 라는 책을 통해서 한번 살펴보자는 것이다.

먼저 교재를 보겠는데, 1페이지 하단을 살펴보자.

** 1930년대 초반 소련에서는 정부가 도시에 우선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고, 또 공업화에 필요한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수출했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굶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여기에 “1930년대 초반 소련에서는 정부가 도시에 우선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고” 라고 하는데, 이것이 십자가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역대기에 나오는 전쟁 이야기하고 십자가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신문을 !!

이게 무슨 의미인고 하니, 같은 성경에 나오는 전쟁과 십자가를 연결시키는 것도 그렇게 힘이 드는데, 하물며 1930년대 초반 소련에서는 정부가 도시에 우선적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것과 십자가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칼바르트가 그러한 이야기를 했는데,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에는 신문을!” 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제가 오늘 아침에 동아일보를 보니, 12살을 먹은 아이가 그만 거식증이 걸려서, 성적도 점점 떨어지고 이젠 밥도 싫다는 것이다. 그 다음 장에 보면 골프 이야기가 나오는데, 김미현이 우승했다는 기사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다음 장에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이야기가 나오고 말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김미현이 골프를 잘치는 것하고 십자가하고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이다. 제가 벌써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같은 성경에 있는 역대기의 전쟁과 십자가를 연결하기도 힘이 들고 벅찬데, 하물며 김미현의 골프와 십자가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제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세상과 십자가를 연결시키는 것이 더 쉽다는 말이다. 즉 역대기가 여기에 있고 십자가가 이렇게 있다고 하면, 역대기도 인간의 삶이고 십자가도 인간의 삶이란 것이다. 그렇게 삶에서 역대기가 나오고 삶에서 십자가가 나왔다고 하면, 이 십자가를 가지고서 현재 인간의 삶인 골프나 다른 것을 연관시킬 수가 있다는 것이다. (??)

◈ 소련에서, 정부가 도시에 우선적으로 식량을 공급하는 이유는?

그러므로 1930년대 초반 소련에서는 정부가 도시에 우선적으로 식량을 공급한다고 하는 것은, 일단 국가가 배급제를 시행했다는 말이다. 배급제란 일단 개인 소유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렇게 누구에게 주고, 누구에는 주지 않는다는 말은, 권력을 가진 자가 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666과도 비슷하다는 말이다. 즉 이마나 손에 도장이 찍힌 사람들에게만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자격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곧 인간 위에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할 것 같은, 그런 또 다른 인간집단이 있다는 말이다. 즉 인간 위에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들이 그러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과연 정당하냐는 것인데,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과연 의롭다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애굽나라의 경우에 !!

그것은 출애굽을 할 당시에 애굽인들이 히브리인들을 구박하는 것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아무튼 저는 그렇게 본다는 것이다. 그러면 애굽이란 나라는 히브리인들을 왜 구박했는가? 그것은 “너희들에게는, ‘국가’ 라고 하는 너희들보다 더욱 높은 단체가 있다” 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셔서 “하늘의 별과 같이 자식을 생산하라” 라고 했는데, 그런데 그것을 바로 왕이 가로막는데, 즉 히브리인들의 출생한 아이를 조사해서 남자아이들은 죽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언약에 의해서 복을 주어서 자식들을 잉태케 했는데, 그런데 이것을 애굽의 왕이 나타나서 가로막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는가?

그것은 바로 인간세상 위에 또 다른 인간 세상이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러면 여자의 후손은 어디로 가는가? 결국 인간역사 속에 개입하게 되는데, 인간역사는 그 포장을 뜯어보면 둘만 있는데, 즉 십자가가 있는 쪽과 없는 쪽인데, 그래서 십자가가 없는 쪽이 있는 쪽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십자가와 관련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요?

◈ 왜 십자가로 이 세상을 고발해야만 하는가?

어제 오후시간에도 언급을 했지만, 애굽나라가 왜 장자가 죽는 심판을 하나님으로부터 받는고 하니, 그것은 순전히 히브리인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즉 히브리인들과 애굽인들을 결부시키는 작업 때문에, 애굽사람들이 그렇게 팔자에도 없는 고생을 한다는 말이다.

왜 우리가 십자가를 가지고서 이 세상을 고발해야만 하는가? 그 이유는 아직도 이 세상에는 여자의 후손을 따르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자기가 국가를 경영하든지, 회사를 경영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그런 것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여자의 후손을 공격하기 위한 하나의 우회적인 방법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내용이고 말이다.

요한계시록에는 구조가 두 계층으로 되어있는데, 하나는 하늘의 계층인데, 그것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이미 규정이 되어버렸는데, 즉 모든 것이 자기 자리를 잡고 있다는 말이다. 뱀의 후손과 그를 따르는 자들은 지옥불에서 훨훨 타고 있고, 그리고 여자의 후손을 따르는 자들은 천국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어린양과 영원히 산다는 것이다. 그들의 위치는 이미 고정되고 확정되었다는 말이다.

◈ 이 세상에서는 천국과 지옥이 반대로 !!

하지만 이것은 하늘의 계층의 일이고, 그런데 밑에 있는 땅의 계층에서는 이것이 역전이 되어서 혼란스러운 상태라는 것이다. 마치 뱀의 후손이 뱀의 후손이 아닌 것처럼 나타나는데, 즉 엉터리 교회와 엉터리 국가의 엉터리 왕들이 등장하면서, 마치 천국에서 사는 것처럼 권세를 부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자의 후손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같이 고난을 받고 설움을 받고, 목 베임을 당해서 죽임을 당하고 말이다. 그러니 마치 지옥의 모습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1장을 보면, 악마의 후손들이 복음을 전했다고 두 선지자를 죽여버리는데, 그것을 잘했다고 하면서 서로 축하의 선물을 보내고 말이다.

(계 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그런데 이런 요한계시록이 무엇을 이야기하는고 하니, 이렇게 비참한 모습이 나오는 아래계층이 바로 지금의 현실사회라는 것인데, 그러므로 이미 성경 속에는 이 세상문명에 대한 고발이 다 들어있다는 말이다. 즉 십자가로서 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 힘들이 모아져서 ‘국가’로 !!

우리가 다음과 같은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 세상의 모든 과학과 문화와 문명이 어디로 초점이 맞추어지는고 하니, 그러한 힘들이 모으고 모아져서, 즉 영화의 영화대로의 힘이 있고, 야구는 야구대로의 힘이 있는데, 하지만 그런 힘들은 쪼가리 힘인데, 즉 모자이크처럼 나누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힘들이 모으고 모아져서 국가의 힘으로 집약이 된다는 것이다.

◈ 갑자기 웬 문재인 ??

혹시 ‘문재인’ 씨를 알아요? 경상도 거제출신으로 변호사이지 싶은데 말이다.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는 변호사의 경우에는 어떤 일이 생기면 그 사람을 변호해주고 변호사협회가 최고의 권력인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변호사협회는 국가권력으로 집약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노무현 내각에 보면 교수출신들이 많은데, 교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그것도 역시 국가권력과 연결이 되어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효자동 이발사나 효녀동 미용사도 그럴 것이고(ㅋㅋ), 그리고 의사들이나 약사, 또한 한의사의 경우에도, 그들이 파업을 하면 결국은 보사부의 국가권력과 연관되고, 모든 것이 다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한 권력이 좋아 보이니 목사들도 나서서 기독교 정당을 만들고 말이다. 물론 0.1퍼센트의 득표를 얻어서 개망신을 당하고 말이다. 법에 의하면 0.3퍼센트 이하는 정당자체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 권력은 반드시 더 높은 곳을 향해서 !!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것인데, 즉 그렇게 쪼가리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쪼가리 권력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권력은 반드시 더 높은 곳을 향해서 나아가는데, 그러면 그쪽에서 가지고 나오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국회에서 이발사 출신의 국회의원이 5명이라면 미용사협회에서 가만히 있겠는가? 자기들도 국회의원을 만들려고 기를 쓰는데, 즉 이발사나 미용사가 따로 노는 동네가 아니라, 일단 국회에 들어가 보면 어느 당에 이발사가 몇 명이 있고 미용사가 몇 명이 있는지 서로 살펴보면서, 그만 정당싸움이 된고 만다는 말이다. 우리는 환경운동이라고 하면, 쓰레기를 치우고 좋은 일을 하는 줄 아는데, 하지만 그것이 나중에 녹색당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만 권력싸움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1930년대 초반 소련에서는 정부가 도시에 우선적으로 식량을 공급하고” 라고 하는 이 짧은 문구가 결코 십자가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권력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과연 어떤 차원에서 고발을 해야 하는가? 그것이 바로 뒤에 나온다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살펴보자.

** 또 공업화에 필요한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서 수출했기 때문에, 농촌에서는 굶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마치 오늘날 우리 농민들이 걱정하는 것과도 똑같은데, 현재 농촌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없으니 그만 노동력의 엄청난 취약성을 초래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농촌에서는 더욱 더 기계농업과 손길이 적게 가는 특수작물에 취중을 하게 되는데, 물론 그 자금은 농협에서 융자를 받던지 빚을 내어서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빚을 내게 되니, 판매량이나 수출 등이 유지가 되어야 하고 말이다.

그렇게 되려면 국가에서 다른 나라와 협상을 잘해주어야만 하는데, 그런데 현재 국가에서는 어떻게 하는고 하니까, 농산물을 하나의 희생물로 삼아서 핸드폰이나 자동차를 잘 수출하도록 협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더욱 더 고부가가치 상품이라고 여기기에 말이다. 그러니 공업을 살리기 위해서 농업을 죽이는 형태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국가권력의 한계라는 것이다.

◈ 땅은,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치 못하고 척박해져 !!

여기서 지금 이 책의 저자가 하는 말이 무엇인고 하니, 제 아무리 공업화를 추진하려고 해도 상대적으로 농민들은 그만 죽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원인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바로 이런 점에 대해서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저자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즉 “땅은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치 못할 정도로 점점 더 척박해져갔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도시인구이든, 농촌인구이든, 또한 그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던지 간에 말이다. 물론 여기서 ‘공업화’ 라는 것은 그냥 공장을 짓고 물건을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농업의 공업화도 포함이 되는데, 그렇게 되니 점점 더 땅의 자생적인 생산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깊이 따져보면 기근의 원인은 인간과 식량의 관계가 농경이 출현한 시기부터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 땅을 망치는 것은 농업도 일조를 !!

여기서 저자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기근의 원인은 인간과 식량의 관계가 농경이 출현한 시기부터” 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니 저자가 보기에 농경생활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인데, 즉 농사를 짓는 것이 바로 땅을 죽이는 짓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농업자체가 땅을 두 번 죽이고 세 번 죽이라는 일이라는 말이다.

제가 이 책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던 것이 바로 이런 점인데, 흔히들 땅을 망치는 것을 농업이 아니라 공업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하나밖에 이 지구를 살리려고 하면 농업을 장려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인데 말이다. 그런 상식을 완전히 뒤엎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설쳐서 망쳐놓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과거 수렵 채취인들에게 식량은 교역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내에서 나누는 것이었다.

여기서 “교역하는 것이 아니라” 라는 대목이 중요한데, 사람은 자기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자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데 교역이 되어버리면, 즉 무역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이런 교역은 자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즉 자연과 관계가 없는 것이 인간들에서 이미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결국 자연은 황폐화시키고 조져놓는다는 것이다.

◈ 우리 집 강아지를 주려고 ??

예를 들어서, 날을 잡아서 뷔페에 가서 돈을 내고 음식을 먹는데, 그 안에서는 마음껏 먹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아주머니가 비닐 봉지를 하나 가지고 음식을 담는데, 물론 말은 집에 있는 강아지를 준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음식을 담아서 가지고 가면 그것은 교역인데(?), 하지만 그 식당 주인은 그런 교역의 값은 전혀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주인이 돈을 받은 것은 그 사람 혼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가 봉지에 음식을 가득 담아 가지고 집에 가서 자기 아이에게 먹인다고 한다면, 그래서 그 아이가 먹고 배가 부르다고 한다면, 식당주인은 당연히 화가 나고 열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머니, 그렇게 음식을 싸서 밖으로 가지고 가시면 안 됩니다” 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혹시 그런 경험들이 없나요?

제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고 하니까, 만약에 자연에게 입이 있다고 하면 그 뷔페식당의 주인처럼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말이다. 즉 배불리 먹으라고 자연이 있기 때문에, 그냥 배불리 먹는 것으로서 족하지,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를 못하고 배부르게 먹고 또 모아서 미래까지 걱정하게 된다면, 그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 만나의 경우에 !!

출애굽기 16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만나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그런데 그만 안식일에는 내려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요일에 곱빼기로 내려왔는데, 다음날 것도 미리 준비하라고 말이다. 그런데 평일에도 그렇게 미리 내일 것까지 준비를 하게 되면, 아침에 만나가 내리는데 그것을 미리 더 많이 비축하게 되면, 그것은 그냥 썩어버린다는 것이다.

아마 그런 장면을 보았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냉장고만 있으면 된다고 여길 것인데,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분만 준비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자연이 뭐라고 하는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냉장이나 냉동처리를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요즘은 만나를 조사해서, 거기서 DNA를 추출하고 복제를 해서 만나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공업화라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살펴보자.

** 1315~1317년 중세의 대기근에서 볼 수 있듯이 식량의 절대량도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근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 즉 고대 사회의 기근에 대한 기록을 보아도 식량 분배가 불평등해서 기근이 되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왜 대기근이 발생했는가? 식량분배가 불평등해서, 즉 가진 자가 더 가지고 없는 놈은 굶어죽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자연을 훼손하고, 가진 놈은 더 가지기 위해서 자연을 훼손하는데, 그래서 기근이 왔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각지의 식량 가격에 대한 정보가 상인들 사이에 교환되기 시작하면, 식량분배의 문제는 유럽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식량을 취급하는 상인들은 상품을 시장에다 내지 않고 가격이 더 오를 때까지 쌓아두거나, 좀더 비싼 가격으로 팔 수 있는 지역에 가져다 팔았다. 그 결과 가격이 뛰어서 식량을 사지 못한 사람들의 불만은 상인들을 향하게 되어 있었다.

◈ 시장에 물건을 하나 내다 팔아도 !!

이것이 중요한 대목인데, 예를 들어서, 아주 가난하게 사는 강원도 골짜기에서는 옥수수, 즉 강냉이가 주식이 되어서 그 강냉이를 먹고사는데, 운동화가 필요한 생필품이 있으면 강냉이를 시장에다 내다 팔고 말이다. 그것을 정선 시장에다가 10kg에 천 원이라고 해서 파는데, 그런데 원주 시장에서는 이천 원이라는 정보가 들리면 어떻게 되는가? 오고가는 차비를 계산해서 조금이라도 더 남으면 정선시장이 아닌 원주시장에다 내다 판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기에, 교역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땅과는 무관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농민들이 어떻게 땅에서 생산하는지, 그것보다는 자기에게 어떻게 하면 이익이 되는지, 그것부터 먼저 챙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농민들에게 경쟁을 부추기는데, “아주머니, 이 강냉이는 얼마인교? 천 원이라고요? 에이, 저쪽에서는 오 백원을 하는데. 그러니 그만 칠 백원만 하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강원도에 웬 경사도 사투리? 경상도 상인인가? ㅋㅋ)

그렇다면 그 농민은 천 원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시장에 갔다가 그만 칠 백원밖에 받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사인들의 농간에 의해서 삼 백원을 뜯기고 왔다는 말이다. 그렇게 집에 오니 자식들이 뭐라고 하는가? “엄마, 오늘 천 원을 벌었지?” 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칠 백원밖에 벌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 원을 벌기 위해서 이전보다 더 많은 강냉이를 생산해야 하는데,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만 산에 불을 질러서 화전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상인의 농간에 의해서,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그 이전보다도 훨씬 더 자연을 훼손시키면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압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비단 농사뿐만이 아니라 고기를 잡아도 그렇고 말이다.

그런데 흔히들 인간이 혼자서 자립해서 산다고 하면서, 그것이 자유라고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전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간섭도 받지 않고, 물론 자기도 다른 사람을 간섭하지 않고 산다고 하는데, 하지만 한번 시장에 나가보라는 말이다. 과연 그러한지, 간섭 아닌 간섭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콩나물을 키워서 시장에서 판다고 하면, 당연히 상인이 와서 흥정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콩나물을 자기가 예상한 금액인 천 원이 아닌 칠백 원으로 깎아서 팔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콩나물을 판 사람은 모자라는 삼 백원을 보충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가? 그 상인의 사고방식을 의식하면서, 즉 의식이 자기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만 밥맛이 마구 떨어지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는 이제 천 오백 원을 벌기 위해서 농장에 가서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콩나물을 키울 수밖 없다는 것이다. 쓰지 말아야 하는 농약도 쓰게 되고 말이다. 그러니 그것이 무슨 자유를 누리는 인간의 모습이냐는 것이다.

◈ 과연 인간에게 자유가 있는가?

아무튼 제가 조그마한 예를 하나 들었지만, 아무튼 이 사회는 하나의 ‘장(場)’ 이라는 것이다. 뭔가가 서로 얽혀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이 과연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제가 장담하지만 그 누구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인간들이 교회에 와서 “주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기가 속해 있는 영역이 어떤 곳인지 전혀 십자가로 분간하지 못하고, 그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에게 자기 형편을 하소연하면서 “다오, 다오” 라고 외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런 기도는 하늘나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이 세상과 타협하는 기도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성령께서는 그런 기도에 전혀 응답하지 않는데, 성령님은 아버지의 뜻을 알고 이 세상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다오, 다오” 라고 한다고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모든 구조를 다 살펴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필요한 만큼 주신다는 말이다.

우리도 그런 구조를 생각한다면, 우리 인간에는 자유라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을 뻔히 알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것도 모르고서 “나는 자유가 있다. 누구든지 내 자유를 건드리지 말라” 라고 외친다면, 주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한심스럽겠느냐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이러한 사회 불안을 우려하는 정부가 중요 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식량 공급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시장에 개입했다.

정부가 이렇게 시장에 개입했다는 말은, 정부가 구매자가 되고 또 동시에 장사꾼이 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여기서 정부는 일종의 큰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보다 자금력이 강한 쪽에서 시장에 개입하게 되면 누가 피해를 보는가? 자금력이 적은 쪽은 큰손에 치어서 죽고 만다는 것이다. 티코가 트럭에 바쳐서 찌그러지듯이 말이다. 대형마트가 하나 들어서면 주위 상가들이 그냥 초토화가 되는데, 그렇게 큰손에 개입했다는 말은 큰손이 더 큰손이 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그러나 고대 그리스도 로마 시대부터 근대초기의 유럽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시장개입이라는 것은 보통 공정가격을 설정하는 정도에 그쳤다. 정부가 스스로 식량을 사들이거나, 또 상인들에게 식량을 시장에 공급하라고 강제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이런 정부의 개입은 오히려 상인으로 하여금 식량을 매점 매석하도록 하는 역효과를 낳는 경우가 많았다.

이게 바로 매점매석을 하는 것인데, 즉 라면 값이 4원 할 때 구입해서 팔 때는 8천 원에 파는데, 사기 싫으면 그만 두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해서 휘발유 값도 올리는데, 사기 싫으면 치우라고 하면서 말이다. 개인이나 기업들이 그렇게 할 때 정부가 나서서 공정가격이라는 만들어서 개입한다는 것이다.

물론 옛날에는 요즘처럼 그렇게 하는 경우가 드물었는데, 그렇다면 그런 상인들을 잡아드리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몰라도, 하지만 중세나 근세 당시에는 국회를 구성하는 자들이 바로 상인들이었는데, 그리고 그들의 힘이 국왕이 하는 일에 개입을 할 정도였기 때문에, 그런 상인들에게 함부로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고대 사회뿐 아니라 최근 수세기 이전까지 세계 각지의 모든 사회는 작은 집단을 이루며 자급자족했다.

여기서 ‘자급자족’ 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이렇게 작은 집단들을 이루어서 자급자족을 한다는 것은 교역이 없었다는 말이다. 물론 소규모의 교역은 있었겠지만, 누군가가 그릇을 잘 만들면 서로 교환을 하는 말이다. 그러나 집단적인 교역은 없었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할 정도로 말이다.

◈ 미국에서 주식이 폭락하면, 왜 한국에서도?

하지만 지금 21세기에는 어떠한가? 미국에서 주식이 폭락하면 한국에서도 역시 주식이 마구 떨어지고, 빚을 내서 주식을 하던 개미들은 완전히 빚더미에 올라가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 신용 불량자가 마구 양산된다는 말이다. 물론 가면 갈수록 이런 현상들이 심해지고 말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에서 주식 값이 내려가면 한국에서도 내려가는가? 미국과 한국이 거리가 얼마인데 말이다. 왜 그런 현상들이 벌어지는가? 의존적이기 때문에 그러한데, 얼마나 의존적인지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는데, 즉 이렇게 미국에서 주식이 내려가니 한국에서는 당분간 주식이 오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니, 그래서 미리 내다 팔자고 해서 주식 값이 더욱 더 폭락을 한다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 스치기만 해도 대혼란이 !!

구약 역대기에 이런 것이 있는데, 히스기야 왕 때에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나라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이사야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걱정하지 마라. 다음 날에 왕이 죽을 것이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적들이 지레 겁을 내어서 도망을 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고 하니, 적들이 아무리 까불고 사기가 충천해도 하나님께서 손을 대버리면, 자기들 스스로가 겁을 내서 도망가는 일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사기에도 그런 내용이 있는데, 기도온과 300명의 용사(?)의 경우에 말이다. 누가 꿈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그것이 적들에게 그만 퍼져서 미디안 군대들이 밤에 혼비백산이 되어서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다가 도망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인간들이 국가정책을 동원하고 날고 긴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냥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인간 세상에는 대공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황은 심리적인 용어인데, 즉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의 심리적 공황이 국가정책에 대파탄을 일으키는데, 그래서 경제가 엉망이 되고 말이다.

◈ 이런 나약한 인간들이 교회에 나와서 !!

이러한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이렇게 조그마한 변화에도 경기가 들 정도로 놀라는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가 되고 말이다. 그러니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하나님! 하나님!” 이라고 부르짖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조그마한 일에도 경기가 들 정도로 너무나도 연약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딴에는 아무리 하나님에게 의존한다고 해도, 가만히 보면 하나님이 아니라 어디에 의존하는가? 하나님과는 거리가 뚝 떨어져있고, 실제로 그들이 죽으라고 의존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같은 인간들끼리의 정서, 그리고 그러한 사고방식, 바로 그런 것에 배추가 소금에 절여지듯이 그렇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상품을 교역할 시장이 없는 상태에서 세속 지도자와 종교 엘리트들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장인과 예술가를 고용하거나 후원했다. 이러한 사회는 대개 농경 사회였고, 어쩌다 교역이 이루어져도 주로 지배층을 위한 사치품에 국한되어 있었다. 중세 유럽의 봉건 사회에서 초기에는 토지를 파고 사는 일이 거의 없었다. 돈보다는 군사적인 봉사의 대가로 교환하거나 임대했다.

계속해서 살펴보자.

** 토지 시장은 수세기에 걸쳐서 매우 점진적으로 형성되었다. 노동력 시장은 있었지만 자유 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노동 시간과 임금, 도제 기간과 생산량 등, 노동력을 조정하는 일은 주로 길드가 하는 것이었으며, 고용주도 노동자도 길드를 형성하고 있었다. 상인도 있었지만 그 역할은 미미했으며, 수요 공급에 따라 가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각 물품 사이의 정해진 관계에 의해 시장이 이루어졌으므로, 이익도 가격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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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78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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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